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이 안 된 아이들과 엄마 아빠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좋은 때다~'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물론 아이들 떼놓고 달랑 부부끼리 데이트 하는 우리가 그들의 로망일테지만. 아이들 어릴 적에 여행다녔던 기억이 벌써부터 그립다. 여행지도 여행지지만 오가는 자동차 안의 추억은 방울방울이다. 끝도 없이 부르던 노래, 알쏭달쏭 퀴즈, 그러다 고꾸라져 잠든 녀석들. 녀석들이 잠들면 앞좌석 그제야 어른 모드로 대화할 수 있어서 그 시간이 꿀 같았던. 넷이서 기분좋게 여행가는 것을 포기한지 오래. 일단 채윤이가 시간도 없고 관심도 없다. 설령 가더라도 모든 게 심드렁. 걷지도 말고, 구경도 말고, 폰으로 음악이나 듣다 뒷자석에서 쳐자는 게 최고라는 태도에 엄마 아빠는 뚜껑이 열렸다 닫혔다 했다.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아쉬웠지만 놓아주기로 했었다. 그래, 이제 떠나라. 그래서 지난 여름, 작년 여름 휴가도 가지 않았다. 가더라도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화내지 않고 돌아오는 것이 소박한 목표였었다. 왠일인지 얼마 전부터 두 녀석 다 어디 여행 가고 싶다고 노래를 하더니 휴일에 속초에 가잔다. 채윤이는 어디가 됐든 가족과 함께 가고 싶단다. 현승이는 회가 너무 너무 너무 먹고 싶단다.  그래서 한글날 아침 6시 30분 기상, 속초로 출발했다. 일정은 오직 하나. 바다 보고, 회 먹고. 어머, 이 녀석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착했다. 물론 위기는 여러 번 있었다. 설악산을 굳이 걸어야 하겠냐고, 그냥 차로 한 바퀴 돌고 나가면 안 되겠냐고. 또는 차에서 듣는 음악의 취향 같은 것들도 살짝 충돌이 있었으나 전과 다른 느낌이다. 채윤이 얼굴에서 개그가 읽혀진 적이 언제던가. 저런 사진을 본 적이 언제던가.



어쩌면 얘, 현승이가 위험한 애다. 사춘기 끝물 채윤이보다 슬슬 사춘기가 오고 있는 현승이. 그래도 엄마 아빠랑 세대 음악 취향이 비슷해서 다행이다. 오가는 차 안에서 현승이 DJ 주도로 함께 듣는 노래가 이문세, 김광석, 이선희, 이적이었으니. 히든싱어나 슈스케 같은 것이 세대와 세대를 음악으로 이어주고 있다는데 현승이는 유난하다.  "엄마, 나는 왜 이렇게 아이돌 노래가 싫고 엄마 아빠들 시대 노래가 좋아? 나 병 걸린 거 아냐? 노인병. 나 노인병인가봐" 노인병 걸린 현승이와 노인이 되어가는 엄마 아빠의 음악이 싫은 채윤이는 이어폰 꽂고 혼자만의 음악을 듣는다.



그래도 확실히 채윤이의 몸과 마음이 다시 엄마 아빠에게 가까워졌다. 풍경을 바라보며 즐길 줄도 알고, 심지어 가족이 함께 하는 그 자체가 좋단다. 아빠와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뭣이냐 나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질투가 나진 않고, 약간은 부럽다. 저들의 기럭지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회 접시를 앞에 놓고 행복에 겨운 인증샷을 찍으려 했건만 가장 많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현승이는 뿔이 났다. 지금이 먹을 때지, 사진 찍을 때냐는 것. 그래서 마지못해 찍다가 결국 찰칵과 동시에 앵들 밖으로 도망간 현승이, 애매하게 짤린 채윤이. 둘 다 버리고 회와 부부만.  




이유식 할 때부터 웬만하면 뱉는 게 일상이었던 배트맨 현승이가 회를 무지하게 먹어댔다. 그리고 마지막은 매운탕. 매운탕이 나오자 우리 모두 김수영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푹 끓여야 돼. 한참 끓여' 하시는 아버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매운탕을 참 좋아하셨다. 그리고 매운탕의 생선 대가리를 가져다가 '이게 제일 맛있는 거다' 하시며 살뜰하게 발라드셨다. 회를 먹고 매운탕이 나올 즈음에는 소주병이 거의 비어가는 기분이 딱 좋아지시는 시점이었다. 그래서 말씀도 많아지셔서 분위기가 무르익었었나보다. 할아버지와의 그 좋았던 기억이 보글보글 매운탕 남비에 끓고 있었던 것. 점점 아버님을 닮아가는 남편은 회를 먹을 때도 세 식구 먹으라고 안단테로 젓가락질을 한다. 그리고 생선 대가리를 턱 갖다놓고 발라 먹는다. 

 

 


다시 먼 길 운전해야 하는 아빠는 잠시 차에서 눈을 붙이고 셋이서 바다를 즐기기로 한다. 현승인 벌써부터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 제꼈고, '야, 나중에 어떻게 할려고?' 하면서 눈살을 찌푸리던 채윤이도 어느 새 벗어 제꼈다. 한참을 놀고 나서 엄마가 커피 마시고 난 종이컵으로 바닷물 떠다 발 씻겨 주기. 세족식을 한다. 바로 깔아서 만들어 본 스냅무비 처녀작이다.   




아이들 어렸을 적 그 유쾌하고 알콩달콩 재미나던 가족여행은 끝났구나, 싶었는데. 아, 그게 끝나긴 끝난 것 같다. 하지만 같이 여행도 다니지도 않을 것 같았던 채윤이가 다시 돌아와주니  모든 게 완전 끝은 아니구나. 하루가 다른 현승이가 또 사춘기를 맞아 어디로 튈지 모르겠지만, 놓아주면 다시 돌아올 날이 있겠구나. 채윤이 말마따나 가족들이 그냥 함께 있기만 해도 좋다는 걸, 나도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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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있어 대전에 내려가는중이다.
잠탱이 현승이는 어제 밤부터
'엄마가 일어나서 화장하면 난 그 소리에 깰 수 있어. 엄마 얼굴 볼 거야' 했다.
잠탱이 현승이가 정말 6시부터 일어나서 안아주고 안녕을 해줬다.

집을 나선지 10분도 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엄마, USB 놓고간 거 아냐? 아~ 회색 아니야? 알았어. 잘 갔다 와?"

