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3주기 추도예배를 드리고 왔다. 2년이라 해도 믿어지지 않는데 벌써 3년 이라니. 아이들이 '할아버지 보고싶다. 할아버지 보고싶다' 하는 소리가 깊은 마음을 쓰라리게 한다. 3년 전에 썼던 글을 찾아보았다. 아버님과 주고받은 문자가 있다. 한 달 남았다는 최종 진단을 받으신 후에는 손발 오그라드는, 웬만해서는 누구한테도 할 수 없는 표현을 내용의 문자를 드렸었다. 마음 먹기로는 하루에 하나 씩이었는데, 그나마 그것도 지키지 못했다. 특히 5월 말 이후에 아버님은 문자를 확인하실 수 없는 상태가 되셨었다. 수줍음이 많으신 아버님께서 평소에는 거의 말이 없으셨다. 특히, 암선고 받으신 후 50여 일 지내시며 거의 입을 닫고 계셨다. 그런 아버님께 평생 '사랑한다'는 고백을 제일 많이 들은 사람은 채윤이와 현승이다.. 돌이켜보니 저 문자에서 '사랑한다 둘째야'라고 여러 번 말씀 하셨다.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며느리'가 아니라 '딸'로 등극시켜주셨고, '둘째 딸아, 둘째 딸아' 하고 불러주셨다. 오늘 추도예배에서 남편이 설교했다. 아버님이 남겨주신 많은 선물 가운데 하나는 '천국에 대한 소망, 천국에 가야할 이유를 분명하게 심어주고 가신 것'이다.


올 여름 코스타에서는 간증을 하기로 되어있다. 요즘은 이 간증문 작성에 온 마음을 다 쏟고 있다. 그렇다고 잘 써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깊게 일렁이는데 글은 메말랐고, 내게는 대단한 일 같은데 써놓고 보면 '이런 걸 사람들 앞에서 말 할 가치가 있나' 싶어 다시 지우고. 그러면서 지나온 내 삶을 자꾸 반추한다. 자꾸 반추해도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지점은 아버지의 죽음이다. 그 언저리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아버지의 죽음을 극복한 것은 3년 전 아버님의 죽음을 맞닥뜨리면서 라는 것을 오늘 다시 깨달았다. 그때 쓴 글을 찾아 읽어보니 그러하다. 다시 아버지의 죽음, 아버님의 죽음을 되새기며 오늘 살 이유를 생각한다. 3년 전에 썼던 글을 붙인다.


**********************

 

2011/6/3


내게 죽음은 아직 철없는 아이들을 두고 예고없이 훌쩍 아버지가 떠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죽음은 가난과, 외로움과, 서러움 같은 것을 쓰나미처럼 몰고왔다. 사춘기에 막 접어든 내가 '와, 새로 지은 좋은 집에서 이렇게 행복하게 살다니....'라고 일기를 쓴 지 딱 보름만에 찾아온 일이었다. '이번에 서울가면 신실이 피아노를 알아보고 오겠다'며 또 예쁜 보조가방을 사다준다고 약속한 아버지가 새벽밥을 드시고 멋진 털모자를 쓰고 나간 그 길이 마지막이 되는 그런 것이었다. 그 날 이후로 커다란 고통 하나가 가슴에 자리를 잡고, 그 고통은 청소년기 내내 부끄러움이 되고, 콤플렉스가 되고, 서러움이 되었다.


그 고통을 넘고 넘으며 나는 자랐다. 그 고통 때문에 인생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좀더 빨리 배우고 (적어도 외적으로는) 단단해지고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자라가게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넘어서, 아버지 없는 아이로 자라면서 내가 아무리 얻은 게 많다한들 어찌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겠는가. 아버지의 부재를 넘어 더 어른스러워질수록 죽음은 더 무섭고, 예기치 않게 찾아와 많은 것을 앗아가는 두려운, 너무나 두려운 것이 되고 있었다.


죽음 너머에 천국이 있다는 것은 머리의 고백일 뿐, 나는 평생 엄마도 죽을 지 모른다는 상상만으로도 이유없는 공포와 슬픔에 떨곤 했었다. 은하철도 999에서 기차가 정차한 어느 별은 화석이 되게 하는 검은 구름이 있는 곳이었다. 검은 구름이 예고없이 덮치면 그 그림자 안의 모든 생물은 화석이 되는 것이다. 내게 죽음은 그렇게 예고없이 들이닥쳐 속수무책으로 점령당하는 것이었다.


내 인생에 가장 그리운 이름 아버지.


지난 2년여, 아니 가깝게는 최근 몇 개월 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실패, 고통, 기도해도 억울함에 놓아두시며 기도할수록 더 진창으로 빠져드는 느낌, 선한 사람들이 고통받고
악한 사람들이 더 높은 곳으로 가서 약한 자들을 더 큰 고통에 밀어넣는 현실. 그 현실을 뼛 속 깊이 느끼며 그 분의 손을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하는 동안 그 분이 내게 말씀하셨다.


인생의 어두운 면,

실패,
부조리,
눈 앞에서 거절되는 오랜 기도,
들을 통합하지 못하면 온전한 진리가 아니라고.
부활의 영광은 지난한 십자가의 고통 너머에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아들어가고 있었다.
죽음은 삶과 가장 확실하게 밀착된 것 또한.


긴 터널의 끝은 '사랑'이었다. 삶과 죽음, 부활과 십자가, 응답되어 간증거리가 되는 기도와 거절된 기도, 성공과 실패.... 이 모든 것을 두려움 없이 아우르게 하는 것은 그 분의 사랑이었고.그 사랑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일상을 사는 방식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치유'라 부르는 결혼이 내 삶에 '아버님'이라는 '아버지'와 비슷한 호칭의 어른 한 분을 선물로 주었다. 아버님은 아버님이었다. 남편의 아버지인 아버님은 소심하시고 말이 없지만 자상하시고 일을 하지 않고 지내신 지 오래 된 그런  분이었다. 채윤이와 현승이를 손수 키워주신 분이다.  한 집에서 2년 여를 살았고, 현관을 마주보는 집에서 3년 정도 살았나보다. 시간이 많으시고 자상하시고 건강하시고 손재주가 많으신 분이라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든 도움이 되는  아버님이었다. 매주 강의를 가는 화요일마다 집에 오셔서 현승이 유치원에서 찾아주시고, 두 녀석을 데려다 간식 챙겨주시고 봐주시다 가시곤 하셨다. 아버님이 가시고 나면 냉장고 한켠에 검은 비닐 봉지로 싸인 병이 하나 씩 있었는데 막걸리 병이었다. 심심하고 출출하시면 막걸리를 하나 사셔서 드시면서 오후 시간 보내시는데 전도사인 아들에게 누가 될세라 검은 비닐로 남은 막걸리를 꽁꽁 싸서 숨겨두고 가신 거였다. 약주를 하시면 가끔 전화를 하셔어 '에미야,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씀도 하시고 문자도 보내셨다.


