열흘 넘는 긴 여행을 다녀오려니. 두고 가기 아까운 일상이 아쉽다. 최고의 자연 풍광을 마주할 예정이지만 우리 동네 새와 풀과 나무 친구들이 늘 제일 좋으니까. 바빠서 산책 나갈 시간이 없었는데, 어제는 짐 싸야 하는 시간에 일단 우짜든지 나갔다.  막 피어나려는 개나리 꽃봉우리에 인사를 했다. 돌아오면 만개해 있겠네.

 

아이들 어릴 적에 첫 웃음, 첫 뒤집기 순간, 첫 '엄마' 발화 순간, 첫 걸음마 순간. 얼마나 경이로운 순간이 많았던가. 일하는 시간이 좋았지만, 퇴근하면 뭔가 하나를 했고! 부모님께서 흥분해서 상황을 전하시는데 어쩐지 섭섭하고 아쉽고 그랬었다. 조금은 그런 느낌이다. 한 송이 한 송이 피어나는 개나리를 보지 못하는 게 그때 그 심정으로 아쉽다. 

 

이러고 나는 가서 누구보다 그 순간에 몰입해서 감탄하고 흥분할 위인이니, 걱정은 마시고 가서 미션 수행 잘 하고, 여행 잘 마치고 오기를 빌어주세요. 다녀오겠습니다, 연원마을의 새와 풀과 나무와 하늘과 공기, 산책길의 개천과 마른 논과 놀이터의 아이들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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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커피가 즐거움의 한 잔일 때도,
즐거워 떠드는 수다의 한 잔일 때도,
우울감 한 잔일 때도,
우울과 무기력으로 말없는 한 잔일 때도 있는데.
 
한 잔을 다 마셔가는데 띠용!
스타워즈 쓰리피오의 눈이 나타났다.
커피잔 가득했던 감정이 온데간데 없어지고
쓰리피오의 사랑스러운 인격(?)의 향기가 빈 잔과 마음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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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게 설거지하다 멀쩡한 고무장갑을 가위로 잘랐다.
그게 나야...
심지어 마음에 드는 고무장갑이라 요즘 설거지 담당 자처했는데.
그걸 왜 때문에 어떻게 자를 수가 있지?
그게 나야...
 
맥락없이 이 노래가 자꾸 생각나고.
난 이 노래 참 좋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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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라고 늘 맑고 푸르러야 하는 것은 아님을 알기에
어두운 하늘, 
무거운 하늘,
먹구름 하늘에도 많이 순순한 마음이 되었는데...
 
그래도 모름지기 하늘이면 맑고 푸르고 그래야 하늘 아닌가 싶어
부아가 치밀거나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그러면 가끔 하늘이 창조성 끌어올려 작품 활동을 해주기도 한다. 신비롭다.
 
어느 새벽의 하늘,
어제 저녁의 하늘 사진이다.
어느 새벽에는 밤새 마음이 천국이었는지, 기분 좋게 눈을 떠 베란다 앞에서 저런 장난스러운 하늘을 만났고.
며칠 타나토스 에너지 상승하여 황폐해진 마음이었던 어제 저녁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오렌지빛 황홀경을 만났다.
 
이런 하늘, 저런 하늘, 하늘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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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가 끝나고 저녁 바람이 선선해질 즈음엔 나뭇잎들에 '노랑 끼'가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초록에 노랑을 섞으면 연두가 되지만, 초봄 새 잎이 나올 때의 그 연둣빛이 아니다. 여름 끝, 가을 초입은 '노랑 끼' 있는 잎을 좋아한다. 스러짐의 계절을 받아들일 준비라 여겨져서일까? 잠시 어정쩡한 빛을 띠다 공기가 차가워질수록 제각각 숨겨둔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붉은색, 노란색 단풍이 들면 나무 인생 가장 화려한 시절을 살게 된다. 그러나 그 영광이 짧다는 것도 나는 안다. 화려한 영광 뒤에서 이들은 힘을 빼고 있다. 꽉 쥔 손을 펴며 힘을 빼고 있다. 바람 한 번 휘리릭 불면 우수수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떨어져 뒹굴며 버석버석 말라 이리 뒹굴고 저리 차이고 하다 쓰레기가 되어 자루에 담겨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고 텅 빈 나뭇가지... 그 텅 빈 나목 사이로는 파란 하늘이 훤히 보인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가르침이며 기도인가.
 
