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거나 썩어가는 고구마, 당근, 양파 같은 것을 싹 틔워 키우는 재미가 있다. 주방 창틀 한 자리를 차지하는 친구들이다. 여름을 나며 고구마 여러 개가 비쩍 마르고 싹이 나고 있었다. "싹트네에에~ 싹터요오~" 그릇에 담아 키웠더니 한동안 정말 예쁘게 자랐다.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니" 엄청 지저분해지고 감당이 안 될 즈음이다.  강제 처분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고. 내일 내일, 미루고 있는데 내일이 되기 전 어느 '오늘'에 현승이가 말했다.

 

와, 이게 이렇게 있으니까 꼭 마녀의 부엌같다.

 

와하... 마녀의 부엌이라니! 얘는 왜 이리 시적이지? 마녀의 부엌이고 싶다. 마법의 연기가 부글거리는, 마담 푸르스트의 마들렌을 굽는 마녀의 부엌이고 싶다. 며칠 더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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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말했다.

어서 책을 집어 던지고 밖으로 나오라고.

몸을 가지고 얼른 나오라고.

 

하늘이 말했다.

그냥 즐기라고. 이 순간을 누리라고.

다시 없을, 세상에 다시 없을 단 하나의 그림이라고.

 

하늘이 말했다.

아이폰으로 찍어 사진 폴더에 저장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눈으로 찍어 마음에 담아 두라고.

 

하늘이 말했다.

먹구름으로 가려 캄캄한 날에도 오늘을 기억하라고.

하늘이 거기 있다고. 

파랗고 맑은 하늘은 먹구름 너머 거기에 언제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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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주 집을 떠났다 돌아와 일상 회복 중인데, 일상 회복의 마침표는 저 녀석이 찍어주었다.

 

잠 습관이 회복되어 아침 그 시간에 일어나고, 아빌라 데레사의 <영혼의 성>을 묵상한 후 연구소 카페에 글을 올리고, 메시지 성경으로 누가복음 묵상을 하고, 기도를 하고, 하나 씩 일어나는 식구들의 아침의 챙기고... 아침 루틴과 함께 일상 회복이다. 선선한 시간을 골라 탄천으로, 옆 아파트 산책로로, 주택가 골목으로 걷고 또 걸으며 익숙한 풍경을 마주하고 그새 달라진 자란 풀과 들꽃들을 마주하니 일상 회복이다. 

 

장 보러 내려가는데 저 멀리 길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 저, 저 팔자 늘어진 고양이 녀석을 보니 "와, 진짜 집에 돌아왔구나!" 싶다. 쟤는 지나가는 모든 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고, 말 그대로 만인의 연인이다. 이름도 모르겠다. 연인들이 제각각 지어 부르는 듯하여 딱히 뭐라 부를 수가 없다. 나도 연인이라면 연인이니 이름 하나 지어 부르면 되겠지만, 어쩐지 그러고 싶지가 않아서 어정쩡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름을 부를 수 없으니 대화가 쉽게 되질 않는다. "이리 인기가 좋은데 나 같은 연인 거들떠나 보겠어" 하는 심정도 있고. 

 

여하튼 제가 사랑받는 줄은 알아서 낮잠도 꼭 저렇게 길 한복판 가장 눈에 띄는 곳에서 잔다. 제가 예쁜 줄 아는 녀석. 카메라 셔터 소리에 눈도 안 뜨고 자세만 바꿔 눕는다. 자면서도 팬서비스 되는 우리 동네 셀럽. 진짜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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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중에 스파트필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애가 성격이 담백하기 때문이다. 물을 많이 먹어야 하는 아이인데, 물이 떨어졌다 싶으면 온몸으로 말해준다. 어깨고 뭐고 축 처져서는 "야, 집사! 이럴래? 나 안 돌볼래?" 한다. 얼른 물을 주면 몇 시간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난다. 덜렁거리고 게으른 나 같은 집사가 키우기에는 딱이다. 꾹 참고 있다가 갑자기 말라죽어버리는 화초들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란... 수많은 화분이 죽어나가고, 그래서 베란다 풍경이 바뀌고 또 바뀌지만 늘 하나씩은 키우고 있는 것이 스파트필름이다. 네가 네 몫의 생명을 살아내는 것처럼 나도 그럴게. 너 거기 베란다에 있고, 나 여기 거실 테이블에 있고. 각자 되어야 할 자신이 되어 생명을 누리자. 화이팅!

