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떨어진다, 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든 듯
저기 아득한 곳에서 떨어진다.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밤마다 무거운 대지다.

모든 별들로부터 고독 속으로 떨어진다.


우리 모두가 떨어진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진다.

다른 것들을 보라 떨어짐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이 떨어짐을 한없이 부드럽게

두 손으로 받아내는 어느 한 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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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zine>에 연재했던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 하는 내적여정'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마지막 관문, 서문쓰기를 마쳤습니다. 열흘 걸려서 썼습니다. A4 6면의 글이지만 논문 한 편을 쓰는 기분이었습니다. 사실 에니어그램 공부를 처음 시작한 지난 2007년부터 이전의 전공을 모두 잊고 여기에 미쳐 살았습니다. 심리학과 영성 사이에서, 가톨릭 영성과 개신교 영성 사이에서 방황하고 헤매면서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그 사이를 오가며 참 외로웠고, 외로울수록 치열하게 독서했으니 6년 간의 자습식 학위과정이었습니다. 전공은 에니어그램, 부전공은 커피.


긴 서문을 쓰는 동안 테이블 한 켠에는 참고도서가 쌓여 있었고, 몇 년 동안 성찰과 꿈을 기록한 일기장을 수시로 펼쳐보았습니다.  메시지 신약을 옆에 두고 글을 시작할 때마다 요한복음을 펼쳐서 온전한 신이며 온전한 인간이셨던 예수님을 찾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간간이 눈을 들어 탕자의 귀향에 눈을 맞추고 탕자의 맨발, 아버지의 각각 다르게 생긴 두 손을 오래 응시했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중간에 끼인 자'로서의 6년. 배우고,  읽고, 피정 가고, 상담받고, 쓰고, 기도하며 지낸 그 세월을 돌이켜보니 고독했을 뿐 외롭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 잘 만들어져 저 같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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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참 좋아하는데요.
비 오는 날 참 좋아하기 때문에
비 오는 날 일하러 나가려면 참 싫은데요.
악기 들고 나면 우산 들 손이 없는데요.
그러다 보면 엉뚱하게 남편한테 불똥이 튀는데요.
나 같이 불쌍한 여자가 어디 있느나며 속으로 소설을 한 편 쓰곤 하는데요. 

비오는 날 집에 있으니까 너무 좋은데요.
게다가 애들은 일명 천국이라 불리는 할머니 댁에 가서 집에 없는데요.
깨끗하게 치운 거실에 조용히 혼자 앉아 있으려니까 좋아 죽겠는데요.
어젯밤 늦게까지 놀다 간 꼬맹이의 흔적이 빨간 자동차로 남아 카펫 위에 있는데요.
자동차를 보니 그 녀석 어른 같은 말투가 생각나 혼자 웃었는데요.

비 오는 날 집에 혼자 이러고 있으니 참 좋은데요.
며칠 조용히 '영혼의 사경 헤매기'를 경험한 터라 더욱 고요한 마음인데요.
오늘 하루 종일 원고 써야 하는데요.

이 생각을 하니 갑자기 무서워지는데요.
그래도 비오는 날이니까 왠지 잘 써질 것 같은데요.

비 오는 날 무척 좋아해요.
열심히 쓰다가 쉬는 시간에는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한 번 들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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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바닥이 버석버석해."
"그치? 청소기 돌려야 하는데... 여유가 없어. 내일 아침에 청소할거야."

이렇게 대답을 해놓고
기분 좋게 깜짝 놀랐습니다.
'어, 비난으로 들리지 않네. 어!'

신혼 초에는 웬만한 말은 다 비난으로 듣는,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많이 뒤틀린 여자였습니다.

그때 이 말을 들었다면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그랬을 것입니다.
'이런, 들켜버렸어. 깔끔한 여자가 아니라는 걸. 못 들은 척하고 내일 청소해야지. , 깨끗할 때는 칭찬 한 마디 할 줄 모르면서 흠을 찾아내는 데는 빨라요.'

한두
해 지난 후에는 대번에 이렇게 말하게 되었죠.
'청소하려고 했어. 바닥이 버석거리면 좀 먼저 청소기 돌리면 안 돼? 누구는 청소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나? 바쁘니까 그렇지.'
그러면 으레 돌아오는 반응.
'당신한테 뭐라고 한 거 아냐. 진짜야. 왜 삐지고 그래. 왜 이래~~ 왜 이래~~~'

내 안에 비난의 목소리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에 대한 비판을 줄이고 싶어도 되지 않아서 몸부림이었는데 타인에 대한 비난은 결국 내 안에 가득한 자기비난의 투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잔소리쟁이, 간섭꾼 우리 엄마는 뭘 해도 잔소리를 했고 한 번에 '잘 했다'하는 적이 없었죠.
엄마의 잔소리가 그대로 내 마음에 자기비판의 목소리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것을 알고 난 이후에는 바닥이 지저분하다는 남편의 말에

'이건 비난이 아니야. 감정반응을 할 필요가 없어. 남편의 말이 비난이 아닌데 내가 나를 비난할 필요가 없는 거야. 그런 소리 들어도 괜찮아. 바쁘면 청소 좀 안 할 수 있는 거지.'
라고 애써 다독였습니다. 애.써.서. 습관처럼 올라오는 자기비판을 어르고 달랬지요.
최근 몇 년은 이런 노력을 하면서 지낸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남편의 말에는 진심으로 거침없이 '내가 요즘 원고 때문에 내 정신이 아니야.
맞어. 바닥이 그런 거 나도 느끼고 있었는데....' 사실(fact) 그 이상으로 확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몇 년 기도하며 가꾼 마음의 나무에서 작은 열매 하나를 따는 느낌입니다. 