이게 순리인데 말이다. 송충이 놈들이 기승을 부려 탄천의 나무들이 때 이른 이상한 나목이 되어 버렸다. 나무 인생 얼마 되지도 않을 색의 향연, 그 절정은 누려보지도 못하고 갉아 먹힌 잎들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깔끔한 선으로 남은 겨울 나무가 아니다. 가지 끝 잎맥이 그대로 남은, 한 많은 여인의 머리카락 같은 모양새로 슬픈 하늘을 드러낸다. 송충이에게 화가 났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바닥에 기어 다니는 송충이를 발견하면 콱 밟아 버릴까 싶었다. 그렇다고 콱 밟을 수도 없고... 한두 마리가 아니라 지뢰를 피하듯 걸어야 하는 구간도 있었다. 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송충이를 피하며 걷는 길. 갑자기 꿈틀꿈틀 기어 다니는 송충이들이 귀여워 보였다. 픽 웃음이 나왔다. 송충이가 뭔 죄야? 송충이는 송충이 본분에 충실할 뿐인데...
 
언젠가 불곡산을 걷다 마주친 실뱀과의 만남도 떠오른다. 작은 오솔길을 가로지르는 실뱀을 발견하고는 소리도 못 지르고 그 자리에 얼어 붙어 있었다. 잠시 온몸이 마비된 것처럼 얼어붙었었는데, 정신 차리고 다시 걸으며 생각하니 뱀은 뱀의 길을 갔을 뿐이었고. 길 건너는 뱀을 보고 혼자 기절할 정도로 놀라 나자빠진 건 내 안에서 일어난 일이지 뭔가. 송충이는 송충이의 일을 하고, 나무는 나무로 서서 제 주변의 생명체들과 어우러지고 있다. 단풍 화려한 나무, 우수수 떨어지는 예쁜 장면을 보겠다는 건 내 바람이지 나무의 뜻인지 아닌지는 어찌 알겠는가. 송충이에 갉아 먹혀 저 모양이 되어도, 나무가 괜찮다는데 내가 왜 슬퍼하고 화를 내고 한다는 말인가.
 
송충이는 송충이의 일을 하고,
갉아 먹힌 잎으로 나무는 제 운명의 남다른 가을을 살고,
나는 나의 2023년 가을 길을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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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도 산책이 가능한,

얼마 안 되는 시절이다.

낮에 나가야 하나하나 눈을 맞출 수가 있는데.

뷰 포인트다.

논이 있고, 

멀리 든든한 배경의 나무가 있고.

이 즈음엔 심지어 코스모스가 바로 앞에서 유혹을 한다.

 

 

내적 여정은 기도의 여정이라는 안내를 하면서

"이 날씨에 산책하지 않는 것은 죄예요."

했더니

 

어느 간사님이 

"저녁에 설교가 있어서, 설교 준비하느라 죄를 짓네요."

했다.

 

 

내가 "하이고, 죄 중에 잉태한 설교네요."

했다.

 

 

많은 경우,

설교는 죄에서 잉태하지.

어쩌면 좋은 설교는 더욱 죄에서.

 

 

어쨌든 나가 걷지 않으면 죄가 될 정도의 

좋은 날들이다.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

들꽃 한 송이를 보듬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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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계절이 계절의 때를 알고 찾아오고,
계절이 떠날 때를 알아 순순히 떠난다.
자리를 내어주고 떠나는 계절,
제 때를 알고 찾아온 계절이 교차할 때, 
나의 계절을 생각한다.
 
계절이 좋은 설교이고
계절을 마주할 때 나는 정직한 구도자가 된다.
깊고 고요한 기도를 드리게 된다. 
 
이럴 땐 이런 이유로
저럴 땐 저런 이유로
산책을 포기할 수 없지만,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이 이 즈음 같은 때가 없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을 보느라 이 즈음 산책 길엔 목이 빠진다.
이 즈음엔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낮이고 밤이고 간에.
 

 

*  재밌는 사연 끼워 팔기 * 


(JP와 아침 식사 준비를 하며 등 대고 대화 중)
JP : 야아, 공기가 차다. 계절이 지나가고 있어...  
SS : 그러게... 계절이 지나가고 있네... (사이)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이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약간 병짓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어떤 단어로 버튼이 눌리면 내 안에 있는 시나 노래 가사가 막 줄줄 나온다. 평생 있던 증상인데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JP : 와아... 당신 왜 서울대 못 갔어?
 
