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한 지 두어 주가 지났습니다.
이번 이사에서는 이삿짐 정리보다 더 어려운 게 마음의 정리였답니다.

풀타임 사역을 준비하면서 남편도 자신도 그렇지만 제게 은근히 강조했던 것이 '낮은 곳으로' 였습니다.
사역자가 어떤 의미로든 '높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끝!이다.
'낮은 곳으로'의 영성은 헨리나웬에게 배운 것이었고, 3학년 말에는 저 역시 '낮은 곳으로'의 영성을
마음으로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풀타임 사역을 시작하면서 이사를 하게되었는데 너무 좋은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누군들 크고 깨끗한 집을 마다하겠습니까만은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복잡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남편에게 그랬습니다.
'여보! 당신 정도의 부교역자 수준에서 전국을 통틀어서 아마도 우리는 상위 1%의 집에서 사는거야.'

도대체 집안 어디에 마음을 둬야 할 지를 모르겠습니다.
집은 그야말로 내 존재의 가장 중요한 근거인데 집에 있으면서도 마음을 어디둬야 할지 모른다니요.

예전 집 거실을 제가 사랑했습니다.
새 둥지 처럼 작고, 아늑하고, 음악이 있고, 책이 있고요.
거실에서 오디오를 바라보고 앉으면 저절로 기도가 나오고, 차분해지고, 묵상하게 되곤했습니다.
볕이 많이 들지 않아서 빨래를 빠닥빠닥하게 말릴 수 없다는 것 외에는 나무랄 것이 없었습니다.
이사 온 집에서 남편도 그렇게 바라던 혼자만의 공간이 생기고,
베란다를 방으로 어르고 달래서 책상 놓고 살았던 채윤이에게도 방이 생겼습니다.
'칫! 나만 내 공간이 없어졌어' 하면서 엄청 투덜댔습니다.
'안방도 거실도 주방도 다 엄마 꺼잖아' 하는데 그럴수록 불만은 더 커집니다.
이사오면서 거실에 양쪽으로 책꽂이를 놨는데 도대체 이 쪽을 보고 앉아야 하는지,
저 쪽을 보고 앉아야 하는지 안정이 되어야 말이죠.
그걸 가지고 며칠을 투덜거렸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날 탁자를 쭈욱 밀어서 베란다 쪽으로 붙이고
앉아서 책을 펼쳐들었습니다. 와~ 앞이 탁 트인 게 갑자기 마음에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붑니다.
책이 저절로 술술 읽히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집이 문제가 아녜요. 꼬인 내 마음이 문제죠. 마음이 꼬이고 불만이 가득차면 창의성이
발동하지 않아요. 성령님은 새롭게 하시는 영이기 때문에 순간순간 아주 조금만 문을 열어 놓고 그 분을 바라면 새로운 눈이 열리고 새롭게 되지요. 아주 조금 문을 여는 것 조차도 내 의지와 노력으로 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책상 위치 조금 바꾸니 복잡해서 말로 표현이 안된다고 여겨졌던 상황과 마음이
조금씩 단순해집니다.

확 트인 시야처럼 마음의 창문도 조금씩 더 열리기 시작하고요.
이제 쏟아지는 햇볕을 마음껏 누리며 저 자리를 그 분과 만나는 새로운 자리로 만들어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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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해 생일에 부모님께 받은 금일봉 봉투.
사랑을 확인하고 싶을 때 한 번 씩 꺼내보기 좋은.

지난 한 주 변신 며느리로 퉁퉁거리고 꽥꽥거리고 벅벅거리면서 나를, 남편을, 애들을 힘들게 했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렵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기는 매우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잘 들여다봐야 하는데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는 '동기'를 짚어보는 것입니다. 동기를 살피는 일은 자기를 찾는 여정에도, 하나님을 찾아가는 영성에서도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내가 내 자신의 못된 동기에 얼마나 자주 속아 넘어가는지를 깨달을수록 그렇습니다.

