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주제로 각종 단체와 교회에 강의하러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하지만 새벽 6시 강의는 처음입니다. 5시10분 분당 출발, 5시 55분 쌍문동 도착.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한 영장산과 도봉산을 한 시간 차로 마주했습니다. 


'피택 장로님을 위한 교육'에 초대 받아 간 것입니다. 새벽 강의라니, 엄두가 나지 않았을 텐데 초대하신 목사님을 알기에 기꺼이 가게 되었습니다. 예비 장로님 교육의 주 내용이 다름 아니라 '렉시오 디비나' 등의 기도 훈련과 영적 식별 등이라니요! 새로 부임하신 교회에서 조용히 준비된 만큼의 목회철학을 펼치시는 모습이 좋아 보였습니다.


영적 우월감에 빠져 삶과 신앙의 정답을 다 아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자아팽창에 허덕이며 과도한 확신 속에 교인들의 영적 삶을 통제하지요. 통제하고 억압하는 방식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폭력적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목사님들도 많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할 수 없는 것의 한계를 인정하며 교인들 각자의 영적 여정을 겸허히 인정하는 분들이죠. 


몇 주 전, 어느 교회 수련회에 가서 뵌 목사님 모습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강의안 올려놓고 강단으로 쓸 탁자(수련회 장소니까 식사 때는 밥상으로 쓰인)를 살피시다 ‘어이쿠, 상이 끈적하네.’ 하며 닦으시더군요. 그냥 본인이 닦으셨습니다. 


근거 없는 영적 우월감 대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내어주는 목사님들이 좋습니다.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저 산처럼, 그런 목사님들 건강하게 든든히 서계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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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인연이 있다.

명동성당을 언저리를 맴돌다  만난 성당 언니들이 있고,

성당 언니들을 가르치는 불자(佛子)이신 선생님도 계시다.

가장 소중한 것을 배우는 여정에 만난 분들이다.


신심 깊은 성당 언니가 암은 문턱에 섰다 깨달은 간증이 뜨거웠다.

지적인 욕구가 높은 이 언니는 개신교의 은퇴한 철학교수의 가르침에 빠져있다.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 깊은 철학적 성찰, 그리고 명상이 그를 변화시켰다고 했다.

명상의 유익에 대해 또 열변을 토하셨다.


어, 그런데 명상이라고 하셨나?

내가 아는 어떤 가톨릭 신자보다 믿음이 뜨거운 분이고,

마음공부와 영성에 관해 모르는 것, 안 해본 것이 없는 분이다.

선생님, 명상이라고 하셨어요? 향심기도가 아니구요? 라고 했더니.

향심기도 열심히 했는데 모르던 것을 명상으로 배우니 알겠더란다.


담을 넘어 가 배우는 기쁨과 두려움, 신선함과 막막함을 안다.

평생 들어 귀에 딱지 앉은 얘기를 새로운 언어로 들을 때 무릎 치며 알아듣고

귀에 딱지로 남은 평생 배움의 진가를 그제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신비롭다.


80, 60대 선생님(이라 쓰고 언니라 읽는다)들 사이에서 막내 역할을 맡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밥 생각 없으시지만 막내 배고프다니 헤어지던 발걸음 돌려 저녁 먹어(라고 쓰고 '멕여'라고 읽음)주심,

야야, 나는 이해가 안된다, 는 아주 일상적인 말로 내 종교가 가진 편협함을 가차없이 찔러주심.

재능과 꿈 덮어두지 말라고 사업계획 짜주며 먹고 살 걱정까지 해주심.

담을 넘어 만난 분들과의 수다가 사랑 노래가 되어 가슴에 남았다. 


불금의 명동에서 연가를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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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토요일, 일요일에 이우교회에서 사경회가 있습니다.

강사는 고신대원의 박영돈 교수님이십니다.

남편이 존경하는 은사님이시고요.

그야말로 따뜻한 통찰, 예리한 공감으로 저술, 설교, 페북 글이 모든 인기 최고이지요.

어제 남편이 박영돈 교수님 뵙고 왔는데

밤늦게 이런저런 신대원 시절 얘길 하다 페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이런 사연이 있었고요.

분당 근처에 계신 박영돈 교수님 팬들께서는 오셔서 들으셔도 좋겠습니다.

 

13일 토요일 오후 7시 / 14일 주일 오전 11시 / 오후 1시30분


[박영돈 교수님, 과 남편, 과 나]

결혼하고 7년 째 되는 해에 남편은 신대원에 갔다. 고등학교 때부터 꾸던 꿈이라지만 ‘내적 소명’은 확실하나 그것으로만 선택할 일이 아니었기에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해보려던 차, 사랑하는 사람이 목사의 아내 되기 원치 않으니 이 또한 좋은 싸인이라 여겨 결혼을 위해 장신대 도서관에서 입시 준비하던 책 싸 들고 나왔다.

그리하여 결혼하고 직장생활도 하고 대학원도 하나 하고 7년의 시간을 보냈다. 숨소리만 들어도 그의 행복과 불행을 알아차리게 된 즈음,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거야’ 하는 심정으로 그를 신대원 기숙사로 떠나 보냈다. 대신 그가 당연하게 그렸던 광나루역의 장신대원(장로교신학대학원)이 아니라 천안의 고신(고려신학대학원)이었다. 나의 바람이었다. 당시 함께 다니던 교회가 고신교단이었고 나는 단지 남편의 진로 변경으로 인한 변화의 폭이 작기를 바랬다. 신학적 폭이야 남편의 연륜으로 충분히 품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무슨 계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성 안수’ 문제를 놓고 남편은 그야말로 1:17로 싸우는 막다른 골목에 선 적이 있다. 여성 안수 불가를 주장하던 분들이 당시 싸이 클럽에서 쓴 표현들을 나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다.여성 목사를 꿈도 꿔본 적이 없지만 그때 본 글들로 인한 상처는 쉬 아물것 같지 않다. 나이도 많고 웬만큼 인격도 되던 남편은 동기들의 신뢰도 얻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만큼은 외톨이가 되었다. 형 그럴 거면 장신대로 가시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는 날에는 내가 나를 얼마나 미워 했는지 모른다. 늦게 신대원 가는 것이 무슨 대역죄처럼 내 말을 넙죽 수용해준 남편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외롭고 슬픈 남편의 표정을 보았다. 그럼에도 남편은 감정에 빠지지 않고 공부만큼은 열심히 했다. 어떤 경우에도 사모의 역할을 강요하진 않겠으나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내게 있단 걸 미안해 했고 두 아이의 아빠로서도 그러했던 것 같다. 가족을 두고 온 신대원에서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미안할수록, 슬플수록, 외로울수록 공부에 매달렸다. 그 시절 남편을 붙든 영적인 스승님이 박영돈 교수님이시다. 강의는 물론 그분의 삶과 일상의 고뇌를 통한 가르침이 그 보수적이고 경직된 신대원 생활에서 버팀목이었던 것 같다. 박 교수님의 연구조교를 하면서 교수님의 책 출간을 돕기 위해 혼자 이리저리 얼마나 고군분투 했는지 모른다. 교수님의 첫 책 <성령충만 실패한 자들을 위한 은혜>에는 남편의 남모르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나 역시 남편으로 인해, 또는 그저 한 독자이며 페북 팔로우어로서 박 교수님을 존경한다. (존경하다 실망한 지도자들로 인한 상처로 다시는 유명하신 분께 쓰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박영돈 교수님은 여전히 존경한다. 그분의 책이나 페북 글이 아니라 아주 작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알기에 그렇다.) 이번 주말에 박영돈 교수님께서 우리 교회 사경회 강사로 오신다. 이런 기나긴 이야기를 떠올릴 때 감회가 남다르다. 교수님은 잘 모르실 것이다. 늦게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흔들리고 고독한 제자에게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신지, 그 목회자의 아내에게 얼마나 감사한 존재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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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를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송구영신 예배 설교 중에 인용된 시이다. '이삭의 우물'이란 교회 이름에 담긴 의미를 발견하는 대목이었다. 여러 번 파고 빼앗긴 이삭의 우물 중 하나의 이름이 '르호봇'이다. '숨 쉴 공간'으로 교회라고 한다. 비록 빼앗김의 상처로 시작된 교회이지만 빼앗긴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의 지경을 넓혀 누군가에게 숨 쉴 공간이 되어주자는 것이다. 목자의 옷을 입은 종교인에게 상처 받은 이들이 속출하고 있는 시대, 앞선 경험자로 서서 누군가에게 숨 쉴 공간이 되어주자고 한다. 