-------
 
(JP와 채윤이 식탁에 마주 앉아서)
 채윤 : 배 맛있다. 달다... 아빠, 배나무에도 꽃이 피어?
JP : 당연하지! 배꽃이 예쁘지.
SS : (계란프라이 만들면서 등으로 대화를 듣고 있었다. 배꽃... 배꽃?... 이화...)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귀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 (병짓...)
JP : 와놔, 정신실 왜 서울대 못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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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나서자마자 빰에 닿는 바람에...
그 가벼운 밤 공기에...
가을로 가득 찬 계절이 지나는 하늘에...
이미 다 써놓으셨으면서…
읽고 있는데...
알고 있는데...
숨이 막히도록 느끼고 있는데...
.
.
.
.
.
.
.
대놓고 이러신다.
지나가는 사람 다 보는데 민망하게 이러신다.
안다구요. JESUS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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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줌 강의 전에 짧은 밤 산책을 나갔는데, 어디서 아카시아 향기가 여리여리 하게 코끝이 스쳤다. 어디지? 어딨는데? 아카시아 어딨는데? 좋은 순간은 좀 붙잡아 두고 싶은데, 날듯 말듯한 향을 카메라에 담을 순 없어서 옆에 있는 아무거나 찍었다. 그러니까 저 나무 그림자에서는 아카시아 향이 나는 것이다. 다음 날인가, 탄천을 걷다 밤의 그 향기를 보내던 범인의 범죄현장을 목격했다. 아닐 수도 있고... 다른 아카시아일 수도 있고. 어쨌든 좋은 향기, 봄날의 아름다움이라서... 아름다운 건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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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슬쩍 보고도 '꽃마리'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언뜻 보면 꽃보다는 풀로 보이기 때문이다. 무성한 초록에 점 같은 꽃이 파묻혀 있으니 말이다. 이미 아는 꽃마리의 모양을 떠올리며 찾자면 결코 찾아지지 않는다.
 

가만히 잘 들여다 보면 이렇게 예쁜 모양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꽃이다. 모양을 잡아 사진을 찍으려면 바람에 불곤 해서 거의 실패다. 사진을 포기하고 그저 쭈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는 것이 상책이다. '꽃마리'라는 별칭을 쓰는 내적 여정 벗 때문에 친근해진 이 꽃과는 제대로 아는 사이가 되었다. 이제 정말 쓱 봐도 알 수 있다. 너라는 꽃마리.
 

꽃마리만 그런 거이 아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주마간산 식으로 보면 모든 들꽃이 다 그렇다. 그저 노란꽃. 애기똥풀인가? 민들레는 아니고... 이리 지나치지 않고 멈추고 쭈그리고 앉아서 들여다보면 이분도 또 존재감 뿜뿜.

씀바귀꽃이다. 학교에서 저녁 먹으로 식당 가는 길에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아 돌아보고, 돌아보다 고개 숙여보니 통성명하고 싶어 하는 이분이었다. 언젠가 이름을 익혔는데 씀바귀인지, 고들빼기인지 다시 헛갈려서 꽃검색을 돌려보았다. 정확히 노랑선씀바귀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선생의 시는 진리인데.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예쁜 건 둘째 치고 제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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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맞추고 마음을 통해보려 해도

하도 작아서 눈에 띄지 않는...

친구들과 무더기로 모여 있을 때는

저 자신으로 보이지 않는

자세를 낮추고 숨을 고르고 

가만히 들여다 봐야 보이는

사진 한 장 찍어보려면 

작은 바람에도 흔들려 초점 맞춰지지 않는

가던 길 멈추고 숨을 죽이고

오래 같이 머물러야 보이는

들꽃 친구들

 

눈을 맞췄다.

 

꽃마리

그리고 살갈퀴

 

그 무엇도 아닌 자기로 가만히 피어나 있는 소명에 충실한 들꽃 친구들, 또는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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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보고 걷는다. 그런 줄 몰랐는데 채윤이가 흉내 내줘서 알았다. 좋은 하늘, 좋은 바람을 누리러 나가서는 고개를 처박고 걷는다. 깨어 있으려 하지만 다시 '생각들'에 잠기면 땅을 보게 된다. 간밤에 꾼 꿈 생각을 하며 걸었다. 나는 또 뭘 그리 포장하고 꾸미고 있는 걸까? 꿈이 건넨 질문에 고심하노라니 땅만 보인다. 고개를 들자! 하고 목에 힘을 딱 주고 바라보니 정자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이다. 어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리저리 정신없이 헤매는 원숭이 마음을 멈추자. 고개 들고 찬 공기를, 발밑의 얼음 조각을, 아이들 소리를, 자동차 소리를 보고 듣고 느끼자. 그러자 아주 가까이에 곤줄박이 한 마리가 땅에 강림하여 삑삑거리고 있다. 아주 아주 가까이서. 이 녀석이 사라지자 머리 위에서 또 삐이삐이... (아마도) 박새 한 마리가 가까이서 혼자 놀이를 하고 있다. 아주 가까이서. 모두 같은 말을 한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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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한 달 만에 찾아와 잡수고 가셨다. 이로써 알게 된 것. 새들도 떫은 감은 먹지 않는다. 익혀서 먹는다. 직박구리가 찾아와 먹는 걸 여러 번 목격했다. 혼자 와서 먹고, 또 내가 없는 사이에는 친구 데려와 먹고. 그걸 채윤이가 목격했고. 고맙다. 결국 찾아와 먹어 주어서. 내 마음 알아주어서... 간절히 유혹할 때는 이렇듯 넘어와 주면 좋겠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는 부지런한 새들
가끔은 편지 대신
이슬 묻은 깃털 한 개
나의 창가에 두고 가는 새들
단순함, 투명함, 간결함으로
나의 삶을 떠받쳐준
고마운 새들
새는 늘 떠날 준비를 하고
나는 늘 남아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