<비판의 기술>이라는 책의 서평을 쓰고 있는데 마음의 여정이 함께 진도를 나가 주네요. 자기비판, 자기처벌은 외부로 투사되어 타인에 대한 비난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비판이 많은 사람은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을 못마땅히 여기고 가혹하게 대하는,  가엾은 사람입니다. (저처럼 말이죠.ㅠㅠ)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이 책을 정독만 세 번, 틈틈이 꺼내 읽기는 무수히 했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신학적으로 분별이 필요한 책이지만 자기 정죄에 대한 귀한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 역시 이 부분에 관해 잘 설명하고 있지요. 귀한 가르침을 준 두 책의 저자, 존 제콥 라웁 수사님과 안셀름 그륀 신부님께 감사의 꽃 선물을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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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머님 이사한 집에 다녀왔습니다. 어머님은 언젠가부터 작은 화초를 키우고 계십니다. 널따란 베란다 한 귀퉁이에 몇 개, 탁자 위에 몇 개, 아예 보이지 않는 베란다 안 쪽 창고 근처에도 한 두 개 흩어놓으셨길래 한데 모아 정리를 해드렸습니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바라보시더니 '화분이 벙글벙글 웃는다.'하셨습니다.


2.
아버님 돌아가신 지 2년 반이 되어갑니다. 아버님이 암선고를 받으시고 40여일 투병하시는 동안 정성들여 키우시던 화분이 시들어갔습니다. 돌아가시고 난 후에 시든 잎들을 정리하고 버리고나니 엉성해진 품새들이 그 자체만으로도 슬펐습니다. 한 개 두 개 없어지기도 하고 아침 저녁으로 칙칙이로 물을 뿌리며 돌보시던 그 화분은 아버님과 함께 다 거의 사라졌습니다.


3.
크나 큰 슬픔 속의 어머님은 작은 일에도 상처받으시며, 받은 상처를 어머니만의 방식으로 쏟아내시며 질곡의 시간들을 보내셨습니다. 어머니도 힘드셨고 그 곁을 지키는(아니, 사실 곁을 지켜드리진 못했습니다.) 이들이 다들 힘들었습니다. 막내 며느리에게 기대가 가장 많으셨고, 마음을 기댈 언덕으로 생각하시는데 그 누구보다 막내 며느리가 어머니께 가까이 가지 (못했)않았습니다.


4.
막내 아들 가정의 삶을 늘 자라스러워하시고 부러워하십니다. 작은 화분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하신 것도 오실 때마다 '화분이 참 잘 자란다.' 하시며 유난히 눈길을 주시던 우리집 작은 초록이들에 끌리신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채윤이 에미랑 얘기할 때 말이 제일 잘 통하는데 채윤이 에미가 전같이 않아서 많이 섭섭하셨을 것입니다. 채윤이 에미가 병원도, 피정도, 상담도 모시고 다니던 때가 그립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작은 화분을 모으며 그리움, 상실감 같은 것들을 달래셨겠지요.


5.
2주 연속 어머님이 혼자 지하철을 타시고 주일마다 우리 교회에 오셨습니다. 많이 칭찬해 드리고 점심도 사드리며 무한 격려를 했습니다.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낯선 곳을 가 보기'를 너무 귀찮아(두려워) 하셨고, 이 지점은 어머님의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중요한 결단의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난공불락처럼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난 두 주 연속 스스로 하셨습니다.


6.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로 누구보다 강한 사람으로 살겠다고 결심하신 어머니. 결심하신대로 누구보다 강한 사람, 완벽한 신앙인으로 살아오신 세월인데 그렇게 살기 위해 잃은 것이 많으십니다. 그렇게 잃으신 것들이 아버님 돌아가신 이후에 쓰나미 같은 고통으로 어머니를 덮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혼하고 어머니의 외로움과 아픔이 눈에 들어왔던 나는 어머니의 상담자, 치료자를 자처했습니다. 언감생심이었지요.


7.
내가 어머니의 치료자는 커녕 상담자? 아니 상담자는 커녕 말벗도 될 수 없다고 느낀 지짐이 있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나를 과신했는지,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혹사시켰는지를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아버님이 떠나시고 아버님의 화분이 하나 씩 사라져가면서 어머니와 쌓았던 진한 관계들이 다 끊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8.
좋은 징조들이 보입니다. 어머니가 혼자 지하철을 타고 움직이셨고, 채윤이 현승이의 어여쁜 마음이 할머니께 사랑으로 다가갑니다. 오늘 어머님 댁에서 화분을 정리하다보니 여기 저기 흩어져있는 화분이 꽤 되고, 모아 놓으니 그럴듯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것이 참 예뻤습니다. 줄을 지어 세워놓으니 몇 년 전 암사동 홈타운 살 때의 우리집 베란다와 싱크로율 90%였습니다. 어머니가 슬픔 속에서 키우신 생명들입니다. 탈상, 죽음의 옷을 벗는 순간이 조금씩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만 생각하면 막막한 절망감으로 기도조차 이어지지 않았는데, 어머니와 어머니의 하나님은 탈상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9.
요즘 어머니를 뵈면서 자꾸 입에서 '탈상, 탈상' 이 말이 맴돕니다. 오늘 매만져드린 어머니의 초록이들이 심증에 확증을 주었습니다. 햇볕을 쏟아 부어주시는 어머니의 베란다. 그와 달리 아침에 잠시 드는 볕으로 그럭저럭 잘 자라고 있는 우리집 초록이들. 이 녀석들도 멀리 있는 어머님 댁 초록이들에 공명하며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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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음악치료에 관한 글을 쓰느라고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꺼내 읽었다. 얼 마만인가. 결혼하기 전에 읽은 책이니. 생각해보니 20대 때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과 글을 열심히 찾아 읽었었다. 그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그분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렇게 잊고 있었음에도 내가 원하던 소설을 정확하게 한 방에 찾아낸 것이 신기했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머리로는 내가 꽤 괜찮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내면 깊은 곳에서는 그 반대이다. 진심으로 나를 믿어주지 못하고, 진심으로 스스로 칭찬하지는 못한다. 그런 내가 작년  맘때의 나에 대해서는 꽤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진심으로 내가 참 잘 했다 생각하고 있다.