나는 그런 아버님이 고마워 우리끼리 하고픈 여행에 부모님을 모시고 가고, 흥행작 영화를 예매해서 보여드리고, 생신 때면 정성껏 생신상을 차려드리고,  신앙 좋은 며느리라 눈치보시는 아버님께 직접 참이슬을 사다드리고, 인터넷뱅킹을 가르쳐 드리고, 운전을 해드리고.... 나름대로 아주 아주 많은 것을 해드린다며 자부(自負하는 자부(子婦)였다.


아버님이니까.  유난히 착하시고 우리 아이들을 키워주신 고마운 아버님이니까.


건강하시던 아버님이 위암 말기에 여기 저기 전이가 많이 되셨다는 진단을 받으신 지 한 달이 좀 더 됐다. 처음 진단을 받으실 때 6개월이라 했었는데 이번 주에는 한 달이란다. 어제는 노인병원 호스피스 병동으로 입원을 하셨다. 아버님의 죽음을 맞닥뜨려야 했을 때 나는 수십 년 교회 다니셨지만 아버님이 구원을 얻으실까? 하는 종교적인 질문으로 조바심을 냈었다. 아버님을 생각하며 기도할수록 내게 분명해지는 것은 사랑이다. 구원은 내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랑이다.


숙제에 늘 할 일이 많은 아이들을 닥달해서 가능한 저녁에는 아버님을 뵈러 간다. 다행히 두 녀석도 그 일을 즐거워한다. 힘들고 피곤한 일일텐데. 하루하루 눈에 띄게 쇠약해지시는 아버님을 뵈면서 비로소 나는 다시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아버지을 사랑하는 이상 이 죽음을 직면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버님의 생명이 사그러드시는 걸 직면해야 하고, 헤어져 다시는 볼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 낮에 병원에서 아버님과 함께 긴 시간을 보냈다. 어젯밤에 갔을 때 채윤이가' 할아버지 손톱이 너무 길어요' 하던 말이 생각나 손톱깎기를 챙겨갔다. 손톱을 깎아드리고, 아버님의 손을 꼭 잡아 드리고, 쓰다듬어 드리고 아낌없이 사랑을 표현했다. 그럴 수 있는 내 자신을 대견해하다보니 이 분이 아버님이 아니다.  아버지다. 남편의 아버지가 아니라 내 아버지셨던 것이다. 내가 처음 아버지를 죽음에게 뺏길 때는 예고없이 덮쳐와서 속수무책으로 빼앗기고 그 슬픔과 상처 가누지 못해 오랜 세월 길을 잃고 헤맸는데. 이제 이 아버지의 죽음을 아버지보다 내가 먼저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죽음까지도 다스리시는 하늘 아버지께 감사히 맡길 마음이 조금 생겼났다. 그건 더 이상 죽음으로 인한 헤어짐의 고통을 차단하지 않겠다는 의미하기도 한다. 죽음같은 잠을 주무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마음이 찢어지는 슬픔을 회피하지 않는다.


어쩌다 이 분이 내 아버지가 되셨을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분명 아버님이었는데 어쩌다 아버지가 되셨을까?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죽음으로 빼앗긴 나. 40이 넘어 두 번째 아버지를 죽음에 내어드린다.  준비할 시간, 사랑할 시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감사하다. 이런 며느리를 두신 우리 아버지, 정말 행복한 분이다. 내가 참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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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걸 좋아하고,
옷 입는 스타일이든, 설교의 구조든, 거실의 공간배치 까지도
'뻔한' 방식을 싫어하는 남편의 미덕.
한 번씩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집안의 구조를 바꿔놓는데 이것 참 신선하다.
정말 멋대가리 없고 덩치만 큰 김치냉장고 때문에 가뜩이나 좁은 집 자세가 안 나온다.
그간 최선의 배치라 생각하고 살았었는데,
끙끙거리며 이것 저것 옮기더니 다시 새로운 공간 창출!
소파는 벽으로 밀고 현관을 등지고 있던 커피장을 좌향좌시키니.....
오, 거실이 엄청 넓어졌다.
박수!!!!!
이런 변화 좋아.
일 마치고 카페에서 글 쓰고 들어올까 하다가도 몸과 마음이 거실을 향하게 된다.

 

 


연애강의를 가면 강의 마치고 질의 응답 시간이 더 재밌고 유익한 경우가 많다.
센스있는 스태프들은 미리 질문을 받고 정리해서 내게 보내주기도 한다.
지난 주일 강의하러 갔던 청주 좋은 교회에서 받은 질문 중 하나이다.
'사모님께서 형제를 고르신다면.....' 이런 질문은 흔하지 않다.
장사하는 강사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는 선배에게 묻는 것 같아 좋다.

잠시 멈춰서서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었다.
음, 내가 형제를 고른다면? 사랑하는 제자에게 '이것만은 봐라' 일러둘 덕목은?
여자 사람이든, 남자 사람이든 나는 '변화의 가능성'을 유심히 보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의 외적 내적 모습이 어떻든 인격 안에서 말랑함이 느껴지느냐 하는 것이다.
말이 쉽지 이것을 발견하는 눈을 가진다는 건 신의 경지일 수도 있다.
여하튼, 나는 '자기확장'이라는 용기가 필요한 일을 위해 스탠바이 하고 있는 사람이 좋다.
무엇보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변화'란 얼마나 좋은 일인가.
특히 내적인 변화란.



그러고보니 약간 즐거운 일상의 변화가 있다.

다시 페이스북 탈퇴를 고민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온라인의 관계는 가짜 관계라고 결론을 내리기로 결정을 하고 결심을 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오프의 관계를 통해 진짜로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페친 이외의 글은
아예 읽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내게 페이스북의 미덕은 '뉴스를 보는 맑은 눈'이라 어쩔까 했다.
팔로우 기능을 활용해 뉴스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뉴스피드로 정리했다.

관음증에의 죄책감, 노출증의 강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 같아서 좋다.


오늘은 하루 종일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이 찬양을 부르며 다녔다.
예수님이 참 좋다.
'내 평생에 힘 쓸 그 큰 의무는 주 예수의 덕을 늘 기리다가
숨질 때라도 내 할 말씀이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덕만 기리고 따르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암튼, 예수님이 참 좋다.
음..... 뭐 꼭 조희연 교육감님을 선물로 주셔서 이러는 건 아니다.
원래도 내가  예수님을 참 좋아한다.
다만 이번에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조금 더 좋아진 것 뿐이다. 헤헤.

물론 이번에도 내 모든 기도를 다 들어주신 것은 아니다. 그래도 괜찮다.
엄청난 반전, 그런 예상치 못한 변화. 의외의 사건배치에 놀랐다. 숨통이 트였다.
남들은 뭐라든 나는 간절히 기도했고, 그분은 창의적인 방식으로 답해주셨다.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이다. 진심.