지난 주 간만에 시부모님께 불려다니면서 힘들었던 건 몸보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요즘은 몸도 건강해졌고 게다가 시간도 많아서 그렇게 몇 번 기사노릇 한다고 크게 힘들지 않습니다. 시간도 있고 몸도 되고 차도 있는데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기사노릇은 끝은 어디인가?' 하는 질문이 불끈 올라오면서 '나는 어찌 혼자만 며느리 노릇을 다 해야 하는가? 아니, 어찌 혼자 며느리, 아들, 딸 역할을 다 해야한단 말인가? ' 하는 식의 답이 없는 꼬리를 무는 질문이 따라 나옵니다. 이것은 제 마음의 표피 부근에서 울리는 소리입니다. 더 깊은 곳에서 나는 제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감정은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 이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두려움인가? 사랑인가?'
관계를 맺고, 행동을 하는 제 마음의 동기는 아주 단순화한다면 이렇습니다.
아니 더 가지치기를 하고 폭을 좁혀보자면 선한행동을 할 때의 동기는 '두려움 아니면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계를 시어머니만으로 국하시키자면 저는 시어머니의 부탁에 대놓고 거절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거절이 다 뭡니까? 대부분의 경우 뭐든 어머니가 원하시는 것보다 20%는 더 해드렸죠.
제가 제 마음을 잘 모르고 지금보다 훨씬 더 형편 없었던 때, 하나님의 사랑에 그저 거하는 것이 선물이라는 것을 몰랐던 때는 많은 경우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고 섬겼습니다. 아주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렇습니다. 그 두려움이란, 어머니께 사랑받지 못할까봐, 착한 며느리란 소리 못 들을까봐, 하나님 사랑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제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두려움 아닌 사랑으로 섬기는 것을 아주 조금씩 배워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 일들을 통해서 어떤 때는 진심으로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는 어머니를 아버님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헌데, 갑자기 부모님의 요구가 지난 주 처럼 밀려들기 시작하면서 '싫다'는 감정이 올라오면  슬슬 제 동기에 의심이 가기 시작합니다.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하는  이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두려움인가?' 라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제 마음에 굉음처럼 울리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맞아. 그러니까 너는 위선자야!'
오래 전에 부모님을 대하는 제 태도를 보고 누군가 제게 한 말입니다. 그 목소리가 제 마음에 들리는 순간 '맞아, 나는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는거야. 이거봐. 이렇게 하기 싫은데 속에서 부글부글 하면서 한의원에 전화 심부름 하잖아. 그 말이 딱 맞어. 나는 위선자야. 속에서는 이러면서 겉으로는 착한 척하는 거 봐'
여기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저는 위선자가 되기로 하고, 저를 난도질하고 제게 위선자라고 일러줬던 그 목소리에 질질 끌려다닙니다. 스스로 그 감옥에 저를 집어 쳐 넣습니다. 사실 지난 주에 힘들었던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고 있는 제 자신에게 제가 영적지도자가 되어 상담을 해줍니다. (어느 후배가 이 문제로 제게 왔다고 가정을 하면 내가 뭐라 말해줄 수 있을까? 가정을 해보는 겁니다)

'사람 마음의 동기가 100% 순수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마음의 동기는 훨씬 더 복잡하지 않을까? 프로이드나 융이 말하는 빙산과 같은 무의식은 마음의 동기가 그렇게나 광활한 곳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은 것 아니겠니? 니 마음에는 항상 두려움과 사랑, 또 그 밖의 여러 동기들이 공존하고 있을거야. 사랑으로 온전하게 되는 것은 너의 영역이 아니라 네 마음에 계시는 성령님의 일이야. 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으로 행동하겠다를 선택하는 정도? 사실 선택만 하는 건 아주 작은 일 같지만 아주 중요한 일이야. 그건 마치 너의 사랑을 돕기위해 24시간 대기하고 계신 사랑이신 그 분에게 빗장을 열어 드리는 것이니까. 그러고 난 후에 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순간순간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움직일 수 있도록 너 자신을 내어 맡기는 일일거야. 힘 내. 니가 그래도 10 년을 이렇게 부모님과 좋은 관계 맺으면서 올 수 있었던 건 더 많은 시간동안 두려움 보다는 사랑의 동기가 1% 라도 우세했기 때문일거야. 위선으로 10년을 속이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니? 잘 하고 있어. 오고 오는 감정을 잘 흘려보내고 끊임없이 사랑이신 그 분의 사랑에 잇대어 살기로 하자'

부모님 뿐 아니라 가까이는 남편,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선대하면서 '두려움'과 '사랑'의 경계선에서 오늘도 나는 흔들리고, 흔들리다 내가 할 수 없음을 알고, 큰 사랑에 나를 내어 맡기기로 하며 힘을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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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아파트 현관 앞에 까지 왔습니다.
저 너머 보이는 검단산과 예봉산은 아직 여름빛인데 베란다 앞의 대추나무는 이미 빛바랜 입을 떨구기 시작한 지 오래고, 아파트의 나무들이 울긋불긋 합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 가을이 코 앞으로 들이닥칠 참입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저 가을비 끝에는 더더욱 그렇겠지요.