작년 이맘 때 친정엄마가 고관절 골절로 수술하시고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 하기도 했다. 두 군데 요양병원을 거쳐 집으로 지팡이 짚고 돌아오시기까지 말로 하기 어려운 절망과 슬픔의 시간이었다. 그 기간  내가 참 잘 지냈다. 엄마의 거취를 결정하는 것, 엄마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어른스러웠다고 자부한다. 동생 부부를 비롯해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가장 아픈 것들은 내 마음에 묻어두고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엄마에게 엄마처럼 잘 행동했다. 위기의 순간에도 잘 벼텼다고 생각한다. 그즈음 <크로스로>에 엄마에 관해 쓴 두 개의 글이 증거자료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그러하듯 작은 외면적으로는 자뻑이 과대하기 때문에 그 일을 생각하며 두고두고 나를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의연했지?' 하면서. 그런데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읽으면서 깜놀했다. 중단편의 소설 속에 여러 '노인'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작년에 내가 맞닥뜨린 유사한 상황이 많았다. 그리고 전에 내가 그걸 읽으면서 유난히 공감하고, 쓸쓸해하고, 오래도록 여운으로 간직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작년에 엄마 문제를 그렇게 잘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순간 내 안에서 생성된 힘이나 지혜가 아니었다. 20여 년 전에 읽었던 소설 속에서 미리 체험했던 감정이고 그 간접경험으로 인해서 예행연습 된 일을 제대로 겪은 것이다. 아, 그랬구나. 현승이의 얼마 전 일기 '사실이 아닌 사실'이 떠올랐다. 스스로 알아낸 것 같지만 새로운 것을 알아낸 것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라는 것.


조금 충격이었다. 늘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다음 페이지 넘어가면 그 앞 페이지가 생각이 안 날 수가 있냐? 머리가 이렇게 나쁜가?' 생각하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분명 읽었던 책인데 다시 읽으며 너무 새로와서 화가 난 적도 많다. 도대체 책을 어디로 읽는 것이야! 그런데 이렇게 어디로 날아가지 않고 내 머린지 가슴인지 어딘가에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 튀어나오는 지혜도 있구나.


내 것으로 생각하는 통찰들, 지식의 조각들이 언젠가 어디서 배웠고 읽었고 들었던 것이라는 (남편이 주야장천 말해오던) 것을 가슴으로 알아들었다.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진심이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다 잊어버린 것 같아 속상하더라도도 너무 좌절하지는 말아야겠다. 20년 후 어느 날 딱 필요한 순간에 툭 튀어나올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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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햇빛이 통돌이 로스터에 스포트라이트로 쏘아주었습니다.

책꽂이 역시 조명좀 받았구요.
몇 장 찍는 사이 조명은 위치와 밝기가 금방 바뀌어 버리네요.


원고를 하나 마치면 다른 원고의 마감이 대기표를 받아놓고 있고요.
누가 보면 작간줄 알겠어요.
그 사이 사춘기 딸내미와 싸울 거 다 싸우고,
남편과 데이트 할 거 다 하고,
티슈남과 말랑거리는 대화 할 거 다 하고,
빨래도 하고,
음악치료도 하고,
틈틈이 놀기도 하고요.


그러다 만난 반짝!하는 거실 풍경에 마음을 멈추고 지금 여기를 자각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원고 하나 고고씽 하기 전에 블로그질로 발동을 걸어봅니다.
여기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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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강의를 간 곳에서는 시작 전에 꽃다발을 안겨 주셨습니다. 살짝 감동했지만, 다행히 주책 맞게 오버는 하지 않았고 '꽃이구나'하고 집에 왔습니다. 백합에 장미에 수국에, 무엇보다 소국이 조금씩 어우러져 있어서 헤쳐서 꽂아 놓으니 더 예쁩니다. 소국은, 소국은, 아 소국은 정말 저렇게 꽂아 놓고는 바라만 봐도 좋습니다. 왜 이리 소국이 좋을까요?


2.
이번 주에 두 번의 강의를 했는데 두 번 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강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단 얘기는 아닙니다. 마치고는 뭔가 마음이 묵직하다는 뜻입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얼굴이 어두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화요일엔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를 얻은 표정으로 돌아갔지요. 오늘은 강의 말미에 유난히 표정이 어두웠던 한 청년이 마음에 남습니다.


3.

에니어그램을 듣고 표정이 어두워져 돌아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매칭 프로그램에서 연애 강의를한 것이지만 말미에 '원가족'에 대한 얘기를 했으니 것도 역시 충분히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문제는 내가 못 견디는 것입니다. '긍정, 웃음' 이런 것에 내가 불필요하게 매여 있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못내 어둡고 고통스러운 것은 피해 가고만 싶은가 봅니다.


4.
10여 년 전에 처음 MBTI 강의를 할 때만 해도 나는 '긍정의 신'이었습니다. 혼신을 다해서 웃기고, 흥분한 상태로 강의하고, 그러고나면 만족감에 뿌듯해서 자뻑의 밤을 보내곤 했습니다. 어느 때부턴가 나를 잃을 정도로 흥분(몰입)한 상태에서 강의 하거나 지휘를 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내 열정에 취해서 쏟아내는 말들이 돌아서면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갈수록 차분해지는 강의가 맘에 들기도 하고, 몹시 못마땅하기도 합니다.


5.
얼마 전 공선옥 작가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담이었지만 '개그 콘서트 보면서 웃는 사람들 이해가 안 된다. 그게 도대체 왜 웃기냐. 그런 사회가 도대체 어쩌구 저쩌구....'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잘 듣고 있었는데 이 말을 하는 바람에 턱 막혔습니다. 딱 나에 대한 비난으로 들은 거지요. 개콘 보고 웃는 사람이 나요! 웃는 정도가 아니라 좋아서 죽어봐야 정신 차리는 열성팬이니까요.


6.
'개그 콘서트 보고 웃는 사람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아.'라고 하면 될 것이지 하등동물 취급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하등동물'은 순전히 듣는 입장에서 악의를 품고, 작정하고 오해해서 들은 것입니다요. 하등동물인 나 자신도 그렇지. 그거 그냥 '개그가 이해가 안 되나보다. 참 진지한 사람인갑다.' 하면  될 것을.... 생각해보니 상처를 깊이 받았더라고요. 개콘도 아닌데 갑자기 웃기네요.


