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저녁을 차려주고는 아이폰에 연결된 이어폰을 꽂고 강으로 나갑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사도행전 강해는 벌써 몇 회 짼데 아직 1장을 넘어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30여분 설교를 듣고, 나머지 시간은 이런 저럼 음악을 들으며 강변을 걷습니다.
환하던 주변이 조금씩 어스름해지면 가로등이며 성산대교의 불빛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달과 인공위성 하나.


태초에 '빛이 있으라. 궁창이 있으라' 하신 그 말씀으로 만들어졌을 저 달,
그 분이 자신의 형상을 본따서 흙으로 만든 그 사람들이 만든 높고 낮은 건물들과 빛들.
하늘에서 땅에서 참으로 조화롭게도 빛을 발합니다.


귀에 울리는 사도행전 속 이야기들과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은 내 마음에 하늘의 이야기와 일상의 이야기를 오묘하게 공존시킵니다. 하늘의 삶을 살고 싶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은 일상입니다. 정말 내가 진실로 신앙하고 있다면 그 신앙은 하늘이 아니라 일상에서 빛을 발할 것입니다.

갑자기 목사님의 설교가 뚝 끊어집니다. 그리고 전화벨이 울립니다.
"엄마,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음식이 몸에 들어가서 있는 데가 어디야? 위지? 나는 위가 작은가봐. 응.... 맞아. 다 먹을 수 있는데 버섯을 못 먹겠어. 알았어. 그러면 최대한 먹어볼께. 엄마 어디쯤이야? 빨리 와"
집을 나서면 차려준 밥을 아직 먹지 못하고 버섯과 양파를 접시에 고스란히 남겨놓고 께작거리고 있을 현승이의 목소리입니다. 이것이 일상입니다. 조용한 묵상으로 침잠하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아이들의 요구, 이런 것들이요.


참 일이 많은 한 주 입니다. 원고 마감이 있고, 늘 하던 강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하기로 한 첫 강의가 있고, 한참 쉬었던 수업도 있었고, 새로운 글쓰기 만남을 여는 인터뷰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시험이 있어서 나름대로 시험에 들어있고.... 큰 부담으로 눌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김치가 떨어져 오이소박이도 좀 담가야겠고 밑반찬으로 피클도 만들어야겠고 당장 아침에 먹을 국은 뭘 끓이지? 모든 걸 진짜 잘해내야겠다는 욕심이 올라올 때 더 불안해집니다.
이게 일상이고 일상은 영원에 닿아있습니다. '내 힘으로 다 잘해서 인정도 받고 이름도 날려야겠다' 하며 눈이 흐려지는 순간 일상의 빛 역시 흐려질 것 같습니다. 일상의 빛이 흐려지면 영원을 담은 일상이 뒤트리면 천상의 빛 또한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작은 성공에 마음 높아지지 않고 작은 실패도 마음을 내팽개치지 않는 오늘을 위해서 사랑이신 그 분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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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가까이 낑낑거리며 끌고다니던 키보드의 건반 하나가 부러졌다.

남편이 대학원을 마치면서 파트타임으로 전환을 했고 그 사이 직장생활 2년, 신대원 3년, 강도사 3년의 시간을 파트타임 음악치료사, 유리드믹스 음악교사로 여기 저기 셀 수 없는 곳에서 일을했다. 저 키보드로 말하자면 8년 동안 말 그대로 밥줄이었다. 무게도 어찌나 무거운 지 일이 한참 많은 때는 바로 저 키보드 때문에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아팠으니 딱 밥벌이의 무게이고, 삶의 고단한 무게였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자연스레 음악치료 일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시누이가 하는 어린이집 유리드믹스 수업 하나로 겨우 전공의 명목을 이어가고 있는데 키보드가 저 모양이다. 남편의 아이디어로 살짝 부러진 부분을 걸고 테잎으로 고정하니 그럭저럭 또 버티겠다.
거금 들여서 산 키보드가 무게만 나가는 구물이 되고, 그나마 건반마저 부러져 걸리적거리는 것처럼 음악치료 대학원 2기라는 전설적인 깃수를 자랑하는 내 몸도, 내 에너지도 나이를 따라 소진해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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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어느 교회 아기학교에 엄마와 함께하는 음악수업을 갔다 왔다. 오랜만의 일이라 적잖이 부담이 되었다. 어제 아침 묵상을 하면서 수업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 오래 잊었던 나만의 열정과 에너지가 쭉쭉 뻗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악기를 챙기고 노래 반주를 녹음하면서, 젊은 시절부터 가장 나답다고 느끼는 나를 만난다. 그리고 오늘 수업? 물론 행복했다.


 

내가 눈을 떼지 못하고 너무 좋아서 미치는 것 중 하나가 아가들이다. 잘생기고 이뻐서 이쁘고, 못생겨서 이쁘고, 똑똑해서 이쁘고, 맹해서 이쁘고, 적극적이라 이쁘고, 소심해서 이쁘고, 착 앵겨서 이쁘고, 까칠하게 굴어서 이쁘고..... 그런 아기들이 내 노래에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내가 시키는 악기연주에 넋을 놓으며 그저 난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다. 아기들 앞에 기타 들고 서면 바로 저렇게 여자 짐캐리로 변신이다. 내 의식으로 통제되지 않는 다른 내가 되는 느낌이다. 음악을 가지고 아이들을 만날 때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이 언제부턴가 알아들어지기 시작했다. 평생 내가 죽도록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거라는 믿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금 억울하고 안타깝기도 했었다. 밀려오는 감정들이 '상실감'이라 이름 붙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저 말씀이 알아들어졌다. 나는 젊어서 얼마나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쏟아붓고 주목을 받으며 살았던가. 주도하고 통제하며 살았던가.

오래 되어 어쩔 수 없이 낡아진 키보드를 받아들인다. 노병 아직 죽지 않아 고운 목소리로 아이들의 귀를 잡아 끌 수 있다해도 실은 내 몸의 한계를 느낀다. 이제는 '내 팔을 벌려서 남이 내게 띠 띠우고 원치 하는 곳으로 데려가는 것'에 기꺼이 나를 내어줄 수 있었으면 한다. 말하자면, 그런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남이 나를 띠 띠우고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는 듯 보여도 궁극적으로 그 '남'을 움직이는 손은 그 분의 손이라는 것 말이다. 내가 '원하는 곳'에만 행복이 있다고 믿었는데 진짜 행복이 '내가 원치 않는 곳에'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네 팔을 벌리리니...... 
다시 보니, '늙어서는'이구나. 그래 뭐...
내 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니 나의 늙음도 유익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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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지난 몇 년, 내가 속한 개신교 아닌 천주교의 성인들과 신부님들의 가르침과 책을 통해서 영성의 샘물을 마시는 시간들이었다. 기도원이 아닌 수녀원, 통성기도가 아닌 침묵으로 1년에 한 두 번 피정을 통해서 생전 처음 기도를 배우는 아이처럼, 생전 처음 예배하는 아이처럼 기도와 미사에 앉아 있곤 했었다.
울트라 정통 보수 대한 예수고 장로회 합동 출신의 우리 엄마가 알면 '얼라, 천주교가 이단 아녀. 얘가 미쳤네' 하셨을 것이고. 내가 속했던 교회에서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행보다.


