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목 : 면회

사진설명 : 신종플루 의심환자로 안방에 격리된 엄마를 그리워하던 현승. 엄마를 한 번 안아보고 잘 수 없다는 것이 눈물을 펑펑 쏟던 하루 이틀이 지나고... 아예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던 어느 날  침대 위 베란다쪽 창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헤헤헤헤.. 엄마' 하고 나타나 면회하고 가다.


두 남자의 스킨십
에 난 귀찮아 죽겠다고 늘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았지요. 작은 남자의 독점적인 애정행각에  큰 남자분 '야이 자식아. 엄마는 내꺼야. 아~ 저 자식 진짜!' 이러면서 열이나 받는 날이 대부분이기 합니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경쟁과 갈등 사이에 귀찮아 죽어나는 사람은 나다. 이러고 살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귀찮은 정도를 넘어 짜증을 내기도 하진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일명 대체로 밖에서 보는 이미지와는 달리 '진짜 뻣뻣한 여자'라는 영예로운 평가를 받고 살고 있었습니다.


드 넓은 침대
혼자서 차지하고 살았으면 하는 바램도 솔직하게 있었지요. 형식상 자기 침대에서 잠들기는 하지만 결국 밤에 한 번, 내지는 두 번 엄마 침대로 와서 어느 새 꼽사리 껴 있는 작은 남자 때문에 아 편히 자는 날이 없었지요. 두 남자 사이에 껴서(^^;;) 비좁게 자고 나면 어깨가 결리는 날도 있다지요. 편히 혼자 자는 침대였음 좋겠다며 밤마다 투덜거린 날이 오래였습니다.


신종플루
덕에 소원성취 한 것이지요. 두 남자가 다 스킨십은 커녕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되었고 일주일 동안 밤낮으로 그 넓은 침대를 혼자 차지하고 뒹굴었으니 말이예요. 몸이 괴로운 탓에 편하다 어떻다 할 겨를도 없었지만요. '아, 이거 내가 원하던 거다' 하면서 침대 위에 책 여러 권 쌓아놓고 좋아라 하면서 하루 이틀 보내고 있었지요.


뭔가 모를 슬픔, 그리움
이 시간이 지날수록 드넓은 침대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픈 아내를 살뜰하게 챙길줄 모르는 남편의 무심함에 화가 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아픈데도 개념없이 떠들어대는 철없는 아이들에 대해서 섭섭한 감정이 올라오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헨리나우웬의 책을 읽다가 갑자기 깨닫게 되었습니다.
단지 밖에 나가지 못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아픈 나를 살뜰히 챙겨주지 않아 화가난 것이 아니라  식구들과 아주 가까이 친밀하게 몸을 접촉할 수 없다는 것이 힘들구나. 그래서 점점 마음이 메말라가는구나. 거실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는 세 식구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세 식구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아이들이 깔깔거리는 소리가 귀에 꽂히면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막연한 그리움이 아니라 현승이의 보들보들한 몸을 한 번 안아주고 싶고, 엄말 닯아 스킨십에 인색한 채윤이의 앵두같은 입술과 뽀뽀하고 싶고, 남편의 딱딱하지만 따스한 가슴에 한 번 안기고픈 그런 그리움이었다지요.


니들이 나한테 줄 게 뭐있어!
라고 항상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남편에게 필요한 사람이니까, 애들이 엄마 엄마 하는 이유는 엄마 없이 자신들의 삶이 유지가 안되니까! 한 마디로 나는 우리 식구들에게 필요한 사람이다. 이런 마음만 충천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 세 식구는 내게 필요하기는 커녕 날 귀찮게 하고, 내 시간을 빼앗고, 나를 가운데 끼워놓고 꼼짝 못하게 하는 존재들이다 이렇게요.

내가 줄 거는 있지만 받을 거는 없다는 교만함이 머리 끝까지 차 있었어요. 스킨십이 귀찮은 것처럼 존재 자체가 귀찮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ㅠㅠㅠㅠㅠㅠㅠ 교만함의 극치!
실은 나 역시 세 사람의 사랑이 필요하고, 사랑받아 왔고, 그 사랑에 기대 나를 지탱하고 있었단 생각이 이제야 크게 밀려옵니다. 귀찮다고 뻐팅기며 내 존재감을 확인하는 유아적인 내 모습을 보게 되기도 했구요.


나는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
임을 처음 배우는 것처럼 다시 배웁니다. 마치 나는 뭔가 줄 것만 있는 것처럼 살고 있었어요.  당신들의 사랑 따위는 필요없어. 됐어. 내가 사랑해주기는 할께. 헌데 나한테는 당신들의 사랑은 성에 안 차. 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하고 있으니까 그것으로 족해. 가족에게뿐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사랑에 교만한 병이 깊어요. 
신종플루가 합병증 때문에 무섭다는데 이렇게 발견된 신종플루 마음의 합병증은 치료가능하고 치료하면 더 건강해질 일이니 이제라도 부끄럽지만 소심한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려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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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 사진은 휴가였던 주일에 양화진에 있는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찍은 것이다.
오후에 다른 교회 예배를 드리기 위해 여유가 없어서 부랴부랴 나왔다. 아쉬움에 카메라를 꺼내드니 카메라 렌즈가 꽂히는 씬은 성당의 십자가와 하늘, 그리고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였다.
 
==========================================

내 평생 따라 살고 싶은 그 분의 삶은 내게 약속해주셨다. 새의 자유로움 같은 날개를 주겠노라고. 그 분의 진리를 가슴으로 알기만 한다면 새의 날개처럼 자유로와질 것이라고.
아주 가끔 나는 느낀다. 그 분이 가르치신 진리 안에서 새의 날개처럼 자유로운 내 마음을. 그 어떤 무거움에도 땅으로 추락하진 않을 것 같은 가벼움이고,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평안이다.

하지만 더 많은 경우의 내 삶은 새의 날개 같은 천국의 자유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먹고, 자고, 똥 싸는 일을 살며 그렇게 사는 자들의 의무이자 특권인 걱정 근심 주식회사를 차려놓고 허우적대는 것이 열심을 다해 사는 생활인의 자세인 것처럼 산다.

가끔은 걱정 근심 주식회사가 파산을 맞는 일이 있다. 파산을 하면서 모든 빚을 내 맘에 떠 넘기면 마음 깊은 곳에 있던 것들이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며 올라온다. 그런 날을 난 '영혼의 어두움 밤' 이라고 부르는 법을 배웠다. 정호승 시인의 시어로는 '그늘'로 부르는 것을 빌려왔다. 마음 밑 바닥에 있는 많은 욕구들이 떠올라와 의식의 수면 위에서 '니 속에 이런 쓰레기가 있었던 거 몰랐지?' 하는 듯 나를 조롱한다.

이제 나는 나의 그늘이 점점 커져서 나를 덮치는 날에 그 그늘을 사랑하고 껴안는 법을 배운다. 잠시 분노와 좌절의 감정으로 헷갈리지만 그게 네 탓도 아니고 그의 탓도 아니라는 것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그건 내 무의식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고, 결국 그 깊은 곳에서 올라온, 처음엔 쓰레기처럼 보였던 부유물들이 나를 더 잘 알게 하는 것들임을 깨닫는다. 결국 나를 덮친 그늘은 다시의 내게 새의 날개를 달아줄 날을 알리는 햇살의 다른 면임을 안다.

