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중에 한 남자 청년이 필기를 무척 열심히 하거나, 또는 낙서를 심하게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필기라 여기기엔 어쩐지 청년의 이미지에 자유분방함이 넘쳤고, 낙서라 여기기엔 진지했다. 물론 잠깐 스친 느낌이었다. 강의 마치고 개인적인 질문도 받고 인사를 나누는데 그 청년이 그렸다며 내민 내 얼굴이다. 강의 들으며 필기 또는 낙서로 열심히 강사를 그려준 것이다. 가끔 이런 선물을 받은 적이 있지만 유난히 좋은 건 '청년'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청년은 어쩐지 그냥 편이 되어주고 싶고, 청년이 뭘 하면 그저 좋아 보인다. 특히나 어느 청년이 자발적으로 한 무엇이라면, 좋고 좋고 또 좋은데. 자발적인 작품이라니.



그렇게 바쁜 인기 강사는 아닌데 해마다 이때는 주가상승이다. 8월 15일을 낀 앞뒤 2박3일을 전국의 거의 모든 교회 청년부의 수련회 기간이다. 벌써 강의 약속이 되었는데 몇 차례 섭외 전화가 온다. 일정상 가능하더라도 하루에 두 번 강의를 하진 않기 때문에 맨 처음 인연이 닿은 바로 그 교회 청년부를 만난다. 15, 16, 17 수련회 기간 중 하나 씩, 세 번의 강의를 마친 저녁이다. 전과 달리 세 교회 중 대형교회가 하나도 없고, 어쩐지 느낌이 비슷한 교회들이었다. 두 교회는 이미 강의를 한 번 다녀왔고, 두 번째 만나는 만남이기도 해서 내 교회 청년부를 만난 느낌으로 정겨웠다. 



그래서 삼일 내내 좋았다. 기간 중에는 사랑하는 권사님을 천국에 보내드렸고, 사이사이 위로예배 발인예배를 드렸다. 슬픔과 그리움으로 며칠 잠을 이루지 못했고 몸은 그 어느 때보다 피곤했지만 강의하고 이들을 만나는 순간 만큼은 생명력과 기쁨이 넘쳤다. 그야말로 생명과 죽음, 기쁨과 슬픔을 오가는 사나흘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발인예배를 드리고, 그렇게 권사님을 보내드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수련회장으로 가 10시부터 3시까지 강의였는데. 운전하고 가는 동안에는 강의를 포기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오후 3시까지 내 몸과 마음이 견뎌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정각 10시,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하고,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던지지는 농담 한 마디에 환호성을 지르며 물개박수를 쳐대는 그들의 에너지가 나를 이끌었다. 3시까지 너끈했다.


결혼 첫 해. 결혼해서 너무 좋은데.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좋은데 그 해 여름 수련회 시즌이 되자 우리 둘 모두에게 병이 생겼다. 수련회 앓이였다. 청년으로 살던 10여 년, 여름마다 수련회에 올인했고, 거기서 얻은 영적 심리적 에너지는 말할 수가 없었던 것. 수련회 금단현상으로 마음을 잡지 못고 뒹굴거리다 에라, 교회 청년부 수련회에 아이스크림이나 사다주자! 하고 일어나 양평의 수련회장으로 갔었다. 그때 사진이 있다. 채윤이 임신하고 긴 입덧으로 몸이 많이 허약해졌었는데 마냥 좋았다. 돌아오는 길, 휴일 저녁 교통체증이 최악이었던 기억.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청년부 수련회에 대한 아련한 마음. 생각난다. 생각난다.


스스로 사유하고, 책 읽는 청년들을 특별히 애정하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청년들의 자발성과 창조성이다. 대단한 자발성이나 창조성이 아니다. 수련회 프로그램을 스로 만들고,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더 의미있게 진행할까 애쓰고 참여하는 태도. 그것은 긍정성이다. 자발성과 창의성을 한데 모으는 일이고, 그런 수련회는 거의 대박 재밌고 은혜롭다. 삼일 연속 갔던 청년부의 수련회는 그런 에너지가 넘쳤다. 최근에 별로 접하지 못한 에너지라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울 만큼 좋았다. 두 번은 특히 안면을 튼 청년들이라 내 개그코드도 알고, 스타일로 감지했기에 더 잘 소통할 수 있었다. 오늘 강의는 아예 대형을 바꿔 다같이 원으로 마주고 앉자고 제안을 했다. 감상적인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마주앉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강의하다 카메라 드는 일이 없는데 청년들끼리 얘기하는 시간을 주고, 또 주제활동을 하면서 자꾸 찍게 되었다. 사진을 찍었고 특히 동영상을 찍었다. 와글와글, 와글와글, 그러다 갑자기 와하하하하, 박수소리와 함께 터지는 웃음이 참 듣기 좋았다. 이들이 나눈 이야기, 만든어 낸 이야기며 그림이 참으로 기발하니 발표를 시켜놓곤 와하하하, 내가 웃고 박수를 친다. 청년사역이 어려운 시대라고 한다. 청년부 목회자나 선교단체 간사들을 만나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나도 동의한다. 헌데 지난 며칠의 경험으로는 청년가 살아 움직이며 부흥할 것 같은 느낌이다. 코스타나 성서한국에서 만나는 청년들도 참 좋은데. 대단한 시대적 의식이 없어도 그저 청년의 에너지를 잃지 않고 함께 모여 있는 지역교회의 청년부의 좋음을 따르지 못한다.


