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상담이나 치유 그룹에서는 흔히 별칭을 쓴다.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생소하고 오글거리지만 의미 있는 일이다. 내 이름 정신실을 두고 '나리'로 불리는 건 나와 거리를 두는 일이다. 2인칭 또는 3인칭으로 불러 나를 타자화 시키는 방법이다. 새롭게 만난 그룹에서 직업도, 성별도, 나이도 구분 없이 부르는 별칭은 페르소나를 지양하는 뜻이 담기기도 한다. 언젠가 나도 오글거리던 적 있었지만 이젠 별칭 짓기 권하는 자리에 자주 앉는다. 드물게 바뀌지만 나의 별칭은 주로 '나리'이다. 나리꽃의 그 나리. larinari의 nari 역시 바로 '나리'이다. 굵직한 별칭 만남들의 마침표를 찍었다.


5,6월 8회기의 글쓰기 자조모임을 동반했다.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 라고 쓰기도 싫은, 그러나 분명 그 끔찍한 일을 겪고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아니, 잘 살아가지 못하는 '나'들이다. 8주간 함께 쓰고 읽으며 나도 쓰고픈 말이 많이 일렁였다. 아니, 쓰고 싶은 말이 없었다. 모임이 있는 금요일엔 늘 새벽까지 깨어 있게 되었다. 매주 생각보다 많이 웃었고, 조용히 울었다. 제가 오히려 배우고 치유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8주였는데. 마지막 8주차에는 '네, 저도 치유고 배움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네요' 하고 뛰쳐나와 가해자 목사를 찾아내 단죄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여기서 나는 '나리'였다.


작년 가을부터 준비한 여정 캠프, 그러니까 싱글들을 위한 2박3일 캠프가 있었다. '나를 찾는 길 위에서 너를 만나다'라는 부제를 붙여봤는데 '에로스를 찾다 아가페를 만나다' 이런 사심을 품기도 했다. 하긴 부제로 붙일만 한 사심이 한 둘이 아니다. 소개팅과 결혼 압박에 지친 싱글들의 힐링 캠프. 전에 해보지 않은 재미있는 연속 소개팅. 나는 왜 사랑이 두려울까, 두려움 극복 프로젝트. 매칭 부담 없는 매칭 프로그램. 등등.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해야겠다. 생면부지 15명의 청년들 캐릭터부터 날씨, 장소, 나눔, 상담, 케미, 피날레. 여기서도 나는 나리였다.

 

캠프 떠나기 하루 전인 수요일엔 에니어그램 심화 세미나가 있었다. 아침 일찍 운전을 하고 가는데 음악을 듣다 툭,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전 주 금요일 글쓰기 자조모임 이후 차분히 감정 돌볼 시간이 없어서였을까. 연이은 묵직한 강의 압박 때문이었을까. 마침 이날 심화과정의 주제는 '감정'이었다. 예언 같은 울음이었을까. 미처 울지 못한 뒤늦은 울음이었을까. 그렇게 '나리'로 살았던 6월은 끝났다. 오늘 주일 예배에선 여정캠프에서 만난 15명, 에니어그램 세미나의 6명, 글쓰기 자조모임의 4명.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흩어져 이어지는 그들의 일상을 떠올리며 다시 또 울었다. 울음이 아니라 기도라고 하자.  



'나리'라고 불리는 또 하나의 그룹이 있다. 매주 만나는 꿈과 영성생활이다. 2박3일 여정캠프를 지원하고자 모인 사람들처럼 카톡으로 무한 에너지를 보내왔다. 캠프가 있었던 연천으로 가는 길을 전화 통화로 함께 하며 얘기를 들어주고 깨달음을 주는 벗이 있었다. 연천의 한옥호텔에 도착하여 긴장 속에 자기소개를 마쳤다. 물론 나를 '나리'로 소개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호텔 주변을 산책하는데 어머나, 정원에 지천으로 핀 꽃이 나리꽃이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주님! 신경 많이 써주셨군요! 나리는 마태복음 6장 28절의 '들의 백합화'이다.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있는 그대로 족한 들꽃이다. 




캠프에서 상담하는 중 세 사람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강의하고 상담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들 것 같은데 어떻게 충전하는가, 조금 걱정된다, 는 뜻도 담긴 것 같다. 나리는 나리가 되고 참나무는 참나무 되는 것으로 족한 만남에서 끝없이 재충전 한다고 대답할 걸 그랬다. 돌아가 그런 벗들이 있고, 벗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살아있는 숨결을 따라가다 보면 때로 그 숨결의 근원이신 분을 만나기도 한다고 고백할 걸 그랬다. 나는 나임이 부끄럽지 않다. 나를 나리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온몸으로 하고픈 말이기도 하다. 각자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그분의 큰 뜻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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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은 보물입니다.

직면하고, 이름 붙이고, 충분히 느끼면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치유 되고, 성장합니다.

자신의 진짜 감정을 느끼고 건전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가장 건강한 사람입니다.

감정은 영혼의 외침입니다.


라고 말하고, 독려하여 사람들의 감정을 끌어내곤 한다.

낮에는 이렇게 강의를 하고, 이런 취지의 별별 상담을 한다.


어느 밤에는 공허감, 슬픔,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외로움이 패키지로 몰려온다.

직면하고, 이름 붙이고, 충분히 느끼라고 나를 토닥여보지만, 

정답을 익히 알고 있는 이 삐딱한 자아가 순순히 말 들을 리 없다.


이런 밤에 읽을 책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글을 읽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게다가 몇 줄 끄적일 수 있으니.


어제의 낮은 지워지고, 내일의 낮은 오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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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을 수 없었고, 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일들이 나를 새로운 자리로 데려가곤 한다.


음악치료사라는 직함, 호칭 또는 정체성이 점점 흐려지고

작가와 강사의 옷이 평상복 같아지는 나날이다.


쓰고 읽은 것들이 자꾸 내가 새옷을 입히는 것이다.

글쓰기 자조모임을 이끌게 되었다.


이 쓰기 모임을 설명하는 언어로 '피해자(보다 생존자)', '치유(보다 성장)'를 쓰기가 불편하다.

아닌 게 아니라 첫모임에서 한 분이 말했다. 그 말은 불편하다고.


대상화 되기를 불편해 하는 감각을 가졌다는 것은 더는 그 언어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 수도 있다.

'자조모임'이 딱이지 싶다.


건강(health), 치유(Healing)라는 말의 어원이 ‘hal, hale’이라고 한다. 

이것은 whole, 즉 전체성과 온전함의 뜻한다.


치유는 비정상을 정상 만들거나, 아픈 사람 낫게 한다는 뜻보다는

온전성의 회복이라 이해하는 것이 좋다.


칼 융이나 카레 호나이는 자기 치유, 즉 온전성을 향한 의지와 힘이

모든 인간 안에 있다고 한다.


돌아보면 읽고 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나다움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기울어진 사유의 틀과 신앙을 가지고 불편한 일상에서 균형을 찾고자함이었다.


커리큘럼을 짜기 위해 참고할 책을 한 권씩 빼서 노트북 옆에 쌓다보니 끝이 없다.

마치 '치유하는 글쓰기'를 위해서 읽고 써 온 인생이라는 듯.


자기치유, 또는 가장 나다운 나를 꽃피우기 위한 읽기 쓰기의 50평생이니,

글쓰기 자조모임을 이끄는 일은 또 하나의 필연인가.


새로운 만남, 새로운 일로 긴장과 설렘의 봄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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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중학교 2학년까지 살았던 고향, 충청남도 한산을 찾았다. 남편 제안으로 휴가 중에 일부러 일정 잡아 들렀다. 마침 한산 오일장 서는 날이라 어릴 적 장날을 기억하고 한껏 부풀었으나 한산하기만 한 한산장이었다. 점심을 먹어야 해서 '오라리 집'으로 들어갔다. 내게는 아스라하고도 친근한 '오라리'이다.