지방으로 내려가시는 집사님께서 작년 여름에 커피나무를 하나 남겨 주셨다. 전에 한참 커피 공부할 때 이 녀석 키우는 조건이 까다롭단 얘길 들었었다. 공들여 키우셨는데 내가 데려가 죽이면 어떡하지, 죽을 수도 있겠다, 했는데. 의외로 잘 자라서 드디어 커피 체리라는 것을 내 눈으로 보게 되었다. 키워보니 스파트필름 못지 않게 투명한 친구다. 사랑이 필요하다고 정직하게, 온몸으로 말한다. "어머, 미안해!" 하고 돌봄을 주면 다시 살아난다. 얼마 전에는 꽃을 피웠다. 커피 체리에 이어 커피 꽃까지 실물 영접하게 된 것이다. 10여 년 전 커피에 꽂혀서 세상의 모든 커피 책을 다 읽는 심정으로 글로 배운 커피. 그즈음 책 속 사진으로만 보던 커피나무, 커피체리, 커피꽃이다. 그 시절이었다면 엄청난 감동과 흥분이었을 텐데 덤덤하게 속 깊은 행복감으로 마주했다. 꽃보다 더 반가운 건, 저 연한 새 잎. 예수님을 빗댄 여러 비유들이 있지만 유난히 좋아하는 이사야 말씀인데. '연한 순' 같은 예수님이 나는 참 좋다. 사실 커피나무나 스파트필름이나, 모양이 그리 예쁘지는 않다. 흔하디 흔한 식물이고. 눈에 띄는 특별한 아름다움도 없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열흘 연두연두 하는 나뭇잎이 없다. 나는 안다. 좋은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물론 고통 또한!) 그렇다고 허무주의자는 아니다. 꽃이 붉어봐야 열흘이니, 붉은 꽃의 아름다움을 누릴 시간은 지금 뿐임을 안다. 오늘, 지금 누릴 뿐이다. (물론 고통 또한! 지금 여기의 고통 밖에는 없다. 머물러 충분히 고통 당하면 된다.)

좋은 것? 남는 건 허무와 상실감이라고. 금세 사라진다고.
상처 받지 않는 길은 좋은 걸 좋아하지 않는 거야.
좋은 것이 생기면 얼른 도망가. 좋을 것 같은 다른 어떤 것으로 말이야!


이러며 지금 여기 아닌 저~어기 어디를 살아온 세월이 50년 세월이다. 이젠 어리석은 환상에 붙들리지 않는다. 지금 여기의 좋음을 놓치지 않는다. 써야 할 글도 있고, 읽을 책이 쌓여 있지만 일단은 걷기 위해 나서고 본다. 토요일,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미금역 쪽을 향했다. 연습실에 있는 채윤에게 연락했다. "엄마 지금 미금역으로 가는 탄천인데. 니 연습실 가까운 것 같은데." 그리고 채윤이는 튀어 나왔다. 목마르니 음료수 사오라는 말에, 자몽쥬스와 오렌지쥬스를 사들고.