기차 탔는데 또 전화가 왔다.
"엄마, 아빠 오늘 아침 회의 있어? 같이 아침 먹을 수 있어? 아~ 그래. 기차 안이야? 알았어. 안녕"

계속 전화하는 이유를 안다.
현관 앞에서 인사하곤 '엄마 가니까 싫다' 했다.
저녁이면 보는데 뭘 이렇게 유난을 떠냐? 엄마 중독자!
라는 건 어른 생각이다.

나도 어릴 적, 엄마 아버지 같이 심방 가고 집에 동생이랑 둘이 있는 게 참 싫었다.
엄마가 집에 있어야 좋았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아이에게.

금방 된통 혼나고 현관을 나가서는 현관 앞에서 넘어져서 아프다 울며 뛰어 들어와 엄마 품에 안기던 채윤이. 초등 1학년 적 그 일을 나는 잊지 못한다. 방금 전 고통의 근원이었던 엄마가 세상 밖 고통과 맞닥뜨렸을 때 바로 뛰어들 품이 되는 것.
내가 엄마라니! 내가 이 아이의 엄마라니!

아이들에게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아이의 맘으로 생각하면 현기증이 난다.
가장 두려울 때, 외로울 때 부르는 이름이 엄마, 엄마이다.

그런데 정작 엄마는 그다지 위대한 존재가 못 된다.
위험에서, 위험 앞의 두려움에서, 외로움에서 아이를 도와 건져낼 힘이나 능력이 없는 존재다.
그래도 아이들은 가장 위급한 상황에선 엄마, 엄마 부른다.

엄마 중독자 현승이의 전화가 왜 이리 미안하고 아픈지 모르겠다.
아이의 영정을 품고 아스팔트 바닥에서 밤을 지새운 단원의 엄마들 생각이 자꾸 난다.
이 엄마들 가슴에 울리는 아이의 '엄마, 엄마' 뼈에 사무치는 고통일텐데......
아, 나는 그 고통을 상상할 수도 없다.

엄마 껌딱지 현승이의 '엄마' 소리에 눈물이 난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자꾸 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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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라며 새 운동화 신고 룰루랄라 등교한 너희들은 모를 것이다.
고생이 많다며 가끔 내 등 토닥여주는 남편님도 모를 것이오.

1,2월 긴긴 방학동안 엄마가(아내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는 걸.
내복 한 벌 쫙 빼입고 거실 바닥을 뒹굴며 주기적으로다가
"엄마, 심심해. 나 뭐해?" 이럴 때
소금통이나 간장병을 통째로 부어주고 싶었던 그 짜디짠 심정.

방금 점심 설겆이 끝냈는데
"엄마, 저녁에 우리 뭐 먹어?"
하악! 엄마는 밥 주는 기계가 아니야.

엄마, 엄마~아, 엄마? 엄마를 부르는 산울림 소리, 엄마를 부르는 무시무시한 소리.


 

개학이다! 해방이다! 엄마들의 개학파티다! 에헤라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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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재워놓고 시간을 쪼개 쓰는 엄마처럼 살금살금 아침 시간을 보냈습니다.
녀석들 늦잠을 만끽하는 사이 행여 깰세라 소리 없이 커피 내려 마시면서 꿀독서 시간 누려~
12시간 잤다면서 머리에 새집 짓고 앉아서 늦은 아침으로 떡국을 맛있게나 먹었습니다.


렛잇고, 렛잇고~
요즘 틈만 나면 거실을 꽉꽉 채우는 겨울 왕국 OST에 길을 걷다가도 환정이 들릴 지경.
식사를 하면서도 영화 남매가 영화 토크로 시간 가는 줄 모르더니.
둘이 방에 가서 누나는 피아노 치고 동생은 바이올린 들고
연주 삼매경이었습니다.
듣기만 하면 거의 똑같이 쳐내는 누나가 반주해주고 어설픈 음악가 현승이는 가끔 삑사리 내가면서 멜로디를 이어갑니다.
두유 원나 빌...삑~   스노우맨......


오래 전, 두 녀석이 거실에 온갖 베개, 우산, 쟁반, 모자.... 다 꺼내놓고 상상놀이 하던 그 화기애애하던 느낌이 살아왔습니다. (오랜만에 귀엽군요.)  
설거지 하며 창 밖을 보니 눈이 간지럽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둘이 저렇게 잘 놀고 있으니 나는 혼자 동네 카페에 나가서 독서 누릴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엄마 나갔다 올게. 하면 분위기 다 깨지는 것을 압니다.
희한하게도 놀고 쉬는데 엄마라는 존재가 한 개도 필요없음에도 엄마가 없으면 놀이가 안 되는 느낌, 그거 나도 어릴 적이 있어봐서 압니다.
일을 하든지 혼자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든지, 그러다 가끔씩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해대도
엄마가 있어야 휴일의 느긋함과 풍성함이 만땅으로 채워지는 느낌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쳐 카페가서 된장질 누리는 것 포기하고
렛잇고~ 렛잇고~ 깨갱 깨갱..........
이 시끄러운 평화를 지켜주기로 했습니다.


여름 뜨거운 해변을 누리는 귀여운 눈사람 울라프처럼,
기분 좋은 모순이 우리 집에도 충만합니다.
따뜻한 겨울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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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마치고 혼자 시간을 좀 가지고 싶어 동네 카페에 갔다. 우유 먹고 기저귀 차는 아이들도 아닌데 방학이라 내내 붙어 있는 시간이 참 힘겹다. 내가 책 보고 싶으면 보고 글 쓰고 싶으면 쓰면 될만큼 아이들이 컸는데도 말이다. 읽고 있는 책 진도를 좀 뺄 겸, 틈새 자유를 맛볼 겸 카페를 찾은 것이다. 얼마 안 돼 현승이에게 어디냐는 문자가 왔다. 어디라고 했고, 오지 말라고 했다. 30분이 안 되어 카페 문을 열고 나타났다. 으이그, 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블루 레모네이드를 시켜주니 이가 퍼레지도록 마시다 대뜸 질문을 했다.


♥♥
엄마, 엄마는 현실로 돌아가는 게 어때? 현실로 돌아가는 게 좋아? (이게 무슨 소린고?) 무슨 말이야? 아니, 그러니까.... 이런 데 카페에 있다가 이제 현실로 돌아가잖아. 엄마가 현실로 돌아가면 밥도 하고 일해야 하잖아. 그런 거. 돌아가고 싶어? 엄마는 돌아가고 싶은 것 같아. 나는 아닌데.... (내가 돌아가고 싶겠냐?) 일상, 말하는 거지? 엄마가 돌아가고 싶어하는 걸로 보여? 그런 것에 적응이 빠른 것으로 보이는 게 아니고? 맞다! 엄마는 그런 적응이 빠른 것 같아. 나는 적응이 빠르지도 않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 예를 들어, 런닝맨에 완전히 빠져서 보고 난 다음에 현실로 돌아오기가 싫고 좀 기분이 이상해. 덕소(할머니 댁)가 좋은 이유는 계속 티브이를 보면서 현실로 빨리 돌아오지 않으니까 좋은 것 같애.