 

* 이 포스팅에 '변화'와 '좋다'란 단어가 셀 수 없이 반복된다.
변화가 진짜 좋은가보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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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기산데요.
섭외받고 인터뷰하기로 결정한 후에
인터뷰어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뙇! 한영교회 청년 오은주였습니다.
은주가 인터뷰 작가로 일하고 있는 것도 몰랐는데,
서로 놀랍고 신기하다 하며 즐겁게 인터뷰 했습니다.


내용은 블로그를 통해서 자주 하던 얘기지만요.
쫌 잘 나온 사진 자랑겸 링크합니다.
사진도 잘 나왔고, 사진에 나이가 참 잘 나왔어요. ㅎㅎ
50이 머지않은 얼굴, 있는 모습 그대로.


http://webzine.godpia.com/books/view.asp?db_idx=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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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세상이 알면 알수록 더욱 무섭습니다.
죄 없으신 주님을 모욕하고, 침을 뱉고, 채찍을 내리치다못해,
주님을 십자가 위에 처형했던 그때 그 악의 무리들이,
지금도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이 합세하여,
주님과 주님의 사람들의 목을 조이고 무섭도록 유혹을 합니다.
우리를 돈으로 미끼삼아 탐욕의 노예들처럼 부립니다.
불평등한 경쟁에 어린이와 청소년을 밀어 넣습니다.
불의를 보고도 외면하거나 침묵하는 것이 착하고 지혜로운 사람인 듯 포장합니다.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있듯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코앞에 다가와 있음에도,
거짓 선지자들은 안전하다 안전하다 안전하다고 말하고,
그들의 추악한 거짓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권세와 명예를 누립니다.
주님, 풍랑이 몰아치는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가 안전히 거할 처소는 어디이며,
우리의 젊은이들이 기댈 곳은 어디이며,
우리의 자녀들이 붙들 말씀은 무엇입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
이 시간 여기 이곳을 주목해주시고,
이곳에 창조의 생기와 부활의 생명의 바람을 불어주옵소서.
여기 이곳에서 드리는 불안한 이들의 간구에 응답해 주옵소서.
탐욕으로 허랑방탕한 이들에겐 쉼을,
전쟁 같은 포화속을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겐 평화를,
분열되고 상처난 이들에겐 회복의 은총을 허락하사,
바로 지금 여기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2014년 5월 18일, 주일 4부 예배, 시작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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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편한 신발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걸음이 조심스러운 엄마 생각이 나서이다. 저렇게 예쁜 신발을 사서 병원에 계신 엄마에게 갖다 드렸다. 퇴원하시면 하나 사드려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엄마가 채근을 했다. '신발 사올라믄 얼릉 사와라. 그럴 일이 있응게' 그럴 일이 있어서 얼른 사다드렸다.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나날이 엄마에게도 일상, 내게도 일상이 되어간다. 편안한 일상이 되어간다. 2년 전, 처음으로 요양병원으로 모시며 무너지던 가슴을 생각하면 기적같은 마음의 변화이다. 이번 수술과 재활과정은 버겁지만 참으로 견딜만 한 일이 되었다. 엄마는 말할 것도 없고 나 역시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원망만 쌓이던 순간이 있었으나 이젠 참 지낼만 하다. 병원에 있는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여보세유'하는 목소리가 나를 쥐락펴락 했었다. 기운이 없거나 아파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걱정과 분노가 혼재되어 터져나오곤 했었다. 요즘은 '여보세유'에 힘도 있고 생기도 있다.





수술할 적마다 여느 할머니보다 빠른 회복을 보여주는 건, 순전히 동생 가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가 47세에 낳은 동생. 그 동생이 낳은 세 아이가 엄마에게 생기를 불어 넣는 것이 아닐까. 병원이 아니라 집에 계실 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가 연세에 비해 젊고, 건강하고, 살아 번득이는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은 같이 사는 식구들의 젊음이라고. 단지 늙은 엄마에 젊은 아들과 며느리, 완전 늙은 할머니에 어린 손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엄마가 하는 막내 아들에 대한 한 줄 평가. '이 사람이 참 정직헌 사람인디 그짓말을 잘 혀' 진실하게 엄마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할 뿐 아니라 엄마를 웃게 하는 아들이다. 엄마를 속이고 놀리고 하면서.


동생도 고맙고, 올케도 고맙고, 조카들도 고맙고, 이 연세에 고집스럽지 않고 말랑한 엄마에게도 고맙다. 그래서 병원에 있는 엄마를 보고 오면서는 '엄마는 참 복이 많다. 나도 저렇게 늙을 수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엄마 침대 바로 옆에 계신 할머니는 싸움꾼이다. 싸우고 괴롭혀서 결국 한 할머니는 다른 병실로 퇴출시켰고, 간병하시는 분께도 여간 까다롭게 구는 게 아니다. 그리고 '언능 신발 사 와라' 하게 만든신 장본인이다. 엄마가 병원에 두고 신는 단화가 낡았는데, 그 신발을 두고 '거지냐? 신발이 그게 뭐냐? 갖다 버려라' 잔소리를 하시는 통에 집에 있는 다른 신발로 바꿔다 놓았다. 이번에는 신발이 중(스님) 신발 같다며 '절에 다니냐?'고 타박을 하셨던 것. 웬만한 건 허허롭게 참고 넘어갈 수 있는데 종교성 강한 권사님 엄마에게 '절에 다니냐'는 견딜 수 없는 발언이었던 것이다. 


이 할머니가 왜 이러시는지 나는 알고 있다. 아니, 엄마도 알기에 나름대로 참으시는 것 같다. 매일 매일 찾아와 운동시켜드리고 웃겨드리는 아들,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을 하고 간식을 사갖고 가서 속닥속닥 수다를 떨어드리는 딸. 할머니에게 달라붙어 안마해드리는 손주 녀석들. 심심치 않게 찾아오는 교회 식구들. 옆 침대 할머니께는 없는 걸 엄마가 갖고 계시는 것이다. 게다가 엄마는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흔치 않은 환자이다. 2년 넘에 입원중이시고, 이 할머니께 집이란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그렇게 일생을 마친다는 것은..... 너무 쓸쓸한 고통이라 상상이 안 되는, 상상하기 싫은 결말이다.  


