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혼자 드리는 주일 예배였는데 나란히 함께 앉을 벗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본당사수를 했습니다. 좁고 옹색한 본당의 벽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나님 그분의 품을 떠올리고 그 근처에 가까이 가면 가슴 한 구석이 늘 띵하게 아픕니다.

예배의 자리에 가면 아픔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나란히 앉은 벗의 고통까지 내게로 와 모양을 바꾸어 냉소가 됩니다.

'하나님, 저 삐졌다구요.' 이렇게 예배가 시작됩니다.

마음이 나긋나긋해지지가 않습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부르는 찬송.

'다찬양 하여라 전능왕 창조의 주께 내 영아 주찬양 평강과 구원의 주님....'

찬송마저 저와 주님 사이를 우주만큼이나 갈라놓는군요.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 당신 제겐 너무 먼 거 아시죠?

평강과 구원의 하나님이라니요! 지금 제 옆의 이 아이를 보시면서 하시는 말씀이시죠?


어느 새 나는  2절을 부르고 있습니다.

'성도들아 주님의 뜻 안에서 네 소원 다 이루리라'

소원을 다 이루어주신다고요? 냉소의 클라이막스에서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언제요? 언제 성도들의 소원을 다 이루어주실 건데요?

눈물이 터진 이상 본심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고통 중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평화와 구원이 옵니까.


연일 들려오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착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아픔에

마음이 주저앉고 또 주저앉습니다.

기도했더니 어쩌면 그렇게 딱딱 인도하셨다, 감사하니 감사한 일만 생기더라.

빠르고 강한 기도응답을 간증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아요.

저 자신을 더욱 거지같이 느끼게 할 뿐이에요.

흥하고 잘 되고, 더욱 편해지는 이들의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을 느끼는 내 친구들은,

나는, 무엇입니까. 누구입니까.

확신에 차 흔들림 없이 당신을 전하는 이들 앞에서 더욱 작아지는 제 마음은요.

그리고 저는 일렁이는 슬픔과 분노없이 뉴스를 볼 수 없어요. 

제 안팎은 왜 이렇죠? 하나님.  


월요일 아침 [메시지]로 읽는 열왕기하의 마지막은 더욱 캄캄합니다.

유다는 멸망하고 맙니다.

솔로몬 때에 그 찬란했던 영광이 무너지는데 이보다 더 처참할 순 없군요.

그렇군요. 열왕기서의 마지막 장을 읽고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짓밟혀 무너진 성전의 폐허 속에서 희망의 단서 하나라도 찾아볼 요량이었는지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 유진 피터슨의 열왕기서 서문을 찬찬히 읽어봅니다.


열왕기서를 읽는 유익은 실로 엄청나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통치는 힘 있고 경건한 사람들을 통해 효과적으로 구현된다고 생각했던 억측이 무너지면서, 그분의 주권을 한층 깊이 이해하고 경험하게 된다. 온갖 유토피아적 계획이나 망상들의 현혹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에 따라, 아무리 문제 많고 죄 많은 지도자들(왕들)이 우리 사회와 교회를 농단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가 무효화될 수는 없으며, 그 어떤 현실과 상황 속에서도 (은밀히) 행사되는 하나님의 주권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음껏 즐거워할 수 있다'니! 지금 제게 가당치도 않지만, 단서를 찾았습니다. 단서를 찾았기에 키보드 두드릴 힘이 나서 이 아침, 타닥타닥 몇 자 남기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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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에 한 번씩 미용실 가는 일이 고역이다. 책 한 권 떼러 간다는 마음으로 책 두 권을 들고 다녀왔다. 읽은 곳 또 읽고, 밑줄 긋고 또 읽고 해야 하는 신경 많이 쓰이는 책만 아니면 된다.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나간 두 권이 미셸 트루니에의 <외면일기>와 예수회 전경훈 수사의 '영화에 비추인 삶'이란 부제의 <어리우는 당신 얼굴>이다. 우연은 없다. 손에 닿는대로 가방에 집어 넣었으나 뭔가 참 좋은 조합이었다. 외면일기 - 영화에 비추어 마음 깊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내면일기 - 내가 모르는 나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꿈을 적는 꿈일기. 머리를 말고 스팀통을 뒤집어쓰느라 읽을 책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뇌가 뜨듯한 스팀을 흡수하면서 이완이 되는지 뇌주름 사이에 감춰뒀던 일기에 관한 이야기들을 마구 쏟아냈다. 벌떡 일어나 머리 하러 간 것도, 손에 닿는 대로 가방에 넣은 책 두 권도, 열 파마를 선택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나비!  난 점점 '우연은 없다, 결코 없다교(敎)' 광신도가 되어가는 중이다.


외면일기


내 동생은 시시때때로 내게 상담을 요청해 좋은 얘기 다 들어놓고 마지막은 꼭 '내~면을 바라봐, 내~면을 바라봐' 하며 허경영의 '내 눈을 바라봐'에 빗대서 나를 놀리곤 한다. 육아와 부부 문제, 일과 관련된 관계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아니라 '이 문제는 나에게 어떤 변화를 요구하는가'로 얘기를 몰아가는 내 일관된 방식을 풍자하는 것이다. 내 얘기가 조금만 지루해질라치면 '내~면을 바라봐, 내~면을 바라봐' 노래를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오직 '내적인 변화, 자기 성찰'에 꽂혀 수년을 배우러 다니고 읽고 쓰고 있지 않은가. 동생의 놀림이 은근 나의 치우침에 대해 경종을 울려주는 것이란 생각에 '중는다!' 하면서도 같이 낄낄거리고 있다.

이런 내게 미셸 투르니에가 내면의 일기(journal intime)와 정반대되는 외면일기(journal extime)에 가치를 부여하는 시각이 신선하다. ["너 자신을 알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저 유명한 말이 내게는 항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명령으로만 느껴졌다. 나는 나의 창문을 열고 문밖으로 나설 때 비로소 영감을 얻는다. 현실은 나의 상상력의 밑천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어서 끊임없이 내게 경외와 찬미를 자아낸다] 라고 말한다. 아무렴!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내 속으로만 파고들어 얻는 것은 끝없는 자기연민밖에 없다. 작고하신 이윤기 선생님이 번역한 책, 지은 책을 두루 읽다 소개받은 미셸 투르니에, (폴 투르니)에 아니고 미셸 투르니에 스타일에 당분간 빠져들 예정이다.


내면일기


'리뷰 쓰기 전에 새로운 영화 보지 않기' 안 지켜도 좋은데, 그래서 더 부담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보고 싶은 영화가 동시에 상영하고 있어도 연달아 보지 않고 짧더라도 리뷰를 쓸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봐야지 하는 마음이다. 블로그에 쓰다만 비공개 리뷰가 쌓여가고 있다. 마치지 못하고 영화를 보자니 부담도 함께 쌓여가는 중. 리뷰를 쓰는 데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영화에 대한 논평이 아니라 영화를 빌어 내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를 공부해본 적도 없는 내가 영화를 평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그저 꿈분석을 하듯 영화를 보며 거기 비친 나를 보고 싶을 뿐이다. 영화가 받은 상이며, 감독의 전작 등에 대한 얘기가  반을 차지하는 리뷰는 적어도 내겐 재미 없음이다. <어리우는 당신 얼굴>은 그런 의미로 딱 내 스탈일이다. 쉽고 정직하고, 글쓴이가 잘 드러나는 영화 리뷰가 술술 읽혀졌다. 술술 읽다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고, 술술 읽다 숨을 고르고. 밤에 혼자 옛날 영화를 다운받아 보게되곤 한다. 이것은 영화를 구실삼은 내면일기이다. 서문 중 일부이다.

[글을 쓰는 동안 제게는 생각지 못했던 크고 깊은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오랫동안 헤어져 살아온 길러 주신 엄마를 미국으로 찾아가 만났습니다. 헤아려 보니 열 일곱 해 반 만의 일이었습니다. 살아온 삶의 반이 넘는 그 시간을 훌쩍 건너려니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낳아 주신 엄마의 투병생활을 함께하다 하늘 나라로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어릴 적부터 잊고 자란 엄마를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난 날로부터 열세 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걸 알았습니다. 문득, 제 삶의 밀물과 썰물이 교차되는 그 어느 시간의 즈음에 서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여기 스무 편의 글은 마음 저 밑바닥의 침전물마저 헤집어지는 바로 그 시간들 속에서 그렇게 앉지도 못하고 선 채로 쓴 글입니다. 크게 휘어드는 삶의 어느 구비에서 영화를 구실삼아 제 삶을 반추하며 새로운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의 기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우연은 없다. 결코 없다.


꿈일기


꿈일기장을 따로 마련하여 쓰기 시작한 이후 세 권의 노트가 채워졌다. 얇은 노트들이다. 새로 꿈일기장을 장만했는데 하드커버에 두꺼운 노트라 다 채우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이 시점에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가 끝난 것, 그리고 그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꿈. 새로운 노트에 처음으로 적힌 꿈도 다 뜻이 있을 것이다. 우연은 없다니끼니! 내가 내 자리에 서서 세상을 관찰하고 발견하여 적는 것이 외면일기라면, 또 다른 내가 내 밖으로 나가 나를 관찰하고 발견하여 적는 것이 내면일기일 것. 꿈일기는 내 안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펼쳐지는 드라마를 받아 적는 것이다. 드라마가 먼저이고 드라마를 보고 대본을 받아적는 것인데 내용인즉슨,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스펙타클한지! 그런데 그게 감독 연출 배역 배경까지 내가 맡아 하는 자작극이라니. 꿈일기를 채워가고 꿈을 나누면서 내가 모르는(실은 알긴 아는데 모르고 싶은) 나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 랄라 쏠쏠미 쏠쏠 미미레이다. 이 자주색 노트가 다 채워지는 어느 날, 나는 어떤 외면일기, 내면일기, 꿈일기를 쓰고 있을까? 쌓이고 쌓일 우연, 아니 안 우연들을 흐릿한 눈으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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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놀라실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

실은 제가 블로그에서 보시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산답니다.

