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음악치료 글을 쓰느라 머리에서 쩐내 나는 시간을 보냈다. 글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서두에 언급한 한병철 교수는 우울증이 지배하는 이 시대는 성과사회이며 자기 착취의 사회이기에 결국 피로 사회라고 하였다. 피로사회에서 점점 신경증적이 되어가는 우리 모두는 어떻게 정신건강을 유지해갈 수 있을까? 온통 SNS의 메시지 알림에만 귀가 열려있고, 스마트폰의 화면에서 눈을 뗄 줄 모르는 우리, 타인과 나의 경계가 흐릿하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람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먹는지를 사진으로 보고 댓글을 달고 또 보고, 이렇게 하염없이 시간을 보낸다. <피로사회>에서도 말하듯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멈추고, 혼자 있는 심심한 속에서 견디는’ 이다. 정신질환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어느 항목엔가는 잘 들어맞는 우리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힘은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오디오의 전원을 켜 바흐나 브람스를 불러낼 일이다. 오디오의 볼륨을 높이고, 허상과도 같은 스마트폰 속의 사람들이 아니라 나 자신과 그저 가만히 보내는 시간만으로도 피로사회를 살아나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정신적인 힘, 영적인 힘은 나 자신이 되는 것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저런 글을 쓰면서 나는 페이스북 창을 열어놓고 수시로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사진도 올리고, 댓글이 달리면 낼름 들어가서 또 댓글을 달고.
혼자 있는 능력이 어찌나 부족한지....
글을 쓰는 일은 고독한 작업이다. 고독해서 의미있는 일이다. 그 고독이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유독 원고 쓰는 시기에는 페이스북에 에너지를 많이 내어준다. 그런 나를 보면서 '홀로 있음'에 대한 얘기를 당당하게도 쓴다.  


 

여하튼 거실 가득 펼쳐져 있던 참고문헌을 제자리에 꽂고 배달된 책을 매만진다.
글을 쓴다는 것의 무게감을 시간이 지날수록 제대로 느끼고 있지만, 그래서 더욱 어렵지만
(징징거리는 건 아니다. 그냥 그렇단 얘기 ㅡ.,ㅡ)
'송고'하는 그 시간은 참 행복한다. ('내 송고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아장 귀하다~')
그리고 이런 사이클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말하자면 감.사.하.다.




오늘 두물머리에 언니님들과 함께 다녀왔다.

그늘 없이 밝게 웃는 것이 억지로 되는 게 아닌데 웃다 웃다보니 웃음이 자연스러웠다.
이 사진이 마음에 드는 건 나이가 느껴진다는 것,
느껴지는 나이와 세월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일할 때가 있고, 쉴 때가 있고

고독할 때가 있으며, 함께 할 때가 있다.
일상의 사이클을 착하게 수용하며 사는 것이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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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기차를 타고 놀러는 아니고 일하러도 아니고 강의 가요.

어릴 적 탔던 장항선은 객양각색의 추억이 실려 있지요.
한 번씩 부모님과 서울을 오가던 기차 안의 연양갱.
노래하면 연양갱 사줄게.
기차 한 칸을 무대 삼아 노래를 부르면 부모님이 아니라
다른 아저씨 아줌마들이 연양갱을 사주셨죠.
(그 때로부터 나는 딴따라로 살기로 결심했노라. 흑흑)


아버지 돌아가시고 동생이랑 엄마랑 서울로 이사한 후,
전학을 기다리며 시골 집사님 댁에 혼자 남았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서울에 있는 엄마랑 동생 그리 울던 밤.
그런 밤의 희망은 토요일에 탈 장항선. 그야말로 희망열차였죠.
혼자 서울에 올라가며 연양갱을 사먹진 못했고
노래하며 연양갱 앵벌이 하던 어린 딴따라 시절을 그리기도.
엄마랑 하룻밤 자고 매 끼니 맛있는 거 먹고 다시 혼자 장항선 기차를 타러 서부역에
가면 다시 못 볼 것처럼 울고불고 했지요.


(아, 추억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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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 날에 현승이가
"엄마, 뭐 입고 갈 거야? 미리 정해놓는 게 좋지 않아?"
하더니 바지 주머니에 넣어 놓은 쪽지 입니다
(bye 아니고 dye 라서 더 인상적인....)

잘 도착해서 빡빡하고 행복한 일정 보내고 있습니다.
언제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친구들을 만나 대화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강의 잘 마쳤고,
두번째 강의 앞두고 잠깐 끄적입니다.
작별인사에 달아주신 댓글에 위로와 격려 많이 받고 힘을 얻었습니다.


시카고 날씨가 약간 이상기온처럼 쌀쌀해져서 가져온 유일한 긴팔 하나를 계속 입고 있는 것,
약간의 감기 기운으로 목이 안 좋은 점 외에는 별 어려움이 없고요.


