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마당에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시간은 그녀가 시간에서 풀려난 시간입니다.
그녀는 종종 시간에 묶여 있습니다.
아침을 준비하고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 아침 시간은 그녀를 묶고 있는 시간입니다.
물론 아침 시간은 좀 억울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녀를 묶어놓은 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상하게 아침 시간은 그녀가 그 시간에 묶여있다는 느낌이 납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시간은 그녀를 슬쩍 풀어놓습니다.
시간이 그녀를 풀어놓자 그녀는 책을 한권 들고는 마당으로 나갑니다.
책과 함께 하는 시간에선 시간에서 풀려난 자유의 느낌이 완연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그러고 보면 자유의 호흡입니다.   

 

출처: <김동원의 글터> '그녀의 책 읽는 시간' 중에서

========================================================================================



주말에 올라오는 남편이 시간이 나면 (본인이 의식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습관처럼 하는 일이 하나 있다.

침대 옆에, 거실의 탁자에, 주방의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내 책들을 스~을쩍 펴 보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검사하기.

그러면서 늘 하는 말 "아직두 안 읽었어?"

또 "부럽다. 나도 내가 읽고 싶은 책 마음대로 읽고 싶다"하면서 방학이 되면 읽을 책들을 나열하기도 한다.


기질과 성향이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구석이 없어서 나는 책 읽기 스타일도 멀티다.

한 번에 네 권 이상의 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읽는 게 예사.



 

아무리 재밌는 책이 있어도 이 책보다 먼저 읽지는 않으려고 애쓴다.

좀 바쁜 날이라도 가급적 아침에 한 장이라도 읽고 나가려 한다.

그렇다고 의무가 되거나 이걸 안 지키면 뭔가 잘못한 것 같아 찝찝함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듣는 것 같은 마음으로 매일 손에서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내 삶의 지표가 여기서 나온다고 믿고 오감과 마음을 다 쏟으며 마음으로 읽으려고 하다.



 

저녁에 채윤이 숙제를 봐주면서 읽는 책이다.

홈스쿨의 대모 샬롯 메이슨 처럼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하루 한 챕터 정도 읽으면서 아이들 양육과 특히 채윤이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지침을 얻으려고 한다.

'양육문제'는 엄마가 된 이상, 또 아이들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상 언제나 나에게 현안이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분야인 것 같다.



날이 갈수록 책읽기가 너무 편중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날에 읽었던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책들은 일상의 현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꾸 제쳐두게 되는데,

의식적으로 편식을 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오래만에 리영희 교수의 책을 손에 들고 매일 매일 그 분을 만난다.

미국과 하나님이 거의 동급으로 대우받는 우리들의 교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기만한데....


목장 모임에서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이 책을 보고 한 감각하는 디자이너 수현이가 그랬다.

" 이 책은 책이 이뻐서 어디 들고 다니면서 읽으면 좋다'구.




 

래리크랩을 만난 건 남편을 만난 다음으로 새 삶에 주어진 축복인듯 하다.

래래크랩의 상담가로서 성숙과 진화의 과정은 그대로 내게 선물로 주어진다. 그래서 은혜(gift)다.

'래리크랩이 기도에 관한 책을?' 하면서 책 광고를 보자마자 사서 읽는데 읽다가 책을 내려놓고 바로 기도할 수 밖에 없다.

자기 전에 읽고, 마음에 메말라서 생명의 샘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바로 펼쳐드는 책이다.



 

그리고 칼융을 만난다.

MBTI와 칼 융 역시 나를 돕고 세워주는 삶과 독서의 한 축이다.

융 심리학의 '그림자' 에 대한 공부는 수 년 전부터 탐구하기 시작한 내 마음의 끝에 다다르는 마지막 공부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책이다.


부모님과 함께 지내던 한 3년 동안 책을 많이 못 읽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리기도 했고,

퇴근 후에 책을 읽거나 컴터를 하는 것이 분위기상 적절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저녁 시간은 부모님과 앉아서 티브이 보고, 애들하고 무성의하게 놀아주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남편이 학교 간 이후로 더더욱 저녁 시간이 한가로와서 아이들 노는 옆에 앉아서 책을 보는 게 꿀맛 같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로 인해서 감사. 내게 주어진 시간과 여유로 인해서 감사.

김동원님의 말씀처럼 '자유의 호흡'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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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신 때마다 요리사 기능,

심심하실 때 여행기능,

부부싸움 하실 때 스트레스 해소기능,

속상하실 때 상담기능,

무거운 거 드실 때 운전기능,

컴터 부팅부터 인터넷 뱅킹까지 24시간 대기 컴터 강사기능,

전도연이 여우주연상 받았으니 영화 예매기능,

패티김 콘서트 예매기능 까지....


 

진짜 다기능 멀티플레이어 며느리 아니옵니까?

 

-.,-

 
       
조혜연 ggggg 이런거 울남편 해킹하면 곤란한데....빨리 닫아야징!!ㅎㅎㅎ (07.05.30 14:37) 댓글삭제
조기옥 알토란같은 손주 앉겨드리는 재주까지....ㅎㅎ
저도 울 털보가 볼까봐 얼른 닫아야 겠어용~~~ㅎㅎㅎ (07.05.30 23:04) 댓글삭제
정신실 아~ 것두 있었네요. 아버님 편에서는 젤 맘에 드시는 기능이 그 놈의 손주 안겨드린 기능일 것인데요..
ㅎㅎㅎ (07.05.31 01:20) 댓글수정삭제
박영수 난, 해당사항 하나두 없다..... (07.05.31 08:31)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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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만날 아이들에게 진실함과 헌신으로 다가가기를....

음악, 사람의 행동을 조작하는 얄팍한 행동주의 이론만을 가지고 아이들을 만나지 않고,

순간 순간 성령님의 리듬을 의식하며 그 리듬에 춤을 추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비록 말을 못하고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아이들이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이들의 가장 깊은 갈망을 읽어내고,

그 갈망을 나의 사랑과 목소리와 따스하게 만지는 손길로 채우기 원합니다.

그러나, 그로써 다 채워질 수 없는 그 빈 자리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채우기 원합니다.

 

기도하며 주님을 갈망하며 공부하는 남편.

기도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실패함 없게해 주시고,

잘 지치고 피곤한 몸을 강건케 하옵소서.

 

우리 채윤이.

몸에 맞이 않는 기성복 같은 학교생활에서 너무 많이 좌절하여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도록 해주시고,

자신의 장점을 잘 발휘하며 즐겁게 생활하게 해주세요.

혼자 걷는 위험한 길, 외로운 길에 채윤이가 마음으로 예수님을 부를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현승이가 순간순간 담대함으로 생활하고 키과 지혜가 쑥쑥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열심히 뛰어 놀 때 현승이가 키가 자라게 하옵소서.

 

이 홈에 드나드는 사랑하는 사람들.

오늘 하루 사람의 위로, 사람이 주는 달콤함보다 위로부터 오늘 것에 목말라하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그럼에도 이 홈이 여기 드나드는 모듬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게 하옵소서.