2.
'주님, 이거 주세요. 저거 필요해요. 아, 이건 제가 잘 모르겠으니까 아버지 뜻대로 하세요. 그리고... 암..... 또 뭐더라..... '
기도는 하나님께 뭘 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 그 분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배웠지만. 정작 내 기도는 요구사항 늘어놓기가 끝나면, 조금 정직하게 내 맘의 복잡한 실타래를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만큼 내놓고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쩝쩝거리는 그런 나날이 오래되면서부터였다.

'빛이 없어도 환하게 다가오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음성이 없어도 똑똑히 들려주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이 찬양 참 좋아하는데 기도 속에서 깊이 그런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 있지만 길을 알 수 없는 그런 시절이었다.

알 수 없는 신비에 이끌려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가톨릭영성을 접하고, 여러 번의 침묵피정을 통해서 비로소 정직한 기도, 듣는기도, 쉬지 않고 하는 기도를 조금 알게 되었다.


3.
살아갈수록 삶은 신비에 가깝다.
애를 써서 선택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저 깊은 기도에 대한 갈망만 붙들고 있었는데 어느 새 나는 처음에서 멀리 와 있었다. 내게 익숙하지 않는 가톨릭 예전의 언어들, 형식들 속에서 때로 어리둥절 했다. 그리고 그 낯설음이 버거웠던 어느 어느 경당에 앉아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난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이 낯선 곳에선 난 뭘 하고 있는 걸까? 내가 배운 신앙의 전통이 있는데 왜 거기선 내게 기도를 가르쳐주지 않는거지?' 동냥젖을 얻어 먹는 아기처럼 배고파 정신없이 먹지만 마음까지 편안한 건 아니었다.


4.
게다가 목회자 사모인 나는 '보여주기 위한 기도'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았다. 자아가 강한 난 그런 강요에 순순히 굴하지 않았고 남편 역시 '당신이 기도하고 싶을 때 새벽기도 가라'며 그로서는 하기 힘든 지지를 해주었다.
그렇다고 당당한 것은 아니었다. 꼬박꼬박 새벽기도 하지 않는 사모는 '기도하지 않는 사모'이고 그런 사모는 남편에 도움이 안되는 결정적 결격사유를 가진 자였다. 그런 목소리가 밖인지 안에서인지 늘 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난 정말 나쁜, 잘못된, 사모에다가 천주교에 물든 부족하기 까지한 사모였다.


5.
교회 주변을 걷다가 양화진 책방 앞에 섰다. 책방 유리에 새겨진 글에 눈이 번쩍한다.
'이래저래 양화진은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그 이야기 중,
천주교와 개신교의 화평한 조우를 모두어
양화진 책방을 열었다'
양화진 책방을 운영하는 홍성사의 정신과 100주년 기념교회의 영성은 같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렇다. 어쩌다보니 나 '천주교외 개신교의 화평한 조우'를 꿈꾸는 그런 곳에 몸과 마음과 영성의 뿌리를 세우게 되었다.


6.
이것은 참으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이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세밀한 위로이고,
다시 그 분 앞에 조용히 무릎 꿇어 기도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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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아침, 오늘도 본당사수를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선다. 본당 도착 예배 전 35분. 이미 꽉 차 있고 간간이 한 두 자리 남아 있다. 오늘도 세잎이다. 30분 전이면 반주도 코드도 요란하지 않는 피아노의 선율이, 10분 전이면 중세 교회로 회귀하는 듯한 오르간 소리가 본당 작은 공간을 채운다. 이 빽뮤직에 젖어 침묵으로 기도하는 30분이 좋다. 일주일을 돌이켜보고, 지금 내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를 점검해보고, 그리고 나는 결국 절대자 앞에 예배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깊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라는 고백을 하면서 눈을 뜨고 예배 드리고 싶은 심정 간절하다.

헌데 현실을 그렇지 않다. 뒤쪽에 앉으신 부부는 월말 회계보고 내용을 짚어보시며 나지막히 토론 중이시고, 몸을 던져 본당을 사수하신 타교회에서 오신 듯한 여자 교우 두 분은 '30분 전에 본당이 꽉 차도록 사람이 밀려드는 이유'에 대해 폭풍수다 중이시고, 어떤 날은 모녀가 스마트폰 들여다보며 앞으로의 학원 스케쥴을 짜기 열중하시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소근소근 소근소근.... 이렇게 말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보통은 또 이렇다. 주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부터 예배로 향해 달려가는 마음이라 본당에 도착할 때는 내 맘이 홀리 홀리 홀리, 그 자체이다. 자, 본당에 도착했다. 안 쪽에 자리가 비어있다. (절대로 끝자리가 비어있지는 않다. 안이 텅 비었어도 보통은 먼저 오신 분이 끝자리를 잡고 앉아계신다) '저기... 죄송하지만 안으로 좀 들어갈께요' 라고 굽신굽신 할 때 밝게 웃으면서 '네, 들어가세요. 아니, 제가 들어갈께요' 라고 하시는 분은 찾아보기 어렵고 비켜주시며 인상만 안 쓰셔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소근거리는 분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기도는... 개뿔... 무슨 기도? 앉아서 그 분들을 판단하기에 바쁘다. '우이씨, 예배에 온 사람들이 것두 본당사수를 위해 30분 전 부터 이 자리를 지키는 열심이 특심이신 분들이 옆에 있는 사람 헤아려 배려하는 태도라곤 없고, 이기적이고....$%^&%*$#$%$#....' 라면서 말이다.


예배에 대해서 언젠가는 들었을 얘긴데 처음 듣는 얘기처럼 새신자반에서 배웠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죽는 일이다' 많은 크리스챤들이 그렇게 꼬박꼬박 예배 드리고, 열심으로 예배 드려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는 것은 예배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죽는 경험을 하지 않아서(못해서) 이다. 구약의 속죄제의 제물처럼 죄의 사함을 위해 내 손으로 제물을 잡아 손에 피를 묻히며 드려야 하고, 속건제 처럼 이웃에게 해를 끼치고 속인 일이 있으면 그에 대한 배상하는 것을 예배에 포함 시켜야 하고, 소제처럼 나를 곱게 갈아서... 가루처럼 갈아서 들여야 한다. 헌데, 예배의 의식만 있을 뿐 나를 갈고, 나를 죽이고, 나의 거짓과 속임수로 아픔 당한 사람들을 헤아리는 헤아림이라고 없다.


본당사수를 하고도 곁에 앉은 사람들의 경박함과 배려없음 등 사람냄새에 마음의 집게 손가락을 꺼내들고 흔드는 나는 도대체 무슨 예배를 드리고, 나를 어떻게 갈아내겠다는 것인가? 사회 보는 목사님의 목소리 톤이며, 성가대의 찬양에 일일이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평가를 한다면 정작 예배하는 나 자신을 평가하는 일은 누구의 몫이란 말이가? 그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거룩한 찬양과 기도를 올려드리는 것 이상으로 절실한 것은 마음으로 든 집게 손가락을 거두는 것 아닐까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홀리한 표정과 눈물짓는 찬송은 됐다!  물론 그 집게손가락을 돌려 다시 내게로 향해 '거봐. 너는 언제나 그렇게 교만하고, 자의식이 강하고, 너만 잘났다 하지' 하면서 다시 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애써도 힘써도 나라는 사람은 곁에 앉은 조금 불편한 사람들을 잠시나마 마음으로 품어주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본당사수와 예배는 참된 의미가 될터이다.