혼자 갔으면 조용히 먹고 나왔을 텐데 남편이 주인 할머니께 장사하신지 얼마나 되셨냐, 아내가 어릴 적에 여기 살았다, 말문을 터주었다. 35년 되셨다면서 "오디 사셨슈?" 하셨다. 저 위에 한산제일교회라고, 그 교회 목사님 아시냐고 했더니..... "아, 그 탄 가스로 돌아가신 정 목사님" 하셨다. 그리고는 "내가 그때 당시 잠깐 교회를 댕겼슈" 하시더니 우리 엄마한테 수십 번 들었던 교회 얘기를 들려주셨다. 눈물이 터질락말락 놀랍고 신기했다. 잠시 후에 식사하러 들어오신 어르신에게 "저기, 옛날이 교회 목사님 알쥬? 이 양반이 그 딸이랴" 하...자마자 "정선득 목사님?" 하신다. 당시에는 교회 안 다니셨는데 지금 한산제일교회 장로라고 하시며.


동네 구석구석 돌아보고 사진 찍고 하는데. 지나가는 연세 드신 분 아무나 붙잡고 "제가 예전 교회 집 딸입니다" 하면 다 아실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렸을 적에 교인 아닌 분들은 나를 '교회 집 딸'이라 불다. 태어나보니 목사 딸이라서 그러려니 했는데, 동네 절에서 사는 어떤 아이에게 '절집 딸'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교회 집 딸' 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절집 딸, 되게 이상한 애처럼 보인다. 이런 느낌이구나. 부모의 딸이 아니라 '특별한 어떤 집에 사는 사람 중 하나의 아이'


고향 동네를 뒤로 하고 겨울 논 사이 국도를 달리는데 기억의 조각들이 마구 떠오른다. '교회 집 딸'이란 말을 조금 다르게 인식한 후에 무의식 중에 '교회 집 딸, 목사 딸'이 부르는 사람들을 향해 마음 속으로 자꾸 이렇게 말했다. '교회 집에도 엄마 아부지가 있고, 그냥 당신 집하고 똑같습니다. 죽이 잘맞는 동생과 엄마 아부지 놀릴 궁리를 하다 싸우다 혼나다 하면서 사는 그런 일상을 사는 사람입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자라고 어른이 되어서도 목회자 가정이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거룩하지 않다는 걸 설명하기 참 어려웠다. "그냥 당신 가정과 비슷한 정도의 행복과 문제를 가진 가정이라구요." 엄청 홀리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이 그 사람의 마음에 그린 이미지의 투사라는 것을 알기에 사실을 알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남편이 목사가 된 이후로 남편 직업을 말해야 할 순간이 오면 그냥 낯이 뜨겁고, 한 마디 설명하고 싶은 마음 누르게 된다. "목산데,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기꾼은 아니에요. 그냥 장점도 있고, 장점만큼의 약점도 가진 한 사람이에요."


늦게 목회자 된 남편보다 목회자로 사는 것에 대해 더 복잡하고 민감한 이유를 문득 깨달았다. '교회 집 딸, 목사의 딸'이라는 페르소나에 대한 고민이 어릴 적부터 유난했다. 오라리집 아주머니 말씀을 듣다가 확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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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틀 남았어. 40대를 마지막으로 즐겨. 이틀 후에 50살 되는 거 알지? 50은 반백이야. 백 살의 반이라구" 토요일 할 일 없이 빈둥거리던 아들 놈이 기껏 찾아내 떠벌이는 말이다. (굳이 일깨워주지 않아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이 놈아!) 어쩌다 오십이다. 나이에 부끄럽지 않게 한껏 늙은 얼굴이다. 화장 하려고 거울 앞에 앉으면 어떤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든 민망함이 앞선다. 연세 드신 분들을 만나러 간다면 '어린 것이 버릇 없이 저렇게 주름 자글자글 마음껏 늙어 가지고 다녀!' 하실 것 같고. 젊은이들 만나러 가는 길에는 '어머, 이렇게 연로하신 분이 무슨 연애 강의요?!' 하지 않을까 싶고. 


얼굴이 문제가 아니다. 반백의 나이에 부응하여 '오십견' 또한 찾아와 주셨다. 내가 강의도 잘하고 음식도 잘하고 찬양 인도도 잘하는데 딱 하나 등을 못 긁는다. 아, 사실 옷도 잘 못 입고, 머리도 못 묶는다. 오십견 증상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와 1도 상관 없을 것 같은 말이 오십견이었다. 일단 무지 나이를 많이 먹었는데 운동은 전혀 안 하고, 폐쇄적인 어떤 사람들이 걸리는 것이려니. 어깨 관절 각도가 조금만 커져도 '아야아야아야' 비명을 지르게 되는데 얼마나 엄살 같은지 식구들의 놀림꺼리이다. 


영적 사춘기와 함께 중년 앓이를 남보다 이르게 치룬 덕으로 일찌감치 이 말씀을 알아듣고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일기장과 블로그를 더듬어 보니 2009년, 2012(click), 2014(click)년 한 번씩 이 말씀을 깊이 품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성가대 지휘를 내려 놓으며, 음악치료를 접으며, 무엇보다 삶의 계획의 주도권을 내려놓아야 할 때마다 묵상한 말씀이다. 오십 고개를 넘어가며 다시 보는 이 말씀에서 '늙음'이 더는 상징이 아니다. 늙음 그 자체이다. 비움, 내려놓음 이런 관념이 아니다. 


10여 년 수영을 하다 그만둔 지 1년이 넘는데, 그 사이 오십견이 왔다. 치료는 운동 밖에 없다는데 그 어떤 운동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재활치료 한다는 마음으로 수영장엘 가자, 싶어 용기를 냈다. 빠르게 왔다갔다 하진 못하겠으니 중급 정도에서 천천히 놀아봐야지, 싶었다.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왼팔 젓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겨우 살살 평영을 할 수 있을 정도. 할머니 한 분이 세월아 네월아 삐뚤삐뚤 자유형을 하다, 걷다 하시는 초급 레인으로 갔다. 나도 그냥 세월아 네월아 한 팔로 되는대로 왔다갔다 했다. 상급 레인에서 접영으로 세차게 물을 가르던, 자유형 40개를 거뜬하게 돌던 내 몸은 없다. 어, 없다.


삼십 고개를 함께 넘었던 친구들이 있다. 삽십 고개를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지리산 종주를 했는데, 나는 함께 가질 못했다. (당시 나의 썸남이었던 종필이 누나들 짐꾼으로 따라갔으니 그의 마음에 ♡담겨♡ 나도 함께 다녀온 걸로 되어 있다. 큭큭) 오십 고개를 넘는데 지리산은 못 가더라도 뭐라도 넘어야 한다는 취지로 한 밤을 함께 넘었다. 별스럽지도 않게 사는 얘기 살아온 얘기 끝도 없이 나누는데, 내게도 친구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말은 딱 한 마디. 여기까지 잘 왔다! 이다. 20대에 마음이 끝도 없이 요동치던 시절에는 30대가 되면 사는 재미가 있을까, 싶었다. 결혼과 진로가 결정되면 고민이 없을 텐데 고민 없는 삶은 재미라는 게 있을까? 철없는 걱정을 했었다. 허허. 우리의 3,40대를 설명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정황 설명과 억울함에 대한 해명, 견뎌온 자신을 피력할 말이 필요한가. 그저 20년 전 지리산에서 홍천의 리조트로 휙 화살표 하나 그어 '여기까지 잘 왔다'로 해두자.


거실의 선인장이 뜬금없이 봉우리를 맺더니 꽃망울을 터뜨린다. 성탄 장식 옆에 두었더니 저도 대림을 기리겠다는 뜻인지, 주인 엄마의 반백을 축하 하겠다는 뜻인지. 빨간색 꽃망울이 예쁘다. 꽃망울이 예쁘지 막상 꽃을 피우면 신비감도 사라지고 그저 곧 시들어 떨어질 듯한 반백의 오십견 아줌마 같이 보인다. 그래도 이 겨울에 여전히 살아 생명의 숨으로 거실을 채워주니 고맙고 고맙다. 실은 가족들도 몰라주는 오십견 통증으로 외로울 때, 가장 큰 위로를 준 녀석이다. 그리 아까지도 않는 화초였는데. 그래서 더 고맙다. 