헨리 나우웬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상처 입은 치유자. 상처 받은 사람은 흔히 가시옷을 입은 사람으로 비유된다. 다시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서 지레 자기방어의 옷을 입는다. 십자가를 통과한 고통은 더는 가시가 될 수 없다. 치유의 인자가 된다. 예수님처럼, 헨리 나우웬처럼.


<영적 발돋움>에서 헨리 나우웬은 관계 안에서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적대감에서 환대'로의 변화라고 했다. 나를 만족시키고,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존재로 타자를 바라볼 때는 적대감과 냉대이다. 영적으로 깨어난 자의 관계는 '환대'이다. 의심과 적대감에서 '환대'로 극단적 입장 전환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게 온 단 한 사람이 실로 어마어마한 것을 끌고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라는 것.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보이는 것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려는 것이 '환대'라고 시인의 입을 빌어 설교가 말했다.


2017년 마지막 날에는 [커피&메시지]라는 이름으로 메시지 성경 읽기를 함께 했던 청년들이 집에 왔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것을 끌고 내 앞에 온 것이다. 2017년은 어마어마한 인생을 끌고 새롭게 내 앞에 선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상징 아닌 실제 한 사람이 2017년 마지막 주일에 자기의 인생을 끌고 내게 왔다. 내 글을 읽고, 내 영상을 보고 내 교회를 찾아왔다. 나를 찾아 나의 공간으로 왔다. 그냥 나를 믿어줌으로, 찾아왔다. 이것에 내게는 더 없는 위로이며 환대였다. 그리고 그와 마주하여 그가 끌고온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토닥토닥 하는 것이 동시에 나를 토닥이는 것이 된다.


헨리 나우웬을 읽으면서 늘 언감생심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또는 적대감 대신 환대하는 사람이 되는 것 말이다. 다만, 지향할 곳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여전히 내가 될 수 있다 생각하진 않는다. 가만 두면 나는 나의 빼앗긴 것에 몰두하여 자기연민의 속옷을 입고 가시 겉옷을 입은 채로 일상을 서성거리기 일쑤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은 안다. 부서지기 쉬운 마음을 헤아리는 것, 그것이 환대라면 환대는 '생각'만으로 되지 않는다.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그와 얼굴을 맞대야 비로소 마음을 더듬을 눈을 얻게 된다. 커피 한 잔, 떡볶이 한 그릇이라도 놓고 마주 앉아 얼굴과 얼굴을 맞대야 한다. 


나는 빼앗긴 것이 많아서 모두 되찾기가지 수없는 날 눈물로 기도 해야겠지만

나는 가진 어둠이 많아서 모두 버리기까지 수없는 아쉬움 내 마음 아프겠지만


하덕규의 <푸른 애벌레의 꿈>의 가사 일부이다. 환대 받고자 함이 아니라 환대 하고자 하고, 누군가에게 숨 쉴 공간이 되어주자 마음 먹고 보니 나의 처지는 저러하다. 빼앗긴 것에의 서러움, 이미 가진 어둠이 그득하다. 그럼에도 사랑과 생명의 숨은 이미 내게 부어져 있음을 알고 있다. 아쉬움과 어둠이 온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지금 여기서 가능함을 알고 있다. 한 사람, 어마어마한 것을 끌고 온 사람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고, 마음을 헤아리려는 경외심으로 가다듬는 한 나는 자유이고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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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교회 2017년 성탄절은 '선물'이다. 찬양으로 드린 성탄예배의 주제가 '선물'이었다. 조건 없이, 되돌려 받겠다는 슬픈 헤아림 없이 기꺼이 거저 주는 것이 선물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그 선물(the Gift)로 오셨다. 짧은 설교 후의 기도에 여러 번 감동 받아 목사님을 협박하여 입수했다. (딸 신앙고백문, 아빠 설교 후 기도문으로 연일 글 장사 중)



주님, 주님께서는,
높고 높은 왕의 보좌를 버리고, 낮고 낮은 여물통 위에 뉘이셨습니다.
영광스러운 아들의 권세 비우고,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 되셨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시고, 비천하고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주님,
처녀의 몸 안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기적의 본질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보잘것없는 마을, 이름없는 인생들을 당신의 거처로 삼으신 것이야말로 참된 기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얻고, 새로운 생명에 눈을 뜨게 된 것이야말로 참된 선물입니다.


