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몰래, Jung을 따르다

 

때는 2007년 봄. 남편은 신대원 마지막 1년을 시작했다. 이제 1년만 견디면 된다는 안팎의 위로가 무색하도록 몸과 마음이 빠르게 붕괴되고 있었다. 몸은 성대수술을 받는 것으로, 마음은 에니어그램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으로 최악의 무너짐을 대충 막아 수습하기에 이른다. 주말부부로 지내면서 아침에 채윤이는 학교로, 현승이는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나면 좁은 거실을 다락방 삼아 기도하고 공부하며 오전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수도자의 삶 같았다. 메시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다시 공부하고. 오전을 그렇게 보내고  음악치료 하러 서울, 하남, 남양주, 과천, 의왕.....으로 돌다 저녁에 돌아오면 채윤이 받아쓰기 공부를 시켜야 했다. 주말부부로 사는 것, 일을 많이 하는 것, 한글도 안 가르쳐 학교 보낸 채윤이와 함께 공교육에 적응하는 것. 그것보다 어려운 일은 마음의 시험이었다.

 

어릴 적부터 '믿음의 견고함과 인격의 성숙함이 왜 나란히 가지 못하는가'가 너무나 큰 의문이었다. 나란히 가기는커녕 반대 방향으로의 주행은 아닐까 싶어질 때는 두려움으로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멈추곤 했다. '에라 모르겠다. 믿쓉니다' 대학 이후로는 무엇보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괴로웠다. 머리와 입술의 믿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삶이며 떨쳐낼 수 없는 마음의 짐들은 풀 수 없는 숙제 같았다. 그 분열을 오가며 그럭저럭 살았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그 이후로 음악치료를 하면서 무엇보다 결혼을 통해서 '분열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남편이 신학을 하고 평신도 아닌 사역자로 살게 되면서 이 의문은 날이 벼리고 더욱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나를 찔러댔다. 내 영혼을 찔러댈 뿐 아니라 내 일상의 숨통을 죄었다. 위선적인 목회자들에 대한 분노가 도를 넘은 것 같았고 분노는 살기가 되고 그 살기는 내 영혼부터 말려 죽이고 있었다. '교회' 자체를 떠나고 싶었다. 교회를 떠나 오직 하나님 품에만 안기고 싶었다. 바로 그때 에니어그램 통해 아주 희미한 빛을 발견한 것이다. (성찰 없는 그리스도인, 신앙의 행위를 신앙이라고 믿고 강압하는 것들, 그런 얘기는 <커피 에니어그램> 에필로그나 블로그를 통해 수도 없이 말했다.)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면서 융(Carl Jung)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다. 융에게서 '믿음과 정서적 성숙의 불일치'에 대한 오랜 의문의 실마리를 찾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삶은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융 관련 저작물이었다.

 

2007년 봄, 나를 살린 책은 달라스 윌라드 <마음의 혁신>, 고든 스미스 <예수의 음성>과 더불어  이부영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자기와 자기실현>으로 만난 융 분석심리학이었다. 그때로부터 독학으로 융을 공부하게 되었다. 하나의 책은 또 다른 책으로 길을 내주고 한 저자는 또 다른 저자를 소개하며 여정을 인도해주었다. 돌이켜보면 공부, 진짜 공부였다. 자발적인 공부였고,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읽었고, 읽은 것을 소름 돋도록 경험으로 가져와 이해했다. 융 분석의 안내를 따르다 다다른 곳이 '꿈'이었고, 오랜 기다림 끝에 작년 한 해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 배울 수 있었다. 가톨릭에서 배운 에니어그램을 내 나름 개신교의 신학으로 필터링하여 글을 썼던 것처럼 융 심리학을 그렇게 녹여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다. 신앙 또는 기독교 영성과 분석심리학을 어떻게 통합시킬 것인가? 늘 떠나지 않는 고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고, 에니어그램을 약간 섬기고, 게다가 융까지 겸하여 심기고 있는 위험한 여자라는 것을 남편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다. 몰래 몰래 융을 만나고 섬겼다.   

 

 

지지받다

 

어느 인터뷰 글을 통해 모새골 임영수 목사님께서 스위스 융연구소에서 수학하셨으며 거기 계실 때 폴투르니에 박사님과 깊은 만남을 가졌다는 것을 읽었다. 흠.... 몰래 사교를 믿는 것처럼 공부해왔는데 임영수 목사님이라니! 지지받은 느낌이었다. 또 작년에 우리 교회에서 열린 정신건강 세미나에 오신 장신대 유해룡 교수님의 강의는 내내 융 심리학 이야기였다. 이런 일들로 지지를 받아 '카를 융에 물든 부족한 그리스도인'이 블로그를 통해 서서히 커밍아웃 했던 것이다. 작년 가을 MBTI를 도구 삼아 소그룹으로 부모교육을 몇 주간 진행하였다. 늘 그렇듯 MBTI는 손가락일 뿐, 손가락으로 가리키고자 하는 '달''나와 자녀, 나와 부모관계를 짚어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성찰하는 엄마, 나 자신이 되는 엄마가 되자는 것이었다. 과정을 모두 마쳤는데 아쉽다며 지속적으로 배움과 나눔을 할 수 없겠냐는 요청을 해왔다. 궈래요? 그러면 일단 다음 주 강의 하나 더 듣고 결정하세요. 융의 마음의 구조에 대해 얘기할 요량이었다. 대한민국 보통 엄마들에게 융을 말할 수 있게 되다니!  정말 설레는 일이었다. 야심차게 준비한 강의, 어려워 하기도 했지만 정말 열심히 듣고 잘 알아듣는 것 같았다. 아이들 방학 지내고 마음을 돌보는 글쓰기 모임으로 다시 만나자며 새봄을 기약하고 마쳤다. 또 한 번의 지지받는 경험이었다.

 

그 즈음, 김정택 신부님의 융 분석심리학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고 그때 용기내어 질문했다. 혼자 공부하며 신앙과 융심리학의 통합에 관해 오래 품었던 의문이었다. 에둘러 답하셨지만 내겐 명확하게 오는 것이 있었다. 그보다 인상 깊었던 것이 있었으니! 내 질문후에 어느 여자분이 약간 격앙된 태도로 다른 질문했다. 남성성과 여성성, 아니마 아니무스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무엇 때문이지 꽤 화가 나 있었고 공격적인 태도였다. 신부님은 의외로 허허 웃으시며 '제가 개인적으로 융 심리학으로 얻은 유익을 컸고, 그 고백을 했지만 이 분석심리학은 the way가 아닙니다. a way입니다. 당연히 모든 것에 대한 정답도 아닙니다.'  이 단순한 말씀이 마음에 남아 신뢰(분석심리학이든, 융이든, 융기안이든, 그 언저리에 있는 무엇에든)가 더욱 커졌다. 서강대 교수로, 예수회 신부로, MBTI를 들여와 대중화시키는 것으로 충분히 열심히 연구하며 살아오신 분이다. 헌데 은퇴를 앞두고 융 분석가 과정을 시작하여 7년에 걸린 수련과정을 통과하여 은퇴 후에 마쳤다는 얘기에 크게 고무되었다. 그렇다면 나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다, 결심하다

 

대로 분석가가 되려하며 높디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 이부영 교수가 수장으로 있는 '한국 융연구원'을 통한 분석가 과정을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랜 시간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다 융연구원 자문 교수이며, 목사인 분석가가 운영하는 연구소를 알게 되었다. 이 연구소의 디플로마 과정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한국 융 연구원에서 1년에 한 번 여는 분석심리학 강의가 있어서 등록을 했다. 내가 찍어둔 연구소의 분석가라는 분도 강의 하나를 하지 않겠나 싶어 나름대로 검증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이 나이에, 어떻게 시작하는 공분데 섣부르게 시작할 수는 없으니까. 한국의 융분석가들이 어떤 분들인지, 어떻게 가르치는지도 몹시 궁금했다. 이틀에 걸쳐 10여 개의 강의를 연달아 들었다. (한 줄 평은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예상대로 그분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십여 명의 강사 중에 '내가 했다, 나는 누구에게 분석을 받았다. 나는 어딜 가봤다' 며 주어 '나'를 강조하는 말이 유난히 많아서 마음에 걸렸지만 대체로 괜찮았다. 강의 마치고 디플로마 과정 해보려 한다며 인사를 했다. 당장 그주에 개설되는 꿈분석 과정이 있으니 그걸 먼저 들으면서 시작하라는  말을 듣고 고민이 깊어져 돌아왔다. 