혹여 여기서 읽고 보는 것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늘 제가 겸손하게 삶을 나누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올리게 하옵소서.

 

나는 메말랐다고 하는 날에도 여전히 주님은 제 곁에서 생명의 물을 흘려보내고 계셨음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주님과 더불어 일하고 사랑하고 살기 원합니다.

2007.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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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부터 결코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 목.

부어있는 날이 더 많은 임파선,

최근에는 침을 삼킬 수 없을 만큼 아픈 목.

게다가 콧물이 줄줄 흐르는 비염.


이런 정도의 증상이면 '후두암'이 의심이 된답니다.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치료가 신통치 않아서 예전에 다니던 병원을 찾았더니 '내일 금식하고 다시 오세요'했어요.

느낌이 참 안 좋아서 잠을 설치고는 다음 날 갔더니 후두 내시경을 했어요.

검사를 마치고는 '이제 아니니까 안심하고 말씀 드리는 건데 후두암을 의심했어요'하드라구요.


다행이 성대 조금 안 좋고,

목에 염증이 포진해 있는데 좀 오래된 정도라고 했지요.


그런데 그 날 집에 왔는데 얼굴 한 쪽이 완전 눈 아프고, 코 아프고, 이 아프고...

잠을 또 못 잤어요.

병원에 갔더니 축농증이래요. 비염의 합병증이라나 뭐라나.

축농증이 심하며 그렇게 아플 수가 있다네요.


목의 염증과 두터워진 성대, 게다가 축농증까지...

요즘 완전 걸어다니는 이비인후과임돠.



 

주일날 예배 마치고 차를 마시고 있는데 찬양대원 한 분이 살짝 부르시더니 주머니에서 이걸 꺼내 주시네요.

눈물이 날 뻔 했지 뭐예요.

 

이런 사랑을 받아 먹고 싹 나아야 할텐데....

2007.5.2.

 

1

태어나서 첨으로 그런 적나라한 욕을 면전에서 바가지로 먹어봤다.

어제 치료하러 월곡동에 가는 길이었다. 유턴을 하기 위해 짧은 거리에서 차선을 바꿔야 했다.

오토바이 하나가 천천히 오고 있었고 무리가 되지 않게 차선을 바꿨고 신호를 기다리느라 섰는데...

그 오토바이가 옆에 와서 붙더니만 다짜고짜 기가막힌 욕을 퍼부어댔다.

내 생전 그렇게 막하는 욕을 내 면전에 대고 그렇게 길게 하는 걸 첨 들어봤다.

하도 기가 막혀서 입을 벌리고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하도 기가 막히고 멍해서 어떻게 신호를 받았는지도 모르게 신호 받아 유턴을 하고 오토바이는 갔나부다.

눈물이 막 흘러내리는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서러움이 복받쳐 왔다.

그 서러움은 오늘만의 일이 아니라 최근에 이런 일을 한 번 더 당했던 기억이 있는 것 같았다.

쉽게 생각나지 않아서 '언제였던가?'하고 되짚어 보았다.

 

생각해보니 이런 일이 아니었다.

그 서러움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라고 정리되는 그런 정황들이었다.

그 오토바이가 운전 중 그리 잘못한 것도 아닌 다른 운전자에게 다짜고짜 쌍욕을 퍼부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여자이기 때문이다.

남자였으면 욕을 했어도 그렇게 심하게 하지 못했을 것이고, 게다가 덩치가 있고 인상이 더러운 남자였으면 욕은 커녕 꼬리를

내렸을지 모를 일이다.

그 순간에 마음으로 '주님! 주님 다시 오실 그 날에 이 불평등과 부조리를 회복케 하실거죠?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자들로부터

무시당하는 이 부조리한 세상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의 아름다움으로 회복시키실거죠?' 이런 기도도 아니고 독백도 아니고 대화도 아닌

말이 마음으로 차올라왔다. 너무 황당한 독백이며 기도일까?



2.

여자들의 더 힘이 없고 약한 몸은 하나님이 이 땅에 생명을 주시는, 출산과 양육을 위한 축복의 통로로서의 몸이 아닌가?

예전에 채윤이를 갖고 입덧을 심하게 할 때 어느 분이 '입덧은 부모한테 보내는 아기의 싸인'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제 막 아기가 생겨서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몸에 배가 부른 것도 아니고 몸에 별다른 자각증상이 없으면 엄마가 조심하지

않을 수 있을테니 싸인을 보낸다는 것이다.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양분을 주기 위해 더 먹어도 모자랄 판에 그 무엇도 먹을 수 없는 미식거림과 구토가 있다는 건

내 몸에서 얼마나 위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인식하라는 아이러니다.

그러고보면 여자들이 신체적으로 남자보다 연약한 것은 '생명'에 대한 하나님께서 숨기신 깊은 뜻이 있는 지도 모른다.

남자처럼 근육이 많고 뼈가 굵고 과격한 운동을 좋아하도록 했다면 생명을 잉태하고 열 달을 품는데 얼마나 더 많은 주의가 필요할

것인가? 막 굴릴리야 굴릴 수 없는 연약함은 '생명'을 위한 축복이 아닐까?


3.

생명을 잉태하고 품고 양육하기 위해서 매여 있어야하는 여자들의 이 연약함은 고스란히 '핸디캡'이 되어버렸다.

거리에서 운전 중에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욕을 얻어 먹어도 싸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소명을 받아 간 신학교에서 '여성 목사 불가'라는 논란을 몸으로 받아내며 상처만 받고 있어야 하고....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산천초목도 타락으로 인해 훼손된 것으로부터 회복된다 하는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상처받는 이 땅의 절반의 사람들에게 온전한 회복의 날이 오기를....


 
 
        
정신실 성호삼츈!^^
저 사실은 상처 받았나봐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운전하다 욕을 먹고나서 알았어요. 여자 목사 안수 껀에 대한 까페에서의 논의를 보고 생긴 상처가 있다는 것을요...^^; (07.04.20 16:54) 댓글수정삭제
조기옥 그쪽 동네 차도 많고 길도 좁아서 운전 잘하는 사람도 거기만 가면 버벅거리게 되는 곳이예요..
저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있었어요. 아마 제가 혼자인 줄 알았나봐요.
저를 보고 험상궂게 욕하려는데 제 옆에 털이 부술부술한 털보를 보더니 입을 다물고 그냥 지나가더라구요... 어찌나 황당하던지...
같이 욕을 해댈수도 없는 상황이라 눈물만 쏟아졌을거예요. 억울하고 분해서...
제가 대신 실컷 욕해줄게요. 나쁜 X이라고...
오늘은 충분히 위로해주실 분도 옆에 계시니... 두 분 함께 하세요~ (07.04.20 19:52) 댓글삭제
정신실 위로는 별로 안해주고 어떡하든 한 잠이라도 더 잘 생각만 하네요.ㅜㅜ (07.04.20 23:39) 댓글수정삭제
정운형 연락처 좀 받아 놓지. 한 번 뵙고 싶은데....^^ (07.04.25 20:10) 댓글삭제
정신실 그러잖아도 번호판 외워서 개혁연대로 전화할까 싶었지.
근데 그런 거 없어도 너 잡을 수 있쟈나.
(07.04.26 09:03) 댓글수정삭제
강성호 이제야 형수님의 댓글을 봤네요. 죄송합니다. 사실 저는 여자 목사 안수 문제가 여성과의 문제가 아닌, 여성목사안수를 찬성하는 남자들과의 토론으로만 인식하였는데, 제 인식이 너무 좁고 작았네요.

