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많이 가리지 않는 우리 아이들이 유난히 매운 것에는 약한데,
채윤이는 물론 현승이까지 초딩이 되어 단체급식의 '어쩔 수 없이 먹기' 방식으로 조금씩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렇다해도 집에서는 매운 음식은 엄마 아빠 꺼고 자기들 꺼는 뭔가 맵지 않은 다른 것이 준비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작년부터 조금씩 변화가 생겨서 드디어 식탁에서 매운 음식으로 하나되기가 실현되고 있다.
젖을 떼고 밥을 먹으면서 아가에서 아이로 성장했던 것처럼
매운 음식을 사이에 놓고 엄마빠와 당당히 마주 앉음으로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 생각하니
뿌듯하기 이를 데 없다.


묵은지 고등어조림을 배추김치로만 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 식당에서 총각김치의 무청으로 만든 걸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처치 곤란이었던 무만 잘라먹고 남은 총각김치의 잔재물들을 백분활용 하였다.
들기름과 설탕으로 미리 양념을 해뒀다가 무우 깔고 고등어 깔고 김치 덮고 양념장 뿌리고 고등어찜을 했다.








이런 매운 음식을 주메뉴로 내놓을 때는 약간의 잔머리가 필요하긴 하다.
일단 두 녀석이 모두 수영을 갔다와서 무지 배곤픈 저녁일 것.
현관을 열고 들어오는 그 순간에 요리가 한창 진행 중이라서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할 것.
배고파 배고파 해도 절대 얄팍한 간식을 입에 넣어주지 말 것.
그러고도 배고픔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물론 후각의 자극에 더는 못 참겠다는 미치기 일보직적까지 되도록
시간을 지연시킬 것.(이 때 아빠가 살짝 늦어주면 '아빠랑 같이 먹어야지'하면서 시간끌기가 용이해짐)
이 정도면 매운 고등어찜에 밥 한 공기는 힘 안들이고 멕일 수 있다.



기저귀 떼고 젖 떼고 지가 혼자 밥 떠먹을 줄 알면 애 키우는 고생 끝날 줄 알았더이다.
부모됨의 책임감을 끝도 없더이다. 날이 갈수록 질적으로 고난도가 되더이다.
그래도 이렇게 자라준다는 게 감사하고 행복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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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현승이가 자신의 억지로 접는 걸로 살아남고자 한다면
누나 채윤이는 '호모 욕구피언스'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욕구가 분명하고, 자신 안에 올라오는 욕구를 바로바로 캐치하고, 웬만하면 채워야 한다.
그것도 바로, 지금, 당장!


그래서 얼마 전까지 자주 갈등을 빚곤하던 일이 이것이다.
채윤인 그 날의 분위기와 몸상태(응?) 기타 등등을 고려해서 꼭 먹고 싶은 게 있다.
그리고 먹고 싶기 시작하면  '아, 먹고 싶다'가 아니라 '꼭 먹어야지. 안 먹으면 죽지'로 가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자주 빚어지던 갈등.
수영을 하고 오면서 채윤이의 그 분꼐선 '오늘 메뉴는 이거다. 넌 이걸 먹고 싶은거야' 하고 점지해주신 모양.
문제는 엄마는 집에서 가족의 건강과 분위기를 고려해서 나름대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자뻑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는 또 견코인 챈이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오늘 저녁 뭐야? 카레야? 아~ 난 찜닭 먹고 싶었는데...' 하기 시작.
결국 카레를 먹으면서도 계속 찜닭에 대한 미련을 져버리지 못하고 종알종알 늘어놓는 말들이 자뻑 엄마의
신경줄을 건드리고 한 번 두 번 참던 엄마가 세 번째에서 붹!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적으로 갈등이 명멸하면서 김챈이 이 부분에서는 일단 꼬리를 내리게 되었다.


단지 먹을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족끼리 놀 기회가 오면 어쨌든 챈이는 나름대로 하고싶은 그리고 나름대로 계획해 놓은 자기만의 간지
스케쥴이 좍 나와있고 웬만해서는 그걸 꼬~옥 해야하기 때문에 다시 또 갈등이 빚어진다.


그런데 며칠 전 저녁.
'미쳐버린 파닭'에 꽂혀서 낮부터 그걸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날이었다.
아빠랑 현승이랑 셋이 문방구에 준비물 사러 가고 엄마는 집에 남아 미쳐버린 파닭을 주문하기로 했다.
미쳐버린 파닭에 전화를 하니 아, 휴일이다.
그렇다고 다른 치킨집에 시킬 수도 없다. 김채윤이 먹고 싶었던 건 미쳐버린 파닭이었던 것이다.
떨면서 밖에 있는 채윤에게 전화했다.
'김챈! 미쳐버린 파닭 오늘 문 닫았어. 다른 치킨 싫지? 그냥 사골국에 밥 먹자'라고 하면서
바로 미쳐버리는 김채윤을 상상했다.
헌데, 이게 웬일.'어, 그래. 알아어' 한다.


집에 온 채윤이에게 바로 진심어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엄마는 니가 미쳐버릴 줄 알았다.ㅋㅋㅋ
헌데 오늘 챈이의 쿨한 반응에 감동 받았다.
그래. 우리가 그럴 수 있는거야. 뭘 먹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 모든 걸 원한다고
당장 다 채울 수 없는거야. 정말 먹고 싶지만 그 순간 지나보면 또 그리 중요한게 아니기도 한거지.


현승이가 감정이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감정에 휩싸이면 말 한 마디 못 내고 눈물만 흘리는 것처럼,
채윤이는 욕구가 자기라고 생각하며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자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느끼며
더욱 집착하게 되는 듯하다.


결국 챈에게도 욕구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며, 욕구를 인정하고 바라봐주지 않으면 욕구 자체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다는 어려운 얘기를 삶을 통해서 들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면도 있지만 MBTI로 치자면 정반대 유형인 남편과 나.
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면도 있지만 MBTI로 치자면 거의 정반대 유형으로 추측되는 현승이와 채윤이.
뭐 성격유형을 갖다대지 않아도 채윤이와 현승이의 세상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참 많이 다르다.
많이 다른 두 아이의 동시적(응?) 엄마인 나는 그 사이에서 나를 다시 보게된다.
어제 저녁 우연히 '욕구'라는 한 주제로 전혀 다른(그러나 결론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두 아이와 나누어야 했다. 
현승이와 채윤이와 엄마의 이야기. 그 첫 번째.




잠이 들 때는 아직도 엄마의 부드러운 팔에 비비적대야 하고,

그래도 잠이 안 오면 세상 그 누구의 손도 아닌 엄마의 부드러운 손이 살살 등을 긁어줘야,
그제서야 잠이 드는 현승이다.

그래서 현승이는 늘 잠자리에 드는 시간엔 본의 아니게, 진심 본의 아니게 구타유발 아아니..
갈등유발자가 된다.



'엄마, 나 일단 누워있을께. 꼭 와줘. 잠들기 전에 한 번, 잠든 다음에 한 번 와 줘' 라고 말하는 건 방송용.