7.
식구들 자고 잠도 안 오는데 원고나 좀 써볼까? 하고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 접속을 했는데 다음초기 화면에 개콘 관련 다큐멘터리가 떠 있네요. 다 보진 않았지만(안 봐도 얼마나 감동적일지 알지요. 자기를 비하해 웃음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실존이란) '이문재'가 나오는 부분에서 유심히 봤습니다. 이문재를 전에 '있기 없기' 때부터 찍었고, 언젠간 뜰 줄 알았어요.(뚜둡뚭뚜 뚜뚭뚭뚜) 그가 지독한 내향이라는 것도 냄새를 맡았었고요. 진심 짠하더구요.('있기 없기'가 편집되는 내용이었음)


8.
전에 몇 학기 대학에서 '음악치료'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심지어 그 학과 강의를 하면서 조차도 수업 중에 웃기지 못하면 죄책감이 느껴졌었어요. (참 병이라면 고질병이죠.) 요즘은 잘 웃겨지지도 않고, 웃기고 싶은 욕구도 별로 안 생겨요. 다만 웬만큼 웃기지 못했다면 죄책감은 늘 있지요. 에니어그램 강사가 되어서도 자신의 유형에서 여전히 맴돌고 있는 셈입니다.


9.
그런데 사실 괜찮아요. 웃기는 것에 여전히 집착을 하는 것도, 개콘이 너무 너무 재밌는 것도, 그러다가 자기성찰을 좀 한다며서 개그감이 떨어져 가는 것도 사실 다 괜찮아요. 다만 개콘을 비하하면 나를 비하하는 것처럼 느끼고 위축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것도 안 할려고요. '코미디에 죽고 못 사는 경박한 나'를 당당히 주장하려고요. 비하하는 주체가 공선옥 아니라 공선옥 할머니라도 말이지요.


10.
개그맨 이문재를 응원합니다. 내향형에 자신감도 썩 없어 보이는 청년이 '두근두근'에서 그 귀여운 표정을 보여주고 40이 넘은 아줌마까지 로맨스에 물들게 하니 말이죠. 무대 뒤에서 빡 긴장한 모습에 자신감까지 없어 보이는 것이 참 사랑스럽더군요. 자신을 변화시키지도 못하는 현란한 지적인 언어의 향연을 관람하는 것보다 개콘을 보며 바보같이 웃는 것이 덜 헛된 일인 것 같아요.


11.
내 비록 갈수록 개그감은 저하하고 있고, 웃긴 강사에서 살짝 지루한 강사로 추락(이라고 쓰고 성숙이라고 읽는다)하고 있지만 개그 콘서트나 우리 문재 오빠 같은 이들을 비하하는 말들, 용서치 않을 거잖나! 개콘 재밌쟎나! 웃기잖나!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잖나! 언제 한 번 빵빵 터뜨려보지 못했으면 함부로 뻥뻥 차대지 말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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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아침 교회로 향하는 길가에 양화대교 북단
거기 나직이 돋아선 옛 이야기 같은 언덕
오래 전 벽안의 사람들 가슴에 가득한 뜨거운 사랑 있는 곳
그 곁을 무심히 지나치는 나는
 
강변북로 위를 오가는 수 많은 사람들의 물결
거리 거리마다 흐르는 그 모든 이들의 가슴
언덕 위에 선 그 사랑
그 앞을 지나는 오늘의 우릴 본다면
그 곁을 지나는 내 가슴 속을 본다면
 
긴 겨울 같은 바람 흔들거리는 마음
아직 버리지 못하는 내 그림자와 같은 두려움
 
문득 그 언덕 위에서 십자가 하나 본 것 같아
이미 합정동 네거리 지나쳐 신촌 길로
다시 오던 길 돌이켜 그 밑에 달려
크게 한번 울어 버리고
모든 것 내려 놓고 잠시 쉬다 올 것을
 
주일 아침 교회로 향하는 길가에
양화대교 북단
 

                                                                                (한웅재, 시)

 

시인이 이곳을 지나치고 난 뒤 아쉬움으로 노래했다. 
'다시 오던 길 돌이켜 그 밑에 달려 크게 한번 울어 버리고
모든 것 내려놓고 잠시 쉬다 올 것을'

시인이 주일 아침 교회 가는 길에 스쳐 지나는 그곳에서 나는 주일 아침 예배를 드렸다.

누군가에게 '시'가 된 아쉬움의 자리를 무덤덤으로 오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곳에서 마지막 예배를 드리는 그날까지 놓쳐버릴 수 없는 아쉬움을 순간마다 일깨우며 이 자리를 향해야지. 생각한다.

100년 전부터 날 위해 준비된 것처럼 서 있는, 나직이 돋아선 옛 이야기 같은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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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세계에 산다는 것은,
새의 날개처럼 자유로운 것입니다.
이 宇宙는,
님을 향하여 춤추고 노래합니다.

나의 노래는

푸른 나무가 그늘을 만듦같이
깊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 마음은 나의 日常이며
내 삶입니다.

있는 듯, 없는 듯 바람 같은 나의 님.


가이없이 慈愛로우시고 잠잠한

그 분의 품으로 들어가 부르는 노래는
고요한 침묵의 노래입니다.

저 무명초에서 흐르는 침묵의 향이

곧, 진리의 제사요, 의 노래입니다.
아, 마지막은 침묵이니
소리 없이 하나님을 讚하는
그런 침묵이리니



님의 세계에 산다는 것은 새의 날개처럼 자유로운 것입니다.
시인의 이 한 문장에 마음의 무릎을 쳤고, 이 노래를 얼마나 반복해서 들었는지 모릅니다.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인이 '그 분의 품으로 들어가 부르는 노래는 고요한 침묵의 노래'라고 하였고 '마지막은 침묵'이라고 했습니다. 이 통찰을 얻은 시인이 자신이 깨달은대로 그 귀한 깨달음을 고이고이 '침묵'으로 간직했다면 이 시는, 이 노래는 내 가슴의 한 송이 들꽃으로 피어났을까요?

'새의 날개' 같은 자유로운 삶이 '침묵'임을 깨달은 시인이 깨달은대로만 충실했다면 말이지요. '자유'롭기 위해서는 '침묵'해야함을 알았지만 결국 침묵하지 않고 노래를 지어 부를 수 밖에 없었던 시인의 열정이 없었다면요. 그러나 그 열정은 시인의 깨달음에 반하는 것이지요. 그의 고백처럼 깊은 마음으로, 일상으로, 삶의 그늘로 흩어져 버리고 남은 것은 침묵이어야 하는데 시인은 노래를 합니다.

그것을 인식하는 자에게는 아픈 딜레마라고 생각합니다. 님의 세계에 사는 비밀, 침묵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그 비밀을 발견한 자가 그 비밀에 대해서 말하고 노래해야 하는 비루함이랄까요? 아이러니한 열정을 아슬아슬하게 붙들고 살기란.....