♥♥♥
주일 예배를 마치며 부르는 찬송이 575장 '나 맡은 본분은'이다. 일주일 중 내 마음의 옷깃을 가장 경건하게 여미는 시간이 주일 예배이다. 예배를 마치며 부르는 이 찬송의 2절 가사 '부르심 받들어 내 형제 섬기며 구주의 뜻을 따라서 내 정성 다 하리'는 마음이 찌릿하여 그냥 넘어가질 못하는 부분이다. '내 형제'에서 두 아이 채윤이와 현승이를 생각한다. 다음 한 주간 두 아이에게 마음으로부터 정성을 다 하는 것, 존중하고, 자유롭게 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30분 일찍 가서 본당을 사수하는 정성과 마음가짐으로 일상에서 아이들을 대할 수 있으면 내 인생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리가 너무 커서 이 부분을 찬송할 때마다 목이 멘다.


♥♥♥♥
큰 아이든 작은 아이든 엄마로 살면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요.'라고 하는 분들 존경한다.(라고 쓰고 뻥 치시네 라고 읽는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악질 엄마는 아니다. 나름대로 끼니도 챙기고 같이 놀기도 하고 공부도 봐주고 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 나는 안다. 아이들과 있는 내 모습이 내 본질과 가장 가깝다는 것을. 예배드릴 때는 물로이고 강의를 마치고 상담을 요청하는 청년들에게 나 참 친절하다. 제자들이 찾아와 만날 때, 통화할 때도 물론 유쾌하고 친절하게 대한다. 하다못해 거리에서 길을 묻는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대답하고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떠올릴 때 진정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나름대로 괜찮은 인간의 페르소나를 구가한다. 그런데 아이들 앞에서, 엄마 페르소나일 때는 상황이 다르다. 원초적 신경질과 짜증과 악담이 저절로 나온다. 이게 내 본질에 가깝다. 내게 진짜 약자는 밀양의 어르신들이 아니라 채윤이와 현승이다. 난 이 아이들 앞에서 어떤 폭력도 행사할 수 있고, 행사하고 있다.


♥♥♥♥
예배 시간의 나도 나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앞에서 분노 폭발하는 나도 나다. (우리 아이들 수수께끼 놀이 중 하나, '중성자 폭탄보다 더 무서워서 터지면 지구가 폭발하는 폭탄은?' 정답은 물론.....ㅜㅜㅜㅜㅜ) 이쪽의 나에서 저쪽 나까지 머나먼 거리를 좁혀가는 것이 소명이고 성숙이고 자유라고 생각한다. 물론 멀었다. 인정하고 기도하며 애쓰는 한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낫지는 않겠지만 몇 년 후에는 아주 조금이라도 좁혀질 거라 믿는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상담을 하며 받는 찬사가 있다 하더라도 내가 아이들 앞에서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이상 내 평균점수가 어딘지 잊지 않을 것이다.


♥♥♥♥
블루 레모네이드를 다 마신 현승이는 '엄마, 나 여기 있을까? 아니면 먼저 갈 테니까 혼자 책 더 보고 올래?' 한다. 그리고 홀연히 나갔다. 잠시 엄마에게 런닝맨 보는 것 같은 환상적인 시간을 주겠다는 마음이다. 마음에 고인 찬송가 가사를 다시 되뇐다. '부르심 받들어 내 형제 섬기며 구주의 뜻을 따라서 내 정성 다 하리' 런닝맨을 보거나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는 카페도 아닌 현실에서 이 가사를 살기란 참으로 어렵겠지만..... 한 줄기 빛은 비치고 있다. 방학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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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이는 오늘 굳이 을왕리 해수욕장에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돕니다.
현승이가 엄마 옆으로 다가와 심각하게 말합니다.
엄마, 엄마가 전부터 내게 물었었지? 어느 별에서 왔냐고.
실은..... 엄마한테 전부 말할 때가 되었어.
엄마, 크립톤 행성이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어.
맞아, 수퍼맨도 거기 출신이지. 나랑 고향이 같아.
나 그 행성의 왕자야.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




도대체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먼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데
저기 멀리서 벌건 빛 같은 것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채윤이 역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몇 걸음 떨어져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남편은.... 음...... 화장실 가고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정신실이 정신을 失할 지경이 되었는데
붉은 빛은 점점 더 우리에게 가까이 왔고 현승이를 향해서 빛으로 된 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무엇보다 내 아들 현승이가 내 아들이 아니라 다른 행성의 왕자라뇨!

이 무슨 또라이 같은 소리란 말입니까.
그러나 믿어지지 않는다고 우겨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현승이 얼굴엔 알 수 없는 빛이 나기 시작하고 전혀 낯선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짧은 인사를 남기는 둥 마는 둥
현승인 냉정하게 뒤돌아 빛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붉은 비행접시 같은 것이 서서히 멀어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떠나는 아이를 잡을 수도 없습니다.
현승아, 현승아 소리쳐 부르고 싶어도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건 또 무슨 일입니까?
채윤이 역시 얼굴이 달라져 있습니다.
엄마, 고민 많이 했는데... 나도 돌아가야겠어.
응, 나도 크립톤에서 왔어. 현승이와 달리 나는 지구별이 마음에 들었어.
같이 이곳으로 온 아이들 중에서 적응도 제일 잘 했고.....
다만 나는 지구별의 말이 좀 어려웠어.
그래서 매란국쭉의 쭉이 철쭉이라거나, 어안이 벙벙한 니트라는 식으로 엄마를 당황시킬 수 밖에 없었어. 그래도 나는 남기로 했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
지구별의 교육은 너무 아이들에게 잔인하고 피.날.리.는 교육이야.
(마지막까지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피말리는 보다 피날리는이 더 잔인하게 느껴지긴 한다)

크립톤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엄마, 그동안 고마웠어. 안녕.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작별인사라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의 뒷모습을 향해
저는 커다란 하트를 띄웠습니다. 안녕, 얘들아. 고마웠어.




그렇게 아이들은 자기 별로 떠났고 화장실 갔던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저는 남편에게 모든 사실을 전했습니다.
남편의 반응이 의외였습니다.
진짜야? 그러면 우리 둘만 남은 거야? 앗싸~아!
이제 정신실은 내가 독차지다.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언젠가 떠날 녀석들 빨리 떠나보내는 것도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에라 모르겠다, 같이 춤을 추었습니다.