봄은 따스한 바람으로 오고, 노랑에 가까운 연둣빛 생명으로 온다. 바람은 촉각을 겨냥하고 연두 빛깔은 시각을 저격한다. 그리고... 이 좋은 봄날 토요일, 아카시아꽃은 향기로 난입한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소올~솔" 불어와 후각을 간지르지. 채윤이 만나러 가는 길에 아카시아꽃이 향기로 말을 걸어왔다. 어디, 어딘데? 향기를 좇아 고개를 들었더니 바로 그 아카시아다. "하얀꽃 잎사귀 눈송이처럼 날리..." 하며 보니까, 눈송이가 아니라 구름이 되어 하늘을 향해 오르고 있다. 진짜다. 자세히 보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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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붉은 꽃이 없으니, 그 꽃 붉은 열흘을 누려야 한다. 어린이날 다음 날, 햇볕이 유순해지는 오후에 산책을 나섰다. 현관 앞에서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잠시 고민하다 왼쪽. 그러면 탄천 버리고 옆 동네 아파트 둘레길을 거쳐 마북공원으로 가는 것이다. 같은 산책길이라도 늘 새로운 이유가 열 개는 되지만, 으뜸은 새와 아기이다. 언제 어디서 날아들지 모르는 이름 모르는 새들과, 이름 모르는 아기들. 한 아기를 만났다. 눈이 맞았다. 웃는 나를 따라 웃는다. 엄마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든다. 우리 둘이 눈 맞은 걸 그때야 알아챈다. 아기에게 손을 흔든다. 아기도 따라서 빠이빠이 한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자꾸 뒤돌아보니, 아기는 계속 손을 흔들고, 엄마가 "감사합니다." 하고 내게 인사를 한다. 감사하다니! 제가 감사하죠. ^^ 아기들은 낯선 사람의 웃음을 외면하는 일이 없다. 웃어주거나, 뚱한 얼굴로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뚫어져라 바라보거나. 웃어줘도 좋고, 뚱하게 바라봐줘도 좋다. 외면하는 일이 없다. 어린이날 다음 날의 산책이었다. 전날 학교 "음악과 영성" 수업에서 슈만의 <어린이 정경>을 들었다. 저 아가와 눈 맞추고 집에 오는 길 내내 <어린이 정경>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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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마스크 해제 후 첫 산책. 날씨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연둣빛 나뭇잎들의 명도와 채도는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니 순간의 아름다움이다. 화무십일홍이라... 열흘 붉은 꽃이 없다 하니 인생의 허무를 노래하며 보낼 일이 아니라 열흘의 붉음을 누리자는 주의이다.  걷는 일이야 언제든 좋지만, 이런 봄날 같으랴. 야외 마스크 해제라니 마스크 벗고 오늘 분량의 붉음, 아니 연둣빛을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꿈모임 벗님의 별칭 중 하나가 '꽃마리'이다. 아기 손톱보다 작은 꽃이라고, 아주 흔한데 가만히 찾아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하곤 한다. "오늘의 미션! 아기 손톱보다 작은 꽃마리를 만나는 것이다." 하며 집을 나섰다. 작은 들풀에 눈을 맞추자면 한 발 한 발 주저 않는 발걸음으로 걷는 즐거움은 포기해야 한다. 주저앉아 들여다보며 찾고 찾아야 한다. 과연 다음 꽃 검색도 인식을 못할 정도로 작은 꽃이었다. 사진을 찍어 단톡에 올리니 '꽃마리'님이 꽃마리가 맞다고 하셨다. 어쩌면 그렇게 조그만 녀석이, 어쩌면 그렇게도 의연하게 제 모양대로 피어있다. 누가 봐주든 말든 제 모양대로 제 자신을 뿜뿜 하고 있다. 애쓰지 않으며 제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야외 마스크 해제라는데, 마스크 안 쓴 사람이 나밖에 없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다. 이러다 마스크 안 썼다고 테러 당하는 건 아니겠지, 잠시 걱정이 될 정도였다. 마스크 쓰는 게 편하단 얘길 많이 듣는다. 가리는 게 좋다고. 우리 아이들이 그렇다. 마스크 벗을 자신이 없다고. 딱히 자랑스럽지 않은 얼굴, 반쯤 가리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적당히 가리고 살며 느끼는 안전함이 있지. 그렇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동시에 착용하는 게 몹시 불편하다. 눈이 부셔도 그렇다. 마스크 벗는 대신 선글라스를 쓰고 셀카를 찍어봤더니 정말 그렇다. 내 얼굴도 그렇다. 하관을 가리고 눈을 드러내는 게 그나마 낫다.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 꽃마리는 아무 걱정 없이 창조주께서 만들고 꾸며주신 그대로 제 모습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딱 열흘을 피었다 지더라도 그러할 것이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마 6:30)" 하시는데, 우리는 가리고 숨길 것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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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에 쑥 무더기를 지나칠 때마다 "아깝다, 아깝다"하며 다녔다.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쑥을 그냥 지나치기가 너무나 아쉽다. 바구니 한가득 뜯어 담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쑥 뜯기와 진달래 꺾기는 봄놀이의 진수다. 바구니 한가득 쑥 뜯고 놀기. (사실 친구들보다 늘 부진했다. 한가득 채워본 적이 없다. 열심히 뜯어도 한 줌이라 집에 와 제대로 뭘 해 먹어 본 적도 없다.) 어떤 날은 산에 가서 진달래를 한 아름 꺾으며 놀기. 쑥과 진달래를 보면 두고 오기가 아쉽다. 몸이 기억하는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나가 걸을 수 있는데 집에서 책을 붙들고 앉아 있으면 귀에서 노래 소리가 들린다. "주님의 은혜를 왜 아니 받고 못 들은 체하려나"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나가 걸으면 하나님 마음에 한 걸음 가까워진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그렇지. 