주님, 이미 오셨고, 앞으로도 오실 줄 믿습니다.
또한 오늘도 지금도 오고 또 오시는 줄 믿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람들 속으로,
무시당하고 냄새나는 가난한 이들의 식탁 속으로
보금자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땀 흘려 일할 일터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를 상실한 유명하지 못한 을들 속으로,
뜨거운 불길과 화염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실의에 빠진 이들 속으로,
오늘도 지금도 오고 또 오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
혼돈과 암흑의 시대를 가르고 한 줄기 큰 빛으로 이 땅에 임하실 때, 천군천사가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로다’ 노래했습니다.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을 가진 분열과 분쟁의 도시 예루살렘이 이날은 모든 무기를 내려놓고 노래하게 하옵소서.
분노와 대립의 정치로 인해 집을 빼앗기고 정처없이 바다위를 떠다니는 난민들을 불쌍히 여겨서 평화의 마을에 안착하게 하옵소서.
아직도 완전한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이 한반도 땅을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거짓 평화와 억눌린 계급사회 속에서 신앙의 자유를 향해 출애굽 노예들의 노래를 부르는 북녘의 고난받는 백성들의 기도를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밤낮 노동으로 고된 일상을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앙망하며 성령 안에서 새 힘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배제되고 빼앗기고 모함받고 조롱받았으나, 오늘도 목마른 마음으로 우물을 파는 우물지기들이 모였습니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호모쑤마돈을 체험하는 성령의 공동체가 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형제자매의 다름을 존중하고, 주님을 향한 각자의 생각을 신뢰하며, 다양한 목소리들이 저마다 빛을 내되, 성령님 안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기적과 감동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 소망 담아 드리는 오늘의 찬송을 기쁘게 받아 주시길 소망하며,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며 더 큰 자유로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중에 교회로 한 통의 성탄 선물 편지가 도착했다. 어떤 인연으로 교회에서 돕고 있는 북한 이주민 가족 이야기, 가장인 아빠가 쓴 편지이다. 여러 사연이 있고, 성탄 예배 설교 시간에 그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비천한 사람들 양치는 목자들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이 도착했음을 천사들이 알렸다. 예수님의 탄생은 한 마디로 '비천' 그 자체이다. 가장 비천한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나 삶의 방향이 달라진 한 남자의 이야기가 편지에 담겨져 있다. 담안에서 온 편지이다.

몇 년째 성탄 오후에는 '고난받는 자들과 함께 드리는 성탄예배'에 가곤 했는데. 성탄절 저녁에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간 곳은 편지 속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는 엄마와 딸이 사는 곳이다. 선물을 들고. 다섯 살 아이가 좋아할 핑크색 케잌과 쌀 한 자루이다. 시골에 계시는 이모가 보내주신 쌀이다. 신산한 삶을 살아오신 이모가 '내가 살아 있을 때나 이렇게 보내지' 하며 어려운 형편에 보내주신 쌀이다. 이모의 선물이다. 선물이 오고 간다. 비천한 우리들 사이에 이렇듯 선물이 오고 간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다녀온 채윤이는 아주 흥분을 했다. 다섯 살 아이가 너무 예쁘고, 말도 잘하고. 잠깐 놀아주는데 참 좋았다고. 아이가 그린 그림을 선물로 받아왔다. 이번 성탄절에 받은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매주일 교우들이 돌아가며 준비한 반찬으로 식사를 하는데, 주일 밥 시간이 그렇게 기다려질 수가 없다. 일 년에 한 번 성탄절 점심 식사는 더욱 풍성하다. 불이 없어서 조리를 할 수 없는 주방이라 집에서 조리한 음식을 냄비 째로 양푼 째로 들고 들어오신다. 남 모르는 수고와 정성으로 맛을 낸 선물의 향연이다. 


나는 수십 년 만에 성탄절에 중창을 다 했다. 알토로 노래를 불러본 지가 언제던가. 어떻게 멤버를 만들다 보니 올해 내게 큰 위로를 준 선물 같은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성탄 찬양 중 백미로 치는 곡. 그 중에도 가장 사랑하는 가사 '진리는 오묘하고 사랑은 성결해' 부분을 솔로로 부르는 영광까지. 선물이 되는 삶, 그 오묘하고 거룩한 삶을 살라고 부르신다. 


귀중한 보배합을 주 앞에 드리고 우리의 몸과 맘도 다함께 바치세

진리는 오묘하고 사랑은 성결해 주께서 탄생하신 거룩한 날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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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마지막 주일에 예배가 없다는 말을 한참 전에 들었다. 일명 ‘흩어지는 예배’. 식사 당번 팀이 네 팀이라 다섯 째 주 식사문제 때문인가, 이러저러 그러한가 보다 싶었다.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들어본 적이 있어서 그다지 신선한 느낌은 아니었다. 두어 주 전 설교 시작 전에 흩어지는 예배에 관한 안내를 들었다. 아하, 이러저러한 뜻이 아니라 요래요래한 뜻이 있었구나! 싶었다. 광고 내용이며, 교우들 카톡방에 정리되어 올라온 내용은 이러하다.

 

종교개혁기념주일에 우리 이우교회는 <흩어지는 예배>를 드립니다. ‘모여서’ 무언가를 듣거나 배우는 게 아니라, ‘흩어져서’ 따로 예배를 드립니다. 저는 이 예배가 성도님들 각 개인마다 남다른 의미와 은혜가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개교회주의에 중독된 우리의 혼미한 정신을 흔들어 깨워 그리스도의 몸을 좀 더 광대하게 체험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혹시 주일 본교회에서 헌신하여 섬기다보니 부모님 또는 자녀들과 뿔뿔이 흩어져 예배드리고 있는 분이 계신가요? 이번 기회에 가족들과 함께 예배드리시길 바랍니다.


종교개혁기념주일이니, 이참에 타교단 예배를 드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성결교, 순복음, 장로교, 여러 교단 교회가 있지요. 좀더 다른 방식으로 예배드리는 교회를 가보는 것도 꽤 의미있을 것 같습니다.


작은교회에서 힘겹게 섬기는 친척이나 친구가 있나요? 그런 교회에 방문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청년 시절 함께 했던 선배가 사역하고 있는 제천의 작은 교회를 방문하려고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흩지 않고 불러 모으셨습니다. 지난한 여정 속에서 흩어지지 않고 여기 이삭의우물에 모였습니다. 이제 한 번 흩어져 보려 합니다. 더 잘 모이고, 우리의 소명에 더 충실코자 함입니다. 주님께서 동행해주시고 은혜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 그리고 말씀 드렸던 세 가지 기억하시죠?


1. 10분 일찍 가서 그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

(우리 교회인양 기도합니다)

2. 교회 밥 주면 밥 먹고 오기

(식구는 같이 밥을 먹는 것입니다)

3. 헌금 꼭 하고 오기

(평소보다 더 많이 하십시오)


내겐 특별히 세 가지 숙제(지침)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렇지! 내 교회 네 교회가 없다.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어느 교회 가서 예배 드리더라도 가르고 경계 세우는 버릇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살짝 감동이 밀려왔다. 이후 교회 모임에서 간간이 들리는 대화. “집사님은 이번 주 어느 교회 가?” 허용된 일탈을 계획하는 대화가 신선한 설렘으로 들렸다. 한 집사님은 어머님 다니시는 교회에 가신다면서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겠냐신다. 수십 년 교회 생활 하면서 주일 봉사 같은 것에 매여서 다른 교회 가서 예배 할 수 있다는 상상을 못했다며. 수십 년 만의 색다른 효도가 되는 것이다.





