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이켜보며 사랑성장을 체험했던 기억(좋았던 때든지 어려웠던 때든지)을 돌아보십시오. 내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성장하도록 도와준 사람을 떠올려보고 나눠보겠습니다."

 

에니어그램 집단여정 중에 나눔을 위해 던지는 질문 중 하나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혼자'라는 외로움에 자주 빠져들곤 하지만 대개는 결정적인 사람 한 둘은 가지고 있다. 상황이 좋을 때 함께 했던 사람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지금 지속되는 만남일 수도, 과거의 만남일 수도 있다. 이 질문을 던지며 내가 기대하는 바는 자신의 인생여정에서 '사랑'의 흔적을 찾게 되는 것이다. 상처만 받고 살았다고 여기지만 잘 생각해보면 받아들여진 경험이 있다.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예외없이 바로 그 사람을 떠올린다. 그리고 한 사람씩 그 이야기를 나눌 때면 절로 가슴이 뭉클해진다. 뭉클하여 울컥하다 또 다른 질문에 다다르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인 적이 있는가?' 그리고 소망한다.'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

 

사랑을 일깨워줬던 그 사람들을 찾아 일일이 인터뷰 해보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수혜자와 수여자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랑을 받았다고 사람은 기억하는데 대개 준 사람은 '내가 그때 그런 말을 했어? 기억이 잘 안나는 거 보니 깊이 생각했던 것 같진 않은데... 내가 그때 밥을 사줬어?'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번 세미나에선 함께 참석한 두 분이 저 대사를 딱 읊어주셨다. 이 질문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이다. 사랑은 받는 사람이 '사랑'으로 느껴야 사랑이다. 준 사람이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라고 울부짖어 봐야 소용이 없다. 대체로 '어떻게 해줬는데!!!!' 하며 준 것들은 공포의 배려이기 마련이다. 사랑과 배려로 '통제'하겠다는 (본인도 모르는) 불순물이 섞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자연스럽게 흘러 넘쳐서 가 닿는 것이지 쥐어 짜내서 주는 것일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온전히 자기 자신일 때의 이타심, 또는 융의 '자발적 희생' 원형에 대한 지상 강의를 늘어놓고 싶으나 일단 꾹 참고!)

 

글이나 강의, 대화를 통해 남다른 통찰력을 발휘하고 싶었고, 그것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말겠다는 꿈(도 야무져!)이 있었다. 그 꿈에 대한 집착이 클수록 불안했다. 누가 나보다 더 통찰력 있는 강의를 하나, 글을 쓰나 이글거리는 경쟁심과 질투로 혼자 가슴앓이를 하기도 했다(한다). 집착인데, 집착인 줄 아는데 잘 내려놓지 못했었다(못하고 있다). 다행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어 야무진 꿈은 자주 아작나고 있다. 강의든 글이든 상담이든 사랑이든 그렇게 힘이 빡 들어간 채로 제공하는 것은 자기만족일 뿐이라는 것을 아프게 배우는 중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선생이 되고 싶은 욕망은 은밀히 꿈틀댄다. 사랑이든, 가르침이든 내 그릇에 가득차서 넘쳐 흘러 넘치는 것만이 진정한 영향력이 될 수 있다고 내 입으로 강의하면서 내 마음은 그 반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억압된 욕망은 과도한 자기비판의 칼날로 대체되어 이중 삼중으로 나를 괴롭힌다. '나만이 답을 알고 있는 태도로 강의한  건 아닐까. 내가 말하는 것을 다 살아내고 있는 체 하지는 않았나' '적게 듣고 많이 말한 것은 아닐까. 들어주면 될 것을, 너무 가르친 것은 아닌가' '고도의 교만을 겸손과 솔직함으로 위장하는 글재주를 부리는 것은 아닐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날 건져내랴.  

 

지나친 겸손도 아니고 과도한 자기확신도 아닌 절묘하여 아름다운 지점에 설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 금요일 우리 동네를 경유해서 출퇴근 하는 D와 아예 동네 주민인 Y가 지나가 들른 느낌으로 집에 왔다. 얘들이 손에 뭘 하나 씩 들고 왔다. 떡볶이 앞에 놓고 수다수다를 했다. 돌아가고 나서 들고 온 예쁜 꽃바구니를 들여다보다 생각하니 작년 이맘 때도 만나서 꽃다발을 받았었다. 아, 얘들이 스승의 날을 생각하고 온 거구나. 작년에도 올해도 우연히 그냥 놀러온 게 아니었구나. 선생이고픈 욕망을 용케도 잘 누르고 있는데 떡하니 받은 꽃바구니에 대놓고 뭉클했다. 마주앉아 수다를 떨다보니 몇 년 전 주일 파리바게뜨에서 딱 이 멤버로 앉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요원한, 또는 어려운 연애 얘길 했었다. 허허. 어느 새 그녀들은 예비엄마, 예비신부가 되어 있다. 어쩌다 이젠 아이를 키우는 얘기를 하염없이 늘어 놓았다. 역시나 가르치는 영이 충만한 나는 (게다가 기분까지 들떠서) 적게 듣고 많이 주절거렸다. 몇 년 전 파리바게뜨에서 커피를 마시던 날 우리가 우연히 만났었단다. 둘이 걸어가는데 내가 차 타고 지나가다 '야, 타!' 했단다. 그런 거다. 애쓰지 않고 만나고 그렇게 만나서는 그때 그때 살아가는 얘기를 하는 거다. 만남의 기회가 주어질 때 반갑게 마음을 나누는 거다. 그게 가르침이고 배움이고 사랑이다. 암튼, 고맙다.

 

(질투의 댓글이 달리지 않을까, 은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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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 <오우연애>는 '내 책 내는 거 맞찌? 내 이름의 책이 나오는 거 진짜 맞찌?' 황홀함에 들떠서 뭐가 뭔지 모르는 채로 허둥대다보니 나와 있었다. 두 번째 책 <와우결혼>을 내기 위해서 만난 편집자 L 님의 첫 메일을 받고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길지도 않은 인사 메일이었다. 사람에 대한 촉이 필요 이상으로 발달한 나, 정신실이 아닌가.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 의존적이기 때문에 누구와 만나서 대화하고 일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는 나다. 첫 메일에서 프로의 냄새를 맡았다. 적응력도 있는 나는 프로 편집자님께 프로 저자가 되기로 정해버렸다. 이것은 1층에 있던 저자가 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타는 순간이었다.


메일을 보아하니 디게 깐깐한 분이다. 오타는 애교, 맞춤법 틀리는 건 살짝 부끄러운 거~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쓰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신경 안 쓴 척, 원래 꼼꼼한 척 깨알 같은 답신을 썼다. 그렇게 긴장한 상태로 얼마 후에 출판사에 가서 대면했는데... 뭐야? 왤케 부드러우심? 그 부드러움은 다름 아닌 저자에 대한 존중의 태도였다. 그 존중의 태도는 다름 아닌 책을 편집하면서 저자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겠다는 의지였다. 아, 그냥 완벽주의 편집자가 아니구나,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와우결혼>을 만들면서 L 님의 완벽주의는 수시로 확인이 되었지만, 나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설렁설렁 하려는 내 태도를 돌아보며 컴터 앞에 앉은 내 태도를 고쳐 앉게 하였다.


