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으로 밤으로 Zoom 강의와 모임이 있는 날.

그래서 바쁜 저녁시간이면

유난히 요리를 하게 된다는...

바쁘고 더워 죽을 저녁시간에

해zoom.

닭가슴살, 닭다리살 듬뿍 넣은 카레와

막막 새콤하고 시원한 미역냉국을 해z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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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밤, 옥수수를 삶았다. 옆 단지 사는 이웃사촌이 옥수수를 보내왔다. 깨끗하게 다듬어서 '오늘 바로 쪄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더운 여름밤, 받자마자 삶았다. 열기와 함께 퍼지는 냄새. 이거 뭐지? 뭐지? 아하, 수련회 저녁집회 마친 냄새다. 눈물 콧물 저녁집회 마치고 일종의 카타르시스 충만한 시간에 광주리에 담겨 나오던 방금 찐 옥수수, 그 옥수수 냄새. 정겨운 권사님들, 집사님들... 그때 마이크에서 울리는 소리 "조장들 와서 간식받아 가세요!" 그땐 그랬지. 바로 그 냄새.

 

"옥수수 먹을 사람?"

"나아~!"

야식 금지가 시급한 김종필 아빠가 온다. 김종필만 온다.

 

"여름 밤 옥수수 냄새, 무슨 냄샌지 아는 사람?"

"저요, 저요! 수련회 냄새!"

역시 비상한 후각을 가진 김채윤.

"여기다가 수박도 같이 나와야지!"

궈어래? 수박까지 꺼냈더니 바로 이 향기다.

수련회 저녁 간식 냄새.  

 

옥수수 증말증말 좋아하는데, 젊은 날 추억까지 떠오르니 배 불러도 먹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수련회 간식 중에 제일 인기 없는 게 뭔지 알아? 옥수수야."

분위기 깨는 데도 비상한 감각을 가진 김채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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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강의 준비하다 혼자 먹는 점심. 먹고 싶은 것이 한 둘이 아니나 가능한 것이 몇 개 없다. 라면, 그래 괜찮겠네. 나이를 먹고 라면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 전에 나이를 조금만 먹었을 때는 라면을 먹어도 속이 편안했는데. 라면 반쪽에 콩나물을 듬뿍 넣어 라면 콩나물국을 끓였다. 묵은지 몇 조각과 대파까지 듬뿍 넣었다. 시원하고 칼칼한 것이 새로운 장르의 국물이다. 매운맛 진라면 신분 세탁.

두어 시간 줌 강의 하고 다시 강의 준비(실은 무려 '설교' 준비였다.)로 앉았다 보니 어느새 식구, 그렇다, 食口! 밥 달라는 입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역시나 먹고 싶어 하는 것은 따로 있었지만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고. 비빔면에다 낮에 쓰고 남은 콩나물을 다시 때려 넣어 같이 끓였다. 냉장고 뒤져 나온 상추 몇 장, 오이 반 개를 썰었다. 땡땡 언 차돌박이를 부드럽게 구워 얹고 삶은 계란까지. 이건 뭐, 흙수저 비빔면이 금수저로 신분 세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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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락 칼국수로 점심이다. 손님 초대 후 남은 식재료 털어먹기 프로젝트다. 바지락 반, 면 반 '오대오 칼국수' 저리 가라! 채윤이와 둘이 먹는 점심인데, 목구멍에 넘어가질 않는다. 이 맛있는 것을, 이 시원한 국물을 우리끼리 먹어 끝이라니... 이럴 수는 없지, 이럴 수는 없어. 인증샷을 찍어서 남편에게 보냈다. 학교에 있는 현승이는 보내도 못 받는다. "우리 이런 거 멍는다, 메렁" 자랑샷을 보내고 나니 그제야 칼국수가 넘어간다. 답 메시지가 사진으로 왔다. 엇쭈! 밀리지 않겠다 이거지? 우어어어... 도시락 장난 아님! 어디서 많이 본 건데... 이러나 저러나 내가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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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버리는 것 아깝지만, 더 아까운 것은 손이 많이 간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김치. 담근 사람을 알 때는 물론이거니와 어쩌다 한 다리 두 다리 건너온 김치라도 그렇다. 묵은지라는 이름의 배추김치는 시어 꼬부라져도 김치찌개로, 김치찜으로, 활용도가 높은데. 다른 김치들, 특히 무로 만든 김치들은 어쩔 수 없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시판 인스턴트 볶음밥(비비고 차돌 깍두기 볶음밥)을 보고 무김치도 볶음밥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라면을 부르는 김치"라는 이름으로 섞박지 한 통을 얻었다. 라면을 불러 충분히 즐겨보지도 못하고 시어버렸다. 라면은 틀렸고, 스팸을 부르고 그다음 밥을 불러들여 볶음밥이 되었다. 맛있다. 볶음밥 킬러 남편은 먹으면서 운다. "어떡하지? 반 밖에 안 남았어. 여보, 어떡하지? 밥이 자꾸 없어져..." 누가 어디서 담갔는지 모르는 시어버린 섞박지를 마지막 한 조각까지 알뜰하게 먹으려고 한다. 이 김치를 담근 손에 복을 내려주세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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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생일 저녁에 뭐 해줄까?