병실에서 공인된 괴팍한 할머니이고, 이 할머니로 인해서 엄마가 받는 스트레스가 극심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신발을 사갖고 갔을 때, 돌아누워 눈을 감고 계셨지만 정황을 모르시지 않을 터였다. 내 엄마랍시고 돌보고 챙기는 행동으로 곁에 계신 할머니에게는 고통의 원인이 되는 이 상황. 두 침대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민망스러웠다. 이나마 잘 지내고 계신 엄마의 오늘에 대해서 그저 쿨하게 감사할 수가 없다. 아니, 4월 16일 이후 지난 한 달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어제와 같은 오늘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자주 스쳐지나간다. 아침에 학교 갔던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는 일상, 이것이 가슴 떨리도록 감사하다는 생각. 그러나 이 감사는 곧바로 부끄러움과 아픔에 가 닿는다. 이런 시간을 살고 있다. 이런 생각이 오락가락 하는 중, 김기석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박노해 시를 만났다. 감사한 죄! 바로 이 죄책감이다. 매일 감사한 죄를 범하고 있는 나는 그저 흐느끼는 것 말고,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감사한 죄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젊어서 홀몸이 되어 온갖 노동을 하며
다섯 자녀를 키워낸 장하신 어머니
눈도 귀도 어두워져 홀로 사는 어머니가
새벽기도 중에 나직이 흐느끼신다


나는 한평생을 기도로 살아왔느니라

낯선 서울땅에 올라와 노점상으로 쫓기고
여자 몸으로 공사판을 뛰어다니면서도
남보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음에
늘 감사하며 기도했느니라


아비도 없이 가난 속에 연좌제에 묶인 내 새끼들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경우 바르게 자라나서
큰아들과 막내는 성직자로 하느님께 바치고
너희 내외는 민주 운동가로 나라에 바치고
나는 감사기도를 바치며 살아왔느니라


내 나이 팔십이 넘으니 오늘에야

내 숨은 죄가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거리에서 리어카 노점상을 하다 잡혀온
내 처지를 아는 단속반들이 나를 많이 봐주고
공사판 십장들이 몸 약한 나를 많이 배려해주고
파출부 일자리도 나는 끊이지 않았느니라
나는 어리석게도 그것에 감사만 하면서
긴 세월을 다 보내고 말았구나


다른 사람들이 단속반에 끌려가 벌금을 물고

일거리를 못 얻어 힘없이 돌아설 때도,
민주화 운동 하던 다른 어머니 아들딸들은
정권 교체가 돼서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도
사형을 받고도 몸 성히 살아서 돌아온
불쌍하고 장한 내 새끼 내 새끼 하면서
나는 바보처럼 감사기도만 바치고 살아왔구나
나는 감사한 죄를 짓고 살아왔구나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묵주를 손에 쥐고 흐느끼신다
감사한 죄
감사한 죄
아아 감사한 죄

- 박노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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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수학여행의 추억  (0) 2014.02.21

 

인생의 닫히는 문에 대해서 조금 여유가 생겼다. 닫히는 사이 열리는 문도 있다는 걸 생이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닫히려는 문을 붙들고 힘을 써봐야 자연의 바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그 문을 찾아 동동거리며 찾아봐야 닫힌 문 앞에서 열쇠가 없으면 그만이라는 것도. 

생각지 않은 배움의 문이 닫히는 듯 또 열리고 있어 신기하다. 내 마음의 여정에 꼭 맞는 강의를 자꾸만 듣게 되니 이건 누군가 나를 위해 커리큘럼을 짜놓은 것만 같다. 딱 개설됐다가 내가 듣고나니 사정상 지속하지 못하는 강의라니, 이건 딱 나까지 들어오고 닫히게 되는 문. 그걸 마치니 전에 없던 강의가  개설되었는데 이건 내가 몇 년 전부터 찾던 바로 그 강의. 오메, 이번엔 열리자마자 내가 일빠로 들어가게 되는 문.

작은 몸에서 무슨 그런 열정이 나오냐는 애정 어리고 부러움은 늙은(읭?) 말을 듣곤한다. 그만 좀 배우러 다니라고도 한다. 단언컨데 열정을 뿜으며 애써서 찾아다니질 않았다. 그냥 꼭 필요한 강의 수강신청서가 눈앞에 떡떡 나타나곤 했다. 이번 학기 더욱 설레지만 설렐수록 차분해지는 마음으로 저 분위기 있는 문을 지그시 밀어 연다.    


 

대학원 시절, 매주 음악치료 실습이 있었다. 실습은 바로 채점되어 바로 점수가 나왔고, 이걸 합산하면 그대로 학점이 되는 것이었다. 학교 다녀온 밤에는 그 채점표를 들고 점수 계산을 하고, 또 하고, 지난 번부터 다시 더하고, 또 더하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그러고 있다는 인식도 잘 못했다.

어느 과목에서 프로이드 심리학을 들었는데, 학부 때도 전공은 달랐지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름이 프로이드였고, 의식과 무의식, 자아, 초자아 등등이었다. 헌데 그날 수업에서 '여러분이 인식하는 자신은 5%에 불과한 것 아세요? 나머지 95%가 이 빙산 아래 무의식이라는 것이죠' 라는 교수님의  말이 확성기에 대고 하는 말처럼 크게 들렸다.

그리고 수업 마치고 집에 가서 다시 실습 채점표를 꺼내들고 있는 나. '왜 이렇게 뻔히 아는 점수 계산을 하고 또 하고 이러지?' 하고 멈췄다. '무의식적으로 뭘하는 거지?' 하면서.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었다. 0.5이 도대체 어디서 깎였는지, 동기 중 누구누구는 점수가 어떻게 됐을까, 이런 불안은 다음 학기 장학금에 가 있었다. 다음 학기 장학금을 탈 수 있을 것인가가 불안해질 때마다 점수 계산을 하고 있었다.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경험이었고 '무의식에 이끌려 다니는 나'를 확 인식하는 계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이라는 것에 정말 관심이 많았다. 나도 모르겠는 내 마음이 너무 버겁고 궁금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그때는 대체 내 고민이 뭔지도 모르고 고민을 했다.

대학원 마치고 풀타임 일을 하면서 돈도 나오고 일도 빼주는 교육 시간이 있어서 MBTI를 배우게 되었다. 융 심리학에 낚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만난 융심리학을 통해 그렇게나 궁금하던 '마음'에 관한 지도 하나를 보았다. 이때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고 혼자서 융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에니어그램을 만났는데 이젠 더 빠져나올 수 없는 형국.

마음에 대한 관심은 다름 아닌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이었다. 다른 말로 나에 대해 진실하게 살고픈 마음이었고, 무엇보다 내가 신앙하는 대로 살고 싶은 소원이었다. 가장 표면적으로는 지겹도록 여기 저기서 고백했던 '관계'에 대한 콤플렉스 같을 것으로 드러나곤 했다. 융 공부는 그냥 공부라 아니라 삶과 마음과 영혼을 바꾸는 수행 같은 것이었다.

몇 년을 독학으로 읽고 또 읽으며 배웠다. 그 끝에서 최근 몇 년은 학위과정 부럽지 않은 강의를 듣게 되었으니 나는 자꾸 열리는 이 자동문에 뭐라 이름을 붙여야 할 지 모르겠다.