의외의 좋은 친구를 비행기에서부터 만나 틈틈이 힐링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간간이 날아오는 아내의 빗자리를 경험하는 남편의 참회의 메시지에 살짝 고소해하고 있으며, 아이들 걱정에 마음 한 구석 편치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실은 공식 비공식 상담과 일정들에 잉여감정이란 게 들어설 자리가 없고요. 피곤한 몸을 마주하면 어서 일정이 끝났으면 싶고, 젊은이들이 솔직하게 내놓는 아픔과 고민에 귀기울이다 보면 지금 이 순간이 보석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내 나무로 정해놓고 짬짬이 다가가 말을 걸어보고,
주변을 걸으며 기도도 합니다.






얼마 전 태어난 둘째 <와우>는 너무 어려서 못 데려왔고,
작년에 낳은 <오우>는 저렇게 따라와 떡하니 누워있습니다.


네 달 동안 안달복달 하던 징징이는 잘 지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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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설거지를 하고 그릇 정리를 하다가 종지 하나를 떨어뜨렸다.
하필 그것이 닦아놓은 커피잔 위에 떨어졌고,
쨍하고 깨졌는데 하필 다섯 개 2900원 짜리 2001 아울렛 종지가 아니라
최근에 선물받아 가장 애정하고 있는 커피잔의 받침이었다.


아, 종지가 깨질 수는 없었을까?


'매일 반복되는 보통의 일'이 일어나야 마땅한 '일상'의 속을 뒤집어 보면 이건 배신이다.
뭔 일상 속에 예측불허의 일이 이렇게 많냐?
어차피 일어나야 할 일이라면 접시 대신 종지가 깨지는 묘미 정도는 있어줘야 할 것 아닌감.
속이 쓰려서 갤포스가 필요하다.


창가를 멍하니 바라보다 급 좋은 생각이 났다.
화분 올려져 있는 테이블을 갑자기 막 치우고 화분을 이 쪽 저 쪽으로 끌고 밀고 했더니
창 바로 앞에 원고작업 할 공간이 만들어졌다.
생각지 못했던 배치다. 맘에 든다.
바깥이 보이는 자리, 바깥에 가까운 자리는 늘 좋다.


종지 대신 커피잔 받침이 깨진 충격에 뇌세포가 순간  자리 이동 해나?
이제 폭풍 원고만 쓰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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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 되신 우리 엄마의 주부 리즈시절, 죽어가는 벤자민 화분을 기도로 살리셨다.(라고 엄마가 자꾸 간증해서 그런 줄 알고 알고 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손수 화분에 고추를 키우곤 하셨는데 이젠 건강상 그것도 못하신다. 엄마를 모시고 있는 동생 부부가 기가 막힌 맞춤형 효도를 잘 한다. 줄줄이 세 아들을 키우면서 3+1으로 엄마까지 묶어서 잘 양육하는 느낌. 흐뭇하고 고맙다.

* 동생의 카스에서 일부분 발췌

집으로 돌아와 고추 다 심고 네 개의 화분에 각각 주인을 정해줬다. 크기 순으로 장남, 차남, 막내, 그리고 제일 작은 건 어머니 것. 그러곤 누구 고추가 제일 잘 자라서 열매를 많이 맺는지 보자며 시합을 제안했다. 물은 엄마 · 아빠가 줄 거니까, 주인이 할 일은 자기 고추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기도도 하는 것이라고. 아빠의 제안에 3+1(세아들과 노모)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수현이가 고추에 아름다울 미, 바를 정, ‘미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곤 고추 앞에서 한참을 중얼거리다 들어온다. 그러곤 자랑한다. 자기 고추 축복해 주고 우현이 고추에 ‘바보야, 히히’하고 왔다고. 얼마 후. 89세 이옥금 권사님, 한참 화분 앞에 서 있다가 나오더니 투덜투덜대신다. "내 꼬추가 제일 시들시들허잖여~ 화분도 작은디 말이여~"

베란다에서 전쟁의 기운이 느껴진다. 3+1, 네 사람의 고추 배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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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실 :
성악가를 꿈꾸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전공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꿈을 현실로 바꾸지 못하고 ‘음악’에 대한 '아련한 선망‘ 같은 것을 마음에 품었다. 교회에서 어린이 성가대를 지휘하면서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를 끌어내고 만져가며 꿈과 선망에 다가가기도 했다. 1997년 가을, 숙명여대 음악치료 대학원 2기로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했다. 졸업 후 남부장애인 복지관에서 풀타임 음악치료사로 일했다. 프리랜서 음악치료사로 전환하여 영유아 발달장애아, 특수학급의 장애아동을 음악치료로 만나고 있다. 음악과 사랑으로 변화가능한 사람과 세상을 믿으며 음악치료사로, 작가로,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라고 또 다른 소개글을 썼습니다.