나는 오랜 기간 내가 수더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까칠하고 예민하다는 평에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고 싶어 했다. 까칠함이 나쁜 것이라고(엄마가 늘 말했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다 오타가 나는 것도 '에이, 뭐 그런 거지. 오타도 보이고 그래야 인간적이지' 하곤 했다. 내가 까칠하지 않다는 것을 그런 것으로 증명하려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와우결혼>을 만들며 교정본을 받고 다시 보내고 하는 과정에서 오타와 비문, 정확한 인용에 대해서 화들짝 눈을 뜬 면이 있다. (또 다른 전문가적 완벽주의자 남편과 함께 한 작업인 탓도 있다.) 어쨌든  한 번도 내게 다그치지 않았지만, L님의 일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자랑인데, 내가 잘 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람에게 빨리 배우는 것이다. 내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심하게 부러워하면서 그 부러워하던 덕목을 배우고야 마는 그런 근성이 있다는 걸 요즘 깨닫고 있다. 헤헤) L님은 정말 내게 '와우~ 편집자님!'


그러나 어떤 면에서 <와우결혼>은 내게 결정적인 아쉬움을 남기고 세상에 나왔다. 그 아쉬움을 통해서 책이 나와서 마냥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수준이란 게 있구나'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수더분한 사람이 아니구나) 세 번째 책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은 L 님의 아내님의 손에 넘어갔다. 두 사람은 부부 편집단. <와우결혼> 출간 즈음에 결혼을 하셨으니 이건 또 무슨 즐거운 인연인가?  아무튼 에니어그램 책을 맡으신 아내 간사님 역시 일러스트를 찾는 것부터 내 기대치를 웃돈다. 아내 L 편집자님은 여자 김종필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우리 남편과 비슷한 캐릭터. 그래서 그런지 책을 만드는 과정이 물 흐르듯 졸졸졸이다. 그리고 책 패션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표지에 나의 '와우~ 편집자님'이 적극 참여하시며 짧은 저자 인생에서 얻은 작은 트라우마 하나를 치유해 주셨다. <커피 에니어그램>은 여러모로 내게 치유적인 책이 되었다.


토요일 저녁, 두 L 편집자님과 식사를 하고 커피를 나누고 풍성한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저 막연히 두 분의 편집자가 내게는 큰 선물이며 복이다, 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막연히 생각하고 있을 때는 희미하게 보였으나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니 그분들이 나를 알고 계시듯 나도 그분들을 알겠고, 선물이라 생각했던 심증은 확증이 되었다. 저자라고 누구나 좋은 편집자를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편집자를 만나서 내 마음이 한층 자라고 글에 대한 겸허함을 배우게 되었으니 복과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랴. 오늘 대화 중에 남편 L 편집자님이 던진 '게으름'이라는 화두가 긴 울림으로 가슴에 남는다. 어떤 소명의 자리로 부름 받은 사람,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자극에 둔감하고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게으름이고 '죄'다. '변화'는 늘 하던 것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어제의 방식을 부정하는 것이니 고통의 선택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자 한다면 변화는 있을 수 없고, 소명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게으름이고 동시에 죄이다.


네 번째 책, '육아'에 관련된 책을 준비하고 있다. 엄청난 양의 글을 선별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저자로서 얼마나 무책임했는지를 새삼스레 반성하게 된다. 저자의 무책임은 무책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편집자의 짐이 된다는 것도 이제는 분명히 알겠다. 느슨한 탈고를 하면서 구멍을 남기는 것이 인간적이라며 가볍게 굴었던 것도. 게다가 그런 걸 가지고 '나 까칠하지 않다니까' 합리화를 일삼았다. 저자와 편집자 관계에서 그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책임을 다하는 일이 늘 미끈하고 뽀대나는 일이 아니라 까칠해 보이고 주변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까칠함의 미덕을 새롭게 배운다. 저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까칠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착하단 소리 못 듣고, 잃고 가는 것이 많아지더라도 저자의 저자됨, 나의 나됨을 위해서 용기있게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이다. (실은 요즘 나의 까칠함에 대해서 인정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비난하는 내면의 목소리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원고 하나를 매만지면서 배신 때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를 더 빛내줄 출판사에서 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눈알을 굴리고 있었으나 회개하는 마음으로 한껏 치솟은 안압을 낮추기로 한다. 팔리는 책이 아니라 저자의 빛깔이 살아 있는 책을 만들려는 편집자,  저자를 빛나게 해  책 많이 팔기를 도모하지 않고 오히려 저자의 빛이 커져서 긴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 어떻게 책임을 나눠서 질까를 미리 고민하는 편집자가 있다. 그분이 내 편집자이다. 때문에 나의 글 선생님이기도 하다.


네 사람이 마주 앉았다. 까칠해서 더 좋은 편집자, 그 곁의 공평하며 중심 있는 짝지 편집자. 까칠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노라 결심한 저자, 그 곁의 공평하며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짝지 남편(이며 약간은 저자)과 대화가 무르익어가는데 대~애박, 창밖으로 무지개가 떴다. 갑자기 나타난 무지개를 보며 탄성을 지르게 되는 것처럼 삶은 갑작스런 만남으로 인해, 그로 인한 인한 깨달음을 통해 깊은 탄성을 지르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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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샘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시36:9)


어느 새 한솔이 3주기가 되었다.
작년에 와서 심어놓은 꽃들이 다시 피어있어 반갑고 신기하다.
올핸 활짝 핀 수국을 한솔이 옆에 나란히 심어주었다.

문득 한영교회 아이들 생각이 많이 난다. 
한솔이의 고통을 나누어 가지고파  함께 울며 기도하던,
한솔이 형, 한솔이 오빠의 생명을 붙들기 위해 누구보다 뜨겁게 기도하던,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노래하며 지낸 한솔이의  마지막 나날을 들었던,

눈물로 떠나보내면서 새로운 삶을 다짐했던,


그 TNTer들.
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명의 샘에 잇대어 생명을 소중히 가꾸며 살고 있을까?