비방용 본심은 '엄마가 옆에 누워서 잠들 때까지 등을 긁어주고 얼굴을 만져줬으며'이다.  
하지만 이제 아홉 살인 것을... 현승이도 안다. 아홉 살이 하기에는 쪽팔린 행동이라는 걸.

그리고 엄마는 가끔 원고도 써야하고 강의준비도 해야하며, 국도 끓여야하고,
트위터에 빠져서 정줄을 놓을 때도 있으며 어떤 때는 피곤해서 먼저 누워야하는 그런 존재인 것을.



어젯밤 또 '엄마, 나 누워있을께. 와 줘' 하는데....
진짜 엄마는 쫌 모유수유하는 엄마도 아니고 편하게 잠 좀 들어보자는게 소원일 뿐이었다.ㅠㅠㅠㅠ

억지로 가서 현승이의 주문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모든 절차를 마치고 마이 침대로
왔다. 그러나 1분쯤 지나서
다시 엄마 부르는 소리 '엄마, 엄마. 한 번 다시 와주면 안돼?'
엄마 완전 버럭!!! '엄마도 잠좀 자자고!!!! 엄마 침대에서 책보다 자고 싶다고!!!!'
이 말에 우리 티슈남.
'아.....알았어. 울먹 울먹먹먹먹....'

마음 약한 엄마 다시 티슈남의 침대로 감.
티슈남은 눈물 그렁그렁하며 '엄마. 가서 자. 혼자 잘 수 있어....울먹울먹....'

'그래. 그래야지. 이제 아홉 살인데.... 잘 자. 사랑해' 하고 다시 지 침대로 컴백.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한참 책을 봤는데 뭔가 섬뜩해서 방문 쪽을 보니....
방 문 앞 벽에 붙어  우두커니 서서 엄마를 바라보는 티슈남님.

'허허....허걱. 왜? 잠이 안 와? 엄마가 다시 가?'


어둠 속의 티슈남님. 말은 못하고 고개만 흔들흔들.

이 가엾고 속터지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엄마 벌떡 일어나서.
'현승아, 엄마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니가 원하는 거 엄마한테 말해줘.
니가 정말 원하면 엄마한테 미안해도 그냥 말하는거야. 말해봐'
글자크기 3포인트 정도의 목소리로 '엄마. 와 줘'
'알았어. 엄마가 피곤하지만 니가 정말 원한다고 말하면 다시 가서 재워줄께'라고 말하면서 나란히 누워
등을 긁어주면 눈물 그렁그렁해가지고
'엄마, 피곤하지? 편하게 자고싶지? 미안해. 내가 안 그러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엄마 방에 가게 돼.
 훌쩍 훌쩍 훌쩍쩍 훌쩍...'




현승이는 자신이 원하는 걸 쉽게 접는다.
그것이 엄마나 아빠나 누나 등 가까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판단되면,
특히 가장 좋아하는 엄마를 불편하게
한다고 판단되면 더 그렇다.
그러나 사실 욕구는 접는다고 접히는 게 아니다.
무작정 욕구를 접고 났을 때는 대부분 우울해지거나 분노가 일기 십상이다.
그래서 현승이가 갈등을 피하기 위해 재빨리 누나에게 양보해버리고, 원하는 것을 접고, 뜻을 굽힐 때
'착하다'고 칭찬하지 않으려 한다.



더 어려운 것은 현승이는 감정이 조금만 상해도 말을 하지 못한다.
충분히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안해' 이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빨리 욕구를 접어버리게 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홉 살 짜리 아이는 아직 이해받아야 할 나이다. 사회성이 발달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도 배워야겠지만
철이 다 든 어른처럼 배려하고 참는 건 아니라고 본다.
일상의 많은 문제들에서 마흔이 넘은 엄마를 이해하고 이해했기에 참고 배려하는 건 현승이의 성품일망정
그대로 고착되도록 해서는 안될 것 같다.



현승이에게 욕구를 가지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모든 욕구가 다 충족될 수도 없고, 설령 다 충족되어도 그렇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지만, 더 많은 경우에
내 욕구와 타인의 욕구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게 맞지만. 어찌 됐든 욕구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며
자신의 욕구를 돌봐야 하는 일차적인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가르치려 한다.
무엇보다 욕구를 참는 것은 능사가 아님을 가르치려 한다.
원하는 게 있을 때는 말.로. 표현하고 감정에만 휩싸여 눈물만 흘리지 말고 때로 설득도 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싶다.
현승이 성품상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감정도 욕구도 결국 그 자체로 인정할 때만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에 가르칠 수도 없고 말로 다 가르칠 수도 없는 것이 40이 넘은 엄마도 여전히 천천히 배워가는 중이고,
아직도 가야할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엄마가 가 본 길 만큼만 안내해 줄 수 있음을 알기에 말로 가르치기보다 먼저 살아내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를 자라게 하는 기가막힌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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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이가 오매불망 갖고 싶었던 닌텐도를 갖게 되었다.
정말 닌텐도 이야기로 열 개의 포스팅이 가능하지만 간단한 닌텐도 득템의 경위만 풀어놓자면....


'엄마, 내가 엄마랑 많이 얘기했고, 생각도 많이 해봤고 그런데... 내가 닌텐도 게임을 하고 싶어서
갖고 싶은 게 아니야. 친구들은 다 있는데 나만 없는 게 너무 부끄러워
'라는 고백에 엄마 마음 살짝
무너졌고.


그 다음,
아빠의 아이패드 득템이후 온 가족이 함께 '앵그리 벌드' 게임을 즐기면서 이런 어록을 남기셨다.
'엄마, 나는 아빠가 아이패드를 사서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더더더 좋아. 나는 우리집에 닌텐도가
없어서 가난한 줄 알았는데 아이패드가 있으니까 부자가 된 것 같애. 내가 너무너무 좋아'
라면서 닌텐도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치유되는 듯 하였다.


현승이 고모와 대화를 하다가 이 얘기를 전해주면서 깔깔거렸는데 극진한 조카사랑의 고모는 그 자리에서
바로 현승이에게 전화걸더니 '현승아, 너 닌텐도 갖고 싶어? 고모가 사줄께. 알았지' 해버렸다.
당황한 내게.
'야, 어린이집 다니는 애들도 닌텐도 없는 애들 없어. 그냥 내가 사줄거다. 암말 말어' 하면서.


일사천리로 닌텐도 구입이 이루어졌고, 현승이는 믿어지지 않게 닌텐도를 거머쥐게 되었다.
엄마 아빠의 우려를 아는 현승이가 닌텐도를 가져와서는 '엄마, 이거 숨겨 둬. 어서 숨겨 둬' 하기에
한참을 그냥 나뒀더니 지가 방에 들어가서 닌텐도를 숨기고 나온다. 이건 뭥미?
누구를 위하여 닌텐도는 숨겨졌나?! ㅋㅋㅋㅋ
그러고도 엄마가 닌텐도 숨기는 일에 신경을 안쓰니 장식장 높은 곳에 의자에 올라가 얹어 놓았다.
이제 현승이는 닌텐도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보다 도대체 닌텐도를 숨기지 않는 엄마 때문에 좌불안석.