'남편에게 어떠냐고 보냈더니 '목회자의 아내'를 넣으라고
(농담을 빙자한 진심을 담아) 한 마디 합니다.
'싫어. 내가 김종필의 아내지 목회자씨 아내야?'
라고 해놓고 보니'아이들 엄마'라는 정체성보다
자신의 아내라는 정체성을 우선순위에 두곤 했었는데
그 말이 아예 없어서 섭섭했던 것 같습니다.


담당 기자분께 다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음악치료사로, 작가로, 사랑의 노래를 함께 불러주는 남편과 함께 두 아이를 양육하며 살고 있다.'
그대로 실릴지 어떨지 모르겠으나 최선을 다했음을 남편께 알려드리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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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하는 대학 원하는 전공이 아니었다. 무슨 '유아교육'을 학문으로 하냐? 는 비아냥거림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은 사실 나를 향한 비아냥거림과 열등감이었다. 그래서 대학 4년 내내 전공 책은 가방에 손에는 여성학 책을 들고 다녔다. 그래도 학교를 졸업하고 유치원 선생님은 되었다. '자(自)'는 모르겠지만 '타(他)'는 인정하는 천직이었다. 원장선생님, 학부모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인기짱인 선생님이었다. (진짜읨) 천직일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몸매 쥑이는 여자가 하의실종 패션으로 옆을 스쳐갈 때 눈을 뺏기고 마는 남성들처럼 지나가다 아기만 보면, 어린 아이들만 보면 입을 벌리고 눈을 떼지 못한다. 가끔 혼자 있을 때도 수업 중에 만난, 또는 가까이 지내는 이쁜 아가들을 떠올리며 가슴을 설레고 입술을 깨물곤 한다. 아이들 눈높이 맞춰 얘기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고, 아이들 웃기는 일이 또한 그러하다. 그러니 천직일 밖에.


2.
유치원 교사를 하면서 '음악'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하고 내내 '음악영역'에 대한 연구만 했다. 교구를 만들어도 음악교구만,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음악파트를 맡는 전담교사를 자처했다. 그리고 곡절 끝에 유치원 교사를 접고 돈을 모아 음악치료 대학원 2기로 진학을 했다. 열 명을 뽑는 입시에서 차석으로 입학을 했고, 처음으로 음악치료 실습을 하는 수업에서 교수님께 '음악치료의 귀재'라는 평을 들었다. 명문대 음대 출신의 동기들을 제치고 말이다. 정신병원으로 실습을나갔을 땐 참관하는 의사가 회식 자리에서 그랬다. '환자들 앞에서 저보다 더 편안하시고 능수능란하신 것 같아요.' 그러니 음악치료사 역시 '천직'이 아니겠는가.  대학에서 강의도 몇 학기 했다.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에게 몇 년의 임상을 정리하며 나름 음악치료에 대해 잘 이해시키고 가르쳤다. (끝없는 깔때기)


3.
임상 몇 년 후에 모교에 박사과정이 생겼다. 음악치료의 귀재로서 일착으로 시작해야 했으나 사실 음악치료를 하면서도 역시 유아교육을 했을 때와 같은 부적절감을 느꼈다. 이번에는 학부전공이 음악이 아니라는 열등감 때문이었다. 음악을 전공한 친구들의 음악적 능력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쓰는 음악들은 늘 이류나 삼류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꾸준히 음악치료사로 일하면서 풀타임이든 파트타임이든 공부하는 남편을 대신해 빠듯한 생활을 하기 위한 수단은 되었다. 물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천히 자라는 아이들'과 세상 누구와도 부르지 못할 노래를 불렀고 눈빛의 교감을 했던 시간이었다. 단지 그것 하나 좋았다. 아이들과 눈 맞추고 노래하고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 순간 아이와 내가 연결되는 깊은 결속의 느낌. 그러나 어느 새 임상(만)을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졌다. 공부를 다시 시작할 엄두도, 내 이름을 걸고 치료실을 차릴 배짱도 없다. 주구장창 이들과 뒹굴기엔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4.
얼마 전 남편과 새해의 계획들을 이야기 하며 '이제 음악치료는 다 접어야 할까봐.' 했다. 그 얘기를 한 다음 날 특수교사 선생님 한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교 음악치료를 하면서 내가 만난 최고의 선생님이었다. 음악치료에 관한 책을 내도록 돕고 싶어 했었는데 그 때 역시 내 음악치료는 삼류라는 열등감 때문에 밍기적거리는 것으로 거절을 했었다. 그 분도 학교를 옮기고 나도 멀리 이사를 했는데 우연히 서로 멀지 않은 곳이다. 다시 만나 음악치료를 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한 음악잡지로부터 음악치료에 대한 글을 기고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담당 기자분이 내 글들을 알고 있었고 조심스레 추천을 한 것 같았다. 잠시 신비에 휩싸였다.