에하라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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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는 중학생,
채윤이 엄마는 중딩 엄마.
중딩 엄마 6시20분에 일어나 아침 준비하고,
중딩은 7시10분이면 합정역에 도착하여 2호선 지하철을 탑니다.
새로운 나라의 시간에 적응하느라 시차적응의 나날 입니다.


은근 센스있는 아빠가 입학식에 찍은 사진 입니다.
네모난 교실 안의 네모난 책상에 앉아 네모난 칠판을 바라보는 채윤이를
네모난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이 모양 저 모양 변신하는 자유의 딸이 네모난 감옥에 갇힌 모양새 같습니다.

 

 

입학식 전후로 도통 사진을 못 찍게 하더니
마지못해 몇 장 찍은 사진도 긴장한 빛이 역력합니다.
우리 새다리 김채윤이 어여 긴장 풀고 본연의 놀짱 포스를 찾아야  할텐데요.

 

입학식에 가는 차 안에서부터,
아니 두어 주 전부터 그렇게 까칠하게 굴더니만
점심으로 소고기 한 번 사묵고 기분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오랜만에 카메라 바라보고 웃어주고요.

중딩 엄마는 요 며칠 병든 닭입니다.
기상 시간이 한 시간 당겨졌으니 말이죠.
아침에 분명 메시지 성경 읽고 기도하려고 앉았는데 정신차려 보면 소파에 머리 박고 좁니다.
이렇게 하루 하루 지내다보면 중딩도 중딩 엄마도 아주 익숙한 나날들을 살게 될 겁니다.
그나저나 우리 채윤이, 무한 화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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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클래시컬한 블로그 버전의 포스팅 하나 합니다.)


설렘보다는 부담이 더 많은 새 학기를 시작하는 3월 입니다.
3월 첫날, 파주의 심학산 둘레길을 찾았습니다.
중학생이 되는 채윤이는 표정으로 말합니다.
'웬만한 게 다 시답지 않은 사춘기고요. 게다가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들 만날 일이 부담 백배라구요.'
중학교 아니고 중학년이 되는 현승이는 표정으로 말합니다.
'새 학기고 뭐고 나는 산에 오면 좋다구.'



 

 

이렇게요.
현승이는 산에 오면 그 품에 그냥 몸을 던져 안겨버리고 싶은, 그런 아이예요.
사람이 많은 곳보다 나무가 많은 곳이 좋은,
자동차 밑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길냥이와 눈을 맞추는,
워터파크의 인공 파도풀보다 바다! 그 바다의 파도가 좋은,
자연을 좋아하는 아이예요.






심학산 둘레길을 고즈넉하게 걸으려던 아빠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어요.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진흙탕 둘레길을 걷게 된 것이지요.
푹푹 빠지던 흙길을 지나 그나마 뭔가가 깔려 있는 쉬운 길에 들어섰어요.
"이런 길 싫어. 나는 산에다 이런 거 깔아놓은 게 싫어. 시멘트는 더 싫고....
산에는 그냥 흙이었으면 좋겠어."
라고 투덜대는 현승이는 정말 '자연의 아이'예요.


 

 

반면 차도녀 채윤이는 이런 길을 터벅터벅 걷는 이유를 모르겠는 거지요.
구경할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재미' 같은 거 말이예요.
북적대고, 기분을 들뜨게 하는, 짜릿한 것들 말이지요.
티익스프레스, 자이로드롭, 바이킹.... 
이런 것이 재미고, 채윤이에게 있어 '재미'는 곧 '의미'니까요.  
엄마보다 더 커진 키로 아빠랑 걷는 뒷모습은 꼭 남친 옆 여친 같아요.

 

 

아빠, 안어!
아빠, 등 긁어줘!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빠를 종으로 부리더니,
사춘기 시크녀가 되어서도 변하지 않은 한 가지는 이것이네요.


"엄마, 나는 이런 게 즐겁지가 않아. 아무리 즐겁게 생각하려고 해도 즐거워지지가 않는다구."


내내 묵묵히 걷다가 마지막에 엄마 옆에 와서 한 말인데,
정말 고맙고 장하다고 말해줬습니다.
외할머니가 채윤이 현승이 얘기를 해드릴 때마다 허허 웃으며 하시는 말씀이
"아롱지고 다롱진거여. 자식이 여럿이어도 아롱진 놈, 다롱진 놈 있는 거여. 그 놈들 참!'
하시지요. 아롱진 채윤이가 다롱진 휴일계획에 '즐겁게 생각하려고 애쓰면서' 함께 하는 게 사실 무척 대견했습니다.

 


 

다롱진 산의 아이이며 꼬마 철학자인 현승에게 산행을 마치며 아빠가 물었습니다.
"현승아, 기분이 어때?"
"기분이? 기분이 고파. 기분도 밥을 먹어야 해."
뭔 말인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말.

 

 

 

기분이 고플 땐 무슨 밥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배가 고픈 건 된장찌개로 채우기로 했습니다.
심학산 둘레길 입구에는 '된장예술'이라는 식당이 있는데,
실은 된장이 예술이 아니라 '나물이 예술'인 집이지요.
아주 그냥 시금치, 호박, 취, 고사리, 마늘대 나물에 게장까지 한상 차려 나오는데
접시를 싹싹 비워요.

 

된장이 예술인 이유는 위에 얹는 차돌박이 몇 점인 것 같아요.
아, 그게 아니군요. 이집 된장이 예술인 이유가 따로 있었어요.
아.........악! 이 집에선 된장을 주문할 때, 된장이 아니라.....


 

인분으로......
그래서 그런 말이 있군요.
'똥인지 된장인지 모른다고.....' ㅠㅠㅠㅠㅠㅋㅋㅋㅋㅋ

 

 

내일은 우리 채윤이 입학식 이예요.
정말 하고 싶어서 선택한 피아노 전공이고,
꼭 가고 싶었고 기적같이 들어간 예중이지만 '즐겁게 생각하려고 해도 즐겁지 않은 날'이 많을 거예요. 그럴 때 고파진 채윤이 기분은 어떻게든 엄마 아빠와 현승이가 채워주도록 해보죠.
채윤이 퐈퐈퐈퐈퐈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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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늑대 아이>를 보고 반해버린 채윤이가 '이런 느낌이 처음'이라며 한 번만 더 보게 해달라고 조른다. 오늘 아침 조조로 재관람을 하러 갔다. 덕분에 엄마 아빠는 늑대 인간 없는 조용한 집에서 휴일의 여유를 누린다. 아이들이 없는 집은 어쩌면 이렇게도 고요하고, 깔끔하고, 여유로운 것일까?