이제 하루 남은 거다. 나의 4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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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중앙공원의 단풍이 운전을 방해한다. 운전하며 틈틈이 곁눈질 하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다.  원두가게에 들러서 원두를 사고 서비스로 주는 커피 한 잔을 얻어서 중앙공원으로 향했다. 벙개로 만난 친구처럼 들뜨고 설레며, 동시에 호젓하며 쓸쓸했다. 분당의 가을은 예쁘다. 봄도 예쁘고 여름도 예쁘지만 가을은 유난하다. 눈을 돌려 마주치는 어디든 예쁘지 않은 곳이 없다.




봄은 가까이 가서 봐야 예쁘고, 가을은 멀리서 봐야 예쁘다.


지난 주 어느 날, 역시나 단풍으로 예쁜 동네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얻어 들은 명언이다. 명언의 발화자 권사님의 부연설명은 '가을 단풍이란 실은 푸석푸석하고 물기 없는 것이 가까이 보면 고울 것이 없다는 말씀이었다. 그렇지! 흙모자를 쓰고(이거, 망원동 사는 어느 시인의 표현이다.) 올라온 새싹과 눈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들이밀던, 연한 새잎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던 봄날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가을은 버석버석하고 스러져가는 아름다움이다. 바람 살짝 불면 후루룩 떨어져 버리는 힘 없는 잎들의 향연이다. 붙들고 싶으나 더는 붙들 힘이 없는, 고갈된 생명의 처연함이다. 가까이서 찍은 내 얼굴이 보기 싫은 느낌은 운전하고 지나치다 본 숲에 들어섰을 때의 쓸쓸함이다. 나좀 봐달라는 듯, 지는 해를 스포트라이트 삼아 존재감을 발하는 벤치가 눈길을 끈다.  




벤치를 주인공 삼아 사진 여러 장을 찍은 뒤에 화단의 낮은 담을 넘어 가서 앉기로 했다. 주름진 얼굴, 오십견이 와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어깨, 물오르는 생명력 같은 건 많이 잃어버린 마음을 가지고 가 앉았다. 가서 앉자, 앉다, 앉아 있다, 이런 말을 되뇌이다 구상 시인의 시에 이르렀다 . 이 한 마디 알아듣기 위해 인생의 봄, 여름을 달려온 것일까. 푸석푸석한 생의 가을이어서, 알아들어지는 것이 있는 가을이어서 다행이다.

 


[꽃자리]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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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부터 귀에 꽂히는 경구가 하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결혼을 앞둔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언니들의 조언이다. 경험을 우려낸 진국,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영양가 듬뿍 담긴 가르침이다. "시부모에게 처음부터 잘하지 마라. 잘하는 며느리에게는 계속 더 기대한다. 아예 처음부터 잘할 생각을 하지 마라"


영양가 높은 말인 건 알겠으나 동의가 되지 않았다. 결혼한 언니들 백이면 백 '시'자 들어가는 건 시금치고 시켸(식혜 켸켸)고 일단 뱉어내는 걸 보니 장난이 아니다 싶었지만서도. 나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도 있고, 남들 하는대로 하는 건 무조건 안 하고픈 반골 기질도 있는지라. 무엇보다 관계 시작하기도 선부터 그어 놓는 것이 불편했다.


잘하고 말고 생각하지 않고 시부모님과 관계를 맺었다. 미리 규정하지 않으려 했고, 할 수 있다면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다가가려 하다보니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못하)는 관계가 되었다. 착한 며느리 소리 듣고, '너는 며느리가 아니라 나의 상담자이며 치유자다'라는 극찬도 들었지만 어느 시점 정신을 차렸다. 아, 잘하는 며느리를 향한 기대는 끝이 없구나! 언니들 말이 맞았네!


나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은 자만심의 결과였다. (불평등한 결혼 구조 안에서 며느리로 사는 문제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어느 시점 뒤늦게 경계를 설정하고 그럭저럭 편안한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처음부터 잘하면 안 된다!


'처음부터 잘하는 게 아니었어, 대충 말 안 듣고 살살해야 했어' 시어머니가 아니라 하나님께 이런 마음이 들면 복잡해진다.  내가 고분고분하니까 나를 너무 막 다루시는 거 아닌가 싶은 것이다. 진짜 해도 해도 너무 하시네. 이만큼 했으면 저만큼은 해주셔야지 갈수록 더 팍팍하게 구시나.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인 줄, 보자보자 하니 보자기인 줄 아시나 본데. 확 절교를 할 수도 없고!


때때로 살아야 할 이유가 흐릿해질 때가 있다. 일상의 부조리를 담기에 내 마음이 작거나, 마음의 그릇 크기에 비해 부조리의 크기가 크거나. 오늘의 부조리를 견딜 힘은 '의미'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흐릿해진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때때로 무의미의 숲에서 길을 잃어 헤매는데, 그때 내가 화살을 돌릴 유일하고 만만한 분이 하늘 아버지. '착한 사람들 뒤를 더 잘 봐주셔야지 갈수록 험지로 내모십니꽈? 이래도 되는 겁니꽈?; 삿대질 하고 원망해본다. 강상중이라는 뜬금없는 귀인을 만났다. <마음> <고민하는 힘> <어머니>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차례로 읽으면서 마음이 마음이 조금 풀렸다. "살아야지,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가 충만하지"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Yes라고 말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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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갈이 시점은 어떤 변곡점이다.

무성한 잎을 보아하니 보이지 않는 뿌리가 숨 쉴 공간이 부족하겠네,

생각하며 화분을 갈아줘야지 싶어도 쉽게 되질 않는다.

분갈이 할 시간이 없거나, 갈아줄 더 큰 화분이 없거나.


2000원 짜리 두 개(어쩌면 세 개)를 사서 주먹만 한 화분에 심어 키운 스파트필름이다.

몇 차례 분갈이 하며 몇 년을 지났다.

뭔가 꽉 찬 느낌이라 갑갑해 보여 신경 쓰이고 미안했지만 마땅한 화분도 없고, 시간도 없고.

개국 이래 최장 휴일이라는 2017년 추석이라 시간이 많아졌다.

어머니 모시고 율동공원 나들이 다녀 오는데 집앞 나무 사이에 멀쩡한 키다리 화분이 서 있다.

'제 아이를 부탁합니다. 사랑으로 돌봐주세요' 누군가 놓고간 아기 같이 말이다.

냉큼 주워 와 분갈이 작업을 했다.

언니가 더는 못 입는 옷을 동생이 물려받고, 도미노처럼 그 다음 동생도 득템하는 형국이다.

빈 화분을 그 다음 큰 아이가 차지하고, 그래서 생긴 자리에는 또 다른 녀석이 심겨진다. 

아침에 걸레질까지 해놓은 거실은 흙대밭(?)이 되고....... 

그리하여 작은 옷을 입고 숨도 못 쉬던 스파트필름은 화분 서열 2위로 등극하였다.

1위인 벤자민이 사춘기 지나 키 다 큰 성인으로 입양된 놈이니,

실질적으로 1위라 해도 무색하지 않다.


비좁은 거실에 어디 둘 데도 없지만 없는 공간 만들어내는 재능을 타고난 엄마 덕에 좋은 자리까지 잡았다.

해질녘이면 붉은 저녁 햇살이 깊숙하게 들어오는 길, 

노트북 앞에 앉은 엄마의 눈길이 가장 많이 닿는 명당자리이다.

한 잎 한 잎 물로 닦아주고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눈을 뗄 수가 없다.

에고 이뻐라, 에고 이뻐라. 주먹만 한 화분에서 어찌 이렇게 자랐는가, 기특하기도 하여라.