한솔이를 만나고 올라오며 우리 모두의 생명의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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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수 이금미 부부가 파릇한 신혼일 때 매주 한 번씩 '가정교회'로 만나 밥을 먹고 일상을 나눴었습니다. 우리 둘째 현승이가 생애 처음 그린 그림(또는 멋대로 그은 선 몇 개)을 보고 뭘 그린 거냐 물으니 "이슈삼츈"이라고 했더랬지요. 여섯 살이던 큰 애 채윤이는 이슈삼촌 성대모사를 제대로 했었죠. "워우~ 종피리형!" 엠티 가서 각 부부 첫키스 얘기 들으며 뒹굴며 웃던 그 밤도 생각납니다. 아, 이슈삼촌이 '와이프, 와이프' 하는 소릴 듣고 채윤인 "엄마, 나 나중에 커서 수민이의 와.이.퍼가 될래" 이러면서 어록을 남기기도 했었네요.


일본에서 선교하시다 오랜만에 들어오셨는데 제 강의를 들으러 와주셨고, 장소가 마침 우리 교회 사회봉사관이었던 덕에 넷이 이렇게 기념사진 남겼어요. 두 가정 다 그 시절로선 상상하지 못했던 자리에 와 있네요. 돋보기 들이대고 보면 두려움과 기대, 눈물 또는 기쁨으로 굴곡진 몇 년이었지만 이렇게 만나 돌이켜보니 은총의 손길이 변함 없이 함께 하셨구나. 싶어 뭉클합니다.


반가웠어요. 몸은 멀리 있지만 함께 밥 먹고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찬양하던 그때처럼 마음만은 함께 해요. 네팔에 있는 진태훈, 오윤선 부부도 많이 보고싶어지네요.

 

오랜된 앨범 폴더에서 찾았네요.
현승이의 첫 그림, 이슈삼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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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여기서 쉬 싸는 사람이 누군 줄 알어?
야, 얘들아~ 여기 움악션샘미 있어.
화장실 문 앞에 팬들이 모여 있어서 나갈 수도 안 나갈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 아시는가?
일주일에 한 번 믿어지지 않을 세상에 들어갔다 나온다.
4,5세 아기들의 음악 수업인데,
뜨거운 호응과 열렬한 지지에 자존감이 높아진 나 감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훔..... 이제 내 경쟁상대는 뽀로로 뿐이군. 







새해 첫 수업일에는 의도적으로 이런 헬로송을 부른다.
안녕 안녕 안녕 안녕 즐거운 음악시간, 안녕 네 살 꼬뜰반~
물론 네 살에 액센트 넣어준다.
그러면 '안녕 선생님' 대답하려다 말고 애들이 눈에 확 불이 붙어가지고,
다셧 쌸이예요. 시현이 다셨 쌸이예요. 소율이 이렇게 이렇게 다셧 쌸예요.
손가락 다 펼쳐 보이고 난리도 아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런 표정 연기가 중요하다. 우막션샘미는 사실 여자 짐캐리였다.)
무슨 소리야. 니네 네 살인데. 니네 접때 네 살이었잖아. 하면

완전 목에 핏대 세우고,
아니예요~오. 다셧 쌸이예요. 이제 다셧 쌸 댔쎠요~오.
그래? 갑자기 왜 다섯 살이 됐어? 어떻게 다섯 살이 된 거야?
순간, 멍. '그러게, 내가 왜 갑자기 다섯 살이 됐지?' 하는 표정
(나이가 더 드신 애들은 바로 떡국 얘기가 나온다.)
그때 한 아이.
엄마가 이제부터 다섯 쌸이래요.
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머지 녀석들도
다시 피를 토하는 목소리로,
엄마가 다셧 쌀이라고 했어요~오. 우리 엄마가 나 이제 다섯 쌸이래요.
그 와중에 한 녀석이벌떡 일어나 까치발을 들어보이며,
이봐요. 이렇게 키가 커져쎠요. 란다.

이런 순간, 내 몸 속에서 믿어지지 않을 양의 엔돌핀이 방출된다.
행복이나 기쁨이란 단어도 무색하다.
그저, 뭐 이렇게 귀엽고 말랑말랑한 세상이 있을까 싶다.



 

작년 마지막 주 수업에서는 색깔종 연주를 준비해 갔는데
수업을 시작하려니 종 하나가  없는 것이다.
주황색 종을 다른 요일에 치료하는 곳에 흘리고 온 것.
음이 하나 빠지면 당연 연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난감한이긴 했지만
20년 차 우막션샘미는 결코 당황하지는 않는다.
아~나, 어떡하지?
 약간 오버를 해주니 역시 아이들 반응이 뜨겁다.

왜요? 왜요?
아니, 너희 주황마녀 알아? 주황마녀가 선생님 주황색 종을 가져갔어.
그래서 우리가 오늘 종소리 울려라 연주를 할 수가 없어. 어떡하지?
이 한 마디에 의외로 아이들 몰입. 바로 뜨거운 리액션들이 나오는 바람에 
바로 '1인 즉흥 모노 동화'를 만들어서 열연을 했다. 

선생님이 주황마녀 집으로 가서 주황색 종을 찾아올 거야
.
그런데 사실 선생님 디게 무섭다. 주황마녀가 마술을 부릴 수도 있거든. 
이 지점에서 다시 아이들 흥분해서 나름의 필살기를 내놓는다.
내가 로봇을 빌려줄테니까 가져가서 싸워라. 발로 탁 차라. 칼로 찔러라... 기타 등등.


(이제 수업 돌입)
고마운데 다 필요없다. 선생님은 음악 선생님이라서 노래의 힘이 필요하다.
너희가 한 명 씩 노래를 아주 큰 소리를 불러주면 선생님한테 힘을 줄 수 있다.
그러면 힘을 받아가지고 선생님이 주황마녀를 찾아가 싸우고, 다음 주에 종을 찾아오겠다.
라면서 아이들 독창을 시켰다.
내향적이고 부끄럼이 많아서 절대 혼자 뭘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노래를 시킨다.
물론 일단 뒤로 뺀다.
"야, 그러면 음악 선생님이 힘이 없어서 주황마녀한테 질 지도 몰라."
우막션샘미를 지켜야한다는 의협심이 내향적 에너지를 이긴다.
일어나서 기타 반주에 무려 독창을 하는 아이! 꺄울!!!
다시 한 번 우막션샘미 몸에 엔돌핀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이렇게 수업은 예상치 못한 쾌거를 거두며 마친다.


엊그제 수업을 가서 어느 반에 들어 갔는데,
한 녀석이 내 발에 뽀뽀를 했다. 처음엔 뽀뽀를 했는지도 몰랐다.
한 번 더 뽀뽀를 하더니,
"좋아서요. 우막션새미가 좋아서 그래요."란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말랑한 영혼으로부터 우막션샘미 마음에 치유의 광선이 비춰졌다.


나, 이토록 믿을 수 없는 세상을 은밀히 드나들고 있다는 것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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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미용실이 하나 새로 생겼다. 내 또래의 말이 없는 여자분이  미용사인데 솜씨가 그럭저럭 괜찮다. 현승이 한 번 가고, 이후에 남편도 그곳으로 보내고 있다. 앞을 지날 때마다 들여다보게 되는데 거의 손님이 없다. 미용사분 혼자 조그만 난로 가까이에 손을 대고 불을 쬐며 TV를 보는 모습이 늘 똑같다. 아효, 오늘도 손님이 없네. 걱정을 하면 아이들이 엄마는 왜 그리 남의 집 장사에 신경을 써? 한다. 머리 잘 자르는데 장사 안 되서 문 닫을까봐 그러지. 라고 대답하고 만다.