요즘 사역하면서 눈물이 많아집니다. 제가 넓지 못하고, 깊지 못하고, 지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많이 울고 있습니다. 카페에 자매 동기들의 글을 보고서 마음이 더 힘들고 미안하네요.

형수님, 죄송합니다. 어떤 문제든지 여자에게 막 대하는 사람들을 저도 아주 아주 싫어합니다.

(07.04.30 20:10)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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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벌어 하루 먹는 정도는 아니지만 프리렌서의 삶은 '믿음'의 시험대가 되기 충분한 것 같습니다.

학교나 장애 어린이집 등으로 치료를 다니다보니 보통 1년의 계약을 하게 되고 매 3월이 되면 다시 스케쥴을 짜느라

분주해집니다.


치료를 그리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인상이 나쁜 것도 아니고,

그리 불성실한 것도 아닌데 이런 저런 이유로 새로운 자리를 구해야 할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나이에 아직도 치료사 구인 사이트를 들락날락 하고 이력서를 보내고 있자면 좀 한심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이 경력에 어디 이력서 넣어서 꿀리는 데라곤 없으니까 사실 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헌데 해마다 참으로 일이 묘하게 꼬입니다.

첫 판에 내 입맛에 딱 맞는 시간표가 짜지는 것이 아니라 꼭 속을 태웁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두 군데서 오라는 시간이 같거나 이동거리가 너무 멀거나 이렇습니다.

그러다 이번 학기에는 그야말로 이틀 일하고 나머지 날을 다 노는 것으로 3월 초를 시작했습니다.

당장 생계가 막막하지만 심하게 좌절하지는 않고 그저 좀 착찹한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이것두 예전 같으면 심하게 좌절을 했을테지만 그나마 경험을 통해서 '믿음'이라 할 수도 없는 눈꼽 만큼의

'믿음'이 생겼나봅니다. 아니 어쩌면 진정한 믿음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러다 막판에 두 군데 학교가 되었습니다.

이 두 군데를 통해서 제게는 하늘 아버지로부터 '메세지'가 온 것이죠.


메세지 하나.


성수동에 있는 초등학교 특수학급에서 치료를 하기로 하고 인사를 갔습니다.

다른 요일에 일할 미술치료 선생님을 만났죠. 초면에 농담도 하고 시간되면 나가서 같이 밥 먹고 가자고 하는 등

사람이 더풀더풀하기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암튼, 이 선생님과 함께 교장 교감님 인사도 하고 그랬는데 작년부터 미술치료를 했다는 이 선생님에 대한 칭찬이 자자한 것입니다.

얘길 들어보니 미술치료 시간이 두 시간인데 어떤 때는 세 시간도 하고, 학교에서 시킨 것도 아닌데 아이들과 만든 작품을

액자를 해서 복도에 걸어놓고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았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알고보니 미술치료 선생님도, 특수학급의 담임 선생님도 모두 크리스챤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내 치료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시간'에 연연하는 치료가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45분 50분을 채우는 것을 목표로 치료하고 있는 건 아니었나?

그저 나는 내 시간을 채우면 된다. 시간을 채웠으니 돈을 받으면 된다. 이런 식이 되어버린 것 같았죠.

음악을 통해서 아이들의 마음을 만지겠다던 그 열정이 넘치던 음악치료사는 어디로 갔느냐고요?

그렇게 '일(치료)'를 '돈'으로 매치를 시키니 일이 재미없고 힘들 밖에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에 최선을 다해서 내가 즐길 수 있도록 하자.

샬롬찬양대 지휘할 때 시간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연습을 시키고 인내하면 또 파트연습시키듯 하자.

하고 결심을 했습니다.

 

메세지 둘.

 

성수동에서 인사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월계동에 있는 초등학교의 특수교사 선생님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서울 시내에서는 방과후 치료가 세션당 가격이 정해져 있는데 이 학교는 시가(?)보다 25%가 낮은 페이였습니다.

착오가 있었나 하고 이력서를 내보기는 했지만 전화 통화를 하다보니 그게 전부였습니다.

특수교사 선생님 말이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좀 어려운 지역에 있다고 했습니다.

해서, 자신이 맡고 있는 아이들이 치료교육의 혜택을 거의 못 받고 있기 때문에 주어진 예산으로 최대한의 치료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력서를 보니 '성가대 지휘도 하시고 유리드믹스도 하시고...저로서는 정말 해주셨으면 좋겠지만 페이가 적어서 안되겠죠?'

'저희가 공부하고 연구한 것이 있는데 최소한의 대우를 받고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하고 설명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마음이 영 불편했습니다.

'나는 언제부터 음악치료를 돈벌이로만 생각하게 된 것인가? 내 전공으로 자원봉사도 해야할 판에 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단지 페이가 적다고 거절하다니...'

다시 그 선생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선생님! 저 지금도 늦지 않았나요? 그 아이들 만나고 싶네요. 그리고 선생님의 열정을 배우고싶네요'했습니다.



참으로 강렬한 메세지였습니다.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일'이 없으면 '돈'을 못 버니 마음이 불편하고,

'일'을 하면은 쉬고 싶어서 죽겠는 말도 안 되는 아이러니 속에서 정신 못 차리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악기를 보따리 보따리 들고 여기 저기 치료하러 다니는 것 참 힘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아이들을 만나는 그 시간 만큼은 나 스스로 음악에 빠져 행복하게 헤엄치는 시간이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해봅니다.

아~ 단지 음악에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리듬을 기본박으로 깔아놓고 말이죠.

성령님! 도와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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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실을 보면서 성격검사일 뿐인 MBTI에 심하게 목숨건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이것이 좋은 도구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게 준 의미가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MBTI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믿음의 큰 산 하나를 아직도 넘지 못하고 산기슭에서 넘어지고 피흘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사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내가 잘 짓는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날이 갈수록 음악치료보다 MBTI 강의하는 일이 더 재밌고 보람이 있다.


남편이 만들어준 MBTI ppt 첫 페이지.

MBTI강의를 할 때마다 충실한 메니저가 되어주는 남편에게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맙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오전 오후 다섯 시간 정도의 강의로 마무리 되었다.

지리산의 한 수양관에서 정말 때묻지 않은, 예전 우리의 중고등부 시절이 생각나게 하는 청년들과 함께 했다.