음... 떡볶이!

그래, 떡볶이와 미역국!

 

# 초딩 생일 아님

# 반백의 떡볶이 좋아하는 아저씨

# 떡볶이를 좋아하는 건지, 좋아하도록 길들여진 건지는 모름

# 생일 점심으로 비싼 밥 먹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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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요리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다. "나는 생선 비린내에 취약해. 나는 비린내 나는 생선은 잘 못 먹어."라는 생각과 닿는다. 일찌감치 깨달았다. 이것은 주입된 취향이다. 아버지는 비린내 나는 생선을 싫어했고, 엄마는 아버지의 취향을 성경 말씀처럼 떠받들고 살았다. 어릴 적에 집에서 먹은 유일한 생선은 박대였다. 것도 기름에 굽는 일은 없었다. 석쇠에 끼워 연탄에 굽든지, 조림을 하든지. 아버지가 드시는 유일한 생선이었다. 평안도 출신 아버지가 충청도(전라도에 가까운) 출신 엄마 덕에 그나마 친해진 생선 아닐까. 이유는 단 하나, 비린내가 나지 않아서.

 

아버지 계실 때도 먹었던가? 자라면서 엄마가 손수 손질한 조기는 참 많이 먹었다. 엄마만의 조기 손질 노하우도 있었고. 무엇보다 채윤 현승이 어릴 적에 엄마 집에 가면 손수 손질한 걸 손수 발라서 아이들 밥 위에 하나 씩 얹어주셨다. 아이들은 조기구이를 좋아한다. 조기구이에 맛을 들인 건 외할머니통해서다. 조기 굽는 냄새와 함께 살을 발라주던 늙은 손, "이쁜내미~ 복덩어리~" 하고 부르는 목소리. 채윤 현승이가 기억했으면 하는 우리 엄마 모습이다. 채윤 현승이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이 아니라 조기 구워 밥상 차려주던 그 시절 외할머니를 기억해주면 좋겠다. 환기가 잘 되지 않았던 주택에서, 늙은 엄마가 앞치마를 두르고 조기를 구웠다. 우리 네 식구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조기구이 냄새와 함께 엄마가 튀어나왔다.  "아이고, 울 애기 왔네, 울 애기들 왔어! 채윤아아, 현성아아~ 아고 이쁜내미, 복덩어리!"

 

어느 저녁 한참 조기를 구워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채윤이인지, 현승이인지가 그랬다. "이 냄새를 맡으면 흑석동이 생각나." 흑석동은 엄마 집인데, 아마 외할머니보다는 외숙모 밥으로 떠올릴 것이다.

 

화요일에는 오후로, 밤으로 줌 모임이 있는데 강의 틈새 저녁 시간에 바쁘게 반찬을 만드는 나를 본다. 여유 있는 다른 날도 있는데, 굳이 화요일 저녁에 그러고 있다. 화요일 줌 강의는 꿈모임인데, 꿈은 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 어떤 기억이 떠오르고, 그리움이 밀려오고, 모니터 화면의 얼굴 하나하나가 아프게 가슴으로 파고든다. 연결되어 있구나,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구나! 그런 마음으로 끝이 난다. 이렇듯 깊은 곳이 건드려지고 끝나면 다른 무엇이 아니라 고요한 마음으로 저녁 준비를 하게 되는 게 희한하다. 