그 옆에는 여름엔가 봄인가 오픈을 한 카페가 있다. 훈남 청년이 하는 건데 손쉽게 원두를 살 수 있어서 좋다. 블랜딩한 원두가 꽤 맛있었는데... 갈수록 조금 아니다 싶다. 동네 카페들과 달리 특별히 로스팅을 잘 하는 곳에서 원두를 받아온다고 했었다. 장사가 잘 안 되니까 단가가 낮은 원두로 바꾼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도 지날 때마다 들여다보게 되는 건 마찬가지다. 여름엔 장사가 좀 되더니 날이 추워지니 손님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왜 이리 신경을 쓰고 그래? 엄마~아! 하는 아이들에게 '생각을 해 봐. 사람들이 장사를 할 때는 준비도 많이 하고 돈도 많이 쓰며 시작한다구. 어쩌면 돈을 은행에서 빌렸을 지도 모르고, 가진 돈을 다 썼을 지도 몰라. 그러면서 얼마나 기대를 했겠어? 그런데 막상 손님은 없고 매일 저렇게 앉아 있으려면 정말 속상하겠잖아. 그러다 정말 문을 닫기라도 하면 희망이 무너지지 않겠냐? 그런 게 마음이 아파서 그래. 엄마도 카페 하고 싶어 하잖아. 엄마가 저렇게 되면 어떻게 하겠니? 마음이 아파.



그러다보니 아이들도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서 '엄마, 미용실에 사람 하나 있더라.' 하며 (지들이 되려) 신경을 쓰고 그런다. 지난 12월 28일. 채윤이는 그 미용실에서 방학 기념 매직 퍼머를 했다. 점심 때를 넘기고 있었다. 카페에서 라떼 한 잔과 코코아 한 잔을 사서 가져다 주었다. 괜히 뿌듯해진다. 늘 마음에 쓰이던 양쪽 집을 한 번에 챙긴 느낌. 그리고 채윤이를 미용실에 두고 현승이 손을 잡고 시청 앞 광장으로 향했다. 



 

별다른 일도 없고, 무력하고, 슬픈 성탄절을 보내고 난 후였다. 성탄절 이브에는 집에서 혼자 따뜻한 전기장판 켜고 낮잠을 잤다. 25일 성탄 예배에 가서는 정말 영혼의 잠을 자고만 싶었다. 이렇게 등 따시고 배부른 내가 더럽고 천한 마굿간에 오신 예수님을 어떻게 맞고 모실 수 있을까? 페북을 통해서 접하는 이웃의 탄식은 하늘에 닿아 있는데 참된 '안녕'은 천국에가 가야 이뤄지는 것, 여기서 아둥바둥 할 게 뭐 있냐며 그저 내 일신의 안위만 붙들고 사는 하루하루다. 무력해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으로 잠이나 처자고 싶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28일 시청 앞 집회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한 번 나가자 나가자 하면서도 남편 시간이 날 때를 기다린다는 핑계를 붙들고 있었는데 그저 가기로 했다. 하필 이 날은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잡혀가면 어떡하냐, 물대포 쏘면 어떡하냐며 엄마 가지마 가지마 하는 현승이를 설득해서 손잡고 나갔다. 얼마 전 새로 사귄 형아를 만날 수 있다고 꼬셨다. 시청역 출구에서부터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잠시 일행을 잃고, 추위에 동동거리고.... 그러다 빠져나와 일행과 함께 코코아 한 잔 하고 돌아온 것이 전부이다.

 

 


 

 


현승이가 '나는 안 갈 거야. 엄마도 가지 마. 잡혀가면 어떡해?' 라며 걱정에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채윤이가 그랬다. '현승아, 엄마랑 같이 가. 안 잡혀가. 그리고 가면 재밌어. 누나도 깁스만 안 했으면 가고 싶어.' 현승이가 겁이 많고 기질적으로 새로운 자극에 대해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탓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문득 채윤이랑 했던 2004년 광화문 촛불집회가 생각났다. 채윤인 그 경험을 아주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것 역시 채윤이 기질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그때와 다르다. 2004년의 광화문에는 기가 막히는 적반하장에 어이없는 한숨은 있었지만 이렇게나 절망적이지 않았다. 수십 년 뒤로 물러난
민주주의 시계를 감지하면 삼엄함에 압도될 수 밖에 없다.

 

 


2002년은 현승이를 가진 해이다. 돌이켜보니 현승이를 품고 민주당 경선을 지켜보며 인생에서 흔히 경험할 수 없는 감동과 희망을 경험했다. 임산부의 몸으로 한 끼 금식기도를 하기도 했다. 문성근씨의 연설을 들으며 남편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대선 당일, TV가 없어서 친구 집에서 대선 개표방송을 보고 당선 확정 결과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 추운 겨울 춥지가 않았다. 세 살 우리 채윤이가 앞서서 춤추며 걸어갔다. 내 마음도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말을 알아듣을 만큼 커서 그 시절을 보낸 채윤이에겐 시위도 즐거운 축제가 될 수 있었으니 '현승아, 괜찮아. 가. 가면 재밌어.'라고 말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끔 현승이가 가진 좋은 성품에 깜짝 놀라 때가 있다. 어쩌면 이렇게 마음결이 고울까? 특별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2002년 대선과 함께 한 그 드라마 같은 경험이 정말 좋은 태교가 되었겠다. 그랬겠다. 시편의 기자가 그렇게나 목놓아 하나님께 울부짖는 것이 왜 악인이 잘 되고 의인이 고통받습니까? 정의가 어디 있습니까? 정직한 사람은 왜 늘 약자이고 폭압 아래 있어야 합니까? 어찌 악인은 높아지고 승리합니까? 이다. 몇 천 년 후를 사는 나 역시 그렇게 하나님께 묻고 싶다. 그런데 2002 그때. 힘없고 빽없고 정직한 정의가 이길 수 있구나를 경험한 것이다. 그 기막힌 경험을 하는 엄마의 몸 속에서 나온 좋은 에너지가 어찌 현승이 성품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동생이 살고 있는 집이 매매가 되어 본의 아니게 이사를 해야할 상황이었다. 우리집 역시 계약기간이 끝나서 대출이 늘어나는 것으로 결론이 난지 얼마 안 됐다. 엄마랑 동생네 걱정을 하며 얘기하다 "엄마, 우리 나라에서 집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성실하게
절약하고 착하게 살아도 2년만 지나면 그냥 빚이 늘어'나. 그런 세상이야." 했더니 공감을 하시며 "그르니께 애들 잘 켜(키워), 공부 잘 혀서 성공허라고 혀." 라고 하셨다. 90 노모 앞에 무슨 말 할 수 있을까. 헛웃음을 웃으며 알았다고 했다.