그러기에, 나는 햇살 비치는 나의 하루를 사랑하듯 그늘진 나의 하루를 마음으로 껴안는다. 햇살 비치는 날보다 훨씬 더 아픈 일이지만 그늘 속 숨어 있는 가시들이 따겁고 아프지만 기꺼이 있는 그대로 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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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위험이 있음을 알리며 주의를 요하는 전광판처럼 마음 한 구석에서 '지속적인 미세한 불안'이라는 감정이 깜빡이고 있었다. 우리 청년부 수련회 시작하던 8월12일 이었습니다. 우리 청년부는 수련회는 시작하고  나는 다른 교회 청년부 수련회에 에니어그램 강의가 잡혀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전 날 부터 내리던 비와 함께 오락가락 마음 한 구석을 때리고 있어서 밤잠을 많이 설쳤다.


경춘고속도로 설악IC를 빠져나갔다. 여기로 나가는 게 강촌IC로 나가는 것보다 빠르긴 하지만 산을 하나 넘어야 한다는 안내를 들었지만 용기를 내어갔다. 아닌게 아니라 쏟아지는 빗 속을 뚫고 구불구불 산을 하나 올랐다. '주님 그 나라에 이를 때까지 순례의 걸음 멈추지 않으며 어떤 시련이 와도 나 두렵지 않아. 주와 함께 걷는 이 길에' 찬양을 부르며 올랐다. 이제 정상인가 싶었고 다시 구불구불 내려가는 길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차가 휘청 하더니 가파른 도로의 끝을 치고 안쪽으로 미끄러졌다. '아, 위험하구나. 조심해서 내려가야 겠구나' 하면서 10Km 정도로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평지에 다다랐을 즈음, 갑자기 차가 덜덜거리며 뒤에서 큰 소리가 났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뒷바퀴 펑크가 나서 푹 주저앉아 있었다. 이걸 보는 순간 어젯밤 부터 그렇게 불안하던 그 불안이 차라리 가시고 한숨이 쉬어졌다.


빗 속에서, 내가 어디 있는 위치도 모르면서, 산 속이라서 휴대폰 추적도 잘 안 되는 곳에서 곡절 끝에 자동차 긴급 서비스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강의하는 곳으로 가는 길에 만난 홍천강은 손에 잡힐 듯 불어나 있었다.
그리고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들어가는 물 옆의 길을 끊어지고 말았다. 마을 길로 돌아 강의 장소로 가면서 이러다 강의 끝나고 나오면 집으로 돌아갈 길 조차도 끊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살짝 마음을 스쳤다.


강의를 시작하기 전 잠시 시간이 주어져 마음도 가라앉히고 기도할 시간이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화창한 길을 가게 해주세요. 며칠 간 수련회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마음을 누르던 불안함 또한 오늘로 깨끗이 걷어내 주세요'
강의를 마치고 서둘러 출발했다. 다행히 비는 갠 상태지만 하늘이 어둡다. 아! 그런데, 출발한 지 1분이 못 되어 바라본 하늘 저 쪽에선 그 무겁던 불안의 구름이 걷혀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날이 몰라보게 환해진다. 남편에게 전화를 하려고 전화를 꺼내 들었다. 어, 무음으로 해놨던 전화기에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남편 이름이 뜬다. 전화가 오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게 무사히 끝났다고 말하면서 바라본 하늘에는... 아, 이번에는 무지개다. '여보, 전화 잠깐만 끊어' 하고 차를 세웠다.

약속의 무지개. 너무 예쁜 무지개가 너무 예쁜 양평의 산 속에서 홀로 있는 내게만 보여졌다. '저 무지개는 내꺼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약속이야' 하는 생각에 두근두근 거린다.


다시 보니 쌍무지개! 다시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곳에서도 청년들이 저녁 먹다가 무지개 보느라 난리였다고 했다. 아, 저 무지개는 내게도 우리 TNT에게도 주시는 약속이다.


출발할 때 마음에 무겁게 드리워졌던 불안의 구름은 어느 새 설레임의 구름으로 새롭게 덮힌다. 양평의 어느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저 쪽 하늘의 붉은 노을이 여기가 어딘가 싶게 이국적으로 빛나고 있다. 노을 지는 그 부분을 제외하고 정말 장엄한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의 삶을 이끌어가던 구름기둥이 저러했을까?

참으로 긴 하루. 하루 종일 누군가의 폭탄 메세지를 영혼으로 받았던 날인 것 같다. 저 구름과 노을을 바라보면 집에 오는 길에 마음에 새어나오는 소리가 있다.

지극히 높은 주님의 나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세상의 신을 벗고서 주 보좌 앞에 엎드리리
내 주를 향한 사랑과 그 신뢰가 사그러져갈때
하늘로 부터 이 곳에 장막이 덮이네
이 곳을 덮으소서 이 곳을 비추소서
내 안에 무너졌던 모든 소망 다 회복하리니
이 곳을 지나소서 이 곳을 만지소서
내 안에 죽어가는 모든 예배 다 살아나리라

 

며칠이 지난 지금 조금씩 그 날이 말로 정리가 되고 그 장막이 어디에 덮힐지, 그 무지개는 내게 어떤 약속의 증거가 될 지 수수께끼를 풀어가고 있다. 어떤 날에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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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중독 #

오늘은 책을 제대로 한 줄도 못 읽은 날이다.
사실 요즘 나는 '독서 중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책을 읽는 것은 좋은 것이 분명한데 이걸 못하면 불안하거나, 또 불안한 어떤 것들에 맞딱뜨리지 않기 위해서 하려고 하면 '중독'이라고 하니깐 말이다. 약간 중독초기 아닐까?

그런데 오늘은 책을 한 줄도 제대로 안 읽었는데도 마음이 편하다. 다행이다.


# 우리 엄마 #

엄마가 집에 와 계신다. 하루 종일 누워서 주무시거나 잠시 일어나셔서 성경을 보시는 게 일과다. 하루 세 끼 식사를 챙기는 일 때문에 약간 생활의 리듬이 깨졌는데 아직은 견딜만 하다. 작년인가 내면작업 하면서 엄마가 너무 힘들었던 기억과, 그 때 잠시 우리 집에 머물러 계셨던 기억에 첨에 살짝 긴장이 됐었다. 며칠 지나면서 점점 엄마 마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 맘이 그러니까 남편이나 애들이 엄마를 부담스러워 할까봐 신경을 곤두세웠는데 그 역시 편안해지고 있다. 식사량도 워낙 적으시고 내가 신경쓰는 걸 더 걱정하셔서 최대한 편하게 가고 있다.