공동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남편과 나를 하나 되게하는 가장 큰 열망 중 하나는 공동체이다. 둘 사이 정직하고 자발적 공동체 되고자 20년 노력해왔고, 그 열매가 깊고 풍성함을 고요히 강렬하게 느끼고 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대한 갈망 또한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 우리를 이어준 본 회퍼의 <신도의 공동생활>이 결국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아이러니 하게도 지난 며칠, 사랑하는 권사님을 천국으로 보내드리며 그 이별을 통해 공동체를 느낀다. 너무도 예상치 못한 시간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공동체를 느낀다. '내 주를 향한 사랑과 그 신뢰가 사그러져 갈 때' 라는 찬양 가사가 적절할 것 같다. 그런 때, 다 사그러졌을 때 '죽음'을 통해서 사그러진 사랑이 되살아나다니! 



채윤이가 굳이 권사님의 장례예배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이른 아침 드리는 발인예배까지 가면서 차에서 나눈 이야기가 있다. "엄마, 권사님께 너무 죄송한 게 있어. 권사님이 나한테 써주신 편지에 멋진 실용음악가가 되어라, 고 해주셨는데. 권사님이 내가 하는 음악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 그래서 권사님 아프실 때 찬송가 한 곡 편곡해서 녹음해서 보내드리려 했거든. 실은 녹음도 해놨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하려고 못 보내드렸어. 너무나 아쉬워. 엄마, 권사님과 내가 나이로나 개인적으로 크게 관계가 있는 것 아닌데도. 내가 마음이 이런 것, 이게 공동체인인가봐." 교회에서 누구보다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있는, 자발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청년 공동체를 선망하는 채윤이가 그렇게 말했다. 실은 생기 넘치는 수련회에 가면 청년이 된 채윤이 생각이 많이 난다. 채윤이 대신 내가 부럽다. 


자발적이며 창조적인 사람들, 청년들의 모임. 두어 시간 안에 작품이 하나 뚝딱 나오고, 한 15분 만에 기발한 이야기 하나를 뚝딱 만들어지는, 하하호호 깔깔깔깔. 살아 생기가 느껴지는 공동체, 다시 꿈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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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남편 김P는 존대말의 사람이다. 

미융의 남편 남궁P는 반말의 사람이다.


사람들은 김P에게 함부로 많을 놓거나 시덥잖은 농담을 걸지 않는다.

남궁P는 누구보다 먼저 말을 놓고 반말을 유발한다.


우리 결혼식 때, 신랑신부 퇴장길 끝에서 흔한 꽃가루가 뿌려졌다. 

퐁퐁, 작은 폭죽도 터졌다.

폭죽 일발장전 하고 한 방에 땡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남자 집사님이 계셨다.

순간 퇴장하는 신랑 김종필과 눈이 마주쳤다.

진지한 눈빛에 기가 꺾여 차마 당길 수 없었다고, 조용히 폭죽을 내려놓았다고.


작년 말, 오랜 기다림 끝에 남궁P가 결혼을 했다.

우리 현승이를 비롯한 교회 주일하교 아이들이 축가를 불렀다. 

축가 부르러 나온 아이들, 사춘기 어간의 아이들의 표정이란 안 봐도 뻔하다.

축가팀과 마주한 신랑이 바로 스태프 모드로 전환되어 손가락 입가에 대고 웃는 표정을 주문했다.

축가를 부를 때는 아이들보다 더 건들거렸다.


우리 남편 김P와 미융의 남편 낭궁P는 많이 다르다.

미융과 나도 다르다. 나는 한국 여자, 미융은 베트남 여자.

"사모님, 이 책 다 읽었어?" 

우리 말을 꽤 잘하는 미융이지만 이런 신선한 웃음 유발하는 디테일이 있다.

"아내는 매일 책만 봐요. 여기 보면 <책만 보는 바보>라는 제목이 있어요."

남편이 대신 답했다.  

미융은 고개를 절래절래, 책을 싫어한다.


남궁P는 뭐든 잘 먹고, 음식도 눈앞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뚝딱뚝딱 만들지만

특히 떡볶이를 좋아한다. 결혼 전 현승이와 그 일당을 데려다 많이 해먹이셨다.

미융은 떡볶이를 싫어한다. 

한국 와 일하던 직장에서 늘 간식으로 나왔던(떡볶이, 김밥, 라면) 메뉴, 

그 기억 때문에 싫다고 한다.

남궁P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함께 먹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오빠 떡볶이 좋아해. 오빠 떡볶이 먹어! 나 안 좋아해. 안 먹어!"

미융은 이러면 된다고 한다. (와, 인생 띵언!)


남편이 지금 교회에 부임하며 주일학교 사역자로 남궁P를 스카웃 했왔던 건 여러 모로 신의 한 수였다.

많은 사람에게 선물이 되었지만 주일학교 아이들에겐 큰 선물이었다.

사춘기 남자 아이들 마음을 그렇게 사로잡을 수 있는 선생님이 몇이나 되겠는가.

결혼과 동시에 이주노동자 사역으로 떠난 남궁P를 아이들은 여전히 좋아하며 찾는다.