남편과는 보여드리는 것보다 더 깊은 교감을 통해 하나 됨을 누리고 있고요.

아이들도 마찬가지랍니다.


더욱 놀라실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

블로그에서 보시는 것처럼 저희는 천국 같은 가정을 이루고 있지 않답니다.

농담도 섞였지만, 가끔 남편에게 '그러면 이혼해' 이러기도 해요.

(많이 놀라셨죠?)

또 채윤이 현승이는 생각보다 개성있는 애들이 아니구요

성격들도 약간 씩 개차반이랍니다. 하하.


대놓고 자랑하기엔 모양이 빠지는 것 같아서 참았지만

제가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다양한 곳에서 각광을 받으며 강의하고 있구요.

했다 하면 꽤 잘하는 강의였답니다.


그런데 청중에 휘둘리고 인기에 영합하느라 얼마나 지질한지 몰라요.

더 잘나가고 싶은데 마음같이 되지 않아 불안할 때는

내가 쫌만 뻐기고 나서면 더 유명한 강사가 될 수 있는데 나 자신을 위해서 자제한다,

면서 분열적 교만과 허위에 허덕이기도 한답니다.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많이 만난답니다.

한 번의 만남으로 저 자신도 놀라는 엄청난 지혜와 사랑을 쏟아내기도 한답니다.

올해에 무수한 소중한 분들을 만났지요.


그런데 막상 저를 만나시면 글로 보시는 것보다 차겁기도 하구요.

어떤 상담 메일은 답을 하지도 못하고 지나치는 적도,

냉정하리만큼 단호하고 짧게 답을 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디테일하게 사람을 챙기지도 못한답니다.

그런 저의 죄를 알기에 정서적 공감은 물론

기념일이나 이벤트에 젬병인 남편을 용납하며 살아요.


상상하시는 것처럼 주변에 좋은 벗들이 많답니다.

언제든 가면을 벗고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언니 동생 많아요.

이게 웬 복인가, 하지요.


때론 생각보다 외롭답니다.

이렇게도 마음을 나눌 이 없는가 싶어서 혼자 쓸쓸하게 강변을 걷는 일이 많아요.

진심을 다해도 알아주지 않는구나, 자기연민에 빠지면 한이 없답니다.


강의, 글, 상담, 찐한 대화.....

그 어떤 것도 커피 한 잔의 무게보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겠다 싶습니다.

이런 저런 모임에 갈 때 핸드드립 도구를 바리바리 싸가지고 다닌답니다.

올해는 캐플라노라는 야외용 일체형 핸드드립 세트를 특템하여

(고마워요!! 히히) 재미 많이 봤구요.

정성 들여 내리지만 후루룩 마시고나면 끝인 커피 한 잔.

그런 커피 한 잔의 만남으로 족한 2015년의 우리들입니다.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여러분,

올 한 해도 감사했습니다.

때로 행복하지만 행복한만큼 슬프고,

때로 자신감에 넘치지만 때로 위축되고,

때때로 많이 외로운 제게 이곳은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랍니다.

보이지 않는 따스한 눈길이 있다고 믿기 때문일 거예요.

(삐딱한 눈을 하고 들어와 보시는 분들은 계산에 넣지도 않아요. 메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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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성탄절 하루를 보내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 헨델의 할렐루야로부터 시작하여 성탄노래 야이기 끝입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탄 찬양을 올해 한 번도 못 불렀네. 뭐~어게,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찬양이 뭐게? 아무도 못 맞히네. 이거야! 제가 사랑하는 성탄 찬양으로 들려 드리는 채윤이 엄마의 성탄이야기, 들어보시렵니까?

 

 

1. 그 어린 주예수 눌 자리 없어 그 귀하신 몸이 구유에 있네

저 하늘 별들이 반짝이는데 그 어린 주예수 꼴 위에 자네

 

 

내적여정에 큰 가르침을 주신 신부님께서 성탄 인사를 보내오셨습니다. 

저 심플한 마굿간 그림과 함께요.

 

" 마굿간같이....

가난하고 누추한 우리 존재 엔에 오늘도 눈부시게 거룩한 한 아기가 탄생하셨습니다.

우리의 본래의 얼굴입니다.

그 사랑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성탄이 주는 위로와 평화를 함께 나눕니다. "

 

더 보탤 것 없는 말씀입니다. 이번 성탄, 그분을 맞아들이기엔 누추하고 어두운 마음을 부여 안고 헤매다 헤매다 맞이한 것 같습니다. 눈부시게 빛나는 거룩한 아기, 우리 본래의 얼굴도 그러하답니다. 짧은 메시지가 내 본래의 얼굴을 일깨우는 것만 같습니다. 누추한 마굿간에 무력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2. 저 육축 소리에 아기 잠깨나 그 순하신 예수 우시지 않네.

그 귀한 예수를 나 사랑하니 새날이 밝도록 함께 하소서.

 

 

채윤이 현승이 두 청소년과 함께 성탄 예배를 드렸습니다. 참을성도 많고 차분한 현승이가 몸을 베베 꼬고 힘들어합니다. 콱 눈빛 레이저로 기선제압 하고 싶었으나 다음 코스를 위해서 참습니다. 마지막에 전교인이 부르는 헨델의 '할렐루야'를 부르다가 셋이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노래 부르는 내내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를 유리 방황하는 교우님이 족히 80%. 피날레에서 두 박자 쉬고 마지막 '할렐루야'를 노래해야 하는데 그 짧은 두 박자 사이에 여기저기 '하, 하, 하아....' 발 디뎌보시는 분들의 목소리에 현승이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예배 마친 후에는 뭣이든 먹어! 어? 그래. 그거 먹어. 두 녀석 비위를 살살 맞추었습니다. 서울광정에서 열리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성탄예배'에 데리고 가기 위해서입니다. 선뜻 가겠다고는 했으나 두분 마음 상하지 않게 모시고 다녀오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닙니다. 한 시간은 일찍 시청역에 도착하여 또 일단 멕입니다. 동막골 이장님 말씀이 딱이지요. 사람들 마음을 얻는 건 그저 '뭘 좀 마이 멕여야...' 던킨도넛도 먹고, 광장에 도착하니 어묵과 커피를 나눠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어묵도 먹고. 마이 먹고 앉아 있으니 컴플레인이 별로 안 나옵니다.

 

자리 잡고 앉아 발 동동 구르며 예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있느은데~ 어, 저기 반가운 얼굴! 아주 많이 애정하는 청년 둘이 나타난 것입니다. 고난으로 따지면 우리 시대 청년들의 고난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두 사람 다 마음적으로 쉽지 않은 날들 보냈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대견하고 고마웠습니다. '너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 하는 태도로 예수님의 긍휼에 가닿을 수 없습니다. '나도 아프지만 나보다 더 아픈 당신 때문에 잠시 내 아픔을 잊었네요' 이것이 '그 순하신 예수'의 마음입니다. 반갑고 예뻐서 사진 한 장 찍어 제 마음에 남겼습니다. 예배를 기다리며 두 사람을 이 귀한 사람들을 축복하고 축뽁하고 축축뽂뽁하는 기도를 들렸습니다.

 

 

3. 주 예수 내 곁에 가까이 계셔 그 한 없는 사랑 늘 베푸시고

온 세상 아기들 다 품어주사 주 품안에 안겨 살게 하소서

 

 

성탄 이브에 어느 단톡에서 성탄인사를 주고받다 본 메시지 입니다.

 

"루하가 유치원에서 성극을 하였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길걷는 목자역할이었는데 열심히 개다리춤을 연습하여 갔습니다."

 

개다리춤을 추는 목자라니!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여 개다리춤을 추며 걷다니! 제 마음에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죠! 어린아이 같이 그분을 맞아야죠. 그 세계 최고의 기쁨은 개다리춤입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왜 그리 어린 아이들을 가까이 두시고 사랑하셨는지 알 것 같지 않나요. 저 찬양 마지막절 가사처럼 '온 세상 아기들 다 품어주사....' 노래하며 기도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미간에 힘 딱! 주고, 심각한 표정으로 대림절기를 보낸 제 모습이 들켜버린 것 같았습니다. 춤추자! 그래 춤춰야지! 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는데 춤춰야지! ^^ 그분, 늘 언제나 늘 내 곁에 가까이 계시는 분.

 

 

 

 

 

엄마, 나 예배 드릴 때 왔다갔다 해도 돼? 호기심으로 생기 가득한 얼굴로 현승이가 물었습니다. 광장예배의 메리트 아니겠니! 마이 왔다갔다 해. 잠시 앉았다, 살짝 일어나 사라졌다, 다시 돌아와 앉아 발밑으로 꼼지락꼼지락. 한 번 나갔다 돌아올 때마다 대못을 서너 개씩 주워왔습니다. 히히, 엄마. 여기 보이지 않는 재밌는 게 많아. 연실 못을 주우러 다니더니 어느 순간 바닥에 저렇게 못으로 만다라 같은 것을 그려놓았네요. 못으로 그린 만다라! 아, 치유적이다. 2016 년 성탄절, 이렇게 마무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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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림절 초 넷이 모두 밝혀졌습니다.