# 이웃 사촌 #

점심 먹고 나서 이제는 '반가운'이라는 말보다 '편한' 이라는 형용사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웃 사촌들이 들러 주셨다. 집에 한 번 놀러 오고 놀러 가는 일은 그리 참 쉬운 일이어야 하는데... 요즘 사는 방식은 '초대'라는 격식있는 용어가 오가야만 집에서 사람을 만나게 되는 시절이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 바쁜 현.대.인 이라서 그럴거야. 
이런 세상에 그저 전화나 문자 한 방 날리고 갑자기 휙 차 마시러 들러주거나 들를 수 있는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암튼, 잠깐 그렇게 만나는... 아! 이런 걸 두고 '마실'이라고 한다. 예기치 않은 그러나 편안한 마실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 고마운 채윤이 #


2박3일 수련회를 갔던 채윤이가 왔다. 2박3일 내내 채윤이의 부재가 그렇게 클 수 없었다. 채윤이가 동생들을 얼마나 잘 배려하고 돌보는 지를 새삼 느꼈다. 목요일에 조카들 둘이 왔었는데 둘을 데리고 노는 현승이를 보면서 알았다. 채윤이는 생각해보니 엘리베이터 타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항상 자기보다 어린 현승이를 배려하는 것이 몸에 베여 있었다. 물론 그게 짜증이 나서 현승이에게 신경질을 부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현승이를 비롯한 집에 놀러오는 동생들에 대한 채윤이의 배려가 정말 귀한 태도임을 알았다. 현승이 역시 누나의 빈 자리가 커서 '누나 언제 와?'를 입에 달고 살았고, 둘이서 손가락을 걸면서 약속했다. '우리 채윤이 누나 오면 그 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말하고, 진짜 잘해주자'^^

외할머니가 이층침대의 일층에 자리를 펴셨는데 챈이가 어떻게 나올까 살짝 걱정이 됐었다. 2층이긴 하지만 할머니랑 같이 자려고 할까 어쩔까 하는 마음이었다. 수련회 다녀오자마자 엄마가 두 애들을 데리고 문방구 가서 선물을 하나 씩 안기셨는데 그게 약발이 잘 받았는지...챈이가 외할머니에게 많이 살갑다.
저녁 먹고 나서 살짝 귀속말로 그랬다. '엄마, 나 예전에는 외할머니가 오시면 좀 싫었는데 지금은 좋고, 외할머니랑 얘기도 잘 하게 돼. 엄마 수영 가면 나 할머니랑 얘기 많이 할거야'
이 말에 눈물이 날 뻔 했다. 내게는 엄만데 우리 아이들이 친할머니 만큼 따르지 않는 것이 그렇게 섭섭하고 때론 화가 나기도 했었다. 채윤이가 너무 고맙다.


# 지금 여기를 살기 #

책이라도 한 줄 읽어야 한다거나,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심지어 큐티를 빼 먹으면 안 된다는 좋은 강박관념 까지도 나를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같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즐기거나, 느끼거나 하면 되는데 여기 아닌 다른 곳을 살려고 하기 때문에 불안하고 불안이 쌓이다 보면 분노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오늘 하루를 보내고 특별한 일 없이 이다지도 마음이 편안한 이유는 이걸까? 간만에, 아주 간만에, 아니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금, 여기에 살기를 일상에서 오래 유지한 탓일까?
일찍 잠든 아이들과 조용히 기도 중이신 엄마. 미리 설교 원고 써 놓고 검토 중인 여유 있는 남편 때문에 아주 조용한 밤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더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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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유치부 성경학교 마지막 시간. 엄마와 함께 레크레이션 시간이란다. 사실 따지고 보면 현승이 자랄 때는 직장생활로 유치원 행사를 못 간다든지 했던 일이 많지 않았는데도 내겐 늘 약간의 죄책감이 있는 듯. 그래서 그런 일이 있으면 꼭 가서 즐겁게 해줘야겠다는 의지가 불끈하는 모양이다. 아니 그게 아니어도 난 기본적으로 열정적이니깐....ㅜㅜ

무슨 얘기인고 하니... 엄마와 함께 율동을 하는 시간. 현승이를 기쁘게 해줄 요량으로, 아니면 원래 난 뭐든 열심히 빨리 몰입하는 편이니까 열심히 율동을 따라했다. 헌데 옆에 있던 현승이가 점점 기분이 나빠지고 있는 것. 그 원인이 엄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표정이 굳어지고, 몸이 경직되고, 엄마 옆에 멀리 떨어져 앉으려고 하고... 뭔가 엄마를 거부하는 둣한 느낌?
'왜 그래, 현승아? 엄마 때문에 속상한 거 있어?'하고 물어 볼수록 얼굴은 더더욱 울상이된다. 나중에 눈물까지 맺힌다. '엄마가 율동하는 거 때문에 그래? 엄마 율동 하지 말까?' 하고 물으니 저리 가란다.ㅜㅜ 현승이가 거부하는 느낌에 엄마 역시 상처 많이 받고 자존심 상했지만 이럴 땐 가만 두는 게 약이라는 걸 알기에 기다렸더니 조금씩 맘이 풀리는 듯 했다.

나중에 집에 와서 물으니 엄마의 예상이 맞았다. '엄마가 율동을 너무 잘 해서 부끄러웠어. 너무 열심히 해서.....' 그래, 엄마도 느꼈다. 요 놈아! ㅜㅜ 현승이의 반응에 피 흘리고 있는데 옆에서 아빠 한 마디. '나도 사실은 현승이 마음 이해할 수 있어' 
어어어~억! 이 내향형의 에비와 아들 놈아! 내 열정이 그렇게나 거북스럽더란 말이냐?

저녁 내 남편에게 유도 심문. '그래서 당신도 내 열정 때문에 부끄러웠던 적 있었어?' '아니지~이, 그냥 현승이 맘이 이해가 된다고...' 그 담엔 현승이에게 '현승아! 엄마가 그렇게 부끄러웠어?' 이렇게 계속 두 남자를 고문했지만 알 듯도 하다. 때로는 이런 나쁜 의도를 가지지 않은 단순한 차이도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들은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고 하지. 

01


현승아!  이 열정. ESFP의 열정, 뭔가에  꽂힌 7번의열정. 엄마의 열정은 말이다....
엄만 한 때 그 열정이 자랑인 줄 알았었어. 나의 속마음을 더 잘 알게된 이후 그 열정은 부끄러움 되었단다. 헌데 지금은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아. 조금씩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 젊은 날엔 열정이 나인줄 알고, 내가 열정인줄 알고 살았어. 그러면서 많은 걸 이루고 많은 실수도 했지. 지금 확실히 아는 건 열정은 그저 나의 일부분이었고 그로 인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지만 그 얻은 것과 잃은 것 사이에서 결국 엄마는 하나님의 더 깊은 마음 자리를 알게 되었단다.

너의 생일 축하 자리에서조차 게 머무르는 가족들의 시선이 부담운 현승아!
엄마의 열정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까봐 두렵고, 그래서 덩달아 네가 주목을까봐 두려운 마음 알아. 너랑 닮은 아빠랑 더 많은 것들을 공감하며 자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향형과 직관형의 너의 기질을 통해서 네가 이룰 수 있는 것을 맘껏 이루고 실패도 하고 거절도 당해보렴. 결국 그런 것들로 네 기질을 뛰어 넘는 또 다른 너를 발견하게 되는 날이 올거야.  그 두려움과 연약함이 결국 너를 온전함으로 이끄는 은혜가 될거야. 