이 음유시인을 오랜 시간 좋아하고 들었지만 그를 먼발치에서 실제로 본 이후에 노래 그 이상으로 좋아하진 않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그 비루한 열정, 그것을 느꼈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것이라기 보다는 내 것이겠지요. 침묵으로 두어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까발리는, 그래야 이름 값을 하는 것이라 여기며 달려온 날들을 접으려 노력 중입니다. 열정이 '시'가 되면 아름다운데 그 이상이 되면 비루해지는 것 같고, 그 이상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책상 위에 칼로 금을 긋는 것처럼 분명하게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그 기준은 저마다의 '자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새의 날개 같은 자유로움 말이죠. 블로그를 제외한 모든 SNS를 끊고도 잘 살고 있음에 기쁜 날들입니다.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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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이유 대지 않고 '그냥' 만나는 만남이 있다면 사귀는 거 아닌가? 벙개! 이 한 마디에 그냥 만나는 언니들이 있다. 언니 중에 은근 오지랖쟁이가 있어서 장마 중 햇살 같은 경험을 했다. 여전히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었는데 이유 없는 벙개를 맞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런데 이 언니가 카페를 대절시킨 것이 아닌가! 택시도 아니고 진짜 카페를 차로 대절시켜서 약속 장소로 불렀다. 완전 맛있는 핸드드립 커피를 말이다. 우리만을 위해서 문을 연 카페에서 오락가락하는 비를 맞으며 선 채로 무려 블루마운틴을 마셨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바람카페'를 우리의 약속 장소로 부른 것이다. 바람카페는 바람처럼 움직이는 카페였고, 마침 그 바람이 우리가 벙개 친 지점에서 근거리에 있었고, 은근 마당발 언니는 그 카페를 발견했고 우린 마셨다.

향을 바닥으로 깔아주는 묵직한 공기, 산 내음, 만나면 좋은 언니들, 아저씨 손맛....
커피맛이 어땠냐고? 묻.지.마..

 

 

바람카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언니'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두 언니는 애초 교회 인연이지만 '언니'가 된 것은 블로그 인연이다. 한 언니가 교회 홈페이지 글을 보고 우연히? 필연히? 당시 내 싸이 클럽을 찾아와 열심히 댓글 놀이를 해주셨다. 여차여차 하여 그 언니 따라 티스토리로 이사를 했고, 이 두 언니와의 인연은 새롭게 시작되었다. 처음 셋이 만났던 날을 떠올려보니 7, 8년 전의 일이고 우리 집에서 월남 쌈을 앞에 두고 반갑지만 살짝 뻘쭘한 분위기로 만났었다. 또 한 언니는 블로그 이전부터 계신 언니님이시만 여하튼 셋의 만남은 순전히 티스토리 블로그를 통해서 무르익었다. 당근 언니님들의 오빠님들과의 만남도 특별하고 자연스러워졌다.

 

 

두 언니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여름의 초입, A를 만났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알게 되었지만 그다지 활발한 교류를 한 것은 아니었다. 짧은 글들이 페북에 올라오는데 '글이 맛깔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만나자는 연락이 왔고, 그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반가웠다. 길지 않은 시간 만났다. 거두절미하고 하는 얘기마다 공감이 터졌다. 몇 년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글로 봤던 느낌 그대로 감정의 오버가 없는 사람이라 더욱 좋았다. 헤어지고 나서 받은 메시지에서 '언니'라고 부르겠다 했다. 언니, 그래 언니다. 이것이 내 마음에 돌멩이 하나 떨어진 일이 되어 계속 동심원을 그리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내가 가진 콤플렉스 중 하나가 '언니, 오빠라고 부르기. 말 놓기' 이걸 너무 못한다는 것이다. 콤플렉스의 성질 머리가 그러하듯이 내게 안 되는 그것이 되는 사람 보는 일이 쉽지 않다. 초면에 '언니 언니, 오빠 오빠' 하면서 팔짱 끼는 더풀더풀함을 나는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미워한다. A가 내게 '언니'라고 불러줬을 때 심지어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 같기도 했는데 나처럼 아무한테나 '언니'라 부르지 않는 사람일 거라는 투사 때문인 것 같다. 여하튼, 의미 있는 '언니'였고, 언니를 언니라 부르지 못하는 내 콤플렉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코스타에서 다시 한 번 내가 '언니'가 되었다. 이번에는 S동생이다. '사모님이라고 하니까 불편하시죠? 언니라고 할게요' 만난 지 하루 이틀 만에 언니-동생이 되었다. 언니라 부르는 것이 안 되는 만큼 쉽게 '언니'라 불리는 것도 편치는 않다. 헌데 이번에도 '이힛!' 좋은 것이다. 그래서 올여름에는 '언니' 이 한 마디로 어떤 치유적 경험 같은 걸 하고 있다. 풉.

 

 

'언니'라 불리며 히죽거리는 얘기는 여기까지다.

예전의 유행가 한 대목이 성대 언저리에서 맴돈다. '만날 수 없잖아. 느낌이 중요해. 한 번을 만나도 느낌이 중요해. 난 그렇게 생각해' 딱 유행가 가산데 이 글을 쓰면서 자꾸 흥얼거리게 된다. 관계에서 '허상'을 많이 붙들고 산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아닌 관계를 놓고, 좋아했다 화냈다 하며 사는 것 같다. 페북을 열어놓고 멍 때릴 때가 꼭 그렇다.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아는 사이를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맺는 인간관계가 늘어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유사품 '만남'을 진품으로 알고 공연히 그걸 붙들고 헛웃음, 헛발질을 내지르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언니라 부르고 불려도 걸릴 것 없는 그런 만남들로 마음의 공간을 채워가고 싶다. 그런 사람이 수백 명일 수는 없고, 천 명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인생 통틀어 열 명이 안 되어도 좋을테다. 주름 가득한 내 얼굴을 가까이 맞대어 보여주고 또 보여줘도 좋을 그런 만남. 한 번 만나고 다시 못 만날 사람이라도 속으로 '행복하길 바래' 하는 오글거리는 말이 절로 우러나는 만남. 그것 아닌 것들은 두려움 없이 놓는 연습을 해야지.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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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박 8일 간 집을 비웁니다. 코스타 강의 차 시카고에 갑니다. 곡절 끝에 참석하기로 결정된 지난 2월 부터 묵직한 걸 속에 넣고 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놀라고 축하해주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하디 흔한 일도 아닙니다.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처음엔 '내가 무슨 코스타? 내 깜냥에' 라는 생각도 했고, 한편으론 '사람이 있는 곳이고, 사람을 만나서 내 얘기를 풀어놓았을 때 좋지 않았던 적이 없었는데 뭐가 문제냐?' 싶기도 합니다. 어찌됐든  양을 치던 다윗을 이끌어내어 이스라엘의 목자게 되게 하셨다는 시편의 말씀이 마음에 맴돕니다.