 

예배를 드리고 집에 와 강변으로 나갔다. 조금 전 들은 주일 설교를 다시듣기 하며 걷는다. 더 유명한 사람이 되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삶에 대한 욕망을 매일 직시하고 매일 내려놓자. 내게 권력과 힘이 있어 이 거대한 도시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한들 내 안에 나만 옳다하는 자뻑과 거짓과 욕망만이 도사리고 있다면, 예배는 그 욕망을 부추기고 합리화하는 도구가 될 뿐 아니겠나. 이제, 그런 예배 그만 드릴 때도 됐다 아니가. 예배는 끝나지 않았다. 남편, 아이들, 시어머니, 삶에서 걸리적거리는 사람들을 향한 겉으는 온화한 웃음, 마음으론 공포의 집게손가락을 거두는 그 일. 그것이 여전히 내게는 끝나지 않은 예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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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 나가
늘 걷던 방향을 등지고 새로운 길을 걸었더니 생각지도 못한 풍광을 만났다.


있어 보이려고 붙들고 있던 포장끈과, 관계의 줄들을 내려놓으니 드러나는 것은 허접한 나.
볼품이 없겠구나. 봐 줄 만하지 않겠구나.  
이내 찾아드는 감정은 상실감이지만 이 너머에 아직 가보지 않은 신비로운 길이 있지 않을까?


거짓인줄 몰랐을 때는 끌려다녔으나 이왕에 알아차린 이상 어찌 계속 머물러 있으리요.
다만, 익숙한 것을 놓아버린 빈 손을 잡는 귀신이 있으니,
허전한 내 손을 나꿔채 원치 않는 자기연민의 동굴 속으로 끌고가 나를 가두려한다.


상실감도 알겠고,
거기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며 존재를 뒤흔들려는 귀신의 농간도 알겠으니,
남은 것은 인내와 기다림 뿐이리라.


다시 내 발로 광야로 가 오리무중의 다음 순간을 견뎌낼 수 있겠는가?


돌이켜보라.


'진짜'는 언제나 신비 속에서 건져올리지 않았던가?
광야를 신비라 부를 수 있다면 오늘에 족한 은총을 맛보게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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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가고 오는 하늘에는 짙은 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많은 상념들을 이고 지고 주차장을 향해 걷고 있었다.
어디선가 분주하게 떠들어대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새, 우리들의 선생님들이 모여 떠들고 계셨다.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며 내 걸음을 잡아 채 높은 나무 꼭대기로 날아올랐다.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꿈에 그리던 어릴 적 미류나무가 환상처럼 서 있다.
기억 속에서 떠올라 갑자기 떠올라 어제 하루종일 그리던 꿈결 같다.
다시 아버지가 그리워 눈물이 줄줄 흘렀다.





마침, 내 안의 바리새인을 쫓아내고,
바리새인에게 억류됐던 내 안의 어린아이를 풀어주고 애도하는 중이다.


마침, 내게 처음 하나님을 가르쳐줬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내게 바리새인의 피를 물려줬을 아버지에 대한 애증에 걸려들어 어쩌지 못하는 중이었다.

마침, 처음 예수님을 배우는 아기처럼 아장아장 새신자반 공부를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다시 돌아가 설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자리에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중이구나 싶었다.
마음 가득한 불신과 분노들이 사그러져가고 있구나 싶었다.
'나는 주의 화원에 어린 백합꽃이니 은혜비를 머금고 고이 자라납니다'
다시 어린 아이처럼 나의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게 될 날이 머지 않았구나 싶은
그런 희망이 꼼지락거리는 중이었다.




작은 새가 안내해준 길을 따라 메마른 나뭇가지에 눈길이 다다랐다.
내 영혼 그 메마른 나뭇가지에 잠시 머무르고 싶다.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에 다다른 까마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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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보려고 강에 나갔던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더냐?

봄이 오긴하는 것 같은데 하늘은 무겁고 내려앉았고 바람은 거셉니다. 무엇엔가에 이끌려 다시 강에 나갑니다. 오전에 모임 하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터였습니다. 어지럽게 춤추는 마음의 소리들을 잠재우고자 강을 찾은 것이겠지요.

중학교 영어 시간에 'Look at the bright side' 라는 말을 배우고 거기 한참 꾲혀있었지요. 긍정적인 면을 보자. '물컵에 아직 반 잔이나 남았네. 이러는 게 좋지. 에잇, 반 밖에 안 남았네 하는 게 좋냐?' 이런 선생님의 말씀에도 큰 배움을 얻었지요.
날이 갈수록 진실은 밝은 쪽에만 있지 않고(그렇다고 그 이면에만 있는 것도 아니겠지) 밝은 만큼 어두운 그림자를 함께 바라볼 수 있어야 비로소 찾아진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마음의 여정, 영적인 여정은 특별히 그러합니다.

이렇게 에둘러서 말하는 버릇 고쳐야하는데....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런 겁니다.

암튼 오늘 모임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대충 자신을 소개하고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얘기해야 했습니다. '저는 집단여정이라는 걸 하면서 어린시절을 돌아보는 중에 있습니다. 그로 인해 자유도 얻지만 한편 방학 내내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정말 힘들어서 아이들에게 함부로도 하고 상처도 주고 그러다보니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습니다. 내 어린시절 상처 돌아본다 어쩐다 하면서 지금 내 아이들에게 충분히 수용적이지 못하고요. 그리고 저는 다시 일을 찾아야 하는데 이사를 오는 통에 음악치료 할 곳을 적절하게 찾을 지 모르겠습니다. 나이도 많구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얘기하시는 분이 이러십니다. '저희 가정은 천국입니다. 저는 너무 행복하고요.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매끼 따뜻한 밥 해서 나누고 그렇게 지내는 내내 행복했구요. 제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데 일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 오늘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기대를 합니다'

그 분의 나눔이 진실이라는 것도 알고, 내 얘기에 연이어 나왔다 할찌라도 내 얘기와 빗대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들으면서, 듣고나서 내 속에서 이러는 겁니다. '어? 나도 행복하다면 행복한데... 나도 방학동안 애들한테 따순밥 해주고 좋은 때도 있었는데. 그리고 딱히 일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는 건 아닌데. 저 분이 저렇게 얘기하니까 나는 되게 믿음도 없고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분의 고백이 백 번 진실이어도 저는 그런 나눔이 불편합니다. 일단 정말 본인이 행복해도 그 안에 불행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조심해야 할 것 같고, 저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복잡성과 다면성을 믿기 때문에 무엇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에는 대체로 신뢰가 잘 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약함을 고백하고 그 약함으로 인해서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유독 공동체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에 꽂혀있다고 말하는 게 좋겠습니다. 모여서 가장 부끄러운 모습이라도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고, 그렇게 내보일 때 누구도 판단하거나 섣불리 설교하고 가르치지 않으며 수용해주는 그런 공동체 말이지요. 사로잡혀 있는 만큼 기대가 높고, 기대가 높은 만큼 실망도 많이 합니다. 자신에게 서로에게 '상처입은 치유자'로 다가가고 싶으니, 이것은 얼마나 높은 이상입니까.