우린 제천 의림지 옆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예배 드렸다. 20년지기 친구 M의 남편 K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이다. 작은 교회 앉아 예배 드리며 어릴 적 자랐던 충청도의 교회가 생각났다. 그때의 우리 아버지, 우리 엄마처럼 시골의 작은 교회를 오랜 시간 섬기며 살아가는 친구와 목사님. 친구에 대한 마음 떄문이 이미 남의 교회 같지 않다. 그것이 아니라도 이 땅의 모든 교회, 내 교회 네 교회일 수가 없다.


덤으로 얻은 것이 많다. 제천의 가을에 머물러 20년 전 청년 시절 함께 했던 추억을 걸었다. 내겐 친구, 남편에겐 누나인 M과 함께 긴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 시절 번뇌 가득한 얼굴로 기타 치던 종필이가 다시 살아오더군. 목회자 커플 네 사람이 주일 아침 예배로 시작하여 밤늦도록 함께 했다. 함께 탁구 치고 밥 먹고 수다 떠는 모든 시간이 좋았다. “주일을 이렇게 함께 보내다니! 믿어지질 않네. 흩어지는 예배, 좋네!” 형편과 처지는 다르지만, 답이 없는 얘기지만 비슷하고도 다른 이야기를 주고 받는 시간 동안 마음이 펴지고 얼굴이 펴졌다. (주름은 안 펴진다 ㅠㅠ)


친구가 챙겨준 잘 익은, 밥을 부르는 맛있는 김치 한 통은 덤앤덤.




흩어지는 예배의 복을 밤 늦도록 누리고 청풍호를 내려다보며 일박. '자드락길'이라는 처음 만난 길을 걸었, 아니 기어 올랐다. 포기하지 않고 가장 높은 전망대까지 올라 만난 멋진 풍경은 덤앤덤덤. 걷는 길인 줄 알고 시작했으나 등산 길이었다. 꽃길만 걷고 싶은 인생길, 언제 한 번 상상한 그대로의 꽃길이었던 적 있었냐며, 되돌아 내려가지 않았다. 여러 번 뷰 포인트를 만났다. '이 정도면 됐네' 하고 돌아설 수도 있었는데 이왕 내딛은 길 힘들더라도 한 번 끝까지 가보자. 어머어머, 중간에 포기했으면 어떡할 뻔 했나! 멀리 뵈던 바로 그 전망대에 올라서 본 풍광은 웬만했던 아래 쪽 풍광과 비교할 수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얻은 안구정화 풍경 안에 그림자로 안긴 저 사진 한 장은 덤앤덤덤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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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서울역이서 만나"


86세 이모가 93세 엄마에게 말했다. 사랑 깊은 자매가 그리움 가득 안고 서울역에서 만난다? 특별할 것 없는 설렘이겠으나 실현 불가, 환상 같은 일이다. 그래서 눈물 겹도록 황당하다. 93세 엄마는 타인의 도움 없이 현관 출입도 못하신다. 86세 이모는 그 연세에 건강하고 씩씩하여 엄마 생신 때마다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지하철 타고 충청도 공주에서 김포까지 찾아 오셨었다. 등에는 콩, 고추 같은 선물 가득 짊어지고 말이다. 이제 그 이모의 기동력조차 쇠했다. 혼자 김포까지 언감생심 꿈도 못 꾸신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이모는 공주의 쓸쓸한 집 안방에서 전화로 안부를 묻고, 기도제목을 나누며 눈물짓는 일상이다.


엄마를 모시고 있는 동생이 '언니, 서울역이서 만나' 자매의 눈물겨운 통화 내용을 듣고 명절 끝에 93세 엄마를 모시고 공주에 다녀왔다. 허리 아파서 긴 시간 차 탈 수 없다는 엄마를 설득하고 설득하여 모시고 내려갔다. 마지막 만남이 아니겠냐며.


"느이 엄마는 나한티 언니가 아니라 엄마여. 언니라고 헐 수가 옶어" 이모는 늘 그렇게 말씀하신다. 엄마는 평생 신산한 삶을 사는 이모를 떠올릴 때마다 "너머 불쌍허다. 너머 불쌍혀' 하며 눈물짓는다. 93세 이모와 86세 이모의 눈물 없는 만남은 이땅이 아닌 천국, 그곳이 더 가까운 실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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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동생의 존재는 내게 '전쟁터 세상'을 가르쳐주었다. 맛있는 것, 좋은 것을 독차지 할 수 없는 세상. 둘 중 하나가 혼나야 한다면 나는 어떻게든 나는 살고 봐야 하는 세상. 동생을 마주하면 알 수 없는 전투력이 뱃속에서부터 꿈틀거린다. 친정에 가서 동생과 식탁에 마주 앉으면 가장 맛있는 걸 빨리 먹어치워야 할 것 같은 조급증이 생긴다. 옛날 옛날에 몸에 밴 습관이다. 내가 덜 가지고 덜 먹는 건 상관 없지만 동생이 더 먹는 것, 더 가지는 것은 견딜 수 없다. 이왕 혼난다면, 어떻게든 동생이 한 개 더 혼나게 만드는 것이 어린 시절 중요한 이슈였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공격이 가정예배 시간에 웃음보 터트리기인데. 돌아가며 성경 읽는 시간에 내가 읽는 부분이 끝나고 동생이 받아 읽어야 할 순간. 말실수 같은 걸 던져서 동생 웃음보가 터지면 압승이다. 수습되지 않는 웃음보는 결국 예배 끝나고 혼나는 걸로 마무리 되기 때문이다. 기도 시간에 엄마 아버지 눈 감고 있을 때 둘이 눈 뜨고 소리 안 내고 웃기는 건 리스크가 큰 모험이지만 자주 감행했다. 설령 걸려서 혼나더라도 나보다 동생이 1만 더 혼나면 만족이었다. 그때 계발한 기술이 콧구멍 벌렁거리기 같은 것이다. 소리 안내고 눈만 마주치면 웃길 수 있는 테크닉이다.