 

연구소 워크숍을 갔는데, 또 여기저기 쑥이 지천. "우리 자유시간 한 시간만 가집시다. 나 쑥 뜯을래..." 말만 계속 하다 결국 집에 올 시간이 되고 말았다. 오는 길 점심식사로 토종닭으로 만든 닭볶음탕을 주문했더니 한참 기다리란다. 이때다 싶어 쑥을 뜯었다. 연구소 선생님들이 손을 보태니 락앤락 통 하나가 금세 찼다. 한 끼 분량의 국거리가 되었다. "쑥 비싸요. 마트에서 한 주먹 담으면 몇천 원이에요."라고 말하고 보니 이게 땅이 공짜로 주는 거였다. "돈 없이 값 없이 식재료를 주는구나!" 이게 하나님 나라구나 싶다. 쑥을 뜯는데 그 노래가 다시 들린다. "주님의 은혜를 왜 아니 받고 못 들은 체 하려나" 공짜로 주시는 은혜가 널리고 널렸다. 못 들은 체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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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지인들은 무기력과 분노를 토로해왔다. 교회 교우들을 비롯해서 대선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분들이 꽤 많을 텐데 그분들과 마주할 일은 없었다. 가족 중 한 분이 승리에 도취되어 (목적어는 분명치 않지만) 조롱하고 비하하는 내용을 동생에게 보냈단다. 그 내용을 전달받고 정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었다. 하필 엄마 추도식 다음 날이었다. 하긴 그분은, 임대차 삼법의 여파로 전셋값을 부르는 대로 올려준대도 나가라는 주인 때문에 잠시 거리에 나앉는 상황에 몰린 내게 그랬다. "좋겄다, 니가 좋아하는 문재인이가 부동산 잘해서..." 그때는 다리가 아니라 가슴이 무너졌다. 정치가 무엇이기에, 정치적 입장이 무엇이기에 이렇듯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단 말인가. 가족 간의 인지상정조차 말소해버린단 말인가. 그 조롱의 톡을 받은 동생은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대선 이후 나는 무덤덤하게 지내고 있다. 화도 내지 않았고, 그리 절망적이 되지도 않았다. 뉴스만 보지 않으면 살 수 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도 견뎠고, 전두환 시절도 살았는데.