'현승아! 엄마는 닌텐도 숨기지 않을거야. 니가 약속한 시간에만 게임할거고, 너는 약속을 잘 지키는 아인데
엄마가 왜 닌텐도를 숨겨? 엄마가 현승이를 믿는데 숨길 필요가 뭐 있어?'
했더니 실리보다 명분으로 사는 이 아들 콱 감동 받아가지고 초연한 마음이 되었다.
이렇게 말을 내뱉어 놓고, 내가 뱉어놓은 말이 부메랑이 되어 내 맘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말이 통찰을 가져다 주었다.
믿는 만큼 자유로와지는 아이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이제 얄팍한 칭찬으로 아이들을 통제할 시기가 지났다.
얄팍한 칭찬꺼리를 찾아 내 칭찬에 아이를 춤추게 할 때가 아니라 더 많이 믿어줘야 할 때다.
믿는 만큼 아이들은 자라고,
내가 엄마로서 자라는 만큼 아이들을 믿어줄 수 있다.


문제는 신뢰다!
내가 아이들보다 항상 옳다는 교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아이들을 믿어줄 수 있는 거다.
그래, 결심했어! 이제는 신뢰양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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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없으면
뭐라도 할 수 있다.



거실에 두 녀석만 없다면
기도하고, 묵상하고, 책 보고
하고싶은 뭐라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늘 꿈꾼다.
그들이 없는
조용하고 깨끗한 거실을.



조용한 자유가 가득한 거실.



그.러.나.



그 자유는
언제 덮칠 지 모르는
그들 때문로 인해 
늘상 불안을 포함한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나는 그 불안에 익숙해졌고
중독되었나보다.



간만에
두 녀석으로 꽉찬 거실이
내게 살아있음을 일깨워준다.



마구 어질러진 카페트,



파프리카 줘, 엄마.
하나만 더 줘, 엄마.
마요네즈도... 엄마.
엄마, 김현승이....
엄마, 누나가......



음악 소리와 어우러진
쨍그랑 거리는 두 녀석의
목소리에 사람 사는 집 같다.



사람 사는 집에
토끼가 두 마리 엎드려 있다.



파프리카를 우적우적.
하나 먹고, 또 먹고...



사람 사는 집에
잠시 토끼였던 두 마리가
망아지로 변신해
뛰어다니니
훨씬 더 사람 하는 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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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1월 21일 명일동 현승이네 집에서
 


채윤이가 무거운 얼굴과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다음 주에 있을 시험을 위해서 사회공부를 하다가 맘이 상한 것이다.
문제를 풀다가 방금 외운 걸 단답형으로 푸는 과정에서 미성숙한 엄마의 뚜껑이 열리고
열린 뚜껑으로 새어나온 김에 아이의 맘을 데였다.
늘 그렇듯 '왜 답은 하나냐?'며 자기가 쓴 답이 왜 틀리다고 하냐며 채윤이가 울었다.

헌데 채윤이가 운 건 단지 그 때문이 아님을 안다.
엄마의 부적절한, 이해할 수 없는 분노폭발에 마음을 다친 것이다.

엄마의 부적절한 분노폭발은 단지 방금 외운 걸 어뚱하게 써놓은 것 때문은 아니었다.
시험을 앞두고 자기를 시험공부 시켜달라는 채윤이. 30점을 맞기 싫다며 공부를 시켜다라는 거였다.
그렇게 요구할 뿐,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서 노는 걸 멈추는 것도 어렵고 가만 앉아 문제집 푸는 일에 대해서도
아직 의지를 발동할 줄 모른다. 그 의지를 조절해주는 것이 엄마의 몫이다.
이건 엄마가 너무 싫어하는 일 아닌가? 공부시키기 위해서 애하고 싸우는 일 말이다.
싸우느니 공부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채윤이 자신은 문제집 하나를 풀어야 한단다.

그렇다면 시험공부를 위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 엄마인 나다.
어르고 달래고 윽박질러서 해야하니까.
그게 너무 싫어서 벌써부터 마음이 갑갑해왔다. 안시키면 될 터!
허나 채윤이의 자존심이 아주 낮은 점수는 받고 싶이 않다. 그리고 그 정도는 도와줘야 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된다.
이 지점에서 놀이처럼 즐겁게 공부를 해보자는 식의 해결방법은 이미 물건너 갔다.
놀이는 마음의 평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고 엄마는 이미 스트레스 만땅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이 시험공부를 시작하자마자 첫 문제에서 폭발한 것이다.

뒤끝 있는 엄마는 마음을 못 추스르고 채윤이는 자겠다며 침대로 갔다.
나 자신이 미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 내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잊어보고자 분주히 거실정리를 하고 있는데
채윤이가 '엄마' 하고 부른다.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채윤이는 '엄마' 하고 불러서 '엄마 잘 자' 할 것이다.
엄마가 돼서 '분이 나도 해가 지도록 품지 말라'는 성경의 말씀이 마음에 울리는데도 다다가 아이의
마음을 만져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거였다. 그런 찰나에 챈이가 먼저 '엄마'하고 부르며 손을 내미는 것이다.
부끄러움과 자책과 자신에 대한 분노가 날카롭고 퉁명스러운 '왜애?' 나왔다.
채윤이 표정이 다시 어두워지며 아주 작은 소리로 '잘 자' 한다.
그러곤 채윤이 이불을 머리까지 덮는다. 가슴이 무너진다.

아주 잠깐 멍 때로 서 있다가 침대 위로 올라가 채윤이를 끌어 안았다. 아~ '미안해' 하는 말도 구차하다.
'채윤아. 엄마랑 채윤이는 분명히 다르고 생각도 다른데 엄마가 엄마만 옳다고 해서 미안해'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잘못 생각해도,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을 알고 계셔도, 우리 생각을 다 인정해 주시고
받아주시는데..... 엄마는 채윤이한테 그렇게 하질 못해. 미안해 채윤아' 더 긴 말을 못하고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엄마가 자꾸 채윤이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아주 작은 소리로 '괜찮아' 하는 채윤이 눈이 졸린 건지 슬픈 건지 벌개진다.

내 절망은 그것이다.
내게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간섭의 달인 엄마.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일단 안 된다고 해놓고 보던 엄마.
하나님이 그런 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조건 하나님은 싫어하실거라는 죄책감. 뭔가 더 거룩한 것을 하는
게 좋을거라는 강박관념.
그리고 엄마가 늘 말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그래서 하나님을 오직 두려워하며 산 세월이 40여년 이다.
작년에 비로소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내게 '사랑의 하나님'으로
알리고 싶어서 안달을 하셔는 지도 알게되었다. 그렇게 살아 온 세월을 돌아보면 흘린 눈물, 차올라오던 분노.
작년은 인생의 오춘기 처럼 어린시절 엄마를 향해 다시 한 번 반항하고 다시 한 번 용서하느라 힘겨운 시간들이었다.