 

 

비운의 외팔이 되어 허망하게 돌아오다

 

고민은 사실 비용이었다. 뭘 더 배우냐, 얼마나 더 배우냐, 여자가 그만큼 배웠으면 됐지, 우리 엄마 목소리가 막 올라왔다. 엄마로서 나 자신의 목소리도 질세라. '그럴 돈 있으면 채윤이 레슨비를 해야지, 뭔 소리야' 왜 내 인생은 이 모양이지? 한숨 푹푹 쉬고 있는데 남편이 '일단 내일 것부터 들어. 해! 해! 정신실 공부해야지. 내가 대줄게.' 하며 바로 입금을 했다. (오빠, 멋져!) 그래, 이 열정 어쩌겠는가. 그렇게 시작하여 첫 시간, 그리고 두번째 시간에 가서 사단이 났다. '다음 시간부터 나오지 않겠습니다'며 내 인생에 몇 번 없는 뷁!을 하고 나왔다. 자신의 배움과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다른 길들에 대해서 너무 쉽게 부정해버리는 것에 참을 수가 없었다. 오직 융만이 옳고, 융이 옳듯이 융분석을 제대로 공부한 자신만이 옳다는 선민의식에 꽉 찬 것처럼 느껴졌다. 믿을 수가 없었다. 융을 20년 공부한 사람이 타인의 삶과 공부에 대해서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다니! (한 번 만나보지도 못한 고혜경 선생을 위해 내가 이렇게 싸웠다는 것을 적에게든 아군에게든 누가 좀 알려주면 좋을텐데) 아무튼 다행인 것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왔다는 것. 그럼에도 견딜 수 없는 것은 분석받다 콤플렉스가 건드려지니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 방어하느라 화내고 퇴장해버린 찐따가 되었다는 것. 추운 밤, 충정로에서 이대까지 그냥 걸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또 어디인가?

 

 

결국 내 병이었다

 

집에 와서도 새벽 4시가 되도록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먼길을 돌아 어렵게 결단하고 찾아간 곳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이 하나님은 또 시작이시다. 처음부터 이 길 아니라고 하시든지. 지난 몇 달, 아니 길게 잡아 수년 머리 싸매고 고민한 시간이 허망하지 않은가. 늘 당하면서도 막상 당할 때마다 당황이 되는 일이라 당장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았다. (그래서 쓰기 시작한 이 글, 지금 한 달째 쓰고 있다.)  융의 제자를 자처하며 20년 공부해왔다는 한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 낯설지 않아서 더욱 화가 난다.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도록 안내하는, '영혼'이 있는 심리학이라는 분석심리를 공부하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이 어리석은 물음을 다시 묻고 있는 내가 진정 어리석다. 융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어떤지를 40년 넘도록 확인했으면서 아직도 사람을 보나? 참으로 헤어나오기 어려운 굴레이다. 권위자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고, 이상화시키고, 실망하고..... 마이 했다 아이가~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내 오랜 병이여.

 

 

Jung이라는 사다리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자 복잡하고 어려웠던 마음이 서서히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연이어 우연같은 필연으로 좋은 분들과의 긴 만남, 깊은 대화가 있었다. 머리 터져라 고민하며 두 주먹 불끈 쥐고 '그래, 해보는 거야' 하는 나를 팔짱 끼고 바라보던 하나님이 다 생각이 있으셨던 게다. 혼자 가야할 때 혼자 가도록 두시고, 들을만 한 귀가 생겼을 때 필요한 목소리를 만나게 하시니 말이다. 먼길 돌아서 다시 제자리에 서게 하시는, 그러나 다시 선 제자리가 접때 그 자리가 아니게 만드시는 기묘한 방식. 헤어나올 수 없는 내 아버지의 매력이다. 왜 그리 디플로마, 디플로마, 하면서 뭔가 더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그걸 이제 알겠다. 에니어그램 공부에 한참 빠져 있을 때 남편이 그랬다. '당신이 에니어그램으로 사람을 이해하는데 충분히 도움을 받고, 그 다음엔 에니어그램을 버려. 버려야 소통할 수 있어.' 맨 처음엔 그 말이 그렇게 고깝게 들렸었다. 이제 내가 내게 말한다. '이제껏 해왔던 것처럼 열심이 읽고, 공부하고, 경험을 녹여 다시 읽어서 배운 후에 융을 버리자. 자연스럽게 융을 버릴 수 있을 때 다시 한 번 껍 껍데기를 벗을 수 있겠구나' 조바심에 달달거리던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고 감히 융 선생님을 '사다리'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것 같다. 그런데 왜 나는 꼭 이 모양일까?  처음부터 사다리로 볼 수는 없었던 걸까? 내 이 유아적인 '권위자- 의존성-이상화-신드롬'은 언제까지냐고. 게다가 융 선생님이 뭐라 하시는가? 진정한 소명은 밖이 아니라 너의 내면을 들여다 볼 때 찾아진다고 하지 않았는가. 다음 단계 인생의 소명을 위해 디플로마니 라이선스니 하면서 융 공부를 위해 밖으로 밖으로 헤매며 희번덕이던 눈동자, 제발 좀 차렷이다! (이상한 신드롬에 '자학성'이라는 말을 붙일 걸 그랬나?) 사다리를 치우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됐다. 멈추고 돌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  

 

 

 

Your vision will become clear only when you look into your heart.

Who looks outside, dreams. Who looks inside, awakens.   - Carl Gustav J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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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dder to the Moon, 1958 by Georgia O'Keeffe

 

 

 

"<바그다드 카페>라는 영화를 보셨다면 사막 한가운데의 마술카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마술은 메마른 사막을 지상낙원의 이미지로 바꿔 놓습니다. 우리 자신의 마술카페가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의 고된 마음을 미소로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정신분석에서 우리는 그 공간을 환상이라고 부릅니다. 환상은 결코 허상이 아닙니다. 환상은 우리가 현실을 대면하고 그것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실재적 공간입니다. 그것은 환상서사와는 다른 것으로서, 그보다는 열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김서영 <영화로 읽는 정신분석>

 

 

이것이 허상인지 환상인지,

단지 환상서사인지 현실을 대면하고 헤쳐 나갈 수 있는 실재적인 공간인지,

자꾸 물어봅니다.

 

허공의 사다리에 발을 올려놓는 기분이라면

누구에겐 두려움, 또 다른 누구에겐 설렘일까요.

왜 내겐 죄책감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다리를 타고 위로 위로 잘도 올라가던데,

내가 붙드는 사다리는 어찌 허공에 달려 보장해 주는 것이 없단 말입니까.

 

죄책감 들지마! 해도 자꾸 죄책감이 들지만,

언제까지 내 사다리 허공에 달아둘 작정이슈? 해도 사다리 내리신 분은 묵묵부담이지만,

나는 또 발을 올려놓고야 말겠습니다. 이러다가.

 

환상도 환상이려니와,

넣어둘 수 없는 열정이 꼭 채운 단추 사이로 자꾸 삐져나오니 말입니다.

 

 언제고 한 번 저 달에 닿기는 하겄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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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몸이 하루가 다르게 약해진다. 허리 통증이 심해져서 앉아 있질 못하신다. 안 아프다, 전혀 안 아프다, 뻥을 쳐서라도 참석하고야 마는 주일예배를 몇 주 거르셨다. 매일 진통제로 버티신다. 누워만 있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주무시고 가끔 낮과 밤 구분도 못 하신단다. 진통제 탓인지 통증 탓인지 식사도 거의 못 하셨다. 알고 보니 지난 주에는 삼일 금식기도를 하셨단다. '통증이 너무 심혀서 기도 밲이는 없응게' 평생의 습관대로 하셨다. 다행히 기도빨을 받아서 통증이 잦아들었고 예배에 다녀오셨다. 아무것 못 드셔도 간장게장의 간장만 있으면 밥이 꿀떡꿀떡 넘어가신단다. 시장 반찬가게에서 사다드리곤 하다 직접 담그기도 한다. 간장을 위주로 드시니 양념간장에 신경을 쓰게 된다. 양도 최대한 많이 잡고 양파, 생강, 사과, 배, 매실 등 왠지 좋을 것 같은 건 죄 넣어서 끓인다. 게의 배가 위로 오게 해야 맛있다고 하는데 게에서 좋은 것이 빠져나와 간장이 맛있어지라고 등이 위로 오게 넣었다.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엄마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엄마와 사이가 무지 좋은 효녀 딸이라 오해들 하실까 걱정이다. 엄마는 내내 나의 내적 여정, 영적 여정의 숙제이다. 엄마의 목소리를 떨쳐 버리는 일이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 듣는 일이었다. 동생이 느끼는 엄마와 내가 느끼는 엄마가 얼마나 다른지. 동생은 거칠 것 없이 엄마 손을 잡고 엄마를 안는다. 나는 어려서 그렇게 엄마를 못 떨어져서 울고불고했다는데 지금은 왜 이런가 모르겠다. 마음 깊은 곳에서 엄마에 대한 저항이 크다. 다행인 건 10여 년 내 안의 엄마를 정직하게 만나왔다는 것. 엄마에 대한 신성모독(모성모독?)이 아닌가 싶은 감정이 올라올 때도 피하지 않고 만났다. 여전히 엄마의 어떤 부분이 힘들지만, 아이가 된 엄마를 어른의 마음으로 돌볼 수 있게 되었다. 어른의 마음으로 덤덤하게 간장게장을 만들 수 있다.