-이해인-


유혹

베란다 화분 위에 감 하나를 내놓았다. 분명 연시라고 샀는데, 다른 애들 다 익어서 후루룩 먹어버린지 한참인데, 도통 물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감이다. 연시가 아니라 단감인가? 연시인가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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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화분 위에 감 하나를 내놓았다. 분명 연시라고 샀는데, 다른 애들 다 익어서 후루룩 먹어버린지 한참인데, 도통 물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감이다. 연시가 아니라 단감인가? 연시인가 단감인가, 도통 감이 안 잡힌다. 새들 먹이로 베란다에 내놓자는 신박한 제안을 JP이 했다. 이걸 기억하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다, 해놓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아이들을 유혹할 수 있을까, 잘게 발라 널어둘까, 견과류와 함께 내놓을까, 일단 나도 생각 중이었다. (정말 '생각'을 좋아한다. 생각을 많이 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다. 나란 사람.)

 

토요일 오후, 황금빛 시간 골든타임을 꼭 붙들어 산책을 나갔다. 역시나 기우는 빛이 만드는 향연이란, 쌓이고 뒹구는 낙엽 위의 황금빛을 뭐라 형언할 수가 없다. 동네 아파트 큰 나무 밑을 지나, 산길 같은 공원을 지나, 민영환 선생 묘지를 지나, 남의 동네 아파트를 가로질러 탄천에 닿았다. 삐리 삐리 삐리... 지나가는 아줌마를 휘파람으로 유혹하는 새 한 마리가 전깃줄에 앉아 있다. (그래서 산책할 때는 이어폰을 끼지 말아야 한다. 유혹을 당하고 싶으면 말이다.) 목이 빠져라 올려다보는데, 배 부분이 노란 것이 곤줄박이로 추정되는 녀석이다.

 

아무리 줌으로 당겨도 노란 색은 커녕 모양도 잡히지 않지만, 여하튼 배가 노란 작은 새다. 4선 악보 맨 윗 줄에 까맣게 뭐 묻은 것 같은 그것이 곤줄박이로 추정되는 애다. 한참을 그렇게 아줌마 목을 빼놓더니 휘리릭 낮은 곳으로 내려와 사라졌는데, 그 녀석 찾으러 탄천길 버리고 고물상이 있는 옆길로 살금살금 뛰어가 봤다. 아니나 다를까, 네가 다시 너를 보여줄 리 없지! 넌 늘 이런 식이야! 멀쩡히 제 길 가고 있는 아줌마 마음을 빼앗아 불을 지피고 사라지곤 하지. 

 

어쩐지 이번엔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나도 유혹에 나선다. 감을 자르네 마네, 고민 집어 치우고 통째로 내놓아 보았다. 걸려라, 걸려라, 한 번은 걸려라. 곤줄박이든, 박새든, 어떤 녀석이든 걸려라.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멀리서 새소리가 들린다. 누구든 낚일 것이다.  

 

 

 

어느 새

모든 새는 어떤 새다. 산책길마다 깜빡이 없이 난입하여 내 정신을 높은 곳으로 끌고 갔다 사라지는 새가 있는데. 오늘 그 새는 며칠 전 그 새가 아니고, 며칠 전 나를 만나줬던 그 새는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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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날아든 어느 새

오전 줌 강의를 마치고 혼자 유유자적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는 중이었다. 어떤 소리를 들었다. "대추 맛집, 대추 맛집, 여기가 대추 맛집." 영혼으로 들었다. 눈에 보이는 아이패드를 들고 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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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례

대추 말리던 바구니가 텅 빈 지 오래다. 한 바구니 가득했던 대추를 새 친구들이 죄 먹어 치웠다. 씨 하나 남기지 않았다. 빈 바구니는 어쩐지 치우고 싶지가 않아 그대로 두었다. 곡물을 좀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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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기쁨

해 지기 직전의 빛을 받으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시간 딱딱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 일이 있을 때야 어쩔 수 없지만 집에 있는데도 그렇다. 박차고 일어나 나가면 되는 것을 이것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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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때가 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오후의 뭉근한 빛을 보러 나섰는데

어둑어둑한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

 

저 앞이 우리 집.

우리 집에 다 왔는데

우리 집을 바라보면서

집에 가고 싶다... 라고 말했다.

 

돌아가면 늘 엄마가 있었던 집

구리 인창동 6단지에 가고 싶은가.

 

엄만 거기 없지.

엄만 내 마음에 있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집에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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