5.
천직 같은 전공을 두고 왜 나는 늘 부적절감을 느끼고 맴돌기만 했을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르치고 치료하면서 왜 난 늘 삼류라는 생각을 했을까? 전공에 관련된 글 한 줄 쓰지 못하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쓰고 강의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새로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전공을 부전공처럼 여기며 살던 20여 년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뭔가는 늘 부족한 지금, 여기를 오롯이 살지 못하고 환상을 좇아 분주한 내 영혼을 제대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더불어 이래도 삼류, 저래도 삼류라는 열등감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6.
하여, 오랜만의 긴 글을 쓰는 블로깅은 새로운 영역의 글을 쓰기 위한 발동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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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일주일 이상 밥을 거의 먹지 못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매운 쫄면을 사다가 집에서 혼자 먹으면서 미친 여자처럼 울며불며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그리고 거짓말 같이 입맛이 돌아왔다. 어제 저녁 이후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에 휘말려 보내다가 점심때가 되어 집 옆의 국수집에 가서 잔치국수 하나를 사왔다. 뜨겁고 매운 걸 후룩후룩 가열차게 먹어댔다. 다 먹고 나니 희한하게 배에 힘이 들어가면서 글 한 줄이라도 쓸 힘이 생기는 것 같다. 국수를 먹으면서 몇 년 전 먹었던 쫄면 생각이 났는데 쫄면 생각과 더불어 그 때(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를 또렷하게 알게 되었다.'채무감'이다. '빚 진' 마음이다.


87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아니 그 이전을 이야기 해야 한다.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왔다. 그리고 3학년 때 총각 국어선생님, 아가씨였던 영어선생님을 엄청 좋아했다. 두 분 다 아마도 학교 졸업하고 첫 학교였던 것 같다. 그 중 국어선생님은 어린 내게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셨다. '네 옆에 있는 친구는 친구지 경쟁자가 아니다. 친구를 경쟁자로 생각하고 공부를 인생의 전부로 생각하면......' 라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이승만 정권과 미국과의 관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가끔 선생님을 찾아 갔고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때 사주신 시집이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이다. 편지에는 '너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예수란 분도 민중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기를 희생한 분이다'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찍이 의식화 교육을 받은 것이다. 대학에 들어갔다. 87학번이다. 6월 항쟁이 있었던 그 87년 말이다. 1학년 1학기 꽈대가 되었다. 대의원 MT를 갔는데 거기서 들은 데모 곡들이 충격적으로 재밌었다. 워낙에 노래가사에 마음을 잘 여는 편이라 노래만 들어도 지금의 대학, 사회,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길이 다 보이는 것 같았다. '영자야 내~애 딸년아 몸 성히 성히 성히 자~알 있느냐. 서울에 있는 이 오빠는 대학생이 아~아니란다.' 그리고 전두환 이순자가 들어가는 노래들은 정말 재밌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자려고 누웠을 때 간부 언니들끼리 새벽까지 줄곧 담배를 피워대며 심각한 얘길 하는 것 같았다. 담배연기와 알 수 없는 얘기들의 무게감에 눌려 잠을 잘 못 잤다.


과선배 언니들이 소집한 '세미나'라 불리는 독서토론 모임에 들어갔다. 첫 책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이었고 충격적이었다. 세미나는 정해진 커리가 있었다. 책은 좋지만 언니들의 강압적인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언니가 1:1 로 교육을 하겠다며 따로 만났다. '남자 친구 있냐?'로 시작해서 이 공부의 의미 등을 얘기해 주는데 천성적으로 억압을 싫어하는 나는 감이 왔다. '조직'으로 들어가는 거구나! 거절했다. 그리고 혼자서 그 커리에 있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국 현대사>- 강만길, <해방 전후사의 인식>-송건호 외 등의 책으로 나는 비로소 '조국의 딸'로 살짝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 해 1월에 있었던 일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턱'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그 일 말이다. 그리고 5월에 즈음하여 전시된 광주 민주화 항쟁 사진은 또 한 번의 충격이었다. 비록 선배들의 조직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6월에 혼자 조용히 데모 현장에 따라다녔다. 엄마가 알면 어떻게 대학 보낸 딸 빨갱이 됐다고 통곡을 하실까봐, 아니 사실 그 선배들에게 부끄럽기도 해서 조용히 시청으로 나가 최루탄 맞고 혼자 방황하다 지하철 타고 집에 오곤 했다. 그리고 어느 어머니에게 귀하지 않은 자식이 있을까? 누구는 '호헌철폐 독재타도' 전쟁의 최전방에서 몸으로 폭력을 받아내며 자신의 삶을 옳을 것을 위해서 내던지는데 '나는 뭐하는 것인가?' 이 고민에 대학 4년을 방황했다. 잔디밭에 누워 위의 그런 책들, 여성학, 사회학... 이런 책을 보다 자다 집으로 오곤 했었다.