 

속고 속이는 게 세상사, 사람관계라지만 내가 주구장창 속이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내 바람은 그 누구보다 나를 속이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 가장 정직한 내 모습을 가지고 나가고 싶은 갈망이다. 우리 나라 첫 번째 융 분석가라 불리는 이부영 선생님께 배우셨다는, 은퇴한 상담심리 전문가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또 하나의 문이 열렸다. 이부영 선생님의  책 <자기와 자기실현>, <아니마와 아니무스>, <그림자>를 새까맣게 메모를 달며, 밑줄을 긋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전율하며 읽었었다. 그분의 초기 제자라는데... 이 강좌 신청할 때만 해도 전혀 모르던 정보였다. 융선생님 나를 낚아서 엮어서 질기도록 끌고 다니신다.


이 문을 닫을 때 나는 다시 어디로 가 있을까?
문만 열면 다른 세상으로 가 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내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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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다섯이서 스터디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짧으면 세 시간, 길면 여섯 시간 모임인데 대충 3교시로 진행됩니다.
1교시 (성찰)일기 나눔,
2교시 (헨리나우웬 신부님의 책등) 영성관련 독서나눔,
3교시 에니어그램 스터디.



상담심리,
청소년상담,
가족치료,
기독교교육,
음악심리치료를 각각 공부한 사람들인데
아이러니한 공통점은 모두 일로서의 '상담'을 싫어한다는 것.
또 아이러니한 건 사람들이 괜시리 찾아와 이야기 나누고 싶어하는,
힘든 일 있을 때 제일 먼저 찾아가고 싶은 언니(저보단 다른 언니들이 그렇단 말씀),
이런 식으로 상담을 부르는 캐릭터라는 것.



이 공부의 연장선으로 같이 뭘 해보자고 의견을 모으는 중
각자 하는 강의와 상담영역을 취합하니 다양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와, 이거 너무 다양해서 저렴해 보이는데! 하는 순간
"이름은 다이소로 해야겠네."
다이소, 다이소, 하며 박장대소 했습니다.
조만간 심리와 영성을 아우르는 <내 영혼의 다이소>를 선보이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수강료와 상담비는 균일가, 천 원?



예, 저는 '내 영혼의 다이소' 소장 정신실이구요.

 

 

* 사진은 언젠가 모임에서 점심으로 먹은 건데 다섯 개 접시에 다양한 먹을 것이 꼭 다섯 아줌마 같군요. 제가 차린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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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내게 책받침의 불국사 사진, 석굴암 사진으로 각인된 곳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단 한 대의 버스를 놓친 느낌이랄까. 내 얼굴만 빠진 불국사 앞 수학여행 사진 한 장 같은 것이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가지 못(않)았다. 수학여행 기간 동안 학교에 나가 몇몇 아이들과 텅 빈 교실에 앉아서 자습을 하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수학여행 기간에 주일이 끼었다는 것을 알고는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담임 선생님은 물론 기독교반 지도 선생님까지 그러지 말라고 했고, 뜻을 굽히지 않자 화도 내셨다. 결심이 굳었으나 정작 수학여행 기간은 몹시 힘들었었다. 반에서 제일 웃기고, 제일 잘 노는 축에 드는 편이었다. 비록 내가 선택한 일이고, 자초한 상실감이지만 놀짱 여고생에게는 생각보다 더욱 힘들 일이었다. 친구들에게는 '나의 수학여행 사진'으로 남는 경주 불국사가 내게는 책받침 사진일 뿐이라는 것이 평생을 가는 상실감일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대신 이 사건은 내 신앙행전에 엄청난 간증이 되었다. 두고두고 자랑으로 여겼고 자부심 넘어 자만심으로 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젊은 시절에 '주일 성수'로부터 시작하여 신앙적 열심에 관한 한 나를 따를 자 없다는 자뻑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우월감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모르는 상태로 지냈다.
이래저래 머리가 커지면서 종교적인 행위가 신앙의 전부라고 여기던 나 자신이 부끄러운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수학여행 무용담은 입 밖에 내지 않게 되었다. 대신 고등학교 시절의 나처럼 규율에 매여 있는 신앙인들을 저급한 종교인 취급을 하면서 무시하고 비난하며 지냈다. 그러면서 나의 수학여행전(傳)은 아예 까맣게 잊고 지냈다. 나의 그 시절이 부끄럽다 여길수록 더욱 합리적, 지적인 크리스쳔으로 보여지려 애를 썼다. 그 시절 나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 - 주일성수를 비롯해서 신앙적 규율을 목숨처럼 지키려는 사람, 입만 열면 하나님 얘기를 하는 사람들, 순수하게 믿는 바를 표현하는 사람들까지도 - 을 보면 어쩌면 저럴 수가 있느냐고 비난했다. 그런데 그게 실은 나의 과거, 즉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수용하지 못함이었다.


공교롭게도 안타까운 참사가 있었던 시기에 가족들과 경주에 있었다. 석굴암 가는 길에 큰 아이와 수학여행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딸에게 들려준 것이 위에 적은 내용들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이 나이가 되어 생각해보니 고등학생이었던 엄마가 대견하다는 생각도 드네. 그때 학교에 남아 자습하고 있었던 모습을 생각하니 가엾기도 하고' 생각지 않게 내 입에서 나온 말로 고등학교 1학년의 나를 어른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래도 대견하다. 그 나이에 소신껏 뭔가를 지켜낼 줄도 알고. 그런데 친구들이 부러웠을까. 텅 빈 교실에 앉아 있던 며칠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었을까. 뭘 안다고 딸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렇게 토함산 오솔길을 걸었는데.... 고1의 나와 화해를 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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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2



얼마 전 음악수업 나가는 어린이집에서 재롱발표회가 있었다. 나는 거기서 사회를 봤고. 발표회 다음 날 수업이 있었는데 날 보자마자 아이들이 모여들어 떠들어댔다. 으막션샘미 어제 우리 만났쬬오~ 우리 율동할 때 옆에 서 있었쬬. 마이크 들고 얘기했쬬. 그래, 너희 어제 진짜 멋지더라. 너무 멋있어서 선생님이 깜짝 놀랬어. 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으막션샘미 어제 늙었어요. 잉? 선생님이 늙어? 네, 으막션샘미 어제 이렇게 치마 입고 얼굴이 늙었어요. ! ㅜㅜㅜㅜㅜㅜ 수업할 때는 거의 맨 얼굴이었고 사회본다고 신경써서 풀메이크업한 거였다. 그리고 며칠 후, 강의가 있어서 오랜만에 다시 화장하는데 그놈 목소리가 귀에 쟁쟁거리며 급 의욕이 떨어지면서 얼굴에 그림이 안 그려졌다. 으막션샘미 얼굴이 늙었어요오오오. 화장할수록 늙어가요오오오. 늙었...... 늙었.....