 

조기를 굽고, 비엔나 소시지 김치 볶음을 하고, 어묵 볶음도 했다. 학교 마치고 운동을 하고 들어온 현승이가 "와, 이건 무슨 냄새? 이 맛있는 냄새... 와아, 와아... 엄마 냄새가 엘리베이터까지 나." 한다. 집안 가득한 비린내, 김치 냄새, 졸은 간장 냄새. 냄새가 난다. 냄새는 난다. <냄새는 난다>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보고 꽂혀 잠시 덕질을 했던 이병헌 감독의 영화 제목이다. <멜로가 체질>에서도 같은 제목의 노래가 한 곡 나온다. 여기서 냄새는 방귀 냄새다. 생선 굽는 냄새, 방귀 냄새. 생활의 냄새다. 그러고 보면 어느 때부턴가 생선 굽는 비린내를 즐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집안 가득한 비린내, 비린내와 함께 미세먼지도 엉켜 떠다니겠지. 이게 삶이지. 살아있는 한 냄새는 난다. 냄새는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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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보고 싶어서 팥밥을 했다.
맛있다.
한 그릇 먹고, 한 주걱 더 먹고, 또 한 주걱 더 먹고... 맛있다.
그런데 밥이 죄다 목과 가슴 사이에 걸려 있는 것 같다.
내려가질 않는다.
엄마가 보고싶어서 팥밥을 했는데
팥밥을 먹으니 엄마가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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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커피를 내린다.

아니다.

김칫국물...

김치말이 국수를 위해 한 번 걸러내야 하는데

베보자기는 없고.

천으로 만든 커피 필터는 있지.

안 쓰는 거지.

멜리타 드리퍼로 향긋하게 내려봤다.

(서버는 칼리타)

고춧가루 싹 걸러져 맑고 투명해졌다.

산미가 뛰어나다.

깔끔하고 개운한 김치말이 국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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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피자를 만들었다.
밀가루 도우 대신 감자를 얇게 저며 깔아서 감자 피자다.
계란도 넣게 때문에 피자보다는 오믈렛 같은 맛이 난다.
맛있다고, 어떻게 이런 음식을 생각해내고 뚝딱 만들었냔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정해주었다.
정신줄 놓고 들여다보며 내가 어떤 영상에 끌려다녔는지 정확히 알려준다.
요즘은 신서유기 스프링 캠핑 영상과 ‘5분 뚝딱 요리’ 같은 게 상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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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걸 혼자 두고 못 보는 은경 샘, 연구소의 연구원이다. 좋은 걸 혼자 먹지 못하시고 한아름 들고 와서 나눠주었는데. 설명이 구구절절한 청도 출신 미나리다. 와, 설명이 구구절절 길만도 하다. 무슨 미나리가 이리 깔끔하고 달착지근하다냐! 모처럼 집에 혼자 있는 날. 혼밥이라니 눈물 난다. (행복해서 나는 눈물) 삼겹살 구워 된장에 찍어 함께 먹으면 최고라는데. 혼자 먹자고 삼겹살 사러 갈 수는 없고. 냉장고 문 열고 서서 한참을 고민했다. 아무리 뒤져봐도 삼겹살 비슷하게 생긴 게 없다. 그렇다면 떡볶이지. 만만한 건 떡볶이다. 먹다 남은 로제 파스타 소스에 청양고추 때려 넣어 떡볶이를 만들고 청양 고추와 라임도 맞는 청도 미나리 썰어서 함께 먹었다. 청양고추 효과로 혀에 불이 나는 걸 청도 미나리로 껐다. 아사삭 씹히는 게 향까지 살아 있어서... 맛있어 돌아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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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값이 어마어마하다. 얼마 전 남편 퇴근길에 파를 사 오라 부탁하고 영수증을 보니 육천 원이었던가? 이 남자 또, 또, 또! 계란을 사 오라 하면 유정란을 사 오고, 야채를 부탁하면 덥석 유기농 코너에서 들고 와서 내가 장보는 가격의 몇 배를 탕진하고 온다. 또, 또!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파 값이 정말 그런 것! 와, 후달린다. 그래서 파테크가 유행이란다. 집에서 파 길러 먹기. 어! 우리 엄마, 시어머니 두 분 다 원조 파테크er인데. 큰 화분에 파를 심어 놓고 그때그때 잘라서 쓰시던 모습 눈에 선하다. 익숙하긴 한데, 나는 못해.