'선봉에 서서 하늘을 본다. 고향 집 하늘 위엔 굴뚝 연기만.... 오, 어머니 당신의 아들 딸! 자랑스런 민주의 투사.....' 이 노래에서 '오 어머니 당신의 아들 딸!'을 외치며 눈가가 빨개지던 선배를 기억한다. 그 시절 운동을 하던 선배들에게 '어머니'라는 이름은 누구보다 가슴이 미어지는 말이었을 것이다. 박정희 시절은 물론 5, 6공 동안 자신들이 선택할 길은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 부둥켜안는' 머나먼 날을 위해서 박종철처럼, 이한열처럼 되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었기에 말이다. 시골에서 소 팔고 논 팔아 대학 등록금 대는 부모님, 그 부모님의 주름진 얼굴과 거칠어진 손을 생각하면 이 얼마나 피눈물 나는 선택인가. 그런 선택을 한 친구, 선배들에게 나는 빚진 자다. 김근태 위원장이 고문을 받음으로 그나마 오늘 대통령 욕이라도 할 수 있는 세상을 살게 된 것이다.


목회자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대단한 희생을 하는 것 같은 눈길을 보내는 분위기가 있다. 더욱이 그 사람이 공부를 잘하고 잘나가는 직장을 다닌 전적이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이 찬양을 부르며 그 길을 가겠노라고 헌신한다. 남편이 목회자라서 아는데 참 어려운 길이다. 그러나 그렇게 특별히 어려운 길도 아니다. 누구든 예수님의 제자로 이 세상을 살려고 하면 고난 받아야 하고, 참아야 하고, 감수할 것들이 많지 않은가. 교인들에게는 목회자를 향한, 목회자 가정을 향한 연민이나 채무감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목회자가 자기 자신이 아닌 교인들의 위해서 사는 삶으로 희생과 헌신의 삶을 선택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목회자가 된다고 신변의 위협을 받거나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고문의 위협을 당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이 시대 목회자는 그닥 큰 희생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희생 코스프레를 하면서 누리는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 까지 이 나라는 자기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나라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  옳은 말을 한 죄로 젊디젊은 꽃 같은 생명이 고문을 당하고, 고문당하다 죽어가곤 했었다.
박종철, 광주의 무수한 사람들, 이한열.... 이런 이름으로 대표되는 분들에게 대한 빚진 마음을 나는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 많은 사람들을 앞세우고 한 구석탱이에서 목소리를 좀 내다, 최루탄에 눈물 콧물 좀 흘리고, 우르르 쫓기다 구두 한 짝 잃어버리고, 뒷골목에서 콧물 추스르며 서성거리다 슬쩍 빠져나오던 그 날들 이후로 말이다. 그리고 호헌철폐가 되고 대통령 직선제가 되고, 한 10년 사람 같은 대통령을 가질 수 있었던 것에도 나는 누군가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에 많이 숙연해질 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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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에 사무쳐오는 갈라진 이 세상에

민중의 넋이 주인되는 참 세상 자유 위하여

시퍼렇게 쑥물 들어도 강물 저어가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


이 노래 가사가 이렇게 사무치는 날이 다시 올 줄이야.....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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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늘 하던 강의지만 대상이 '새터민'이라 익숙하지 않은 탓에 에너지 소모가 몇 배였지요. 기진맥진하여 집에 왔는데 "엄마, 저녁으로 컵라면 먹으면 안돼? 제발... 제발 딱 한 번만..." 이래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엄마의 위엄을 잃지 않고 정색한 다음 "이 놈들! 딱 한 번이야." 했죠. 으하하하하.
이 녀석들, 뭘 먹고싶은 타이밍이 아주 그냥 끝내줬어요.



라고 위의 사진과 함께 올렸습니다.
그리고 댓글에 이런 말을 덧붙였죠.


페북은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편이지요. 가볍게 올리는 듯 하지만 이런 저런 페친들의 눈을 많이 의식하지요. 그래서몸글에선 안 쓴 얘기. 실은 저는 이럴 때 일상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느껴요. 지하철에서 정말 앉고 싶었는데 아픈 다리로 서서 오면서 '하나님, 몸이 많이 지쳐요.'했는데 여전히 몸은 파김치랍죠. 아이들의 전격적 저녁 메뉴 선택에서 저는 그 분의 위트와 저를 향한 미소를 보죠. 그래서 하나님이 좋고.... 일상은 신비예요.