 

 

 

 

 

 

내 열정에 겨워서 어머님 자서전 계획을 발설하고 몸 고생 마음 고생이 컸었다. 꿈은 컸으나 각본대로 되는 게 없었다. 어머님이 어머님 자신을 끌어안게 되길 기대했으나 그건 모르겠고, 적어도 내가 어머님을 끌어안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삐뚤어진 마음에 '다신 허튼짓 하지 말자'는 허튼 다짐을 해봤다. 허튼짓은 모르겠고, 적어도 어머님을 바꾸겠다는 작당은 하지 않도록 하자. 

 

각본은 틀어졌고 책이 내 손을 떠난 것으로 끝났다 생각했는데 어머님께는 어떤 시작이 된 것 같다. 지인들께 책을 나누면서 받으시는 긍정적인 피드백, 의례적인 인사에도 외로운 어머님은 기분이 왈랑거리시나보다. 쓰실 때는 아랑곳하지 않으시더니 필자인 어머니 입장과 등장인물이며 독자인 친척이나 지인들의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받아들이신다. '괜찮겠지? 뭐라고 할래나? 내가 뭐 별 얘긴 쓴 것도 없잖냐' 자꾸 물어보신다. 늦었지만 좋은 변화라 생각한다. 책이 만들어진 이후 마음의 풍랑도 있었으나 전보다 덤덤하게 어머님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필요 이상 친절하다가 과하게 뚱한 태도를 오가며 나 스스로 헛갈리던 분열의 폭이 좁아졌다. 아이 같이 칭얼거리는 어머니를 조금 더 어른스럽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두 어머니를 마음으로 외면하며 일상을 꾸려가기는 어렵다. 짐이라면 짐이다. 얼마 전 꿈에서는 걷기 힘들어하는 어머님을 내가 담쑥 안았다. 아기를 안 듯 안았는데 아기처럼 가벼웠다. 안고 가다보니 어머님이 아니고 우리 엄마다. 역시 아기를 안는 것 같이 가볍고 쉬웠다. 실제로도 전보다 가벼워졌다. 그냥 된 일은 아니다. 힘들 때 힘들어했고, 울고 싶을 때 울었고, 미울 때 미워하면서 피하지 않았다. 죄책감인지 사랑인지, 두려움인지 사랑인지를 분별하려고 몸부림을 했다. 엄마를 향해서는 '연민'을 가장한 죄책감이, 어머님께는 '도리'를 가장한 두려움이 컸다. 그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데 걸린 시간이 바로 이 순간까지이다. 물론 아직도 가야 할 길이다. 그렇더라도 지금까지의 여정이 꽤 자랑스럽다. 간장게장 아니면 식사를 못 하시는 고급진 엄마의 입맛을 위하여 바글바글 끓는 간장의 거품을 걷어내며 책에 대해 반응 없는 인간들에 울분을 토하시는 어머님과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한다. 덤덤하게 두 어머님을 '우쭈쭈쭈' 해드리기다. 이런 오늘이 오기까지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고, 천둥 또한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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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세 권의 책을 끝냈다. 연말부터 치면 다섯 권이다. 전에 없던 속도이다. 워낙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력이 짧은 데다 엄마라는 직업이 그렇다. 책 한 단락 읽으면 '엄마, 이리 와봐.' 그리로 가서 민원 해결을 하다보면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고. 다시 몇 줄 읽으면 '엄마, 배고파.' 심지어 '엄마, 나 똥 싸도 돼?' 야!!!!!!! 이번 겨울방학을 하고 보니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밥도 심지어 저희끼리 챙겨 먹기도 하고. 엄마직이 한직이 됐다. 환경 탓도 있고 전에 없이 집중력이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여유가 없어서 책을 많이 읽지 못하면 불안하다. 그런데 요즘처럼 잘 읽을 수 있는 때는 불안이 더 심하다. 결혼 전에 우리 엄마는 책을 미워했다. 나이 먹고도 결혼을 못(안)하는 이유가 책에 있다고 생각해서 '여자가 책을 그렇게 많이 읽어서 뭐하냐. 너 배울만큼 배웠다. 똑똑해지면 시집 가기 더 어렵다.' 면서 잔소리를 했다. 그 탓인지 책 읽는 즐거움은 늘 어느 정도의 죄책감과 함께 온다. 바빠서 책 한 줄 못 읽는 ('인간의 얼굴을 한 지식'이라 불리는)남편에게 괜히 미안해지기도 하고. 나의 삶, 이렇게 잉여로와도 되는 걸까? 불편하다.

 

요 며칠 꿈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꿈 자체보다 저자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질투 비슷한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속에서부터 활활 학구열이 불타오르는 것이 익숙하고도 낯선 감정이었다. 얄팍해서 그렇지 지적인 욕구는 늘 넘실댔고 나름대로 늘 무엇이든 배우고 때로 익히며 불역낙호아!의 삶을 살아왔다. 뭐 하나라도 제대로 공부할 걸!  놀다 먹다 하는 공부 말고 먹지도 놀지도 말고 잠도 자지말고 '죽도록' 공부해봤어야 하는데. 이 생각을 줄줄줄 따라 내려가보면 어디에 가 닿는지도 안다. 최근에 꾸는 꿈들이 반복해서 말해주고 있다. 

 

아무튼 독서 진도를 막 빼면서 '너무 읽는 거 아냐? 이렇게 읽어서 뭐 할라꼬?' 와 '미치도록 읽고 싶다'의 두 목소리가 충돌하면서 조금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래서 그런가? 방학이라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아이들이 놀린다. '엄마, 폐인 같아. 소파에서 좀 일어나. 책 읽다가 어느 새 보면 졸고 있고, 편하게 자라고 하면 아냐 아냐 하면서 일어나서 또 책 읽고. 책 읽나? 하면 어느 새 2048 게임 하고 있고. 그 츄리닝 좀 입지 마. 낡고 웃기고 폐인 같아.' 피아노 연습을 하던 채윤이가 '엄마의 요즘' 이라며 짧은 곡을 지어냈다. 인정이다. 복잡한 심경으로 책을 붙들고 폐인처럼 지내고 있다. 실은 더욱 나 자신이 되어 살고 싶다는 그 바램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 자신이 되어 살기' 폐인. 이만하면 충분히 나 자신이 되어 살고 있고, 앞으로 더욱 그리 될 것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아니고

<산 악녀, 엄마를 위한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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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림절에

 

이해인

 

때가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밝고 둥근 해님처럼
당신은 그렇게 오시렵니까?
기다림밖엔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이들의 마음에
당신은 조용히
사랑의 태양으로 뜨시렵니까

기다릴 줄 몰라
기쁨을 잃어 버렸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며
이제 우리는
기다림의 은혜를 새롭게 고마워합니다.
기다림은 곧 기도의 시작임을 다시 배웁니다

마음이 답답한 이들에겐
문이 되어 주시고
목마른 이들에겐
구원의 샘이 되시는 주님

절망하는 이들에겐 희망으로
슬퍼하는 이들에겐 기쁨으로 오십시오
앓는 이들에겐 치유자로
갇힌 이들에겐 해방자로 오십시오

이제 우리의 기다림은
잘 익은 포도주의 향기를 내고
목관악기의 소리를 냅니다

어서 오십시오, 주님
마지막 기다림이신 주님
어서 오십시오.
촛불을 켜는 설레임으로
당신을 부르는 우리 마음엔
당신을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
환한 기쁨이 피어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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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2000 포스팅을 찍었습니다.

2007년 6월 29일에 첫 포스팅이었네요.

그 전까지 싸이클럽에서 놀았었는데

Forest 언니가 중계업자로 나서 티스토리에 방 하나를 내줬지요.

짐을 싸서 대거 이사한 날이 2007년 6월 29일.  

싸이에서 2003년부터 놀았으니 11년 쯤 됐네요.

 

고혜경 선생님의 새로 나온 책을 읽는데 이런 말이 있대요.

'직업은 찾지만, 소명은 찾아온다'

직업을 찾아 고민하고 공부하고 일을 하면서 밖으로 다녔다면,

집에 돌아와 컴 앞에 앉아서 글쓰는 일은 안으로 안으로 향하는 길이었네요.

가만히 앉아서 포스팅이나 했을 뿐인데

이로 인해서 직업의 길 외에 또 다른 삶의 길이 열렸으니

확실히 소명은 찾아오는 것이 맞나봅니다.

 

이제껏 그랬듯이 늘 쓸 것이고,

쓰되 정직하게 쓸 것이고,

정직하게 쓰되 사랑의 빛에 비추어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렵니다.

보이지 않는 독자들을 생각하며 내면에 세워둔 보이지 않는 청중의 존재를 의식하고,

의식하는 나를 의식하며 오직 사랑이신 나의 예수님 한 분만을 의식하는 삶.

그것이 제가 살고 싶은 삶입니다.

 

문득, 앞으로 이 블로그에 몇 개의 글을 더 쓰고 생을 마감하게 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2001 또는 2002에서 끝난다 할찌라도 후회없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런 기회에 소리없이 읽고 나가시는 고갱님들 커밍아웃 한 번 해주시면 좋을텐데요.

헤헤. 강요는 아닙니다.