기다림의 시절입니다.

그분을 향한 기다림, 그리움이 더욱 사무치는 시절입니다.


대림절기를 시작하며 주일 저녁마다 아이들과 둘러앉아 촛불을 밝혔습니다.

한 주에 하나 씩 초가 늘어납니다.

첫번째 초에 불을 밝히던 날 아빠가 빛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자며, 예수님은 빛으로 오신다면서요.

엄마도 함께 거들었습니다. 오래된 어린이 찬송가를 들려주면서요.

어둠을 몰아내는, 찬 마음 녹여내는, 무서움을 쫓아내는

환하고 따스한 희망의 빛이라고요.


아이들이 없는데 솔직한 말씀 드립죠.

촛불을 밝혀 주위가 환해지는 것은 수도 없이 봤지만

거짓이 참을 이기는 것을 본지가 언제인지요.

그런 적이 있던가요?

빛이 어둠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힘이 모든 걸 이기는 것 아닌가요?

진실하기로 마음 먹은 사람들은 짓밟히고 따돌림 당할 뿐

거짓을 작당한 자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힘과 안전이 보장되는 곳 아닌가요.

그렇던데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을 침몰하지 않는다.


자주 이 노래를 불러보지만 이 노래가 절절한 이유는

안팎의 현실이 자꾸만 이 노래를 뒤집어 놓기 때문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승리의 노래는 늘 거짓과 어둠이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상처받아 우는 것은 늘 약한 자의 몫입니다.

노래를 거꾸로 부르게 됩니다.


빛은 어둠을 이길 수 없지.

참은 거짓을 이길 수는 없어.

진실을 날로 침몰해갈 뿐이다.


유난스런 목마름과 그리움으로 대림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대로 해를 보내고 해를 맞기가 두려워 며칠 기도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그분을 만나러 간 고독한 자리에서도 노래 가사는 제 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제 안의 어둠이 빛을 압도할 뿐.

터질 것 같은 마음으로 침묵의 울부짖음을 울었습니다.

빛이신 당신이 이렇게 캄캄하게 다가오실 수 있습니까.

아주 사소한 것부터 큰 일까지.

나의 시시콜콜한 일상에서부터 국가와 민족의 대사까지.

빛은 어디에! 빛은 어디에! 

어린 아이처럼 주저앉아 생떼만 쓰다 돌아왔습니다.


거실 한 구석 대림절 초는 속절 없이 타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촛불을 마냥 바라보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지, 일어나 밥을 하고 커피를 내립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마지막 가사가 사무친 슬픔, 사무친 희망으로 살아옵니다.

대림은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구원의 빛, 당신을 기다리는 것만은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계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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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나오라고,

가을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나오라고

강이 목놓아 부른다. 못 이기는 척 나갔다.

망원초록길을 타고 강가에 서면 강이 묻는다.

"좌 할 것이냐? 우 할 것이냐?"

나는 좌 할란다.

오른쪽 성산대교 방향으로 잘 조성된 너른 잔디밭이 있고,

참 잘 해놨으니....

나는 왼쪽, 서강대교 쪽으로 가겠다.

 

 

 

 

좌 하길 잘했지.

잘했고 말고.

 

 

 

 

양화대교 아래를 통과하고

2호선 지하철 아래를 지나니 다시 강이 묻는다.

"쭉 갈래? 계단 타고 오를래?"

계단을 오르겠다.

계단을 올라 양화진 공원 앞에 서면 다시 갈림길이다.

왼쪽은 양화진 선교사 묘원, 오른쪽은 절두산 성지.

여기선 묻지 않아도 늘 오른쪽이다.

양화진 선교사 묘원은 번듯하고 세련되어 흠 잡을 곳이 잘 꾸며져 있으니

절두산 성지로 발길이 간다.

절두산 성지엔 뜬금없이 장독대가 있고,

나무와 화초에 촌스러운 이름표가 붙어 있고,

촌스러워 성스러운,

늘 발길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다.

 

 

 

 

양화진 선교사 묘원 vs 절두산 순교성지

절두산 성지 쪽으로 기우는 발걸음은

매사 세련되지 못한 내게 편하고 자연스런 선택이란 생각. 

그런데 그것만이 아닐지 모르겠다.

선교 vs 순교 

내가 믿는 바를 세상에 널리 알리겠노라는 다짐은 내게 가당치 않다.

내가 믿는 바를 목숨을 다해 믿는 그 믿음으로 착하게 잘 살고 싶다.

정말 그러고 싶다.

 

 

 

 

지난 여름 자주 가서 앉아 있던 큰 나무 아래 벤치이다.

기도초를 두는 곳 바로 옆인데

한 여름 대낮에도 활활 타고 있는 기도초가 늘 생경스러웠다.

굳이 기도초를 올리지 않아도 저 벤치에 앉으면 기도의 마음이 되었다.

저기 앉아 소설책을 읽어도 기도의 마음이 되었다.

가끔 누군가와 앉아 커피 마시며 조용조용 기도하듯 수다를 떨기도 했었다.

 

 

 

 

입시철이라서인지 초를 밝히고 기도하는 분들이 많았다.

웅성웅성 기도하는 분들 앞을 지나는데

아이 엄마들의 절절하고, 안타깝고, 세속적인 기도제목들이 느껴진다.

가슴이 뭉클하다.

아무 제목이든 그들의 기도에 내 영혼의 힘도 한 스푼 얹습니다. 주님.

외딴 구석에서

순례길을 걷는 복장으로 고개 숙인 분의 뒷모습 또한 뭉클하다.

 

 

주님, 당신의 뜻이 뭔지 모르지만

당신의 뜻이 모든 고통받는 자들을 향해 있다면

가난하고 촌스럽고 그러면서도 아는 것이라곤 세속적 욕망 밖에 없는,

그것이 다시 죄스러움으로 다가와 고개를 들 수 없는

무지한 우리의 기도를 돌아보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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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ansplain

 

약간 활자중독에 유행에 뒤쳐지기 싫어하는 성향도 있어서 SNS를 완전히 끊지 못한다. 걸어다니는 언론사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신문에서 볼 수 없는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좋은 필자의 글을 바로 바로 읽을 수 있는, 바로 튀겨낸 아삭한 튀김 같은 맛 때문이다. 책과는 다른 정보와 배움과 통찰을 주는 글을 싱싱할 때 읽는 즐거움이 있다. 어느 날 깨달았는데 내가 결코 클릭하지 않는 글들이 있더라. 대체로 같은 필자의 글이고, 내가 좋아하는 지인들이 열광을 함에도도(나 은근 덩달이) 도통 클릭조차 되지 않는 글이 있었다. 왜 그럴까? 이유는 별 거 없음. 지루해. 안 읽혀! 맘놓고 신경질적으로 말한다면 지겨워서 토나올 것 같애. 이 정도. 어려워도 잘 읽히는 글이 있고, 잘 안 읽혀도 읽어 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발동하는 글이 있지 않은가. 아무튼 내 부족한 지성과  재밌는 것만 찾아 헤매는 경박함을 탓하지 않고 단칼에 안 읽어버리는 글이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책 제목과 첫 글에서 그간의 '거부감 유발하는 글'에 대해 정리할 수 있었다. Mansplain. 가르치려드는 글과 말을 오래 참기란 힘든데, 게다가 진지한 남자가 그러는 건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이었구나. 암만. 

 

 

#2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를 먼저 배워야겠지만 <정희진처럼 쓰기>가 참으로 부럽다. 맨스플레인 반대쪽 어딘가에 정희진의 글이 있을 것이다. '글 잘쓰고 싶다'는 생각은 하루에 한 번쯤은 하게 되는 것 같다. 잘 쓴 글을 보면 감탄과 함께 패키지로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내 글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 말할 수는 없지만 '허접한 글'이라는 부끄러움을 지울 수도 없다. 그러면서 나로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스타일의 글을 선망하곤 했는데 그 실체가 프로이드식 남근선망과 같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Mansplain과 더불어 정희진 선생의 글을 곱씹으면서 얻은 통찰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제껏 이런 글을 선망해 왔었다. 약간 싸우려드는 태도는 기본(음메, 이것이 기선제압!). 그리고 그 호전성은 2막에서 지적 편력을 두루 보여주는 패션쇼로 이어져야 한다.(지...지금 인용된 이 책을 다...다 읽었다는 거야?) 명쾌한 결론으로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마지막 칼부림은 머스트 해브 아이템.(짝짝짝, 브라보. 이건 뭐 탄탄하구만. 반론의 여지가 없어!) 이런 글을 멋진 글이라고 생각했고 열심히 공부해서 언젠가는 나도! 하는 생각을 했었다. 싸우려는 태도와 지적인 패션쇼가 없어서 잔잔하고 밋밋하여 멋진 글이 정희진 선생님의 글이다. 짧은 칼럼 하나를 읽고도 감동을 받게 되는데 그 어떤 전의를 불태우게 되는 그런 감동이 아니다. 지성의 땅을 개척하고 싶은 의지가 아니라 그저 대지에 안기고 싶은, 지혜의 어머니 품에 귀의하고픈 욕구랄까. 내겐 그렇다. 여자 정희진 선생의 글이.