두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 안녕이라는 고지를 점령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 오시기 전까지 안녕하지 못할 이 세상에서 안녕하지 못한 자리를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사람으로 말이다. 무엇보다  천국을 진짜로 믿고 사는 사람, 하필 가장 더럽고 천한 마굿간으로 오셨다 가신 예수님을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고 따라가는 사람. 이웃의 안녕하지 못함을 담보한 나의 안녕과 부와 힘은 허상일 뿐인 샬롬이다. 앞으로도 할 수 있다면 더 자주 아이들과 함께 현장에 가려고 한다. 이 아이들에게만은 더 좋은 세상을 물려줘야 한다거나,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서도 아니다. 역사가 지속되는 한 늘 안녕하지 못할 세상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를 가르쳐주고 싶다. 안녕하지 못한 이웃의 곁,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자리가 예수님 자리 아닌가.


결코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닌 동네 미용실과 카페와 동생네와 우리네의 불안한 일상. 내 이웃의 안녕과 우리의 불안한 일상. 때로 기막힌 절망의 일상. 마라나타를 저절로 되뇌이게 되지만 그 주님이 이미 이 낮고 가난하고 빽 없는 사람들에게로 오셨었다. 그 자리를 애써 피하지 말고 내가 살면 되는 것이다. 그렇긴 한데..... 참으로 절절한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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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보다 세심한 편이 아니라서 때에 맞는 인사 챙기는 걸 하지 못합니다.
오늘은 하고 싶네요.^^


블로그에 찾아주시는 분들께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블로그로 인한 귀한 만남들이 많았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일상의 시덥잖은 얘기들을 끄적거리는데 찾아와 읽어주시고,
웃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이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숨어계신 (하나님 아니고) 블로그 친구들이 꽤 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올리고 댓글 하나 달리지 않아도 마음이 따뜻합니다.
보이지 않는 댓글들을 저는 보니까요.^^


무엇보다 여기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니까요.
드러낸 제 일상과 마음에 대해 공격도 없고,
방어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오랜 세월 확인했지요.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것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2000 포스팅이 되는 이 블로그의 기록인 것 같아요. 단지 기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따스한 분들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말이지요.
늘 감사했지만 올해 더욱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는 댓글이 보이듯 눈팅만 하고 가시는 얼굴도 모르는 여러분의 마음까지
따스함으로 읽어버리겠습니다.
송구영신의 시간, 의미있고 재미있게 보내시고.
날이 갈수록 더욱 안전한 곳에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요.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 주변이 더욱 안전한 곳이 되기를요.


사진은 올해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태평양을 건너가 강의를 하고, 시카고 거리를 누비고 다녔던 시간입니다.
늘 그러하듯,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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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의 감옥에 갇혀 어둠의 시간을 보낼 때,
힘들지만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는 것보다,
아이의 눈이 얼마나 천사같으냐며 생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보다,
빵터지는 웃음으로 힘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하는 실수 같은 것들에 그저 한 번 웃는 것 말이죠.
유머가 육아에 찌든 엄마를 가끔씩 구원하지요.
아이처럼 귀여운 구석은 없으면서 손이 가기로는 아이 못지 않은 노모.
노모를 모시는 우리 올케 선영이는 유머를 건져올리는 눈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좀 덜 미안해지고, 무엇보다 고맙고 그렇지요.
올케가 페북에 올린 엄마 이야기 옮겨왔습니다.

 

 


3대 거짓말 하면,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
노인이 빨리 죽어야지 하는 말.
장사하는 사람이 밑지고 판다는 말.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
"빨리 죽어야지."
"내가 오래 살아서 니들이 고상(고생)이 많다."

지난 달, 내가 어머니 가을이불에서 겨울 솜이불로 바꿔 드리려고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
"야야, 허지마라. 나 얼마 못 산다니께. 겨울까지 안 가."

좀전에 우현이가 발로 찬 탱탱볼이 방 문을 열고 나오시는 어머니 몸에 맞았다.

(깜짝 놀라서 버럭하시며)
"이 놈아~ 나 죽을 뻔 봤잖여. 나 죽으면 어떻게 헐라고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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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고부간 이야기로 썰을 푼다해도 그다지 빠지진 않는다
.
보통의 며느리들이 겪은 '완전 어이 없는' 에피소드도 있고,
보통보다 센 쩌는 에피소드도 있다.


특별한 고부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어머님이 나를 며느리 이상으로 생각하시고,
나 역시 단지 시어머니로 어머니를 대해 오지는 않았다.
한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결심 하나로 오랜 시간 어머니와 관계 맺어왔다.
그러나 사랑이 늘 그렇듯 껌씹으면서 대충 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이 사랑할수록 아픈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사랑이 늘 그렇듯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변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기로 결심한 나 스스로에게 '자아확장'을 요구해야 하는 일이다. 
어머니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보아야했다.
두려움으로 했던 일들을 사랑이라 우기는 나 자신을 보았다.
내 몸 불사르도록 내어준다해도
사랑이 없으면 결국 '번 아웃' 되어 나가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보통의 고부간에 머물기보다 특별한 고부간으로 지내온 편이다.
'두려움'과 '자기의'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날이 많았지만 어머니를 사랑했다.
내 사랑이 어머니를 구할 줄 알고 애쓰고 노력했지만
결코 어머니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많이 좌절했다. 포기했다.


오늘 성탄절.
저녁식사 준비를 해서 어머니 댁에 다녀왔다.
어머닌 여전히 그러하시다.
외로움과 오래된 분노로 긴장된 그런 모습이다.

식사를 마치고 "내가 요즘 이걸 여러 번 읽고 외운다." 하시며 성경구절 하나를 꺼내셨다.
어머니의 상처 많은 과거를 돌아보나 지금을 떠올리나
이보다 더 적절한 말씀이 없는 듯하다. 
사실 어머님이 이 말씀을 가슴으로 알아들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피정도, 상담도 모시고 다녔다.
물론 크고 작은 신경과와 통증 클리닉, 한의원을 전전하던 시간은 더 길었었다. 
상담까지 모시고 가서는 "이젠 됐다. 답을 찾았다!" 했을 때, 그때 어머니가 돌아서셨다. 
내가 애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나 역시 손을 놓았었다.



"전에 성경 읽을 때는 보이지도 않았던 말씀인데 이게 이렇게 눈에 들어오냐."

하시는데 속에서 울컹울컹했다.
하나님께서 어머니가 잉태되시는 그때부터 노인이 되신 지금까지 안고 업고 계신다니까요.
그래요. 어머니. 그렇다니까요.


어머님도 어머님 방식대로 여전히 자라고 계신다.