요즘 교회에서 예전 주일학교에서 가르쳤던 애들이 청년이 된 모습을 보면서 감회가 새롭다.

그 녀석들 중 지나다니면 만나도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인사도 안 하는 녀석들이 있다.

가만 보면 청년부에 엄청 열심이고 목장모임도 열심인 것 같은데, '아~ 녀석들 인사좀 먼저 배우지'하는 생각에

노인네처럼 섭할 때가 많다.


마산의 한 교회 청년부였는데 어찌나 인사들을 잘 하고,

강의하는데 반응을 많이 보이고,

어찌나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찬양들을 잘 하는지...

이런 청년들 데리고 사역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MBTI웍샵을 하다보면 반드시 이런 면학분위기가 한 장면 연출된다.

MBTI 강의를 거듭하면서 남편의 모니터링에 의해서 강의 형식이 보완되고 또 보완되곤 하는데...

처음으로 강의를 마친 후 자신을 돌아보는 기도회 시간을 가졌다.

나를 돌아보면 나를 독특하게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정죄하고 내 마음에서 밀어냈던 형제 자매를 생각하며 회개, 결단을 하고,

공동체가 아름답게 세워지도록 기도하였다.


이것은 결국 나의 기도가 되었다.

오전 내내 기도회진 집횐지 공동체 훈련인지 모르겠는 웍샵을 마치고 오후에는 남편과 함께 '연애와 결혼'강의를 하였다.



각각 우릭 들고 하는 강의안.
몇 개의 주제를 놓고 그야말로 만담 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한다.
 
 

<복상>에 글을 쓴 이후로 '연애와 결혼'에 대한 강의를 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서 결혼한 얘기를 솔직하게 하는 것에 제일 도움이 될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둘이 나란히 서서 '만담' 식으로 가끔 서로 티격태격하기도 하면서 강의를 한다.

이 강의를 마치고 '여보! 당신하고 헤어졌을 때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었었는데....이런 때 이렇게 후배들 도우라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건가봐' 하는 얘기를 했다.

싱글일 때의 외로움, 만남, 스킨쉽, 헤어짐, 결혼준비, 신혼.

연애와 결혼에 관한 책에서 나오는 어떤 주제도 우리의 경험을 비켜가지 않았으니 강의를 준비하기 위한 삶의 경험 같았다.


우리의 만남과 지금까지의 10여 년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어느 순간에는 가슴이 떨리고 목이 메였다.

그리고 내 곁에 섰는 이 사람, 가장 큰 선물로 주신 이 사람과 함께 주의 길을 가겠노라고 조용히 다짐이 되었다.


한창 강의가 무르익을 무렵 창 밖에는 오전부터 흩날리던 눈이 함박눈이 되어 쏟아지고 있었다.

강의의 마무리를 남편의 기타 반주에 맞춰서 내가 노래 한 곡,

둘이서 축가로 불렀던 노랠로 듀엣 한 곡을 불렀다.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아~ 나의 고백이다. 아픔과 기쁨도 감사...


나에게 당신은 주님께서 배푸신 사랑의 노래

아침을 비추는 밝아오는 해처럼 빛나는 기쁨

우리는 서로 마음으로 하나된 위로의 손길

당신은 언제나 아름다운 꽃처럼 향기를 주네

절망과 아픔 근심 우릴 흔들어도 기도는 위로와 힘이 되리니

때때로 넘어짐은 우리 주님께서 사랑을 완성케 함이라

내 맘 속에 한 가지 간절한 소망은 당신과 영원히 주님 노래 하는 것

언제나 항상 우리의 맘 속에 주님 사랑 늘 거하시리


아~ 이 얼마나 멋진 여정인가?

일주일의 여행 끝에 생각지도 못했던 이 노래로 우리의 여행를 끝맺게 하시다니...

청년들의 부러운 눈길을 받으며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야말로 함박눈은 펑펑펑펑 쏟아 부었다.

마치 내 마음에 쏟아지는 주님의 위로처럼,

우리 가정에 주시는 소망처럼....


너무나 완벽한 그 분의 여행계획이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날 사진은 없다.
나오는 길에 채윤이가 한 장 찍어줘서 건진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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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도 한 번 못 가보고....'

'우리는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가고....이게 뭐야'

가끔 이렇게 남편 들으라고 일부러 신세 한탄을 한다.


그런데 해외여행을 정말 가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여행의 목적지가 아니라 '가는 길' 그것 때문이 아닐까?


여행이 좋고 들뜨는 이유는 고속도록 휴게소에서 마시는 커피가 좋아서이고,

무엇보다 길을 따라가며 끝없이 나누는 대화 때문이다.




 

남편 역시 여행 중에 그런 얘기를 했다.

'나는 어디를 가서 좋은 것보다 이렇게 모르는 길을 찾아가는 게 제일 신나'


그렇다. 여행이 좋은 이유는 '길'을 따라 함께하는 대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거 섬진강변인가? 어딘가를 지나면서 했던 얘기 같은데...'이러면서 나중에 말하게 되는 것도 참 좋다.




 


 

5.18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알고나서,

그리고 임철우의 <봄날>을 읽고나서,

보성, 화순, 벌교, 구례, 주남....이런 곳의 지명만 들어도 마음이 찌릿찌릿한 것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좋았던 많은 것들 중 하나가 나 역시 그 말로만 듣던 곳들을 눈으로 보고 발로 밟아 봤다는 것이다.




길을 따라가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화개장터'에 까지 가보게 되었다.

여기서 산 단밤과 은행 구운 것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하루 하루 이 길을 걷다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에

하늘로 돌아가서,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번 여행을 몇 개의 여행이 짬뽕된 느낌이다.

민들레 공동체과 소석원, 그리고 진주북부 교회에서의 2박3일은 '배우는 여행'이었다면.

중간의 1박2일은 '즐기는 여행'이었다.

결국 즐김, 배움, 가르침이 다 어우러진 것이 여행이긴 하지만 말이다.

암튼, 우리 네 식구가 어디 가서 처음으로 우리 끼리만의 밤을 보내게 된 역사적인 날이다.

(여기 저기 많이 다닌 것 같은데 그 때마다 부모님을 위한 여행이었기에 여행보다는 효도 쪽이 무게중심이 있었다)


어떻게 가든 '보성만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출발한 수요일 오전이었다.

남해에 들러 충렬사와 이순신장군의 흔적을 돌아보는 (남편 표현에 의하면)성지순례를 하고,

광양 제철소를 경유(이 때는 세 식구는 모두 자고 운전자만 살아 있었다),

순천 시내 파리바게뜨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빵과 우유를 샀다.


 
 

그리도 가보고팠던 보성차밭을 들러서 율포의 녹차해수탕도 들러줘야지~

현승이와 아빠는 남탕, 채윤이는 엄마와 여탕이 좋겠지만,

'니네 둘이 함께 있어야 놀 수 있잖아. 같이 엄마랑 가야겠네' 하고 두 아이를 내가 데리고 들어갔다.