정말 실망시키지 않는 하나님이세요.
뻔한 방식으로 고난을 주거나 뻔한 방식으로 위로를 주질 않으세요. 도통.
지하철에서 힘든 그 순간에는 '하나님, 제발 자리 좀 하나 내주세요' 이런 심정이었지만 자리래봐야 당산역에서 났으니 한 정거장으론 너무 쪼잔하잖아요. 집 근처 미용실에서 두 녀석 만나서 머리 깎이고 집으로 오는 길에 컵라면 얘기를 꺼내는 거예요. 이 놈들이...생전 컵라면을 찾지도 않는 놈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사오는 거죠. 사실 파김치 된 몸으로 저녁 해서 멕일 걱정이 태산이었죠.
아, 진짜 하나님. 컵라면이라뇨! ㅎㅎㅎㅎ
이런 위트 넘치는, 상상 그 이상의 방식으로 일하시는 그 분이 좋아요.
이해가 안돼 신경질이 날 때가 훨씬 더 많지만.......
그래도
이런 반전 있는 하나님! 굿~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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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알았습니다.
'노환'으로 돌아가시는 많은 노인들이 낙상하신 후,
보통 '고관절 골절상'을 입으시고,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시고,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나시면 몸과 마음의 노화가 더 빨리 진행되면서
'치매'를 앓게 되신답니다.
그렇게 돌아가시는 경우가 참 많답니다.
두 달 전, 넘어져 자리보전하신 엄마를 처음 병원에 모시고 가던 날이었습니다.
'고관절 골절'이라는 진단을 내린 의사가 아주 조심스럽게
'치사확률 30~40%'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주변 지인들의 할머니들이 그렇게 돌아가셨단 얘길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비록 지팡이를 의지하지만 혼자 걸어 화장실에 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던 엄마 방, 엄마의 침대로 돌아왔습니다.
기적입니다.
엄마가 워낙 건강했던 탓이고,
워낙 갈망이 컸던 탓이고,
워낙 평생 기도로 기적을 일구며 살아 온 탓.... 아니 아니, 탓이 아니라 '덕'입니다.




동생 부부의 결혼 기념일도 있고,
엄마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새우도 맘껏 드시도록 하면 좋겠고
함께 빕스에 갔습니다.
아직 걷는 것이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느리고, 통증으로 무겁기는 하지만
결혼식 신부입장 하듯 처~언천히 걸어서 갔습니다.
그렇게 속이 터지도록 느릿느릿 걸어들어간 것이 무색하게
새우를 한~ 접시 쌓아놓고 잘도 드셨습니다.


기적같은 두 달을 지낸 엄마가 다시 일상을 살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다시 일상을 살게 된 것이 기적입니다.
기적으로 일상을 회복한 엄마에겐 일상이 기적입니다.


잘 이겨낸 우리 엄마, 장해요.
엄마의 기도 들으셔서 기적으로 응답하신 하나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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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남편이 말한다.
"당신답게 해. 편하게..."
남편이 말하는 '당신다움'이란 다시 말하면,
"까불어. 까불어야 정신실이야."
이런 뜻이다.
남편이 기억하는 나에 대한 두 가지 첫 인상 중 하나가,
'저 누나만 나타나면 갑자기 주변이 시끄러워진다.' 였다.


정말 그것이 '나다움'이라면 갈수록 '나다움'을 잃어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기타 들고 나답게 노래를 불렀다.
음악을 듣는 것보다 노래하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
젊은 시절 마음에 맞는 친구와 몇 시간이고 노래를 부르며 논적도 많았다.
할 말 보다 들을 말이 많아지고,
노래 부르는 것보다 그저 음악을 듣는 것이 더 편해져간다.


이것도 역시 나다움을 잃어가는 것일까?


옆에 앉아서 '엄마, 꽃과 어린 왕자 불러봐' '개똥벌레 불러봐' 신청곡 넣던 현승이가.
"엄마, 젊어 보인다. 엄마가 젊어 보이면 예쁘고 좋아.' 하면서
"사진 찍어줄께." 하더니 휴대폰에 사진 수십 장을 찍어놨다.