사랑의 흔적이 남겨진 탓이다.   


남편과 남궁P는 다르고, 참 많이 다르다.

나와 남편도 다르고, 참 많이 다르다.

남궁P와 미융이 다른 점을 찾아면 헤아릴 수도 없다.


이렇게 다름에도 달달한 일상을 산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한 식탁에 모여 달콤한 쉼의 만남을 가졌다.

라끌렛으로 시작하여 김치말이 국수로 끝난 메뉴는 다국적, 너무 다국적.


다름, 뭐 대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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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적으로 설정된 한계로 어떤 관계는 더는 깊고 진실한 관계로 나아갈 수 없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신산한 삶을 살아오신 탓에 몸과 마음이 많이 무너지신 시어머님을 돕고 싶어 많은 것을 했다. 한방 양방 가릴 것 없이 어머님이 꽂히신 병원, 상담, 치유 피정 등을 모시고 다녔다. 배우지 못한 결핍감을 안고 살아오신 세월이라 자서전을 내드리면 치유될까 싶어 구술을 기반으로 책을 만들어 드리기도 했다. 거기까지. 거기까지 하고 손을 놓았다. 내가 어떻게 한다고 어머님이 변하시는 것은 아니다! 좌절과 분노도 있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 사회적 간극. 할만큼 했다 생각하고 거리를 둔 지 몇 년이다.


주일 저녁, 나는 강의로 함께 하지 못하고 아이들과 남편이 어머님께 다녀왔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는데 한 장 한 장 넘겨보다 울컥했다. 어른처럼 큰 몸이 된 아이들. 고목에 매미처럼 손주 어깨에 매달린 어머님이 너무도 작아 보인다. 아이들 어릴 적 풀타임으로 일할 때 먹이고 씻기고 기저귀 갈아 채우며 키우신 할머니 엄마이다. 세월이 이렇듯 존재의 사이즈를 바꿔 놓았다. “어머니, 애들 막 떠났죠? 저는 사진 봤어요.” 정말 오랜만에 어머님과 편안하게 통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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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이네 가족이 과테말라에서 날아와 분당까지 와주었다. 남미에서 남서울까지다! 얼굴을 마주하니 상상했던 것보다 더 반갑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지내고, 행복하여 넉넉해진 세 식구의 마음을 듣는다.  평양면옥을 찍고 바로 옆 카페로 갔는데. 몇 번 찾았던 카페, 그저 커피 참 잘 볶는 집일 뿐이었는데 새로운 장소가 되었다. 카페 벽에 걸린 그림들이 과테말라 식구들 눈엔 익숙한 것들. 과테말라 이야기에 푹 빠지기도록 무엇이 이끌고 등떠밀어 들어간 공간 같았다. 2차도 아쉬워 북카페 같은 우리집 거실로 자리를 옮겨 어른들끼리, 아들들끼리 긴긴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사는 게 원래 그런 것인지. 사람들 만나 나누는 얘기는 힘들고 어려운 얘기가 대부분인데 오랜만에 다른 대화의 즐거움이다. 헤어져 남편과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했다. '부럽다. 부러운데 정말 좋다. 잘 지내시는 얘기 듣기만 해도 내 마음이 좋다.' 누군가 잘 되는 것이 부럽고 그 부러움은 곧장 나의 불행이 되는 것이 흔한 감정의 흐름이다. 그러니 부러우면 지는 것이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다. 뻔한 이 감정 라인을 심리학의 실험 연구가 하릴 없이 증명을 한다. 나와 겹치는 특성이 적은 사람이 잘 되는 일에는 별로 영향받지 않는데, 특성이 겹칠수록 질투로 인한 고통이 크다는 것이다. A그룹, B그룹, 실험군, 대조군... 실험 내용을 늘어놓을 성의는 없다. 


실험 결과도, 보편 진리를 담지한 속담도 설명해내지 못하는 경우는 있는 것이다. 특성과 처지가 우리와 많이 비슷한데, 내 처지와 영 다른 좋은 것을 가진 이 가족이 뼈저리게 부럽지만 그게 그리 고통스럽지 않다. 늘, 누구에게나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질투와 시기심으로 치자면 금메달까진 아니어도 눈감고 동메달 정도는 딸 수 있는 실력이다. 헌데 한결이네 소식은 어쩐지 부럽고도 좋다. 좋고 좋다 슬퍼지기도 하니 그리 깔끔한 감정은 아니지만 참 좋다. 며칠의 시름을 잊을 만큼 과테말라 이야기가 긍정 에너지를 주니 모처럼 '감사하네요!' 내지는 '하나님 은혜'라는 말이 목에 걸리지 않고 나왔다. 카페의 다른 자리에 앉아서, 집에 와서는 방에 박혀서 소리 안나는 얘길 나누는 아들들도 보기 좋고. (아들들 카페 씬은 도촬)


부럽다고 꼭 지는 건 아니다. 부러워서 함께 이기는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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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얼마 안 된 봄 어머님이 쑥개떡을 직접 해주셨다. 내가 얼마나 반색을 했던지 쑥개떡 이름이 바뀌었다. “에미가 좋아하는 쑥떡” 그리고 해마다 이맘 때면 저렇게 쑥개떡을 만드시고 냉동된 반죽을 여러 덩이 주신다. 쑥개떡 반죽은 치댈수록 찰지고 맛있어지는데 이제 치댈 힘이 없다시며. 장정한테 치대라 해서 조금씩 쪄서 먹어라, 하신다.