혼자 간직할 수 없는 감동에 이 녀석 자랄 동안 물 한 번 주지 않았던 김종필 아빠에게 강요한다.

"여보, 얘 좀 봐줘. 큰 박수가 필요합니다! 박수 쳐! 세게 쳐!" 


성.장.

가끔 사람들이 궁금해서 물어오는 질문, 나도 내가 왜 그럴까 생각해 보는 나에 대해 이 단어를 찾았다.

성장하고 싶은 욕구, 욕구가 지나쳐 집착이 되고 이것은 결국 중독이 아닐까 싶은 열정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꾸준히 쓰는 열정, 나답게 강의하기 위해 배우고 공부하는 열정.

내 마음 그대로 투사가 되어 꾸준히 자라는 식물이 예뻐도 너무 예쁘다.

사람에게도 투사가 되어 성장하는 사람은 다 예쁘다.

이미 훌륭하여 더 자랄 것도, 배워야 할 것도 없다는 사람과는 친해지고 싶지 않다.


감.사.

말 없는 식물에게서 감사의 태도를 느낀다.

이것도 역시 내 마음을 비춘 감정이지만 말이다.

아이들 어릴 적에 많이 불러줬던 노래, 정말 귀여운 노래인데 부르다 자주 울컥했던 노래가 있다.


포도밭에 포도가 땡글땡글 땡글땡글땡글땡글 잘도 열렸네

자기 혼자 컸을까 아니 아니죠 정말 혼자 컸을까 아니 아니죠

위에 계신 하나님이 키워주셨죠


우리 아이들 어릴 적에는 물론이고 주일학교 찬양 선생님 할 때도 많이 불렀다.

'가사 바꿔 부르기'로 사과, 배추, 호박, 고추, 딸기.......에 의태어까지 바꿔서 참 재밌게도 불렀다.

어떻게 가사를 바꾸든 '자기 혼자 컸을까 아니아니죠'에선 늘 은혜를 받았다.

누워서 빽빽 울던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사람 되기까지,

오늘의 내가 이나마 사람 구실 하면서 살기까지,

나 혼자 크질 않았다.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이 계셨는가.

위에 계신 하나님이 연결해주신 수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주고, 자기의 것을 나눠주며

지금 여기의 내가 있다.


공들여 키우는 창가 책꽂이 위의 화분 중에는 그런 놈이 없다.

자라지 않는 놈, 제 혼자 큰 줄 아는 녀석은 없다.

사람은 너나 없이 제 혼자 이룬 줄 알기에 감사치 않는다.

쑥 자라 어른이 된 화초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침 저녁으로 보듬은 나의 공을 생각하고,

나 몰래 내게 사랑과 인내를 베푼 수많은 손길과 공로를 상상해본다.

감사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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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김현승翁의 어릴 적 일기를 빌자면 '매일 매일 똑같은 하루'이다. 똑같은 일과 비슷비슷한 염려, 여전히 감내해야 할 것들이 반복되는 하루이다. 이런 일상 속에 심장 뛰는 일이 생기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심장 뛰는 놀이가 생겼다. 발품팔이 온라인 중고매장 찾아가 득템하기. 열정 솟아나는 새로운 놀이이다. 절판 도서 한 권을 노리고 있었다. 사람들 취향이 다른 듯 비슷해서 내가 찜한 절판 도서들을 나만큼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사람들이 있다.  습관적으로 오프라인 중고매장을 검색하던 어느 날, 기다리던 책 <남성성과 젠더>가 합정점에 떴다. 채윤이 레슨 가는 날 잡아오라 하기엔 늦을까? 무리해서 돌아돌아 다녀올까? 고민하는 와중에 이미 판매되고 사라짐. 허망. 딱 한 권이 알라딘 중고매장 전주점에 살아 있다. 주일에 전주에서 강의가 계획 되어 있었다. 터미날 투 강대상까지의 픽업 의전을 마다하고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지. 중간에 알라딘 매장에 들러야지,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또 그런 와중, 잠실 신천점에 한 권이 또 떴다. 지하철 타~아고, 버스 아고 달려가서 체포했다. 몇 번 책꽂이 몇 번째 칸 찾아가 눈알 굴리며 더듬다 동공 고정. 떨리는 손으로 책을 뽑는 느낌. 말로 표현 못함. 으아아아.


운동 삼아 서현역의 온라인 중고서점에 다니며 쏠쏠한 재미를 보기 시작. 쏠쏠쏠쏠한 재미를 위해 중고매장 활동 범위를 넓히게 된 것이다. 새로 생긴 동탄점에, 분당 야탑점에도 가 착한 가격으로 위시리스트에 있는 책들을 낚아왔다. 아주 급한 책이 아니라면 중고가 나올 때까지 검색질을 하며 기다리기로 한다. 하루 한 번 정도 검색창에 제목을 치고 엔터를 누를 때마다 (얼마 만의) 뛰는 가슴 한껏 즐기면서 말이다. 남편과 서로 책 사는 문제로 은근 갈구고 눈치 주고, 갈굼 당하고 눈치 보는 일상이다. 당신 책 또 샀어? 어, 이번 설교에 꼭 필요한 책이야. 정신실, 책 또 주문했어? 아아, 준비하고 있는 강의가 있는데 주제에 딱 맞는 책이 있더라고. 피차에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으며 책을 사들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중고서점에서 엄청 싸게 샀어' 이것은 기분 좋은 면죄부가 된다. 


책 읽는 즐거움이 없다면, 책을 통해 배우지 못한다면 이 깊은 공허감과 결핍감을 무엇으로 채웠을까. '누군가 내 어릴 적에 진로 코칭을 잘 해줬다면' if로 시작하는 상상의 나래를 자주 펼치곤 한다. 중고등 때는 영어가 정말 좋았다. 모두 평등하게 과외를 할 수 없었던 중학교 시절에, 시험 때마다 영어과목은 더 공부하할 것이 없을 정도로 달달 외우고 또 보고 또 보곤 했다. 틀릴래야 틀릴 수 없는 상태로 시험을 치곤 했으니. 영어가 재밌고 좋았다. 영어를 전공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학 2학년 때는 사회학을 세미나 수업으로 듣고 '아, 내가 사회학이 딱 내 체질에 맞는구나!' 싶었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 여성학을 공부하겠다고 대학원 준비를 한 적도 있다. 화해 불가능으로 보이는 기독교와 페미니즘 사이에서 길을 찾고 싶었었다. 포부는 컸으나 사소한 일로 포기하고 말았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아쉽지만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다. 아쉬움이 꼭 나쁜 것은 아닌 것이, (영어, 사회학, 여성학, 심지어 철학까지) 미답의 전공지에 대한 결핍감이 땔감이 되어 오래도록 독서열을 불태우고 있는 지 모르니까. 덕분에 이 나이에 이런 설렘도 누리고 있으니까.


도서 구입비 지출에 대한 부부 상호 갈굼도 독서열을 활활 태우는데 한 부채질 하고 있다. 훔친 사과과 맛있다? 몰래 하는 일이 짜릿하고 더더더 갈증 속에 몰입하게 되는 법. 몇 달에 한 번씩 '우리 이제 당분간 책 사지 말고 있는 책 다 읽고 사자. 읽은 책 또 읽어도 돼. 사실 다 까먹잖아. 맞아, 맞아' 남편과 다짐하곤 한다. 연기하는 듯한 말투며 필요 이상으로 꽉 쥔 손을 보면 '저거 저거 오래 못 가지' 피차에 이미 알고 있다. 그 과장된 약속이 그어놓은 선을 넘는 맛에 몰래 또 책을 주문하곤 하지. 보고 싶은 책 마음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이면 이렇듯 맛있는 책읽기를 누릴 수 없을 테다. 절판 도서를 찾아 헤매면서 '책을 쓰려면 이런 책을 써야지. 내가 낸 책들은 한 번 읽히고 책꽂이 자리나 차지하는 책. 나무야, 미안해. 지구야, 미안해' 자조의 심정이 되기도 한다. 그것도 어쩌랴. 내 수준과 한계가 여기까지인 걸.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젊은 날의 결핍이, 일상 속 결핍이, 결핍감이 독서의 즐거움에 이르게 했으니 부족함과 한계는 나쁜 것만도 아니다. 