'젊어서' 예쁘지 않고 '젊어 보여서' 예쁘다니.....
아, 이것이야말로 나다움을 잃어가는 것 아닌가.
나~는 늙었다고. 나도 한 때 젊었는데~에.... 이~젠 늙었다고. 꺼이꺼이꺼이꺼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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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평생 가장 잔혹한 여름을 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어느 모임에 갔더니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사세요?' 하는 말을 듣고 '내가 비정상은 아니다'라고 위로를 얻었습니다.)딱히 원고 탓도 아니고, 갑갑한 방 안의 구조 탓도 아닐 터인데…….그나마 손을 댈 수 있는 환경이라 생각한 것인지, 남편이 방의 구조를 바꿔주었습니다. 침대에 장롱에 책상까지 들어앉은 방의 구조를 휴가 첫 날 끙끙거리며 재정비한 것입니다.


단출한 책상을 창가 쪽에 붙여줘서 시야가 탁 트였습니다. 게다가 방문과 책상 사이를 침대가 가로막고 있어서 수시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어텍으로부터 차단효과도 있습니다. 글 쓸 일이 더 많아지고 있다며 어떻게든 해주고 싶어 했습니다. 지난여름 폭염 속 히스테리를 보고 놀란 가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이 설교 준비를 하면서 끙끙 앓을 때가 있습니다. '여보, 한 줄도 못 썼어. 기도해줘. 성령이 떠나셨나봐…….' 이런 메시지를 받을 때 강한 연민의 마음이 올라옵니다. 정말 혼자 가야 하는 길을 걷고 있음을 알기에, 그 '고독'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겠지요. (물론 연민이 장성하면 짜증을 낳기 때문에 몇 번은 격려하다가 갈구는 것으로 끝나기는 합니다만)


글쓰기 역시 고독한 작업입니다. 이렇게 최선을 다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줬는데도 글을 풀리지 않고 생각의 언저리만 맴돌고 또 맴돕니다. 새털 같은 마음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리던 그런 마음으로 좀처럼 회복되질 않습니다. 책을 낸 부담일까요? 저자라 불리며 덧씌워지는 거품에 대한 두려움일까요? 글쓰기가 목적이 되어야지 수단이 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삶에서 글이 나와야지 글을 쓰기 위해 삶을 사는 건 재미가 없습니다. 이름이 알려짐으로 유혹에 빠져 그 순서를 뒤바꾸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안으로 두 개의 원고를 다 마무리 하자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봅니다. 몸과 마음에 빡 들어간 힘을 빼고 내 안에 고인 이야기들이 줄줄줄 흘러나오면 좋겠다 싶습니다. 밖은 태풍으로 요란할지라도 내 마음은 깊은 바다처럼 고요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럴 때, 블로그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리 편하게 주절거릴 수 있으니 말입니다. 저자거리로 내보낼 원고를 쓰기 위해 한글 화면으로 옮겨갈지라도 마음만은 '안방 같은 블로그'에서 쓰듯 편안하게 써져야 할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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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라디오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게 되었다. 섭외 전화 받고 '간증'이라는 말에 걸려 순간 버벅버벅했다.


'간증!' 내 마음에서 일단 튕겨나가는 단어이다. '간증'이라는 이름으로 교인들 간에 은근한 경쟁심을 부추기는 것에 대한 알러지 반응이다. (알러지 반응 이상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트라우마 일지도....) 경쟁심은 이내 일부 피간증자들에게 '더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내놓을 만한 간증거리 없는 삶'에 대한 자괴감을 낳는다. 무엇보다 '이렇게 봉사하니 연봉이 오르더라. 교회에 충성하니 나만 직장에서 살아남았더라.'는 식의 성공일변도의 간증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마저 왜곡시킨다. '좋은 것'이 '나쁜 데' 사용되는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물론 간증하는 당사자가 아니라 그것으로 교인들을 통제하는 지도자, 목회자들에 혐의를 두는 것이다. (당사자에겐 나름대로 의미 있는 하나님에 대한 체험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경험으로 인한 상처가 있어서 간증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딱딱해지는 것, 어쩔 수 없다. 요즘 같은 때 진정한 간증은 차라리 '간증되지 않은 일'에 숨어 있다고 믿고 있다. 헌데, 내게 간증을 하라니.... 간증이라면 나는 정말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는데 자연스런 인터뷰 속에서 지난 몇 년 간의 이야기가 줄줄줄 나왔다. 그러면서 타협이 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하라면 할 수도 있겠구나....


내가 나의 삶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내 마음의 변화다. 내가 얼마나 자기중심적 삶을 살고, 자기중심적 사랑에 겨워 자뻑하고 있는 지를 그나마 깨달아가고 있다는 것! 사실 이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지난 7년여 동안 남몰래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하며 내게 일어난 기적이다.


처음 섭외 전화가 왔을 때는 얼토당토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두어 번의 긴 인터뷰를 통해 오히려 내 말로 내 자신에게 간증하는 시간이 되었다. 희한한 일이다. 그렇긴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을 불특정의 사람들에게 드러내야한다는 것이 많이 두렵다.