 

대파와 마늘은 정말 많이 쓰는 양념이다. 안 살 수는 거라 상대적으로 싼 쪽파를 사봤다. 나름의 파테크다. 양이 많아서 여기저기 막 뿌리게 된다. 현승이 먹는 스테이크에 파를 듬뿍 올리고 소스 조금 뿌려 구웠다. 아, 이거 괜찮다! 맛있다고 엄지척 하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길래, 사정 얘길 해줬다. 딱 알아듣고 한 술 더 떴다.

 

아아, 그거 알지. 어떤 식재료가 저녁에 먹는 음식에도 듬뿍 들어가고, 아침에 먹는 전혀 다른 음식에 또 들어가고, 모양만 살짝 바꾸면서 계속 등장할 때가 있지. 아, 지금 엄마한테 물량이 많구나! 이렇게 생각해. 당분간 쪽파가 많이 등장하겠네.

 

요리사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 고기에만 올인하는 것 같아서 민들레 나물 무친 거랑, 오이 몇 조각이라도 먹이려고 어렸을 적처럼 한 접시에 죄 담아주었다. 구운 마늘에 발사믹 크림을 뿌리는 척, 접시 중앙에 하트 그리려고 폼 딱 잡고 있는데, "엄마, 하지 마! 하트 그릴려고 하지?" 한다. 손에 힘이 풀려서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을 남기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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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 본 김에 콩나물밥 함. 달래, 냉이, 쑥... 이런 걸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어릴 적 기억 때문인 것 같다. 산책하다 만나는 쑥이나 냉이를 그냥 두고 오는 게 그렇게 아깝다. 마트에서 만나면 일단은 카트에 담고 본다. 초록 잎이 있는 '달래'와 흰색 대가리만 있는 '은달래'가 나란히 있었다. 차이는 모르겠지만, 비싼 놈이 뭔가 낫겠지 싶어 천 원 더 비싼 은달래를 골랐다. 집에 와 검색해 보니, 예감대로 은달래는 노지 달래라 향이 더 진하단다. 콩나물밥 해서 비벼 먹고, 도토리묵에 끼얹어 먹고, 찐 양배추 찍어 먹고 있다.

 

현승이가 맛있다고 자꾸 달랜다. 점심에도 콩나물밥 달래, 저녁에도 콩나물밥 달래. 자꾸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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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란 게, 한 시라도 머물러 있어야 말이지. 한 나절 사이 마음은 수십 번 바뀌고 뒤집어진다. 이른 아침의 마음은 무거웠다. 새로 시작하는 일(일이 단지 일인가? 일은 항상 사람이지!)이 잘 되려나 싶고, 그만두고 싶고. 그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니까!)과 관련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무게가 줄어들고 걱정은 기도로 바뀌었다. 포스트잇에 몇 마디 끄적여 노트북에 붙이고 기도했다. 걱정이 기도로 바뀐 것이지 그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일의 실행을 위해 단톡에서 말을 주고받다가 번쩍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거기에 맞장구쳐 새로운 아이디어가 등장하고... 오, 마음의 날씨가 급 설렘으로 바뀌었다. 설렘은 생기가 되고 에너지가 되었다. 

 

혼자 먹는 점심이고, 원고에 매진해야 할 시간이기도 해서 대충 때워야지 싶었는데. 에너지가 충천하니 식욕 또한 상승하고,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김치소 같은 걸 다져서 만든 김치전이 아니라 배추전처럼 통으로 깔아서 부치는 통김치전을 만들었다. 말이 필요 없지! 혼자라도, 혼자라서 더 맛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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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겨울 피정 주간에 짧게 목포에 다녀왔다. 이 즈음의 짧은 여행은 가족의 루틴이다. 목포다. 목포로 만장일치를 봤지만 목포를 향하는 목표는 넷의 마음에 제각각이었을 것이다. 세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그저 '낙지 육회 탕탕이'였다. 육회 좋아하고, 낙지 탕탕이 좋아하는데 각각 제대로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다. 좋아하는 둘이 한 접시에 담기다니 설레고 설렜다. 아, 그 식감은 어떨까? 식당도 검색도 끝냈다. 목포를 향한 내 목표는 오직 하나다. 목표를 향한 목포에 도착. 첫 식사를 하러 가서 설레는 마음으로 "낙지 육회 탕탕이요!" 외쳤다. 주문을 받고 주방에 다녀오신 분이 "육회가 떨어져서 낙지 탕탕이" 밖에 안 되는데요. 네에???? 낙지 탕탕이를 먹었다. 눈물을 머금고 먹었다. 촵촵촵 낙지를 씹으며 채윤이가 말했다. "이런 집은 백종원 아저씨한테 혼나야 해." 그 한 마디에 아이들 말로 현타가 왔다. "맞아, 내가 이거 먹자고 서울서 몇 킬로를 달려왔는데 아무렇지 않게 낙지 탕탕이 밖에 없다니... " 그래도 그냥 먹고 나왔다. 