엄마가 어렸을 적에 해주시던 떡이라 특별히 사랑하는 것이다. 친정 엄마도 한때 ‘신실이가 좋아하는 개떡’이라며 가끔 해주셨는데. 쑥을 구하기도 어려운데다 기력도 없으셨다. 이제 친정 엄마는 쑥개떡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딸이 좋아하는 떡인 것도 잊으셨을 것이다. 아니 당신이 쑥개떡이며 각종 김치며 곱창전골 같은 걸 얼마나 맛있게 만들었는지, 기억 너머의 기억으로 희미해졌을 터.

어제 할머니 댁에서 쑥개떡을 본 딸이 “와, 할머니 쑥떡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떡이에요.” 하니까 “채윤이가 에미 닮아서 쑥떡을 좋아해” 하며 좋아하시는 어머니. 오늘은 어버이날 챙기러 친정 엄마에게 간다. 어머님이 주신 반죽으로 쑥개떡을 쪄서 가져가려 한다. 어쩐지 엄마는 “나 쑥떡 싫어혀. 치킨이나 사와” 할 것 같지만. 나와 어머니들, 나와 딸을 이어주는 봄날의 쑥개떡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떡. 여자들의 떡.

(떡 가운데 박힌 건 나름 어머님의 아티스트 감각. 땅콩으로 화룡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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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유치부의 *준에게 키 크는 비법을 전수 받았다.


나 : 준아, 사모님이 지금 준이 코 파는 거 봤어.

준 : 그래요? 나 코딱지 먹어요.

나 : 갑자기?

준 : 나 코딱지 잘 먹어요. 코딱지는 맛이 짜요.

나 : 으아...... 너 혹시 코딱지 먹어서 요즘 키가 그렇게 크는 거야?

준 : 맞아요. 

나 : 사모님은 키가 안 커서 걱정인데 코딱지를 먹으면 될까?

준 : 그럼요. 코딱지를 먹으면 돼요.

나 : 얼만큼 먹어야 해?

준 : 음...... 아침에 일어나 한 번, 저녁에 자기 전에 한 번 먹으세요.

나 : 그렇게만 먹으면 돼?

준 : 아아아아! 낮잠 자기 전에 한 번 더 먹어야 해요. 하루 세 번 먹어요.

나 : 오케이! 알았어! 이제 나도 키가 클 거야. 코딱지만 먹으면 되는 거지?

준 : 아니요. 밥도 먹어야 해요.

나 : 알았어. 사모님 코딱지 세 번 먹고 밥도 먹고 그럴 거야. 그래도 키가 안 크면 준이가 책임 져야 해.

준 : 응.


집에 오려고 나오면서 멀리 있는 준과 눈이 마주쳤는데 손가락 세 개 펴서 보여주며 '세 번'이라고 확인시켜주었다.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비법을 전했더니 키가 제법 훤칠한 스무 살 딸이 말했다. "그거 확실한 방법이야. 나 보면 알잖아!" 아, 맞다.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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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교회 청년부 생활이 주는 유익 중 하나는 주체적 참여 태도이다. 시스템화 된 성경공부나 훈련의 기회가 적은 대신 스스로 채워야 할 배움의 시간과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몇 주 전 예배 설교 시간에 여기저기서 노트 필기 하는 모습이 갑자기 눈에 많이 띄었다. 옆에 앉은 채윤이도 부지런히 적어대고 있었다. 청년부에서 설교 나눔을 하는데 함께 같은 노트를 구입해서 필기하기로 했다는 것. 스스로 뭐라도 하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올해에는 한 달에 한 번 [이우 청년 신학클럽] [이우 청년 북클럽]이란 시간을 갖기로 했다. 신학클럽은 남편이, 북클럽은 내가 이끈다. 목사님 앉혀 놓고 신학과 신앙, 성경......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하는 시간이 신학클럽이다. 북클럽은 말 그대로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나누는 것인데 내 목표는 어쨌든 읽게 하는 것이다. 한 달에 한 권을 못 읽어도 된다. 한 줄이라도 읽으면 된다. 오늘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본회퍼, 손봉호, 이현주, 존 스토트. 우리 부부 썸의 시작, 연애의 시작과 헤어짐엔 이 네 분이 함께 했다. 이분들의 책이 있었다. 언제 들어도 재미있을 남의 연애 이야기, 목사 부부의 연애 이야기로 시작하니 다들 눈이 초롱초롱. 좀 세게 약을 쳤다. 고등학교까지 나왔는데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죄라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죄라고 말했다. 진심 우리 청년들이 읽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읽는 힘으로 스스로 서는 사람,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읽고 또 읽으면서 자기 확장의 노력을 쉬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로 지금의 관심 주제 키워드를 포스트잇에 적고 나누었다. 크고 작은 고민들이 이미 선정해놓은 책과 잘 맞아 떨어진다. 한 달 넘게 심사숙고 하여 책을 골랐다. 2019년을 사는 청년들의 고민을 다루되 (어떤 의미로든)치우치지 않을 것, 책은 어렵거나 현학적이지 않을 것, 이런 원칙을 가지고. 올해 청년부가 된 채윤에게 일정 부분 읽혀 보기도 하면서 꼭 읽힐 책을 고르려고 했다. 어쨌든 목표는 읽게 만드는 것다. 모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바로 책을 구입했다며 인증샷이 단톡에 올라왔다. 벌써 보람이고, 기대가 된다. 