하나님은 그저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분인데... 무엇이 되라고, 어떻게 되라고 강요하지 않으며,
너의 존재만으로도 진정 행복하다고 하시는 분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으로 하나님상을 그리게 된단다.
밝은 해를 가리는 먹구름처럼 나의 존재가 그 사랑의 빛을 가리는 것은 아닐까?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 그저 온전히 안기는 것이 그 분의 바램인 것을 왜곡시키진 않을까?

슬픔으로 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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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떠오른 어릴 적 기억.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쁘고 개인기가 많아서....ㅋㅋㅋ 동네에서 인기가 좋았었는데(진짜라구요) 그래서 우리 엄마 말로는 이런 일도 있었단다. 우리 동네 사찰에 근무(?) 하셨던 스님이 나를 너무 이뻐 하셔서 민가에 나오시면 우리집에 들러서 나를 안아보셨단다. 그니깐 스님이 목사님 집에(거의 교회라 할 수 있음) 들락거리셨단 얘기다. 어려서부터 종교 대통합에 기여한 나?^^
암튼, 이 집 저 집에서 안아가기가 일쑤였다고 하는데 그 중 내가 '엄마'라고 부르던 어떤 엄마가 있었다. 동네 분이셨는데 거의 그 집에 가서 살았던 것 같고, 그 분께 엄마라 부르며 따랐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엄마한테 '사모님'이라고 불렀었다. 서너 살이었으니까 내가 가끔 우리 엄마 품에  가서 '사모님'하고 부르면 주위 분들이 넘어가셨던 기억이 어렴풋 하다.

어쩌다보니 그 시절 우리 엄마처럼 내가 사모님이 되어있다. 그리고 문득 어린 시절 늘 아픈 성도들 돌보기에 여념이 없었던 엄마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는 늘 아프고 힘든 성도들 찾아보느라 바빴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엄마는 늘 내 곁에 없었던 것 같다. 설마 그랬을까만은..... 에니어그램 지도자과정을 함께 했던 60대 사모님께서 울컥하면서 하신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은 자라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딸이 그랬단다. '난 어렸을 때 엄마의 눈을 바라본 기억이 없어. 늘 엄마의 일하는 뒷모습만 봤어' 이 얘기를 하시면서 목이 메이며 하시는 말씀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내가 저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얼마나 사랑으로 키웠는데....'  그렇게 엄마의 마음과 어린 아이가 해석해서 받아들이는 사랑은 다른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내가 아주 많이 아팠는데 살짝 그런 생각도 해본다. 엄마는 내가 아플 때만 내 곁에 와주었기에 엄마 사랑이 그리워서 많이 아파버렸던 것이 아닌가?

문득 이 어린시절이 떠오른 것은 며칠 전 새벽기도 시간에 우리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이다. 엄마 아빠는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는 늘 친절하고 극진한 엄마. 손님들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요리하는 엄마. 그런 엄마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뭘까? 가끔은 손님들을 위한 배려로 냄새 쥑이는 맛있는 요리를 하면서 두 녀석 후각과 입맛의 기대를 부풀리는 때가 있다. 그러나 정작 너무 매운 요리라서 두 녀석은 맛도 못 보고 냄새만 맡으면서 참기름 간장에 밥을 비벼 먹어야 하는 일이 있다. 한 번도 그런 때 아이들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문득 어린 시절 엄마와 내 모습이 우리 아이들과 오버랩이 된 것이다.
내 어린 시절 어느 시기에 내게 있어서 우리 엄마가 '엄마'가 아니라 '사모님'이었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 나는 어떤 목마름을 새기고 있지는 않을까? 아이들과 있을 때는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기만 하다가 청년들이 오면 급 친절해지고 나긋나긋해지는 엄마. 그런 엄마를 보면서 아이들은 사모의 탈을 쓴 엄마의 이중적인 모습을 느끼진 않을까?

두 녀석에게 갑자기 미안해지고 그러면서 고맙기도 하였다. 오랫만에 채윤이가 제일 좋아하는 큰 접시에 몽땅 담아주기 저녁을 준비했다. 가끔은 이 녀석들도 엄마가 준비하는 식탁의 주빈이 되어야지. 그래야하고 말고. 엄마는 두 녀석에겐 항상 엄마여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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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과학 단원평가 30점을 맞고 나서 뻔뻔하게 '엄마 나 공부좀 시켜' 이렇게 대들길래 이번 기말고사에 공부를 좀 시켰습니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네 과목을 같이 외우고 문제집 풀고요.

아~ 시험공부 하는 것도 전쟁입니다.
엎드려서 문제집 풀다가 눈물이 그렁그렁 해가지구

'엄마, 현승이 나가서 못 놀게 해줘. 내가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데 쟤는 학교도 안 다니면서 공부도 안하고 나가서 놀면 내가 얼마나 부럽겠어?' 라는 말이 되는 지 안되는 지 모르겠는 타박을 일삼고...

'엄마, 내가 대단한 거 발견했어. 내가 시험을 국어, 수학, 과학, 사회를 보잖아. 이걸 첫 글자만 따서 이어서 부르면 국수과사가 된다. 으하하하...웃기지?'



시험공부를 시키면서 제일 난감한 과목. 사회 과목! 1,2학년 때 바른생활이라 불리던...
위의 문제를 보면 도대체 정답이 뭘까 싶습니다.
제가 다 답이 있습니다. 교과서에 세 가지 서술형 답이 주어져 있지요.

1. 견학가기 전에 견학지에 미리 연락을 한다.

2. 견학을 할 때는 큰 소리로 떠들지 않고 조용히 한다.
3. 꼭 필요한 질문을 준비하여 질문하다.

이 세 가지를 외우면 저 문제는 맞게 되어 있습니다. 그거야 정말 외우게 하면 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견학하기 전에 연락해서 예약하는 거 필요하지만... 모든 견학지가 다 조용해야 하는 것 아니고, 질문을 몰라서 하는 거지 꼭 필요한 질문을 재다보면 어떻게 질문를 하겠냐고요?

이런 식의 퐝당한 문제가 사회 과목에서는 정말 많고, 시험에 안 틀리려면 그걸 그대로 외우면 되고... 이런 식으로 6년 3년 또 3년을 공부하다보면 생각할 줄 아는 애들 획일화된 정답에 가두기가 딱이겠드라구요.

물론 저는 대충 외우도록 하고, 이건 시험문제에 그렇게 쓰기 위한 거라고, 이런 경우 대부분 니 생각이 맞다고 설명은 했지만 삶과 유리된 교육.... 아, 어렵습니다.


이 문제도 사실 처음에 풀이과정이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까 이 문제는 8단을 외우면서 푸는 문제더라구요. ㅋㅋㅋ


문제의 의도야 '의식주'를 골라라는 '엄마, 오늘 아빠가 차 갖구 갔어? 주차장에 차 있어?'를 매일 확인할 정도로 걷는 걸 싫어하는 채윤이로서는 'ㄴ'의 자동차는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지요. 그걸 가지고 '넌 틀렸어' 라고 말해야 하는 현실.ㅜㅜ

암튼, 오늘 채윤이는 학기말 평가를 봅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엄마, 나 시험볼 때 기도해도 돼?' 합니다. '그럼, 잘 집중해서 풀게해 주세요. 공부한 내용이 잘 생각나게 해주세요. 기도하고 시험 봐' 했습니다.