 

시작이 이러하더니. 이번 여행은 먹을 것과는 영 통하질 않았다. 이튿날 점심으로 정한 횟집은 역시나 설렘 그 자체였다. 아침도 대충 먹고, 추위에 달달 떨며 해변을 걸으면서도 '그 점심'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뛰는 가슴 안고 찾아간 그 식당은 '화요일 휴일'이었다. 아아아아... 어떻게 어떻게 찾은 해변의 동네 횟집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지만 결핍의 구멍은 커져만 갔다. 날은 춥고, 옷은 얇고, 어디 걸을 수도 없고. 일찍 숙소로 돌아와 저녁은 배달 음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배달을 시키느니 숙소 주변에서 사 오자! 채윤이와 남편이 나가서 제대로 '사 왔다!' 특히 근처 세발낙지 맛집에서 바로 그 '낙지 육회 탕탕이'를 공수해왔다. 소원풀이가 되었다. 결핍의 구멍이 깨끗이 메워졌다. 숙소의 옹색한 테이블에 뻗쳐 놓고 먹는 것이 아슬아슬했지만, 마음만은 왕의 식탁 같았다. 

 

 

세 군데 식당을 점찍었는데, 집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 세 번째 식당의 복은 맞았다. 줄을 서서 먹는 집이라는데 텅 비어 있었고, 음식은 정말 하나 같이 맛있었다. 반찬 하나하나가 제대로였다. 김치는 또 얼마나 입에 착착 달라붙는지. 메뉴를 고를 것도 없이 정해진 걸 먹으면 되는 거였는데, 생선구이 정식이 제대로 정식이었다. 다만 자의식 과잉의 주인아저씨께 서비스를 많이 해 드려야 해서 먹는 것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것. 홍어 껍질을 내주면서 "이거, 이거!!! 이거 청담동 아줌마들이 없어서 못 먹어. 이거 먹고 주름이 싹 퍼져부러. 이 김치! 우리 마누라 호가 신기여. 신의 기술! 손이 신의 손이여! 이 시금치! 이거 비싸. 섬이서 막 들어온 거요......" SNS 맛을 보신 탓인 것 같기도 하고. 맛집 댓글에 쓸 말을 쥐어 주시느라 애쓰시는 것 같은데. 나를 제외한 세 식구가 전라도 사투리를 못 알아듣는 통에 자꾸 나만 보고 말씀하셔서 밥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서비스가 지금 주인에게서 손님으로 가는 건지, 방향이 반대가 된 건지. 

 

2월 중순, 늦은 강추위에 눈까지 내려 올라오는 길 걱정에 일찍 출발해버렸다. 훤한 오후에 집에 도착하니 저녁을 또 먹어야 하네.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도 아닌데 저녁으로 먹고 싶은 것이 매콤 새콤 칼칼한 것. 밥은 아니고. 뭔가 씹을 것도 있고. 인내심을 가지고 그 모든 욕구를 다 취합하여 골뱅이 국수로 정했다. 신이 내린 요리의 손을 발휘해 만들었다. 나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웠지만 입을 다물었다. 고객님들이 오직 식사에 집중하도록. 너희 세 사람의 모든 욕구를 다 만족시킬 이 메뉴를 정한 나의 센스, 몸소 장을 보고 온 노고, 동태채를 골뱅이 캔 국물에 재워서 넣어본 창의성... 떠들어대고 싶었지만 참았다. 맛이 있냐? 맛이 어떠냐? (칭찬과 찬사를 강요하는) 습관이 된 질문도 안 하기로 했다. 오늘만큼은 왕의 식탁으로 대접하고 싶었다. 준비하는 내가 아니라 먹는 사람 편에 서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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