현승이가 첫 투표권을 행사했다. 집에서는 물론 다니는 학교도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해 제 생각을 말하고 피력하는 것에 익숙한 환경이다. 거기다 타고난 기질까지 작용하여 뉴스로 보고 나름대로 의문을 품고, 식탁에 앉아 아빠와 끝없는 대화를 하곤했다. 박근혜 정권 하에서 첫 촛불 집회가 열렸던 날, 나는 지방에서 1박 2일 강의가 있었다. 세 식구가 촛불집회 나간 사진을 보내왔는데, 가슴이 떨렸다. 내가 여기서 한가롭게 강의하고 있을 때인가 싶었었다. 그 집회에서 이재명을 만났고, 같이 찍은 사진을 또한 보내왔었다. 두 아이는 그때 받은 좋은 인상을 기억하고 있다. 셀카를 찍자고 하니 보좌관에게 찍어달래자 하고, 보좌관을 대하는 태도 역시 참 좋았다고 했다. 그때 찍은 사진과 이번 선거날에 채윤 현승 둘이 가서 투표하고 찍은 인증샷이다.

사진에서 시간이 보인다. 성인이 된 남매는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대입을 치르고, 성인식 같은 고통의 시간을 겪어냈고, 또 사춘기를 통과했고, 엄마 아빠 인격의 이면으로 실망했고, 반항도 했고.... 그리고 둘 다 성인이 되었다. 정치적 입장이든 개인의 삶이든 더는 엄마빠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존재로 커졌다. 이러기까지 보낸 시간은 성장통을 앓는 시간이었다. 그렇다. 성장통이다. 아빠가 목회하는 교회를 떠나겠다 선언하는 일도, 엄마빠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줄 알았는데 매일매일 실망하는 것도. 아이들의 시간이 그러할 때, 엄마 아빠는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상실감과 함께 아이 눈에 비친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또 다른 아픔의 시간이었다. 좋다 나쁘다 하나의 이름을 붙일 수 없지만만, 결과적으론 좋다. 성인 넷이 사는 오늘, 양육자와 피 양육자가 아니라 자기 빛깔로 사는 네 사람으로 만나는 오늘이 참 좋다.

아포리아(a-poria), 길이 없음. 어디서 풀어야 할지 모르는 난제를 일컫는 말이다. 살면서 흔히 맞닥뜨리는 길을 잃었다거나, 절망적이다, 이런 상태까지 아우르는 것 아닐까 싶다. 피하고 싶고 당혹스러운 지점이지만, 철학에서는 여기를 '낙담'이 아니라 진리를 향해 가는 중요한 지점으로 본다. 대충 알면서 자기확신에 빠진 이가 아포리아에 들어서 혼란을 통과하며 더 큰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 좌절과 혼란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니 차라리 피상적이고 쉬운 성공보다 더 소중한 것일지 모른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물론 삼라만상은 변하기 때문이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진과 두 번째 사진 사이 남매의 질풍노도며 가족의 성장통으로 변화무쌍의 시간이었다면, 이재명과의 관계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트위터에서 만난 시원시원한 정치인으로 시작하여 19대 대선을 향한 경선, 그리고 그 이후...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기대하고 실망하는 관계는 여느 개인적 관계 맺음과 다르지 않았다. 끝없이 변하되 어디로 향하느냐, 가 관건이 아닐까. 한 인생이 어디로 향해가는지, 그 흐름과 맥락 속에서 삶의 의미는 찾아지는 것이다. 지난 목포 여행 마지막 시간에 선물처럼 만난 카페가 있다. 김대중 공부방을 탐방하고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만난 카페다. 주인 취향이 너무나 뚜렷하여 정겨운, 바다가 보이는 카페였다. 밖에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사진이, 실내 어느 벽에 시편 23편이 걸려 있었다. 목포 여행 첫날에 들렀던 '손소영 갤러리 카페' 벽에는 이재명 사진이 걸려 있었고. 사진의 순간은 모두 지나간 어느 날의 순간. 거기로부터 시간은 여기까지 흘러왔고.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에 다 때가 있다. 사람도 다 때가 있다. 그래서 한 번씩 대중 목욕탕에 가서 잔뜩 불린 다음 빡빡 밀어줘야 한다. 응?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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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마음에 먹구름이 끼어 무겁고 축축해질 때가 있다. 그 느낌에 오래 머물다 보면 영락없이 '하나님 부재'의 느낌으로 간다. "하나님, 어디 계세요?" 어디 계시냐 물을 때 즉각 "나 여깄다." 답하시는 경우가 없다. 차라리 "어디 계세요?" 묻고 나면 부재감만 더욱 커질 뿐이다. "나 여깄다!" 이 응답은 늘 의외의 순간에 온다. 응답을 듣는 순간, 그 순간 먹구름이 걷히고 찬란한 햇살이 비쳐 들면서 마음은 간지러워진다.