남편 쉬는 날에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함께 보았다. 후기 수다를 떨다 '안 되겠다.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싶어 중고매장 검색을 하고, 가장 싼 책이 동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달려갔다.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 남편이 붙들더니 이틀 새 읽어 버렸다. 이제 내가 읽을 차례. 책만 보는 바보 부부, 스튜삣! 이렇듯 경제적으로 독서라니, 그뤠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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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남편은 들꽃과 사랑에 빠졌다.

'갔다 올게' 하고 나가면 한 30분 안에 카톡, 카톡, 카톡, 카카카카..... 카톡.

길가의 흔히 보던 꽃들이 줄줄이 폰으로 들어온다.

입만 열면 새로 발견한 꽃, 그 꽃의 이름을 읊어대며 헤벌쭉 하는 것이

꼭 첫손주를 본 할아버지 같다.


사랑 하라, 에만 골몰하느라 사랑을 그저 '하면' 되는 줄 알지만.

사람은 사랑을 제조할 수가 없는 존재이니 사랑을 한다는 것은 받아서 전하는 일이다.

그래서 주는 사랑에만 골몰하다 보면 말라 비틀어진다.

쥐어 짜내어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닌 것이 허다한 이유일 지도.

주는 사랑도 중요하지만 오는 사랑을 받아 담는 것이 더 근본적인 일이다.


올봄, 남편은 길가의 작은 꽃들로부터 오는 사랑으로 촉촉해졌다.

나도 길 위의 작은 꽃들로부터 사랑을 채운다.

'꽃 중의 꽃은 인꽃이여'

아기 하나를 두고 어른들이 죽 둘러 앉아 웃음꽃을 피우는 장면을 해설하는

우리 엄마의 말이다. 나처럼 아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아기들을 '인꽃'이라고 불렀다.


키 큰 나무가 푸르게 둘러 싼 율동공원 산책길에는 심장 뛰게 하는 인꽃이 흔하다.

유모차에 갇혀 형언불가의 멍멍한 표정으로 팔을 흔드는 인꽃,

어구구구구...... 넘어질라, 넘어질라, 아장아장 인꽃,

일상의 근심 걱정 한껏 지고 묵직하게 걷던 발걸음이 1g으로 가벼워지는 순간이다.

이 작은 인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 깊은 곳에 고여있던 평화가, 사랑이 풀려나니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다.


어제 산책 마지막 코스에서는 할아버지 품에 안긴 인꽃 한 송이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길 오른쪽으로 공원 매점이 있는데 매점 앞에 풍선과 장난감이 있다는 걸 어제 처음 알았다.

시무룩, 할아버지 품에 안겨 가던 아이가 눈이 커지면서 급해서 말도 못하고 손가락질을 한다.

매점이다. 매점 앞 풍선이다.

꽃을 든 할아버지는 당황.

가자, 가자..... 하며 직진이신데 꽃이 뒤틀린다. 뒤틀려 품을 빠져 나오려 한다.

그 뒤를 걷던 더 연세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껄껄 웃으신다.

"볼 일이 있다잖아요. 꼭 가서 볼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쳐. 껄껄껄"


급하게 생긴 막중한 볼 일을 피하지 못하고

꽃을 운반하던 할아버지는 발길을 돌려 매점으로 가셨다.

공원을 빠져나올  때까지 올라가서 실룩거리는 입꼬리가 제자리를 못 찾는다.

마음이 간질거리는데 웃음을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작은 사람 꽃. 그 꽃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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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자의 기도


배움을 더해 갈수록 느끼는 것은
제가 무지하다는 것,
제가 배울 수 있는 영역들이 얼마나 무한한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움이 깊어갈수록 깨우치게 되는 것은
지식이라는 나무의 가지들이 그리도 무성하고
그리도 오묘하게 뻗어 있다는 것이며
일생을 통해 배운다 해도 여전히 초보자라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깨우치고 배워야 하는 분야들을 잘 터득할 수 있도록,
결코 실망하거나 싫증내어 배움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게 가르쳐주십시오.
제가 배울 수 있다는 것, 배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잊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배움을 소중히 하고 제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깨우치도록 지혜를 주십시오.

터무니없는 야망을 지니지 않고 다만 근면할 수 있도록
성공이라는 물신을 숭배하지 아니하고,
다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주어진 일들의 바른 순서를 찾으며,
주어진 재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배우는 것보다 무한한 것을 볼 수 있는,
제 개인적인 성공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볼 수 있는
넓은 안목을 주십시오.

일생을 통해 배움을 멈추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무리 많이 배울지라도
항상 발견해야 하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제가 삶 그 자체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당신이 비추시는 빛을 외면하지 않도록
저를 지혜롭고 강하게 해 주십시오.



2008년 5월에 이 기도문을 블로그에 걸었던 적이 있다. 본격 영성 공부에 발을 들여놓고 어느 강의 시간 시작 기도로 낭송되었던 기도문이다. 꼭 10년이다. 그때는 그 시작이 '본격적' 시작인지 알지 못했고 10년 후인 오늘을 상상하지 못했다. 저 기도문이 예언처럼 나를 이끌어가 '일생 통해 배움을 멈추지 않는 길' 접어든 것이다. 에니어그램 연구소에 발을 들여놓은 그 학기부터 이번 학기까지 무엇이가를 배우지 않은 적이 없었다. 책이 그 다음 읽을 책을 끌고 나오듯, 어느 강좌는 그 다음 강좌로 나를 이끌었다. 매 학기 새롭게 열리는 배움의 문은 그분의 이끄심이라 해야 비로소 설명되는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지난 10년, 20학기 동안 3학점 짜리 강의를 한 학기도 쉬지 않고 들었다. 총 60 학점을 이수했으니, 아니 한 학기에 두 과목 수강도 했으니 60학점 그 이상. 남편이 '야야, 니네 엄마 박사과정 한다. 박사 공부한다.' 놀리던 것이 장난이 아님이다. 


지난 주에는 4학기 짜리 공부를 하나 마쳤다. 지난 시간 낯선 공간 낯선 문화를 찾아 헤매며 외롭게 배워왔던 것들을 '철학'이라는 실로 한 줄에 꿰는 시간이었다.  2008년 3월, 첫 강의 자기 소개 시간에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저는 가끔 내가 이 나이에 이런 걸 다 깨달아도 되는 걸까? 나는 너무 훌륭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왔습니다.'라고 했다. 선생님 한 분이 그 말에 빵 터졌던 기억도 난다. 농담이었지만 살짝 진심이었다. (자아팽창, 갑 중의 갑었지) 배움을 더해 갈수록 느끼는 것은  제가 무지하다는 것, 제가 배울 수 있는 영역들이 얼마나 무한한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내 인생 처음으로 이 고백을 하게 되었다. 껌 씹으면서 할 수 있는 고백은 아니었다. 캄캄한 무지의 밤을 여러 날 보내며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하던 막막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 사이 책을 출간하고, 또 출간하고, 여기 저기 얼굴을 알리면서 뭔가 한 방 해보겠다는 남모르는 야망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다행히 결코 놓지 않았던 배움의 끈이 나를 잘 붙들어 주었다. '터무니없는 야망을 지니지 않고 다만 근면할 수 있도록, 성공이라는 물신을 숭배하지 아니하고, 다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며 서두르지 않을 수 있었다. 앎의 한계에 부딪히면 또 책을 읽고, 새로운 저자를 만나고, 또 공부하고, 그러다 글을 쓰고, 새로운 강의를 만들어내며 살아 있다고 느꼈다. 배움과 가르침 사이에서 야망이 꿈틀대고, 타인과 비교하며 조바심 내는 순간도 많았지만 갈수록 내 속도와 한계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이 시점에 다시 읽어보는 '배우는 자의 기도'는 한 자 한 자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온다. 