2.
작년 여름 살인적인 더위가 한창이던 때 어느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정말 괜찮은 분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어쩌다 에어콘 얘기가 나왔는데 어느 분이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에어콘 없이 어떻게 살아요?' 평소 그 분의 말과 글을 볼 때 이것은 거의 100% 좋은 뜻의 얘기라고 믿습니다. 걱정해주고 더위와 싸우다 분노에 찬 나를 위로하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실은 그 순간 빵이 없으면 쿠키를 먹으라 했다든가, 케잌을 먹으라 했다는 마리앙뜨와네뜨 생각이 났습니다. 무슨 대답을 할 수 없었고 마음으로 이만큼 멀리 물러나 앉았습니다.


3.
어떤 것에 대한 '결핍감'은 그것의 실체에 대한 과장된 인식을 낳습니다. 걱정의 말에 마리앙뜨와네뜨를 떠올리는 비약이 일어나는 것처럼요. 이번에 난생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시카고 여행은 첫 해외여행이 되는 셈입니다. 이것 역시 어떤 결핍의 느낌으로 자리하고 있을지 아시겠지요. 머리로는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된장성 해외여행들을 비웃어주는 것으로 내 당당함을 증명하고자 했지만 그런 식으로 나 자신을 속여 무엇하겠습니까.


4.
오늘 예배에 가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하는데 첫 마디가 툭, 이렇게 나왔습니다. '하나님, 내일이네요. 저 잘 다녀올께요' 그러자 '미친 거 아냐? 너만 가냐? 나도 가'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맞아요. 내가 가면 주님도 가시는 거지. 다녀오긴 어딜 다녀 온다고. 사실 순간적으로 펑, 가슴팍을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주님이 거기에 계시고, 무엇보다 내가 가면 그 분이 같이 가신다는 그 사실을 어쩌면 그렇게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요. 성가대 찬양을 하는데 찬송가 '돌아와 돌아와' 편곡이었습니다. 테너 솔로가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 이여
길이 참 어둡고 매우 험악하니
집을 나간 자여 어서 와 돌아오라'


5. 그 찬양을 듣는 순간 확 왔습니다. 정신 없이 헤매고 다녔던 지난 몇 주간 나의 영혼. 내 영혼이 편안한 집에 머무르지 못했습니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떠돌아 다녔습니다. 결핍감이 어마어마한 두려움으로 변질된 지점에서 낯선 길에 홀로 남겨진 느낌과 더불어 이 곳에 다 밝힐 수 없는 더 복잡한 마음으로 여기 저기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와 한다는 말이 '주님, 다녀오겠습니다'  이제껏 그렇게 주님 없는 곳으로 골라 헤매고 다녔으면서 어딜 더 다녀오겠다는 건지. 주님 없는 어딜 가서 뭘 하고 오겠다는 건지.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과 헨리 나우웬 신부님의 모습이 동시에 오버랩 되었습니다. '집을 나간 자여. 어서 와. 돌아오라. 주께 오라'


6. 
징징거리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것에 일일이 답을 해주며, 뭐든 물어보라고 안내해주시고 지지해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어리버리 뿌빠빠 하고 있는 동안 비행기표 일일이 알아봐는 친구도 있고요. 며칠 앞 두고 급하게 제작해야 하는 명함,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빛의 속도로 만들어 주시며 '미국 가는 선물!' 하시는 분, 내 부끄러운 속내를 다 들어주고 함께 아파해주고 커피를 건내주는 친구, 집까지 찾아와 코스타 참석 경험 들려준 어린 친구, '평소대로 하세요' 하시며 어떻게라도 격려하시려는 교회 목사님 한 분. 바쁜 와중에 뭐라도 힘이 되어주려고 애쓰는 남편.
결핍감으로 인한 두려움의 큰 웅덩이, 그리고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은 '사랑'으로만 메워지는 것 같습니다. 아까 낮엔 이 사랑이 한꺼번에 인식되어 뭉클했습니다. 결국 이런 사랑들이 나를 다시 아버지 집으로 안내합니다.



7.
강의에 관한 얘기를 하는 중에 남편이 그랬습니다. '당신은 전문 강사도 아니잖아. 당신은 생활인이야. 생활하고 묵상하고, 글쓰고. 그러다보니 일상에서 청년들과 가장 많이 나눈 얘기가 책으로 나오거고.... 강의 전문가 되지 마. 정신실은 생활 전문가야' 일상의 연장선에서 다녀오겠습니다. 강의를 하지 않고 사람을 만나 눈을 맞추고 이야기 하고 오겠습니다. 처음 타는 국제선 비행기 따위는 이제 걱정하지 않아요. 다 예습했어요. 비행기, 신발 벗고 타는 거 아니라는 것도 알아요. 덥다고 창문 열지도 않을께요.
'어그러진 세상, 자유케하는 복음(Set Free into Fullness)'이 이번 코스타 주제랍니다. 살짝 바꾸고 오려고요. '어그러진 세상, 연애케 하는 복음 (Set Free into Holy Dating)'으로요.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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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체리쥬스를 얼린 얼음조각이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음악치료에 쓰는 물건이다.
물론 음악치료 관련 어떤 책에도, 메뉴얼에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들려주며 입에 넣어 줄 음악치료 선생님표 아이스케키이다.

초등학교 특수학급 음악치료를 하면서 몇 년 동안 공들여 하고 있는 것이 음악감상이다.