forest님 블로그에서 소국 사진을 봤는데 사진을 보자마자 마음이 일렁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소국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싶습니다. 해마다 이 즈음에는 소국을 사서 꽂아두곤 했었습니다. 주말에 올라온 남편에게 한 다발 사달래서 거실 탁자에 꽂아 두었는데 forest님 사진에서 본 노오란 가을빛 소국의 느낌이 전혀 나지를 않습니다. 따라쟁이가 되어 위에서 이 놈들을 잡아서 찍어봤건만 실내 조명 탓인지 전혀 필이 안 나주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천안에서 올라오는 남편에게 꽃다발을 기대했었습니다. 물론 전혀 기대하는 내색도 하지 않았고, 섭섭한 마음도 없습니다. 그저 혼자 생각해본 거지요. 왜냐면 지난 주에 에니어그램 수료을 했고, 수료를 한 이후에 마음이 울적했었습니다. 수료가 끝이 아니라 정작 영적인 여정의 홀로서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에 MBTI 강사 땄을 때의 성취감 같은 게 없는 편이고요.
전화통화 하면서 남편이 '수료했어? 어, 축하파티 해야겠네' 했는데 아마 그 말에 혼자서 '파티는 그만두고 소국이나 한 다발 받았으면 좋겠네' 싶었던 게지요. 실은 그 축하파티도 별로 마음에 없던 얘기라고 넘겨짚고 있는 중이거든요. 처음과 달리 남편님께서 갈수록 에니어그램을 시큰둥해 하시더라구요. 결국 그 시큰둥함이 섭섭해서 '당신은 내 내면에 관심이 없다. 내 육체에만 관심이 있다' 이러면서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아서 간만에 군기좀 잡았지요.ㅎㅎ

제 안에 밑빠진 독이 하나 들었는데요. 거기다가는 사랑을 부어도 부어도 온전히 채워지지가 않구요. 칭찬을 들어도 들어도 만족스럽지가 않은 그런 지독한 독이라니깐요. 그 독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남편아, 나를 더 사랑하고 더 따뜻하게 대해라. 지금보다 더.....더.....더....... 심지어 채윤아, 현승아! 엄마를 사랑해라. 지금보다 더....더.....더..... 사람들이여, 나를 칭찬하시오. 더 강도 높게 더....더....더......' 이런답니다.
그런데 밑이 빠진 독이니 채워질리 만무하죠. 일단은 밑빠진 독을 땜방을 하든지 무슨 수를 내야하지 않겠어요. 먼저 그 밑빠진 독의 구멍을 막는 방법을 알았답니다. 유일한 방법이죠. 요즘은 그래서 눈을 뜨나 감으나 그 밑빠진 독 복구작업하는 것이 관심사죠. 최대 관심사이긴 하나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라서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랍니다. 어렵도다! 이게 도대체 무신 말이고?ㅋㅋㅋ

저 소국이 시들면 더 이쁜 놈으로다가 한 다발 꽂을 건데 이 글을 본 진지남께서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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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 위해서' 가끔 따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랄 것도 없이 옆에 사는 김종필님이 그렇습니다.
대화 중에 '생각해 볼께' 하며 여운을 남기기를 잘 합니다.
그리고는 생각해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이란 것이 필요하고요.

가만 생각해보면 저같은 사람은 '생각'을 위한 시간이 따로 필요하질 않습니다.
왜냐면 항상 생각하거든요.
오히려 따로 시간 낼 필요가 있다면 '생각을 비우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지 모르겠습니다.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이 살짝 지겨우실까 염려되는 고로,
팬서비스 차원에서 좀 덜 해야겠다 싶은 얘기이긴 하지만....
에니어그램 7번 유형들은 머릿 속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삶을 살기도 한다고 합니다.
계획의 달인들이고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이미 만족감을 다 느껴버리는 것이지요.
때로는 계획으로 도피해서 직면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서 마구마구 계획을 세워버리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이건 계획성이 있다든지, 계획을 잘 세운다 는 식의 칭찬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계획으로 도피한다. 이게 딱 맞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많습니다.
어떤 중요한 시점이 되면 계획이 더 더 많아집니다.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워보고 다시 지워보고, 또 다시 계획을 세워보고...
그러다보면 현실이 현실 같지가 않고 현실이 허구같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이 치명적인 계획세우기는 얼마나 쉽게 불신앙으로 사람을 몰고 가는 지도 저는 잘 압니다.
계획세우기는 필연적으로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 노릇을 하고 싶도록 만들거든요.

모처럼 혼자 집에 있습니다.
아빠와 딸은 수련회를 가고 아들은 할아버지 댁에 갔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 집중해서 독서 삼매경을 해볼랬더니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터무니 없는 계획을 세우다 허물다 하면서 집.쭝.이 되지를 않습니다.

다 털고 일어나 생각 털어버리기 작전으로 열나게 운동을 하고 들어왔습니다.
운동을 하면서도 자꾸만 생각을 하려고 하기에 온갖 에너지를 몸을 움직이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생각 안 하기를 위한 시간을 보내다 왔습니다.
들어와서 블로그 순방을 하는데 김용주님 블로그에 가니 이병우의 기타연주 '생각없는 생각' 얘기가 있습니다. 바로 이거다. 생각 없는 생각!

생각 없는 생각.