# 누구신지 참 기막힌 커리큘럼으로 10년 학사관리 해주셨다.

# 그분 참! 그동안 퍼부은 시간과 돈을 생각해서라도 박사학위 하나 하사 하실 일이지.

# 야망은 없다. 그렇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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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팝니다]


수년 동안 한 어린이집의 음악수업을 해오고 있다. 음악치료사로서 영유아 음악수업은 같은 요리를 다른 장소에서 하는 것과 같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요리를 어느 상에 올리느냐의 문제이다. 음악교육이라고 하지만 치료사의 정체성을 벗어날 수 없다. 뭔가 조금 다른 아이, 어떤 이유든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아이에게 절로 눈길이 간다. 조금 더 마음 써서 기회를 주고 격려하게 된다. 아이의 문제가 순수하게 아이만의 문제인 경우는 없다. 부모에게 관심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오지랖이라면 남부럽지 않은 여자이기에 때로 부모상담도 했다. 게다가 교사교육도 했다. 교사를 다독여 편안한 정서를 가지게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환경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에 몰입할 때 나는 행복하다.


초, 고정수입의 필요를 절감하며 짧고 깊은 고민을 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지만 당당하게 나를 팔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일주일에 하루 어린이집에 상주하면서 부모상담, 교사교육, 아이들의 발달체크를 전담할 테니 강사료 말고 월급을 좀 달라. '나를 사달라'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당당하게 내놓았다. 협상이 타결, 아니 제안이 수용되어 '토닥토닥 상담실'이라는 이름으로 비공식적으로 하던 일을 정식으로 하게 되었다. 어린이집에 전문 상담교사가 비치되는 건 대한민국 최초일 것이다. 어린이집 교사의 학대가 한 번씩 검색창을 휩쓰는데 아이, 교사, 부모를 함께 돌보는 일을 전담하여 적극적 방어를 한다는 의미. 기꺼이 나를 비치시키고, 심지어 고상 이미지 지키느라 쉽게 입에 올리지 않는 '돈'을 요구하였다.


이렇듯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나를 팔아본 경험이 있던가.

셀프 토닥토닥을 무한으로 해주고 싶은 일이다.



[나를 팔지 않습니다]


선교단체 수련회 같은 곳에서는 강의를 녹화하고 녹음하는 경우가 많다. 녹화하되 내부 공유만을 허락하곤 한다. 온라인에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불허이다. 큰 의미를 부여하며 정한 원칙은 아니다. 강의라고 하지만 대체로 적어도 나는 만남, 소통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 공간과 시간 안에서만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 소중한 현재성이 사라진 채로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나와 수강자들의 모습이 상상만 해도 싫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원칙인데 이 부분에 대해 말로 설명 하다보면 '결벽증 삐꾸아냐?' 하는 느낌을 스스로 받는다. 사실 나는 묻지 않아도 속에 있는 말을 하는 편. 노출에 대한 부담이 없다. 헌데 그런 방식으로 강의를 소비하고 싶지 않은 걸 어쩌랴. 


이번 출간된 <연애의 태도> 홍보를 위해 출판사에서 여러 작업을 하신다. 작업을 위해서 온라인을 탈탈 털어도 강의 영상을 찾을 수 없다 하셨다. 당연하다. 없으니까. 또 앞으로 홍보작업을 위해서 온라인 강의 프로그램에 나가면 안 되겠나 하시는데 딱 잘라 거절할 수는 없어서 너저분한 말을 늘어놓다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딱 자르니 못한 것은 단지 미안해서가 아니라 내가 고수하는 원칙이 맞나? 싶어서였다. '방송 출연은 하시겠어요? 인터뷰는요?' 출판사 부장님의 디테일한 질문에 답하면서 '나 판매 원칙'이 명확해졌다. 방송 출연, 여타 인터뷰 등은 다 하겠지만 강의 녹화는 안 하게씀미다! 시대적 요구, 독자들의 필요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에 공감하면서도 이 결벽을 내려놓지 못함에 스스로 답답해졌다.   


집단상담 같은 강의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결국 강의를 하고 있고, 강사로서 더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굳이 지켜야할 순결일까? 그러고 보면 결코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강의 자리들도 있다. 어떤 (부류의 유명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얼씬거리지 않겠다, 이런 은밀한 똥고집도 있다. 이름을 알릴 기회라도! 아니, 이름을 쉽게 알릴 기회일수록! 그렇다고 유명한 사람 되고 싶은 욕망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아니 그 욕망이 너무 커 주체할 수 없어서 이렇게 비틀거리는 것이다. 이게 나다. 나의 현주소이다. (그 욕망에 압도되어 유혹에 빠진 적도 있다. 서지 말아야 할 자리에 서서 떠들어댄 날, 돌아와 잠 못 이룬 부끄러운 밤이여!)


강사로 나를 소비하고 싶지는 않다. 한 번도 내 직업을 '강사'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강사, 스타 강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 청년을 만났다. '사모님처럼'이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었다. (야, 나는 그런 사람 아니거등!) 그 친구의 꿈을 기꺼이 응원하는 바이지만 내 장래희망 목록에 '강사'는 없었다. 그러나 강의하는 일이 즐겁다. 몹시 즐겁다. 즐거움에 비례하는 부담과 노오오력이 어려울 뿐이지. 즐거운 이유는 그 부담과 노오오력의 고통 때문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하고 체험한 끝에 나만의 답을 찾았고, 그것들을 버무려 누군가와 나누는 기쁨이기에 그렇다. 아,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 소중해서 상품화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 더욱 수동적인 강사가 되겠다.

팔리지 않기 위해서 더욱 몸을 낮추고, 하던 공부와 기도에나 열심을 내야겠다.

팔리지 않겠다. 소비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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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다 키워 시집 장가 보낸 중 늙은 부부처럼 등산을 간다.

며칠씩 아이들 데리고 자동차 여행 다니기도 이제 쉽지 않다.

전문 운전꾼이며 짐꾼인 아빠 일정에 맞춰 체험학습 내고(말하자면 학교 째고) 다닐 적이 좋았지.

청소년 백수인 채윤이는 모르겠지만, 중학생 현승이가 있는 한 어려운 일이다.

시험도 마치고 단기방학으로 일주일을 내리 쉬지만 '성수기에는 꼼짝하지 않기'가 가훈 수준이니까.


날씨 좋(지만 미세먼지 가득)은 5월, 결혼기념일 이틀 지난 날에 18년 차 중 늙은 부부는 등산을 한다.

산이 가까이 있으니 우리는 오른다.

집 가까이에 있는, 조금 긴 코스의 영장산 도전.

휴일에도 호젓한 등산길이라 더욱 좋았다.


송충이가 자꾸 머리 위로 떨어져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산길이기도 했다.

제비꽃(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아닌 것 같다) 딱 한 송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피어 있다.

어쩌면 햇살이 딱 이 작은 꽃을 비춘단 말인가.

제비꽃은 나다.


고3 때 담임 선생님이 영어 선생님에 총각 선생님에 낭만적인 선생님이었다.

영어를 좋아하고 낭만을 동경하고 기타 잘 치는 남자를 무조건 좋아했던 내가,

고3 팍팍한 삶에 생기가 필요했던 내가 선생님을 안 좋아할 방법이 없었다.

가끔 기타를 들고 나타나 노래를 불러주셨다.

'바람이 불어 눈을 뜨면 텅 빈 내 가슴에 사랑이 솟네

누구라도 곁에 있으면 사랑해줄 텐데 내 사랑이여'


나는 늘 선생님 곁에 있었는데 왜, 왜 사랑해주지 않으시냐고요?

선생님의 이상형은 코스모스 같은 여자였다.

우리 반에 정말로 하늘하늘한 코스모스 같은 친구가 있었다.