열 명 이상 커밍아웃 하지 않으면 앞으로 포스팅하지 않겠다.

이런 협박을 하고 싶으나,

자책골이 될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찾아와 읽어주시는 분들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보이지 않는 눈을 생각하고 믿었기에 2000 포스팅이 가능했습니다.

 

 

 

 

 

2000 포스팅 기념으로 남편 옆구리 찔러서 얻어낸 새로운 커피잔에 한 잔 하고요.

내일의 포스팅 꺼리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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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주일이지만 내 삶에서 '감사'를 길어올리자니 조금 난감해집니다. 감사 꺼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찾아 꺼내보고 정리할 긍정 에너지가 없네요. 며칠을 자괴감에 빠져 '부정'의 나날을 보낸 탓입니다.  감사주일에 감사의 글을 써야할 의무는 없지만 동생의 글을 올리면서 힘을 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교회 유치부에서 학부모 입장으로 감사주일에 편지를 읽는다고 합니다. 글을 한 번 봐달라고 보내왔는데 어느 부분 울컥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참말로 남매 아니랄까봐' 싶을 정도로 저와 생각이 비슷하네요. 드물게 사이가 좋은 남매이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동생이나 나나 이만큼 사람 노릇 할 정도로 자란 것은 서로 아버지의 빈 자리를 잘 채워준 탓입니다. 요즘은 동생 내외가 참 고마워서 '이렇게 고마워도 되나?' 싶은 정도네요. 사진은 얼마 전 광화문에서 40 일 단식하셨던 방인성 목사님을 찾아 뵌 동생 가족입니다. '인생역전' 아닌 '인생여전'이 감사한 시절입니다. 또 감사한 만큼 죄스러운 시절이기도 하고요. 어쨌든 저는 동생과 동생의 가족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2014. 인생역전을 기대하기 보다는 인생여전에 안심하고 감사하게 되는 한해였습니다.

 

지난 3, 올해 아흔이 되신 어머니가 넘어지셔서 고관절이 골절되었습니다. 90 나이에 고관절이 부러진 경우 1년 이상 살 가능성이 50%도 되지 않고, 살아 있다 해도 다시 걸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습니다. 수술을 하고 2달 간 노인병원에 입원하신 어머니는, ‘다시 교회에 걸어서 나가겠다는 일념으로 재활에 힘쓰셨고 결국 다시 일어나셔서 매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계십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어머니 입원해 계시는 동안 내가 이제 진짜 고아가 되는구나하는 두려움과 슬픔에 매일 밤 아이처럼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하나님! 고아가 되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3년 전에 오랫동안 해 왔던 목회와 시민단체 활동가로서의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거칠게 달려온 십 수 년. 많이 지쳐 있었고 나를 돌아볼 시간도 필요했습니다. 교회와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분주하게 뛰어다녔지만 그동안 가족은 방치되어 있었고 아내는 지쳐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40이 넘은 나이에 저는 새로운 일을 찾아야 했습니다. 무엇을 할지 정해 놓은 것도 없었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일을 주셨고 목회가 아님에도 일을 통해 비슷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신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을 주셔서 우리 세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해 주신 과분한 은혜 앞에는 그저 엎드려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편으로는 마흔이 넘어 생활전선에 뛰어든 사회 초년병(?)으로서, 가족들의 일상을 유지하는 동력을 제공하는 일이 때로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부족한 저에게 여전한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지난 시간 동안 우리 가정을 한결같이 지켜주신 것, 그 이상 어떤 것을 더 바라겠으며 무슨 감사거리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 범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자꾸만 어머니 병실 옆 침대에 누워 계시던 노인들 생각이 납니다. 집이 있고, 자식들이 있지만 여건이 허락지 않아 생전에는 자기 집에 돌아가지 못하실 할머니들의 한숨과 어머니를 부러워하던 그 눈빛을 생각하면 어머니의 회생이 기쁘기도 하지만 불편한 마음도 듭니다. 그리고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바다에 빠져 죽고, 학대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사라져 간 아이들의 비극을 생각하면 나와 내 아이들의 행복에 대해 감사하는 것에 매우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박노해 시인의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홀로 되어 노점상을 하며 다섯 남매를 키우시며 신산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분은 노점상을 하며 자식을 키우던 어려운 환경에도 특별한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잊지 않고 사셨습니다. 그런데 팔순이 되어서야 깨달았다고요. 그 이야기가 담긴 시 <감사한 죄>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죄책감마저 들기도 합니다.

 

 

감사한 죄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젊어서 홀몸이 되어 온갖 노동을 하며
다섯 자녀를 키워낸 장하신 어머니
눈도 귀도 어두워져 홀로 사는 어머니가
새벽기도 중에 나직이 흐느끼신다


나는 한평생을 기도로 살아왔느니라

낯선 서울땅에 올라와 노점상으로 쫓기고
여자 몸으로 공사판을 뛰어다니면서도
남보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음에
늘 감사하며 기도했느니라


아비도 없이 가난 속에 연좌제에 묶인 내 새끼들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경우 바르게 자라나서
큰아들과 막내는 성직자로 하느님께 바치고
너희 내외는 민주 운동가로 나라에 바치고
나는 감사기도를 바치며 살아왔느니라


내 나이 팔십이 넘으니 오늘에야

내 숨은 죄가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거리에서 리어카 노점상을 하다 잡혀온
내 처지를 아는 단속반들이 나를 많이 봐주고
공사판 십장들이 몸 약한 나를 많이 배려해주고
파출부 일자리도 나는 끊이지 않았느니라
나는 어리석게도 그것에 감사만 하면서
긴 세월을 다 보내고 말았구나


다른 사람들이 단속반에 끌려가 벌금을 물고

일거리를 못 얻어 힘없이 돌아설 때도,
민주화 운동 하던 다른 어머니 아들딸들은
정권 교체가 돼서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도
사형을 받고도 몸 성히 살아서 돌아온
불쌍하고 장한 내 새끼 내 새끼 하면서
나는 바보처럼 감사기도만 바치고 살아왔구나
나는 감사한 죄를 짓고 살아왔구나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묵주를 손에 쥐고 흐느끼신다
감사한 죄
감사한 죄
아아 감사한 죄

- 박노해 -

 

 

감사한 죄, 감사하지 못한 죄. 악하게 태어나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죄를 짓는 불쌍한 존재. 이것이 바로 죄인된 인생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 만은 망설임 없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고백합니다. ‘모든 것이 협력하려 선을 이룰 것이라는 주님의 변함없는 약속. 가난해도, 억울해도, 아파도, 슬퍼도, 설사 많은 걸 가졌다 하더라도 불안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죄인의 실존 앞에 하나님 나라라는 소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주의 질서를 지키시며 운행하시는 변함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어김없이 피어나는 길가의 장미꽃 한 송이를 보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그분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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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병실에서의 죽음>

 

 

 

현승이와 단둘이 차를 타고 오가는 길에는 늘 새로운 주제의 이야기 꽃이 피곤한다.

 

엄마, 나 장난감 좀 사 줘. 아무거나 내가 사달라고 하는 걸 그냥 딱 사 줘.

나 어린 아이로 엄마한테 장난감을 받고 싶어. 나 좀 이상하지? 히히.

아니, 안 이상해. 그런 마음 이해해. 엄마는 어른이어도 그럴 때 있는데.

엄마, 엄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뭘 어떻게 생각해?

아기로 생각해, 아니면  다 큰 아이로 생각해?

둘 다야. 어떤 때는 아기같고, 이렇게 얘기할 때 보면 어른하도 대화할 때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통하는 것 같애. 

에이, 나는 아이로 생각해주는 게 좋은데.

 

 

집에 돌아와서 설거지를 하는 중이었다.

방에서 혼자 놀던 현승이가 다가와 백허그를 하면서.

 

엄마, 난 엄마가 좋아다. 엄마 나는 엄마가 죽으면 살 수 없어. 

엄마가 죽으면 자살할 거야.

 

가슴이 콱 무너져서 고무장갑 벗고 안아주며 안심을 시켰다. 그리고 다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뒤통수가 뜨끈해져서 돌아보니 방으로 갔던 현승이가 뒤에 다시 서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그런 현승이 앞에서 갑자기 너무 당황이 된다. '무슨 소리야! 엄마가 왜 죽어? 엄마 안 죽어. 걱정하지 마' 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현승아, 엄마는 내일 죽을 수도 있어. 그러면 너는 그걸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거야' 이렇게 말할 뻔 했다. 왜냐하면 내 삶에서도 부모의 죽음은 예고없이 닥치는 공포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1 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이 내 인생에 남긴 흔적은 어떻게도 지울 수가 없다. 내 아버지가 그렇게 믿어지지 않게 죽었는데 '엄마 안 죽어'라고 뻥을 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냥 막 가슴이 무너졌다. 현승일 안고 '엄마가 여기 있잖아. 엄마가 지금 여기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만 반복했다. 잠들기 전에 감정이 가라앉은 후에 현승이가 그랬다. '엄마, 나는 너무 행복하면 두려워져. 아까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하니까 엄마가 죽을까봐 걱정이 됐어' 현승이의 또 다른 엄마였던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이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이해하기 힘든 죽음으로 인한 상실을 너무 어린 나이게 경험한 것이다. 엄마와 아들의 트라우마가 교차한 것이다.