어머님 방식대로 당신의 하나님을 만나가고 계시며,
그분의 사랑을 배워가고 계신다.
어머님도,
또 나도,
그도,
그녀도,
각자 나름대로 사랑의 여정을 걷고 있다.
진정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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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볕 / 박노해


가을볕이 너무 좋아

고추를 따서 말린다.

흙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물기를 여의며 투명한 속을 비추고.

높푸른 하늘에 내걸린 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며 눈부시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






어제 가을볕에 좋은 분들과 하루 종일 산길, 강둑, 들길을 걸었습니다.
오래 묵은 마음의 돌멩이들이 사라진 느낌으로 기분 좋은 아침입니다. 

마음껏 까불고 와서 그런지 뭔가 불편한 것들을 덜어낸 느낌으로 마음이 가볍습니다.
좋은 분들,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진은 위는 김종필님, 아래는 김동원선생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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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북한 방문기 제목이 <사람이 살고 있었네>였다. 어떤 곳이라도 그곳이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일단 안심이다. 헌데 요즘은 밤길에 제일 무서운 것이 사람이니, '사람'이라고 다 내게 '사람'이 아니기도 한 것이다. 코스타를 통해서 내게 와 의미가 된, 그 의미가 더욱 새로와진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두드리는 변죽이다.


페이스북에서 사진으로 몇 번 봤던 이수진 씨다. 황병구 본부장님의 부인이다. <와우 결혼>의 추천사를 부부가 함께 써 준 인연으로 페이스북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이 분이 코스타에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출국 비행기도 같았다. 어릴 적 같지 않고 많이 까다로워지고 편협해져서 계속 갈 사람, 여기서 보면 됐고! 할 사람이 금방 알아차려 진다. 도착한 날 저녁 시간부터 오랜 친구처럼 얘기가 통하는 게 감이 참 좋았다. 언젠가부터 내 또래 아줌마를 만나서 사는 얘기, 애들 키우는 얘기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줌마들 얘기를 주로 지켜보는 방식이고, 가끔 '너는 어떠냐?'하고 물어서 내 얘기를 조금만 꺼내도 '참 이상한 아줌마다' 하는 눈빛이 돌아오기가 일쑤라서 말이다. 이 아줌마도 어디 가면 나 같겠구나. 싶어서 한 번에 깊은 마음속 문까지 열렸나 보다.


보기보다 낯을 많이 가려서 강사들과 덥석덥석 인사하고 말을 걸지도 못했으니 수진 씨 아니었으면 꽤 외로웠을 뻔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상담으로 바빠져서 긴 수다를 떨지 못했어도 어느새 '언니 동생' 되어 오래 사귀어 온 사람처럼 편안해졌다. 이 어여쁜 아줌마에 관한 이야기는 다시 만나 나눌 얘기도 많고, 블로그에 풀어놓을 썰도 많다.
 

 

 

애써 거부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한영교회를 떠나오면서 남편이 청년들에게 그랬다. '될 수 있으면 1년 동안은 연락하지 말아라. 새로운 목사님과 좋은 관계 만들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다시 연락해라' 나 역시 한영교회 아이들과는 정을 떼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이나 나나 그렇게 가슴을 열고 만나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싶다. 3년간의 목회자가 아니라 오랜 선배이고 큰오빠 큰언니 정체성이 그들과 우리 사이에 있었지 않나 싶다. 애써 찾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연스러운 만남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보고 싶을 때 찾아오면 만나고, 말 못 할 고민이 있어 연락이 반갑게 맞는다. 그런 의미에서 TNTer들과의 사랑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아니, 어떤 사랑이 물리적인 거리로 끊어질 수 있단 말인가.

1년간 어학연수를 가 있는 정윤이가 코스타에 참석했다. 1,000여 명의 사람들 중에서 그의 지난날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기쁨이란! 오가며 캠퍼스에서 자주 마주치는 정윤이는 익숙함이란 느낌을 일깨워 주었다. 익숙함이란 안정감이며 편안한 느낌이 아니겠나. 일정을 다 마치고 휘튼 캠퍼스 안에 있는 빌리그래엄 홀에 들러 찍은 사진이다.  

 

 

엘리트 신학생과 꿈이 아름답고 드높은 간호사였다. 이들을 처음 만났던 때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남편이 신대원에 들어가서 만난 마음 맞는 동생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일곱 살, 네 살 때였으니 지금 이들 부부의 아이들인 하린이 한결이와 엇비슷할 때이다. 강 목사님은 나랑 비슷한 점이 많아서 잃었던 누나를 찾은 것 아니냐며 농담을 했던 적도 있다. 코스타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휘튼으로 달려와 주었다. 아, 맞다. 내가 페이스북을 가입한 이유가 저 아기, 미국으로 건너간 한결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어느새 많이 자랐다.

 

 

감정 표현에 인색한 남편이 칭찬해 마지 않는 후배가 전지성 강도사님이다. 정말 좋은 목회자가 될 것이라며 아주 그냥 대놓고 이뻐라 하신다. 울보 은혜 역시 우리 부부에게는 귀한 사람이다. 그 멀리 미국에 가서 이들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니. 게다가 돌쟁이 은슬이, 하드웨어는 엄마 소프트웨어는 아빠인 은슬이라 이틀 밤을 지내면서 꿈같은 시간이었다. 

 

 

반 하루를 함께 지내는 동안 생활 속 찍사인 승주사모님이 연실 사진을 찍었다. 찰칵찰칵, 난생처음 미국에 와 흔적을 많이 남기고픈 내게 고맙고 위로가 되는 소리였다. (대접받고 싶은 마음이 늘 충천하지만) 그것을 가장하기 위해서 먼저 대접하는데 익숙하고, (실은 찍히고 싶지만) 찍어주는 것으로 그 마음을 대신하는 내게는 이 부부들의 환대가 또 다른 새로운 기쁨이었다.

 

 

시카고 한복판에서 두 시간 남짓 기다려서 유명하다는 지오다노 피자를 먹었다. 사실 그 시간이 그리 힘들지가 않았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거기 함께 있다는 것이 내내 믿어지지 않아서 현실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인 듯. 이 모든 만남이 종합선물 세트처럼 내게 안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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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을 지내고 부활주일을 지내면,
오락가락 하던 봄이 제대로 완연해지며 푸르름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때면
한솔이의 계절입니다.
어느덧 2주기를 맞이하며 한솔이 나무가 있는 정읍을 다녀옵니다.




작년 태풍에 한솔이를 닮은 잘 생긴 소나무가 쓰러졌습니다.
한솔이가 쓰러져 떠난 것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지만 장로님과 권사님 걱정에 
철렁 마음이 내려 앉았었습니다.

한솔이가 거기로 가야할 이유가 그 나무였을텐데 그 나무가 쓰러졌다니....
정읍의 그 곳이 상상이 되질 않았습니다.
헌데, 한솔이가 웃고 있는 사진이 담긴 비석이 세워져 반겨주니 생각지 못한 반가움이었습니다.