'저렇게 멀쩡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대체로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인해 분노하고 두려워 떠는 날이 대부분이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저렇게 흔들거리면서도 꽃이 피는구나. 나도 그렇겠구나.' 이런 공감이 있는 간증을 하게 되면 좋겠다.

 

**************

 

라고 페북에 썼고, 녹음했고, 방송됐습니다. 많은 것들을 배우고,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배우고 돌아보고 느낀 것들을 다시 나눌 날이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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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고 싶다.
책도 많이 읽고 똑똑해지고 싶다.
딱히 뭐라 말할 순 없어도 깊은 내공의 사람이 되고 싶다.
데이트 하고 있는 친구와 뭔가 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도통 모르겠다.

청년들을 만나면서 이런 바램들을 많이 들어봤습니다.
그런 바램을 가진 청년들(마음만은 청년인분들)께 소개합니다.
대학로에서 <호모북커스>라는 도서관을 운영하고 계시는 김성수목사님(한영교회와 고신신대원 소속의 김성수목사님 아님)께서 준비하신 참 좋은 자리입니다.

책을 좋아하고, 글 좀 쓰고,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 공부를  팔 걷어부치고 나서는 분들을 알고 있습니다. '좋은 일 하신다' 하면서 지켜보니....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팽창하셔서 자신은 순수하게 공급자가 되고 소비자를 불러모으는 형태로 진화, 발전하는 걸 봤습니다. 유명세를 타고, 제자들을 무한배출하여 추앙도 받으시고. 참 좋아보이(지만 그게 진짜 좋을까요?ㅎㅎㅎ)긴 합니다. 이런 분, 이런 곳이 눈에도 잘 띄고 발걸음 하기도 쉽지요.

<성령충만, 실패한 이들의 위한 은혜>를 쓰신 박영돈 교수님은 성령님의 성품 중 '수줍음'을 말씀하십니다. 철저하게 스스로 영광받지 않으시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지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나눠줄 것이 있는 분들은 요란하게 자신을 홍보, 영업, 소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예요. 책과 글을 통한 내공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아래 소개하는 이런 곳에 가세요. 조용히, 적은 무리들을 모아서, 저렴한 등록금으로(도대체 운영은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 드러내지 않는 이런 모임 말입니다.

하이튼,
강추합니다. 우리 청년들!
놀면 뭐해.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 아닙니다. 잡으세요. 기회를!
외로운 싱글은 놀면 모해! 시간 죽인다는 마음으로,
커플들은 간만에 의미있는 데이트 시도로.

 

********************************

 

작은도서관 '호모북커스'책.길.삶.길 - 책 속 길, 삶 속 길


책은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책 속에서 길을 찾고, 궁극적 우리 삶의 길과 연결시키는 과정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여 막막한 혼자만의 고독한 책읽기 여정이 아닌 함께 모여서 적극적으로 읽고, 나누며 길을 찾아가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가벼운 책읽기 동호회가 아닌 전방위적, 구도적, 공동체적 책읽기 과정입니다.



* 매월 4번의 정기적 만남과 1박2일의 retreat시간을 가집니다.

* 1학기 3개월 과정으로 총 2학기 6개월 과정입니다.


* 정원 : 원하는 요일을 정하여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화요반: 7명/목요반: 7명/토요반: 7명(총21명)

* 시간 : 매주 늦은7시~9시, 
           토요반은 늦은 4시~6시(저녁은 간단히 김밥)


* 강사 :  <호모북커스>대표 김성수 외 책읽기 내공만땅의 강사진들


* 신청자 특전 :

수강기간동안 <호모북커스>의 4,000여권 엄선된 장서를 맘껏 대출
매주, 매월 엄선된 도서정보 제공
평생의 친구, 선배, 후배 그리고 배우자를 만날 수도 있음

(★★★ 개인적으로 이거 맘에 드네!!! ★★★)

* 등록비: 월3만5천원(대학생 및 구직자 할인:2만5천원)


* 개강: 2012년 6월 5일부터(변경가능)


* 수강신청: 댓글 or 전화(참석가능 요일 기재요망)


* 문의: 017-542-2648, 070)4318-2648


<6월 과정 안내>

* 1주 :오리엔테이션<한 권의 책, 그 불가능의 가능성>

* 2주 : <김예슬 선언>by 김예슬 (느린걸음)
* 3주 : <전태일 평전>by 조영래 (아름다운전태일)
      or <만화 태일이1~5> (돌베개)

* 4주: <어린 왕자>by 생텍쥐페리,김화영 옮김(문학동네)
* 삶길 찾기 1박 Retreat(미정, 추후날짜공지)
 
☆  매주 전체 강독 텍스트:
   <그리고 저 너머에>by 스캇 펙(열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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