엄마가 엄마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지 않았던 것처럼, 너 역시 아닌 다른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을께. 너 자신이 되렴. 언제든 너 자신이 되거라. 너 자신이 되어 살다가 보면 어느 새 엄마 같은 열정이 너의 것이 되어 있으런지도 몰라. ^^ 실은 엄마 그렇게 상처 많이 안 받었떠~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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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신혼 초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가장 힘들었 이유가 '어머니' 때문이 아니었다. 고부간의 관계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나 자신이었다. 무슨 얘기인고 하면, 원래 거절도 못하는 나. 또 어른들이 어떻게 해드리는 걸 본능적으로 잘 아는 나 자신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행동으로는 늘 최선을 다해서 잘 하지만 속으로는 온갖 생채기로 피를 흘리고 있는 적이 많았다.가장 힘든 건, 내가 진심으로 마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몸의 수고도 다 헛될 뿐이라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더 잘 정리가 된다. 시부모님께(사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친절하고 공경하는 것들의 출발점이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쯤해서 전화 한 통 안 드리면 섭섭해 하실 것이다. 이쯤해서는 스파에 한 번 모시고 가야 채윤이 보시느라 마음이 쌓인 게 해소되신다. 착한 며느리라면 휴일에 운전을 시키셔도 기꺼이 해드려야 한다. 이런 식의 슬픈 헤아림 말이다. 이런 슬픈 헤아림으로 움직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 머리 속으로 끝도 없이 이런 헤아림을 반복할 때 분열감으로 인해 초죽음이었다.
물론 순도 100% 사랑, 순도 100% 두려움은 존재하기 어렵다.  다만 대체로 두려움이었다. '이런 이미지의 며느리, 이런 이미지의 크리스챤, 이런 이미지의 아내... 이게 무너지면 죽음이다' 이런 식의 두려움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난 감히 부끄럼 없이 우리 시부모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웬만한 일에는 섭섭하지도 않고, 웬만한 요구도 과하다는 피해의식 따위를 수면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 지난 주 한 주 동안 어머니께 전화를 한 통도 드리지 않았다. 작은 일로 어머님의 연약함에 살짝 짜증이 났는데 애써 전화 드리고 싶지가 않았다. 하루에도 한 번은 기본, 어떤 날은 두 번도 길게 통화하며 수다를 떠는 사이인지라 어머님이 적잖이 섭섭도 하시고 맘도 쓰이셨을 것이다. 다 알지만, 두려움 때문에 전화를 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주말에 애들이 갑자기 시댁에 가게 되었고 또 어머님이 힘주어 말씀하신 '늦게 니네 데리러 오려면 니 엄마 아빠 힘들어. 여기서 자' 이렇게 설득하신 탓에 일박을 하게 되었다. 그 일로 자연스레 통화를 했다.

오늘 오랫만에 방학한 아이들 데리고 하루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었다. 엇저녁에 급 계획을 바꿔서 부모님을 모시고 새로 개통한 경춘 고속도로를 타고 춘천엘 다녀오기로 했다. 나 스스로를 두려움으로 꽁꽁 묶지 않을 때, 그리고 때로 내가 내 자신을 다그치지 않고 기다릴 때 자연스레 다시 흐릿했던 사랑이 또렷해진다. 그리고 내가 두려움 아닌 사랑으로 부모님을 공경할 때 거기서 나오는 기쁨의 샘물은 내 몫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사랑이 버거운 날에 잠시 유보할 수 있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이렇게 노래하면서 말이다.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두 망아지가 함께 하는 한 어디든 시끄럽고도 귀찮고 무엇보다 즐겁다. 춘천 닭갈비로 몸과 마음이 두둑해진 돌아오는 차 안. 도레미 송으로 공연의 문이 열렸다.



 어제 할아버지 댁에서 자면서 텔레비젼을 원 없이 본 녀석들. 간만에 개콘을 제대로 봤나보다. 안영미 흉내를 기가 막히게 잘 하는 큰 망아지.



안영미는 되는데 강선생은 잘 안 되는 누나를 위해서 나선 구원투수 작은 망아지.



마지막으로 작은 망아지의 리듬 노래.



이 녀석들 커서 이런 공연 안해주면 할아버지 할머니 무슨 낙으로 우리 차에 타실까 살짝 걱정이 될 정도로 기쁨조 역할을 톡톡히 한다.

사랑, 어렵고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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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모임이 있어서 명동에 다녀오는 길, 혼자 가는 길이 아니었다. 오는 길, 가는 길 나우웬님께서 동행해주셨다. 지하철에서 나누기에는 너무 심오한 얘기를 들려주시며 말이다. 특히 돌아오는 길의 대화는 압권이었다. 명동역에서부터 그 분의 차분하고 강요하지 않으며 자기고백적인 조근조근한 얘기는 나를 사로잡아버렸다.



수년 동안 공동체에 목말랐던 삶이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공동체는 한 번도 주어진 적이 없다고 말하곤 했었다.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꿈꾸지만 그런 곳은 한 번도 없었어.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헌데, 요즘 문득 문득 공동체를 향유하고 있는 나. 이건 코페르니쿠스적인 전이이며 기적같은 발견이다. 


 










내가 공동체를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어' 라고 말 할 때 대부분 나는 현재를 살고 있지 않았다. 늘 미래의 어느 날, 지금의 근심 따위는 해결되는 어느 날을 그리며 현재는 단지 벗어나야할 어떤 감옥 같은 것이었으니까. 지금, 지금 몸담고 있는 이 공동체는 이러이러해서 문제지만 이것만 없다면 괜찮을 거야. 나중에 진짜 공동체를 만나게 되면 이렇게는 하지 않을거야. 하면서 말이다.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사는 사람만이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다.




공동체가 누군가, 막연히 말해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내가 감당한 어떤 것으로 강요된다고 느끼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 의무라고 생각했을 때 그건 결코 향유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사람이나, 교회를 빙자한 권위에 대한 순종의 개념이 아니라 그 분을 향한 '온전한 경청'의 태도일 때 그 때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 역시, 오늘 여기서 지금을 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또 사랑받는 자이며, 무엇보다 순례자이다.  나는 '착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공동체를 선택하고 거기에 나를 드리지 않는다. 나는 그저 은혜가 필요한 순례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거짓된 안락함 속에 안주하려 하지 않고 순례자의 삶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고보니 최근 나는 너무 자주 공동체를 경험한다. 커피 한 잔 마주 하고 앉은 유쾌한 만남에서, 공원의 벤치 위에서, 아파트의 잘 조성된 길을 걸으면서, 매일 들락거리는 사이버의 여러 집과 집들에서, 우리 집의 널띠 넓어 정이 안 가는 거실에서 조차도 말이다. 심지어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이미 이 세상을 살지 않는 헨리 나우웬님과 깊은 나눔과 공동체를 경험했다. 