 

 

#3 카렌 호나이

 

에니어그램 공부를 하며 오래도록 이름만 들었던 정신분석학자이다. 원저를 읽어보겠단 생각을 하지 못하고 몇 년 동안 통성명만 한 채로 지냈다. 작년에 원저 한 권을 읽고 빠져들어 버렸다. 그래봐야 손에 넣을 수 있는 책이 한 권이었는데 웬일인지 올해 몇 권의 책이 한꺼번에 번역되어 나왔다. (흠, 나란 여자 유행을 선도하는 여자) 프로이트의 남성중심적 이론을 여성적 입잡에서 반박하는 대표적인 여성 정신분석가이다. <나는 내가 분석한다> <내가 나를 치유한다:신경즉 극복과 인간다운 성장> 책 제목을 보시라. 나는 궁극적으로 사람에겐 자신과 타인을 치유할 치유인자가 있다고 믿는다. 에니어그램 강의에 매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에 대해 던지는 (아프지만) 정직한 질문은 어떤 방식으로든 치유의 길로 안내한다고 믿는다. 전문상담가의 분석과 상담, 목사님의 치유기도보다 더 능력있는 도움은 성장하겠다는 자신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아, 물론 치유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카렌호나이가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우리의 성격유형은 성격장애와 건강한 성격발달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거란다. 여전히 융(Carl Jung)빠이긴 하지만 호나이만의 접근은 다시 한 번 컴다운 시킨다. 빨리 읽어치우고 싶은 조바심 워워~ 마인드와 마인드로 접속하고픈 심정이 된다. 다시 한 번 지성의 대지에 안겨 머무르고 싶은 마음. 10월 10일자 '정희진의 어떤 메모'는 무려 호나이의 <내가 나를 치유한다>와 영화 <사도>의 콜라보였다. 깜짝 놀랐다.

 

 

#4 정띤띨

 

여자라서 햄볶아요.

 

 

=====

 

덧)

이 글을 쓰고 제이언니 님이 블로그에 놀러 갔는데요.

여성 글쟁이2 이런 글이 있는 겁니다.

그 글을 읽다다 1년 전에 쓰셨다는 글까지 읽었는데,

(1년 전에 그 글을 읽은 기억이 나거든요>)

제가 무의식적인 표절을 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겁니다.

제이님 블로그에서 짧게 정리되었지만 늘 잘 제 생각과 마음을 살피도록 해야겠습니다.

내가 안다고 하는 것, 심지어 나의 통찰이라고 하는 것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배운 것이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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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오늘 어느 교회 가?

도토리교회.

도토리교회? 으하하하하. 기여워. 아오, 기여워.

 

채윤이의 말이 예언과도 같았다.

도토리교회는 도토리 같이 기여운 교회였다.

하나님(부처님 아니고) 손바닥에 든 도토리들처럼 모여 찬양하고 예배하니 기여웠다.

 

작고 기여운 사이즈와 모양 때문에 결코 위협적일 수 없는 도토리 같은 교회.

그래서 '안전한 곳'이란 수식어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곳에 앉아 예배 드렸다.

내 몸 사이즈에 꼭 맞춰 안아주는 엄마 품 같았다.

높은 천정, 바닥을 진동시키는 바이브레이션의 성가대의 찬양, 오르간 소리,

숨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는 고요함에 익숙해져 잊었던 감각이다.

도토리교회에 계신 하나님은 내 허전한 등을 따스하게 감쌌다.

부엉이 안경을 쓰고 집게손가락 흔들며 요리조리 따져대는 교만한 이성을 잠재우셨다.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니 그냥 거하라고, 쉬라고 하셨다.

 

큰 용사이며 동시에 나병 환자였던 나아만 장군을 만났다.

글 쓰고 강의 좀 한다며, 마음공부 좀 해서 사람 마음 안다며 기세등등한,

나는 큰 용사라 자부하며 이스라엘 왕 앞에 뻐기고 나가는 나아만 장군이다.

그러나 기실 그곳에 간 목적은 썩어들어가는 내 몸을 고치기 위함인데.

사실 나는 교만하여 내 뜻대로 휘두르고 싶어 설치다 좌절한,

마음이 썩어들어가는 허무병 환자이다.

 

정결하게 하는 샘이 나의 앞에 있도다. 성령께서 권고하사 죄 씻으라 하시네.

나의 가는 길이 좁고 내 뜻대로 안 돼도 모든 욕심 다 버리고 주만 따라가겠네.

한량없는 주의 은혜 나를 영접하셨네. 성령님께 또한 영광 모두 돌려드리세.  

 

말씀과 찬양, 그리고 사람들의 따스한 인사가 나를 '정결하게 하는 샘'으로 안내하였다.

잊은지 백년이 된 것 같은 성령님의 따스한 위로, 생명의 샘물을 기억나게 하였다.

허무병 환자도 새로워질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다시 새로워질 수 있을 것만 같다.

 

남편 피정주간마다 무슨 쇼핑을 하듯 잘한다는 교회를 골라 가보곤 한다.

눈높은 소비자의 콧대를 스르르 사라지게 만드는 예배가 있는 교회,

아니 감히 소비자의 잣대를 꺼내 들 마음이 들지 않는 교회가 있다.

이런 작고 기여워 안전한 교회가 있다니! 시름이 깊어진 마음이 크게 위로를 받는다.

이 땅의 교회에 대한 사랑인지 책임인지 개인적 소명인지 복잡한 남편의 마음에 희망의 불씨가 지펴졌으면.....

 

 

 

  

 

작은 교회를 보며 '부흥이 안 될까' 걱정해본 적은 많지만

'커지지 말았으면' 싶은 마음이 든 건 처음이다.

좋은 물, 좋은 목자가 알려지지 않을 방법이 없는 시대이긴 하지만

도토리교회가 빨리, 널리 알려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로 어디 있는 교회인지는 안 알랴줌.

꼭 알고 싶은 분은 검색을 하든 제게 묻든 알아서 하시길.

 


** '도토리교회' 검색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이 계셔서 알려드립니다.

제가 방문했을 당시 섬기시던 목사님께서는 2015년 12월 즈음에 사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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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탁하고.... 부탁하고

 

우리 엄마가 처음 고관절 골절을 수술받으셨을 때, 엄마는 물론 엄마를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두 당황했었다. 폭풍 같은 나날은 엄마를 김천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것으로 일단 끝이 났다. 문제를 해결하느라 한 켠에 밀어뒀던 슬픔이 밀려와 다시 조용한 폭풍의 나날이었다. 그때 현승이가 만들어낸 수수께끼이고 정답은 '인간'이다. '엄마, 내가 수수께끼 낼게. 맞혀봐. 부탁하고, 하고, 해주고, 부탁하는 게 뭐게?' 아기 적에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엄마에게 부.탁.해야 하고, 자라서 청소년이 되면 혼자 지하철도 탈 수 있고(당시 누나처럼)으니 하.고, 그러다 엄마가 되면 아이도 돌봐야 하고 늙은 할머니도 돌봐야 하니까 해.주.고, 할머니가 되면 아기처럼 혼자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져 부.탁.해야 한다.

新 스핑크스의 퀴즈라며 찬사를 보냈었는데 과연 인간의 삶을 꿰뚫는 진리의 수수께끼이다. 매년 동생네 휴가 주간이 되면 엄마가 집에 와 계시는 '몰아서 딸 노릇 주간'이 온다. 올해에도 가장 더운 7월 말을 끼고 효도주간이 왔다. 한 해 한 해 조금씩 노쇠해가는 엄마는 이번에 보니 영락없는 신생아이다. 삼시세끼 식사하시는 것이 일상의 전부이고, 그 사이에는 틈틈이 신생아처럼 주무신다. 아침 드리고, 설거지하고, 점심 꺼리 대충 준비해 놓고 앉아 있으면 잠시 휴식. 신생아 같은 엄마가 쌕쌕 주무신다. 책 몇 줄 읽고 있으면 탁, 차박, 탁, 차박 잠에서 깬 신생아가 걸어 나오는 소리이다. 스핑크스 퀴즈식으로 말하면 세 발로 걷는 존재이다.

아기가 깨어났다. 잠깐의 꿀 같은 휴식이 끝났다. 옆에 앉아 이 얘기 저 얘기, 옛날 얘기 지금 얘기 하시면 몇 분 안 되어 책을 덮어야 한다. 영락없이 아기 키우는 느낌이다.

 

* 느낌으로 살고

 

음악치료 강의 할 때 노인 음악치료 부분에서 '노인들은 느낌으로 산다'고 설명하곤 했다. 사고보다는 느낌에 의존하기 때문에 비합리적일 수밖에 없다고. 우리 엄마는 노인이기 전에도 느낌으로 사는 사람이라 힘들었는데 노인이 되니 정말 느낌적인 느낌으로 사시는구나!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느낌은? 슬픈데 덤덤하고 거참 이상했다.