'곰 세 마리' 노래 하나 정확한 가사로 부를 수 없는 아이들에게 비발디, 바흐, 헨델이 웬말이냐.
그것은 자존심이다. (그 자존심은 내 것이기도, 그 녀석들의 것이기도)
'여름'을 음악으로만이 아니라 원초적인 감각으로 느끼게 해주고픈 마음으로 만들었다.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관찰가능, 측정가능'한 데이터를 내는 것이 '치료'라고 배웠고,
그렇게 가르치고 다니기도 했었다.
음악치료에 입문하고 15년이 훌쩍 넘은 지금 나는 점점 '음악치료 선생님'이 아니라
'음악치료 아줌마' 내지는 '음악치료 엄마'가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측정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기록에 정신이 팔리다보면 측정할 수 없는 너무 많은 것을 놓친다.
지난 음악치료의 세월은 그것을 분명하게 깨달아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체리쥬스를 만들어 얼릴 생각을 하고는 내 자신에게 무한 칭찬을 해줬다.
어떻게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했을꼬! 대단해, 정신실!
측정할 수 없는 것, 해도 티가 안 나는 것,
치료평가서에 뽀대나게 적을 수 없는 것이 치료사로서의 나를 더 행복하게 한다.
는 것을 갈수록 제대로 느끼고 있다.

인생도 그러하다.
책을 낸다거나,
있어 보이는 글로 인기를 끌거나,
유명한 사람들과 말을 틀 뿐 아니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나는 모르는데 나를 알아보는 사람을 많이 만드는 것은 행복의 '겉'일 뿐이다. 

딱히 자랑할 수는 없는 일상을 가지는 것,  
작가나 전문가가 아니라 엄마나 아줌마로서 더 많은 이야기를 가지는 것에 행복의 속살이 숨어 있는지 모를 일이다.
냉동실에 얼음을 얼리는 것처럼 미미해 보이는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말이다.

한 때, 내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게 하는 타이틀이 '음악치료사 정신실'이었다.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하는 심정으로 열정에 겨워 노래를 불렀었다.
내가 만나는 그 안타까운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었다.
내 노래의 아름다움으로 날개 정도는 얼마든지 달아줄 수 있을 거라고,
이 아이들을 얼마든지 저 멀리 무지개빛 세상으로  날려보낼 수 있을 거라 믿었었다.

나는 이제 안다.
내 노래는 그냥 노래다. 날개 따윈 없다.
날개 없는 노래를 가진 나는 체리쥬스를 얼리고 보온병에 담는 정도는 할 수 있다.
날개는 없지만  저 빨간 얼음조각을 만들어 놓고 행복하다.

그럼 됐다. 

애초부터 날개가 없는 노래였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해도 괜찮다.
이제라도 헛되이 꿈꾸는 일을 접고 지금 여기의  행복을 발견하게 된 게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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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적어도 그런 사람은 없다. 중한 병에 걸렸거나 큰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향해서 노골적으로 '죄가 있나보다'며 회개를 촉구하는 사람들말이다. 또 죄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됐으니 "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열등한 주의 자녀다"라고 말하는 무식쟁이도 없다. 우리 엄마 같은 경우는 살짝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도 같은데, 그런 걸 내비쳐봐야 아들 딸에게 좋은 소리 못 들을 걸 아시기에 애써 잘 조절하시는 듯하다.

무론 자신의 고난이라면 다를 수 있다. '혹 내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우리 가정에 이런 일이? 뭔가 깨달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아닐까?' 라며 멈춰 설 수는 있다고 본다. 이 정도의 자기성찰은 인지상정이 아니겠나. 여하튼, 인간사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고통에 대해서는 이유를 찾아 나열하겠다는 자체가 오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 전 욥의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출석하고 있는 교회 담임이신 이재철목사님께서 암 진단을 받으셨다. 어느 분이 '이재철 목사는 한국 교회가 100년 동안 기도해서 얻은 재목이다'라고 하셨다는데 과연 보기드문 지도자임이 틀림없다. 개인적으로도

1년 넘게, 아니 실은 그 전부터 이목사님의 설교와 삶을 통해 흔들리던 믿음이 견고해졌고, 상처를 치유받는 경험을 하였다. 그런 목사님이 암에 걸리시다니! 그러나 목사님은 그 앞에서 여전히 내가 아는 그 이재철목사님이었다. 수술과 요양을 위해서 안식에 들어가시기 전 마지막 설교에서 하신 말씀들도 목사님다웠다.  눈 앞에 닥친 것들에 순종하고,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믿음. 당신이 가르치셨던 대로 그대로의 고백이었다. 숨길 것도 포장할 것도 없이 병이 경과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신 후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재철목사님의 말씀)
제가 전립선암 판정을 받은 이후 많은 교우님들께서 염려해주시는 것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 그러나 올해 제 나이 우리 나이로 65세입니다. 생로병사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일생 속에 이런 과정이 다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고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종반부를 맞이한 제게 하나님께서 암이라는 적절한 벗을 제 몸에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제 암과 평생 동반자로 살면서 저는 제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마무리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또 제가 겸손하게 제 목회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이 우리 교회에도 유익이 되고 덕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와 제 처는 이런 복된 상황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교우님들께서도 걱정하시기보다는,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이 상황을 주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우리 교회를 통해 이 시대 속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고통이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할 수 있을까? 크나큰 고통의 때에 기도랍시고 하겠다며 무릎을 꿇는 자리에서 나는 대체로 언어를 잃는다.  예수기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단순한 기도로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 게 전부이다. 짧지 않은 신앙의 여정에서 내가 제시하는 고난의 해결방법(기도제목)이 알량할 뿐임을 확인할 만큼 확인 하였다. 물론 아주 가끔 누울 자리가 생기면 원초적으로 다리를 뻗기도 한다. '하나님, 제발 이렇게 좀 해주세요. 죽을 것 같아요' 라고 뻗치고 주저앉아 몸부림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를 들면, 아이가 입시에 실패했는데 '하나님, 죽을 거 같아요. 이제라도 붙여주세요' 라고 기도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불치의 병 앞에서 '하나님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할 수 없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과소평가하는 것일 터. 전능자 앞에 불가능을 구하는 것이 결코 그릇된 기도가 아니다. 그때 만큼 인간의 조건을 적나라하게 확인하며 신 앞에 서는 때가 또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절박한 상황에서의 기도, 또는 기도제목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몇 년 전, 어느 봄날의 새벽기도 시간이었다. 그 순간의 고통 그 자체만으로도 몸이 부서질 것 같은데 나를 분열시키는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웅웅거렸다. 사랑하는 젊은 지체가 호스피스로 옮겨가 생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었다. 안타깝게 매달리던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은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겠노라 하시는 것 같았다. 본향으로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임박했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고통만으로도 충분히 아픈 새벽이었다. 바로 그때, 새벽기도를 인도하던 분이 다같이 통성기도 하자며 '이 형제를 살려달라'고 기도하라고, 더 크게, 목소리를 크게 내어서 아버지를 부르면서 살려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였다. 네? 살려달라고 기도하라구요? 내 귀를 의심하고 있을 때 마이크를 통해서 들리는, 멋적어서 민망한, 민망해서 멋적은 목소리. '아버지~이, 아버지~이, oo를 살려주세요' 그 소리에 내 이성과 신앙이 분열되어 산산이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제 막 신앙에 입문한 초심자의 외침이 아니었다. 한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의 기도회 인도였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은 죽음을 비롯한 삶의 고통스러운 면을 회피하거나 부정하거나 억압하려는 성향이 언제나 신체적, 정신적, 영적 재앙을 부른다고 하였다. 죽기 전에 우리가 죽음을 부정하지 않고 죽음과 친구가 될수 있다면, 죽음을 위협적인 원수가 아니라 낯익은 손님으로 대할 수 있다면, 두려움과 죄책감과 원망이 한결 더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잘 되고, 성공하고, 병에서 낫는 것이 믿음의 열매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에게 모든 약함과 실패의 종합체인 죽음은 두려움 말고 그 무엇이랴.  믿음의 기도라는 종교적 명분 뒤로 숨어 죽음을 회피하려는 불신앙, 그렇다 그것은 믿음이라 이름 하는 불신앙이었다.