화장실2

♠♠ 
한 두 번 결석 후 오랜만에 수영장에 갔더니 60대 언니(선수끼린 그렇게 부른다.)께서 왜 안 왔냐고, 절대 빠지지 말라고 당부에 당부를 하신다. 수영을 나보다 훨씬 잘 하시는데 선두에 서는 걸 너무 싫어하신다. 나를 선두에 세워놓으시고 빠지지 말라고 늘 타박이시다. 다음 달부터 월수금 반으로 옮겨갈 것 같다고 했더니 도대체 왜 옮기는냐, 이제 나도 그럼 화목엔 안 나올 거다. 겁나 따라다니며 추궁을 하셨다. 화, 목요일에 일이 있어서 바꾸게 됐다고 했더니 시간을 다시 조정해라. 중요한 것에 먼저 시간을 빼는 것이다. 화, 목 비우고 다른 날에 일을 봐라 하시며.... 그렇게 안 된다며 웃었더니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냔다. 음악치료를 한다고 했더니.... 조금 당황하신 듯 멈칫! 하시더니. 어디 몸이 안 좋아? 뭐? 어디가 안 좋아서 음악치료를 받어? 하셨다.


OTL 
 


♠♠
 
다섯 살 아이 눈에는 열심히 쳐발라 예뻐졌다고 생각하는 화장발 내 얼굴이 '늙게' 보이는구나. 인생 사실 만큼 사신 60대 어르신께는 내가 음악치료를 하기보단 받게 생긴 여자로 보이고. 아,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보는 나가 이렇게 다르다니. 오늘도 저녁에 강의가 있어서 풀메이크업이다. 음악치료를 하기보단 받게 생긴 나는 풀메이크업으로 얼굴을 늙게 만든 후에  총총 집을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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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아이들의 비밀 같은 마음에 노래로 노크하는 음악치료사이고,
몸과 마음이 말랑하기 그지없는 아기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음악선생님이다.
사랑을 기다리는 젊은이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다 연애강사가 되었고,
어긋난 관계의 화해와 회복에 골몰하다 MBTI 강사가 되었다.
사랑을 말하지만 궁극의 자기숭배자로 분열된 삶을 살며 참된 성화의 길을 찾아 헤매다 에니어그램 통한 내적여정 안내자가 되었다.
말에서 마음을 듣는 귀, 일상에서 영원을 발견하는 눈을 선망하며
커피 마시고
, 사랑하고, 기도하고, 글 쓰며 살고 있다.

저서로는 스토리가 있는 연애 서적
<오우연애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연애를 주옵시고>,
남편과 함께 쓴 결혼 이야기 <와우결혼 :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이 있다.

 


저자소개를 썼다는 것은 이제 출산이 진통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책 아가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
조금만 더 힘 줘. 힘 줘.
이 단계에서 힘은 저자가 아니라 편집자님의 고통이 남은 것이죠.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 출산? 출간? 임박입니다.
이번 저자소개의 컨셉은 '마음'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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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읽을 책 또 읽기'로 쏠쏠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가까이는 몇 년 전, 
가장 오래된 책은 20년 전.
읽을 때마다 무슨 자동녹음 장치처럼 남편의 귀에 대고 반복 play다.
'대체 그때 이걸 이해나 하고 읽었던 거야? 뭘 읽었던 거야? 도대체'


오랜 시간 내 젊은 날에 대해서,
아니 지금 이전의 나에 대해서 속으로 부정하고 지우고 구박하며 살아왔다.
물론 그럴수록 외적으론 더욱 나의 과거를 과대포장하며 과도한 자부심을 놓지 못했다.
한동안은 그런 젊은 시절을 싹 다 지워버리고 싶단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싫었던 어제의 내가 조금씩 덜 부끄러워지는 것도 
나이들며 내게 생기는  참 좋은 변화 중 하나다.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지적인 허영심에 눈으로만 읽은 책이라 할지라도
그나마 뭐라도 배웠기에 지금 이 모양이라도 되어 있겠지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다시 보려고 꺼내보니 1993년에 읽은 책이다.
20년이 더 넘었다.
책 안쪽에 보니 친구와 카페에 앉아 노닥거리며 끄적인 낙서가 있다.
'내 친구 미애는,
김현의 비평을 재미있는 척,
쉬운 척 읽는 아이.
신통력 있는 척'
이라고 내가 적었고.
'모든 지성은 한미애로부터 나오고....
동시대 식사문화의 시작과 끝에는 정신실의 감성이 꿈틀대고 파도를 쳤다.'
친구가 적었다.


그때 우린 KFC에 앉아서 치킨을 뜯으면서
왜 시대가 우리의 천재성을 알아주지 않는지에 대해서 얘기하다 진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물론 진짜 이유는 그날 직작상사에게서 기분 나쁜 소릴 들었다거나
그지같은 소개팅남과 (나도 별로 맘에 안 드는데)
괜히 지가 미안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전화통화를 하고난 탓이었을 것이다.
나름 귀엽긔. ㅎㅎ
연애강의를 하며 얻은 보석 중 하나가 젊은 날의 나와 화해하기이다.
중년 이후의 삶의 여정은 모든 과거와의 화해의 여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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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Piano>에 연재하던
'음악치료의 세계' 마지막 글이 실린 12월호를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올해의 10대 뉴스를 꼽자면 상위 1,2위 안에 드는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내 그릇에 넘치는 일이라고 여기면서도 거절하지 않고 덥석 수락한 것을 자주 후회했지만
이렇게 결국 끝을 보았습니다.
부끄러움으로 아주 개운한 끝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좋습니다.
전문적인 음악잡지에 글을 쓸 깜냥이 아닌데 은총이라 생각합니다.


신찬 기자님, 고맙습니다.
얼굴은 뵙지 못했지만 조용하게 타들어가는 흰색 초와 은은한 향으로 기억되는
소중한 만남입니다. 
덕분에 음악치료사로서 살아온 십수 년을 의미있게 정리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닿는 인연들이 하나 하나 소중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스쳐지나는 인연이라도 귀하여 여겨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드는 한 해였구요.
연재를 시작할 때 페북에 <나의 전공>이라는 글이 있더군요.
막막한 마음으로 쓴 글인데 연재를 마치면서 읽어봤습니다.
확실히 글을 쓰면서 전공에 관련하여 삼류의식, 열등감 같은 것들을 보다 직면하고
아주 조금은 당당해진 것 같네요.



[나의 전공]

 

1.
원하는 대학 원하는 전공이 아니었다. 무슨 '유아교육'을 학문으로 하냐? 는 비아냥거림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은 사실 내 존재를 향한 비아냥거림과 열등감이었다. 그래서 대학 4년 내내 전공 책은 가방에 손에는 여성학 책을 들고 다녔다. 그래도 학교를 졸업하고 유치원 선생님은 되었다. '자(自)'는 모르겠지만 '타(他)'는 인정하는 천직이었다. 원장선생님, 학부모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인기짱인 선생님이었다. (깔때기지만 내용은 진짜읨) 천직일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몸매 쥑이는 여자가 하의실종 패션으로 옆을 스쳐갈 때 눈을 뺏기고 마는 남성들처럼 지나가다 아기만 보면, 어린 아이들만 보면 입을 벌리고 눈을 떼지 못한다. 가끔 혼자 있을 때도 수업 중에 만난, 또는 가까이 지내는 이쁜 아가들을 떠올리며 가슴을 설레고 입술을 깨물곤 한다. 아이들 눈높이 맞춰 얘기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고, 아이들 웃기는 일이 또한 그러하다. 그러니 천직일 밖에.