남편에게 넋두리 하며서 그랬습니다. '하긴 내가 원하는 공동체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나만 그 자리에서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닐거야. 다들 나처럼 목마르지만 방법을 모르겠지.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야지' 그랬더니 남편이 '맞아. 여보. 당신이 목마른 누군가의 목을 축여주면 당신의 목마름은 하나님이 채워주셔. 그게 답인것 같아'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동체를 꿈꾸며 삽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부터 나는 가장 안전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 좋은 것 밝은 것만 드러내기 원하는 사람, 우울하고 어둠에만 빠져있는 사람, 가르치기 좋아하는 사람, 남의 말은 안 듣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 듣는 척만 해주는 사람, 지적인 사람, 머리 쓰기 싫어하는 사람, 진지한 사람, 경박한 사람 모이는 곳이 사람 사는 곳일 겁니다. 나 역시 그런 어떤 사람 중 하나이고요. 이미 왔으니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처럼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동체는 내가 꿈꾸고 남의 마른 목 축여주는 순간 이미 임하는 걸 볼 것이고, 이렇게 가는 길 끝에서 그 분의 품에 안길 때 아름답게 완성되겠지요.

2012년, 척박한 곳에서 다시 한 번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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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줄께 다섯 시간이라도, 여덟 시간이라도 말해봐'
하면 얼마든 떠들어댈 수 있는 사람?
나! 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입 다물고 마음으로라도 얼마든지 떠들 수 있는 사람?'
 나! 나님!



30분 전 도착한 본당에선 이미 꽉 찬 자리에 아주 조용한 열정들이 충만하다.
30분 동안 조용히 그 분 앞에 있기로 마음 먹었으나 그 분과의 대화는 어느덧 어떤 사람과의 대화 아니! 일방적 퍼부음으로 바뀌어 있다. 겉보기엔 조용한 침묵이나 마음은 시끌시끌하다.
아니지. 이거 아니지. 다시 그 분 앞에.....



예배가 시작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보시는 목사님의 절제된 언어가 나를 이끌어간다.
얕고 경박한 내 신앙과 신학이 조용하고 강요란 없는 설교 앞에 고개를 떨군다. 그리고....



설교의 끝자락에서 나의 그 분은 십자가 그늘 밑으로 다시 나를 초대한다. 기꺼이 자발적으로 하늘의 권리를 포기한 그 선택만이 진리이고 생명이었노라고. 나눌 것이 없다고 단정지은 삶이 바로 지옥이고, 기꺼이 포기하기를 선택하는 삶이 생명이라고. 그렇게 살으라고 하신다.
생각해 보아라. 네가 언제 가장 행복했는지? 언제 자유로왔는지? 라고 하신다.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청년들에게, 치료로 만난 아이들에게, 엄마와 동생과 시어머니와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의 시간과 가진 것을 줄 때 자유롭고 행복하지 않았던가?
슬픈 헤아림을 멈추고 기꺼이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힘이 진짜 믿음이도 생명이다.



마음까지 조용해져 내 말을 멈추고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내게는 안식이다.
그 안식의 시간 동안 진짜 나를 만나고 나의 주님을 만난다.
오늘도 본당을 사수하길 잘했다.



맛있는 레몬티라미스와 커피로 조용한 안식일을 즐겁게 안식할 날로 채색한다.
밝은 찻잔처럼 마음이 밝다. 한 시간 두 시간 공허한 말을 떠들어대지 않아도 충만하다.



침묵 속에 잠잠히, 즐겁게 안식하는 날.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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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나는 돌아가야겠어.
이 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 있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해.
언제나 선택이란 둘 중에 하나 연인 또는 타인 뿐인걸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나의 슬픔을 무심하게 바라만 보는 너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 건달에 제비 한석규에게 꽂혀서 열혈 시청했던

<서울의 달>이라고 주말 연속극이 있었어요. 그 드라마의 주제곡인데 '아무래도 나는 돌아가야겠어' 이 가사가 참 많이 생각났어요. 페북하는 내내....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게지요.
어디로?
페북하지 않던 시절로? 블로그로?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딱히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저 어딘가....
내게 허튼 욕망도 그로 인한 상처도 없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일 거예요.
그 곳은 어쩌면 엄마의 자궁 속일런지도 몰라요.
암튼 즐겁게 페북을 했지만 늘 마음에서 저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나는 돌아가야겠어. 이 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멋도 모르고 트위터나 페북의 매력에 빨려들었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알았어요.
블로그와 달리 나를, 나 자신을 발.행. 하는 곳이라는 것을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친구들의, 친구들은 나의 지금을 봐.야.만 하는 것이었어요.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 일인지 깨닫는데 시간이 필요했지요.


어차피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 어떤 이미지로 보여질 것을 염두에 두고,  때로는 겨냥해서 이런 저런 (너무 나쁘진 않은) 가면을 쓰고 살기 마련이지만 나는 끊임없이 내가 정해놓은 하나의 이미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누군가 나보다 더 적절하다 싶으면 질투가 나기도 했어요.


하다보니 내지르는 말마다 먹히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하고는 친한 척만 해도 내 주가가 올라가는 듯 싶었어요. 내놓고는 못했지만 은근히 그런 인사들과의 친분을 자랑하고 드러내고 싶었어요. 타고나길 눈치 안 채게 '척'하는 걸 잘해서 것두 꽤 잘 됐어요.


적절하게 진실하거나 자기고백도 있어야 했어요. 망가지는 것 두려워하는 편이 아니라서 것두 꽤 잘 먹혀요. 망가지며 오픈할수록 좋아요 갯수는 막 올라가는 거예요. 이거 되는 일이다 싶어요. 좋아요 갯수와 댓글 갯수에 신경을 안 쓰는 척 하면서 신경쓰는 내 자신은 더 누추해요.
어디서 들은 얘기를 가지고 내 얘기처럼 쓰는 수단도 좋아졌어요. 이럴수록 진짜 나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가요.


개인적으로 의도를 가지고 나를 비토하고 괴롭히는 사람도 있었어요. 맞아요. 난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필요 이상으로 오버하고, 오버하다 튀고, 튀다보면 질투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생겨났어요. 그런데 오버만 할 줄 알았지 뒷심은 없는 거예요. 늘 그랬듯 견디기 힘들면 도망 나와요.


'나를 지지하라'는 강요도 받아요. 딱히 동의하지도 않으면서 두려움 때문에 지지하는 액션도 해요. 좋지 않은데 '댓글다는 것보단 낫다'며 좋아요를 누르고, 좋지 않은데 나중에 내 글에 좋아요 눌러주겠지 하면서 또 좋아요를 눌러요. 정말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되고 싶은 자유로운 나와 거리가 멀어져가요.


어! 내가 혹시 유명한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은 욕구도 고개를 들어요. 신앙생활을 저렇게 하면 안되지. 지성인이며 젊은 크리스챤이라면 더더욱 저러면 안돼. 의식이 있다면서 저런 글을 써? 안 되겠는데..... 하면서 은근히 가르치고 은근히 나의 선함을 드러내요. 인기가 나를 죽이고 있어요.