아웅다웅 티격태격 엄청 싸워댔다. 가끔 육박전도 했는데, 국민학교 5, 6학년 때 쯤 어느 날, 늘 하던 개싸움 육박전이 시작되자마자 동생이 먼저 나를 깔고 뭉개는 전에 없던 일이 벌어졌다. 그날 이후로 육박전은 조용히 그만 두었다. 늙은 엄마 아버지를 놀리기 위해서는 가끔 의기투합을 하기도 했다. 엄마가 하는 방언 기도나 찬송 가지고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것 등. 어찌됐든 동생의 존재는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독차지' 하고픈 내게는 치명적인 걸림돌이었다. 동생 앞에만 서면 전투력이 상승했다. 현명한 부모님이 최소한의 싸움을 위해서 몇 가지 원칙을 주셨는데 그 중 하나가 '반띵의 원칙'이다. 손님이 오셔서 용돈을 주시는 행운의 불로소득이 있을 때, 얼마나 행복했던가. 문제는 둘 중에 하나만 집에 있는데 손님이 오신 때이다. 동생이랑 나눠가져, 라는 말일 붙이는 경우와 그냥 주시는 경우. 내게는 엄청난 차이인데 밖에 있다 돌아온 동생에겐 내게 없는 돈 100원이 누나 손에 있다는 것 외에는 보이지 않으니 내놔라, 누나가 안 주면 엄마가 주라, 난리 난리를 쳤을 것이다. 그래서 만드신 법이 '반띵의 법' 일명, 남내 불로소득 공산주의 시스템이다. 손님이 나눠 가져라, 하지 않아도. 예기치 않은 모든 불로소득은 무조건 반띵이었다. 100원이 생기면 50원 씩, 50원이 생기면 집 앞 가게에 가서 '10원 네 개랑 5원 두 개로 바꿔주세유' 해서 나눠 가졌다.


# 간만에


김포에서 흑석동으로 주일 예배 가는 날이 엄마에겐 최고의 날이다. 아침에 예배 전에 태워 드리고, 오후 예배 마치면 모시러 가는 것이 동생의 주일 일상이기도 하다. 주일 집에 가는 길에 꼭 동생이 전화를 한다. '누나, 엄마가 나 돈 줬다.' 우리 자랄 적에 그렇게 돈돈 하던 엄마가 돈에 대해서 완전 '내려놓음'이 되어가지고. 돈이 좀 모여지면 주는 게 일이다. 주일에 교회 가면 최고령 권사님인 엄마에 대한 애정으로 몇 만원 씩 용돈을 드리는 분이 계신가보다. 그걸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동생에게 기름값이라며 주고, 동생은 여지 없이 내게 전화하여 염장질을 한다. '엄마 바꿔, 엄마 바꿔! 엄마, 운형이 돈 주지마. 나도 줘.' 폰에 대고 떼를 쓰면 엄마가 무척 좋아하신다. 그러면서 또 '야야, 나 데리고 사느라고 운형이 선영이가 심(힘)들어. 나 먹을 거 사다 대고 심(힘)들어. 노인에 하나 데리고 있는 게 얼매나 심든줄 아냐?' 하신다. 주중에 전화를 했더니 '얼라, 우리 딸 보고 싶었는디 전화를 혔네.' 하기에 '엄마, 운형이 돈 주지 말고 모았다가 나 줘. 20만원 모아 놓으면 내가 엄마 보러 갈게. 나 보고 싶지? 운형이 주지 말고 20만원 모아 놔.' 생떼를 썼더니 또 좋아한다. '얼라, 너 사모가 그르케 돈 좋아허믄 못 써. '하면서도 '20만원...... 은 그거 나라에서 주는 거 그게 나와야 되는디..... 궁시렁궁시렁' 하다 끊었다.


# 메소드 연기


며칠 뒤어 엄마를 보러 갔는데 신실아, 신실아 조용히 부르더니 꼭 쥔 주먹을 내 손바닥 위에 놓는다. 눈 찡긋, 찡긋. 빨리 집어 넣어. 우힛, 꼬깃꼬깃 만 원 열 장이내 손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동생과 마주 앉았다. '엄마, 누나 돈 줬어?' 이 순간 와, 우리 엄마 메소드 연기. '참나, 내가 돈이 어딨다고 돈을 줘워?' 천하에 촉 좋은 동생이 속았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시침 뚝 연기였다. 며칠 후 동생하고 통화하며 '야, 엄마가 나 돈 줬다. 몰랐지?' 제보하고 '엄마 취조하고 재밌는 거 있으면 말해줘' 했다. 좋은 것 두고 무조건 경쟁하는 것이 습관이 된 남매, 평생 남매 사이에서 알아도 모르는 척(엄마, 아까 낮에 오셨던 아버지 친구 목사님이 누나 돈 줬지? 나 없을 때 줬지? '아니~이!'), 몰라도 아는 척(엄마, 낮에 오신 목사님이 누나 100원 주셨어? 200원 주신 거 아니지? 누나가 나 50원 줬어. '50원 줬으면 100원 받았겄지~!) 했던 엄마. 93세 메소드 연기 엄마는 아들의 취조에 어떻게 응할 것인가, 두둥!


#  93년 내공의 리액션


이제부터 동생 보고이다. 운동하러 나가면서 엄마 방문 앞에서 달달하게 인사했단다. 엄마, 운동 갔다 올게~/(엄마는 침대에 누운 채로 아이컨텍을 위해 고개를 한쪽으로 든 귀여운 모습으로)이이~ 그려, 갔다 와/엄마, 선영이도 탁구 치러 갔으니까 2시 쯤 올 거야. 늦는다고 뭐라 하지마/(천진난만 밝고 순한 표정으로)그려~어, 알었어/그런데 엄마, 엄마 누나 돈 줬어? 두둥~/(귀엽게 들었던 고개를 체념하듯 베개에 떨궈 누우며, 단호하고 무표정하나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려.서?! /줬다더니! 얼마 줬어? 누나 얼마 줬어?/(더욱 단호하고 시크하게) 니가 경찰이야? 니가 경찰이냐고?


이런 예측불허의 93세 시트콤 주인공 같은 노할머니라니!


* 벌써 10여 년 전의 사진이다. 엄마는 지금 성경을 읽지 못한다. 돋보기의 도수를 최고로 올려도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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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통령 사생팬이 여럿이라.....

열여덟 딸은 아빠 따라 서점 갔다 타임지를 사오고,

아빠는 대통령 블랜딩 원두를 사오고,

엄마는 팬심 가득 담아 커피를 내렸는데.

커피잔 선택은 퍼스트캣 찡찡이 연상시키는 키키 고양이 잔으로 아들의 선택이다.


콜롬비아를 베이스로 블렌딩한 커피 맛은

역시나 구수하고, 중후하고며 어느 한 구석 모나거나 껄끄럽지 않다.


대선 전후로 정치덕후가 된 딸은 청와대 조직도를 외워 줄줄 꿰고 있는 상황이고.

이 딸.

뮤지컬 배우, 재즈피아니스트, 김밥집 사장님 경유해서

'청와대 직원'으로 장래희망이 또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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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도종환
.