아효, 우리 채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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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찌기 다른 엄마들이 방학했다며 클났다하고 개학했다며 신난다 하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었다.
아뉘, 애들 아침부터 깨우지 않아도 되고, 숙제 걱정 안해도 되고, 무엇보다 스트레스 없이 쉴 수 있는 방학이 어찌 싫단 말인가? 라며 자질부족의 엄마라는 식으로 속으로 비웃었으나....

지난 화요일 두 녀석 개학하고 혼자 오전에 집에 있어보니 이게 딴 세상이다. 개학은 곧 엄마의 방학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했으니 말이다.
방학 한 두 번도 아닌데 왜 이리 느낌이 다르지? 생각해보니, 지난 방학은 모두 아빠의 방학에 무게가 더 기울어져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월요일마다 내려가던 아빠가 늘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 매 번 방학은 이벤트 그 자체였었는데 이번 방학부터는 학생이 아니라 말하자면 직장인의 신분으로 출퇴근 하시며 새벽기도 하시니.....그저 한 달 내내 셋이서 집 안에 꽁꽁 묶여있던 터였다.


아침 멕여놓고 설겆이하고 청소하고 좀 쉴라치면 '엄마, 뭐 먹을 거 없어? 배고파' 이러면서 들이대고,
하루종일 지 에미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꼴을 못 봐주시니 말이다.


날씨도 추운데다 자동차도  맘대로 쓸 수가 없는 뚜벅이 신세가 되어 어디 데리고 나가기도 힘들고...
방학내내 집에만 있다가 잠실 교보문고에 한 번 나가게 됐는데 우와, 비록 만화책이긴 하지만 책을 사자마자 읽고 싶어서 난리를 치더니 지하철에서 꼼짝없이 독서 삼매경에 빠지시기도 하였다.


어릴 적 생각하면 그래도 혼자서 만들고, 부시고, 읽고, 그리고, 음악 듣고, 춤추고 참 잘 노는 편인데...

애들이 있으면 책을 읽어도 읽는 것 같지 않고, 조용한 묵상도 안 되고, 아무 때나 내 시간 치고 들어오는 통에 짜증만 나고....

방학 말기에는 언젠가 현승이의 그림 속에 있던 이 표정으로 하루죙일 보냈다.
노래도 하나도 안 하는데 목이 꺼끌꺼끌할 정도로 소리를 질러대고....
 
아, 정말 개학이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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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극장을 통째로 빌려서 스타워지 에니메시션을 보고난 이후.
아빠를 시작으로 우리 집에 스타워즈 중독 바이러스가 돌아다니더니 급기야 네 식구 모두 감염되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완전 넷 다 스타워즈 폐인이 되다.

스타워즈가 처음 나왔던 1977년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성인이 될 때까지 영화를 쉽게 볼 수 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빠나 엄마나 그 재밌다는 스타워즈의 세계를 모르고 살아왔다. 이번에 본 스타워즈 에니메이션 <클론의 전쟁>도 사실 영화는 너무 보고 싶고 아이들을 어떻게 할 수는 없고해서 찾은 영화였다.
그걸 보고 나서 아빠의 기억 저 편에 있던 스타워즈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고 거기 나오는 알투, 쓰리피오등의 로봇이 현승이와의 대화 속에 살아나오면서 다 지나간 영화 더듬기는 시작되었다. 총회 때문에 일주일 집에서 쉬는 아빠, 운동회 때문에 숙제도 비교적 가벼웠던 채윤이 이런 게 맞아 떨어져서 한 일주일간 지나간 스타워즈 빌려보기로 네 식구가 폐인이 되었다. 넷이 모였다 하면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어떻고 다쓰 베이더가 어떻고 광선검이 어떻고....

혼자 침대에 누워 책이라도 보고 있으라치면 어느 새 아빠와 아이들 둘이 스타워즈 얘기로 정신이 없는데 가만 듣고 있으면 30년의 나이 차이을 넘어서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 셋의 대화로 들릴 뿐이다. 가끔 어른 둘이 대화를 할 때는 스타워즈에서 건져올린 더 심오한 철학을 논하기도 한다.(심오하다고 얼마나 심오할까?ㅋ)

홈 씨어터는 커녕 TV도 없는 집에서 쬐만한 컴퓨터 모니터에 넷이 달라붙어 앉아 오징어 구워놓고는 스타워즈에 심취하는 맛. 이 궁상맞은 기억은 우리들만의 추억으로 얼마나 멋지게 자리잡아가고 있는지.
 

재미가 없으면 견디질 못하는 여자와
의미가 없으면 견디질 못하는 남자가
함께 영화를 보려니 그 중간지점을 찾아내기가 어려운 일인지...
그 중간지점을 찾아준 것은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영화를 고르다 만난 픽사영화들은 둘 사이의 중간지점은 물론 네 식구
모두를 열광케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으니....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영화를 제대로 좋아하고 영화평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아빠는 최근에 <박찬욱의 오마주>를 보면서 영화와 글을 연결시키고 싶은 꿈틀대는 본능을 캐치했나보다.
나중에 형편되면 가정용 프로젝터를 꼭 사고 싶다는, 그리고 제대로 보고싶은 영화들을 보고 영화설교 같은 것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하셨다.


픽사영화와 더불어 우리 아이들의 '보고 또 보고' 친구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영화 DVD를 많이 사주고 그걸 보고 또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고 싶다는 아빠는 마트에만 가면 DVD 주변을 서성거리다 엄마한테 한 소리 듣기 일쑤다.
MBTI로 분명 N, 직관형일 듯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상상력은 채윤이 같은 감각형의 아이들에게는 정말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열어주는 듯 하다. 픽사영화와 함께 아이들이 몇 번씩 반복해서 보는 영화들이다.

무엇보다 이런 영화들이 식구들만의 비밀스런 은어를 만들어 쓰게 하고, 30년의 세대 차이를 넘어서 풍성한 대화를 하게 한며 세대공감을 자연스럽게 일구어 낸다는 것이 참으로 좋지 아니한가. 이런 류의 세대공감이 가능해진 것은 다름아닌 부쩍 자란 현승이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새 영화자막을 대충 읽기도 하고 그 어눌한 말투로 영화의 등장인물과 대사와 스토리들을 줄줄 꿰기도 할만큼 자란 현승이 덕에 넷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현승이가 자라서 우리와 이런 공감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반가운 만큼 삼춘기를 맞은 채윤이가 언제 사춘기에 돌입하여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 식구들을 따시킬지 모르는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넷이 이렇게 킬킬거릴 수 있는 시간이 우리 생에 얼마나 될까 싶다. 기나긴 인생에 오늘같은 꿀같은 시간이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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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술 후 말을 하지 못하던 어느 날 아침.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일깨워 일어나 아침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힘든 몸으로 식사준비 보다 더 어려운 일은 세 식구를 깨우는 일인데....
아이들 학교 갈 시간은 가까와 지는데 세 식구를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날 생각을 안 합니다.
소리는 낼 수 없으니 종을 하나 찾아다가 귀에 대고 쨍쨍 울렸습니다.
이렇게 말 없이 세 식구를 깨우면서 스트레스가 턱 정도 까지 올라왔습니다.
남편이 왜 저렇게 아침잠이 많은 지 결혼 10년 동안 풀지 못하는 숙제다 싶으니 더욱 지쳤습니다. 겨우 일어난 남편이 겨우 애들을 깨우고, 늦게 일어난 현승이는 짜증을 내면 앵겨붙고..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순간적으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튀어 나갔습니다.
아빠한테 쌓여 있던 것이 부글부글할 무렵, 현승이가 안전핀을 뽑은 것이지요.