 
2.
유치원 교사를 하면서 '음악'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하고 내내 '음악영역'에 대한 연구만 했다. 교구를 만들어도 음악교구만,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음악파트를 맡는 전담교사를 자처했다. 그리고 곡절 끝에 유치원 교사를 접고 돈을 모아 음악치료 대학원 2기로 진학을 했다. 열 명을 뽑는 입시에서 차석으로 입학을 했고, 처음으로 음악치료 실습을 하는 수업에서 교수님께 '음악치료의 귀재'라는 평을 들었다. 명문대 음대 출신의 동기들을 제치고 말이다. 정신병원으로 실습을나갔을 땐 참관하는 의사가 회식 자리에서 그랬다. '환자들 앞에서 저보다 더 편안하시고 능수능란하신 것 같아요.' 그러니 음악치료사 역시 '천직'이 아니겠는가. 대학에서 강의도 몇 학기 했다.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에게 몇 년의 임상을 정리하며 나름 음악치료에 대해 잘 이해시키고 가르쳤다. 


3.
임상 몇 년 후에 모교에 박사과정이 생겼다. 음악치료의 귀재로서 일착으로 시작해야 했으나 사실 음악치료를 하면서도 역시 유아교육을 했을 때와 같은 부적절감을 느꼈다. 이번에는 학부전공이 음악이 아니라는 열등감 때문이었다. 음악을 전공한 친구들의 음악적 능력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쓰는 음악들은 늘 이류나 삼류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꾸준히 음악치료사로 일하면서 풀타임이든 파트타임이든 공부하는 남편을 대신해 빠듯한 생활을 하기 위한 수단은 되었다. 물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천히 자라는 아이들'과 세상 누구와도 부르지 못할 노래를 불렀고 눈빛의 교감을 했던 시간이었다. 단지 그것 하나 좋았다. 아이들과 눈 맞추고 노래하고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 순간 아이와 내가 연결되는 깊은 결속의 느낌. 그러나 어느 새 임상(만)을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졌다. 공부를 다시 시작할 엄두도, 내 이름을 걸고 치료센터를 차릴 배짱도 없다. 그러나 주구장창 아이들과 뒹굴기엔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4.
얼마 전 남편과 새해의 계획들을 이야기 하며 '이제 음악치료는 다 접어야 할까봐.' 했다. 그 얘기를 한 다음 날 특수교사 선생님 한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교 음악치료를 하면서 내가 만난 최고의 특수교사 선생님이었다. 음악치료에 관한 책을 내도록 돕고 싶어 했었는데 그 때 역시 내 음악치료는 삼류라는 열등감 때문에 밍기적거리는 것으로 거절을 했었다. 언제든 다시 그 선생님의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 분도 학교를 옮기고 나도 멀리 이사를 했는데 우연히 서로 멀지 않은 곳이다. 다시 만나 음악치료를 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한 음악잡지로부터 음악치료에 대한 글을 기고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담당 기자분이 내 글들을 알고 있었고 조심스레 추천을 한 것 같았다. 잠시 신비감에 휩싸였다.


5.

천직 같은 전공을 두고 왜 나는 늘 부적절감을 느끼고 맴돌기만 했을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르치고 치료하면서 왜 난 늘 삼류라는 생각을 했을까? 전공에 관련된 글 한 줄 쓰지 못하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쓰고 강의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새로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전공을 부전공처럼 여기며 살던 20여 년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뭔가 늘 부족하다 여겨지는 지금, 여기를 오롯이 살지 못하고 환상을 좇아 분주한 내 영혼을 제대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더불어 이래도 삼류, 저래도 삼류라는 열등감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6.

하여, 오랜만에 긴 호흡으로 주절거려보는 것은 새로운 영역의 글을 쓰기 위한 발동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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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길이 열리고 생각지도 못한 결론을 맺는 경우가 있다.
글을 쓰는 묘미 중 하나이고, 글쓰기가 치유나 자기성장으로 가는 지점이기도 할 것이다.
글 뿐이 아니다.


무엇인가에 대한 갈망.
갈망을 오래 붙들고 있다보면 생각지 못한 곳에 다다르고,
잠시 목을 축였나 싶으면 금방 또 다른 목마름으로 무언가를 갈망하게 된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때 '갈망'하게 되진 않는다.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지점에서 다른 어떤 것을 갈망하게 된다.
그것이 내게는 행복, 성장, 통합 이런 것에 대한 갈망이었다.
미성숙하고, 분열되어 있고, 이런 저런 불화로 행복하지 못한 고통이 있었다는 것이다. 


글을 쓰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생각의 길을 찾아 생소한 결론에 다다르는 것처럼,
오랜 갈망을 붙들고 살다보니 생각지 못한 길을 걷다가 낯선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생각지 못했던 결론을 썼다 할지라도 하더라도 애초 전혀 내게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낯선 곳이라고 하지만 내 영혼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그리웠던 어떤 지점일 수도 있다.
가을 초입부터 듣기 시작한 강의가 끝났다.
소름 끼칠 정도로 내가 찾던 바로 그것들을 만나는 시간이었는데,
그 풍성함을 발설할 수가 없다.
그저 목차 정도 적어 놓고 싶다.


. 그리스도교적 인간이해
. 영성과 심리 - 통합적 영성
. 심리발달과 영성
. 자아와 성숙
. 감정 - 영혼의 보물
. 전환기 영성- 중년기와 노년기의 영성

. 자유와 변화 - 고통과 성장
. 회심과 사랑


이 건조한 제목 아래서 적어도 내게는 지난 7년 전,
길게는 새로운 전공을 선택했던 16,7년 전,  
더 길게는 교회 언니랑 밤 늦도록 삶에 대한 궁금증을 나누던 30여 년 전을 
오가며 오래 품었던 질문을 떠올리고 답을 찾는 시간이었다.