한솔이와는 한 치 건너 두 치의 사이로 그리 많은 것을 나눈 기억이 없습니다.
아파서 힘들 때도 가까이 다가가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했었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절절해지는 것 같습니다.
조금 휑했던 웃는 한솔이 얼굴 앞에 꽃을 둘러 심습니다.




실은 한솔이가 누구도 아닌 내 마음에 남긴 흔적이 있습니다.
오랜 영적 방황으로 흔들리던 내게,
기도에 길을 잃고 헤매던 때 나를 내려놓고 기도하게 했었고,
인간이 한계 지어놓은 '기도의 응답'의 실체를 보게 했고,
기도 너머의 신비, 삶을 넘어선 죽음에 대한 새로운 눈을 열어주고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남긴 것들에 대한 묵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오랜 고민 끝에 남보다 늦은 나이에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그의 사역은  한솔이를 아프게 품고 시작하였습니다.
한솔이의 마지막 3년을 함께 하며, 사랑과 복음을 다시 배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 무력하게 한솔이를 떠나보낼 즈음 아버님 또한 죽음에 빼앗겼습니다.
또 그 즈음 존경하던 이정석목사님께서 끝까지 암에 항거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며 천국을 향해 가신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압니다.
그의 인생에, 그의 목회에 '죽음을 짊어진 삶' 에 대한 트라우마가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를요.
그 트라우마는 끝이 아니라 복음을 든 그에게 주어진 새로운 숙제라는 것을 또한 압니다.





오고 가는 긴 시간 동안 뒷좌석에 앉아 계속 돌직구 날려주는 영애 덕에 즐거웠습니다.
영애, 하면 착한 애로 통하고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로 알려져 있지만
알고보면 돌직구 여왕인 이 아이를 나는 많이 좋아합니다.
야곱의 축복, 이삭의 축복, 야베스의 축복.... 모두 다 동원해서 축복하고 싶습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이런 제자 하나를 남겼다는 것은 내게 참 축복입니다.
지금 여기에 함께 하고 있는 이 사람들, 이 사랑들이 삶의 이유입니다.





'생명의 샘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가운데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죽음을 짊어진 삶, 하루하루 죽음에 더 가까이 가는 '작은 죽음'을 등에 지고 사는 우리들이지만
생명의 샘이 주께 있기에 가장 큰 절망 속에서도 빛을 향한 지향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언젠가 함께 만나 저렇게 환하게 웃을 날일 있을 것을 알기에.



 

1년이 또 다시 금방 지났고,
그 사이 한솔이 나무가 쓰러졌지만
정말 소중한 것들은 의미없이 스쳐 지나가지도 않았고 쓰러져 말라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지나가고 스러지는 것들이 여전히 많겠지만
그 빛은, 그 생명의 샘물은 영원에 가 닿아 있음을 압니다.
다시 1년 후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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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잎


가까이 보아야 예쁘다.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음악치료를 하러 가는
어느 초등학교에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 중에 키 크고,
반달 눈웃음을 지으며,
노래를 엄청 못하고,
좀비놀이를 즐기고,
순한 6학년 애제자가 있다.


교실에 들어갔더니 이 녀석이 눈이 벌개가지고 목에는 상처가 난 채로 앉아 있었다.
싸울 애가 아닌데 싸웠단다. 1학년 동생들이 팔을 붙들고 늘어지고 매달려서 귀찮아도 다칠까봐 힘으로 탁 떼내지 못하는  착한 형아다.
어떤 녀석들이 장애인 이라고 놀렸단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고 가슴이 아파서 수습이 잘 되지 않았다. 흔하지 않지만 가끔 있는 일이다. '통합'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 하에 이 아이들이 제일 많이 다치는 일이 이것이다.


예전 어느 학교에서 학교 주차장 근처에서 바로 그 장면을 목격했다. 놀리던 녀석을 벽에 붙여 놓고 주먹을 바들바들 떨면서 협박을 했다. 너 한 번만 더 이 딴 짓 해봐! 교육을 한 것이 아니고 협박을 했다. 협박 이후에 생전 해보지도 않은 욕을 내뱉을 뻔 했었다. 이성을 잠시 잃었던 것 같아 남편한테도 이 얘기를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여전히 이런 일을 보면 순간적으로 치올라오는 분노를 어쩔 수가 없다.
목에 대일밴드 까지 붙이고 힘없이 앉아 있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르겠었다. 치료 시작을 위해서 헬로송을 불러야하는데 바로 노래를 시작하면 목이 메일 것 같고,
그저 가서 이 녀석을 꼭 안아줬으면 싶은데 담임 선생님도 옆에 있는데 내가 그러는 건 오버고.


이런 저런 이유들로 바로 그 아픔을 치료 중에 다루지도 못하고 세션을 끝내고 돌아왔다.


가까이 보고, 자세히 볼수록 더 사랑스러운 아이들인데 내 사랑은 저 아픔을 싸매줄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부끄럽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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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부를 졸업하면서
가장 슬펐던 건 정신실 선생님과 헤어지는 거 였던것 같다.
그런 마음을 아셨는지 초등부를 졸업한 우리들을
선생님 댁으로 초대해 주셨다.
직접 피자도 만들어주시고 게임도 하며
한 마디로 엠티를 다녀온 셈이다!!ㅎㅎㅎ

중등부에 올라가서
중등부 선생님과 친하면
정신실선생님을 배신하는 느낌이여서 그랬는지
엄청? 싫어했다...ㅠㅠㅋㅋㅋ

그리고 가장 부끄러운 건 선생님 결혼식날
초등부도 아닌 중등부가 껴서
축가를 하는데
맨 뒤에서 결혼식 내내 펑펑 울었다....ㅋㅋㅋㅋㅋㅋㅋ
(나 뿐 아니라 우리 친구들 모두)
왠지 도사님한테 뺏기는 기분??ㅋㅋㅋ
암튼 그 때 생각하면 완전 웃긴다!

이 일기 또한 현실로 이루어졌다.
어른이 되어도 정신실선생님을 잊지 않고
계속 괴롭히고 있다는 거!!ㅎㅎㅎ
선생님 사랑해요~~♡♡
(손발 오글오글)
왠지 초딩 일기같다!!ㅋㅋ


출처 : 이영애의 싸이 다이어리


♡ ♥ ♡ ♥ ♡ ♥ ♡ ♥ ♡ ♥ ♡ ♥ ♡



영애가 방정리를 하면서 초딩 일기장을 발견했다며 어느 날의 일기를 싸이 다이어리에 공개하였다. 삶이 개그인 영애가 어렸을 때는 안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깨는 영애'는 그 때도 그랬구나. 초등부를 졸업하고 중등부로 올라가면서 우리집에 데려와서 하루 같이 자고 놀았었나본데....  마지막 문장을 빼면 흔하디 흔한 초딩들의 일기구성이렷다.
아놔~ 근데 마지막 문장.
정신실선생님!! 화이팅!!!ㅋㅋㅋㅋ


얘네들 지휘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머리가 허연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런 아이들과 찬양을 하고 있으면 좋겠다.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
영애가 아직 노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영애의 바램은 이루어져서 아직 나를 괴롭히고 있는데.ㅋ
나는 그 좋아하던 지휘를 못하고 있네.