골다공증은 엄마의 지병인데 홍화씨 끓인 물이 특효약인 줄 알고 사신다. 물은 늘 홍화씨 물만 드신다. 볶은 홍화씨는 흐릿하다 하셔서 집에서 쎄게 볶아서 찐하게 끓여야 한다. 올케가 고생이 많다. 혹 홍화씨 물이 떨어져 드시지 못하면 밤새 허리가 아파서 잠을 못 주무신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느끼신다. 우리 집에 오시는 어간에 홍화씨 물이 떨어진 것이다. 엄마 오시던 날 시장에 가서 홍화씨를 사다가 프라이팬에 볶는데 우와, 홍화씨 볶다가 내가 불에 타는 줄 알았다. 게다가 커피 볶을 때 팝핑이 일어나듯 홍화씨도 똑같은 짓을 하는데.... 탁탁 튀어나온 놈들이 팔에 떨어져 바로 화상이었다. 그리고는 주전자에 넣어 끓이니 펄펄 끓는 날씨와 함께 아주 그냥 가관이었다. 열폭하지 않을 수 없는 시츄에이션 아닌가. 엄마를 설득(이라고 쓰고 윽박지름이라고 읽는다)했다. '엄마, 홍화씨 물은 약이 아니야. 그거 하루 안 먹는다고 아파서 잠은 못 자는 건 엄마 느낌이라규!!!!' '니가 몰라서 그려. 그짓말 같이 아픈디 워쪄. 니가 몰라서 그려'

느낌으로 사는 노인들은 설득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느낌을 그대로 믿어줘야 한다고. 그렇게 내 입으로 가르쳤었지. 다음에 음악치료 강의할 일이 있으면 꼭 첨언하겠다. 맞는데, 느낌을 그대로 믿어줘야 하는 건 맞는데 열폭주의다!!!!! 

 

* 느끼지 못하고

 

일 년에 한 번씩 밀착 마크하면서 보니 그야말로 한 해 한 해 다르다. 가만두어도 아이가 스스로 옹알이를 하고 배밀이를 하다 기고 걷는 것처럼 노인은 가만 두어도 기능을 조금씩 잃어간다. 웬만한 감각 없는 젊은이보다 고급 유머를 구사하며 웃긴 남매의 하이 개그를 이해하고 받아칠 수 있는 엄마이다. 그런데 둔해졌다. 모든 감각이 둔해졌다. 삼복더위에 끼니마다 다른 반찬(이라기보단 요리)를 만들어 내는 딸을 보면서 덤덤하다. 그런 엄마가 아니었다. '애가 몸이 약혀서' 엄마가 나를 설명하며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작년만 해도 '아침이 먹었든 거 먹으믄 되는디 왜 또 뭘 혀? 허지마. 더운디....' 하셨었다. 그렇게 아까운 딸이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하고 간식을 챙겨도 덤 to the 덤, 무덤덤이다.

'엄마, 나 홍화씨 볶다가 여기 디었어. 엄마 나 여기 땀난 거 봐. 나 계속 두 시간 서 있었어...' 아무리 강한 자극을 드려도 '그려~어' 덤 to the덤.... ㅠㅠㅠㅠ

태어나 보니 엄마가 마흔다섯 중늙은이었고 철들고 보니 엄마가 노인이었다. 그래서 평생 엄마의 '늙음' 이 두려웠고 늙음 다음에 올 죽음을 미리 상상하고 울었다. 최근 몇 년은 늙어 스러지는 엄마의 몸 때문에 울고 또 울었다. 그래서인지 둔해진 엄마의 감각에 눈물이 나지 않는다. 나도 같이 둔해지는 것인지 머리가 뿌예지고 가슴이 휑할 뿐.   

 

* 부르다가 죽을 노래

 

성경 보고 기도하는 일이 일상이 엄마가 도통 성경을 펼쳐 들지 않는다.

- 엄마, 왜 성경 안 읽어?

- 얼라, 나 눈이 안 벼. 눈이 안 벼서 성경 못 본 지 한참 되얐어. 인자 갈 때가 됐잖여

(이 말에 휑하게 비어버린 줄 알았던 가슴이 와르르 무너졌다.)

- 그러면 안과에 가봐야지. 왜 말을 안 했어? 엄마가 성경을 안 보고 어떻게 살아?

- 얼라, 인자 갈 날이 가차운(가까운) 사람이여. 몸이 여기저기 다 그르케 되는 거여

- 그럼, 매일 예배는 어떻게 드렸어?

- 외고 있는 성경 또 외고 또 외고 그러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찬송도 내가 외는 게 많잖여. 예수 소유하여서 나는 부자 되고 예수 한 분 잃어서 나는 그지(거지) 되네.... 

 

성경을 읽을 수 없는 엄마의 눈이 안타까웠고 돌이킬 수 없는, 속수무책의 엄마 몸이 슬펐지만 참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시력을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받아들이는 엄마가 참 예뻐 보였다. 현승이의 수수께끼로 돌아가자면 엄마는 다시 아기로 돌아갔다. 늘 돌봄이 필요한 아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의존, 전적인 의존'이다. 버팅기지 않는 아이는 안아주기도 편하고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쉽다. 늙음이 엄마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도 대기표를 받은 노인이다. 말랑하고 착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젊은 날 삶이 오늘 나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처럼 지금의 삶이 차곡차곡 쌓여 총체적인 결과물로 노년의 삶을 그려낼 것이다. 스러지는 몸과 마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착한 노인의 미덕은 하루아침에 일궈낼 수 없는 것.

 

영화 <은교>에서 () 소설가 이 적요가 하는 말이다.너희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 적요는 이미 젊음을 질투하며 늙음을 벌로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러우면 지는 거!) 밥 먹는 것, 화장실 가는 것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처절한 나날을 살며 노년을 상으로 여길 수 있겠냐마는. 그런 자신의 일그러진 몸조차도 순순히 받아들이고 떠난 천상병 시인은 노래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여러 감각이 기능을 상실하고 굳어져 가지만 마음만은 말랑한 우리 엄마는 노래한다. 천상병 시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그래서 엄마가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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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선생님, 전도사님, 목사님.... 님님님들, 권위자 의존적이 성향이 강했습니다.

선생님, 전도사님, 목사님님님들의 칭찬받는 아이가 되려고 눈치를 많이 살폈지요.

아, 물론 지금도요.

그 권위자병은 늘 과도한 기대 - 실망으로 이어어지는 예측가능한 수순을 밟으며

약화되기도 오히려 심해지기도 하지요.

암튼 존경하던 권위자에게 실망을 하고나면 아주 악랄한 복수를 하곤 합니다.

무기고에 숨겨둔 수십 개의 칼 중 가장 잘 벼려진 놈을 하나 꺼내서는

'당신을 향한 존경심'을 난도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잔인하도록 비정하게 한 마디를 뱉습니다.

"당신을 존경하나 봐라!"

나 진짜 무섭쬬! 씩씩.

 

문제는 이제 '내가 니를 존경하나 봐라!' 이 말 들을까 무서운 나이가 된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내게 상처받은 젊을 영혼들도 적지 않을 않을 거라 생각하면 등줄기가 서늘합니다.

얼른 생각나는 얼굴들도 있고요.

 

권위자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욕구는

내가 어떤 의미로든 후배들에게 훈수두고 가르쳐 영향을 미치겠다는 욕심으로

화장법만 살짝 고쳐 얼굴을 내밀곤 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10여가장 유혹에 빠져 시험에 들곤 하는 지점이거든요.

나는 아무에게나 '존경하나 봐라!' 찌르고 잘라내고 하면서 말입니다.

 

아, 갑자기 어이 없으시겠지만 자랑하려고 꺼낸 얘깁니다.

저 책은 제 책이 아니라 J라는 아가씨의 책입니다.

1 년 전에 해외에서 공부하는 중 '래리크랩'을 검색하다 이 블로그에 들어오게 되었다죠.

뭔가 맘에 들고 꽂혀서 자주 들어왔던 모양이고 찾아보니 작년 8월 말에 처음으로 방명록에

댓글을 남기며 인사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J는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게 되었고,

새롭게 정한 교회가 제가 다니고 있는 교회였고,

담당교역자가 나이와 교회 행정에 의해서 정해졌는데 남편인 종필 목사님이었고,

첫 심방을 남편에게 받았답니다.

그 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제 얘기를 했는데,

'어, 그러면 목사님이 그 모님의 피리님?' 이렇게 된 거죠.

교회 행정 상 J는 다른 교구로 바로 옮겨가는 바람에 김 목사님의 심방은 단 한 번으로 끝났고.

그런데 J가 새교우 환영회에 온 그날은 또 마침 제가 당번이었지 뭡니까.

목회자의 아내들이 돌아가며 새교우 환영회에서 명찰을 나눠주고 인사하는 일을 하는데

딱 그날이 그날이어서 얼굴 보고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니어그램 세미나에 오고,

그리고 그리고 쩜쩜쩜......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이거 성경에 나오는 말씀 아니죠? 허허)

 

아, 저 책은  그 1년의 기록.

블로그를 드나들며 혼자 '팬질' 했던 흔적이라며 보여줬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이쁜 짓 중에 제일 이쁜 짓이 책 읽는 거던데....