계속 운전하는 남편에게 좀 쉴 시간을 줘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결국 남편은 빨리 씻고 나와서 숙소를 알아보러 다녔다.


보성 차밭이 쫘~악 내려다 뵈는 언덕 위의 팬션으로 숙소를 정했다.

저녁을 먹고 들어갔는데 1층 찻집에서 녹차를 얻어 마실 수 있었다.

좋은 녹차를 마셔보니 처음으로 '녹차 향기'가 뭔지 알 수 있었다.

동서현미 녹차에서는 결코 느껴볼 수 없었던 맑고 은은한 녹차향 말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별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나누는 이런 저런 얘기들.

내게 가장 쉼이 되고 위로가 되는 시간은 어쩌면 이런 시간이다.

음악이 있고, 사방은 조용하고, 아무 방해없이 남편과 이런 저런 삶의 얘기, 아이들 얘기, 하나님 얘기를 나누는 시간.



다음날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녹차밭을 한 바퀴 산책을 하고 어젯밤에 사 둔 우유와 시리얼로 아침을 했다.



 


저렇게 녹차밭이 훤히 내다뵈는 곳에서 잠을 자고,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급히 짐싸서 나오기는 아까운일 아닌가?

햇빛 드는 창가에 앉아서 다이어리에 여행에 관한 기록들를 끄적이고,

책을 보고,

내일 있을 강의 준비를 하고...

아이들은 또 놀이에 빠져있고.

이것이 과연 안.식.이 아니겠나.



 

가족.

학교 다닐 때 학기 초만 되면 그런 조사를 한다.

"편부 편모 가정 손 들어봐!"

그나마 좀 나은 선생님을 그럴 때 눈을 감으라고 한다.사실 눈을 감아도 소용이 없다.

눈을 떴을 때 이미 붉어진 내 얼굴과 귓볼 같은 것을 본 친구들이면 바로 알 수 있었을 테니까.

엄마랑 동생 나. 이렇게 세 식구 사는 게 막상 그다지 불행하지도 않았는데도 '편모가정' 이런 말들은 당연히 불행하고

당연히 불쌍해야 할 것 같이 여겨졌다.


결혼을 해서 또 다른 가족이 만들어졌다.

엄마, 아빠, 딸, 아들. 구색이 딱 맞는 가정이다.

외형적으로 구색이 딱 맞아서 좋기도 하지만 어디서든 자신있게 말하듯 우리 부부에게 결혼은 '치유'였다.

많은 상처와 열등감, 외로움에 대한 치유였다.


다음 날 있었던 결혼 강의에서 이 얘기를 결론적으로 했다.

찬양 중에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하는 가사가 있다.

청년들이 지금의 가정에서 외형적으로 내적으로 받은 상처가 있다면 내가 만들 가정에 주실 복을 기대하면 기도하라고.

'따스한 따스한 가정'을 꿈꾸고 기도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내 인생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귀한 선물. 가족.

민들레 공동체에서 나와 어딘가를 간다는데...

도대체 거기가 어딘지 사전 지식이라곤 없었다.

 

어떤 사람이 '거기는 겨울보다 가을 단풍 때가 더 이뻐'하는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까펜가? 아니면 무슨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서 확신을 했다. 아~ 카페구나.

바닥이며 담을 돌로 쌓아 만든 멋진 카페같은 곳인데 카페라 하기에는 건물이 너무 후지고,

무엇보다 써빙을 보시는 분이 웬 할아버지라는 게 영 부적절했다.

커피들 한 잔 씩 들으라고 하시면서 물을 끓여 나오시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싶었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서 돌로 만든 의자에 죽 둘러 앉았다.

인솔해 가신 전도사님이 '할아버지 얘기 좀 들려 주세요'하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당신 얘기를 쏟아 놓으셨다.

 


 

얘긴즉슨, 여기 있는 모든 돌이 30여년 동안 할아버지 혼자서 옮겨다 놓으신 것이다.

저 많은 돌들을 옮겨다가 이렇게 멋진 정원을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20대의 젊은 시절에 가족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병든 몸으로 이 산골에 들어 오셔서

움막을 하나 짓고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노래를 가르치셨단다.

비가 오는 날에는 땅이 젖어 웅덩이가 생기고 흙탕물이 되는데 돌을 몇 개 놓고 밟고 다녔더니 '거 좋네' 하시고는

시작하신 일이 여기에 돌을 옮겨다 놓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아오신 세월이 50년이 된다는 것 아닌가?

혼자 그렇게 고독을 벗삼아, 고난을 친구 삼아, 돌을 가족 삼아 살아오신 것이다.

고독과 고난의 길이 천국 가는 가장 빠른 길인 것을 삶으로 배우며 살아오신 것이다.



 

그렇게 사시다 결혼하신 지 8년이 되신단다. 결혼으로 따지면 우리랑 동기가 되시는 것이다.^^

결혼 8년차 답게 할머니랑 어젯밤에 티격태격 하셨단단. 할머님은 지금 방에서 성경을 읽으면 근신 중이라면 농담도

잘 하셨다.

 

저 많은 돌들을, 아니면 저렇게 큰 돌들을 어떻게 혼자서 다 옮겼단 말인가?

모두들 저걸 어떻게 옮겼느냐고 하는게 하루에 한 두 개씩만 옮겨도 30년이면 어떻게 되느냐 반문하신다.

그러면서 '저 놈은 15년, 저 놈은 7년'이 걸렸다면서 엄청나게 큰 돌들을 가리키셨다.



 


 

마당 한 가운데 연못과 연못 옆에 세워둔 경고문(!)이다.^^

 

오랜 고독의 시간 동안 고난도 개구리도 돌도 바람도 친구가 되지 않겠는가?

자작곡의 노래도 많이 있으시단다. 디카를 동영상 모드로 돌려 놓고 '노래 좀 들려 주세요' 했다.

그랬더니 작품해설과 더불어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가르쳐 주셨다.

 

'돌이 돌이 돌돌,

 돌이 돌이 사네

꽃도 꽃돌

꽃돌 사네'


어찌나 멜로디와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 여행 내내 애들과 함께 불러댔다.

 

당신의 얘기를 다 풀어 놓으신 후에 '이렇게 힘든 삶은 누가 살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살라고 부르셨으니까 살지'

결국에 '소명'이다.

소석원으로 가던 차 안에서 남편과 했던 얘기다. 지난 밤 만난 김인수박사님을 생각면서

'이 분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에 살고 계신 것 아닌가?' 즉 '소명' 얘기였다.

이 할아버지도 '소명'의 삶을 사셨다는 것이다. 외로움과 고독 속에 묵묵히 돌을 나르면서 삶을 가꾸라는...

그렇게 살다보니 결혼도 하고 지금처럼 행복한 날도 살아본다고 하신다.

 

'소석원(笑石園)'

돌들이 웃는 정원?

이 분이 사시는 동네 이름이 '鳴石마을'이란다. '우는 돌'들이 '웃는 돌'들이 된 것이다.