이우 청년 북클럽 도서 목록 


[헝거]  록산 게이, 사이행성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백소영, 뉴스앤조이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  헨리 나우웬, IVP
[신도의 공동생활]  디이트리히 본회퍼, 대한기독교서회
[연애의 태도]  정신실, 두란노
[자기 결정]  페터 비에리, 은행나무
[좋은 사람은 드물다]  플래너리 오코너, 현대문학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문학동네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세계관 수업]  양희송, 복있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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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아직 2018년이 끝나지 않았다.

2018 이름으로 쓰고 싶은 것, 써야 할 것이 '비공개' 상태로 남아 있는 한

끝난 것이 아니다.

송구영신 예배 전후로 날아든 똑같은 문자와 카카카오 톡들에 답신을 하지 못했다.

그중 연배가 높으신 분이 계셔서 죄송한 마음이 있고, 싸가지 없는 인간이라 하시면 인정! 

그러나 단체로 쏜 메시지에는 답하지 안해도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또 시간의 인위적 경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기도 하다.


2018년을 마무리 하는 글 세 개를 쓰고 싶었으니 이걸 써야 끝이다.

실은 사진만 걸어둔 채 '비공개'로 오래 묵혀서 조금 질려 버린 건 사실이지만.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간판을 내걸고 시간과 비용을 거룩하게 낭비하고 있는 중이다.

개소식이란 이름으로 거룩하고 아름다운 시간과 비용 낭비를 연거푸 9회를 하고,

마지막 개소식인 10회는 남편들을 초대했다.

와서 밥만 먹는 줄 알았던 벌쭘한 남자들(세상에 벌쭘하지 않은 남자는 몇이나 될 것인가) 넷이 모였다.

앉혀 놓고 개소식 프로그램을 그대로 진행했다.

개소식 프로그램이라 하면, 소장의 세바시(세상을 못 바꾸는 시간 40분) 강의가 주메뉴이다.

밥만 먹겠다는 남편들에게 굳이 이 강의를 들려주어야 할 이유는......

흠, 우리는 순수했다. 도대체 왜 이 시점에서 마음성장연구소인지,

도대체 뭘 하려는 것인지 알려야 할 의미도 권리도 있으니까.


정말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강의를 마치고 남편들이 이심전심으로 알아들었다. 

"여보, 미안! 돈 버는 연구소 아니야"

공부 시키느라 돈 많이 든 여자가 이제나 저제나 좀 벌어 오려나 했는데,

드디어 연구소를 내고 상담을 하고 제대로 강의를 한다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다만 크게 기뻐하진 않았지만 누구도 불편해 하지는 않았다.

부부는 닮아간다는데,

우리가 왜 이런 걸 하겠다고 뭉쳤겠어.

당신이 사는 방식이고, 당신이 살고 싶은 방식이지!

말하자면 이런 거다.


연구원 은경 쌤의 짝꿍인 백 이사님(남편들을 강제로 연구소 이사로 추대함)도 이러고 살고 계시니.

직원 '예배'말고 '복지' 챙기는 사장님

시의 적절게 기사가 나왔을 뿐, 

남편 네 사람 모두 '의미 있게' 사는 것에의 고민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 고민 놓아버리면 마음 편할 것을,

그걸 하지 못해 때로 죄책감과 자기 비판으로 괴로워 하기도 한다.


연구소가 무엇이 될지 모르겠다.

의미 있는 상담도 하고 만남도 하는 게 분명한데 

지속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곳, 낫고 나아지는 '나음터'가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함께 하는 네 사람이 안전한 사람들이고,

넷의 삶과 인격을 가장 가까이서 가장 오래 지켜본 사람들의 불편한 지지로 인해

더욱 확증을 얻는 안전함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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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체력이 달려서 아이들 치료교육을 그만두어야 하는데, 

이런 에피소드 하나로 일주일은 버틸 힘을 얻기에 멈출 수가 없다.

새해 첫 수업 헬로송을 부를 땐 늘 계획된 도발을 한다. 

“안녕, 다섯 살 해뜰반” 하자마자 아이들이 피를 토하며 달려든다. 

“아니에요오오오, 여서 딸이에요오오오, 여서 딸 돼써요오오오오오오(핏대)”

가장 태연하게 “무슨 소리야. 너희 다섯 살 반이잖아” 하면 

이제 핏대 세우고 앞으로 나와서 절규를 한다. “여!서!딸! 여섯 살이에요” 

“지난 번에 다섯 살이었잖아. 어쩌다 여섯 살이 됐어?” 여섯 살 된 비법이 난무한다. 

엄마가 여섯 살이래요, 떡국 먹었어요, 키가 커졌어요, 우유 먹었어요. 

그러다 한 녀석이 "나이를 먹었어요오~"

뭐라고? 나이를 먹었다고? 나이는 어떤 맛인데?

하자마자 이제 뻥이 난무를 한다. 

동그랗게 생겼는데 초콜릿 맛이에요. 