그 답은 렘브란트의 저 그림 한 장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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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그것도 남편의 설교를 퍼나르는 일은 조금 오글거리는 일이지만 참 좋아서요.
오늘 남편의 새벽설교 내용인데 교회 홈페이지에서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2, 3번의 내용, 그리고 기도가 오늘 내 마음에 깊이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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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잠언 21:1-31

잠언은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지혜’교과서입니다. 잠언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삶의 준칙으로 삼으면, 하늘백성으로 산다는 것의 묘미를 맛보게 됩니다. 잠언에 기록되어 있는 수많은 경구 중에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경구일 것입니다(잠 9:10). 그것이 하나님나라, 제자학교의 교과서 제1장 제1조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앞에서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는 ‘겸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왕의 마음을 임의로 인도하신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잠언 21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그 앞의 겸손’이라는 이 두 전제를 바탕으로 해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1절)
고대 근동에서 왕은 힘과 지혜의 상징입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대 최강자가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강한 자가 없고, 그보다 더 지혜로운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잠언은 이 지극히 당연한 상식에 도전을 합니다. 하나님은 왕의 마음도 당신 뜻과 당신 섭리대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왕일지라도 때론 막고, 때론 끌고, 때론 높이고, 때론 낮추시는 것이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요 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왕도 임의로 인도하신다’는 이 교훈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무엇이겠습니까? 30-31절을 보십시오.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30-31절)
아무리 높은 지혜도, 아무리 깊은 명철도, 아무리 뛰어난 모략도 하나님과 견줘봐야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끼리는 하버드대학 나온 사람이 대단하고, 아이큐 150이 천재이고, 5개 국어를 구하시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1억’이라는 숫자가 ‘무한’이라는 숫자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피조물의 지혜는 창조주의 지혜 앞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의 선한 의지도 하나님 앞에서는 악의 일부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경건이 하나님 앞에서는 영적인 불결함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헛되이 자만하지 말고, 하나님과 맞서지도 말고, 이 세상의 마병을 의지하지도 말며, 오로지 지혜와 힘의 최강자 하나님 손에 붙들리기만을 희망해야겠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2. 하나님은 마음의 동기를 감찰하신다.


하나님의 크신 지혜 앞에 겸손하게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은 결코 자만하지 않습니다. 항상 자신의 내면세계를 샅샅이 살펴보며, 성찰하는 사람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2절)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합리화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욕망의 정체를 애써 외면하고, 욕망을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해서 자기 자신을 설득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합리화의 귀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감찰하다’는 말은 ‘저울로 무게를 재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의 동기의 무게를 재시며, 우리의 순수성과 진정성이 순도 몇 %인지 정확하게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동기를 아신다’는 이 잠언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돈을 버는 목적뿐 아니라, 돈 버는 수단과 방법의 정직성의 무게를 재시는 분입니다(6절). 타인에게 주는 선물이 진심으로 하는 축하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가장한 거래요 뇌물인지도 하나님은 아십니다(14절). 만면의 미소를 띤 얼굴의 표정 또한 영혼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인지 마음을 속이기 위한 더러운 가면인지 우리는 혹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29절). 그러므로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내면을 낱낱이 드러내고, 매일매일 부패한 내면을 영혼의 의사이신 주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 말씀으로 속사람의 동기를 비추고, 성령으로 추악함을 도려내는 자가 진짜 지혜로운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은 삶이 담보된 예배를 기뻐하신다.
안타깝게도 예나 지금이나, 잠언이 쓰여 진 시대나, 예수님 당대나, 지금이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망각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아둔함과 어리석음의 비극적인 결과가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3절)
하나님의 간택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울 왕의 어리석음이 무엇이었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나음’을 몰랐던 데에 있었습니다(삼상 15:22). 다시 말하면, 삶과 예배의 괴리입니다. 말씀 따로 실천 따로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일과 주중의 이원화된 삶, 교회와 일터의 이율배반적은 우리의 삶을 애통해하지도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잠언 21장, 3절 이후에 등장하는 악인은 뉴스에나 등장할 법한 나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쩌면 삶이 담보되지 않은 채 예배의 형식에만 집착하는 우리를 향한 고발인지도 모릅니다. 거지 나사로와 같은 이웃을 코앞에 두고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호의호식하는 자가 누구입니까(10절), 가난한 자의 배고픔은 외면한 채, 자신의 삶의 여가비를 구하는 어리석은 자가 누구입니까(13절), 사회적인 약자들의 탄식과 아우성의 소리에 귀 막고 눈 먼 자가 누구입니까(13절), 타자와의 공감, 이웃과 나누는 공평의 노력에는 단 한 시간도, 단돈 1천원도 나누지 않으면서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탐욕과 탐심에 찌든 사람들이 누구입니까(17절, 26절), 양심의 눈을 감은 채 불법으로 돈 버는 일엔 혼신의 힘을 다하면서, 그 돈으로 하나님께 바치며 일신의 안녕과 무병장수의 복을 비는 파렴치한 싸구려 종교인은 누구입니까(27절).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조국 이스라엘의 운명을 바라보며 미가 선지자가 외친 가슴 절절한 호소는, 단 한자도 버릴 것 없이 2700여 년이 지난 2013년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미가서 6장 6-8절입니다.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기도하겠습니다.

한 뼘밖에 되지 않는 우리 마음조차 다스릴 줄 모르면서, 한 주먹밖에 되지 않는 우리 머리조차 통제하지도 못하면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지혜도 없으면서, 하나님 없이 만용을 부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오직 하나님 손에만 붙들리게 해주십시오. 오직 우리 속사람의 숨은 마음의 동기를 볼 줄 아는 믿음의 눈을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예배가 생활화 되고 생활이 예배화 되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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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천 명씩 교인이 늘고 있는 교회에 다닌다. 총동원 주일이 있는 것도, 축복을 보장하는 설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는다.  교회가 이것을 딱히 반기거나 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저 조용히 예배 공간을 마련할 뿐 이다.


개신교인이 수가 줄고 있다는 통계에 역행하는 이 현상이 무엇인지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새가족 환영회에 가보면 천 명의 사람들의 천 개의 이야기 그
...공통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목회자의 전횡에, 복음에 위배되는 설교에 다칠 만큼 다치고 상처받을 만큼 상처받은 분들이다. 오랜 시간 방황하며 그나마 인터넷 설교로 위로받으며 지내오신 분들. 목사를 대적한다는, 교회를 분열에 빠뜨린다는 오명을 뒤로 하고 오신 분들이 다수이다. 그러니 이분들을 수평이동이란 잣대 하나로 비난해서도, 이들을 아프게 품는 교회를 향해서 대형교회라는 이름으로 싸잡아 도매금으로 넘겨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의 아픔과 위로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런 주일 씁쓸한 마음 어쩔 수 없다.



예배를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교인들이 지하철을 내려 환승을 위해 움직이는 무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옆 사람 누군지 모른다. 예배 마치고 나온 교우들로 가득 찬 교회 앞 파리바게뜨. 구역원의 생일을 챙기려는 것으로 보이는 청년 구역장이 좁은 구석에서 케잌을 들고 어쩔 줄 모른다. 아이 간식을 사는 젊은 부부 역시 방금 예배를 마치고 나온 교우. 그리고 나. 우리 모
두에게 서로는 모르는 사람이다. 서로의 눈 속에 환대의 빛은 찾을 수 없다. 빨리 비키기나 하라는 듯한 태도와 눈빛. 한없이 쓸쓸해졌다. 교회란 무엇일까.




올해 단풍은 희한하다.
붉은잎과 초록잎이 저러고 공존할 수 있다니.
이 낯설도록 분열적인 나무에 자꾸 눈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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