PS 김용주님 감사합니다.
     지난 번에도 블로그 제목을 도용하여 글을 한 편 포스팅하고,
    덕분에 오래 듣지 않았던 이병우 기타 소리도 한 번 들어보고 간마에 글이 긴 포스팅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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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기도




나의 詩가
아직 으스름달도  시퍼렇게 알몸인 새벽
부지런한 조롱박에 떠 올린
첫 우물이게 하소서

나의 詩가
숨가쁜 단풍잎 너머 졸고 있는 산 위에
진한 피를 흘리우는 석양보다
더 붉은 참회이게 하소서

내 생명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뽑아
단 한 편의 詩를 쓰게 하시되
그 詩가 나의 삶보다 아름답지 않게 하시고
나의 삶이
가장 아름다운 그 詩보다 더 아름답게 하소서

그러나 주여
 당신께 도달할 내 마지막 詩는 침묵임을 아오니
詩란 단지 침묵으로 가는 다리,
다리를 건너
뜨면 눈 멀 듯 맑은 당신을 뵙게 하소서

- 론지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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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나 책읽기가 치유의 역할을 한다는 것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글쓰기가 가진 치유의 힘은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하시는 분들은 크고 작게 경험하셨을 일.
특히 '책읽기'는 제게 있어 어떤 설교나 상담보다 다 더 강하게 치유와 성숙의 길을 열어줬던 것 같습니다.
큐티진에 연재했던 <약이 된 책> 이라는 말이 딱입니다.

음악치료 시작했던 대학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오랜 시간 내면작업을 해왔고
그 사이 나름 많이 깊어지고 성숙해졌다고 자부를 하고 있었답니다.
그게 제 못된 습관인 '자아 팽창'에서 비롯된 것이더만요.
늘 가야할 길은 남아 있고 때로는 멉니다.
그래서 스캇펙의 책 제목이 <아직도 가야 할 길> 인가 봅니다.

지난 얼마 동안 블로그도 닫고 제 속으로 들어가 있던 동안에 상담자가 되어줬던  친구들이예요.
오랜 시간 함께 해야할 것 같은 교과서급 노란책 <상처받은 내면 아이 치유>

예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이제야 손에 잡게 된 스캇펙의 <거짓의 사람들>
치유자와 상처입은 자 사이의 균형을 잡아주는 친구.
이 책은 너무 재밌어서 옆에 계신 도사님이 눈 독 들이고 있다가 방학 하자마자 단숨에 읽어버리시더군요.

상처받은 내면 아이든, 성인아이든 모든 치유는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랍지요.
혼자 하려다보면 혼란에 빠져서 길을 잃기가 일쑤.
이럴 때 중심을 잡아 준 <성령충만, 실패한 이들을 위한 은혜> 입니다.
남편이 지난 한 학기 교정 보느라 애쓴 책이기도 한데 대통령부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성공의 신화를 좇는 이 세대에 얼마나 매력이 없는 제목이란 말입니까.
헌데 저 같은 사람에게는 제목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그러나 읽다보면 지성과 영성을 함께 뒤흔들어 세워주는 책이지요.심리와 영성 사이의 균형을 잡아주는 친구.

놀이의 달인 채윤이 엄마로서 <놀이의 힘>을 읽다보니 내 상처가 치유되고 온전해지지 않으면 그건 고스란히 아이에게 유산으로 남겨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 상처와 내 아이의 상처를 함께 보게 하는 '딸로서의나  엄마로서 나' 사이에 균형을 잡아 주는 친구.
균형을 잡아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은 여행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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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 깊은 곳으로 여행을 좀 다녀올까 합니다.
실은 이미 제가 떠나와 있습니다.
떠나와 보니 알겠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마음 둘 곳 없다' 라고 말할 때 그 '마음 둘 곳'이 제게는 이 블로그였다는 사실을요.
이건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지만 보다 깊고 새로운 깨달음이기도 하네요.

매일 오셔서 댓글 주시는 분들께 이 기회에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요.
이 곳이 너무 뜸하면 고마운 분들께 심려를 끼치게 되겠기에 인사를 드립니다.

사실 지난 두 어 주 계속 뜸했지요.
정말 마음 깊은 곳으로 떠나려면 마음 둘 곳이 따로 있으면 헷갈리고 복잡해지기에
공식적으로 잠시 이 곳을 개점휴업 하기로 했어요.

기간은 아무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르고요...
제 안에서 말씀하시는 그 분 만이 아실 듯 해요.
제게 큰 일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가끔 한 번은 멈춰 서서 돌아볼 때가 필요한 것 같은데
지금이 그 때인 듯 해요.
큰 일이 있는 것 아니지만 힘겨운 여행이기도 하기에
혹 생각나시면 기도를 보태주시고요.