며칠 전 넷이서 이 영화를 보면서 옆에 앉은 남편과 얼마나 눈빛 교환을 해댔는지.... 감독이 우리집엘 와 봤나? 늑대 누나 유키, 늑대 동생 아메는 캐릭터가 우리 집 아이들과 닮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게다가 어렸을 적 생긴 모습까지 비슷해서 말이다. 밖을 향해 나가고, 주장하고, 덤벼보는 유키 아니, 채윤이. 자기 안으로 숨어들고, 물러서고, 외부를 향해서는 두려움을 눈으로 바라보는 아메 아닌 현승이. 집안을 어질르고 시끄럽고 싸우고 사고를 치는 이 녀석들이 두 마리가 망아지인 줄 알았더니 '늑대 아이'였다는 새로운 정체성 발견.






아이들 말마따나 누나인 유키가 어렸을 적 더 늑대스럽고, 아메에게선 늑대스런 야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둘의 마지막 선택이 의외의 반전이었고 영화에서 가장 끌리는 점이었다. 어느 날 갑자가 이유없이 자신의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두 아이가 자라면서 '아, 저래서 저런 선택을 했구나.' 공감하게 되었다. 그 개연성 있는 성장과정이 채윤이 현승이 엄마인 내게 큰 위로와 통찰을 주었다.








외향형의 어렸을 적 유키는 있는 그대로의 늑대의 야성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외향적인 유키는 바깥 세상을 향해 내달리려 한다. 보육원에 가고 싶어하고, 학교에 가고 싶어한다. 시선이 밖으로 가 있는 유키는 외부에 자신을 맞추기 시작한다. 당연한 일이다. 보이는 것이 그것이니. 친구들과 지내면서 더더욱 사람스러워지고 온전히 사람이지 않은 자신으로 인해서 어렸을 적과 다른 모습의 소녀로 자란다. 부끄러워하고, 소심해지고, 숨고 도망하는 소녀가 된다.

소녀가 된 채윤이를 향해서 마음 한 구석 미안함이 있었다. 늑대의 야성을 가진 거침없는 아이를 내가 너무 가뒀던 것은 아닐까? 아무데서나 귀를 내놓고 늑대가 되면 안된다고 너무 눌렀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오늘 채윤이가 저렇게 수줍음이 많아지고 말 수가 적어진 것은 아닐까? 아기 적 채윤이 모습을 생각하면 더더욱 자책감이 많이 들곤 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러했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초등 이전 모습이 있었다면 나 외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인식되고 더 많이 의식되면서 내향적인 아이처럼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청소년기 이후에 '외향적인 나'로서의 정체성을 두 번째로 접하게 되었다. 아, 그랬었다. 인간을 선택한 유키의 선택을 지지한다. 어렸을 적 야성은 어디가고 삐쭉 키가 자라고 조용해진 유키 아니 채윤이의 오늘을 감사하고 사랑한다. 채윤이는 채윤이 만의 길을 잘 찾아갈 것이다. 더불어 만큼 기르느라 애쓴 나 자신도 토닥토닥이다.






고양이와 싸우고 엄마의 무릎에 파묻혀서 '엄마, 괜찮다고 말해줘.' 하던 아메에 네 식구 모두 뒤집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 씩 '엄마, 사랑한다고 말해줘. 내가 잠들어도 와서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줘.' 하는 현승이가 우리 집에도 있지 않은가? 낯선 모든 것에는 일단 위축되고 두려워하는 현승이가 마음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지나치게 섬세하게 느끼고 느낀 것을 반추하며 어린아이 같은 '거침없이 떼부리기'가 없는 현승이 말이다. 늑대의 야성을 가지고도 인간 아이들에게 맞기나 하는 아메처럼.

내향적인 아메는 자신의 내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때문에 덥석덥석 친구를 사귀지도 못한다. 시선이 밖으로 향하는 유키 누나는 친구들을 거울 삼아 자신 안에 있는 인간성을 계발해 나가고 사람을 지향하게 되는 것 같다. 반면 아메는 또래를 바라보지 않는다. 오직 자기 내면을 바라보기 때문에 더 깊이 고뇌하며 홀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자랄수록 아메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신의 내부에서 결정한 것이면 모든 것을 감수하고 가는 힘이 생긴 것이다. 그 좋던 엄마를 떠나 유유히 숲으로 간다.

부드러워도 너무 부드러운 현승이로 인해서 사랑을 새로 배웠다. 아이를 안아줄 때 그것이 내게도 위로가 된다는 것을 배웠고, 이렇게 나를 좋아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으로 자존감 향상의 치유(까지나?ㅎㅎㅎ) 있었던 것 같다. 하다못해 누나만 옆에 있어도 엄마 품에 안기고 치대기를 하지 않는, 외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면 결코 움직이지 않고 얼음이 되고마는 현승이가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현승이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더 독립적인 사람으로 자랄 것이다. 아메가 그러했듯이.






문제는 엄마다. 엄마가 유키와 아메의 엄마 '하나' 같은 엄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울지 않는 엄마, 울 일이 있으면 오히려 웃는 엄마. 아니 웃을 수 있는 엄마. 그런 엄마는 세상에 없다. 없을 것이다. 다행이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 현승이가 대뜸 엄마를 '나쁜 엄마'로 규정하면서 아빠에게 '왜 더 착한 여자랑 결혼하지 그랬냐?' 말한 것은 이느무 '하나 엄마' 때문이다. (씩씩)
'하나' 같은 엄마는 없지만 늑대 아이의 엄마 '하나'에게 하나 배울 것이 있다. 이래도 아프고 저래도 아프지만 두 아이의 선택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떠나보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이 감동적이다. 그래서 기꺼이 떠나보내고 홀로 있을 수 있는 힘, 그런 힘을 꿈꿔보려 한다.




 

 

옥상 소풍.
주말에 꼭 이렇게 아빠 없이 지내야 하는 지
(아빠가 풀타임 목회자 4년 차인데 애들은 아직도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 흠...)를 심각하게 논하다,
일단 컴플레인 잠재우려고 '치킨 시켜 옥상?' 하고 올라오다.
분위기 계속 지지부진 했는데,
누나가 씹던 치킨 '에~~~' 하고 보여주자 빵 터지면서 반전.
지금 애들 둘이 춤추고 난리 났다.

------ 라고 페북에 올렸다.