 

다음 날 모임에 가서 상담 선생님께 이 얘길 했다. 그 아픔에 대해서 공감하시며 말씀하시길 '선생님이 아이를 너무 진솔하게 어른 대하 듯하는 것은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아이는 아이니까 아이로 대하면서 안심을 시켜줄 필요가 있겠다.'라고 하셨다. 돌아와서 현승이에게 '현승아, 엄마는 안 죽을 거야. 현승이가 어른 될 때까지 현승이 옆에 늘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외할머니 봐라. 엄마가 이 나이 되도록 건강하게 살아계시잖아. 엄마도 그럴 거야' 했다. 그랬더니 '그건 엄마가 결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야. 엄마. 사람이 언제든 죽을 수 있잖아. 사고가 날 수도 있고. 나는 그런 말을 한 거야' (안 통한다)

 

동생에게 현승이 얘기를 했다. 동생은 MBTI로 현승이랑 같은 NF. 이런 고민에 깊이 공감한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4학년 이후로 내내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었다고. 깊이 고민하고 답을 찾지 못했는데 어른이 되어 철학책을 읽다보니 자신이 고민했던 그 고민이 모든 철학자들의 고민이었다고. 현승이는 조금 일찍 그런 고민에 직면하면서 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구나. 같은 아버지의 죽음을 동생과 나는 전혀 다르게 경험해왔었구나. 동생은 죽음이라는 것에 침잠한 반면 나는 그것이 두려워 입에 올리지도 못했다. 준비되지 않은 어린 두 아이가 나름대로 상실감 속에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식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 부재를 일상에서 몸으로 느끼며 결핍감에 허덕였고 동생은 그것을 형이상학적인 고민으로 가져가 존재론적인 결핍으로 느꼈던 것 같다. 그래, 청소년기와 청년기의 동생과 나를 돌아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현승이 걱정을 너무 많이 하지 않기로 했다. 

 

나와 현승이가 이러고 있는 사이 남편은 새벽기도에서 '죽음을 짊어진 삶'을 설교했다고. 신해철의 죽음으로 다시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3년 전 아버님과 한솔이를 한 달 차이로 떠나보내면서 남편과 나, 현승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깊이 드리워진 이 실존적인 아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버지 장례식에서 상여를 따라가던 길에 아버지 친구 목사님에 내게 그러셨다. '울지 말아라. 아버지는 지금 천국에 가 계신다. 울자 마라' 그리고는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서 만나리' 찬송을 따라 부르셨다. 그때는 정말 뭔 말인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지만(그런데 왜 기억엔 남아 있지?)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참 의미없는 말이다. '이번에 서울 가믄 신실이 피아노를 알아보고 오겠다'고 간 아버지가 사라졌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아는 게 위로가 될 일인가. 아직도 내게 신앙심이 부족해서 '천국에서 만날 것이다'라는 말이 죽음으로 인한 이별에 그닥 큰 위로가 되지 않는다. 입주민에게 모욕을 당하고 분신하신 경비원 아저씨가 결국 돌아가셨다고 한다. 생활고로 목숨을 버린 세 가족 중 열두 살 짜리 아이가 남긴 유서를 보고 눈물 대신 현기증이 났다. 아프고 억울한 죽음의 소식들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나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 죽음과 맞닥뜨려 죽어내셨다는 것이 그나마 슬픈 희망이 된다. 그리고 부활하셨는데..... 아,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억울한 죽음으로 아이를 잃고,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이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는 어린 현승이에게, 그리고 내게 뭐라 말씀하실까?

 

'나는 삶이 가장 두려울 때 죽음도 가장 두렵다' 라고 브레넌 매닝이 말했다. 현존하는 부활을 사는 일상을 다시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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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때 국어 선생님께선 작문 숙제를 많이 내주셨다. 주제를 주고 자유롭게 쓰라고 하셨는데 기억나는 주제가 어머니, 만남, 중학교 3년, 이런 것들이다. 세 주제가 기억나는 것은 칭찬받은 기억 때문이다. 잘 쓴 글은 친구들 앞에서 읽어주셨는데 내가 '어머니'에 대해 쓴 글은 엄마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너무 진솔하게 써서 공개적으로 읽을 수가 없었다. 무슨 주제를 줘도 글이 다 비슷비슷하다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만남'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유난히 칭찬을 받았었다. 나는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 필요하다.'라는 얘기를 썼었다. 가끔 생각을 한다. 열다섯 살이 뭘 안다고 '자기 자신과의 만남'을 운운했을까? 도대체 뭐라 썼을지 다시 읽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자신과의 만남'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를 어렴풋이 알듯 말 듯한데 말이다. 정말 나답게 살고, 내게 주어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자발적으로 '고독'을 향하는 걸음이 꼭 필요하다는 걸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다. 귀에 이어폰 꽂지 않고 강변을 걷는 것, 몸이 감각에 집중해서 수영하는 것, 하루 오전을 다 비워 메시지 성경을 읽고, 성찰일기를 쓰고, 기도하는 것. 어설프지만 이런 노력이 나를 나 되게 하는 시간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시간으로나 에너지로나 널널한 잉여인간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도 '외로움' 아닌 '고독'의 삶을 지켜낼 수 있을까?

 

 

마음의 고독이 없으면

우정과 결혼과 공동체 생활의 친밀감은 창조될 수 없다.

마음의 고독이 없으면

우리가 이웃과 맺는 관계는 쉽사리 빈곤해지고 욕심을 내어

무언가를 바라게 되고,

집착하고 매달리게 되며,

상대방을 이용하려고 하고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다.
왜냐하면 마음의 고독이 없이는 

다른 사람을 자신과 다른 존재로 경험할 수 없고,

숨겨져 있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람들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Morton Kelsey, <The Otherside of Silence:A Guide to Christian Med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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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상 누구를 섬기거나 하지 않는 JP님이건만,
대학 때 가장 좋아하던 가수가 신해철과 윤상이었다며,

신해철을 잃고 생각이 많은 것 같다.

그러느라 자꾸 이 노래를 부른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내게 묻는 것도 아니건만 요즘 '어, 내가 원하는 게 뭐지?'

자꾸 내 행복의 안부를 묻게 된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하지?

답이 어렵지 않게 나온다.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목요일 오전이다.

어린이집 아가들 음악수업 때문이다.

지난 주에는 어느 반에 수업하러 들어가 앉았는데

평소 소심하여 신경를 많이 쓰고 있는 녀석이 다짜고짜 앞으로 나오더니 나를 꼭 안는다.

사정이 있어서 두 주간 음악수업을 빼먹고 오랜만에 만난 날이었다.

캬, 이런 느낌.

'행복'이란 말로는 부족하고 '감동'이란 말은 너무 저렴하다.

 

 

 

 

그들을 사로잡는 방법도 나는 안다.

앞으로 대주면 그냥 쿵 치고 말 북을
뒤돌아서 엉덩이 한 번 씰룩이고 대주면 깔깔대며 숨이 넘어가도록 좋아라 연주한다. 

 

 

 

 

유난히 두려워 하는 아이, 움추러드는 아이,

자세히 보아야 표정이 읽히는 아이를 특별히 아끼고 공을 들인다.

매 시간마다 기회를 주고, 긴 눈맞춤으로 말없는 격려주기를 끝도 없이 하는 어느 날.

처음으로 아이가 혼자 '아아아' 하고 내 소리를 따라할 때,

그런 때 거칠 것 없이 스스로를 인정해주게 된다.

어머, 나 유능해!

 

 

 

 

강사 페르소나, 작가 페르소나로 살면서 갈수록 고상을 떨고 있지만

아이들 앞에선 몸으로 하는 모든 걸 할 수 있다.

키보드 치다 바로 다리를 저렇게 찢어 올릴 수도 있고,

심지어 저 상태로 키보를 치기도 한다.

 

 

 

 

아직 자기방어를 모르는,

가까이 얼굴을 대고 눈을 맞춰도 눈동자 한 번 흔들리지 않는 투명한 힘.

'오래 눈맞추고 있으면 내 딱딱한 영혼이 좀 말랑해질까?'

따위의 머리 굴릴 틈 없이 그냥 몰입하게 된다.

 

 

 

 

스카프 하나로 얘네들과 놀 수 있는 것이 백 개는 아니고

열 개는 된다.

스카프 하나로 가르칠 수 있는 음악이론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시는가.

애들은 강아지랑 참 비슷하다.

스카프를 주면 비볐다, 던졌다, 깔아 뭉갰다, 목에 감았다.....

강아지 새끼들 노는 것 같다. 

 

 

 

 

보시다시피 아이들은 정말 강아지다.

나도 저 안에 있으면 나름 강아지다.

 

 

 

 

강아지도 됐다가, 지렁이도 됐다가, 벌도 되고 그러려면

어린이집에 도착, 주차한 후에 운전석에 놓고 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

머리, 체면..... 이런 것들.