"이리 와 봐, 여기 작은 꽃이 피었어." 하는 소리에 달려가 쪼그리고 앉아 보니 새끼손톱보다 작은 꽃들이 피어있다. "어머, 너 이름이 뭐니?" [Daum 꽃이름 검색]이 대신 답해주었다. "아, 내 이름 조금 민망한데 괜찮겠어? 내 이름은 '큰 개불알꽃'이야." 민망하기보다 생김새, 인상과 어울리지 않아 웃음이 팍 터졌다. 팍 터지는 웃음에 기쁨이 난입했다. "나 여깄다!" 하시는 그분의 응답은 이런 순간에 온다.

내 걷는 습관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가 없는데, '흉내내기 장인' 채윤이의 미러링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땅을 보고 걷는다. 땅 보고 걷는 내 시선을 높은 곳으로 끌고가는 친구들이 새 친구 들이다. 그네들의 웃고 우는 소리와 날갯짓이 고개를 들게 한다. 목포 고하도에서 고개 숙이고 걷는 내 시선 안에 강림하신 새 친구를 만났다. 이름도 전화번호도 알려주지 않는다. 대답 대신 팔딱팔딱 개구리 놀이로 웃음 주고 날아갔다. 그분의 응답은 이런 순간에 온다.

내 눈 앞에 갑자기 난입하는 작은 존재들. 들꽃보다 새보다 더 찬란한 그분의 현존은 아이들이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아이들, 줌 강의하는데 화면에 난입하는 아이들, 영상통화로 만나는 아이들, 주일 예배 마치고 만나는 아이들, 아이들의 말, 뚱한 표정, 놀라는 표정, 긴장한 표정, 부끄러운 표정... 난입하고 침투하는 그분의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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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엄마 아빠 없는 사나흘을 은근히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막는 늦잠도 아니건만, 엄마빠 없으면 마음 편히 더 늦게 일어나게 된다고. 게다가 한두 번 맥도날드나 마라탕 같은 외식을 즐길 수도 있을 테고. 늦게까지 기타 치고 놀며 수다를 떨어도 조용히 좀 하라고 잔소리할 사람이 없는 거고. 기분 좋은 기대는 자주 배신당하는 것이기도 하고.

목포 여행 이틀 째 채윤이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바로 제 방으로 격리 되었고.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지만, 여행 포기하고 돌아온다고 뾰족한 수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증상이 심하면 어떡하나, 세 끼 밥은 또 어떡하나... 걱정거리를 꼽자면 끝이 없지만, 잘 지내겠다는 말을 믿기로 했다.

돼지고기 찌개를 먹고 싶다고 하여 여행 전에 육수와 야채 재료를 준비해 두었다. 만드는 방법을 전수받은 채윤이는 방에 갇혔고, 현승이가 해보겠단다. 전화로 설명을 듣더니 어떻게 어떻게 끓여서 누나 방에 들여보내고 저도 맛있게 먹었다고. 어설픈 듯 이닌 듯 야채를 썰어 놓은 모양새가 사랑스럽다. 감자칼로 사과 깎아서 후식 넣어주고 설거지 마친 후에는 방문 앞에 앉아서 수다도 떨었다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로 시시각각 보고를 해왔다. 다음 날은 개학날인데, 아침으로 파니니를 만들어서 먹고, 누나도 챙겼단다. 김으로 주먹밥 만들어 미리 점심까지 챙겨 넣고 등교를 했다.