그랬더니 페친 한 분께서
괜히 짠하네요^^
라고 댓글을 달아주셨다. 그랬더니 나한테서는 이런 댓글이 나왔다.
사실 집사님 댓글 보기 전에 제 안에 있던 '짠함'을 인식하지 못했어요. 단지 아이들이 쫑알쫑알하며 쏟아내는 불편한 정서를 읽어주고 전환시켜주자는 생각만 했지요. 제가 페북이 돌아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때는 이런 때예요.^^

그랬더니 또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


불편한 정서를 읽어주고 전환시켜 주려면 얼마나 큰 에너지가 소모되는데요... 참 밝고 좋은 엄마에요. 사모님은^^ 그 밝은 에너지가 참 좋습니다.^^


라는 댓글이 다시 올라오는 동시에 이런 얘길 혼잣말로 올렸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부모로서 최선의 것을 주고 싶지만 최선일 뿐 온전함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아빠는 아빠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이 땅에 온 분명한 이유(소명이라 불리기도 하는)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기도 하니까.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고, 아이가 자라나 성인이 되었을 때 성인이 된 아이도 마찬가지다. 이 사진을 올리고, 아이들과 놀다 벌러덩 누워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내가 가진 실존적 한계가 있기에 완벽한 부모는 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것으로 나를 나무라고 정죄하지 않을 수 있다면 족하다.

 

 

 

치킨 먹고 개발바닥 게임하기.
추억의 이 게임이 의외로 초6, 초3, 음...... 초36 (흑!) 셋이 하기 딱 좋다.
개발바닥, 닭발바닥, 닭발바닥, 곰발따박..... 으하하하하.....

어느 새 깜깜해졌고,
별도 없는 하늘 바라보며 다 같이 벌러덩 누워 듣는다.
여수 밤바다, 벚꽃앤딩,
현승님 신청하신 김범수의 '보고 싶다'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 라며 엎드려 음악 듣고 있는 현승 사진과 함께 연달아 업데이트 했다. 


itistory-photo-1


 

 

현승이가 쓴 저 심플한 스승의 날 카드에는 보기 보다는 상당한 의미 숨겨져 있다. 3학년 스승의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즐거운 마음으로 쓴 스승의 날 카드이다.(아, 물론 쓰는 것 자체는 매우 귀찮아했다) 또 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엄마, 우리 선생님 선물 사줘. 꼭 사줘'라고 요구를 해 온 것이다.


 

스승의 날은 학교에서 뭐라는 것과 상관없이, 주변의 엄마들이 과하게 신경 써서 선물 내지는 봉투를 고민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선물과 카드를 준비한다. 엄마들의 과한 고민 밑에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값싼 선물은 선물로 보지도 않는다'는 전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점에 무신경할 수는 없다. 헌데, 아이들 유치원 보낼 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내 형편에서 넘치지 않는 선물을 마음 담아 준비한다. 누가 뭐라든지 아이들이 일 년에 하루 정도는 선생님의 존재에 대한 고마움을 묵상(?)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짧더라도 마음을 담은 카드를 써서 표현할 기회를 가지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어버이 날, 어린이 날, 스승의 날... 기념일은 그러라고 있는 날이 아닌가.


 

헌데, 문제는 아이들의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은커녕 신뢰 자체가 없는 경우이다. 작년 재작년 현승이는 '절대 선물 사지마!' 를 비롯해서 심지어 1학년 때는 '나는 선생님한테 고마운 게 하나도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나쁜 점만 생각나!' 하면서 카드도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경험은 채윤이 에게도 있다. 채윤이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채윤이 에게 준 상처를 생각하면 지금도 손이 벌벌 떨릴 정도이다. 그런 선생님들을 향해 고마운 점을 생각하며 표현하라는 건 엄마로서의 위선이다. 정말 마음이 힘들고 고통스러웠었다. 그리고 1학년 때는 '선생님, 화를 조금만 덜 내시면 말을 정말 잘 들을께요' 이런 식의 카드를 쓰기도 했었다.


 

3학년 현승이, 6학년 현승이가 각각 자신의 담임선생님을 너무 좋아한다. 현승이는 특히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학교 가는 것이 처음으로 즐겁단다. 학교에 가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단다. 올해는 두 녀석 등교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가벼운지 모른다. 두 녀석 다 1,2학년 선생님과 안 좋은 기억이 많다. 다행히 채윤이는 3학년 때부터, 특히 4학년 때 선생님을 참 좋아하게 되어 나름 치유를 경험한 것 같고. 현승이 역시 올해 선생님을 향한 마음을 볼 때 정말 좋고, 정말 감사하다.


 

어느 때 부턴가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 만나기를' 이라는 기도제목을 내 마음에서 삭제해버렸다. 고민 끝에 삭제했다. 조금만 생각하면 좋은 선생님과 나쁜 선생님이 있지도 않을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물론 살다보면 정말 자기입장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경직된 사람,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있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그래서 일종의 냉소주의 같지만 담임선생님에 대해서는 '복불복이다' 하며 받아들인다. 내 아이만 좋은 선생님 만나면 뭘 하나? 그 학교에 정말 인격이 안 되는 선생님이 있다면 어떤 아인가는 그 반이 되어 고통당할 텐데... '좋은 선생님 만나게 해주세요'는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그닥 좋은 마음의 소원이 아니다. 차라리 이런 기도를 한다. '어떤 선생님을 만나든지 적응하고, 그 상황 속에서 배우는 마음의 힘이 있는 아이들이 되게 해주세요'


 

작년 재작년 스승의 날 카드를 쓰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한 점이 없어'라고 말하던 현승이가 '뭐가 감사한 지 생각해 봤더니 다 감사해요' 이 말에 담긴 마음을 난 안다. 화도 내시고 혼내기도 하시는 선생님을 사랑한단 얘기, 믿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갈수록 '사랑'보다는 '신뢰'가 복잡다단한 인간관계를 설명하기에 적절하단 생각이 든다. 같은 선생님을 놓고 왜 어떤 아이에게는 잊지 못할 선생님, 어떤 아이에게는 최악의 선생님으로 추억하게 될까? 같은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어떤 사람은 어찌하여 어떤 사람은 화가 나고,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을까? 어떤 사람의 실수에는 너그러울 수 있는데, 다른 사람에겐 유난히 까칠해지는 것일까? 신뢰하기로 마음먹은 사람과는 더 수용하게 되고, 좋게 보게 되고, 그러다보면 더 좋아지고 그러는 것 아닐까? 올해 두 아이 모두 자신의 선생님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이런 경험은 때로 신뢰하기 어려운 선생님이나 친구나 관계를 만났을 때 자신의 마음을 지킬 힘이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 자신이 신뢰로운 사람들이 되는 것.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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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차 안에서 있었던 치유적 대화.