빠르면 내일이라도 돌아올 수 있을런지 모르죠.^^
그럼, 이만.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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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자의 기도


배움을 더해 갈수록 느끼는 것은
제가 무지하다는 것,
제가 배울 수 있는 영역들이 얼마나 무한한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움이 깊어갈수록 깨우치게 되는 것은
지식이라는 나무의 가지들이 그리도 무성하고
그리도 오묘하게 뻗어 있다는 것이며
일생을 통해 배운다 해도 여전히 초보자라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깨우치고 배워야 하는 분야들을 잘 터득할 수 있도록,
결코 실망하거나 싫증내어 배움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게 가르쳐주십시오.
제가 배울 수 있다는 것, 배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잊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배움을 소중히 하고 제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깨우치도록 지혜를 주십시오.

터무니없는 야망을 지니지 않고 다만 근면할 수 있도록
성공이라는 물신을 숭배하지 아니하고,
다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주어진 일들의 바른 순서를 찾으며,
주어진 재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배우는 것보다 무한한 것을 볼 수 있는,
제 개인적인 성공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볼 수 있는
넓은 안목을 주십시오.

일생을 통해 배움을 멈추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무리 많이 배울지라도
항상 발견해야 하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제가 삶 그 자체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당신이 비추시는 빛을 외면하지 않도록
저를 지혜롭고 강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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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아오는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에 걸리어있네
철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람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위에
조용히 흘리리라.

윤동주   <십자가>
노래 - 홍순관


조금만 아주 조금만 억울해도 저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걸 해결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을 붙들고 '아니예요. 내 잘못이 아니예요. 나는 할 만큼 했다구요. 쟤 때문이예요'
라고 대놓고 할 수는 없으니깐요.
아주 고상하게 말하면서 슬~쩍 책임전가하는 말을 끼워 넣습니다.
그것에 관한한 나는 고단수 입니다.
내 말의 많은 말들은 나의 정당성 확보해보겠다는 '그 한 마디'를 위한 포석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말하고 글을 쓸 때가 많습니다.

오늘 자신의 정당함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묵묵히 그 길을 가시는 그 분을 생각합니다.

빌라도도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했고,
이성적으로 따지자면 빠져나올 구멍이 허다했지만,
죽으셔야 하는 이유가 저 유대인들의 이성을 잃은 외침뿐인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모든 이성적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신 채,
그 길을 가십니다.

그 분의 십자가 앞에서.
더 이상 나를 변호하는 일을 멈추고 잠잠해지기를 원합니다.
그저 묵묵히 고난의 최정상을 향해 33년 걸음을 걸어가신 그 분을 배우기 원합니다.
그 십자가 앞에 내 이기적인 자아는 못 박아버리기 원합니다.
순한 양 같이, 연한 잎 같이 온갖 경직된 것들을 벗어버리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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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낼 모레면 사십이야. 인제 중년이야 중년!' 이런 놀림을 들으면서 펄펄 뛰며 오버하고 그랬던 게 지난 2월 생일에 즈음이었습니다. 중년? 낼 모레면 불혹의 나이? 으.......
<모자람의 위안>을 읽고 글을 쓰고 난 다음부터였던 것 같은데 '중년'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년을 감사히 내 것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지 않을까?
사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이제는 싫지만은 않은데요.

영성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합니다. 저의 30대에는 MBTI와 함께 나를 찾는 여정이었습니다.
나의 강점을 찾아 감사하며 누리고, 나의 약점을 찾아 계발하려 애쓰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온전히 나를 받아들이듯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애쓰고.
그러면서 유난히 내가 잘 짓는 죄를 발견하고, 유난히 잘 걸려 넘어지는 문제를 보기도 했습니다.
최근 MBTI의 한계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면서 에니어그램 공부를 시작해야겠 싶었습니다.
희한한 건 MBTI의 여정에 정말 많은 나눔으로 나를 찾는데 도움을 주었던 인아가 비슷한 시기에
에니어그램에 꽂힌 것입니다. 인아와 함께 에니어그램 1차 연수에 다녀왔습ㅂ니다.

이제 중년을 마중나가면 새로운 영성의 길을 공부하며 내적여행을 다시 떠나려고 합니다.
차근차근 에니어그램을 통한 의식성찰 일기를 써나가면서 새로운 날을 맞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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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은 아홉 개의 점을 뜻하는데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신비로운 인간학이라고 합니다.
아홉 개의 점은 아홉 유형의 사람들로 이해됩니다.
이제 시작했을 뿐입니다. 공부한 것들을 이 곳에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번 유형
: 완벽 주의자 '나는 올바르고 착하며 완벽하려 애쓴다.'

정확한 일을 처리하며 체계적이고 꼼꼼한 사람이다. 원칙을 잘 지키고, 공정하며 최선을 다한다. 도덕적인 개혁가이다. - 이런 사람이 있어야 세상이 똑바로 되고, 더 나은 세상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완벽해지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것만 눈에 띈다.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남도 과도하게 비판한다.