지하철이 광나루역을 지나 천호역을 향해가고 있는 중이어서 책을 덮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나우웬과의 목장모임ㅋㅋㅋ은 계속되고 있었다. 순간 아저씨 한 분이 환영처럼 내 앞에 서서 고개를 들이밀면서 '%#&%&**@) 천원 짜리 한 장....' 이러신다. 나누웬님과의 대화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는 중이어서 아저씨의 말이 빨리 해석이 되지 않았다. 아~ 천원 짜리 한 장만 달라는 얘기였다. 버스비가 어쩌구 하는 말도 들었다. '아~ 차비가 없으세요?' 하고는 지갑을 열어서 천 원 짜리 두 장을 꺼내 드렸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내려서 계단을 오르다보니 사태파악이 되었다. 예전에 어떤 목사님이 설교에서 그러셨다.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 그거 주면 안된다. 그 중에는 근처에 자가용 주차시키고 그걸로 퇴근하는 사람도 있다. 또 그렇게 번 돈으로 하는 일이 뻔하다. 하시면서 말이다. ㅠㅠ
천 원 짜리 두 장을 받아들 아저씨도 행색으로 보아서 정말 차비가 없었던 건 아닐 확률이 높다. 여전히 나와 함께 걷고 있던 나우웬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가 어떤 곳에서든 너의 마음을 온전히 열면 너가 그렇게도 갈망하는 공동체를 바로 그 순간 경험할 수 있다니까. 방금 만났던 그 아저씨조차도 말이다' 라고 하셨다.
계단의 마지막 몇 칸을 오르면서 자연스레 방금 만났던 아저씨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다. '하나님 제가 드린 이 천원이 오늘 저녁 저 아저씨의 술이 되지 않게 하시고 밥이 되게 해주세요. 가장 따뜻한 사랑으로 저 아저씨를 감싸 안아 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순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서 있었다. 나우웬 선생님이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안녕' 손을 흔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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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길


정 호 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 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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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일을 시원하게 보고난 어느 아침,
커피 한 잔 들고 베란다 내 자리에 앉으니 뱃속에 묵직한 것이 다 빠져나가서 한 없이 가벼워진 이 느낌. 당장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정말 뱃 속이 편하구나. 좋다. 감사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오래 변비를 앓아보지 않았다만 이 순간, 이 편한 느낌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평생 몰랐을 것입니다. 이 순간, 맘에는 큰 돌덩이 같은 게 하나 얹어져 있다해도 몸의 가벼움과 자유로움에 잠시 그 조차도 잊혀집니다.



수 없이 거절당해 본 경험은, 또 거절당할까봐 두려워했던 시간들은 오늘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나같은 사람을 찾아주다니....' 하며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견딜 수 없는 한낮의 뙤약볕은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낙비의 시원함에 시원함 이상의 기쁨과 만족감을 주고요.

영혼의 어두운 밤은 늘 내 안에 있는 그간에 보지 못했던 어두움을 보게합니다.
그리고 그 어두움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의 빛을 발하시는 사랑의 빛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영혼의 어두운 밤에도 노래할 수 있습니다.
밤에 부르는 노래. 어쩌면 이 세상에서 살면서 불러야할 가장 깊고 아름다운 노래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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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과 결혼을 할까 말까, 회사를 그마둘까 말까, 이 일을 할까 말까...
아주 중요한 결정들을 맞닥뜨리면서 삽니다. 매일 중요한 결정을 해야하는 건 아닙니다만 사는 게 시들해질 때면 인생이 그렇게 흐물흐물한 게 어딨냐는 듯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 이걸 하는 것일까?  저걸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하며 조언을 구하고 기도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최소한 내 맘 가는대로 확 선택해버리는 것보다는 좋은 태도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라고 구하고, 그렇다고 확신하며 선택하는 것이 또 항상 좋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러 번 선택의 기로를 넘으면서 정해진 '하나님의 뜻'이 떡하니 내 앞에 던져지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때마다 수없이 고민하고 아파하고 조급해하다 넘어지곤 했지요. 그렇게 해서 늘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며 살았지만 '내가 수수께끼 같이 숨겨지 하나님의 뜻을 알아맞췄는지, 아니면 못 맞췄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일은 이제껏 해온 선택들을 돌아볼 때 '감사하다' 는 정도의 고백은 정직하게 할 수 있는 듯 합니다. 무엇보다 결혼 이후에는 정말 선택하고 분별하는 일이 우리 부부를 더욱 자라게 하고 서로 사랑하게 했다는 것이 분명하니까요.

후배들이 진로를 고민하거나 이런 저런 선택의 상황에서 '어떤 게 하나님의 뜻일까요?'라고 물으면 저는 답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는 말씀을 떠올리며 하나님의 뜻은 네 마음의 '온전한 평안' 아닐까? 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해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 되어라' 라고 말하며 기대하는 부모가 아니라 '너 자신이 되어라.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라. 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라' 라고 말씀하시는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은 내가 무엇을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언제나 그 하나님 자신으로 인해서 온전히 만족하고, 온전한 샬롬을 누리며 사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정말 어떤 일을 선택할 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면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내 안의 거짓 목소리가 아니라 가장 정직한 목소리, 그러니까 단적으로 말하면 내 안의 숨은 동기가 되겠지요. 내 안에 숨은 동기가 무엇인가? 내가 오른편을 선택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왼편으로 가려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이걸 알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작업이 아님을 압니다.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깊은 침묵과 기도를 통해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님을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이건 특별한 분별의 때만 필요한 훈련이 아닙니다. 매일은 선택의 연속이니까요.
 
<분별의 기술>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그 자체일런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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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됨.
불혹의 고개를 넘어서며 오늘의 내가 있게 한 베스트를 꼽아보자면 단연코 글쓰기이다.
수년 전 싸이 미니홈피를 통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난 번 이사를 하다보니 글쓰기의 시작은 중학교 1학년 겨울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직후로 거슬로 올라가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열 세 살 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를 지금까지 쓰고 있으니 28년을 이어온 글쓰기 인생이다. 으하하.... 더 신기한 것은 그 때부터의 일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일기는 말할 것도 없이 유치하기 그지없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반공 선언문' 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는데 원고지 앞에 놓고 아버지가 불러주시던 대로 받아 적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유비무환' 이라는 말을 설명하는 글을 썼던 기억이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써 준 글로 처음으로 상을 받아 놓고는 '나는 글을 잘 쓰는 아이'라는 자아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엄마보다는 아버지를 더 좋아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주변의 사람들이 변하는 걸 보고서 어디다 풀어낼 데 없는 사춘기 시절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작한 것이 일기쓰기였다. 초기의 일기는 아버지를 뺏어간 하나님에 대한 원망, 사람들에 대한 원망... 이런 것들이었다.


시골에서 서울로의 전학이라는 변화를 겪으면서 외로움과 열등감의 소용돌이 속에서  감정의 배설구 내지는 말 없이 들어줄 친구같은 것이 필요했는데 역시 일기쓰기였다.
사진을 찍으면서 읽어보니 공부를 하려면 일단 일기를 써야했다. 일기를 쓰지 않는 동안은 공부도 하지 않았다고 여러 곳에 적혀 있었다.