이런 팬, 자랑 좀 해도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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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페북에 걸린 어떤 글이 몹시 궁금해진 상황이 있었어요. 남편 계정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이런 거 싫어하는 분이라 허락받기 힘들었... 약간 치사했....) 용건을 마치고 오랜만에 퍼런색 지붕의 페북 타임라인을 주욱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 내가 해 아래 헛되고 헛된 것을 발견하였으니! 페친들은 여전하더이다. 해 아래 새것이 없어서 뉴스피드는 1년 전과 같고, 3년 전과 같고, 5년 전과 같더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 보고 있는 타임라인이 2013년 오늘로 날짜만 바꿔놓는다 해도 이상할 것 없더라는 것입니다. 모두들 각자 늘 하던 그 얘기를 여전히 반복 재생산 중인 것 같았어요. 사회 문제에 빡치는 사람은 여전히 분노하고 있고, 큐티하는 사람은 여전히 말씀 묵상을 나누며 축복하고 있고, 페북엔 넌크리스천도 있는데 왜 큐티를 올리느냐며 나무라는 사람 역시 건재하고, 논문발표를 하던 사람은 또 다른 주제를 논증하느라 여념이 없고요. 가르치는 분들은 여전히 가르치고 계십디다. 해외여행과 먹방 PD를 자처하시는 분들의 사진은 여전히 화려하구요. 아직 제가 페북에 있었다면 저 역시 마찬가지였겠죠. 커피 사진 아니면 현승이 일기나 올리고 세미나 광고를 하며 동어반복을 하고 있겠구나 싶었어요. 바라보고 있자니 전도서 한 편 써내는 것 일도 아니겠더군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내가 해 아래서 포스팅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해 아래서 포스팅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

페북에 큐티만 나누던 사람들이 그만 묵상을 끝내고 광화문으로 나가 우는 자들의 손을 잡으면 좋으련만, 왜 공적 공간에 하나님 하나님을 찾느냐며 나무라는 분들이 페친의 일은 페친의 하나님께 맡겨 버리면 좋으련만 변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모두들 자신의 틀과 언어로 동어반복 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 참 안 변해. 결론을 내리고 페북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블친 중 한 분께서 2000 포스팅을 달성하시어 축하 댓글을 썼더랬습니다. 2000 포스팅 오는 동안 글맛이 조금씩 달라졌다고 썼는데요. 정말 그러하다 생각했습니다. 참 재밌는 편애입니다. 사실 제 블로그 포함 블로거들 역시 늘 비슷한 모티브를 가지고 비슷한 이야기를 써내기는 페북커들과 마찬가진데요. 불과 며칠 사이로 SNS 화면을 들여다보며 '사람 참 안 변한다' 했다가 '달라지셨어요'라 했으니 말이죠. 구조적으로 페북이나 트위터는 흘려보내며 읽게 되고 블로그 글은 들여다보며 읽기 때문이겠지요. 오프에서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페북 뉴스피드에서 보면 그저 one of them일 뿐이고 블친은 연속성을 가진 한 존재로 만나게 되는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그러네요. 페친들이 3년 전, 5년 전과 달라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읽어낼 찬찬한 눈을 장착하지 않는 탓이겠네요.

 

***

변화를 읽어내는 눈이 사랑일까요? 그러고 보면 이즈음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진행하며 전에 없는 기쁨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참가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에너지를 집중하는 저 자신을 봅니다. 보이지 않는, 당사자도 인식하지 못하는 변화를 찾아내기 위해서인 것 같기도 하고요. 한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제스춰 하나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내가 살아있다 느끼고, 여기에 사랑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아픔이나 성장을 향한 목마름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좌절과 회의에 빠졌던 적이 있었는데요. 거기서 빠져나오며 얻은 통찰인 것 같습니다. 상담이든 영성지도든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란 영혼을 활짝 열어 들어주고, 같이 울어주는 것 뿐이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침묵이다. 상대방의 변화는 내 능력 밖의 일이지만 의외의 숨은 보물이 있습니다. 그의 마음에 공명하여 내 안의 견고한 어떤 것들이 무너지는 경험입니다. 그 기쁨을 발견해가고 있습니다. 지난달 에니어그램 세미 2단계를 마친 다음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오른쪽 눈의 실핏줄이 터져 공룡 눈이 되어 있었습니다. 피곤하지도 않은데 왜 이럴까? 하다가 히히, 웃었습니다. 8주간 수강자들의 마음을 자세히 듣고 보려고 애쓴 결과, 훈장이라 치자. 한 존재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공명할 때 내 마음이 한 차원 다른 곳으로 옮겨갑니다. 멀쩡할 때는 도통 도달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는 자리, 그런 자리로 순식간에 옮겨 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너와 내가 있는 그대로 소중하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경구가 아닌 존재로 느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을 믿는 제게 '사랑'이라는 덕목이 얼마나 버거운 숙제인지요. 게다가 한술 더 뜨시네. 완전 사랑하는 나의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십니다. (원수라고요? 설마 국가 원수는 아니겠지요? 예수님 ㅜㅜ) 되지 않는 사랑을 붙들고 진흙탕을 뒹구는 것이 신앙의 여정인가 싶군요. 모든 사람 사랑하겠다고, 원수까지 사랑하겠다고 너무 높은 곳에서 시작한 탓일까요? 사랑하겠다고 결심할수록 힘이 빡 들어간 마음에 관용은 없어지고, 사랑이라고 애써 뻗은 손이 폭력일 때가 많았으니 말입니다. 멀리 말고, 높은 곳 말고 지금 여기 내가 서 있는 낮은 곳에서 자세히 보고 오래 바라보는 여유라도 가져보자 싶습니다.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마음의 눈동자를 한 곳에 고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시작하면 될 일이네요. 눈앞에 사람은 없고 쪼고미 화분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쟤네들이 선생입니다. 작은 성장을 감지할 수 있는 생명의 감각, 작은 변화를 발견할 수 있는 여유롭고 따스한 눈. 그런 거요. 너무 힘주면 핏줄 터지니 힘 빼는 것은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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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1

 

대학 1학년 때 전공 과제로 읽어야 했던 '[또하나의 문화] 제1호_평등한 부모 자유로운 아이'가 나의 대학생활을 결정지었다. 이것을 읽고 2호, 3호.... 찾아 읽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비공식적으로, 자체적으로 '여성학과'로 전과하여 대학 4년을 다녔다. 전공은 D를 맞으면서 여성학 관련 책은 손에서 내려놓지 않고 지냈다. [또문]에서 나오는 모든 책을 읽어 버리는 심정으로 20 대를 지내면서 결코 시도해보지 않은 책이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우리 속에 있는 남신들>이었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정보를 습득하는데 빠른 감각형 'S'(Jung의 심리유형론 또는 MBTI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라서인지 어렸을 적부터 신화 같은 것에 그리 끌리지 않았다. 게다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가 동시대를 바라보는 창이 된다니! 잘 이해 되지 않았다. 또 게다가 심리학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때 쳐다보지도 않았던 <여신> <남신>을 최근 꿀을 빨며 읽었다.  어쩌다 심층심리학과 영성 관련 공부를 삶의 가장 큰 낙으로 살고 있으니 20대 나였다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을 책들을 붙들고 있다. 꼭 심리학 공부가 아니더라도 S(Sensing)보다는 N(iNtuition)을 필요로 하는 정보가 의미있게 느껴지니 사람이 이렇게 달라지나! 중년을 넘어가면서는 생애 전반부에 쓰지 않았던 기능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발달이라고 하는 Jung 선생님의 가르침을 몸으로 따르고 있는 것인가 하여 괜히 뿌듯하다. 20대에 주로 읽었던 여성학, 사회과학 책들이 책꽂이 여러 칸을 차지하고 있다. 그 옆에는 최근 10여 년 읽었던 영성, 융심리학, 꿈에 관한 책들이 줄을 서 있고. 20대의 나와 40대의 내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느낌으로 바라보며 흐뭇해 하는 중.

 

화해 2

 

어디나 라이벌은 있다. S여대에 음악치료대학원이 1997년에 생겼고, 그 다음 해에 E여대에도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괜한 앙숙이었다. 나는 S여대에 97년 2학기에 입학하였다. 학교 다니던 내내, 그 이후에도 괜한 집단적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 상대 학회에서 하는 행사는 약간 우습게 여겼고, 상대 학교의 교수에 대해서는 폄하하는 일이 잦았다. 개인적으로 보면 딱히 그럴 일도 없었고, 이렇게 저렇게 폄하할 논리적 근거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무심한 듯 민감하게 E여대 음악치료대학원에 대해 뭔가 텁텁한 느낌으로 살아오고 있다.

지난 주 월요일에 E여대 음악치료대학원 학생들에게 연애강의를 하고 왔다. 학과장 교수님과의 인연이었는데. 그 어느 강의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갔다. 이제는 20여 년이 지난 일이라 S여댄지, E여댄지 그런 건 난 모르겠고! 그저 음악치료사 후배들을 만난다는 기대로 사실 많이 들떠 있었다. 그렇다고 강의가 썩 마음에 들게 진행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남만으로도 좋았다. 이유도 묻지 않고 편을 가르고 나도 모르게 마음의 경계 바깥 쪽에 세워두었던 어떤 집단, 어떤 사람들과 화해한 느낌? 그 느낌으로 역시 흐뭇해 하는 중.