자신의 내면에 분노가 많으나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한다.


2번 유형 : 조력자 '나는 남을 도우며 친절한 사람이다.'

무언가 남에게 줄 수 있고 필요한 사람이다. 동정심이 많고 남의 필요에 민감한 타고난 크리스쳔이다. - 내 일을 제쳐놓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 자신의 욕구를 채우면 이기적이고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을 돕지 않으면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므로, 남이 언제나 나를 필요로 하도록 조정한다.

남이 도움을 원하지 않거나, 고마와 하지 않으면 섭섭해한다.



3번 유형 : 성취하는 사람 '나는 성공적이며 효율적인 사람이다.'

현대 사회에 적합한, 유능하고 자신감이 넘치고 활동적인 사람이다. 사교적이며 뛰어난 적응력과 판단력이 있다. 화술도 좋고 매력적이다. 성공적인 인물로 남에게 주목받고 싶은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이미지를 가장한다.

일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하며, 자신이나 타인의 감정을 외면한다.


4번 유형
: 개인주의자, 특별한 사람 '나는 특별하며 남과 다르다.'

미적으로 매혹적이고, 스타일에 대한 감각이 남다른 사람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들이며, 정서적인 강도가 높아서 다른 사람의 감정도 잘 이해한다. 자신의 고통은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것이나 평범한 것을 진부하다고 느끼며 회피한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



5번 유형
: 탐구자 '나는 지혜롭고 총명하다.'

지적이며 사려가 깊고 수용적인 사람이다. 심사숙고하고 신중하며, 현실에 대한 예리한 관찰자이다. 객관적이고 지혜로운 명상가이다.
-모든 것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삶에 뛰어 들기가 쉽지 않다.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필요로 하며, 지식이나 지혜를 잘 나누려고도 하지 않는다.

시간, 돈, 일, 말까지도 절제하며 인색하다.


6번 유형 : 충실한 사람 '나는 책임감이 강하며 성실하다.'

규범을 잘 지키며, 상부상조 할 줄 알고 신중한 사람이다. 책임감이 강하고, 충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이며, 조화를 이룬다. 세상을 위협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안전해지기 위한 방편으로 법, 규칙, 상식 등의 외적 권위를 따른다.

걱정, 근심, 불안, 공포에 자주 시달린다. 일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7번 유형
: 열정적인 사람, 쾌락가 '나는 낙천적이며 행복하고 멋있다.'

인생을 하나의 선물처럼 체험하고 감사하는 사람이다. 자유분방하고 모험심이 많다. 아이디어가 넘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재미'가 모든 일을 결정한다. 짜릿한 흥분이나 자극을 과도하게 추구하며, 고통을 결사적으로 회피한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관여나 감정을 피한다.


8번 유형 : 도전적인 사람 '나는 힘이 있고 강하다.'

열정적이고 대담하며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타고난 리더이며 카리스마가 있다. 정의의 투사로서 위선과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한다.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능하고 연약한 사람을 경멸하고 공격한다.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9번 유형 : 평화주의자 '나는 평화롭고 차분하다.'

평화로움과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무엇이든 허용한다. 공평한 중재자이며, 온유하고 관대하며 편안한 사람이다. 비폭력 저항가이다.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거나 누군가가 떠맡을 때까지 버틴다. 게으르고 쉽게만 살려고 한다. 자신을 하찮고 시시한 존재로 생각한다.

무관심, 무주장, 무의욕, 무선택


왕하2:7-18

엘리야의 고된 여행을 끝까지 따른 엘리사.
마지막에 원하던 것을 얻는다.
엘리사의 분별력-엘리야 선생님을 놓치면 안 된다. 내가 이왕 선지자의 길을 가기로 하였다면 엘리야 같은 분을 놓치면 안된다. 끝까지 함께 하면서 배워야 한다-과, 집념이 귀하게 보인다.

한편, 엘리사 같은 선지자를 있게 한 스승 엘리야가 있었다는 것.
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잘못된 길로 가는 왕들을 향해 겁없이 경고하고, 우상을 대적하하는 사역을 통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길이 이 길인데...
믿음의 사람 엘리야를 통해서 보고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은 말이다.
얼마나 행복한가 말이다.

남편에게 그런 선배 목회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믿음에 바로 서고,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에 흔들림이 없고,
능력있게 사역하는 존경할만한 목회자를 선배로 모시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주님!
그런 귀한 만남을 남편에게 허락하소서.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남편에게 그런 만남의 길로 인도하소서.
간절히 원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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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2:1-6

엘리야 같은 결코 험한 길도 자처하면서 따르고 싶은 그런 영적 스승이 있다면....
사역의 길을 가야하는 남편에게 그런 선배 목사님이 계시다면....
김민석 목사님에 대한 김승준 목사님의 표현처럼 그런 관계의 선배요 스승이 있다면...