일기와 더불어 편지는 또 다른 그 당시 내 인생의 주력사업이었다. 전학을 와서는 시골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주고 받기 시작한 편지이다. 세어볼 엄두도 내보지 못한 양의 편지가 일기장과 함께 보관되어 있다. 이 편지함에는 두 분의 보석같은 선생님이 계신다. 두 분 다 국어선생님이셨는데 사춘기 제자에게 오랜 기간 동안 따뜻하게, 성실하게 편지로 소통해주신 분들이다.


중 3 때 국어선생님은 고등학생 시절 내내 편지를 주고 받고 가끔은 만나곤 했던 분이다. 내가 대학진학 한 이후 전교조 초기에 일찌기 해직되셨다. 내가 믿는 예수님이 인간 예수님으로 어떤 분이셨는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등을 늘 장문의 편지로 설명해 주시곤 하였다. 가끔 만나면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나 김남주의 시집 같은 것들을 사주시면서 지금 생각해보니 고딩을 데리고 의식화를 하셨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편지 몇 통을 읽어보다가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게 이렇게 좋은 선생님이 계셨구나.


대학시절을 비롯한 20대에는 다이어리에 짧은 일기들을 썼다. 그 시절 세계관이 흔들리고, 변하고 다시 형성됐던 시기인데 긴 글들이 없어서 아쉽다. 매일 매일의 짧은 단상들만 네 개의 학생수첩에 빼곡히 적혀있다.


글쓰기가 성장의 도구가 되고, 치유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 필수조건은 '정직함'이라고 한다면 '정직함' 자체를 목표로 인식하고 새로운 일기이다. 스물 일곱 되던 해에 유치원 교사를 그만두고 과외를 하면서 인생의 모퉁이를 돌고 있을 때, 내가 싱글이라는 것이 커다란 두려움으로 밀려왔다. 이 나이에 결혼도 못하고, 직장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하고.... 눈물로 한 달을 지새다가 시작한 미래의 배우자에게 쓰는 편지형식의 일기이다. 당시 대학원 여성학과 진학을 위해서 공부하고 있던 중이라 남성과 여성에 관한 얘기, 내가 그리는 결혼생활에 대한 얘기, 읽은 책 얘기를 쓰면서 싱글의 외로움을 풀어나갔다. 아주 정직하게 쓰기로 맘 먹고, 늘 가장 정직한 느낌을 그대로 옮기려고 했다. 대학노트 한 권을 거의 다 채웠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 연애하고도 한참 후에 결혼이 확정됭었을 때 이걸 보여주었다. 그 때 남편이 했던 첫 마디 잊을 수가 없다. '왜 이리 길어?' 헉!  이 노트의 맨 마지막 장은 남편의 글(첫 번째 사진)로 마무리 되어있다. 그 긴 걸 다 읽고나서 써 준 것이다.

20대 후반부터 다시 쓰기 시작한 일기에는 남편과 헤어진 시절의 얘기, 신혼 초에 좌충우돌 하던 얘기들이 있고 최근의 의식성찰 얘기들로 이어진다.

<하나님을 만나는 글쓰기> 라는 책이 있는데 내 글쓰기 여정은 딱 '하나님을 만나는 여정'이었다. 정직하게, 아주 정직하게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결국 아주 깊은 곳에서 만나게 되는 분은 그 분이었다. 그리고 머리로 알던 그 분을 마음으로 알아가게 되는 과정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과정은 진행중이다.

언제부턴가 혼자 은밀하게 하던 글쓰기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소통을 의식하고 쓰는 글은 감정적이기만 하던 글에서 균형을 생각하며 쓰는 글로 조금씩 옷을 바꿔 입었다. 글쓰기를 통해서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던 것이, 글을 쓰기 위해서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흥미로운 변화도 생겼다.

나와 글쓰기, 나와 하나님과 글쓰기...
어설픈 사랑고백처럼 표현을 할수록 이 아름다움의 실체와 멀어질 뿐.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는 어느 분을 만났드랬습니다. 저는 내심 많이 기다리던 시간이었습니다. 딱히 그 분을 만나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았던 자리라 책에 대한 얘기를 좀 나눠보려고 했습니다. 헌데... 몇 사람이 함께 앉아 있는 자리였는데 그 분은 핸드폰인지, 아이팟인지, 전자수첩인지... 저로서는 잘 모르는 무슨 물건을 가지고 게임을 하시는지, 문자를 보내시는지 저로서는 역시 모르는 무슨 놀이에 빠져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경조차 안쓰는 듯 보였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였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서문에는 공원에서 나란히 한 방향을 보면서 앉아 있는 외로움의 극에 달한 사람들을 묘사합니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건 의자를 돌려 앉자는 겁니다. 서로를 향해서, 서로의 눈과 서로의 외로움을 향해서 몸과 마음을 돌리자는 겁니다.  헌데, 함께 있는 시간 내내 그 분은 자신의 놀이에 빠져 있었고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은(특히 저만 그 분하고 잘 모르는 사이라서...)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듯했습니다.


자연스레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서 어떤 부분에 그렇게 감동했을까? 그 책을 읽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고 그 이후에 어떤 점이 달라졌거나, 달라지려고 하는 중일까? 그러면서 자연스레 '사역모드'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분은 사역자 입니다. 그 분이 사역모드일 때는 아마 공동체에 대해서 역설하는 이 책이 감동이고, 설교나 가르칠 때 적용시킬 것이 무궁무진하다고 느꼈을지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같이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사.역.자.들이었기 때문에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따위는 굳이 추구하지 않아도 되는 곳일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일정정도의 페르조나(가면)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역할이라고해도 무방합니다. 아내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하고, 직업인이기도 하고... 기타 등등. 헌데 중요한 것은 페르조나는 '내'가 아닙니다. 필요에 의해서 때로는 필요하지도 않은데 나 혼자 뒤집어 쓴 페르조나가 여럿이지만 분명한 건 나는 페르조나 이상입니다.


사역자는 직업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역자를 직업으로 생각해서 직업정신으로 교회와 사람들을 섬기다고 하면 이거 진짜 심각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장사하시는 분이 물건을 많이 팔기 위해서 사실 고객이 그렇게 존경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아도 아주 친절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분들이 직업정신으로 친절하고, 너그러운 듯 보인다면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사역자는 사람들을 예수그리스도께 인도하고자 끊임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건 사역자만의 사명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헌데 자칫 사역자는  친절하고, 사랑하고, 관용하는 페르조나를 직업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사하시는 분이 고객 앞에서는 온갖 친절함과 온유함으로 하지만 집에 가서 사춘기 자녀에게 또는 고용한 점원에게는 그 가면을 집어치고 있는대로 화내고 관용하지 않는다면..... 그거야 뭐, 어쩌겠습니까.


헌데, 사역자라면 다른 것 같습니다. 사역자의 정체성은 -친절함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도, 자기의 이름을 날리는 것도 아니고-모든 사람향한 사랑 자체, 그리고 그 사랑의 전파에 있습니다. 때문에 친절함과 관용과 사랑의 가면을 필요에 따라서 썼다가 벗었다 한다면 그건 큰 일 입니다. 성도들에게, 또는 전도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에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친절하고 온유하지만 집에 돌아가 아내에게는, 또는 자기보다 힘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대한다면 이건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헌데 이렇게 심각한 일이 오히려 자연스러움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자신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사랑의 길로,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자신은 죽을 길로 가는 일인듯 합니다.