 

화해 3

 

뜬금포 MBTI를 던지며 사람 얘기 하는 걸 지양하려 하는데. 이 글 초반부터 떠들떠들 했으니 그냥 쭉 가자. MBTI의 네 가지 기질 중 NF는 내게 참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중고등 시절 제일 친했던 두 친구가 둘 다 NF였는데도 그렇다. 그중 NF1 친구와는 커서 어른이 되도록 단짝 친구였고, NF2 친구와는 대학을 졸업하고 자연스런 절교를 하게 되었다. NF2 친구는 문학평론가가 되었는데 그 친구의 글이 그렇게 읽히지가 않았다. 나름 한겨레 21 같은데 기고도 하곤 하는 잘나가는 젊은 평론가였는데 말이다. 나는 일단 이 친구의 글을 읽고 나서는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고 느꼈다. (비단 이 친구뿐 아니다. 대체로 평론가의 글이 해독이 안 되는 경험을 아지고 많이 하는데 이게 평론가의 위엄이려니 한다) 암튼 친구의 글은  너무 현학적이서 불편했고, 심지어 좋은 글재주로 말장난만 한다고 느꼈다. 그 외에도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참 달랐고. 아니다. 시각이 아니라 각자 본 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다고 해야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NF의 어떤 부분을 못 견뎌하는 내 스타일이 결별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일찍이 글로 잘나가는 친구에 대한 질투심도 있었겠지만서도)

 

또 하나의 NF 후배. 얘는 NF3이라고 하자.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친밀한 집단에 있었다. 힘들었다. 생각해보면 얘는 NF라서 힘들었던 것이 아니고 인성 문제였는데 나는 기질차이 문제라고 여겼다.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더욱 대놓고 NF를 내게 유해한사람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때 이후로 단지 NF라는 이유로 마음의 문에 안전장치를 달아 최대로 열려도 얼굴만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MBTI월드]에서 나와 [에니어그램랜드]에 입장하고 나서 만난 NF들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모험과 환상의 나라 NF 세상이랄까? 실은 NF라 이름 붙이며 내 삶에서 배제시키고자 했던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다. '으이그, 저 NF!'하는 이름표 붙이기를 멈췄을 때 얻은 선물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NF가 많고 제일 힘들어 하는 사람 중에도 NF가 많다. 아무튼 그렇게 NF와의 화해는 시작되었다.

 

작년과 올해 내가 MBTI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첫사랑을 회복하여 강의하는 중. NF들의 모호한 언어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운 것이다. 깊고 심오한, 그리하여 스스로 복잡하다고 느끼는 그네들의 내면을 어떻게든 표현해주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 안타까움이었다. 그 와중에 올초 내 MBTI 강의를 듣고 참 좋아해주신 어는 NF님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졌다. 자존감 상승은 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NF에게 인정받는 강의를 했다는 것에 나도 모르는 자존감 향상이라는 결과는 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NF들을 질투하고 있었다는 것, 열등감을 깊이 느꼈다는 것을 말이다. NF(또는 NT)들의 눈으로 내 글과 강의를 바라보면서 괜히 위축되곤 했다. 미주알고주알 떠벌이기.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닫힌 표현. 일상적인 얘기만 떠들어대기. 묻지 않는 말을 깨알같이 쏟아놓기..... 열등감은 다른 것이 아니라 NF들에게 있는 것이 내겐 없다는 느낌이다. 경계를 세우지 않고 무한 열어 놓은 감수성, 지질한 얘기도 있어보이게 하는 상상적이고 은유적인 표현, 깊이 있는 통찰  같은 것들.  Jung식으로 말하자면 내 안에 없는 것이 나오진 않는다. 무슨 말인가 하면 타자의 어떤 점이 부럽다는 것은 내 안에 그것이 이미 있다는 것이다. 없으면 부러워할 수도 없다는 것. 그 말이 믿기로 했다. 그 믿음이 헛되다 하더라도, 즉 내게 NF들이 가진 좋은 것이 없더라도 괜찮다 여길 만큼 되었으면 싶다. 모든 좋은 것을 다 가져야 한다는 것이 욕심이며 교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지. 아직은 믿기로 작정할 뿐이지만, 시간이 꽤 걸릴 이 작업은 그 어떤 화해보다 깊고 의미 있을 예정이다. 어쨌든 화해가 시작되었다는 것으로 감사하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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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옆에는 98년 7월 12일에 지휘봉을 들고 있는 내가 있다.

CD를 찾는라 희번덕거리는 눈동자를 98년의 신실이 언니가 잡아 끌었다.

아니, 98년의 용선이가 말을 걸어왔다.

 

98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은 많이 추웠다.

그 전 해에 청년부 교재로 공부했던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에 나오는 

그 유명한 '함몰 웅덩이' 체험이었다.

사귀던 남친과 헤어졌고,

내 존재감을 확인하던, 내 젊음의 에너지를 거의 쏟아 붓고 있다 자부하던

교회 청년부에서는 고립감을 느꼈다.

열심히 하던 모든 것들이 다 잘못했던 것, 나쁜 것이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의 여러 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후배들과는 모두 단절된 것 같았다.

그 어떤 때보다 적극적이고 대놓고 주도적으로 힘을 발휘하던 20대 후반이었다.  

 

그때 흘렸던 눈물은 그저 억울함과 회한의 눈물일 뿐이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눈물을 흘리면 씨를 뿌린 것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때의 함몰 웅덩이는 오늘의 나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그때 꺾인 날개는 완치되지 않아 이제 내 몸의 일부같은 통증으로 함께 하고 있다.

나서고 책임져야 할 일이 있으면 과하게 긴장하고 위축되고 눈치를 보게 된다.

겉으론 당당한 척 하지만 마음으론 팥죽을 끓인다.

너무 나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끊임 없이 점검한다.

그 날개를 어여 고쳐서 제대로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작년 쯤에 들었다.

 

깊은 함몰 웅덩이에서 나와 조금씩 생기를 되찾아 갈 무렵에 용선이에게 받은 것이다.

그림과 거기 적힌 글귀를 보면서,

'아직도 청년부에 나를 생각해주는 후배가 있다니!' 

이런 느낌이 스쳐지나가서 좋기도 민망하기도 당황스럽기도 했던 것 같다.

 

오늘 액자 속 용선이의 글귀가 새롭게 말을 걸어왔다.

98년? 내가 나를 몹시도 싫어하던 그때,

나를 바라봐주던 이런 선한 눈길이 있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구나!

내가 나를 못마땅히 여겨 괜히 나를 찌르고 때리고 흘겨보는 순간에도

결코 거두지 않으시는 하늘 아버지 사랑의 눈길이 아주 가까이 느껴졌다.  

오늘 아침 기도는 20 여년을 넘나들며 폭풍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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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 다량의 자랑 물질(남편, 친구, 잉여질 etc.)이 함유된 글입니다. 소화력 약하신 분들, 주의 복용 요합니다.

 

울긋불긋 단풍잎이 아니라 옅은, 투명한 새순의 연둣빛이 눈에 들어오면 어른이 되는 거란다. 눈에 들어올 뿐 아니라 아주 그냥 마음이 왈랑거려 죽겠을 때는 어른의 어른의 어른인가봉가? 저 연둣빛이 처음 눈에 들어왔던 때는 남편과 사귀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다시 만난 그해 4월이었다. 헤어진 지 5개월쯤 지난 어느 날 우연 같은 필연으로 고덕 도서관에서 마주쳤고 그날 고덕의 가로수들은 온통 투명한 연둣빛이었다. '저 색깔 참 예쁘지?' 어색한 침묵을 어떻게 좀 해보려고 던졌던 말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변산으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는데 내소사 입구에서 본 저 풍경에 좋다, 좋다 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 순간을 그대로 마음의 사진첩에 담아두고만 싶었다. 아직 어린아이도 있고, 고3 짜리 아이도 있는 아줌마들이 1박 2일 여행을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유후!!! 하고 자동차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서 들리든 안 들리든 남편들 칭찬을 침이 마르도록 하였다. 기꺼이 허락해주고, 가서 먹을 것들 장을 봐주고, 집에 있는 아이들을 챙겨주는 남편들을 가진 대한민국 5% 아줌마라며. 

 

특히 내겐 치유적이기까지 한 일이다. 지금에야 엄마의 걱정과 염려인 줄 (심지어 엄마 딴에는 사랑인 줄도) 알겠으나 내가 하는 무슨 일에든 부정적인 추임새를 넣는 우리 엄마의 목소리는 아주 그냥 징글징글하다. '돈 들고 피곤한데 여행을 왜 가니?' '필요 없는 걸 왜 사니?' '몸에 나쁜 커피를 왜 마시니?' '그럴 줄 알았다' '이랬어야지 저랬냐?' '저랬어야지 이랬냐?' 이 목소리 때문에 뭘 해도, 특히 내가 좋아하는 뭔가를 할 때는 더더욱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 병을 고쳐준 것이 남편이다. '그래, 해' '갔다 와' '해! 해!' '사!' 이 사람은 내가 뭘 해도 안 된다 하는 게 없네. 왜 이러지? 날 시험하나? 긴장한 적도 있었으나 의심이 믿음이 되면서 내가 나를 수용하는 일에 탄력을 받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치유적이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 '어디쯤 가고 있냐? 그럴 줄 알았어. 서둘러 가서 거기서 놀아야지. 그러다 실내에만 있다 오겠네' 이런 사소한 전화조차도 내게는 지지와 격려로 들려 한 개 더 좋은 여행이었다.