남편에게 그런 선배와 스승을 주옵소서.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이 앞으로 목회현장에서 만날 어떤 후배 목회자들에게도
한 사람 한 사람 정말 귀하게 대접하는 존경받는 목회자가 되게 하소서.
열왕기하 1:1-18

아하시야왕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게 되자 자신이 죽겠는지 살겠는지 바알에게 물어보도록 보냄.
보낸 사자가 엘리야를 만나, 경고의 메시지를 듣고 옴.
군대를 파견하여 엘리야를 잡고자 함.
50명 씩 두 번의 군대가 엘리야의 기도로 불에 타 그 자리에서 죽었는데 또 50명을 보냄.
결국, 힘을 발휘하는 듯 했으나 엘리야가 자기 발로 찾아서 다시 경고한 말에 저항도 못하고 죽음

어느 군대 대장 
세 번째 50명을 이끌고 온 대장.
이미 두 무리의 군대가 어찌 되었는지 알았기에 엘리야 앞에 가 무릎을 꿇음.
엘리야가 살려주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원하던 바, 엘리야를 왕 앞으로 데려가는 것도 가능해졌음.

엘리야
무서운 능력의 사람.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능력을 선포하고, 능력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사자.

이 일을 지켜보는 제 3자로서의 나는 아하시야 왕의 무대뽀 정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막가는 파워가 두렵다. 1차적으로 나는 아마 그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 심이 비교핫 수도 없이 크심이 드러나고 밝혀지는데 말이다.
군대 대장 정도의 최소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능력에 죽지 않기를 바라는 정도의 실존적인 두려움과 경외만 있어도 죽음을 면할 수 있는데 말이다.

나는 지금 눈에 보이는 권세가 두렵다. 의식한다. 눈에 보이는 권세의 불합리와 불공평에 분노하는 것은 내가 상대적으로 편애에 들지 못함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게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그러면 이로 인해 죄를 얻으면 권세 있는 자의 죄인가? 나의 죄인가?
분명코 나의 죄다.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붙들면 된다. 진정으로 그렇게 붙들면 엘리야 같은 천하무적의 말과 행동을 할 수가 있다.
이것이 나의 믿음 없음이다.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지 못하는 바로 이것이 믿음 없음이다.

주여, 믿음을 주소서. 믿음은 주님께서 저를 만지셔서 제게 충만케 하시는 은혜요 선물인 것을 믿습니다. 믿음이 충만케 하셔서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내년도 남편의 진로를 인도하옵소서.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으로 땅의 것을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권세를 두려워하는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판단으로 이끄소서.

남편이 엘리야 같은 하나님의 능력있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특별한 말씀의 능력과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번 주 목요일 설교실습 하는데 성령이 역사하시고,
고민하고 연구한 그 말씀이 듣는 사람의 심령에 가 닿을 수 있도록 함께하시고,
눈물이 있는 설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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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 생기면 말을 잃어버리는 SS와 갈등을 말로 풀어내고 사과하기를 잘 하는 JP가
애를 둘 낳았습니다.

JP의 딸 CY는 아주 어려서부터 대화가 되고 논리에 깔끔하게 설복하기로 유명한 아기였습니다.
두 돌이나 됐을까 하는 녀석이 마트에 장 보러 가서는 과자를 카트에 마구 담다가...
"채윤아! 그건 우리가 안 필요해" 하면 "오~ 안 필요해? 갖다 놔?"하고는 제자리에 갖다 놓았던 기억 있습니다. 차분히 눈을 보고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면 끝까지 고집부리고 그러는 것이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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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의 아들 HS는 갈등이 생기면 무조건 울어버립니다. 아기였을 때부터 그랬죠. 누나를 양육하는데 익숙해진 엄마는 문제가 생기면 '방으로 엄마랑 잠깐 들어가자' 하고는 들어가서 눈을 정확히 보면서 대화를 하는 방식을 시도했죠. HS는 그런 경우 눈을 보기보다는 디비져 울죠. 아니면 계속 엄마 품에 파고 들면서 무조건 '안아 줘. 안아 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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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갈등상황을 종료시키는 방법은!
CY는 문제의 원인과 결과 책임의 소재를 밝히고 서로 사과할 것 사과하기.
HS는 무조건 덮어놓고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기.

자라면서 보니까 이런 방식이 더 분명해지네요. 아이들이 이제 둘 다 모든 게 말로 가능한 연령이 되다보니 희한하게 두 아이의 갈등 대응 방식은 엄마 아빠의 것을 꼭 닮았어요. 갈등상황에 대하는 원초적 방법이 엄마빠의 것입니다. 아빠는 대부분 부재 중이기 때문에 엄마가 이 둘을 다 감당해야 하는데....