현 : 엄마, 엄마는 어디서 살 때가 제일 힘들었어? 덕소 아이파크? 어디야? 어디서 살 때 제일 힘들었어?
엄 : 음.... 엄마는 백조현대 살 때 제일 힘들었어.
현 : 맞어. 그때, 그치?
엄 : 뭘 맞어. 엄마가 힘들었던 걸 알어?
현 : 아, 그런가? 엄마 백조현대 살 때 뭐가 제일 힘들었어?
엄 : 그때 아빠가 신대원에 있을 때였잖아. 엄마는 일을 제일 많이 할 때였고... 아빠가 없는데 일하고 와서 너희들을 혼자서 잘 돌봐주기가 힘들었던 것 같애.
현 : 맞어. 그래서 엄마가 그때 우리를 많이 때리고 집도 나가고 그랬었지?
엄 : 허거걱! 야아~ 많이는 안 때렸어. 집도 한 번 밖에 안나갔는데..... 그렇게 생각이 돼? 그래 맞어.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가 그 땐 정말 힘들었었던 것 같애. 현승이 그때 많이  놀랐었지? 너 그래서 요즘도 엄마가 운동가서 조금만 늦어도 불안해서 전화하고 그러지.
현 : 그런가? 그런가봐.
(난입 채윤, 이런 류의 얘기 별로 안 좋아하는 특징이 있음)
챈 : 맞어. 엄마 그때 진짜 힘들었겠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가 샤워도 못했잖아. 우리가 욕실에서 놀다가 '엄마 다 놀았어' 그러면 엄마가 들어와서 우리 머리도 감겨주고 목욕시켜주고 둘 다 해줘야 했잖아. 그리고 나 공부시키고...

엄 : 맞어. 채윤이 1학년 때라 받아쓰기 시키는 것도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우리 둘 다 저녁마다 힘든 시간이었어.
챈 : 나 2학년 때는 선생님도 너무 그랬잖아. 구구단... 엄마 그때 진짜 속상했었지?
: 아빠가 금요일날 와도 놀아주지도 못하고 토요일날은 초등부 설교준비하고 그랬지?
엄 : 금요일에 오면 집에서 목장모임 했잖아. 밤 늦게까지... 토요일엔 출근하고 설교준비하고, 주일엔 초등부 했지.
현 : 그러면 월요일날은 또 천안 갔잖아.
챈 : 그래서 엄마가 월요일날 맨날 아빠랑 통화하면 울었지?
엄 : 생각해보니 엄마가 그때 정말 힘들었다.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수술도 했었어.
현 : 엄마, 그러면 그 중에서 뭐가 제일 힘들었어? 우리가 말을 안들어서? 아니면 목이 아파서?
엄 : 음... (울컥ㅜㅜ) 엄마가 그때 제일 힘들었던건....  좋은 엄마가 안되고 나쁜 엄마가 되고 있는 것 같애서 힘들었어. 너희 잘못도 아닌데 엄마가 자꾸 화를 내게 되고... 너희가 잠들면 미안해서 혼자 울고 그랬어.
챈 : 헐, 그런 일이 있었어? 나는 그런 건 전혀 몰랐는데.... 엄마가 그랬구나.
현 : 누나가 말을 안들었지? 그리고 나는 엄마를 너무 힘들게 했지?
엄 : 지금 생각해보니 너희가 그렇게 힘들게 하지 않았어. 엄마 마음이 힘들어서 너희를 잘 받아주지 못했지. 그리고 그런 엄마 자신 때문에 또 화가 나고 그랬어. 그래서 엄마가 그때 생각하면 너무 미안해. 너희가 잘못한 게 아니라 엄마 마음이 편하지 못했던 게 문제였어. 정말 미안해.
현 : 엄마... (쓰다듬 쓰다듬)
챈 : 아.... 모 괜찮아. 그래서 그때 엄마가 그렇게 하니까 아빠가 놀아주지도 않는데도 더 좋아졌어. 엄마가 싫어서 아빠다 더 좋아졌으니까. 그러니까 꼭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 그게 오히려 좋은 점이 되기도 했어.

엄 : 엄마가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고 너희한테 미안한데....
챈 : 그래. 알었어. 이 얘기 그만 하고 다른 얘기하자. 현승아, 너 아까 학교에서 우리 교실 복도에 왜 왔어? $%#$^#&#%#$%%...

우연한 대화로 마음에 남아 있던 짐 하나 살짝 덜어내다.
아이들은 어떻게 부모를 자라게 하는가?
아이들이 부모에게 주는 것이 이제  재롱 이상이다.  

아이들이 나를 성숙으로 이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두 아이를 학원도 안 보낼 뿐 아니라 공부로 크게 닦달도 안합니다. 세속의 잣대로 아이들을 재단하면 키우지 않겠노라는 큰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아이들을 키우는 건 꽤 외로운 일이기에 먼저 부모가 된 분들의 성공담을 듣고 용기를 얻었으면 싶을 때가 있습니다.

목회자들 아니면 목회자 수준의 믿음을 가진 평신도 어른들께 이런 간증 많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이들 과외를 시킬 형편이 안됐다. 목회자가 무슨 돈이 있어서 과외를 시키겠나. 과외 안 시키고 기도했다. 기도하며 키웠더니 우리 아이들 다 잘 됐다. (여기서 부터가 NG입니다) 어떻게 잘됐냐면, 결국 좋은 대학 갔고 좋은 직장도 갔다. 하나님께 영광!'
...
오늘은 섬기는 교회 담임목사님의 간증 아닌 경험담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과외시키지 않았다. (자, 여기서 ‘시킬 수 없었다’가 아니라 '시키지 않았다'에 주목합시다) 아이들을 세속의 기준에 줄을 세워서 키우지 마라. 우리 아이들 과외를 시키지 않았다. 더 높은 곳, 더 좋은 학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양육의 원칙에 맞지 않아 마다했다. 그래도 암튼 어느 대학에(내가 보기엔 좋은 대학이었다) 대학 들어가서 더 안 좋은 대학을 선택해서 학교를 바꿨다. 이게 감사하다. 세속의 기준으로 더 낮은 곳을 내려가는 이 선택을 할 수 있는 아이를 보며 감사하다’

물론 전자의 간증 역시 하나님의 은총일 것입니다. 허나, 지극히 상식적으로 보자면 지금 이 시대에 과외를 안 시키고 좋은 대학 보냈다는 간증은 감동을 주기보다 (대한민국 부모 된 죄로 아이들 학원비 대느라 등골 빠지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약을 올리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꼭 이런 간증을 하고 싶다면 정말 지혜롭고 겸손하게 접근해야겠지요.
제게는 오늘 들은 경험담이 진정으로 위로가 되고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 땅의 수고로운 짐을 지고 가는 이들에게 제대로 복음이 되는 것들은 이런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 과외를 안 시키고, 그로 인해 더 낮은 대학에 가는 아들을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는 이런 삶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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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불가능의 내일을 두고 중대결정을 했던 몇 개월 전부터 격변의 시간을 보냈다. 밖에서 치는 파도에 비해 마음의 일렁임은 그보다 훨씬 덜했다는 것에 난 내게 후한 점수를 준다. 그 와중에 마음 한구석 끝내 가시지 않는 검은 그림자 있었으니 다름아닌 애들 걱정이었다.