따르고 바라봐주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교묘한 자기관리를 해요. 웬만한 일에 정직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사태가 진정이 되면 어디서 가장 잘 쓴 칼럼 하나 링크해서는 '이게 내 생각하고 꼭 같애' 하면서 뒷북을 날려요. 그런 사람을 보면서 분노가 끓어오르는 건 내게 그러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다는 반증이라는 것. 그건 나만 아는 비밀이예요.



곧 책이 나올건데 조금만 기다렸다 책 나오면 홍보를 해야지. 하는 생각에 기다리고 버티자는 마음이 충천해요. 아무래도 책과 더불어 나를 알리면 주가가 확 올라갈텐데 조금만 더 기다리자 싶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페북과 트윗질을 통해서 하는 일이라곤 자신의 책과 자신이 하는 글쓰기 강의 홍보만 하는 사람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어요. 이러다 저자로만 살고 진짜 나는 땅 속에 묻어버리겠구나.


나는 무엇을 위해서 나를 알리고, 나를 드러내고, 나를 발.행.하려는 걸까요?
나를 발행해서 나는 행복해졌을까요?
생각해보니 나를 발행해서 가끔씩 '나 글 잘 쓰나봐. 나 좀 괜찮은 사람인가봐. 나 좀 웃기나봐'를 확인하는 짧은 순간 짜릿했던 건 같아요. 하지만 행복하진 않았어요.
페북을 탈퇴했어요.



한 동안 뭔가를 빼앗긴 느낌이었어요. 누군가에게 뭔가를 빼앗긴 듯 했어요.
페북에서 엄청난 에너지로 나를 비토하던 사람,
은근히 자신을 지지하라던 강요,
아무 생각없이 내 글에 좋아요 누르며 내 안의 욕망을 자극하던 사람들을 원망하고 분노했어요.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었던 것임을 점점 더 명확하게 알게 돼요.
페북의 인정과 칭찬과 격려가,
주는 사람에겐 때로 진실이었을지언정 내게는 허상이었음을 알게 돼요.
여전히 내가 얼마나 사람의 인정과 칭찬에 목말라 사는 사람인지만이 또렷하게 보일 뿐이예요.



태어나는 순간 나는 세상에 나를 발.행.했어요.

그러니, 발행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아요.
요즘 나는 알게 됐어요. 나의 발행은 블로그에서 그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고요.
것두 찾는 이가 적고 댓글이 적은 요즘 같은 블로그에 나를 발행하는 것이 내 영혼을 위해서 가장 적절하고 아름다운 지점이라고요.


아주 작은 진리를 깨달으니
아주 조금 자유로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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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누구보다 권위자에 매여 있는 사람이다.
최근 몇 년 잘 풀리지 않는 마음의 문제를 다루면서 또렷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쉽게 권위자를 믿고, 믿을 뿐 아니라 많은 판단들을 권위자의 판단에 무분별하게 의존한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어느 공동체에서나 대체로 윗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는 그런 삶은 살았다(나꼼수 효과. 여러 표현들에 돌아가면서 꽂혀서 자꾸 쓰게 됨)


내 마음에 권위자로 모셔들이면 그 사람을 이상화 하기 일쑤다. 당연히 실망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 권위자는 내가 내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씌워놓은 감투이기 때문에 혼자 기대를 높여놨다가 지나치게 실망하는 건 결국 나를 괴롭히는 일이 된다. 그게 싫어서 권위자의 부족함을 똑바로 보지 않으려고 애써 어리석은 자가 되어 생각을 차단하거나 눈을 감아 버린 적도 있다.


2.
나는 정치에 그닥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다. 애써 정치기사를 챙겨보지 않고 주로 남편을 통해서 정치에 관한 뉴스며 논평을 듣는다(이 면에서는 남편이 권위자 ㅠㅠ) 다만 분명한 정치색깔은 있다. 근현대사를 아우리는 조국의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적이 있고 그러면서 생긴 역사의식이 있다. 정치적 입장이라는 게 아주 똑같은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지금은 그저 MB를 대척점에 두고 함께 분노하는 때라서 조금 명확하게 나눠지는 지점이 있기는 하지만. 얼굴 생김생김의 차이 만큼이나 정치적 입장도 다를 것이며, 다른 게 당연하며, 같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나는 설교에서 정치를 예화로 들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한다. 제발.... 제발.... 
아, 나는 교회의 설교와 대표기도 속에서 개인의 정치적 입장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천명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던가. 쓰레기 언론이 전한 뉴스를 그대로 설교와 기도로 가져와서 인용될 때마다 나 자신이 비난받는 것처럼 얼마나 심장이 쿵쿵 뛰었던가.
그래서 민감하다. 정치적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그 다름으로 인해서 설교자의 권위를 가지고 말도 안되는 강요를 당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니 그럴 수 있지 않겠는가.


3.
그런 나를 아는 남편이 '작은 표현 하나에 흔들리지 마' 라고 했고 '응'이라고 했지만.....마음을 다잡아 먹고 있었음에도 나는 오늘 도입부분의 사소한 예증에 걸려서 설교 내내 온전히 집중하질 못했다.
목사님의 예증은 상식적이었다. 거기 앉은 정치적 입장이 다른 누구를 비난하는 뉘앙스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눈 길 위의 자동차 발자국 처럼 선명한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상처받은 부족한 신앙인이 아닌가.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하자가 없는 말씀에도 흔들리는 감정을 어쩔 수 없었다.
전두환을 향해서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시험에 드는 믿음이 연약한 자이다. 전두환 이명박을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과 동급취급하는(그저 그 네 사람 모두 한 나라 최고의 권력자였다는 얘길 하기 위해서라도) 표현에 순간 이성을 잃기도 한다.
느낌으로 알고 있다. 목회자와 설교자로서 존경하는 우리 교회 목사님의 정치적 입장이 나와 다를 것이라는 걸. 그리고 같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 모든 전제 하에 설교를 들었어도 오늘은 도통 집중이 잘 되질 않았다.


4.
어떤 면에서 잘 된 일이다. 나는 주일에 평일에 목사님의 설교와 성경공부를 들으면서 내 마음의 권위자로 서서히 모시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제껏 내가 권위자로 모셔들이고, 그 권위자의 기대를 찾아 애쓰던 그 자리는 바로 하나님 자리였음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껏 만난 어떤 목사님보다 정직하고, 세상의 길에서 유턴하여 그리스도의 길로 사는 모범을 보이고, 탁월한 통찰력으로 설교하고 가르쳐주시지만 그 분 역시 내게 참된 권위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참된 권위자는 내 안에 계시는 예수의 음성, '성령님' 그 분이어야 하니까.


5.
결국 오늘 설교의 결론으로 돌아가게 되는구나.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 합류한 실라는 무엇 때문에 그 고난의 자리에 콜링받아 기꺼이 따라갔는가? 바울이 줄 수 있는 것은 권력도 명예도 즐거움도 아니었을텐데....
실라는 '선지자'라고 하였다. 선지자는 말씀을 맡은 자이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실라는 예수님을 품은 사람이다. 바울 역시 마찬가지다.
예수님 외에 다른 것으로 맺어진 관계들은 그 불완전한 것들이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고마는 관계이다. 권력이든 돈이든 로맨틱한 사랑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함석헌 선생님이 말하는 '그 한 사람'은 사실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맞다!
예수님을 배제한 채 사람이 내 마음의 권위자 될 수 없고, 사람이 내 마음의 참된 벗 될 수 없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참된 권위자, 참된 벗 되기 원한다면 예수님의 심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오늘도 설교를 통해 누린 은혜가 있는 거구나.(이것은 은혜의 깔대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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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이름하여 본당사수!
교회가 크다봉께 주일날 교회 가서 남편 얼굴 보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교회 가는 길 남편과 메세지를 주고받다가 마지막은 보통 '본당사수'로 끝납니다.
본당에 세이~잎! 이런 뜻입니다.