엄마는 채윤이의 쿨한 방식과 감정해결의 속도가 버겁습니다.
 '엄마! 내가 이래 이래 해서 미안해. 내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어. 왜 그래?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 내가 사과도 다 했고 지금 이렇게 엄마 말 듣고 있는데 아직도 안 풀렸어?' 이러는데 엄마는 아직도 뿌~해가지고 입 내밀고 설거지를 하고 있으니.

반면 말은 한 마디도 못하고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끝없이 훌쩍거리기만 하는 현승이를 보는 것도 보통 답답한 일이 아닙니다. 그 삐져있는 모냥이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더 속이 터지고요.

해서, 두 아이에게 갈등해결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다릅니다.
채윤이에게는 '채윤아! 사람마다 기분이 풀리는 방법과 시간이 다 틀려. 엄마는 니가 사과한다고 바로 맘이 풀리지를 않아. 그러니까 잘못한 거 사과하는 것도 참 잘하는 거지만 엄마가 얼마나 속상한지 알아주면 금방 풀릴 수도 있어' 라는 주문을 해야하구요.
현승에게는 '현승아! 마음에 속상한 것이 많잖아. 그걸 말로 해. 말로 해야 엄마가 알 수 있어. 그리고 니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잘못했다고 말 해. 말하는 거 너무 힘든 거 엄마가 아는데 그래도 말해야 돼. 어서 말해. 엄마 아침부터 계속 불평해서 미안해요. 말 해. 말 하면 엄마가 안아줄께'

MBTI 식으로 말하면 사고형과 감정형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다른 두 아이를 보면서 엄마는 또 다시 새로운 마음 공부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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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 전날 현관 앞의 풍경입니다.
아빠도 딸도 방학을 마치고 학교를 향해 짐을 쌌습니다.
숙제가 들어있고, 생활을 위한 여러 잡다한 것들이 들어있고,
엄마의 걱정과 염려가 가방의 빈 공간마다 가득가득 차 있는 듯 합니다.
달라지는 일상의 리듬이 엄마는 두렵기만 합니다.
월요일 아침마다 아빠를 내려보내야 하는 일, 아침마다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들쳐 매게 하고는 채윤이를 학교로 보내야 하는 일, 어린이집에서 낮잠 자기 싫어하는 현승이를 늦게까지 두어야 하는 일. 그리고 엄마 자신의 일도요.
문득 예전 마태복음 1장을 읽으며 했던 묵상이 생각이 났습니다.

일상의 짐이 한 없이 버거워서 그것을 지고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걸음도 걷지 못할 것 같은 날에도 우리를 향한 그 빛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그 빛을 보지 못하고 그 사랑을 믿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어둡고 괴로울 것이지요.

일상의 버거움이 영원에 잇대어 새로운 옷을 입고 다가오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채윤이 네 살 때 목장홈피에 올렸던 말씀 묵상입니다.

<마태복음 1장>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야곱은 마리야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저는 오늘 아침 저의 '모성' 으로 인해서 힘겹습니다.
몇 년 전 어버이주일에 손장로님 설교가 기억 납니다. 부모의 자녀 사랑은 '본능' 동물들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새끼에게 자신의 살을 뜯어 먹게 하는 살신성인 하는 어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동물도 자신의 어미를 배려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식사랑은 '사랑'이라 부르지 않고 그저 '본능'이라 불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부모가 된 지 만 3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모성으로 인해서 힘겨웠던 적이 몇 번 있었죠.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도 채윤이가 가여워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을 때가 있었어요. 노력하지 않아도 채윤이를 그렇게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어쩌면 '자식 사랑'은 아가페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기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저희 부부는 성격이 매우 많이 다른데 목자님이 잘 보셨죠. 저는 다소 감정형의 사람이고 남편은 사고형의 사람이예요. 오늘 아침, 채윤이가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울면서 어린이집 버스를 타고 갔어요. 저는 청소하고 빨래하고 정신없이 일을 했습니다. 제 감정에 푹 빠지기 싫어서요. 한 번 감정에 휩싸여 버리면 저는 결국 자기연민에 빠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이 힘겨워지거든요.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마태복음 1장을 펼쳤습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이 부분이 크게 은혜가 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이 부분이 마음에 들어오네요. 누가 누구를 낳았을 때 한 사람은 부모가 되고 얼마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많았을 것인가? 그런데 그 많은 구구절절한 모성이며 부성이며 이런 것들은 없고 단지 '누가 누구를 낳았고 또 누가 누구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끝은 그리스도 예수님 입니다.
오늘 아침 저를 슬픔과 불안으로 휩싸이게 하는 작은 저의 일상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연결시키고 싶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사건이 감정들이 '영원에 잇대어'질 때 어떻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를 묵상하며 하루를 보내려고 합니다.


................정신실은 김채윤을 낳고.......................그들은 결국 하나님으로 인해서 영원히 행복하였더라..^^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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