이런 날 만큼은 좀 일어나서 최소한 내 목소리를 대신해줘야 하는 거 아냐?
새벽기도 갔다 왔다구? 이런 상황에서 그런 핑계는 이기적일 뿐이야.

2.

방학이라 온 식구가 집에 있습니다.
오전에 볼 일이 있어 나갔다 오면서 남편과 아이들이 집에 있었습니다.
집에 와 보니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우리 아이들이 할아버지 댁에 가지 않는 한 결코 하지 않는 것이 컴퓨터 게임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컴퓨로 에니메이션 DVD를 보는 것이 고작 모니터를 마주보는 유일한 시간 입니다.  두 녀석 시간만 주면 거실에 온갖 것들 다 늘어놓고 상상의 나래를 펴며 놀 수 있는 녀석들입니다. 비록 치우는 게 힘들고 온 집안에 정신이 없어도 컴퓨터 게임보다 백 배 낫다는 생각으로 감수하는 일입니다.
헌데 아이들의 아빠는 본인 편하게 독서하시겠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애들을 컴퓨터 게임 앞에 놓아두시다니요...
또 혈압이 오릅니다. 나는 자기가 없는 일주일을 어떻게 지내는데....
컴퓨터 게임시키면 내 몸 편한 거 몰라서 내가 못하는 줄 아나? 아빠가 돼서 말야...
애들은 나 혼자 키우냐고...

3.

온 식구가 이마트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장보기를 마치고 널따란 주차장에 쇼핑카트를 밀고 들어 섰습니다. 짐이 실려 있고, 현승이가 타고 있고, 채윤이가 매달려 있는 쇼핑카트를 아빠가 삥그르르 돌리기 시작합니다. 다 돌아가면 또 돌리고 다 돌아가면 또 돌리고....애들은 소리 지르고 좋아서 죽습니다.
저는 한 발 물러서서 그 모습을 지켜봅니다. 마음에서 혼잣말이 새어 나옵니다.
'우리 애들한테 아빠가 있어서 다행이야'
가끔 마음 깊은 곳에서 새어나오는 말입니다. 아빠와 아이들이 셋이서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볼 때, 엄마한테 혼나고 아빠 품을 찾아 파고드는 아이들을 볼 때 나도 모르게 '우리 애들에게 아빠가 있다니...너무 다행이야' 합니다.

내적여정을 하면서 사춘기시절 아버지의 부재가 얼마나 큰 빈공간을 만들어냈는지 새삼스럽게 보게 됩니다. 자꾸 자꾸 새어나오는 '아빠가 있어서 다행이야' 는 그 빈 공간에서 나오는 말임을 이제는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빈 공간을 모진 책임감으로 채워야했던 사춘기 이후의 시절들이 오늘의 나를 부자유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4.

내 어린시절을 굳이 들먹거리지 않아도 채윤이와 현승이에게 김종필 아빠가 있는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일상의 의미없는 시간들을 놀이공원으로 만들어주는 상상력과 건강한 몸을 가진 아빠, 엄마의 날카로움을 관용과 이해심으로 마모시켜주는 아빠, 새벽마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아빠. 가족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 그 진지하신 몸을 망가뜨려 웃겨주시는 아빠.

이 글을 쓰며 맨 위 두 사건에 대해 공식적인 용서를 선언합니다. 아니 공식적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사랑이 더 진보하지 못하고 늘 같은 문제로 쪼아대는 옹졸함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당신이 우리 아이들의 아빠라서 얼마나 감사하고 든든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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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엄마가 시간이 많아져서 유치원 입학식에도 참석하고,
입학식 마치고 롯데리아도 가고,
어떤 날은 같이 산책도 해주고,
산책 하고 나서는 던킨도넛에도 가고 한답니다.

던킨도넛에서 있었던 일.
식구들 모두 던킨도넛을 좋아하지만 사실 달아서 얼마 먹지를 못해요.
최근 채윤이가 베이글의 담백한 맛에 푹 빠졌지요.
덩달이야 지 입맛이 어떻든 누나가 하는 건 다 해야 하니깐
덩달아 '베이글 하나 추가요!' 이렇게 된답니다.

아이 둘이 베이글 하나 씩 시키고 엄마는 크림치즈 들어있는찹쌀도넛을 하나 시켰어요.
테이블에 받아와 보니 현승이 눈에 엄마가 달랑 도넛 하나 먹는 게 좀 그랬나보죠.
"엄마! 엄마는 왜 쪼그만 거 먹어? 엄마도 베이글 좋아하잖아. 베이글 먹어."하길래...
"돈이 아까워서 그래." 하고 툭 생각없는 말을 던지고 말았지요.
현승이는 이 말을 또 마음에 담았나봅니다.
베이글을 내밀면서 "엄마 짤라서 먹고 줘." 합니다.
그걸루두 맘이 불편했는지.
좀있다가 "엄마, 그런데 그거 하나만 먹어도 배는 많이 부르지~이?" 합니다.
점심 대신 먹는거였거든요.
어쩌나 보려고 "아니지. 이거 먹고 배가 어뜨케 불러."했습니다.
다시 아무 말 없이 없습니다.
한참을 먹다가 다시 "엄마! 그래도 엄마가 좋아하는 거니깐 맛있긴 맛있지." 합니다.
현승이 마음이 이뻐서 "응, 맛있기도 하고 이것만 먹어도 사실은 배 불러." 했더니,
헤~ 웃으면서 안도의 숨을 몰아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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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대화가 오갈 때 채윤이는 뭘하냐고요?
채윤이는 일단 먹으러 가서는 먹는 거에만 집중합니다.
아~언제 나와. 하고 있다가 나오면 정신없이 먹는 거예요.
잠깐 휴지 가지러 가면서도 이러죠.
"엄마! 내꺼 먹으면 안 돼. 한 입도 먹지마."
저걸 딸이라구.....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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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롯데리아에서도 커피가 얼마나 럭셔리해졌는지...
일단 종이컵도 아니고, 잔이 저렇게 크고 넓으니 꼭 커피빈
커피 같잖아요?
집에 있으니 애들 데리고 동네 한 바퀴 돌다보면
꼭 저런데 들어가서 감자튀김 하나 도넛 하나라도 먹어줘야 하고,
그러면 엄마는 또 커피 참을 수 없고...
그래도 봄햇살 등에 업고 아이들 손잡고 느긋하게
동네를 걷는 기분은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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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딱 1년 전, 입학식날의 채윤이 모습

 

채윤이가 1학년 종업식을 하는 날입니다.
채윤이도 힘든 1년이었지만 엄마가 느끼는 부담도 만만치 않았던 공교육 1년차였습니다.
신학기가 되면 많은 엄마들이 '좋은 선생님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제목을 내놓습니다.
저는 그런 기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일단 학교에 좋은 선생님이 많지 않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오히려 그런 학교 안에서 자존감을 많이 손상시키지 않고 밝게 잘 지내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은 많이 아픕니다.
김동원선생님께서 딸의 담임선생님께 쓰셨다는 편지를 블로그에서 보고 감동을 받아 업어왔습니다.