아무튼 오묘하고 감사한 일이다. 내년에 영애가 그 당시 내 나이가 된다고 하니 말이다. 그 때 그 아이들이 자라서 우리 아이들의 주일학교 선생님이 되고....^^


영애의 초딩일기 마지막 문장에 상당히 은혜를 받아서 그대로 있을 수가 없네. 그 감동으로 새로운 일기장에 옮겨 적어봤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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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생활11년 만에 명절을 제끼고 집에 혼자 남았다.


외며느리야? 맏며느리지? 하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으며 며느리 역할에 혼신을 다해왔던 것 같다. 아, 난 외며느리도 맏며느리도 아닌 막내 며느리다.
명절에든 부모님 생신에든 집안의 대소사든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나름 즐겁게 몸을 던져왔다. 동기를 굳이 들쳐보자면 순수한 '사랑의 발로'도 없다 할 수 없고,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기 위한 몸부림도 적쟎이 작용했다고 본다.


한 10여년 애쓰고 힘쓰던 관계가 가족 중에 있는데 하룻 밤을 함께 지낼 자신이 유독 생기질 않았다. 틀어진 관계가 힘을 쓴다고 회복되는 게 아닌데 그간 내가 과하게 힘을 쓴 탓인 것 같다. 어떤 노력도 상대방에게 선의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좌절감에 좀 내려놓은 상태다. 착한 며느리, 착한 크리스챤 컴플렉스가 여전히 마음에서 시끄럽게 설교를 해댔지만 질끈 눈을 감고 내가 원하는 걸 하기로 결정했다.


실은 몸이 먼저 데모를 해댔다. 이유없이 배가 꼬이고, 계속 화장실에서 불러대고... 또 배가 꼬이고... 남편이 '스트레스썽 아니야?' 그렇게 화장실에 불려다니다 보니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졌고 더더욱 힘든 관계를 마주할 힘이 나질 않았다. 그러던 중....



# 티슈남 할아버지의 눈물의 티슈 한 장 #



몸의 상태에 대해서 물으시고 보고하느라 시댁과 계속 통화가 오갔다. 주일 밤에 전화가 왔는데 아버님께서 갑자기 민간요법 하나를 생각해내신 거였다. 그걸 먹으면 바로 화장실의 호출이 멎을 거라시면서 지금 달이고 있으니 내일 가져다주마 하셨다. 그리고 한참 지나서 전화벨이 또 울리고 현승이가 전화받았는데 '네? 할아버지가 우리집요? 지금요? 앗싸~아!' 하면서 '엄마, 할어버지가 지금 우리 집에 오신대. 버스타고 오신대' 한다.
날이 어두워지면 출입문 밖으로 좀처럼 나가시질 않는 분들이다. 방금 달인 민간처방약을 가져다 주시려고 그 밤에 버스를 타고 덕소에서 나오시는 거였다. ㅠㅠㅠㅠ 어떻게든 여행에 데려가 싶은 마음, 한편 순수하게 며느리의 건강을 걱정하시는 마음이 느껴져 찡하고 아팠다.


# 티슈남 할아버지 눈물의 티슈 두 장 #


어찌어찌 모두들 펜션으로 떠나고 집에 홀로 남았다. 비가 무섭게 내리고 날이 캄캄하니 마음이 한결 더 무거웠다. 그 때 휴대폰이 울리는데 원조 티슈남 아버님이시다. 부끄럽거나 쑥스러워지시면 말투가 더 퉁명스러워지시는 아버님이 '야!' 하시더니... '너 밥 먹었니? 그래, 우린 다 먹고 지금 치웠다. 애들도 많이 먹었어. 너 혼자 있다고 밥 굶으면 안 돼. 밥 챙겨 먹어라' 하시는데 콱 목이 메였다. 눈치 채신 아버님의 목소리도 살짝 떨리시더니 바로 '끊자' 하시며 서둘러 끊으셨다. 나... 티슈 한 장 뽑아들고 훌쩍훌쩍.


# 티슈남 할아버지 눈물의 티슈 세 장 #


오늘 아침 남편과 통화 중. '추석예배 드렸어. 주기도문 하고 마칠려고 하는데 아부지가 갑자기 어머니한테 작은 며느리 위해서 기도 한 번 하라고 하시대' 한다. 교회는 일요일이니까 가시고, 기도는 어머니랑 아들이 하니까 됐고, 예배는 무조건 짧아야 하고, 예수님은 자꾸 교회에 돈 갖고 오라고 해서 싫으신 아버님께서 먼저 '기도하라'는 제안을 하셨다니... 이거 티슈를 또 한 장 안 뽑을 수가 없는 일이다.
 





# 티슈남 손주의 대를 잇는 감동 #


며칠을 엄마가 아프다고 빌빌대고 있으니까 노심초사 하던 현승이가 며칠 전 저녁에 덥석 내 손을 잡더니 '엄마 내가 기도해줄께. 눈 감어' 한다. '하나님! 엄마가 꼐속께속 아파요. 엄마가 이렇게 아프니까 제가 마음이 너무 불편해요. 추석 때 펜션도 가야는데 엄마가 아파서 못갈 수도 있으니까 너무 마음이 불편해요. 엄마가 빨리 나아서 같이 갈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니까 티슈손주의 불편함은 이거였다. 엄마를 혼자 집에 놔두고 갈 수가 없다. 왜냐? 누가 엄마를 잡아갈 것 같다. 엄마는 어른인데 뭘 그리 걱정을 하냐 괜찮다. 하니깐 어른이지만 여자 아니냐! 한다. 자기가 펜션에 안 가고 엄마를 지킬려고 하니 너무 가고 싶고, 엄마 혼자 있는 건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니 엄마 흑석동에 외할머니 댁에 가 있으면 안돼냐? 그러면 엄마랑 떨어져 있는 건 싫지만 걱정은 안된다. 이것이다.


하이튼 그런 식으로 며칠 간 엄마 손 잡고 기도해주는 아들의 지극한 효성은 이어졌고, 어제 출발 시에는 급기야 아빠의 기도 끝에 엄마의 가슴에 파묻혀 엉엉 울고 말았다는... 그렇게 모자는 눈물의 이별을 했다는....







감정형 할아버지와 감정형 손주의 따스한 마음 씀씀이로 티슈는 좀 많이 소비했지만 마음에는 대일밴드 하나 붙이게 된 2010년 추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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