하트 모양이에요. 

야야, 그런데 선생님은 나이가 몇 살 같애? 

열다섯 살이요, 열세 살이요! ㅎㅎㅎㅎ (계속해, 계속) 이십 삼살이요, 

(자꾸 듣다보니 씁쓸)

 “얘들아, 실은 선생님은 나이 먹는 게 싫어”라고 고백해 버렸다. 

그러자 한 녀석이. 

“아이 참, 션샘미. 골고루 먹어야 해요!”


파, 당근, 나이.....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기!




십여 년 영성공부의 마침표를 찍은 것은 철학상담 4학기였다.

수많은 철학자를, 영성가를 소개받고 읽고 만났지만 돌아보면 가슴에 남은 것은 한 마디다.


"사랑이 메마른 곳을 일부러 찾아 상처받지 말고, 사랑 받는 곳으로 가야한다"

인간 본성이 그러하다.

칭찬과 존경의 말에 목마르면서도 그 반대의 소리에 귀가 커진다.

곱씹고 묵상하는 것은 나를 믿어주지 않는 사람의 표정과 말이며

부러 찾아가 맴도는 곳은 나를 홀대하는 곳이다. 


모양새를 위한 송년회가 아니라

당신들과 함께 한 일 년이 정말 소중했다, 는 송년회였다.

갚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셔도 되는 걸까, 싶게 대접 받는다.

일일이 손으로 한 예쁘고 맛있는 음식이며, 데코레이션이다.


그분의 손은 내게 사도행전 '루디아'의 손이었다.

나도 요리하는 것 참 좋아하는데,

음식 만드는 것에 정이 떨어질 정도로 슬프고 비루한 식사 준비의 나날을 보냈다.

그분이 건넨 밑반찬과 레시피가 도착한 날은 '삶은 요리'였던 내 인생이

'죽음의 요리'가 되던 시절이었다.


마음 성장을 위한 모임이라고 해서 내적인 것만 판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정신과 몸이, 마음의 길과 일상의 여정이 다른 것이며

둘 중 하나만 중요한 것처럼 치우쳐버린다면 그것이 가장 위험한 일이다.

마음 공부를 위한 모임일수록 일상의 이야기가 살아 있고,

먹을 것이 풍성해야 한다고 믿는다.


에니어그램 내적 여정에서 늘 좋은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이유이다.

마음 공부를 위해서 급조(맞다, 급조가 맞다. 순간 떠오른 분들께 급 메시지를 보내어 구성되었으니)

모임인 꿈모임이 밤에 꾸는 꿈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먹을 것을 나누고, 

무엇보다 존경과 신뢰를 나눴다.


어쩌다 이렇게 좋은 모임이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가 만들었고 이끄미로 있었으니 내가 잘한 것 같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는 늘 '나'라는 무거운 존재 하나를 끌고 다닌다.

어디선들 내가 다르게 했을까.

함께 모인 '나'들의 역동이라 설명할 수 밖에 없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내어 놓는 아이처럼 자기 내면을, 가진 것을 그냥 내놓았기 때문일 터.

송년 모임의 키워드는 누구도 계획하지 않았지만 내내 '천사'였다.

누가 천사인지는 시시각각 바뀌었지만,

선물교환으로 받은 앞치마를 한 내가 마지막으로 

천사를 찾아 싸바, 싸바, 싸바, 춤을 추었으니 마지막 천사는 '나'인 걸로.

모든 '나'인 걸로.


"사랑이 메마른 곳을 일부러 찾아 상처받지 말고, 사랑 받는 곳으로 가야한다"







나이 50이 되는 해였다. 100 살을 살지 못할 텐데 '반'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생의 의미'를 붙들고 싶은 탓일 터이다. 쉰이라는 나이를 거의 한 번도 인식하고 살지 않았다. 연말이 되어 송년회란 이름으로 모여 돌아보니 이제야 나이가 보인다. 그 어느 해보다 좋은 시간을 보냈다, 말하기에는 외적인 조건은 좋지 않았지만, 좋았던 것이 사실이다. 요란하지 않거나 의례적이지 않은 송년모임들이 인증해준다. 사람이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곳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상처 받고 찔려 피흘리는 곳도 사람이 있는 곳이라 한다면, 그것도 인정!이다. 


아, 올해 내게 의미 있던 곳은, 다른 말로 하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목회자에게, 그렇다 그 누구도 아닌 목회자에 의한 성폭행 피해자들과 글쓰기로 만난 곳이다. 피해자, 또는 생존자라는 말로 당신에게 어떤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무엇이 됐든 틀렸다! 당신이 틀리기 전에 내가 먼저 틀렸었다. 첫 모임에 가면서 누구보다 긴장했다. 상상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상한 모든 것이 다 틀렸고, 빛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빛을 부끄러워 하고 있었다. 자신의 빛을 감추려 하고 있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다 쓸 수는 없다. 8주 씩 두 번의 글쓰기 자조모임을 하면서 많이 울었고, 분노에 치를 떨기도 했다. 


1,2기 함께 모여 송년회를 했다. 낭독회로 모였다. 낭독회 다녀와 페이스북에 남긴 소회를 다시 올린다.