당신 거기서도 보이십니까
산산조각난 당신의 운명을 넘겨받아
치열한 희망으로 바꾸어온 뜨거운 순간들, 순간의 발자욱들이 보이십니까
.
당신 거기서도 들리십니까
송곳에 찔린 듯 아프던 통증의 날들, 그 하루하루를 간절함으로 바꾸어 이겨낸 승리
수만마리 새떼들 날아오르는 날갯짓같은 환호와 함성 들리십니까
당신이 이겼습니다
.
보고싶습니다
당신때문에 오래 아팠습니다
당신 떠나신 뒤로 야만의 세월을 살았습니
어디에도 담아 둘 수 없는 슬픔
어디에도 불 지를 수 없는 분노
촛농처럼 살에 떨어지는 뜨거운 아픔을
노여움대신 열망으로
혐오대신 절박함으로 바꾸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
해마다 오월이 오면 아카시꽃 하얗게 지는 오월이 오면
나뭇잎처럼 떨리며 이면을 드러내는 상처
우리도 벼랑끝에 우리 운명을 세워두고 했다는 걸 당신도 알고 계십니까
.
당신의 운명으로 인해 한순간에 바뀌어버린 우리의 운명
고통스러운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지금 우리역사의 운명을 바꾸고 있습니다
시대의 운명을 바꾸고 있습니다
타오르되 흩어지지않는 촛불처럼
타오르되 성찰하게 하는 촛불처럼
타오르되 순간순간 깨어있고자 했습니다
.
당신의 부재, 당신의 좌절
이제 우리 거기 머물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 당신이 추구하던 의롭고 따뜻하고 외로운 가치
그 이상을 그 너머의 별을 꿈꾸고자 합니다
그 꿈을 지상에서 겁탁의 현실속에서 이루고자 합니다
.
보고싶은 당신
당신의 아리고 아프고 짧은 운명때문에 많은 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보이십니까
당신이 이겼습니다! 당신이 이겼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우리들이 우리들이 이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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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만큼은 본업으로 돌아가 으막션샘미가 됩니다.

어린이집에선 '유리드믹스 션샘미'라고 불리며 음악 수업을 합니다.

일 년 동안 음악의 기본요소를 다 다루는 커리큘럼이 있고,

들리는 음악을 보이는 음악으로! 자부심 충만한 유리드믹스 수업 목적에 충실하지요.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최대한 인격적인 스킨십을 나누려고 합니다.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몸과 영혼이 아이들 속에 뒹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시간은 말 그대로 음악치료 시간인데,

치료사가 치료받는 시간이란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일 년 동안 음정, 박자, 템포, 악기, 아티큘레이션 등의 내용을 차례로 섭렵합니다.

노래하기, 춤추기, 악기 연주하기, 창작하기, 감상하기를 총동원해서 말이지요.

눈을 감고 친구 목소리 알아 맞히기 게임은 일 년 음악수업의 종합판입니다.

부끄럼쟁이들이 혼자 앞에 나와 앉아 있어야 하는 것,

무엇보다 혼자 노래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특히 내향적인 아이들에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섯 살 짜리 아이들이 친구의 목소리를 변별해내는 것도요.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고 기다리며 참여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지요.

마지막에 다같이 손뼉 치며 칭찬해주는 짧은 순간에는 살짝 소름이 돋는 감동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나다움'이란 특별한 무엇을 하는 '나'가 아니라

그저 나의 존재 자체를 찾는 일이란 생각을 합니다만.

아이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하는 '나'는 '나다움'에 무척 가까운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라, 는 경구가 이미 현존으로 다가와있는 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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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무엇이 본업인지 본인도 헛갈리는 나날을 살고 있군요.

미간에 힘 잔뜩 주고 글을 쓰거나 책을 보는 날이 대부분이고,

아니면 강의나 이런저런 만남이 있지요. 

일주일 중 하루는 음악 선생님으로 삽니다.음악치료 하나, 음악수업 하나.

언제까지 으막션샘미 할 수 있으려나요.

으막션샘미라서 햄볶는 하루를 보내고.


# 1 경기도 모 공립유치원


2층에 있는 특수학급 교실을 향해 총총 걷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1층 복도에 주저앉아 뭔가 낑낑거리던 아이가 부릅니다.

선생님, 나 좀 도와줘요.

뭐어? 뭘 도와줄까?

이게요, 안 들어가요.

그래, 선생님이 도와줄게. 아, 노트가 커서 가방에 꽉 끼는구나.  됐지?

(용무가 끝났다고 관계를 뚝 끊어버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예요?

나? 나는 예쁜별반에 온 선생님이야.

(음악치료, 이런 설명 할 수 없음. 잘못 걸려들면 시간 맞춰 치료 못 들어감)

선생님이라구요? 선생님이 아닌 것 같은데.

너가 아까 선생님이라고 했잖아.

아니에요. 선생님이 아닌 것 같아요. 선생님이 아니고......

선생님이 아니고 누구 같아?

선생님이 아닌 것 같고 할머니 같아요.

(야!!!!!!!!!!!!! 너 가방에 넣어준 거 다시 꺼내!!!!!!!)

선생님이야. 예쁜별반 선생님이야.

아니에요. 선생님이 아니고 할머니 같아요.

(야, 나한테 왜 그래? 많이 늙은 건 인정하는데. 할머니까진 아니라고. ㅠㅠ

눈가 주름은 20대 때부터 있었다고)



# 경기도 모 어린이집


연이어 세 반의 수업을 하는데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아직 다 모이질 않았고, 목은 아프고, 교실에 귤이 있기에 하나 얻어서 먹고 있었지요.

한 녀석이, 아 나도 귤 먹고 싶다. 귤 먹고 싶은데. (얘네들은 이미 다 먹었음)

요 덩달이 녀석들, 나도 먹고 시푸다, 나도 귤 먹고 시푸다, 단체 행동을 합니다.

"선생님이 사실은 귤이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고 목이 아파서 먹는 거야. 노래 많이 했잖아."

(라고 시작하는 게 아니었지)

아, 나도 목 아픈데. (갑자기 목을 감싸 쥐고) 콜록콜록 콜록콜록, 나도 목 아파요.

(여기저기서 기침 하고, 목 아파요, 목 아파요, 난리가 났음)

"선생님은 아뜰반, 해뜰반에서 노래 많이 하고 왔잖아. 그래서 목이 아픈 거야."

지난번에 나도 캔디 키즈카페에서 노래 많이 해서 목 아팠는데. 나도 귤 먹고 싶은데.

(또 여기저기서 노래 많이 해서 목 아픈 간증하느라 난리 났음)

백성들의 원성이 그치질 않아 수업을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잘못 했지! 암만, 너네들님 앞에서 귤을 처먹은 내가 잘못이지)





수업 마치며 굿바이송을 부르고 나면 앞으로 튀어나와 다리를 붙들고

선생님, 가지 마요. 가지 마요. 가지 마요.