 

 

 

 

 

저녁 무렵에 내소사에 들어가기로 한 건 정말이지 최고의 선택이었다. 젊은 시절에 읽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효과로 벌써 내소사에 몇 번 째인지 모른다. 저녁 빛 때문인지, 중년의 빛이 화사한 친구들 덕분인지 전혀 새로운 내소사를 경험하고 왔다. 총 30시간의 여행이었는데 잠자는 시간 5시간 빼고 25시간 수다를 떨었다. 내가 혼자 15시간 이상 떠들어댔고, 나머지 시간도 딱히 입을 닫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 아줌은 만난 지 20여 년, 다른 아줌은 알게 된 지 불과 2년. 20년, 2년, 인연? 참 좋은 인연들, 인연들!ㅋㅋㅋㅋ 세상의 모든 며느리 대동단결 시키는 시어머니 얘기, 남편 흉보기, 살아온 얘기, 첫사랑 얘기, 꿈 얘기, 농담 따먹기. 결론은 '건강하게 늙자!' 나이 먹어서 며느리 괴롭히지 말고, 자식들 부담 주지 말고, 우리끼리 잘 놀자. 무료 지하철 타고 백화점 지하에서 만나서 함께 죽 먹으면서 지내자. 그 정도로만 건강하자. 우리는 죽먹고우!

 

 

 

 

 

죽먹고우, 좋지! 그러나 내일 일을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의 노년에 대해 무엇을 장담할 수 있을까? 이튿날 아점으로 백합죽을 함께 먹었으니 죽먹고우는 된 거고. 오늘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누릴 뿐이다. 내가 나를 다 아는 것 같지만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 없으면 내가 아는 나는 반쪽 아니, 1/4 쪽? 아니 1/90 쪽 정도 일지 모른다. 저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면서 내게도 있던 그 좋은 점을 알게 되고, 때로 불편해하면서 내가 모르던 나의 가시를 알게 된다. 좋은 것도 불편한 것도 내게 있다는 것을 존재로 비춰주는 거울 같은 친구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부끄럼 없이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우리'라서 말이다. 참 좋은 인연들! ㅎㅎㅎㅎ '주를 알게 하소서, 나를 알게 하소서(Novem te, novem me)' 함께 이런 기도를 드리며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함께 걷는 이 마음의 여정이 1박 2일 지치지도 않는 수다 여행만큼이나 좋다. 이 아줌마들. 피부관리 할 줄도 모르고,, 오케이 캐쉬백 포인트, 뭔 포인트든 쌓을 줄도, 활용할 줄도 모르지만.... 그래도 좋댄다. 마냥 좋댄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저 고상한 것들을 꼬드겨서 찍은 엽기사진이 있으나 공개할 수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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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열정  (2) 2015.01.22

 

 

 

통영 국제 음악제에 간 채윤이가 '엄마, 가족끼리 통영에 꼭 오자!'며 보내온 사진이다. 음악관 앞 바다란다. 그리곤 곧 출발한다며 전화를 해왔는데 어젯밤 통화 목소리와 사뭇 다르다. 다행이다. 어제 늦은 밤 시무룩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조금 문제가 있는데..... 언니가 나 내일 그냥 저녁에 함께 올라가면 안 되느냐고.....' 오전 10시 40분 버스로 올라와 4부 예배를 드리기로 하고 내려갔다. 반장 격인 Y 언니가 그랬단다. '선생님도 힘들어 보이시고 클래스 전체 분위기도 있는데 너 혼자 올라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선생님께도 죄송하고 언니들한테도 미안하고 엄마한테도 미안하단다.

 

주일 낀 1박2일 통영국제 음악제 참석차 통행 여행을 선생님께서 제안했을 때 채윤이의 첫반응은 그랬다. '엄마, 나 안 갈 거야. 중등부 반주도 그렇고. 주일 예배 빠질 수 없잖아. 안 가야겠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며칠 후에는 '엄마, 통영 가야할 것 같아. 엄마가 선생님하고 얘기해보면 안 돼?' 선생님과 얘기하기 전에 채윤이와 얘기하고 기분 좋게 합의 봤다. 토요일에 일찍 내려가서 연주 보고 저녁 늦은 버스로 혼자 올라와서 중등부 예배 드리기. 그런데 선생님과 의논하고 오더니 '선생님이 밤에 다같이 놀고 시간 보내는데 같이 하면 좋겠대. 나도 같이 바비큐도 하고 놀고 싶어.' 했다. 선생님과 통화 했다. 채윤이가 저녁에 올라가면 모두들 너무 아쉬워할 것 같다며 다음 날 아침 버스로 올라와서 예배를 드릴 수는 없냐고 하셨다. 다시 채윤이와 대화. 중등부 반주는 다른 선생님이 하실 수 있단다. 그리고 4부 예배를 엄마랑 같이 드리면 좋겠단다. 그렇게 합의하고 내려간 것이다.

 

막상 내려가보니 혼자 올라오는 게 더욱 미안해졌나보다. 책임감이 강하고 의리가 있는 반장 언니가 언니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 같았다. '채윤아, 니 입장과 언니 말을 충분히 알겠는데 걱정하지 말고 계획한 대로 아침 버스로 혼자 올라와. 선생님께 죄송하지만 엄마가 충분히 말씀 드렸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켜야 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해질 수도 있는 거야.' 채윤이의 말은 자신에게 예배가 중요하다는 것을 비신자 언니에게 설명하기가 난감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제가 많이 따르고 좋아하는 언니이다. '맞아. 그럴 때는 다 설명하지 않아도 돼. 언니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해. 너에게 중요한 것을 지키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을 때도 있어.' '알겠어. 엄마. 고마워.' 혼란스러운 지점이 정리된 것 같았다.

 

이 모든 과정에서 채윤이와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주일 성수'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채윤이가 먼저 예배를 지키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성경학교와 음악캠프가 겹치는 경우, 또 연주회와 주일 예배가 겹치는 경우, 지금보다 더 단호하고 분명하게 예배나 성경학교를 우선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말했었다. 성경학교에 참석하기 위해 적지 않은 캠프비용을 다 내고도 반만 참석하여 레슨을 받기도 하였다. 그때는 채윤이가 아직 어렸다. 사춘기가 오기 전, 또는 막 시작할 때였다. 종교적인 내용을 많이 얘기하고 큰 틀에서의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 분명하게 원칙을 가르쳐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했다. '니가 아무리 음악을 잘하고 좋아하고 세상에 음악보다 중요한 것이 훨씬 더 많아.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야. 내 삶에서 하나님이 제일 중요해요, 라고 말만 하는 것으로는 안돼. 정말 중요하다면 행동으로 보여야지. 하나님과의 약속을 선택하기 위해 포기하고 손해보는 것을 감수해야 해. 하나님 없이 음악을 잘하는 것, 하나님 없이 성공하는 것은 실패나 다름없어.'

 

그러나 이번에는 채윤이 자신이 선택하도록 했다. 몇 년 사이지만 채윤이가 많이 자랐다. 그 사이 청소년이 되었고 청소년은 거의 성인 대접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리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보다 주관이 분명해지고 생각하는 힘이 많이 생겼다. 스스로 자기  하나님을 찾으려는 모습에 가슴 뭉클할 때도 있다. 특히 중등부 반주를 하면서는 힘들고 어려울 때 기도할 줄 알고, 찬양을 하며 힘을 얻기도 하는 것 같다. 확실히 채윤이와 하나님 사이에서 부모가 개입할 때가 지났다는 생각이다. 만약 채윤이가 주일 저녁 차로 올라오겠다고 해도 허락해 줄 생각이었다.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였으니 허락이래야 허락이 아닌 것이군. 흠)

 

그렇다고 엄마의 도움이나 부모의 교육이 필요치 않을 만큼 커버렸단 얘기는 아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생각지 않은 것을 배우게 되어 다행이다. 하나님과의 약속, 예배를 지켜내기 위해서 아니 꼭 예배가 아닌 그 무엇이라 해도 자신에게 가치 있는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 말이다. 둘 사이에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책임져야 한다. 책임이란 다른 게 아니라 일정 정도의 불화, 미안함 등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채윤이의 표현대로 '선생님께도 미안하고, 언니들에게도 미안하고, 엄마에게도 미안한' 것은 신경증적인 상태이다. 계속 미안함에 머물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 말이다. 그렇다고 내 욕구(필요)에만 머물러 타인의 입장을 돌아보지 않는 것 역시 건강한 상태가 아니다. 김서영 교수가 말했 듯, 건강한 자아는 그 둘의 교집합 즈음에서 필연적으로 겪는 '불안'에 있을 것이다. 그 불안 속에서 해야 할 일은 의지적 선택이다. 채윤이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렇게 선택하고 감수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주일 성수에 대해서는 책을 한 권 쓸 수 있을 만큼 내 안에 이야기가 많다. 아이들에게 결코 강요하고 싶지 않은 마음, 반드시 목숨 걸고 지키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상존한다. 내 안의 이야기들이 여러 목소리를 내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시절처럼 그 다른 목소리들에 휘둘려 분열증을 보이진 않아서 다행이다. 나의 주일 성수 이야기, 질곡의 개인사를 통해서 나는 고착됐고, 상처 받았고, 상처 주었고, 회의했고, 아파했고, 성장해왔다. 실은 아버지를 넘어서 하늘 아버지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언젠가 그 이야기를 길게 풀어내야 할 때가 있으리라. 아이들과 함께 자라가는 엄마됨으로 이 부분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니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내가 바라는 한 가지는 우리 채윤이가, 현승이가 자기 자신이 되어 하나님을 찾아가는 여정을 제 발로 걸어가는 것이다.  할 수 있는 만큼 잘 도와주고 동행할 수 있는 곳까진 함께 걸어주고 싶다. 오늘은 채윤이와 함께 예배 드릴 것이다. 게다가 아빠가 사회를 보는 날이라 더 설레고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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