==========================================


선생님께,

며칠간의 고민 끝에 선생님께 글월을 들게 되었습니다.
우선 얘기를 드리기 전에 먼저 저를 소개하는 것이 순서일 듯 싶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반에 있는 김문지의 애비되는 사람입니다. 아이의 이름을 앞세우니 선생님께 제 소개를 단 한 줄로 전해드릴 수 있는 이점과 편리함이 있군요. 저는 아이를 통해 선생님 얘기를 듣고 있어 선생님의 저에 대한 정보보다는 훨씬 더 풍성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달리 소개안하셔도 제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나 할까요. 어디, 정보통이 아이 뿐인가요. 아이 엄마도 선생님 소식을 제게 갖고 오기도 합니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 엄마는 선생님을 만나뵙고 아이에 대한 칭찬을 들었다며 입이 귀에 걸려서 돌아왔더군요. 그러니까 이 글이 처음이긴 하지만 암암리에 일면식도 없은 선생님에 대해서 저는 이미 몇 번의 면식을 튼 것처럼 친숙함이 있다고나 할까요. 그렇다고 제가 아이나 집사람을 선생님의 뒷조사를 위하여 학교에 잠입시킨 것은 아니니 절대로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글월로 처음 얼굴을 맞대는 어색함은 이 정도의 얘기로 얼버무리기로 하고, 이제 제가 고민해왔던 얘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며칠 전 아이가 침울한 얼굴로 돌아왔더군요. 사연을 알아보니 아침에 늦어서 선생님이 갖고 있다는 그 특유의 주걱으로 매를 맞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었습니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집안의 분위기가 대체로 그러했습니다. 지각한 벌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생각은 그러했는데 다음 날의 상황은 저를 고민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아이가 6시 30분에 일어났거든요. 평상시의 딸아이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아주 밝은 얼굴로 학교갈 준비를 하고 저히 엄마의 칭찬을 받고는 학교로 갔습니다. 매일 아침 벌어지는, 잠자리를 쉽게 털어내지 못하는 아이의 꼼지락거림과, 반복되는 똑같은 말로 아이를 일으켜 세우려다 금방 지치고 마는 아이 엄마의 짜증이, 우리 집의 평상시 아침 풍경입니다. 거의 일년 내내 계속되던 그 지겨운 풍경이 그날 아침 깨끗이 해소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섬뜩해진 것은 바로 그 날의 달라진 딸아이 모습이었습니다. 그 한번의 매가 가져다준 놀라운 효과가 저를 기쁘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뜩하게 만들었습니다.
학기가 시작되고 어느 날 아이가 의외의 말을 전한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선생님이 우리 아이는 매를 대지 않았으면 한다는 부모의 뜻을 갖고 온다면 1년 내내 때리지 않겠다고 했다는 말을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빌미로 삼아 편지를 쓰겠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신중하게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편지가 선생님의 교육권에 대한 간섭이 되는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매가 아이의 버릇을 일거에 고친 그날 아침, 저는 거의 생각을 굳히고 있었습니다. 역시 매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효과적이라는 것이 매에 대한 저의 가장 큰 우려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 땅에선 거의 항상 그런 분위기가 주조를 이루어왔습니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 주목을 하는 분위기였죠. 과정에 주목하면 전혀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 그의 덕택에 경제가 개발되었다는 결과론에 기대어 끈덕지게 살아남습니다. 그 과정에서 짓밟혔던 그 숱한 유린된 인권에는 아직도 빛이 들지 못합니다. 개발 독재의 그 놀라운 효과가 가져다준 결과 앞에서 사람들 모두가 그것이 갖고 있는 비인간적 측면을 간과합니다.
지나친 논리의 비약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선생님의 매에서, 저는 그런 우려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 아이가 다음 날 아침도 여전히 잠자리에서 꼼지락대었다면 저는 선생님께 이런 글을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매는 너무 효과적이어서, 제게 매우 위험해 보였습니다.
매보다는 차라리 다른 벌이 어떨까 싶습니다. 5학년 때 선생님은 엎드려 뻗쳐를 시켰다고 하더군요. 개나 소는 때리면 말을 듣지만 개나 소에게 엎드려 뻗쳐를 시킬 수는 없으니 오히려 그 벌이 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 봉사를 시키는 것, 아니 학급 봉사를 시키는 것은 더더욱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벌이 되겠지요.
아이를 한 대의 매 때문에 잘되는 아이가 아니라, 그렇게 하여 나중에 거봐라, 그때 한 대 맞고 나서 아침 일찍 일어나는 좋은 버릇 가진 덕분에 크게 성공했지 하면서, 훗날의 결과로 아이가 엄마품에서 흘렸던 어느 오후의 눈물과 슬픔을 무마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아내가 아이의 늦잠과 씨름한다고 해도, 아이에게 그런 방만한 삶을 인간의 이름으로 허용하고 싶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 또한 집안에서 매의 유혹에 시달리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유혹과 부단히 싸우고 있습니다. 선생님께 그 유혹에 대한 저의 저항을 이해해 주시고 그와 뜻을 같이하여 아이에게 매를 대지 말아달라고 하는 것이 큰 무리임을 알고 있습니다. 40여 명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하루의 삶이란, 단 하나의 딸아이만을, 그것도 피붙이이기 때문에 더더욱 깊은 사랑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저와는 양적으로 크게 다른 피곤함과 힘겨움을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은 것에 신경이 예민한 저는 선생님이 아이편에 전한 얘기, 그러니까 매에 반대하는 부모의 뜻을 갖고 오는 아이는 고려하겠다고 한 그 말씀을, 옳타구나, 선생님이 스스로의 입으로 말씀하셨으니 어찌하시겠어 하는, 건수 하나 잡은 듯한 다소 고약한 심정으로 선생님께 제 견해를, 저는 문지가 매를 맞는 것에 반대합니다라는, 쪽으로 밝히고자 합니다.
제 편지가 하찮은 일 하나를 트집잡아 선생님이 의당 가져야할 교육권을 간섭하는 일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의 생각에 관계없이 선생님의 교육관에 따라 매를 사용해도 이후에는 문제삼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의 생각이 이러함을 밝혀드리오니 선생님께서 아이 편에 전해 주었던 그 말씀을 기억하시어 저의 생각을 참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이 편지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아이와 아내의 선생님에 대한 얘기로부터 얘기가 통하겠다는 깊은 신뢰감을 가질 수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밝혀드립니다. 아이 엄마는 선생님의 이름을 인터넷으로 조회하여 수상 경력까지 보여주며 열심히 사는 분 같다는 저의 신뢰감에 깊이를 더해주었습니다. 아마 그 신뢰감이 없었다면, 40년을 넘게 살아온 사람의 닳고 닳은 현실적 계산으로, 더큰 화근을 부르는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편지같은 것은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아이의 교육에 기울여주시는 깊은 후의에 감사드리며 이만 맺습니다.