어디 이 할아버지의 인생이 '웃음'이 웃어지는 삶이겠는가?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당신 스스로 웃고 계셨고,

돌들이 주인을 따라 웃고 있고, 소석원 곳곳에 유머와 웃음이 베어 있다.

 

부끄럽다.

울 일도 아닌 일에 가슴을 치며 울어대고, 분통을 터뜨리고, 억울에서 펄쩍펄쩍 뛰는 내 삶이 부끄럽다.

소석원 할아버지의 웃음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겠다.

그 소명이 무엇이든지, 고난이든지, 외로움이든지, 짓밟힘이든지...

소명에 충실한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결국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웃음을 웃게 된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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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오래되던 우울의 터널을 빠져나오기 프로젝트였다.

예전에 복지관에 다닐 때였다.

채윤이를 보시던 엄마가 골다공증과 고혈압으로 쓰러지다시피 하시고 7개월 채윤이를 하남에 맡기고 사당동에서 살던 때다.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 있어서 헤어날 길이 없었다. 엄마를 봐도 채윤이를 봐도 눈물만 흘렀다.

'쉼'이 필요했다. 몸과 영혼이 쉬면서 찾아야할 것들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장염에 걸려서 밥도 못 먹고 열은 오르락 내리락...링거를 맞고 버티는 상황이었다.

또 설상가상. 8개월된 채윤이가 장이 꼬여서 한 밤을 지새우면 고양이 울음을 내며 고통스러워하다 입원을 했다.

 

바로 그 때!

서울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고 내가 다니던 복지관이 완전 물에 잠기는 바람에 곡절 끝에 한 달 휴관을 하였다.

한 달이 아니라 한 40여일 되었던 것 같다. 즉, 40여일 휴가를 받게 된 것이다.

사람 사람마다 여러 다른 상황이었겠지만 그 때 그 40일은 분명 내게는 하나님이 주신 특별휴가였다.

 

이번 여행도 그와 비슷한 셈이다.

원래는 금요일에 지리산에서 MBTI 강의와 결혼강의를 하는 계획이 있었고 목요일에 아이들 두고 남편과 함께 내려가기로 했었다.

갑자기 월,화 이틀간 민들레 공동체 탐방이 있으니 함께 가자는 연락이 왔다.

같이 가고 싶은 마음 있었으나 일주일에 장거리 여행을 두 개를 잡는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때 남편이 제안을 했다. 어차피 둘 다 지리산 근처니까 애들 데리고 일주일 동안 여행을 하자.

잠은 민들레 공동체에서 이틀, 지리산 수련회장소에서 하루, 그리고 찜질방에서 하루 자면 된다!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느껴졌기에 그러겠노라 했다.

 


출발하면서 함께 기도했다.

"하나님 이번 여행에 함께해주세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교제하고,

우리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사랑을 확인하고,

회복되는 여행이 되게해주세요"




외향형이긴 하지만 감정형인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쌩판 모르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사귀는 자리로 가는 것도,

처음보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더플더플 말을 건네고 하는 것도 내게는 꽤 불편하다

남편의 학교 동기들을 만나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이 그래서 부담이 되었다.

그래도 민들레 공동체의 대표이신 김인수박사님이 정말 괜찮은 분이라니

(남편이 지난 학기에 한 번의 특강을 듣고는 그 분의 인격과 삶에 뿅 가버렸다)

나머지 것들은 훈련이라 여기며 공동체를 찾았다.

 

산책을 하고, 장작을 패 보고, 불을 피워 고구마를 구워 먹고,

그리고 한 30여 년 만에 '자치기'를 하며 오후를 보냈다.

가끔씩 '자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로 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놀이의 정확한 순서가 생각나질 않았었다.

공동체에 사는 준규라는 아이가 자치기를 갖고 놀길래 같이 하다보니 그 순서가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그저 각자 또는 같이 마음 가는대로 시골의 정취를 마음껏 느꼈다.






저녁을 먹고 김인수박사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도대체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도 모를 요즘의 시대, 세계화, 도시...이것에 대한 대안을 '공동체'에서 찾았고 성공하신 분이다.

다 옮겨 적을 수 없는 주옥같은 말씀들이다.

이 말씀이 주옥같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삶과 말이 다르지 않다는 것.

20년 동안 삶으로 살아낸 얘기를 하는데 어찌 감동과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공.동.체.

이 분이 하고 있는 공동체란 무엇인가? 같이 먹고 자고 서로의 삶을 평생 경제적으로 책임져주는 공동체이다.

이것을 위해 먹을 것을 비롯해서 전기까지도 자급자족을 하신다.




그냥 자전거가 아니라 저걸 타고 패달을 밟으면 전기가 만들어지는 발전기 자전거다.

이것과 풍력발전 등등으로 전기까지 자급자족할 뿐 아니라 조만간 남는 전기를 한전에 팔 수도 있다한다.


그러나.

먹고 입고 사는 것이 해결된다고 어디 공동체가 굴러가는 것이더냐?

공동체로 모인 사람들의 문제, 즉 '관계문제'에서 발이 꼬이지 않는 것이 공동체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문을 품고 어설픈 질문을 해봤으나 그리 힘겨워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잠깐 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느낄 수 있는 인격의 아우라가 분명 있었다.

사람들 때문에 힘든 것이 왜 없을까만은

'부름심'에 충실한 삶을 살려할 때,

'자기'가 비워지고 또 비워졌을 때는 다른 눈과 귀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가르치다니요? 우리가 뭘 가르칠 수 있습니까? 그저 살라고 하신 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절대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둘이 아닙니다"

목사가 되어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야겠다고 하는 신대원생에게 그렇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여러분보다 성경을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인터넷으로 좋은 설교 얼마든지 들을 수 있고요...

여러분의 설교로 사람들이 정말 뭘 배우게 될까요?"

그렇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남편이 목사가 되고 설교를 할건데 설교를 통해서 정말 뭔가를 가르칠 수 있을까?

가끔씩은 평신도로 앉아 있는 나도 여러 설교들을 무시하고 귀를 막을 때가 있다.

 

문제는 삶이다.

이 분의 말씀이 하나 하나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을 진한 삶의 향기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뭘 가르치겠다'는 의식이라곤 없이 그저 열심히 하나님 앞에서 살아낸 고백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설교가 교역자로서의 특권의식에서 나오지 않기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감시하리라.

도시 교회에서의 대안을 무엇을까 하는 질문에 교회 속 교회, 즉 소그룹 공동체를 언급하셨다.

삶은 결코 사람들과 유리되어서는 안된다.

교역자는 성도들과 일정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든지,

목사나 사모는 자신의 삶의 얘기를 성도들과 할 것이 아니라 교역자들 끼리만 나누는 것이 미덕이라든지,

이런 의식이 남편과 내게 둥지를 틀지 않았으면 좋겠다.