그래서 몸이 가는대로 움직이고 열심히 움직이다 보면 가끔 저렇게 유체이탈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뭐니 뭐니 해도 으막션샘미의 필살기는 표정과 눈빛이다.

 

 

 

 

사실 편애를 많이 한다.

정말 미치도록 예쁜 아이가 있는 걸 어쩌나.

제일 하고 싶은 건 그런 녀석들 볼을 힘껏 깨물어버리는 것인데 말이다.

그 소원을 제대로 풀었다가는 포털 검색어 1위 되는 게 시간문제 일테니.

 

 

 

 

선생님 눈 감고 너네가 무슨 색깔 종을 쳤는지 다 맞힐 수 있어.

이거 몇 번 해주면 거의 신으로 추앙받게 된다.

 

 

 

 

열 번을 반복해도 계속 흥미진진이다.

과연 으막션샘미라 불리는 저 신께서 이번에도 맞힐 것인가! 두구두구.

 

 

 

 

저 정도로 흥미진진이다.

나 언젠가 이런 제목의 책을 내야할지도 모른다.

<아이들 웃기는 게 제일 쉬웠어요>

저러다 보면 어느 새 눈을 감고 '도미솔' 세 음을 구별해내는 아이들이 나온다.

히히.

으막션샘미의 전략이었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나 자신이 되어 엄마되기,

MBTI와 의사소통,

MBTI와 공동체 세우기,

MBTI와 연애,

에니어그램과 내적여정,

분석심리학..........

 

이런 강의와 공부를 쟤네들 데리고 하는 거?

음, 잘 모르겠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신해철의 목소리가 들리네. 헤헤.

 

그나이를 그나이를 그나이를 처먹도록 
그걸 하나 그걸 하나 몰라 
그나이를 그나이를 그나이를 처먹도록 
그걸 그걸 그걸 하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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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는 처음에 단지 집에서 가까운, 흔한 데이트 코스였다. 오래 두고 사귀면서 점점 더 속내를 알아가는 사람처럼 시간을 두고 사귐이 깊어졌다. 두물머리를 은근히 많이 아낀다. 그러던 중에  김훈의 소설 <흑산>에서 만난 두물머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황사영의 처가 동네 마재는 강들이 만나는 두물머리였다. 강원도 산협을 돌아나온 북한강과 충주, 여주, 이천의 넓은 들을 지나온 남한간이 마재에서 만났다. 강들은 서로 스미듯이 합쳐져서 물이 날뛰지 않았다. 물은 넓고 깊었으나 사람의 마을을 어려워하듯이 조용히 흘렀고 들에 넘치지 않았다. 김훈 <흑산> 중

으아아..... 사람을 어려워하듯이 조용히 흘렀고 들에 넘치지 않았단다. 내 말이! 두물머리는 조용하고 요란하지 않아 좋은 곳(인데 점점 관광객이 많아져서 요즘은 물 반 사람 반. 아쉽다)이다.

 


정약현은 두 줄기 강물이 만나서 더 큰 물을 이루어 흘러가는 물가의 고향 마을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 물의 만남과 흐름은 삶의 근본과 지속을 보여주는 산천의 경서였다. 그의 세 동생들도, 서로 말없는 중에 그 산천의 경서를 품고 유년과 소년을 물가 마을에서 자랐다. 정약현은 젊은 사윗감을 마재 마을로 불러서 강물이 만나서 새로워지는 흐름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약현은 그 어린 진사가 경서가 아니라 사물에 접하여 스스로 깨닫는 자득의 인간이기를 원했다. <흑산> 중

정약현이 젊은 사위에게 두 물이 만나서 새로워지는 흐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처럼 나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두물머리를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꼽아보니 많은 친구들을 데리고 두물머리에 갔었다.



선생님, 또는 친구, 감히 도반이라 호칭해도 좋을 분들과 두물머리에 다녀왔다. '전혀 이질적인 우리들이 어떻게 이렇게 친구가 되어 여기 같이 있을까?' 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지금 이 시간이 선물이다' '참 좋다' '너무 좋다' 하며 하루를 보냈다.

황사영은 처가 마을 마재에 올 때마다, 산 위에 올라가서 오랫동안 강물을 들여다보았다. 강은 흐르고 또 흘러서 합쳐지고, 합쳐져서 더 큰 물을 이루어 앞으로 나아가 도성의 들을 적시고 먹이면서 바다에 닿았다. 강은 합쳐져서 스스로 새로워지면서 새로운 들과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아갔다. 흐르는 강물 위에서 시간과 공간이 합쳐져서 앞으로 나아갔고, 그 강물이 황사영의 마음 속으로 흘렀다. 마음이 강물과 같아서, 마음이 세상으로 흘러 마음으로 세상을 이룰 때 세상은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그것은 푸른 강물처럼 분명했다.  <흑산> 중



두물머리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클라라 커피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클라라님은 나를 그곳에 데려간 또 다른 (감히) 친구 (실은 언니)의 안부를 물었다. 커피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맛있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싸고, 공간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좁다. 주인인 클라라님의 넘치지 않는 친절함과 따뜻함이 딱 김훈이 묘사한 두물머리와 같다. '물은 넓고 깊었으나 사람의 마을을 어려워하듯이 조용히 흘렀고 들에 넘치지 않았다'


관계에 대해 참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왔다. 정말 그렇다. 잘 하고 싶어서 너무 애를 쓰다 보오히려 일을 그르치고 마는 것처럼 에너지를 쏟는 만큼, 그 만큼 더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어렵고 아팠던 적이 많았다. 물론 그래서 마음이 자란 면도 없지 않다. 앞으로는 조금 더 가볍게,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에 매이지 않고, 관계를 누리며 살아야지. 하는 중이다.  이제 와 깨달은 것은 조금 늦되다 싶은 면이 없지 않지만. 오늘은 그저 참 좋았다. 돌아오는 길 신청곡 받아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설마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도 못하시고 최희준, 정미조, 트윈폴리오.... 라고 말씀하실 때마다 바로 검색해서 노래를 들려드렸다. (63 학번이라고 하셨던가? 아무튼 그 정도로 까마득한 날에 대학시절을 보내셨다니까 말이다) 정말 좋아하셨고 나도 그 노래들이 참 좋았다. '휘파람을 부세요' 정미조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휘파람을 불 수 있다면 마지막 혼자 운전하고 오는 길에 휙휙 불어댔을 것이다.  

처가에 갈 때는 송파나루를 지나는 강변길을 따라서 걸어가거나 말을 탔고 돌아올 때는 여주 쪽에서 내려오는 장삿배를 타고 두미협을 지나고 광나루를 지나서 마포나루에 내렸다. 강물 위에서, 황사영은 숨을 깊이 들이쉬어 강의 기운을 몸 안으로 끌어넣었다. 강은 황사영의 몸속 깊이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잇닿아 흐르면서 낡은 시간과 헤어지고, 헤어지면서 또 다가오는 시간을 맞아들이는 새로움이었다.  <흑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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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8일 목요일.
오래 전 꿈이 문득 다시 생각나 일기장을 들추어 보았다. 정확히 저 날이었다. 남편이 신대원을 마치고 풀타임 목회를 시작한 때이다. 청년부를 맡게 되면서 아주 자연스런 수순으로 나는 지휘를 그만두게 되었다. 말 그대로 아주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래야 한다는 분위기였고, 나 역시 남편의 청년사역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제껏 '내 사역'을 위해서 남편이 포기해주었으니(그 전 수 년 동안 내가 유치부 설교사역, 지휘를 선택함으로 남편은 고등부 교사, 청년부 교사 등을 포기했었다) 당연한 포기라고 생각했다. 별 감정의 찌꺼기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몸살이 났다. 몸살 중에 꾼 꿈이다.


내가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작은 화분들을 어떤 아줌마들이 마음대로 치웠다. 화분을 치웠다는 것보다, 마.음.대.로 치웠다는 것에 몹시 분노했다. 내게 어떤 의미인지 묻지도 않고 단지 화분이 작다는 이유로 그걸 치울 수 있느냐며 분노하고 울면서 꿈을 깼다. 남편과 이 꿈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작은 화분'은 나의 작은 소망, 작은 기쁨, 작은 꿈 등을 의미하며 내가 공들여 가꾸는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얘기 끝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고 그대로 그치지 않는 울음이 되어 펑펑, 엉엉 하룻밤을 울었다. 그리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하루 이틀 지나며 두드러기도 가라앉고 몸살도 가라앉으며 몸과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지휘하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늘 있지만 '아쉬움'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다시 지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지 않지만 절실하진 않다. 내가 얼마나 지휘를 좋아하고 그 순간 행복했는지를 생각하면 이 덤덤함은 엄청난 변화이다. 그 작은 화분 꿈 덕분이라 생각한다. 내가 의식으로 그럴 듯하게 정리한 문제가 정서적으로는 엉망진창이었음을 꿈이 알려주었고, 엉망진창이었던 마음을 똑바로 보고 감정을 쏟아내고 억울함에 이름 붙이고 하면서 그러저럭 정리된 것이다. 