주일에 본당에서 예배드리려면 적어도 30분 전에는 도착을 해야합니다.
본당사수에 실패할 경우 3층, 교육관,  제1별관, 제2별관....  이런 식으로 밀려서 영상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본당은 아주 작고 예배 드리러 오는 사람들은 많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입니다.


개척한 지 7년이 채 안되는 교회가 7000여 명의 인원을 육박하고 있으니 1년에 천 명씩 교인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수평이동이다. 영상예배가 예배의 본질에서 어긋난다. 는 등의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일 년 천 명이 모여드는 일은 주목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매 달 있는 새교회 환영회를 통해서 각각 다른  천 명의 사람들을 아우르는 동질성 같은 것을 저는 금방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고민과 아픔과 눈물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은 더 빨리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본당사수를 하고 예배를 드리면서 새교우 환영노래를 부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무너지도록 아프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앞 쪽에 일어나 서신 중년을 훨씬 넘기신 남자분들의 넓은 등과 엄마들의 등, 젊은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눈물이 납니다.  오죽하면 저 연세에 수평이동이라는 오명을 쓴 채로 새로운 교회를 찾아나섰을까? 집에서는 멀고 주차는 복잡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교회에 등록도 안하고 1년 여를 다니다가 마음을 정한 그 사연들이 다 다르겠지만, 이 시대 이 땅의 교회 속에서 다 공감하는 무엇이 있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복음에는 상식도 없고 합리성도 없는 것처럼 가르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교회와 이 교회의 가르침은 복음이 얼마나 넓고 깊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인지 상식도 합리성 아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교회입니다. 이 이야기를 써나가고 싶습니다. 매 주일 가능한 본당을 사수하며 드리는 예배를 적어나가겠습니다. 그러다 어쩌다 내가 그려놓은 이상과 빗나가는 것이 있더라고 괜찮습니다. 그 때는 그대로 정직하게 이야기 하겠습니다. 한 때 정말 놓아버리고 싶었던 한국 교회에 대한 한 줄기 소망의 빛을 다시 붙들며 저와 하나님과 교회의 이야기를 풀어내보고 싶습니다. 이현주 목사님의 책 제목이기도한 이 한 마디가 지금 가슴에 막 울립니다.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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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 바리새인인 내게 주일 성수는 엄청난 율법 덕목이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나의 모태, 즉 우리 엄마는 주일에는 절대 매매행위를 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목숨처럼 지키신다. '예수 믿고 딱 한 번! 할머니 생신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서 외상으로 원피스 한 벌 사고 다음 날 갚았다'는 말씀은 계시록 마지막 절에 기록될 우리 엄마 행전이다. 지금도 자녀들이 모일 때마다 천국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유언처럼 힘주어 말씀하시는 것이 ‘주일성수 혀라. 절대 주일날이는 뭐 사고 팔믄 안된다. 끔(껌) 하나도 사믄 안된다’라 하신다. 모태가 이러하니 내가 모태 바리새인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이 주일을 껴서 가게 됐었다. 나는 단칼에 수학여행 안 가고 학교에 남아서 자습하는 걸 선택했고, 담임선생...님의 온갖 설득과 핍박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온전히 기쁘게 여겼으니... 과연 나는 엄마의 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을 때 무슨 행사 하나를 주일날에 하겠다는 원장선생님 말씀에 장문의 편지와 함께 사직서를 내던지기도 하였다. 당시 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녀가장(아니라 처녀가장인가?)이었으니... 역시 나는 엄마의 딸이었다. 결국 이직을 하는 과정에서 주일 워크샵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첫 출근도 못하고 스스로 짤려서 백수가 되기도 했었다.

이런 주일성수에 대한 전설적이 경험담을 가지고 '주일성수도 안하는 것들이!' 하면서 자고했으니 모름지가 바리새인의 풍모는 다 갖춘 '나' 였다. 다행히 엄청난 상실의 고통과 그 끝에서 만난 선물같은 만남들로 내가 바리새인이었음을, 지금도 여전히 바리새인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부작용이 따라오는 것이다. '내가 바리새인 해봐서 아는데...'하면서 조금이라도 가식적이거나, 어떤 형식으로 신앙의 본질을 대치하려는 시도들에 대해서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 역시 여전히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인 나를 드러내주는 것일테다.ㅠㅠ)

그런 이유로 한 동안 내게 그렇게도 소중한 주일예배가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설레는 맘으로 예배에 가 앉았는데 '하나님이 좋아하실 태도와 표정을 지어라. 앤드 이제부터 예배시작 이다.' 이런 논조의 예배로의 초대에 바로 뒤집어져서 예배 시간 내내 씩씩거리며 죄만 짓고 앉아 있어야 했다. 자신의 두려움을 완화시킬 방법으로 설교를 통해 성도들을 통제하고 은근히 하나님의 상과 벌을 강조하면서 죄책감을 유도하는 행태들이 그냥 넘어가지질 않았다. 그렇다고 교회를 안 갈 처지는 아니었기에 몸은 가야했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뿐이었다. 급기야 주일 아침이면 갑작스런 복통일 일어나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고, 식은 땀을 흘리며 침대에 누워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하면서 몸이 마음을 끌어당기며 나 좀 살리라 아우성 치기도 하였다. 답도 없는 소리없는 전쟁을 치뤘다.

(조명 밝아지고...^^)

좌충우돌 방황하던 모태 바리새인이 요즘은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설레임 속에 주일을 기다린다. 어릴 적에 그랬던 것처럼 예배하러 가는 길 아침의 햇살이 그리도 따스할 수가 없다. 주일 날 들은 설교로 일주일간 넉넉히 먹고 남는 영의 양식이 되니 내가 다시 이렇게 될 수 있으리라 꿈이라도 꾸었던가? 신앙의 삶 조차도 직선 위에 줄을 세우고 나 몇등, 너 몇등 하면서 우월감 속에 빠지고 그 보다 더 깊은 열등감과 죄책감을 오락가락 하던 날들을 살며 고통스러웠는데.... 일상에서 그리도 또렷했던 사랑의 하나님이 예배의 자라만 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었는데... 이런 예배를 드리게 되다니.

좋은 지도자 만난 걸 자랑하고 싶으나 조심스럽다. 아직 허니문 효과 충만한 기간이기도 하거니와, 이 땅 그리스도인들 중 최소 몇 % 만이 누리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이다. 무엇보다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 나갔다가 수고와 무거운 짐을 두 배로 얹어서 다시 짊어지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지 모를 벗들의 얼굴이 떠올라서이다.
좋아도 좋은 게 아니고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니 오호라 나는 곤고한 모태 바리새인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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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 나갔다. 볼을 스치는 공기가 날카롭지 않다.
양지 쪽을 걷다보면 오히려 따사롭기까지 하다.
엊그제 칼바람을 머금었던 그 강변 길이 아니다.