얼굴이 하얗고, 목이 길고, 키가 크고, 하늘하늘했다.

담임 선생님이 그 애를 제일 예뻐하시는 것이 기정사실이었다. 


친한 친구가 내게 그렇게 말해줬다.

너는 안 돼. 너는 코스모스가 될 수 없어.

앉은뱅이 꽃이야. 알지?

'보랏빛 고운 빛 우리 집 문패 꽃, 꽃 중에 작은 꽃 앉은뱅이랍니다.'

유치원 다닐 때 불렀던 노래. 왠지 그때부터 이 이 노래가 내 노래 같았었다. 우쒸.


작고 귀엽고 웃긴 애를 좋아하시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코스모스는 어렵다! 포기!

선생님 흉내 내고, 놀리고, 골탕 먹이기 작당하는 캐릭터로 잡았다.

꽃 중의 작은 꽃 앉은뱅이 꽃이니까.


오늘 만난 제비꽃은 아니지만 제비꽃 같은 보라 꽃은 작지만 고상해 보였다.

결코 코스모스에 밀리지 않을 자태이다.

조명발인가?

홀로 피어나 스포트라이트 받는 자태가 고고하며 심지어 의연해 보이기도.

제 모습대로 피어나 자기답게 서 있으니 말이다.


세 시간 힘겹게 산에 오른 의미가 충분하다.

저 작은 꽃 한 송이를 만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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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 에니어그램 세미나 2단계를 마쳤고, 출간될 책의 서문을 쓰고 표지가 확정되었으니 만세! 시험 끝난 현승이와 비슷한 무게의 '날아갈 듯'한 발걸음으로 산책을 나섰다. 율동공원 가는 길에 참새 방앗간이 하나 있어서 말이다. 요한성당의 서점에 쑥 들어갔다. 칼 라너(Karl Rahner)의 소책자가 쉽게 숨겨진 보물처럼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일상, 아니고 日常. 신학단상 아니고 神學斷想. 책 표지작업에 짧고 굵게 끙끙 골몰하고 난 터이다. 책표지 이렇게 쉬운 걸! 아무튼 보물은 보물이다. 오래 들여다 볼 틈도 없이 문 닫을 시간이라 나가라고 하니 사는 수 밖에. (여보, 충동구매 맞는데 소책자라서 싸. 진짜야 ) 표지만 봐도 얼마나 지루할지 가늠이 되는 저 소책자를 들고 걷는데 어울리지 않게 발걸음이 쾌활해졌다. 딱 마음에 드는 벤치를 찾아 자리를 잡고 천천히 끝까지 다 읽고 일어났다. 이렇게 누리고 떠나보내기에 아까운 좋은 날씨, 좋은 시간이다. 요한성당을 지나 율동공원까지의 산책길,  자꾸 다니다보면 합정동의 마포 강변과 절두산 성지에 버금가는 우정이 쌓일 기세이다.

       



분당에는 키 큰 나무들이 정말 많은데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보게 된다.  하늘과 나무를 동시에 올려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럴 때마다 혀끝으로 이 가사가 맴돈다. '나는 기도할 때 나무가 된다. 그늘 되어 쉬게 하는 나무가 된다.' 요한 성당에서 나와 큰길을 건너 버스정류장쯤에서 되돌아 바라보니 나무와 하늘과 십자가. 심쿵 아니, 심찢하는 묘한 조화이다. 전에는 키 큰 나무를 보면 시인과 촌장의 노래가 떠올랐었다. '저 언덕을 넘어 푸른 강가에 젊은 나무 한 그루 있어. 메마른 날이 오래여도 뿌리가 깊어 아무런 걱정 없는 나무. 해마다 봄이 되면 어여쁜 꽃피워 좋은 나라의 소식처럼 향기를 날려 그 그늘 아래 노는 아이들에게 그 눈물없는 나라 비밀을 말해주는 나무' 이 노래 속 나무는 내게 천상 '김종필 나무'이다. 문득 생각해보니 이제 그는 더는 젊은 나무가 아니다. '마음만은 젊다고!' 우겨도 소용없다. 결혼하기 한참 전 연애를 걸 때부터 이 노래는 김종필 노래였건만. 그때 꽂혔던 가사는 '저 언덕 넘어 젊은 나무'였건만. 지금은 어쩌자고 '그 눈물 없는 나라 비밀을 말(해야만)하는' 중 늙은 목사가 되어 있다. 그러니까, 어쩌자고! 




앉은 자리에서 소책자 한 권 뚝딱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멀리 보이는 요한성당 뾰족지붕이 보여 카메라를 들었다. 그 순간 쏜살같이 새 한 마리가 지나가며 촬영권 안에 들어왔다. 새는 존스토트 목사님께는 선생님일지 모르나-'새 우리들의 선생님'이란 책이 있다.- 내게는 천상의 메시지이다. 언젠가 영혼의 어두운 터널을 헤매고 있을 때 침묵피정에 참석했을 때였다. 며칠 소리 없는 울음을 많이 울었고 집에 오는 날 아침 산책길이었다. 새 한 마리가 아주 가까이서, 자리를 옮겨 앉으며 짹짹 무슨 말을 전하는 것 같았다. 못 알아들었지만 알아들었다.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 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이 정도로 알아들었고 내 마음은 그 새와 같이 기뻤다. 그때 이후로 새는 내게 천상의 멜로디이다. 정색하고 섰는 칼 라너의 '日常'처럼 많은 경우 일상 속 그분의 태도는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막다른 길로 몰아대셔서 미추어버리겠는 때도 있다. 다행히 가끔 새를 날리신다. 엘리야에게 새를 통해 먹이를 보내신 것처럼 내게도 가끔 뭘 보내신다. 

   



아이들로 인해 고마운 날들이다. 4월 검정고시를 마친 채윤이는 요즘 알바 중이다. 김밥집 하시는 집사님 가게에 낙하산으로 취직이 되었다. 어릴 적에 그~러어케 메뉴판 만들고, 허공에다 대고 주문받고, 서빙을 하고, 영수증을 찍어대곤 하더니. 채윤이를 보내놓고 세 식구가 자꾸 킬킬거리게 된다. 꿈에서 그리던 그 일을 하면서 떠나셨던 그분이 다시 오실지 모른다. 겉으론 어리바리 무덤덤한 알바생이지만 혼잣말로 어떤 상상놀이에 빠져 있을지 모른다. 낄낄. 퇴근하면서 집사님이 만들어주신 삼각김밥과 김밥을 가져오곤 하는데. 현승이랑 둘이 좋아라 하며 먹다 또 킬킬거린다. '채윤 엄마, 열심히 일하고 맛있는 김밥 가져와서 고마워. 혹시 오다가 호랑이가 김밥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해도 절대 뺏기지 말고 지켜와야 해' 어제는 알바 마치고 바로 교회로 가 금요기도회 반주까지 하고 온 장한 채윤이였다. 하루는 알바하고 와서 이런다. '엄마, 나는 진짜 감동했어. H 집사님은 집사님이 하시는 일을 정말 좋아하셔. 그리고 집사님이 **언니(집사님 딸) 다섯 살 때 처음 도시락 싸시던 그 마음으로 김밥 만드신대. 내가 보니까 정말 그런 것 같애' 재즈 피아니스트, 디즈니 영화 음악감독, 뮤지컬 배우의 꿈을 또 흘러가고 '김밥집 사장님'이 장래희망 될 기세이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시험을 봐 본 현승이. 물론 제대로 된 시험공부도 난생 처음이다. 영어 수학 열심히 공부해서 첫시험부터 100점 맞을까 걱정을 많이 하더니만. 불행히도 걱정대로 되지는 않았다. 열심히 공부한 후에 만족할 결과를 얻는 맛, 잠을 이겨가며 공부한 후에 날아갈 듯한 마음으로 자전가 타는 맛을 알게 되어 세상 사는 다른 맛을 알게 되었다. '나 공부해야 해서 못 놀아'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 중딩. 너무 늦지 않게 공부라는 걸 한 번 해주시니 대견하고 고마울 뿐이다. 산책을 마치고 오는 길에 라일락 꽃 잔치를 만났다. 고3 봄에 야자를 마치고 집에 오던 길, 캄캄한 길에서 어디선가 날리는 라일락 향기에 마음이 간질거렸던 기억이 있다. 라일락 꽃향기는 언제 어디서든 나를 고3, 성내동 골목길로 데려간다. 분당에 살지만 마음은 천당에도 갔다가, 지옥에도 내려갔다 오곤 한다. 고3이 신실이가 되기도 했다, 다섯 살 채윤이의 엄마가 되기도 한다. 이사 첫날의 각인이 무섭다. 실내 온도 23인데 나는 자꾸 춥다고 느낀다. 아침마다 한 번씩 손가락 들었다 내렸다 보일러를 켜고픈 유혹에 빠진다. 외출할 때마다 무겁다 싶게 옷을 입게 된다. 건물 현관만 나가도 꽃이 흐드러지고 초록 나무들이 따뜻한 바람에 흔들리는데 말이다.