뭔가 창의적인 방법으로 누나를 돕고 가족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있다는 자부심으로 현승이는 텐션 업이었다. 그래도 멀리서 보고만 받는 내 마음은 짠했는데, 챙기는 현승이보다 챙김 받는 채윤이 생각에 더 짠했다. 호랑이 같은 아이가 힘이 쑥 빠져서 주는 대로 먹고, 안 주면 못 먹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게 그렇게 마음이 쓰였다. 집에 와서는 내가 채윤이를 챙기는데, 무력하게 방에 혼자 갇혀 있는 것이 그렇게 안쓰러운 건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일 거고.

채윤이 격리해제 하루 전날 내가 확진을 받았다. 오늘은 채윤이 나오고 내가 안방에 격리. 뭐 필요한 거 없어? 예배드리고 밥 줄까? 다시 방문을 사이에 두고 지내게 되었다. 돌봄의 주객은 바뀌었고. 어제 pcr 검사받느라 추운데 한 시간 서서 떨었더니 없던 병도 생길 지경이었다. 그래서인지, 코로나 증상인지 밤새 오한, 근육통, 두통이 있었는데 아쉬운 대로 판콜에이와 타이레놀 복용하고 효과를 보고 있다. 두통 때문에 책도 눈에 안 들어오고, 영상을 보기도 힘든데... 희한하게 글은 써진다. 약기운 돌아 몸이 조금 가벼워지면 블로그 포스팅만 하게 된다. 이번 주에 써야 할 원고 두 개가 맞물려 있는데, 희한하게 써야 할 원고와 상관없는 글만 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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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마시기 시작하면서 커피랑 소원해졌다. 생각해보니 엄마 돌아가시고 지낸 몇 개월이 결정적이다. 4, 5월이 되도록 몸에 한기가 느껴져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따뜻한 차를 마셨다. 한 잔 마시고 나며 몸이 좀 따뜻해졌고. 그렇게 핸드드립 커피와 멀어지던 즈음, 교회에 캡슐커피 메이커가 생겼는데. 편리하고 커피 맛 좋고, 라떼까지! 이제 좀 편히 살자, 편하게 살 때가 됐어, 하고 남편의 알바비를 갈취하여 한 대 들였다. 채윤이가 제일 좋아했다. 카페 부럽지 않은 라떼를 마실 수 있으니. 그런데! 무릇 망대를 세우려는 자는 미리 비용을 계산했어야 하는데. 그런 것에 너무나 취약하여, 기계 사는 초기 비용만 들이면 커피는 싸게 마실 줄 알았으니... 커피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캡슐 주문을 자꾸 미루게 된다. 집에 커피 없는 날이 허다하다.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 저자...