이러고 다 마치고 어린이집을 나설 때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이렇게 많다니! 내가 이렇게 좋은 사람이라니! 싶어집니다. 진짭니다.

다섯 살들의 세리머니에....... 그것참, 자존감이 향상된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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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도 염색을 했다.

30대 초반부터 새치(면 어떻고 흰머리면 어떠냐)가 나기 시작했다.

나보다 어린 주제에 동안이기까지! 이런 남편이 신경 쓰여서 부지런히 염색한다.

일 년에 한두 번 퍼머를 위해 미용실 가는 돈과 (특히) 시간이 아까워서 어쩔 줄 모르겠는 나.

염색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미용실에 갈 수 없다. 집에서 한다.

그리하여 자세히 보면 헤어 컬러의 불규칙적 그러데이션이 장난 없음이다.

괜찮다. 마주 앉은 사람에게 흰머리로 충격 주지 않는 정도만 유지하고 싶다.


언젠간 염색을 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 엄마가 어느 때부턴가 염색을 하지 않아 백발인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건 순진 무궁 천진 난폭에

아는 건 하나님과 기도 밲이는 없는 엄마라서 백발의 청순함이 더욱 사랑스럽다.


물론 내가 선망하는 백발의 아름다움은 우리 엄마 같은 순백의 천진미는 아니다.

그렇다고 숏컷의 백발, 오직 자기확신의 확고함으로 다가오는 어떤 후배의 유아독존식 백발도 아니다.

아주 그냥 자연스러운데 살짝 지적으로 보이는, 조금 배운 할머니 같은 백발이다.

마주하는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 것 같으면

'그렇다고 노인네는 아니야, 안심해' 이런 뜻을 담아 한 두 가닥만 잡아 화려한 색으로 브릿지를 넣어도 좋으리.


오늘은 '은발'의 여자 사람 인생 선배님 한 분을 뵈었다.

평생 가르침의 방법을 연구하고 가르치신 분인데

'아, 방법이나 기술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제가 평생 연구하고 가르친 것이긴 한데

중요한 건 성품에요. 내가 그동안 가르쳤던 것이 뭔가 싶어요'

라고 말씀하셔서 뭉클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은발의 여자 사람 인생 선배님 뒤로 날씨가 배경화면을 만들어댔다.

흐림으로 시작한 하늘에 갑자기 청명함이 들이닥쳤고, 시시각각 구름 그림자를 바꾸어댔다.

조명이 바뀌면서 은발의 명도는 형언 불가의 그러데이션을 만들었다.


마침 그런 생각이 나를 이끌어가는 중이었다.

(생각이 나를 이끌어갔다고 말했다. 내가 생각했다고 하지 않았다. 분명히!)

연애도, 결혼도, 부모 됨도, 관계도, 신앙도,

내가 맺는 모든 관계의 질은 나 자신과 맺는 관계를 비춰주는 것뿐이다!

이런 생각에 더욱 확고히 이끌리는 중이었다.

은발 선생님은 '의사소통은 기술이 아니라 결국 성품이에요'라고 표현하셨을 뿐이고.


그런 맥락에서 나는 불필요한 염려 같은 것들의 씨를 말리는 중이었다.

방법이나 기술로 되는 게 아니니 애쓴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다독다독.

타자 안의 나, 타인의 눈에 비친 내가 아니라 내 안의 낯선 타자에게나 신경 쓰자.  

게다가 이 은발 선생님께서 쓰신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뜻은 말이 아니다. 많이 떠들어봐야 소용없다. 인간은 듣고 싶은 것, 들을 수 있는 것만 듣기 때문이다.

뜻은 좋지만 말이 틀리면 전달되지 않는다. 무엇이 틀린 말인가? 듣지 않고 들리지 않는 말이 틀린 말이다."


이 부분을 인용하여 내게 책을 소개해주신 또 다른 지혜자는 이런 설명을 덧붙이셨었다.


진정성은 타자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로 향하는 진정성이어야 한다.

나에게 진정성이 있어야 그것이 타자를 향해 발현되는 것이다.

우리는 나의 진정성은 의심할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타자에게 나의 진정성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먼저 나의 진정성을 물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것은 현상적으로 타인에게 드러난다.

나에 대해 사색하고 나를 물어야 진정한 태도가 된다. 내가 피력하는 내 진정성이 과연 진정성인가?


언젠가 은발을 할 수 있다면 그 흰 머리칼들이 부는 바람에 마구 흩날렸으면 좋겠다.  

가볍게 흩날리고 흐트러지는 백발에서 샴푸향과 함께 티 나지 않는 진정성이 폴폴 날렸으면.

햇볕 아래 고요히 앉아 있어도 충분히 쾌활하고 다채로운 노년의 성품이었으면.  

무엇보다 아주 다루기 쉬운 할머니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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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은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내륙교통의 중심지' 이런 내용으로 배웠던 교과서 속 도시였다. 민이네가 사역지 따라 제천에 내려간 지 벌써 14년. 교과서 속 제천은 모르겠고, 일 년에 한 번씩은 찾는 정겨운 곳에 되었다. 여름에 수영복이랑 튜브 챙겨서 채윤이, 현승이, 의진이까지 한 차 가득 타고 내려갔던 시절도 있었다. 민이, 챈, 현승이가 계곡에서 물총 쏘면서 놀 때 의진이는 유모차에 앉아서 쮸쮸를 먹었다. 의진맘에게 '언제 키우냐, 언제 키우냐' 했는데 그 녀석 의진이가 내 키만큼 컸다. 오십도 안 됐는데 자꾸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얘기를 하게 된다. 암튼, 요 몇 년은 애들 다 떼놓고 의진맘과 둘이 홀가분하게 제천행이다.


차 뒷좌석을 트렁크 삼아 꽉꽉 채워서 챙겨왔다. 과수원에서 직접 산 사과박스, 김치 한 통, 호박잎, 호박, 고추, 밤, 파, 방울토마토(이렇게나 많았나?ㅎㅎㅎ). 의진맘과 이구동성으로 '친정집 왔다 가네. 친정집이네' 했다. 20여 년 전에 자주색 가죽 자켓에 부츠컷 청바지에 (앵클부츠를 신었던가? 아닌가?) 긴 생머리 휘날리며 스타일 나던 민맘의 모습이 기억 속에 또렷하다. 우리 셋 중에 제일 스타일리시 했었지. 아마. ㅎㅎ 그 민맘이 오늘은 우리의 친정엄마가 되었다. 오가는 시간이 얼굴 마주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길지만, 그래서 늘 아쉽지만.... 민맘 의진맘 둘 다 오래 운전하는 나를 걱정하지만.... 아닌게 아니라 막히는 강변북로 혼자 돌아오는 길, 무지하게 피곤하고 졸음도 살살 오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이다. 뒷좌석에 떡 버티고 있는 저 맛있는 김치 한 통을 생각하면 힘이 불끈이다.