그리고 이 일로 내게 온 선물은 코 앞에 닥친 중년 이후의 나날을 사는 태도에 대해서 새로운 눈을 열리게 되었다. 물론 저절로 된 것은 아니고 그 이후에 본격적으로, 치열하게
 했던 마음공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제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8)' 이 말씀을 가슴으로 알아듣게 되었다. 이 말씀 의지하여 하향지향적 삶을 추구한 헨리 나우웬의 고백은 외로운 여정에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그렇다고 지휘나 찬양인도 등 스포트라이트 받는 자리에 대해서 연연하는 마음이 온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다. 2008년 마지막 주일, 마지막으로 지휘했던 날 묵상한 말씀은 마태복음 6장이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6:1). 특히 이 말씀은 내 가슴에 콱 하고 들어와 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았느니라(6:5)' 젊은 날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애를 쓰면서 이미 받은 상이 많다. 물론 젊은 날에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만 일하지 않았다. 약간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또 어느 정도는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도 있었다.


그 해 지휘를 그만두고 내내 했던 일은 일주일에 한 번씩 청년부 목자모임을 위해서 식사준비 하는 것, 주일 청년 예배 시작 전에 커피를 갈고 내리고 하는 일이 전부였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밥하고 커피 내리는 일이 하찮아서가 아니라 밥하고 커피 내리는 자리가 스포트라이트 받는 무대가 아니어서다. 그때 그때 박수와 '아멘'이 터지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장 본 비닐을 양손에 들고 질질 끌듯이 걷는 길, 죽도록 힘든데 아무도 봐주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 음식을 12인분 준비했는데 다섯 명이 식사하러 왔다. 7인분에 들어간 내 노고가 증발해버리는데 어디다 호소할 곳이 없다. 이런 지질한 고통이었다. 돌이켜보면 고급인력으로서 그럴듯한 교회봉사는 못하고 밥이나 하던 그 시간, 비로소 내가 나다워지는 시간이었다.


어릴 적부터 무엇을 혼자 하는 걸 참 싫어한다. 뭐든 친한 친구와 엄마와 동생과 같이 하고 싶었다. 혼자 밥을 하던 시간은 '고독'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 언제 어느 때라도 나를 바라봐주는 눈이 필요했던 것 같다. 글을 쓰고 강의준비를 하고 묵상을 하는 요즘, 혼자있을 수 있는 힘이 그때로부터 길러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는 것은 단지 젊은 날에 살았던 외향적이고 주도적인 방식에서 물러서서 조용히 밥이나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내 존재의 방식을 바꾸겠다는 뜻이다.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자발적으로 나를 묶은 띠를 타인에게 내어주는 태도 말이다. 가까이 남편에게 그러하고, 아이들에게 그러하고, 친구들에게 그러하고, 한 번 만나고 잊혀질 강의듣는 청년들에게 그러하고, 얄미운 동네 사람에게 그러하고.  


문득 5년 전의 꿈이 생각나고, 그 꿈이 안내해준 메시지가 생각나 더듬다보니 '주도권'을 포기하기 싫어 부들부들 힘을 주고 있는 내 영혼이 보였다. 본회퍼는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사귐보다도 사귐에 대한 자기의 꿈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본래 뜻하는 바가 정직하고 진지하고 희생적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그리시도인의 사귐을 파괴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리스도인의 사귐을 꿈으로 글 보는 사람은 하나님이나 남이나 자기에게 자기에게 꿈을 이루자고 요구하게 됩니다. 그는 요구하는 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사귐 속에 들어가서 자신의 법을 세우고는, 그것을 따라 형제뿐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심판합니다. 그는 형제 사이에서도 모든 사람을 나부라기나 하는 듯이 떡 버티고 서 있습니다' 


5년 전에 꿈으로 말씀하시더니 그 꿈으로 오늘 다시 말씀하시는구나. '나는 자기 꿈을 사랑하는 것을 미워한단다, 얘야' 네네, 알았다구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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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컨디션이 안 좋더니 어제부터 정식으로 몸살감기다. 남편이
'병원에 꼭 가' 하고 나갔다. 그러면 괜히 걱정을 끼치고 다시 걱정하는 말을 들으며 애정을 확인하고픈 유치한 마음으로 안 가고 버티기 일쑤다. 어제는 여유있게 앙탈을 작당할 처지가 아니었다. 진통제라도 먹어야 살겠기에 내 발로 병원에 가 약을 받아왔다. 약 먹고 잠시 눈을 붙이니 거짓말처럼 두통도, 눈이 아픈 것도, 근육통도 가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어제 이후로 약발 리듬에 기대어 지내고 있다. 약기운 오르면 잠시 빨래도 돌리고, 약기운 떨어지면 다시 침대에 코를 처박고 엎드렸다가 베개를 머리에 올리고 압박을 했다가, 잠이 들었다가. 환자놀이 하기에 딱 좋은 날씨다. 아침에 페북을 열었는데 강준만의 신작 <싸가지 없는 진보>에 대한 두 줄 짜리 평을 보고 빵터졌다. '강준만은 책 좀 그만 내고 자기성찰의 시간을 좀 갖길' 이란다. 거기다 댓글을 달았더니 '언니는 자기성찰 그만 하고 책 좀 더 내세요' 란다. 순간적으로 환자놀이를 잊고 빵터져버렸다. 감기몸살까지야 모르겠지만 최근 나를 못살게 구는 것이 애매한, 어설픈 자기성찰의 덫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내가 성찰적인 삶을 잘 살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성찰'에 함몰되어 있다는 뜻이다) 개인적인, 신앙적인, 교회적인, 국가적인 모든 이슈를 통해 자기성찰의 길만 찾으려는 내가 좀 미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게 제대로 가는 건가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참 외롭다고  느낀다. 이 와중에 읽던 책의 글귀는 나를 두 번 죽이고 있다.


얍복강가에서 형 에서를 만나러 가기 전날 두려움에 휩싸인 야곱은 밤새도록 누군가와 씨름을 하였다. 융 심리학적 해석은 야곱의 자아(Ego)가 가장 심원하고 깊은 자기(Self)와의 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이 싸움 끝에 겨루던 자는 야곱의 엉덩이 뼈를 치고 떠난다. 때문에 야곱은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한 존. A. 샌포드의 해석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아가 자기(Self)에게 상처입은 것을 볼 수 있다. 무의식과의 깊은 만남은 상처를 남긴다. 그런데 그 상처를 통해 무의식의 생명과 에너지가 흘러들게 된다. 야곱의 상처 입은 엉덩이는 그가 지금 하나님과 만남으로써 얻게 된, 그가 감당해야 할 신성한 상처를 표상한다. 그러나 내면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의식하게 됨으로써 자아가 그 상처를 보살필 수 있는 한, 그것은 신경증적이고 극심한 상처는 아니다.
(나를 털썩 주저 앉힌 건 이 부분부터이다)
이런 식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내적인 삶과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 운명이다. 그들은 매일 그들의 꿈의 의미를 찾아야 하든지, 아니면 기도나 명상을 하든지, 아니면 그들 삶의 필요한 부분을 스스로 치유하는 다른 형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들은 그들 안에 있는 신성한 힘에 의해 상처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방식으로는 활력 있는 삶을 살 수 없다. 그러한 사람의 그의 상처를 무시하며 다시 병에 걸리고 만다. 즉 상처가 더 악화돼서 그에게 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상처가 보살핌을 받게 되면, 그것은 새로 됨과 생명의 원천으로 밝혀질 것이다. 그것을 통해 새로운 삶의 차원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의식의 지평이 확장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신성한 상처다.
<융 심리학과 치유> 중.


엉덩이 뼈의 골절로 찔룩찔룩 걸어가는 야곱의 모습이 내 모습 같다. 얍복강을 건너야 하고, 그 너머에는 두려운 에서 형이 기다리고 있고, 챙겨야 할 식솔은 많다. 하나님과 씨름하여 얻은 것이 형으로부터 보호해주시겠다거나 무찔러주시겠다는 약속도 아니고, 고작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는 것이었다. 그느무 이름이 뭐라고 .그리고 찔룩찔룩.... 아, 하나님은 늘 이런 식이셔!  야곱은 찔룩찔룩. 나는 크르릉 크르릉, 코 푼 휴지로 성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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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짠함 1

가끔 다른 엄마들로부터 그런 조언을 듣습니다. '애들을 너무 그렇게 강하게 키우지 말고 좀 해주고 차도 태워 데리고 다니고 그래요'우리 채윤이 한참 전부터 지하철녀로 유명하지요. 스스로 독립적인 면도 있지만 엄마가 너무 따까리를 안 해주는 탓도 있어요. 학교에서 하는 봉사활동 시간이 있는데 것도 혼자 다 알아보고 신청해 놓았습니다. 오늘 방화동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9시까지 가야 한다고. 길 검색을 해보니 대중교통으론 1 시간, 자동차로는 23분. 안 되겠다. 인천에서 강의가 있었는데 일찍 나가면 채윤이를 태워다 줬습니다. 채윤이 감동을 해가지고 '이 엄마아 웬일이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 끝나고도 엄마랑 같이 가면 안 돼?' 했는데 시간도 안 맞고, '갈 때는 지하철 타고 가' 했지요. 강의가 늦게 끝나기도 하고, 차에서 내려 혼자 가는 뒷모습이 짠하기도 해서 마치고 태우러 갔습니다. 점심시간 훨씬 지나서 배고프다며 기다리는 사이 김가네 김밥에 들어가서 우동 혼자 먹는 중딩. 강의한 곳에서 점심으로 준비된 도시락 두 개를 챙겨주셨는데 차에 타자마자 보더니 '어머, 맛있겠다' 하면서 뜯어서는 달리는 차 안에서 뚝딱 해치우는 여중생. 오늘은 이 모든 씩씩함이 조금 짠합니다.