삶이 있는 설교는 위해서는 늘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개방하고 함께 기도할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피곤한 시간이었지만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마음의 귀까지 쫑긋 세우고 말씀에 집중했던 것은

이번 여행을 통해서 들려주시고자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거기 베여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때로 박사님의 말씀과 전혀 상관없는 통찰이 마음에서 울렸고 그것 역시 성령님의 울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기도방이다.

여기 들어가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선뜻 행동에 옮기질 못했다.

언젠가 여기에 다시 가서 오랜 시간 머물고 또 저기 앉아 기도하는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까?




 

나는 이상하게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는 사진 찍는 걸 잊는다.

아니면 이런 순간에 카메라를 드는 건 너무 수선을 떠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박사님 얼굴은 담아오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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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부터 어저께지 짧지 않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금요일에 지리산에서 MBTI 강의와 결혼 강의가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남편과 둘이 목요일에 내려가기로 했었는데 갑지가 월,화에도 지리산 근처에서 일정이 생겼습니다.

남편 신대원의 '농촌을 생각하는 모임'에서 공동체 탐방을 간다고 하였습니다.

'민들레 공동체'라는 곳인데 학기 중에 남편이 거기 대표되시는 분께 특강을 듣고는 완전 뿅가서 왔더랬습니다.

생각과 삶이 너무 멋진 분이라고...

대안학교도 시작한다니 채윤이 초등학교 가는 마당에 여간 끌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공동체 탐방도 따라 가겠노라 했습니다.


남편이 아예 애들 데리고 내려가서 일주일 그 쪽 여행을 하면 어떻겠냐 했습니다.

방학이라 일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일을 하고 있는터라 어떨까 했는데 다행이 스케쥴 조정이 되고

정말 좋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남편이 여행을 제안하는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 달이 넘게 정서적 터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저를 위한 배려였지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주일을 보내리라 마음 먹고 아이들과 함께 떠났던 여행.


한 두 편의 글로 다 말할 수 없는 좋은 것들로 가득찬 시간이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귀한 만남,

나를 돌아보게 하는 만남들,

환대와 섬김,

우리들만의 노래와 이야기,


넘치는 위로가 된 여행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먹은 밥이 체해서 어젯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약 먹고 일찍 자야했지만 그것까지도 감사한 여행의 일정인 것

처럼 느껴집니다.


여행 마지막 날에 남편과 함께 결혼 강의하면서 남편이 그런 결론을 내리더군요.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증거로 주신 선물이 바로 아내'라고요.

남편, 아이들, 사람들, 소명, 은사...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좋은 선물들을 다시 리필 받아서 돌아온 느낌입니다.^^


그 선물 얘기를 하나 하나 정리해두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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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복지관에서 풀타임 근무 할 때.

성대결절로 두 주 병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 '목을 절대 안 쓰는 게 약'이라고 의사가 말했는데....

맘껏 노래할 수 없다는 게 참으로 서글펐다.

무엇보다 '목소리로 먹고 사는 직업'인데 이러다 노래도 못하고, 음악치료도 못하는 거 아닌가 하면서

살짝 불안했던 기억도 난다.


성탄절이 되기 전 금요일부터 강행군을 했다.

금요일 아침 7시 30분에 시어머니 검사예약이 되어 있어서 새벽부터 일어나 어머니 병원을 모시고 다녀왔다.

그리고 저녁에 어린이집 송년발표회 행사를 진행하고,

토요일 저녁에는 네 시간에 걸쳐 찬양대 연습을 하고,

주일아침 8시에 교회 가서는 역시 찬양대 연습과 예배, 그리고 저녁 7시에 성탄절 행사를 하며 또 찬양을 했다.

월요일 성탄절 점심에 찬양대 회식으로 식사를 할 때까지 거의 밥다운 밥을 먹지를 못했다.

덩달아 애들도 한 이틀을 밥구경을 못하고 엄마를 따라 다녔다.ㅜㅜ


성탄절을 보내고 목도 함께 보냈나보다.

목이 사실 안 좋기 시작한 건 한 달이 되었다.

오랫만에 아이들 노래 연습을 시키려니 모든 게 예전 어린이 성가대 지휘할 때 같지가 않았다.

신호가 이미 왔음에도 목을 아낄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가버리 목에 목감이 까지 걸렸다.


어제 남편이 수요찬양을 인도하면서 싱어로 서 달라고 부탁을 했다.

목이 최악인데 노래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같이 서지 말고 의자에 앉아서 혹시 괜찮으면 마이크 대고 노래를 해달라고 하였다.

조금씩 소리가 갈라지면서 20여분 찬양을 부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 아이들 치료하면서 목소리가 거의 나오질 않는다.

목소리 나오지 않으면 무기를 잃은 것 아닌가?

마지막 치료를 하고 나오면서 고개가 저절로 떨궈지고 어깨가 축 늘어지고,

몸과 마음에서 힘이 주~욱 빠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지금 병원에 가면 '성대결절' 진단이 나오겠고, 방법은 안 쓰는 방법이라 할텐데....

ㅜㅜ

2006/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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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사 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렇게 기다리던 독립이요, 이사이건만 홀가분한 마음보다 마음 한 켠 묵직한 것이 참 이상하다.


그간 참 많은 마음 고생, 몸 고생도 적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사의 눈물'이 시시때때로 시야를 흐린다.

채윤이가 7개월이 되던 때부터 일곱 살이 되고, 이제 여덟 살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아이들 양육을 도와주신 부모님. 특히 아버님.

'내가 다시 선택하라면 부모님께 애들 안 맡긴다'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지만...

두 아이가 이렇게 자라는데 수훈상을 드리자면 역시 부모님, 특히 아버님이시다.


두 애들이 유아기를 보내고 부모로서 육체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반의 책임은 아버님이 다 져 주셨다.


꼭 애들 문제가 아이어도 암튼 결혼하고 사당동에서 살던 20여개월을 제외하고는 거의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고 봐야하는데...

어머니 말씀처럼 '이제 더 멀리 살 일' 남았다.


그런 저런 일들을 돌아보면서 운전하다가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감사'라는 단어 외에는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어제 아마도 어머니랑 살면서 마지막이 될 김치를 했다.

올 해는 절대 김장 하시겠다고 하셨던 어머니 결국 어제까지 세 번의 김장을 하셨다.

'엄마! 할머니가 김장하게 빨리 건너오래' 하는 채윤이 말에 이제 습관이 된 '김치하기'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없었던 것 아니지만

기쁘게 건너 서 백김치를 담궜다.(이제 낼 모레면 제대니까!ㅎㅎㅎㅎ)


조금 전에 어머님가 건너 오셔서 이런 저런 얘기하시다가.

7년이 되도록 너랑 나랑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참 잘 참고 살았다.

너도 힘든 것이 있었을 거고, 나도 그렇지만 참 지혜롭게 잘 참고 살았다.

하셨다.

7년 동안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며느리랑 살았다는 것이 어머니께는 큰 자랑이다.


가끔 어머님 친구분들 만나면 '같이 사는 며느리가 그렇게 착하다고 어머니 칭찬이 마르지 않는다' 하신다.