남편을 따라 목회의 길에 들어선 지 얼마 안되는 풋내기 사역자 사모로서 저는 몹시 두려운 순간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깊은 사랑의 길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하는 것이 사명이라 생각하여 죽도록 '사랑하는 척' 하다가 '진정한 사랑'은 날이 갈수록 잊어버릴까봐서요. 처음에 예수님 사랑, 그것이 좋아서 사역자의 길에 들어섰는데 어느 새 예수님의 사랑을 팔아서 내 입지를 다지고, 나 살 궁리를 하는 사람이 될까봐서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조금이라도 확장시키자고 이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지상에서 가장 위험에 곳에 서 있는 것 아닌가 싶어 두렵고 떨리고 슬플 뿐입니다.
사랑에 꽂혔다.
지난 겨우내 옆에 끼고 있던 <사랑의 각성> 탓일 수도 있고, 
에니어그램과 함께한 작년 1년의 여정의 종착점이 '사랑' 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니 그보다는  내 평생 그렇게도 닮고 싶고 다다르고 싶은 나의 그 분의 별명이 '사랑'이시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분의 심장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 쉽고, 그러면서 어려운 길은 '사랑' 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난 사랑에 꽂혔다. 사랑에 꽂혀서 매일 내 사랑을 점검 중이다.

어떤 사람의 사랑이 진짜인지 아닌 지를 감별해내는 방법을 찾았다. 사랑인지, 사랑하는 척하는 지를 아주 쉽게 구별해 낼 수 있는 방법이다. 사랑하면 지는 거다. 사랑하면 제압할 수 없고, 사랑하면 힘을 행사하거나 밀어 붙일 수 없다. '다 너 위해서 그러는거야. 나중에 내가 널 사랑했다는 걸 알게 될거야' 하면서 우격다짐으로 자신의 방식을 관철시키는 부모는 궁극적으로는 사랑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제 안다.

사랑하면 힘이 빠진다. 사랑하면 약자가 된다. 진짜 사랑하게 되면 언제든 거절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랑하는 사람 근처를 맴돌 수 밖에 없다. 그렇다. 사랑하면 가장 약자에게 약자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상관에게 하는 깍뜻하고 따뜻한 태도가 진짜 사랑인지 가늠해 보려면 그 사람이 부하직원에게도 그렇게 하는 지를 보면 되지 않을까? 어떤 장사하는 사람이 고객에게 정말 친절하게 서비스하는데 그게 직업정신인지 사랑인지를 보려면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에게 하는 태도를 보면 검증되지 않을까? 약해지고, 유순해지고, 겸손해져서 상대방으로부터 얻을 게 있다면 그 대상에게는 사랑하는 척 하기가 쉬운 일이다. 그러니 내 사랑과 친절이 진짜인지 알려면 내게 가장 약한 사람에게 대하는 방식을 봐야겠다.

내게 가장 약자는 누구일까? 강의를 통해 만나는 학생들, 음악치료나 음악교육으로 만나는 아이들과 엄마들, 교회에서 만나는 분들, 청년들..... 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나를 관리할 수 있다. 남편이 '제 아내는 태어날 때부터 웃으면서 태어났어요' 라고 할 만큼 난 웬만한 일에 허허롭게 웃어줄 수 있다. 웬만한 사람들은 사랑의 제스춰로 대할 수 있다. 나를 가장 무장해제 시키는 사람은 채윤이다. 내 자식이고, 겉은 아니지만 속은 나를 쏙 빼닮아서 그 속에 약점까지 속속들이 알겠는 존재. 동생 현승이보다 성격이 쿨해서 웬만한 일에 잘 삐지거나 상처도 안받는 듯 보이는 채윤이. 말 안 듣고 뺀질거리고 끝까지 이유와 변명을 들이대며 매를 부르는 존재 채윤이. 어려서는 그렇게도 귀엽기만 하더니 갈수록 내 맘대로 안 되는 채윤이.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해 주고, 내 생각과 다르지만 최대한 허용해주고, 존중해주는 태도 채윤이나 현승이 외의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 헌데 두 아이들, 특히 채윤이와의 관계라면 얘기가 틀려진다. '엄마 방법이 더 옳아' 라며 강요하고, 외면하고, 굳은 표정으로 아이의 진심을 안 받아주고, 통제하는 게 내 모습이다. 경직된 표정으로 채윤이의 잘못을 꾸짖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청년들에게 밝은 미소 지으며 '어서 와. 저녁은 먹었어' 하는 내 모습을 제3자다 되어 관찰할 때 난 주저앉고 싶다. 내게 가장 약자인 채윤이게 한결같이 가 닿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어려서의 채윤이나 지금의 채윤이는 사실 달라진 것이 없는데 채윤이를 향한 내 욕심이 달라진 걸 인정한다. 어려서는 있는 모습 그대로 이뻤지만 지금은 엄마인 나를 더 빛나게 해주는 도구로 삼고 싶은 욕심 말이다. 좀더 인사를 잘 해서 예의 바른 애가 되어줬으면, 뭐든지 잘 하는 애가 되어줬으면, 자기 일을 성실하게 스스로 잘 하는 아이가 되어줬으면......  그렇게 해서 결국 내가 아이를 잘 키웠다는 소리를 듣게해 줬으면 하고 말이다. 사람을 도구화 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사람을 생기나게 하고 살맛 나게 하는 것이라면 힘으로 사람을 도구화 하는 것은 그 반대다.

매일 매일 채윤이에 대한 내 태도, 그것으로 나는 내 사랑을 점검한다. 채윤이에게 친절하고, 오래참고, 온유하고, 성내지 않고, 내 유익을 구치 않는 태도로 한결 같을 수 있다면 나는 오늘도 어설픈 사랑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청년들을, 그리고 많은 이들을 사랑하는가? 사랑하는 척 하는가? 
사랑하면 지는 거다. 가장 약한 사람에게도 기꺼이 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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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아니 최근까지...

사랑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기브 앤 테이크'의 슬픈 계산기를 집어 던져야 하느니...
남편을 사랑하는 것도 그렇고,
아이를 사랑하는 것도 그렇고,
내게 맡겨진 사람들을 사랑할 때 '기브 앤 테이크'의 계산기의 전원 버튼을 누르는 순간 슬픔과 자기연민은 밀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년간 사랑에 대해서 연구한 위 본인은 사랑은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라 '기브 앤 기브'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 불혹을 넘어선 생일에

언제나처럼 3부 예배 시작 전에 본당 뒤에서 커피집을 열고 등줄기에 땀이 흐르도록 커피를 내리고 코코아를 타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찬양팀 연습이 한창이었고요. 갑자기 찬양팀이 '생일축하' 노래를 연습하기 시작합니다. '어? 오늘부터는 생일 맞은 사람 찬양팀이 노래 불러주나부다' 하며 부지런히 커피를 갈고 있었지요. 갑자기 본당에 불이 나갑니다. 듣자하니 노래 가사가 '사랑하는 사모님....'이랍니다. 사태파악을 하려고 고개를 드니 등 뒤에서 촛불을 밝힌 케잌이 하나 등장합니다.
아~이런 서프라이징한 녀석들 같으니라구.
점잖으신 남편과 연애하고 살아보는 관계로 저는 서프라이즈 파티를 당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찌나 놀라고 당황스럽고 고맙던지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생일 당일 밤에는 집으로 또 서프라이징 케잌이 하나 들이닥쳤습니다. 직찍 동영상 촬영까지 하면서 말이죠. 찍어놓은 동영상을 청년부 클럽에서 보면서 민망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어쩔 줄을 몰라하는 표정 몸짓 손짓이라니...