글쓰기로 만난 사이였는데 이상하게 목소리와 말투가 생생하게 남아 있다. 매 시간 써 온 글을 소리 내어 읽었고, 사려 깊은 수다(소리)가 끝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리라. 글쓰기 자조모임 송년파티 낭독회가 있었다. 두어 시간 앉아서 눈물 찔끔거리고 웃었다. 그녀들의 목소리가 참 좋다. 어쩌면 사람의 목소리가 저렇게 다른 빛과 결을 가지고 있을까. 눈을 감고 들으면 더 신비롭다.


며칠 약한 두통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졌다. 어느 순간인지 모르겠다. 반가운 얼굴이 들어올 때 살짝 심장이 들썩거린 순간인지, 마주앉은 이의 눈물에 공명하던 순간인지, 와하하하 웃던 순간인지. 이 모임에 앉아 있으면 모두가 나 같다. 피해와 상처도 내 것 같고, 그것을 돕는 일에 치인 활동가의 피곤함도 내 것인 듯하고, 나는 당연히 나다. 오늘 낭독회에서 들은 글의 일부이다.


자조 모임. 막연하게 거부감이 들었고, 마음 깊은 곳에선 겁이 났다. 나는 자조 모임 초기에 자주 세상에서 공포를 느낀다고 썼다. 나는 내가 내밀하게 감각하고 오래도록 사유한 것들을 모래 속 자갈 골라내듯 투박하게 다루는 세상이, 실로 무서웠다. 그래서 그냥 슬펐다’, ‘분노했다처럼 내 언어들도 단순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러면 설명하지 않아도 됐고, 그러면, 판단 당하지 않아도 되니까.

 

자조 모임을 통한 글쓰기는, 내가 방치한 기억들에 세세한언어를 부여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뭉개놓았던 기억들을 끌어올려서 가만히 펼쳐놓고 조금씩 다시 쓰기 시작했다. 나를 온전히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내 감정에 집중한 채로 내 기억을 쓰다듬고 매만지면서, 나는 무엇이 고통이었고 왜 고통스러웠는지를 직시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가해자의 그루밍에 길들여진 자아가 영혼에 가하는 자해. 그것이 내 부끄러움의 발로라는 것을 자조 모임을 통해 배웠다. 그 배움 덕에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최초의 기억따윈 없었다. 그 기억이야말로 가장 견고한 환상이었다. 내 고통은 모두 그냥 그 자체로 진실이었다. 나는 자조 모임이 끝나고 고통을 느끼기를 주저한 내 자신을 꼭 껴안고 어를 수 있었다.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의 불가능성은 유한한 인간의 영원한 콤플렉스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나는 연결을 믿는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일이 나를 들여다보듯 투명하게 타인을 들여다보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됐다. 타인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공간이 안전한 장소가 될 수 있음을 믿는다. 고통이 언어가 되어 쏟아져 나올 때 최대한의 경청으로, 제 몸의 변화까지 겪어가며 있어 준 사람들 때문에. 나는 사실 지구의 밑동을 파고 들어가면, 이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사실 이 분이 써오는 모든 글이 좋았다. 이미 자기 소설을 출간한 분이다.  헌데 이 글이 유난히 큰 소리로 들리는 이유가 있다. 글쓰기 모임 초반에 신형철의 글을 인용하여 ‘타자의 이해불가능성’에 대한 글을 써오신 적이 있다. 그때의 이해불가능성은 건널 수 없는 강, 건널 필요도 없는 강 같았다. 냉소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지구 밑동을 파고 들어가면, 모두 연결되어 있다’니! 연결을 믿는다니! 아, 확실히 이 말에서 내 두통이 사라졌다. 이 문장을 듣는 순간 뇌가 확 열리면서 뉴런이 마구 밖으로 뻗어나가 둘러앉은 모든 이들의 뉴런에 접속되는 느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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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에 한 번 어린이집에서 아가들 음악수업을 빙자하여 발달체크도 하고 부모 상담, 교사 교육도 한다.

가끔 보는 장면인데 볼 때마다 마음이 한참 머문다. 생선 반찬이 나오는 날엔 선생님들 너나 없이 위생 장갑을 끼도 생선 가시를 발라낸다. 그러고 나면 냄새에 물리고 질려 정작 자신은 먹지 못한다고 한다. 20대 초중반 나이 선생님도 있다. 집에서 자기 먹을 생선을 저렇게 살뜰하게 정교하게 바를까? 집에서라면 가시 발라내는 게 귀찮아 아예 안 먹을 지도 모른다. 생선 가시 발라내는 저 모습은 보기 좋다고 말하기 뭣한 야릇한 뭉클함이다.

뉴스 하나가 제대로 터지면 포털 검색어가 우르르 한 곳으로 몰리고. 한 집단을 싸잡아 비난하고 증오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세상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처럼. 애초 선한 집단 악한 집단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거침 없이 갈라치고 혐오한다. 무서운 세상이다. 뉴스 한 번 터질 때마다 어린이집 선생이란 이유로 두려워 하고 위축되는 모습을 본다.