친정집에 다녀오는 느낌. 그 느낌 아니까. 헌데 '친정집 왔다 가는 것 같다' 라고 말할 때의 그 '친정'집을 진정으로 가진 여자가 있을까? 몇이나 있을까? 나도 친정이 있다. 그 친정은 생의 마지막날을 기다리는 아슬아슬한 엄마, 아기가 된 엄마가 계신 곳이라 늘 뭘 가져가야 하는 곳이다. '야이, 가루분이 떨어졌다' 하면 가루분을 사가야 하고, '요좀이는 호박죽 밲이는 못 먹어' 하면 호박죽을 사가야 하고. 친정집은 가서 속을 풀고 오거나, 바리바리 싸오는 곳이 아니다. 나는 엄마가 너무 늙어서 그렇다 치자. 어떤 친정집에는 부모님 사이가 안 좋아서,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부모님의 성격 때문에.... 가서 맘 편히 쉴 곳이 아니다. 무엇을 풍성히 싸보낼 만큼의 친정은 흔하지 않다. '친정집 왔다 가는 것 같다'의 '친정'은 현실의 친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 속 친정, 원형적 친정이다. 모두 고향을 그리지만 정작 현실의 고향이란, 가봐야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 또는 가족간 갈등으로 생각하기도 싫은 곳인 경우처럼 말이다.


민맘도 의진맘도 나도 그런 의미의 친정은 없다. 아무 걱정 없이, 아픔 없이 친정을 떠올리며 천진난만하게 엄마의 창고를 털어올 수 있는 그런 친정.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약간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렇게 서로 서로 친정이 되어주는 거지, 생각하니 눈물이 한 방울이 똑 떨어진다. 20대, 이름 붙이기도 어려운 방황의 시절 답십리의 (당시) 민맘의 자취방 생각이 문득 났다. 토스터기를 새로 사서 거기에 식빵을 구워 먹었던 생각도 툭 튀어 올랐다. 그 시절에도 뭔가 고향이 없는 느낌으로 쓸쓸하고 그랬었던 것 같다. 썩 잘 풀리지 않는 결혼 같은 문제를 놓고 막막한 마음을 막연하게 나누었던 기억도. 어디 내놓을 수 없는 지질한 내 속을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때는 그때대로 우리들의 친정이었다.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고 제천 사과를 까먹으며 채윤이와 수다를 떨었는데 어느 새 채윤이 키보드 앞에 가서 딩가딩가 연주를 하였다. 듣자하니 흘러간 CCM을 쳐댄다. '엄마, 와서 노래해'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선곡 리스트를 보니 영락없는 콜링이다. 채윤이 옆에 가 한 곡 두 곡 넘기다, 어쩌다 '주님을 따르리'를 부르게 되었다.  20여 년 전, 어느 추수감사절에 교회 찬양제에서 청년부가 불렀던 곡이다. 민맘도 의진맘도 채윤이 아빠도 함께 했던 찬양이다. '주님을 따르리 내 십자가 지고 주 따르리' 뭣도 모르고 잘도 불렀다. 돌아보면 지난 20여 년, 셋 다 각자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왔다. 그 길이 주님을 따른 길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기만의 십자가를 지고 고군분투 해온 것은 분명하다.  


각자의 십자가를 서로 안타깝게 바라보고, 기도해주고, 마음을 나누기도 했는데. 딱히 우리의 기도가 응답된 것도 없다. 여전히 각자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했고, 살아가고 있다. 생각해보니 능력도 크신 분이 참말로 사소한 것 하나를 안 들어주시고.... 하나님, 참 섭섭하다. 그래도 먹을대로 먹은 나이 때문인지 반항할 힘도 없고, 내 소견이 코딱지만 한 것도 알만큼 아는 터라, 본의 아닌 '내려놓음'이다. 각자 몫에 태인 십자가, 뉘게나 있는 십자가, 이렇듯 지고 끝가지 가는 것이구나 싶기도 하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들이 되는 건가? 여하튼, 딱히 비빌 언덕이 없는 흙수저 셋이 5년 후에는 스페인 여행을 가겠노라 꿈을 꾼다. 모든 사람에겐 고향이 필요하다. 모든 여자에겐 친정이 필요하다. 비빌 친정이 없는 친구끼리 서로 친정이 되어주고, 마음의 고향이 되어야 한다. 오늘 내 친구가 나의 친정이 되어준 것처럼, 나도 때로 친구의 친정이 되고, 세상 곳곳에 더 많은 친정과 고향이 생겨야 한다. 그리하여 결론은.... 넘나 맛있는 김치 한 통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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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이리 와봐라. 너 이거 한 번 입어봐.

느이 대전 언니가 사왔는디 너머(너무) 이쁜디 나는 옷이 많잖어.

낼 모리믄(모레면) 죽을 사람이 무신 새옷을 입겄어.

지금 있는 옷두 다 못 입고 죽어.

이거 니가 입어라. 한 번 입어라봐. 나는 옷이 많여.


90대 여자사람의 너머너머 이쁜 옷을 아직 40대인 내게 자꾸 입히려고 한다.

한두 번이 아니다.

당하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엄마, 나도 옷이 많어. 채윤이 입으라고 해.


10대 채윤이 당황하신다.


그려? 그럼 울애기 한 번 입어봐. 대전 외숙모가 이쁜 옷을 잘 골라.

이봐, 이뿌잖여. 채윤아, 니가 한 번 입어봐.

할머니는 옷이 많여. 지금 있는 옷도 다 못 입고 죽어.


10대 채윤이가 40대 엄마에게 눈빛 레이저를 쏘고.

눈으로 묻는다. 진짜 입어?

눈으로 대답한다. 당연하지! 하하.

할머니 마음 저버릴 수 없는 채윤이가 90대 할머니의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는다.


엄마, 삼촌, 외숙모.

다같이  폭발적인 반응.

와~ 채윤이 잘 어울린다. 꽃친 갈 때 입어.

(아빠는 한 걸음 뒤에서 소리 없이 콧구멍만 벌렁벌렁)


얼라, 우리 채윤이한티 딱 맞네. 니가 갖다 입어라

거봐. 이뿐잖여. 우리 채윤이가 기드락진혀서(길어서) 역시 이쁘구만.

야야, 이건 신실이가 입어라. 이건 니가 입어.


결국 40대 신실이도 90대의 옷 인심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리고 천진난폭 돌직구도 피하지 못했다.


이~이(아~), 우리 채윤이가 기드락진혀서 이뿌지.

너는 짤뚱혀서 벼랑( 별로) 안 이쁘구만.


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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