그 동영상을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사랑받는 것에 얼마나 익숙하지 않은지. 특히나 '너희들 거기 있어. 내가 사랑해줄께' 하고 들이대던 청년들에게서 예기치 못한 사랑을 받게 되니 말이지요. 단지 생일 뿐 아니라 한 마디 주고 받는 대화를 통해서 청년들에게 받는 사랑이 큽니다. 그래서 청년부 클럽에 '내가 청년부에 사역을 하러 온 건지 사랑을 받으러 온 건지 모르겠다'고 썼습니다.
그렇게 청년들이 보여주는 사랑과 신뢰는 요즘 저를 새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나를 더 사랑하게 하고, 더 넉넉해지게 하고요. ^^

# 사랑의 정의를 다시 고쳐쓰자

오랫동안 사랑은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라 '기브 앤 기브'라고 하면서 때로 보상받고 싶은 내 욕구를 밀어 넣어왔었단 생각이 들어요. 사랑이 기브 앤 테이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브 앤 기브' 만도 아닌 것 같아요.

생일이 있던 주에는 정말 맛있는 점심을 한 끼 얻어 먹었는데 그 식사는 입에만 맛있지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깊은 곳에 영양가를 내주었습니다. 그 영양가는 사실은 내가 댓가 없이 사랑한다고 하지만 댓가를 바라고 있는 사람임을 깨닫게 해주었고, 그런 내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해서 힘들었던 오래 전 에피소드 하나를 떠올리게 해주었죠. 그리고 '그 일로 인해서 내가 좀 마음이 상했었다'는 것도 알려주고, 그 상한 마음을 만져도 주었지요.

그래서 이제 사랑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한 번 더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사랑은 주고 주고 또 주고, 때로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받고 받는 그런 것입니다.

살아가는 모든 날 동안, 더 많이 기브 앤 기브, 더 많이 테이크 앤 테이크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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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으로 경찰서장이 옷을 벗다'
어렸을 적에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중 대충 뜻은 알겠는데 왜 그렇게 표현하는 지는 알 수가 없었던 말 중에 하나다. 모 그래도 뜻을 알만하니 다시 묻지도 않았다.(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그건 무슨 뜻이냐?는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크면서 왜 그런 표현을 하는 지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경찰서장이 옷을 벗었다' 할 때 '옷을 벗다'의 참 뜻을 머리 말고 가슴으로 배우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 교회에서 지휘하던 선배언니가 갑자기 아기를 낳는 바람에 경황없이 맡게 된 자리가 어린이성가대, 그리고 청년성가대 지휘자였다. 사람들이 청소년기에 한 번 쯤 꿈꿔보는 게 지휘자라지만 나는 그런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 노래를 하거나 피아노를 치는 일에 대한 꿈은 많았지만 내가 지휘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내 것이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꿈을 꿔본 적도 없지만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일, 가장 행복한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꽉 찬 4년 동안 행복했던 옷 샬롬찬양대 지휘자 까운을 벗었다. 마지막으로 빨아서 반납하려고 집으로 가져온 것이다. 송별식사에서 덕담을 한 마디씩 나눠주시는데 어떤 분이 그러셨다. '지휘자님처럼 사랑받는 분이 있을까요? 떠나시는 거 아쉽지만 정말 행복하신 분 같아요'  맞는 말씀이다. 4년 지휘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는지 모른다. 또한 자타가 공인하는 노래 못하는, 악보 못 보는 찬양대와 함께 하면서 배운 것이 말로 다 할 수 없다.

남편이 전임사역을 하면서 지휘를 그만두고 청년부에 같이 힘을 실어주었으면 하였다. 가볍게 말했지만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계속 지휘하고 싶은 마음 충천하지만 남편의 바램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정말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이번에는 내가 양보할 차례라는 것이 가장 컸다. 결혼 10년 동안 내가 하고픈 일을 하기 위해서 남편이 양보해 준 것이 많다. 사실 샬롬 지휘를 시작하는 일도 그러했다. 당시 평신도였던 남편이 청년부 교사로 봉사하고 싶었지만 덜컥 내가 지휘를 하게 되는 암말 없이 포기해 주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 번 '나 그래도 지휘할래' 하고 버텨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게 순리라고 생각했기에... 정말 많은 이유를 대면서 내가 계속 지휘를 해야하는 것을 항변할 수 있었지만 할 수 없었고 하지 않았다. 작년 12월의 마지막주로 치닫던 어느 날, 몸에서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간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예전에 아주 심했다가 고쳐졌던 또 다른 지병이 성했다. 지휘를 그만둔다는 말에 대원들이 여러 말씀들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헤헤 웃곤 했지만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애야~ 우리 지휘자님 그만둘려고 하니까 좋아서 신이 났네' 할 정도로 헤헤거렸다. 마음과 몸이 다르게 가니 그 분열이 어떻게든 터져나왔나보다. 이사 오기 전 날 밤에 애들은 시댁에 맡기고 둘이 집에서 자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울음이 터졌다. 찔끔찔끔 나오던 눈물이 통곡이 되었다. 통곡이 대성통곡이 되어 민망할 만큼 꺽꺽 울었다. 희한하게 그렇게 울고나서 다음 날부터 몸의 두드러기도 지병도 자연스레 나아지고 사라졌다. 지나고 나서 정리해보니 단지 지휘자를 그만두는 문제도 아니었다.

아무튼, 아직도 저 까운을 보면 마음 한 켠이 아프다. 그리움이 밀려온다. 정직하게 말하면 그 자리에 앉아서 어떻게든 힘을 행사하던 일종의 권력이 그립고, 그로 인해서 받았던 사람들의 주목을 그리워하는 것을 것임을 안다. 그렇기에 '나 없이는 안 될 것 같았던' 샬롬찬양대가 잘 돌아가고 오히려 더 잘 한다는 소식은 내게 조금은 아프지만 큰 훈련이 된다.

좀 더 잔머리를 굴리고 우겨대면 계속 입고 있을 수도 있는 옷이지만 기꺼이 벗고 내려놓았다. 가끔 소명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는 일'과 일치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는 걸 나이 40이 넘어 비로소 배우는 중이다. 더 이상 아쉬워 하지 말고 이번 주일에는 저 까운을 찬양대 까운실로 옮겨다 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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