그 좋던 가족피정 중에도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면서 내 맘은 더욱 불안해졌다. 그 불안감에 식구들이 잠든 밤 홀로 일어나 무릎꿇기를 여러 번 하기도 했다. 시간과 함께 또렷이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 과도한 아이들 걱정은 구체적으로 전학에 관한 걱정이었고, 과도함이란 내 마음에 있는 것의 투사였다.

중 1때 아버지 돌아가시고 '콩너물 장사를 혀두 서울 가서 애들가르쳐야 헌다'며 남매를 데리고 무작정 상경하신 엄마. 자리잡은 곳 둔촌동은 잠실 인근이라 그 유명한 8학군인지 그랬다. 때문애 중학생인 난 빨리 전학이 되지 않아 시골에서 혼자 몇 개월 남아 있어야했다.엄마가 어디선간 '위장전입'이란 고도의 전술 득해왔고 나는 상도동 모여중으로 전학하게 되었다.

전학 첫 날. 5교시였는데 영어시간이었다. 나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알파벳을 배우던 중1 때부터 영어가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어서 영어 교과서 달달 외우기가 취미인 여학생이었다. 암튼, 전학 간 날 첫 시간. 영어시간인데 안경 낀 인상 차거운 선생님이 시크한 얼굴로 들어와서는 탁!하고 출석부를 교탁에 공격적으로 내려놓고 책덮어! 했다. 그리고 바로 오럴 프렉티스를 다같이 외우란다. 안타깝게도 진도가 빨라 난 배우지 않은 곳이었고(내 비록 영어신동에 가깝긴 했지만) 어버버버 할 뿐이었다. 바로 날 지적하여 혼자 해봐! 라는 선생님. 난 다시 어버버버..... 앞으로 나와! 나가서 상황설명 할 새 없이 날아든

싸.
대.
기.

몸이 저만큼 나가 떨어졌고 인간의 존엄성이 교실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진실로 그랬다.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아본 싸대기. 성인이 된 후에 가끔 이 선생을 찾아내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끓어오르며 치를 떨 때가 있다. 이것이 전학에 얽힌 트라우마 중 하나다. 그리곤 사춘기 내내 시골학교의 선생님, 친구들과의 편지로 내 정서적 생명의 끈을 부지했었던 듯.....

우리 아이들 전학을 생각할 때마다 내 안의 트라우마가 작용해 사실보다 문제를 더 크게 느끼곤 한다. 내일 이사를 하고 금요일에 두 아이 함께 전학을 한다. 페친들께서 기도의 마음 보태주시면 두려워 떠는 엄마와 그 아이들에게 힘이 될 듯 하다(합니다. 왠지 존대말로 마무리 해얄 것 같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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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페북에 썼고 오늘 아침 새학교로 전학했습니다.
아이들 보다 엄마가 더 긴장하고 떨고 기도하며 학교에 남겨놓고 왔습니다.
첫 눈에도 안정되고 편안해 보이며 아이에게 눈을 먼저 맞춰주시는 선생님 한 분,
애를 보자마자 한숨을 쉬며 '왜 이 때 전학을 했냐'며
성적이랑 이런 거 어떻게 하냐고 이마에 내천자를 그리시는 선생님 한 분,

이렇게 두 분의 선생님을 보고 비오는 날 짚신장사 아들 걱정, 맑은 날 우산장사 아들 걱정하는 엄마 맘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전 학교 수련회 가면서 '엄마, 우리 친구들끼리 밤에 비밀파티 할거야. 나는 종이컵 가져가야 해' 하면서 들떠서 준비해간 것이다. 청소를 하다 어제 풀어놓은 짐 사이에서 그대로 다시 가져온 종이컵을 보고 맘이 울컥한다.

수련회 이틀 째부터 친구들과 갈등이 생겼나보다. '엄마 보고싶다'는 문자를 시작으로 기대와 다른 수련회를 보내고 있음을 알려 왔다. 여섯 명 같이 다니는 친구들로 부터 소위 따를 당하고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해서 돌아왔다. 이 학교에서 마지막 수련회라며 그 어느 때보다 들떠서 갔는데 말이다.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다. 몰려다니는 아이들 끼리 1년 내내 이렇게 붙었다 저렇게 붙었다 하면서 끼리끼리 모여 상처주고 상처받기를 반복해 왔으니까.

문제는 엄마다. 초등학교 때 따 당했던 아...
픈 기억이 있는 엄마, 뼈 속 깊이 자기중심적 까칠함을 소유한 엄마 말이다. 그래서 여러 관계맺기에 실패를 했고 실패 자체보다 훨씬 더 큰 패.배.감.의 상처를 안은 엄마 말이다. 수련회 갔던 채윤이가 고개를 떨구고 집에 돌아왔을 때 딱 한 번 친절한 손을 내밀었다가 계속 우울모드인 아일 향해 차거운 얼굴을 해버린 것이다. 아이의 맘을 만지는 것보다 '니가 어떻게 했길래 친구들이 그랬겠니. 안 봐도 뻔하다'는 식의 비난의 말이 속에서 올라왔다 내려갔다 한다. 이젠 안다. 그것이 채윤이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목소리라는 것을... 여전히 관계에서 온전치 못한 나 자신을 향한 퍼붓는 오랜된 비난과 죄책감과 수치심의 메아리라는 것을....

다행히 마음을 가다듬고 밤 늦게 채윤이게게 솔직한 고백을 하고, 아이의 마음을 다시 들어주고 안아주고 기도했다. 오늘 등교를 두려워 하는 아이에게 사람들의 인정과 상관없이, 외적인 실패와 상관없이 늘 보석같이 존재하는 채윤이의 가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함께하심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러나 등교하는 채윤이의 뒷모습을 보며 막상 더 두렵고 슬픈 건 내 안의 어린 나일 것이다.

청소를 하다 발견한 종이컵을 보고 울컥하여 다시 마음이 무너졌다. 주님, 아이가 자라며 겪는 성장통을 내 것과 구분하지 못하여 아이에게 두 번 상처주는 어리석은 짓만을 하지 말게 해주세요. 그 아이 곁에서 하루 종일 지키실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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