요즘은 카누를 마신다. 어쩌다 한 잔 마셨는데 이거 괜찮네, 세상 좋아졌네, 인스턴트 커피, 장난 아닌데, 싶었고. 핸드드립 커피 마시듯 굳이 접시를 받쳐 격을 갖춰 마신다. 요 며칠 찻잔 픽은 [사람 사는 세상]이다. 몇 년 전에 봉하마을 노란 가게에서 사 온 것이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 조국을 위한 기도가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나는 정치적 존재이다. 단 한순간도 정치적 존재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정치적 입장도 분명하다. 정치 참여는 우선 기도의 참여이다. 2002년 민주당 경선 때 현승이를 임신한 몸으로 하루 금식기도를 감행했던, 그런 열성 분자이다. 정치적 입장이든, 신학적 입장이든 ‘입장’은 깊이 넣어두는 편이다. 듣는 편이다. 사람 사람이 나 정도는 다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터라. 넣어둔 입장과 열성은 기도로 연소시키겠노라, 생각한다. 대선정국을 바라보면 어이는 없고 할 말은 많지만 그냥 기도한다. 카누 한 잔 마시며 정치적인 기도로 시작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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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말리던 바구니가 텅 빈 지 오래다. 한 바구니 가득했던 대추를 새 친구들이 죄 먹어 치웠다. 씨 하나 남기지 않았다. 빈 바구니는 어쩐지 치우고 싶지가 않아 그대로 두었다. 곡물을 좀 담아두면 다시 찾아올 것 같기도 하고. 비었더라도 혹시나 하고 찾아와 주지는 않을까, 하면서... 설날 아침 일어나 보니 텅 비었던 바구니에 예쁘게 소복하게 눈이 쌓여있다. 그때 그 새가 눈을 물어온 것도 아닐 텐데, 나는 그 친구들을 생각한다. 새 친구들이 보내준 설 선물이라고. 가슴이 저릿하고 따뜻하고 풍성하다.

 

 

어느 새

모든 새는 어떤 새다. 산책길마다 깜빡이 없이 난입하여 내 정신을 높은 곳으로 끌고 갔다 사라지는 새가 있는데. 오늘 그 새는 며칠 전 그 새가 아니고, 며칠 전 나를 만나줬던 그 새는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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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날아든 어느 새

오전 줌 강의를 마치고 혼자 유유자적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는 중이었다. 어떤 소리를 들었다. "대추 맛집, 대추 맛집, 여기가 대추 맛집." 영혼으로 들었다. 눈에 보이는 아이패드를 들고 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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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하늘이다. 가족 중 제일 먼저 어나 베란다에 서서 저 하늘을 마주하고 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역시 씬 스틸러. 집 앞 교회의 커다란 십자가. 그리 많이 훔쳐내지는 못했다. 새벽 하늘의 고요한 장엄함에서 훔쳐낼 것이 거의 없었다. 그 하늘에 안긴 정도. 

 

아무 때나 걸으러 나가는데. 가장 놓치기 싫은 시간은 해질녘이다. 해 지기 직전 집에서 내내 노을 지는 하늘을 왼쪽에 끼고 탄천 길을 걸을 수 있다. 어느 날은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그러면 노을 하늘이 오른 쪽에서 따라온다. 금세 건물에 가려 보라색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포기하고 동네 길로 들어섰다. 골목골목 걷다 성당에 다다랐다. 가파른 길을 올라 성당 마당에 서니 아기 예수님을 안은 성모상이 서 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오묘하다. 아니 모든 시작과 끝은 오묘하게 잇닿는다. 히브리적 시간은 저녁부터 하루가 시작된다고 한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새벽이 시작인지, 저녁이 시작인지 모르겠다. 창조의 사랑과 십자가의 사랑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내가 걷는 신앙의 길 역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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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고 싶기도, 보던 책 붙들고 계속 앉아 있고 싶기도... 두 마음이 오락가락 할 때는 나가야 한다. 나가면 다시 못 볼 풍경을 만난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만난다. 눈이 오지 않은 날에는 볼 수 없는, 더 많이 와도, 덜 와도 볼 수 없는 한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순간이다. 순간의 아름다움, 순간을 놓치면 다시 받을 수 없는 선물이 있다. 그래서 무조건 나가 걸어야 한다.  

 

친구야, 네가 천국에 가면 아바께서 너에게 기도를 몇 번이나 했고 영혼을 몇 명이나 구원했는지를 묻지 않으시고 이렇게 물으실 것이다. ‘파히타를 맛있게 먹었느냐?’ 그분은 네가 열정을 품고 살기를 원하신다. 그분의 선물을 받아들이고 누리면서 순간의 아름다움 속에 살기를 원하신다. <아바를 사랑한 자녀> 마술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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