분당의 일상, 또는 日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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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햇살 받으며 책을 앞에 두고 앉았는데 글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허공을 헤매고 다니던 시선이 커피장의 빨간색 원두 봉투에 꽂혀 머문다. 폰을 꺼내어 커피봉투를 찍었다. 그 옆엔 빨간색 카플라노가 있다. 그래, 너도 찰칵! 소파 옆 빨간 스탠드, 마주보는 책꽂이의 어스시 전집, 그릇장의 빨간 나비 커피잔. 빨강에 홀려 왔다갔다 찰칵찰칵했다. <자기 결정>, <아니마와 아니무스>, 알랭드보통의 <불안>, 오은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빨간 책들만 골라 뽑아 읽어본다. <신이 된 심리학>의 빨간색이 어쩐지 마음에 든다. 그리고 벽에 걸린 액자 <탕자의 귀향> 속 아버지의 겉옷으로 빨간 색 마침표를 찍는다.


어느 토요일 오후에 있었던 일이다. 찬양연습을 위해 교회에 있는데 누군가 나를 찾아왔단다. 아는 얼굴조차도 아직 낯선 이곳에서 나를 찾.아.올 사람이 있던가? 이 애매한 시간에, 이 낯선 곳으로? 멍한 표정으로 '찾아온 이'를 맞았다. 하도 멍한 상태라 빨리 알아보지도 못했다. 코스타 K간사님이시다! 아, 맞다. 이 근처에 사신다고 했었다. 그렇다 해도 이 얼마나 상상 밖의 시간과 공간인가. 교회 건물의 약국에 오셨다 혹시나 하고 들르셨단다. 나로서는 주일 아닌 날 낮에 처음으로 교회 있어본 것이었다. 어쩌면 이 시간에 찾아오셨나요! 찰나 같은 만남, 반가움에 감탄사만 연발하다 짧은 몇 마디 나누고 끝났다. [사모님, 올해는 못 오신다고요./네. 간사님은 올해도요?/네, 저는 물론...... 아, 그렇군요.] 이 짧은 만남이 추억의 빨간색을 소환해냈다.


사실과 전혀 다르게, 나는 K간사님 입고 오신 옷이 빨간색 조끼라고 저장했다. 그리고 집에 와 거실 탁자에 앉아 책을 읽지 못하고 집안의 빨강들을 찾아 헤맨 것이다. 작년 코스타 준비를 위해 K간사님께 연락이 왔을 때, 당연히 미국에서 온 메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계시다기에 잠시 다니러 나오셨구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한참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컨퍼런스 기간마다 휴가를 내어 섬기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간사님들이 그러하듯 일 년 내내 코스타에 연루되어 보이지 않는 일들을 하신다는 것. 코스타 다녀올 때마다 한 번 제대로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제대로 소회를 남기지 못한 이야기가 빨간 조끼 간사님들에 관한 것이다. 갈때마다 강렬한 질문으로 안고 돌아오는 지점이기도 하다. 기간 내내 느껴지는 저들의 헌신인데, '헌신' 앞에 붙일 형용사가 마땅치 않다. 열정적인? 수준 높은? 보이지 않는? 전문적인? 어떤 말도 20% 부족하다. 


강사가 자비로 항공료를 부담하고 날아왔다고 하면 학생들이 눈이 휘둥그래진다. 코스타가 비난을 받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사실 강사의 자비량보다 더 놀라운 것은, 비할 수도 없는 것은 간사의 자비량이다. 솔직히 강사들이야 '코스타 강사'라는 타이틀 하나 얻는 것만으로도 크게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교계에서 청년 상대로 강의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경험이기도 하다. 기관이나 교회에 속해 있지도 않는 나같은 강사는 무리데쓰네 하면서, 남편 상에게 아리가또 스미마생 스미마생 하면서 다녀오게 된다. 남모르는 엄청난 희생이라 여기며 참석하곤 했었다. 그러나 실은 얻는 것이 훨씬 많다. 내가 굳이 강사 이력에 쓰지 않아도 검색하면 다 나오는 세상인지라, 알아서 알아주기도 하며, 일주일 진하게 유학생들과 부대끼고 오면 일 년 울궈먹을 강의 컨텐츠를 득템하는 것이 사실. (영업비밀 다 밝힘) 그런데, 간사님들은 무엇을 얻을까? 도대체 무엇을 얻기에 저렇게 앞뒤 안 가리고 가진 것을 내어놓는 것일까?


K 간사님은 단지 코스타를 섬기기 위해서 여름마다 휴가를 내어 날아간다니! 엄청난 희생을 감수한다는 내 명분이 부끄러웠다. 코스타의 빨간 조끼는 나의 이런 자기기만을 일깨우는 레드카드이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재의 입을 빌어 안도현 시인이 묻는 것처럼 빨간 조끼는 내게 묻는다. '너는 한 번이라도 사심 없이 너를 내어준 적이 있었느냐' 희생이라는 포장지 뒤에 감춘 내 사심을 묻는다. 여기까지가 빨간 조끼에 대해 풀어 놓지 못한 그간의 이야기이다.


헌데 K 간사님이 잠시 교회에 다녀가신 오후, 빨간색과 더불어 '열정'이란 말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는다. 열정이란 말에 애증의 감정이 있다. 강의를 하거나 특히 지휘를 하고나서 '열정적인'이라는 평을 들을 때가 많았다. 왜 그렇게들 말하는지 알지만 나도 모르게 그 단어를 자기비난으로 가져오곤 했다. 사람들을 몰아부친다, 에너지가 과하다..... 이런 평으로 듣기 때문이었다. 내가 열정적인 것을 스스로 잘 안다.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지 않고 빠져들지 않는 방법을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열정이 클수록 그림자가 짙고 크다는 것을 알기에 갈수록 머뭇거리게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그러하다. K 간사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빨간 조끼 간사님들을 향해 부럽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 것도 돌아오는 것 없지만 그저 나를 내어줄 (사람이든 일이든) 무엇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열정의 강사, 열정의 지휘자가 타인의 열정을 부러워하다니! 이것은 무슨 아이러니인가. 


새로운 열정에 대한 목마름일 것이다. 앞뒤 안 가리던 젋은 날의 열정이 아니라 불을 향해 날개짓 하는 열정이 아니라 말이다.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을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가 가졌을 열정, 메마른 땅에서도 소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열정. 어제 엄마에게 다녀왔다. 총기는 여전하지만 많은 것이 가물가물해지는 엄마가 '신실이가 나이 몇이여. 니가 마흔 둘이여?' 해서 한참 웃었다. '엄마, 이제 신실이가 오십이여' 하니까 '얼라, 오십이여?' 하신다. 우리 엄마 입으로 듣는 내 나이가 새삼스럽다. 추억의 열정에 머물러 있지 말고 나이에 맞는 오늘의 열정을 매일 새롭게 배우고 일깨워야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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