강물은 진도가 늦고 있다. 아직 엊그제의 차거움을 그대로 안고 얼어 있었다.
강과 내가 느끼는 온도차와 시간 차가 있다. 강은 엊그제의 혹한을 이제야 살고 있다.

나는 어쩌면 강보다 훨씬 더 먼 과거를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과거의 일과 관계와 감정을 곱씹으며 다시 새롭게 분노하고 한 번 더 좌절하면서 말이다.
그 뿐인가?
오지 않은 미래까지 살아버리려 한다.
내일을 오늘로 끌어들여 미리 앞당겨 희망하고, 실패하고, 두려워한다.

포근한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얼어붙어 있는 강물이 묻는다.

너는 지금 여기를 체.감. 하며 살고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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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인생이 또렷했었다.
계획을 세워놓고 계획대로 되기를 간절히 바랐고, 되면 기뻤고 안되면 속상했다.

그렇게 또렷했던 인생이 갈수록 모호하고 때로 신비하기 까지 하다 느껴진다.
어릴 적에도 인생은 모호했을 것이다.
어릴 적이니까 아직 어려서 '또렷하다' 규정하고 또렷한 것만 인식하고 살았는 지도 모른다.



교회가 서 있는 양화진 공원의 저녁이다.
하늘의 빛깔이 신비하다.
위쪽의 푸르스름한 곳은 진짜 하늘 같은데 내가 섰는 땅과 가까운 하늘일수록 신비하다.
요 며칠 나는 딱 저 하늘처럼 신비로움에 서 있다. 조금 얼떨떨하게...







작년 연말부터 손에 든 두 권의 책이다.
두 책은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힐 만한 연관성 같은 게 없는 책이다.
그저 우연히 같이 읽게 되었다.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데 김훈 소설은 나올 때마다 아껴서 읽는다.
마음의 여유도 생겼고해서 미루다 주문하고 손에 잡은 <흑산>이다.
사실 사전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책을 펼치기 시작하니 조선말 천주교 신도들의 박해에 관한 이야기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양화진, 잠두봉, 마포나루가 무대를 이루고 있어서 내심 놀랐다.
게다가 정약전을 비롯한 정씨 일가가 자리잡은 두물머리 마재는 또 얼마 전 까지 강동에 살면서 수시로 드나들던 곳이 아닌가?








어제는 한 달이면 수십 명의 새교우가 몰려드는 이 곳 교회에서 새교우 환영회가 있는 날이었다. 환영회 겸 교회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의 자리이기에 교역자 가족으로 인사하러 나간 자리였지만 나 역시 오리엔테이션을 제대로 받는 자리이기도 했다.
개신교 백주년을 기념해서 세운 교회.
교회의 존립 목적이 양화진의 선교사묘원과 용인의 순교자 기념관을 관리하면서 이 땅 기독교 역사 속에서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인식하고 가는 교회의 비젼에 자연스레 내 삶을 싣게 되었다. 한국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 그래서 더욱 철저하게 교회의 교회다움에 존재해야만 하는 교회.
양화진 소개 영상을 보면서 교회소개를 들으면서 다시 <흑산>의 소설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갑.자.기.
난 왜 초기 기독교의 역사 속으로 이렇게 빨려들고 있는 것일까?




 




흑산으로 유배되어 내려간 정약전이 소설의 말미에 섬 이름 '흑산黑山'을 '자산玆山'으로 바꾸어 부르겠노라 하면서 말한다. 둘 다 같은 뜻이 아니냐며 묻는 창대에게 정약전은 답한다.

-같지 안다. 자는 흐리고 어둡고 깊다는 뜻이다. 흑은 너무 캄캄하다. 자는 또, 지금, 이제, 여기라는 뜻도 있으니 좋지 않으냐. 너와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사는 섬이 자산이다.
-바꾸시는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흑은 무섭다. 흑산은 여기가 유배지라는 것 끊임없이 깨우친다. 자 속에는 희미하지만 빛이 있다. 여기를 향해서 다가오는 빛이다. 그렇게 느껴진다. 이 바다의 물고기는 모두 자산의 물고기다. 나는 그렇게 여긴다.


이건 또 무슨 일일까?
지금 정약전이 말하는 내용은 십자가의 성요한이 말하는 '영혼의 어두운 밤'에 나오는 말과 흡사하다.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 할 때 밤음 무섭고 불길함이 아니라,
단순히 컴컴함, 가리워짐, 뭔가 신비롭고 미지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 영혼의 밤은 메마르고 비어서 비로소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자리다.


지난 몇 년 나는 멀쩡히 밥하고,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커피를 배우며 볶고 살아왔지만 내면에서 끊임없이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 여겨진 시간을 보냈다. 끝도 없는 어둠 같았다.

하나님의 신비를 다 벗겨내는 듯한 종교적 행위에,
기도로 하나님을 통제하여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열심을 보이라는 기독교에,
믿음이라는 미명하에 뻔한 두려움을 은페하고 서로 서로 은폐해주는 행태에,
삶을 풍요롭게 하고 위대한 영적목표의 실현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길 권하는 욕망을 가장한 기도에,

그렇게 부추기는 위선과 악에 대해서 견딜 수 없어서 영혼의 어두운 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두운 밤에서 한 줄기 빛을 찾게 된 것은 가톨릭의 영성을 배우고 지도받으면서였다. 사랑이라는 것 외에는 신비에 싸인 하나님을 이제야 비로소 조금 단단해진 마음으로 다시 만나고 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서 있다.
어설픈 언어로 엮어내기엔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다.
어쩌면 이렇게 언어로 발설해 낸 것이 나의 가벼움이런지 모르겠다.
오늘 매섭게 차거운 바람을 맞으며 처음으로 강변에 나갔다.
강변에 나가 잠두봉을 바라보고,
백 몇십 여 년 전, 여기서 참수당해 버려졌을 인간의 몸을 떠올리며,
그들과 여기 서 있는 나를 잇는 끈을 생각해봤다.


다시 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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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은 정서적 영적 성장을 위한 보물창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고 강의하기 전에도 어렴풋이 모르지 않았었다.
엄마와의 복잡다단한 애증이 해결되면서 나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엄마와의 그것은 그대로 어린시절 부터 있어왔던 피해의식과 분노이기도 했었다.

과연 어린시절은 보물창고다.

그러나 이런 표현과 접근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반감으로 더 거리를 두게 한다는 걸 알기에 조심스럽다. 에니어그램과 내적여정 강의를 할 때도 '어린시절'을 다룰 때 매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편이다.






'어린시절 작업'(이라고 부른다. 보통) 을 하면서 맨 처음 나는 '행복하고 사랑 많이 받은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과연 그랬다. 늙은 목사님에게서 태어난 딸이었다. '이삭'이라 불리며 엄마 아버지는 안아볼 새도 없이 여기서 저기 예쁘다고 데리고 다녔다고 했다. 개구장이 동생이랑 늙은 엄마 아버지를 놀리고 재롱을 떨면서 재밌고 소중한 추억이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그러나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충격으로 분명 내상을 크게 입었다는 정도였다.