같이 사는 며느리와 잘 지내는 건, 같이 사는 시어머니와 잘 지내는 며느리에게 자부심이 되는 것 이상인 것

같다.


함께 살면서 눈물로 보낸 밤이 적지 않은데...

결국 어머니의 연약한 점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게 그 때 그 때 말씀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찬양하면서 상처받은 마음으로 다시 어머니 사랑하기 위해 일어나고

또 일어나곤 했었다.


이사를 하면서 그 세월의 감사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생각하며 지낸다.

감사의 편지와 함께 기억에 남을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2006/12/5
      
박영수 이글 쓰면서 또 눈물 바람 했겠지?
시부모건 친정부모건, 출가후 부모님과 함께 사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
감사와 기대 두 마음으로 지금 행복한 순간이네.
새로운 환경과 함께 좋은 일들이 마구 펼쳐지길.....

(06.12.05 11:50) 댓글삭제
조기옥 저는 쥔장님 마음 백번천번 이해된다고 하면 내 마음도 느껴질까요...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하겠네요..
저두 짐싸는데 한 힘되는데요.. 힘만 쎄서리...ㅎㅎ 맘만이라도 보태드릴게요. 힘내서 여영차 이사 잘 하세요~~ (06.12.05 13:17) 댓글삭제
정신실 짐은 포장이사 하니까 마음 보태주시는 일이 최곱죠.^^
제 마음 백 번 천 번 이해되시는 것이 마음 깊이 느껴져요.
말로 표현된 이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몽녀님! 어뜨케 아셨대요?
하이튼 빨르시다니까!ㅎㅎ
(06.12.05 21:24) 댓글수정삭제
조기옥 이사짐 센터 직원이 젤로 싫어하는 집 --->>> 책 많은 집^^
아마도 그럴걸요^^ (06.12.06 10:19) 댓글삭제
정신실 이사하는 날 이삿짐 센터 아저씨가 책꽂이 앞에 서서 '후유~' 하고 한숨 쉬는 거 본 적 있어요.ㅎㅎㅎ
신경질 나서 그러는지...책을 저~엉말 아무데나 꽂아서 정리해요.
그러면 책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이 남편하고 둘이서 하루 걸리는 일이예요.
이번에는 남편이 책 정리하시는 분께 꼭 부탁한다고 하더라구요.
'아~자씨! 순서대로 빼서 순서대로 꽂아주시면 안될까요?'
제 생각엔....아자씨께 너무 무리한 부탁인 것 같아요.^^
(06.12.07 09:37) 댓글수정삭제
이금미 목녀님! 이사축하드려요.^^ 언제하시나요?
늘 행복하고 즐겁게 사시는 것 같아요.^^ 채윤이, 현승이가 행복의 비밀이겠지요?ㅋㅋ
저도 2월이면 둘째아이 엄마가 되네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좀 여유롭게 아줌마답게 살려고 합니다.ㅋㅋ 한 1년정도는 유아로 또 정신없겠죠.ㅋㅋ 좀 걱정되는게... 그게.. 둘째도 아들이라는 사실..헉~
좀 많이 걱정이 되네요. 딸을 무지 기다렸는데.. 딸같은 아들이 나올지..ㅋㅋ
암튼 신혼때 질풍노도의 시기에 함께 해주시고 도움주셔서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이제 진짜... 분가하셔서 행복한 시간 더 많이 가지세요. 화이팅! (06.12.15 13:30) 댓글삭제
정신실 오~~오, 금미자매!
같이 하진 못하지만 늘 생각나고 궁금하고 보고싶고 그래요.
두 아이가 동욱이를 많이 그리워 하고요...
둘째 소식을 들었는데 배가 많이 불렀겠구나. 올 한 해 지내보니 작년에 이수전도사님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 들어요. 금미자매로 그렇고.
방학 때 동욱이 데리고 꼭 한 번 놀러와요. 사진으로는 가끔 보지만 많이 자란 동욱이 너무 보고싶고..
두 사람도 보고 싶어요. 꼭꼭꼭이예요! (06.12.15 14:37) 댓글수정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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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사할 때가 되니까 어머니가 어머니 살림에 대한 생각이 많으시다.

손님이 오시면 우리집에 오셔서 우리 찻잔으로 차를 대접하시거나,

우리 압력밥솥을 갖다 쓰시거나,

암튼 필요할 때마다 갖다 쓰실 살림이 하나 더 있으셨는데 그게 없어지니 말이다.


살림을 좀 사고 바꾸고 하셔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나보다.


"은옥이(시누이)가 저~기 어디 이천인가 곤지암으로 그릇 사러 가자고 하드라. 이쁜 것이 엄청 많다고"

"그래요? 언니가 바쁜데 언제 이천까지 그릇 보러 갔대"

하고 말았다.


며칠 후 시누이를 만났다.

"야! 니가 가보라고 해서 2001 아울렛 가봤는데 그릇 이쁜 거 엄청 많드라" 이런다.

그렇다면 혹시...

"언니 혹시 어머니한테 2001 아울렛에 그릇 사러 가시자 했어요?"

했더니 그렇단다.


그러니끼니.

어머니가 '이천'이라 하신 곳은 '이천일 아울렛!'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이천 옆 '곤지암' 까지 붙이신 어머니.

ㅋㅋㅋㅋ


이사하기 전에 이천인지 곤지암 가서 이쁜 그릇좀 사다드려야 쓰겄다.


       
조기옥 푸하하하~~ 넘 재미나요~~
아파트 이름이 외래어로 바뀌는 이유가 어른들 못찾아 오게 하는거라더니..
이렇게 재밌게 버무리시는 어머님... 넘... 멋져요~ (06.12.05 13:11) 댓글삭제
정신실 이런 거 디게 많아요.
조마루 감자탕 ---> 마루조나 감자탕
또 많은데..ㅎㅎㅎ (06.12.05 21:25) 댓글수정삭제
이선영 저두 있어요!
어머니: 오카리나->오카나, 리모콘->거시기
친정엄마: 뜨인돌 교회->박힌돌 교회 (06.12.05 21:45) 댓글삭제
조기옥 뜨인돌 교회->박힌돌 교회... 넘 넘 잼나요~ 저두 많을텐데 지금 기억이 안나네요~~
음... 울 어머님이 실수를 줄이고 계신계야...ㅎㅎ (06.12.05 22:38) 댓글삭제
김종필 ㅎㅎㅎㅎ 다 재밌네요. ^^ (06.12.06 10:05) 댓글삭제
정신실 우리 엄니는 리모콘만 거시기가 아니라 잘 모르겠는 모든 것은 다 '거시기'지.ㅎㅎㅎ

예전에 한영교회 앞에 '하늘의 별처럼, 들의 꽃처럼' 이라는 까페가 있었는데....
청년부의 어느 선배 어찌나 신앙이 좋은지 이렇게 부르더라.
'낮엔 해처럼, 밤에 달처럼'ㅋ (06.12.07 09:38) 댓글수정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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