# 짠함 2

낮에도 집에 혼자 있는 걸 그렇게 무서워 하더니 이번 방학부터는 확실히 달라진 현승이. 방학에도 누나는 연습 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엄마 역시 강의로 하루 종일 나가 있어야 하는 날에 혼자 척척 점심도 챙겨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집에 밥이 있어도 차려 먹는 건 싫다고. 혼자 밥을 차리면 엄마 없는 아이처럼 느껴져서 싫다고 꼭 김밥을 사다 먹습니다. 강의 마치고 전화했더니 쩝쩝거리며 받습니다. '엄마, 나 김밥을 다 풀지 않고 차에서 먹을 때처럼 길게 들고 먹으니까 안 흘리고 먹게 돼. 초한지 읽으면서 먹고 있어. 다 먹고 한강에 축구하러 갈 거야. 알았어. 알았어. 선블록 듬뿍 바를게' 애기처럼 보채지도 않고 언제 오냐고 묻지도 않는 씩씩함에 더 짠합니다. 저녁 먹고 영화보러 가는 누나 태워주고 영화 다 볼 때까지 카페에서 책 보고 온다고 나간 아빠. 엄마랑 둘이 있게 됐는데 원고 써야 하는 엄마 옆에서 '어휴, 어휴... 엄마, 아니야'하더니 '나는 참 오늘 가엾은 것 같애. 점심도 혼자 먹고. 지금은 또 아무도 놀아주는 사람 없이 이러고 있어야 해. 엄마 장은 다 봤어? 장이라도 보러 나갈까? 안 되겠지? 원고 써야지?' 제대로 가엾다. 너.


# 짠함 3

몸이 전같지 않아서 강의 마치면 진이 쪽 빠지고, 게다가 이번 주 내내 몸도 마음도 다운 다운 모드였습니다. 강의 마치고 채윤이 데리고 들어오니 주말 교역자 축구 마친 남편이 씻으러 집에 와 있습니다. 점심 안 먹었다고 짜파게티를 끓이고 있습니다. 순간 화가 불끈. '아니 운동하고 무슨 짜파게티야?' 다른 목사님을 식사하러 갔는데 속도 안 좋고 몸이 지쳐서 일단 집으로 왔답니다. 남편은 다시 나가고 채윤이는 한 시간 봉사활동을 더 채우기 위해 교회로 갔습니다. 나는 잠시 떡실신. 정신 차리고 일어나 원고 좀 쓰고 있는데 남편 전화. '여보, 채윤이 7시에 영화본다는데 저녁 일찍 먹어야겠네' 으아.... 저녁. 생각해보니 쌀도 떨어졌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일으켜 나가 쌀을 사고 장을 봐와 진땀 흘리며 저녁 준비. 남편 역시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나 못지 않게 저조한 줄 알기에 손도 까딱 안 하는고 있는데도 말 한 마디 못하겠습니다. 그저 속으로 얄미워 죽겠습니다. 저녁 먹다 영화시간 다 되어 동동거리는 채윤이 태워주겠다고, 아예 카페에서 기다렸다 태워오겠다고 나가는데 '어라, 설거지도 안 한다고? 매를 버네' 꽝꽝 설거지를 하고나니 분노가 피곤함을 이기고 갈수록 활활 타오릅니다. 그때 온 남편의 메시지. '저녁 하느라 힘들었지? 블라블라....' 솔직하게 오늘 상황을 읊어서 보냈더니 월요일 데이트 때  둘이 셀카로 찍었던 사진을  띡 보내왔습니다. 한 장 보내더니 또 한 장, 띠리릭, 띠리릭, 계속 보내 오는데 '우리 둘이 셀카를 이렇게 많이 찍었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진이 다 있습니다. 둘이 얼굴 딱 붙이고 찍은 사진들 이어서 보니 급 뭉클해집니다. 줄줄이 오던 사진 아래 마지막에 짧은 메시지가 띠리릭. '갑자기 눈물 난다' 나도 갑자기 울컥입니다. 이 남자 착해가지구 짠하게 하네.


# 짠함 4

짠하고 불쌍한 사람들 투성이입니다. 어찌 된 일이 불쌍한 사람들이 더 불쌍해지는 나날의 연속입니다. 마음이 잘 추스러지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짠하고 불쌍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뭘 이렇게 많이 지고 사는지. 누가 지워준 짐도 아닌데 스스로 싸들고 내려놓지 못하는 짐이 어디 한 둘이어야지요. 짠함 2, 현승이가 '엄마, 우리 카페 갈래? 거기 새로 생긴 카페 있잖아. 엄마 거기 가서 커피 마시면서 원고 쓰고, 나는 책 보고. 어때?' 가엾은 현승이 말 들어주자 하고 나왔는데 나오길 참 잘했네요. 시원하게 한 잔 하니까 화나고 무기력하면서도 복잡했던 마음에서 독기가 빠지고 '짠함'으로 정리되며 한결 나아지는군요. 마저 한 잔 쭉 들이키고 원고를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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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주일예배를 본당에서 드리지 못했다. 주일에 강의가 있어서 집에서 가까운 별관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고, 두어 주 집을 비우기도 했고 이래저래 본당까지 가는 길이 멀기만 했었다. 그러나 담임 목사님이 계속 설교하셨더라도 그 정도 이유로 본당사수를 포기했었을까? 끝없이 밀려드는 교인들을 보면서 '과연 무엇 때문에 이렇게들 모여들까?' 생각하면 담임 목사님의 설교이다. 나 역시 모든 것을 떠나서 지난 2년여 목사님의 설교가 교회생활의 전부라 여기며 살지 않았던가. 이 교회로 오기 전 몇 년 동안 깊은 회의 속에서 기독교 신앙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심정을 세세하게 어루만진 것은 담임 목사님의 설교였고, 새신자반으로 시작하는 '반' 시리즈였다. 가톨릭 영성으로 도피하여 방황하던 따뜻하게 안아 제자리 찾게 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단지 목사님 설교가 아니기 때문에 본당사수에 대한 열정이 시들해진 것에 대해서 내게 물어야 한다. '아직도 권위자를 의지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거니?'


오랜만의 본당사수 예배를 드린, 초심을 잃은
 내게 설교 본문은 말했다. "네가 초심을 잃은 이유를 말해줄까? 30 분씩 서둘러 집을 나서고 그럴 때마다 설렜던 바로 그 열정이 사라진 이유를 말해줄까? 열정이 사라진 상태,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무덤덤한 마음 상태, 무엇에도 영향받지 않겠다는 경직된 심장이 원인을 알고 싶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부요하다 하고, 부족한 것이 없어 나 스스로 충분하다는 존재론적인 교만이 나를 눈 멀게 하여 정작 배고프고 목마른 내 영혼을 감지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 교회 사람들은 다들 담임 목사님 설교 때문에 교회 다니는 거지, 공동체를 지향하지도 않고 그야말로 제자가 아니라 회원일 뿐이다. 맘에 드는 예배를 서비스받는 미끈한 단체에 다닐 뿐이다. 라 생각했지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담임 목사님의 설교 때문에 교회 다니는 사람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면서 말이다.


보다 진실하게 나를 돌아보면 내 영혼 많이 외롭다. 이 교회 처음 왔을 때처럼 아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애쓰다 상처받고, 그래도 또 다시 일어나 애쓰다 지쳐 나가떨어질 정도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없어서 외롭다. 외롭고 공허할수록 나는 부요하다, 부족함이 없다, 그 어느 때보다 혼자서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잘 가지고 있다, 교회 밖에서 좋은 벗들을 만나 풍성하고 깊은 교제를 나누고 있다, 그러니 내가 무엇이 가난하고 곤고한가! 라며 속이고 있지만 내게는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흘러나오는 열정이 사라지고 있다. 나는 괜찮지 않다. 누구보다 가난하고 누구보다 목마르고 누구보다 헐벗었다. 내 발로 서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여전히 좋은 설교에 내 신앙의 수준을 걸고 있는 유아적인 의존성 아래 있다. 본당으로 가길 잘 했다. 불로 연단한 금과, 흰옷과 안약이 필요하다. 그것들이 촌스럽고 지질해 보여도, 사실 나는 그리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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