2002년 3월 22일
김동원 드림

**덧붙이는 글: 문지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 보낸 편지이다. 컴퓨터를 정리하다 보니 눈에 띄었다. 그 선생님은 한해 내내 좋은 추억을 남겨준 선생님이었다. 학교로 편지를 보낸 것은 중학교 때도 한번 있었다. 반응은 달랐다. 중학교 때는 패거리를 지어 아이를 아파트 지하실로 끌고 가려고 한 같은 반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였는데 그때의 담임 선생은 이런 애들은 그런 편지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었다. 아이보다 선생이 더 실망스러웠던 기억이다. 그저 일이 생기면 덮고 무마하려고 하는 전형적인 어른들 모습이었다. 선생과 달리 아이들 중에는 내 편지를 받고 우리 아이에게 사과한 아이가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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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하나되어 힘겨운 산을 하나 씩 넘어가라고 묶어주셨다면,
힘들 때마다 부부가 함께함으로 위로가 되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기 때문에 중요한 판단의 기로에서 치우치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서 말이다.
다 큰 어른 둘이만 있으면 심각한 순간에 심각한 분위기가 온 집안을 감쌀텐데.....
집 안에 작은 망아지 둘이 뛰어다니니 그 무거운 분위기를 깨고 다니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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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로 츄리닝을 입고 간만에 채윤이는 '아우~ 나 현승이가 너무 귀여워' 하면서 안고 뽀뽀를 하고,
느끼남 현승이는  뽀뽀나 껴아는 거....그런거라면 언제든 오케이다.
두 망아지가 뛰어다니고 깔깔거리고 시끄럽게구는 것이 기가 막히기도 하지만
'퍽' 하고 웃음이 터지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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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마주 앉은 엄마 아빠의 얘기가 길어질수록 놀이의 장은 무한히 펼쳐지고 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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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 몰입의 아름다움? 참으로 범접하기 어려운 놀이의 삼매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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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진화를 거듭하던 놀이는 결국 거실에 돔을 하나 짓는 것으로 클라이막스에 다다랐다.
애들이 너무 조용하길래 봤더니 애들은 안 보이고 저 알 수 없는 돔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찍을 때는 애들은 안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찍고 보니 두 망아지의 눈망울이 다 담겼다.

오늘 아침에 식사하면서 채윤이가 쪼그만 입으로 쫑알쫑알 하는 게 귀여워서 또 퍽 하고 웃었다.
'채윤아! 엄마 아빠가 요즘 마음이 무거운데 채윤이 현승이 때문에 웃어' 했다.
하나님이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상대화하며 기뻐하라고 보내주신 메신저가 바로 저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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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고수부지에서 놀다가 강아지가 쫓아오자 기겁을 하며 엄마한테 달려는 채윤이.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예전에 아이들을 가르칠 때부터 이 캐롤이 참으로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작년 재작년 채윤이 현승이이가 산타 얘기를 물어오면 까칠한 엄마 그렇게 대답했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있는 지 없는 지를 잘 모르겠는데....확실한 건 원래부터 착하거나 원래 나쁜 아이는 없어. 사람은 다 조금씩 착하기도 하고 조금씩 나쁘기도 해' 하고요.

이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지가 울기도 많이 울었고, 짜증도 냈고 장난도 많이 친 걸 누구보다 잘 압니다. 허나 선물을 받아야겠고, 산타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이 난감함에 '아, 몰라. 난 착한 애야. 그냥 착한 애로 쳐.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 하고 있는데 결국 해마다 머리맡에 선물은 놓여 있구요.
아주 아주 비약을 한다면 매년 크리스마스에 반복되는 이런 일은 아이들에게 '자기기만'을 가르치는 첩경이라는 생각을 해요. 이건 큰 틀에서 크리스마스의 주인이신 아기 예수님이 오신 방법, 그 분이 오신 이유, 그 분의 성품에 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캐롤이 크리스마스의 정신에 아주 반하는 노래라는 이유는 사실 여기 있어요. 하나님의 아들을 주신 사랑, 성탄절의 그 사랑은 그야말로 받는 대상의 착하고 나쁨에 상관없이 주는 사랑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라고 하던가요? 우리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그 자체 때문에 주시는 사랑이라는 것이죠. 그게 성탄절의 사랑인데 말예요.

행위가 아니라 존재 때문에 사랑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행동이 아니라 아이의 존재로 사랑하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엄마' 비슷한 말 한 마디 하는 것, 걸음마 한 걸을 떼는 것에 그렇게 열광을 하면서 좋아하고 이뻐했었죠. 아이가 클수록 엄마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실망하고 실망감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분노하고 그러구 있죠. 하다못해 오늘 아침만 해도 느릿느릿 준비하는 채윤일 보다보다 지각할 시간이 가까와져 몸이 달아서 아이를 닦달하고 따뜻하게 학교로 보내지 못했어요.
헨리 나웬이 그랬다는군요. 우리는 두 번째 사랑(부모님, 배우자, 친구...의 사랑)을 받았던 기억으로 하나님 사랑을 헤아려 보려고 한다고요. 그런데 우리가 받은 두 번째 사랑은 얼마나 변덕이 심하고 일관되지 못한 사랑인지요. 그로 인해서 피차에 주고 받은 상처가 얼마나 많은지요. 하나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따로 뭔가 할 일이 없다는 것.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서 잠 잘 때나 일어날 때 짜증 날 때 장난 칠 때마다 노심초사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런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정말 머리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몇 달 전 아침에 채윤이 등교 준비를 하고 내보내는 중이었습니다. 그 날도 옷 가지고 타박, 먹는데도 꾸물꾸물 하다가 결국 늦었죠. 윽박을 질러서 내보내고 머리까지 찬 분노를 가라앉히고 있는데 투다다닥 채윤이가 다시 현관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울면서요. "엄마! 넘어졌어" 하면서 제 가슴에 푹 파묻혀 우는 겁니다. 순간 제 마음이 뭉클했어요. 불과 1, 2분 전 화난 얼굴로 자기 등을 떠밀었던 엄만데 넘어져서 슬퍼지자 바로 생각나 달려온 것이 엄마 품이었다니.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스럽고....

채윤이처럼 그저 그 분의 사랑에 달려가 기대는 순수한 마음이었음 좋겠습니다. 나의 존재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그 사랑을 머리로 아니라 가슴으로 삶으로 느끼는 하루였음 좋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큰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며, 내 아이 내 남편,  그리고 내게 주어진 많은 사람들을 '존재' 그대로 사랑할 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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