 

역설적이게도 호스피스에 있던 형제는 죽음을 친구로 받아들이며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을 가족과 함께 정리해가고 있었다. '내 주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찬송하면서 평안히 천국으로 떠났다. 그가 떠난 주일 예배 봉헌시간, 이런 내용의 감사헌금이 있었다.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그렇게 고백하며 본향으로 떠난 것이다. 그의 죽음은 남편과 나의 신앙여정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더불어 그 새벽기도, 스피커를 타고 웅웅거리던 '살려주세요' 소리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지난 주일에 설교 하신 선임목사님께서 수술을 앞 둔 이재철목사님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셨다. 이 기도에 크나큰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이목사님 자신이 당신의 상황을 순종하며 받아들이시는 것과는 다른 의미의 감동이었다.

 

(정한조 목사님의 설교 후 기도)
또한 지금까지 이재철목사님의 내일을 쥐시고
, 이목사님의 손을 잡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 공중의 새는 심지도 거두지도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할 지라도 하나님은 그것들을 길러주시고,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는 들에 핀 백합화도 키우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아들 이재철목사님을 책임져 주실 것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수술은 잘 될까, 회복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을까, 예전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까 와 같은 걱정을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100주년기념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목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목양이 아니라 장사를 하기로 마음 먹을 때, 최고의 장사 밑천이 되는 것이 교우들의 병과 고난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다. 기도할 때다. 합심하여 기도하자' 하면서 고난과 기도의 매카니즘을 절묘하게 활용하여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은 아닌가. 진정한 의미의 순종, 말씀과 더불어 상황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르쳐야 할 때조차 기도라는 미명하에 하나님의 뜻을 좌지우지 하겠노라는 왜곡된 믿음을 주입하는 것은 아닌가. 누군들 고난이 달가우며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적어도 신앙의 여정을 안내하는 영적인 지도자라면 부활의 소망으로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부활주일에 구색을 맞추는 설교 주제로서가 아니라 매일의 '작은 죽음'들에 직면하고, 죽음과 친구가 되며, 두려움과 맞서 부활을 사는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 최소한 자기 자신과 성도들의 두려움을 담보삼아 헛된 기도응답을 가르치지는 말아야 한다. 

 

두 분 목사님을 지금 여기서 만나고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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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원고, 강의 이런 얘기로 징징거리는 포스팅은 안 하기로 작정했다.


강의도 글쓰기도 '듣거나 배우기'가 아니라 '드러내거나 가르치기'것이다.
결국 마이크 잡은 놈의 힘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갑'으로 간주한다.
독자 또는 청중이라 불리는 허다한 '을'들을 세워놓고
'갑'이 징징거리는 것이 웃기는 '지적(知的) 된장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면 쓰지 마! 누가 너한테 쓰라고 했냐고?
강의를 다니며 좋았네 힘들었네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글로 얻은 알량한 유명세로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 징징거리기까지.....
라며, 내 무의식의 욕망이 남들을 빗대어 자아비판을 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래서 징징거리지는 않기로 했다.
그래서 징징거리는 건 아닌데.....


5월에 원고만 네 개를 썼다.
이렇게 살다간 얻는 것도 없이 미추어버리겠다며 아무도 안타까워하지 않을 '절필' 고민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네 개의 원고를 다 써냈고,
5월의 대미를 장식하는 강의까지 끝내고 내 사랑하는 거실 소파에 널부러진 것이다.


아닌 척 하지만 지적 된장질에 목을 매는 나,
더 많은 '을'들에게 추앙받고 싶어하는 추한 욕망을 맞닥뜨리면 마음이 복잡다단해진다.


뜬금없는 얘긴데, 아까 집에 오다가 뜬금없는 전화, 뜬금없는 질문을 받았다.

'자기도사춘기 있었어? 그런데, 자기 사춘기 때도 그렇게 웃겼어?'
아, 진짜 온갖 욕망과 좌절로 붕 뜬 나를 끄잡아 내려 '나'로 돌아오게 하는 질문이었다.
나, 진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웃겨주는 삶을 살고 싶을 뿐이다.


여하튼, 잠을 이기며 날 기다려준 남편이 '수고했어. 수고했어. 피곤한데 어서 씻고 자' 했지만
어떻게 지낸 오월인데 이 밤에 내가 잠이 오겠냐고.
이 책 <갈림길>을 붙들고 이 밤을 불태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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