어느 집단에든 사람이 있고, 개인이 있다. 평생 발라 본 생선 가시보다 더 많은 양의 생선 가시를 하루에 마지고 있는 젊은 선생님. 유난히 행동이 많은 아이들이 몰려 일년 내내 기 빨리며 씨름하다 결국 탈진하여 상담소를 찾는 선생님. 자기 몫을 감당하는 사람들, 가끔은 자신을 해하며 자기 자리를 지켜내는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떠받치고 있다. 생선 가시 발라내는 저 손들, 이 얼마나 고귀한 하찮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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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공과 본업은 음악심리 치료사입니다. 아이들을 치료했고, 요즘은 학부 전공까지 살려 어린이집의 아기들 치료교육과 함께 부모 상담으로 일주일 중 하루를 보냅니다. ‘유리드믹스’라는 음악교육을 하며 아이들 발달을 개별 체크 하고, 이것을 근거로 부모 상담도 합니다. 전공에 부합하는 가장 의미 있는 일입니다.


노래 ‘도레미송’을 시작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 OST로 한 6주 수업을 했습니다. 각각의 음이 개성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교육적, 치료적으로 큰 의미이지요. 이 빨간 원통 안에는 음악 선생님보다 노래를 쪼~금만 더 잘하는 아줌마가 들어 있다는 말을 아이들은 철썩 같이 믿습니다. 스피커만 보면 '어, 아줌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인사를 합니다. 예, 줄리 앤드류스, 즉 마리아지요.

마리아의 노래를 들려줄 때는 꼭 아이들 입에 m&m 초콜릿을 하나 씩 넣어 줍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아줌마가 전해달래. "음악은 달콤한 거야. 초콜릿처럼!" 6주 동안 미각과 청각에 동시 자극받은 아이들 기계적으로 말합니다. (초콜릿 통에서 눈을 떼지를 못하지요) “음악은 달콤한 거야, 초콜릿처럼”


오늘은 마리아 아줌마와 작별하는 시간입니다. (음계, 도레미송으로 뽕을 뺐다는 얘기지요) “아줌마가 오늘은 어떤 친구를 데려왔어. 아줌마의 친구가 새로운 노래를 들려줄 거래. 들어볼래?” 트랩 대령의 ‘에델바이스’를 들려주었습니다. 아이들 저 표정을 보십시오. 달콤한 음악에 빠져든 저 표정. 예, m&m 초콜릿 한 알의 기적입니다.


물론 마지막엔 초콜릿 없이 에델바이스 왈츠 버전에 춤을 추었습니다. 이 시간을 위해 6주를 달려온 것이고요. 아이들, 음악, 춤. 이 셋은 자유의 삼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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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가요, 라고 톡을 보내고

헤벨레 옷차림 그대로, 부시시한 머리 그대로, 쓰레빠를  신고 나간다.

60초 후, 편의점 앞에서 만난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로 시작되는 유안진의 수필이 생각 나지만,

이 수필 별로 안 좋아하니 이런 느낌이라는 얘기만 해두자.


이 낯설고 척박한 동네에서 

이렇듯 따뜻하고 정성스런 것을 나누는 이웃이라니!

돌아가신 친정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창조성 담아 식혜를 만들고,

또 꿈틀대는 창조성에 조청을 만들고마는 여인이 있다.

그 식혜를 얻어 와 마셔본 남편이 "이거 장모님이 해주시던 맛인데"란다.

재료 중에 '엄마' 성분이 들었음에 틀림 없다. 


늦은 밤 편의점 앞에 서서

중년의 두 여자,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남다른 두 여자,

꿈을 꾸고 꿈에서 가끔 길을 만나는 두 여자,

비슷하지만 다른 길 가는 딸을 키우는 두 여자가 짧은 수다를 떤다.

조청 레시피 얘기, 딸들 대입 얘기, 결론은 딸내미 뒷담화.

 

그리움과 창조성이 농축된 작은 병과

군산 이성당 빵 서너 개를 맞교환 해 돌아온다.

맨 얼굴에 쓰레빠로 만나는 이웃, 얼마나 큰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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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맞는 돋보기가 없어서 ‘읽기’를 포기하신지 오래다. 

94세 우리 엄마. 

‘저녁 먹었응게 예배 드리야지. 같이 드릴려? 안 혀? 그려’ 

하고 가.정.예배 드리러 들어가셨다. 


설거지 하고 살짝 문 열어보니 돋보기 끼고 찬송가 펴놓고 부르고 계신다. 

어? 엄마, 보여? 

아니이, 잘 안 보이는디 그냥 감이루 보고 불러. 23장 맞지?” 17장 펴놓고 부르신다.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리라.


내가 확인한 바, 엄마의 가정예배는 쉬지 않고 50년 째다. 

어렸을 적엔 그렇게 우리를 닦달하던 시간이다. 

아주 그냥 저녁마다 정말 고달픈 시간! 

식구들 다 떨어져 나갔는데 원망도 그 무엇도 없이 혼자 여전히 지키는 가정예배 시간이다.


동생 식구가 휴가를 가서 아기가 된 엄마 돌보러 친정에 왔다. 

저녁 먹고 앉아 1000번도 더 들었던 몇 개 남지 않은 인생 에피소드 레퍼토리를 꾹 참고 들어드렸다. 

그리고 엄만 예배를 드리러 들어간다. 

저런 엄마 팔아서 쓴 원고를 넘기곤 온 날이다. ㅠㅠ 그

래서인가. 더욱 마음이 저릿하고, 지난 세월이 미안하고..... 같이 있어도 벌써 그리운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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