(갑자기 딴 얘기, 그러나 같은 얘기)


정말 용서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수 년 전에 만난 사람이다. 우리 교회에 부임한 어느 부교역자의 사모님이었고, 나는 '사모님'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마음이 있기에 참 반갑게 따스하게 대하고 싶었다. 헌데 처음 대면부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느낌이더니 대체로 나를 받아주질 않았다. 딱히 자주 마주치는 관계도 아니었기에 '나같은 스타일 별론가보다' 했었다.(그 때 난 평신도였었다)
나중에 이 사모님이 청년시절 후배의 친구라는 걸 알았다. 그 후배는 그야말로 뭔가 나랑 잘 맞지 않는 아이였고 여차저차한 일로 좋은 기억이 별로 없는 아이다. 그 애 역시 그럴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확인된 바는 없지만 친구로부터 나라는 사람에 대한 얘길 들었고 그 정보를 가지고 처음부터 나라는 사람을 제꼈다고 생각하니..... 난 이 부분에 대해서 아직 용서할 수가 없다.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할 때마다, 그 분의 자서전을 읽으며 전율하는 부분이다. 한 두 사람이 아닌 국민 대다수로부터 그저 그냥 무조건 '김대중'이란 이름이 '빨갱이'라는 등식으로 가는 이 하늘 무너지는 억울한 오해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그리고 돌아가시고 난 후 알았다. 이 분이 정말 예수님을 만난 참 신앙인이셨구나.
김대중 대통령께서 전두환을 용서했을 망정 나는그 사모님에 대한 마음을 해결할 길이 없다고 느낀다. 이 한 마디를 그 마음에 꽂아주고 싶다. '성경에 있습니다. 엄히 말하노니 편견을 버리라' 당신의 편견으로 제 영혼을 한 순간 말라비틀어졌었습니다.








3학년, 6학년 때 두 번 왕따를 당했다. 6학년 때는 정말 심했던 것 같다. 이 왕따 이야기가 가끔씩 가볍에 떠올리며 했던 작업이기에 그리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 나를 겪어보지도 않고 어디서 들은 편견을 가지고 나를 거절해버린 그 분에 대한 과.도.한 분노가 어디서 오는가? 분명 과.도.하다. 얼마나 과도하면 일생에 용서할 수 없는 일로 표현을 하겠는가? 내 안의 어딘가에서 오는 과도함인 걸 안다.
왕따를 시켰던 아이가 그랬다. '넌 나보다 이쁘지 않아. 내가 제일 예쁘고 그 다음이 너야' 그러면서 어떨 때 자신의 그룹에 넣어주고 잘해주다가 나를 왕따시키기 시작하면 무서웠다. 반에서 어떤 아이도 나하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나는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었다.

위 사진을 꺼내 보면서 왕따가 한창이었던 6학년 때의 내가 어땠나를 생각해봤다. 대체로 나는 까불고 밝은 아이였다. 사진들이 그렇다. 6학년 때 사진은 확실히 다르다. 함께 사진을 찍은 친구가 울면서 나에게 말했었다. '너랑 얘기하면 안 돼'  그 시절이 지나고 중학교 가서 잘 지내다가 2학년 때 전학을 왔는데 그 때 헤어지면서 저 친구가 많이 울고 미안하다고 했었다.


 

 


초등학교 졸업식날 찍은 사진이다. 어쩌다 공부좀 한다는 여자애들이 통틀어 모여서 찍게 되었다. 이 날 나는 독감으로 무지 아팠다. 여기서 한복을 입은 아이들은 나를 왕따시킨 아이와 그 일에 앞장섰던 아이들이다. 세월이 지나고 다시 만나서 잘 지내고 있지만 이 사진의 나 역시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마음에 상처받은 아이가 울고 있다고 한다. 사실 그런 표현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만 , 누구나 마음에 큰 결핍이 있고 상실감이 있다. 대체로 어린시절의 경험과 맞닿아 있고 그걸 다루는 것, 특히 하나님의 사랑에 빛에 그 결핍과 상처를 비춰보는 것은 꼭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왕따로 인해서 나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왕따로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나를 위해 엄마가 학교에 찾아왔다. 담임선생님이 알게 되고 반의 남자 애들이 알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늘 남자애들에게 인기가 좋은 편이었는데 어쩌면 그 왕따 사건으로 인기가 더 좋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한테 자꾸만 '넌 나보다 예쁘지 않다'고 말했던 그 친구가 내 인기가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왕따를 당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엄마가 심어준 치명적인 마음의 습관이 있다. '니가 모가 나서 그러는 거다. 교만하면 안된다. 하나님을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찾으신다' 이런 훈계였다. 그래서

사랑은 사랑은 둥근거예요.
나만이 잘났다 하지 않고요.
모지고 외톨이 되지 않아요.
언제나 웃으며 사이 좋지요.

이 노래는 딱 나의 노래가 되었다. 모지고 외톨이 되는 건 나다. 왜냐면 나만이 잘났다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상을 받아와도, 누가 날 이쁘다 한다해도, 내가 어디서 뭘 잘했다고 해도 일단 이렇게 말했다. '교만허지마. 교만허믄 안 돼. 그게 다 니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녀'






몇 학년 때인지 모르겠다. 어린시절에 기억하는 나는 저 아이다. 밝은 아이다. 늙은 엄마가 브로치 꿈을 태몽으로 꾸고나서 브로치처럼 이쁘지만 약한 아이여서 애지중지 키웠을 것이다. 목사 사모이면서 생계를 위해서 비단장사를 했기 때문에 나름 패션 감각이 있어서 장에서 이쁘다는 옷은 다 사다 입히면서 이쁘게 키웠다고 했다.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 하고 시골 애 같이 안 생기고 이뻤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걸 인정하면 교만한 아이기 되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왕따 당하거나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건 역시 내가 교만하고 잘난 척하는 것이 이유다.


 




얼마 전 왕따 당하는 채윤이를 보면서 주체할 수 없었던 감정,
그리고 어떤 계기로 올라온 감정과 그 감정을 따라 내려가면서 '왕따'를 다시 맞닥뜨린다.
내 속에 왕따 당한 어린 아이가 울고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미 다뤘던 작업이라 생각했지만 아직도 울고 있는 것 같다. 울다가 분노하고, 울다가 수치심에 웅크리고, 울다가 지치기도 하면서 어른이 된 오늘의 관계를 좌지우지 하는 것 같다.
다시 직면하려고 한다.
난 사랑받아 마땅한 사랑스러운 아이(사란)이라 생각하며 동시에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느낀다. 내 실체를 알며 모두 날 싫어할 거라 느낀다. 나는 뭣도 잘 하고 뭣도 잘 하고 사람들에게 호감형이라고 생각하며 동시에 관계의 실패자라 여긴다. 언젠가는 관계가 틀어지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나를 질투하여 왕따시키는 타인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동시에 내가 교만하고 모가 난 탓이라 여긴다. 그 사이에 늘 끼어있다.
답을 어디서 찾을 지, 그 아이를 어떻게 다시 만나 달래주고 보듬어 줄 지, 늘 그렇듯 공식같은 해법은 없지만 어떤 모양으로든 그 분의 사랑의 빛 앞으로 가져가려고 한다.


사진의 저 아이처럼 도도하고 교만해 보이는 아이와 왕따 당해 울고 있는 아이가 통합되고 아직도 과거를 살고 있는 내 마음에 그 덫에서 조금 자유로와지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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