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단계가 예정되었던 토요일이었습니다. 고심 끝에 취소했지요. 말끔한 마음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생긴 휴일이니 한결 더 여유로운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몇 가지 일과 더불어 꼭 산책을 해야겠다, 산책 하다 어느 벤치와 눈이 맞으면 거기 앉아 책이나 한 권 끝내야지 싶었지요. 고급인력 조교인 수진 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대형사고가 터졌다구요.


세미나 취소된 걸 모르시고 한 선생님이 포항에서 오신 것입니다. 착오와 착오가 교차하며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한 번 신청으로 영성과정 신청까지 다 된 걸로 아셨고, 취소 문자는 신청하신 분께만 보내드렸으니까요. 게다가 페이스북도 안 하시니 통 소식을 모르셨던 거지요.


마포도 아니고, 포천도 아니고, 포항에서 오셨어요. 이걸 어쩌나! 두 시간만 기다려 주십사 하고 일단 준비하고 튀어 나갔습니다. 명동에서 뵙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죄송하고, 점심식사라도 대접해야지 싶었습니다. 반갑게 만났습니다. 명동에 오셨으니 명동칼국수 어떠시냐고 제안했습니다. 16년 미국생활에 한국 들어오신지 3년 지나는 동안 명동에 처음이시라구요. 미국에 계실 때 비오는 날에 명동칼국수 생각이 났었다네요. 뭔가 시작부터 좋았습니다.


식사하고 한 사발 가득 라떼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나눴습니다. 제 책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을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읽으셨다구요. 읽으신 후에 저자를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셨다네요. 책으로나 만나지 저자를 직접 만나고 싶은 생각은 처음 드셨다고 합니다. 5유형이십니다. 직접 만날 기회가 있어도 부러 피하실 분들이죠. 글로 만나는 게 제일 편하신 분들 ^^ 책을 읽고 쓴 사람이 궁금해졌다는 것, 그 누구도 아닌 5유형의 말이니 제가 많이 고무되었습니다.


여하튼 그러다 검색하여 세미나를 발견하셨고, 지난 번 1단계에 참석하셨었죠. 이번에는 세미나 시작 전에 도착하시고자 하루 전날 올라와서 주무셨다는군요. 여하튼 결론은, 5유형이 시도하기에는 정말 어려운 일(특별한 주제 없이 직.접. 만나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선생님께는 물론이고 제게도 꼭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내적여정, 영성에 관해 공부하면서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겠지요) 틀어진 계획으로 인해 꼭 필요한 강의를 듣게 되고, 꼭 만나야 할 도반들을 만난 경험이 많습니다. 꼭 듣고 싶은 강의가 인원 미달로 취소되었다 하여 낙심하고 돌아선 적이 있었어요. 몇 년 후에 전혀 다른 곳에서 개설된 강의를 찾았지요. 정말 좋은 배움이었고, 만남이 깊어져 스승님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한참 뒤에 얘기 나누다 보니 몇 년 전에 취소되어 놓친 그 강의의 강사이셨어요.


오늘 꼭 이렇게 만났어야 했구나! 싶었습니다. 강의 취소로 10여 분들께 아쉬움을 드렸지만 단 한 분과 얼굴과 얼굴로 만나야 했던 모양입니다. 적잖은 위로와 기쁨이 있는 만남이었습니다. 값지고 신비롭습니다. "취소되고 착오가 일어난 데는 다 뜻이 있었네, 하나님 뜻이 있었네" 라고 말하면 쉬운데 저의 큰 아이의 시니컬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요. "아우 참, 정말. 아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왜 모든 걸 다 그렇게 말해? 뭐든지 다 하나님의 뜻이야? " (얘도 교회는 다닙니다.)


산책 따위! 산 책(alive book)인 사람,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참으로 신비로운 대형사고지요?





* 에니어그램 세미나에 관한 내용은 페이스북 페이지 [상처 입은 치유자들]을 통해 소통하고 있으나

한 개 더 애정하는 블로그 고객님들께도 페이지에 올린 글 그대로 복사하여 알려드립니다. 



신청하신 분들께만 말씀 드리고 스리슬쩍 넘어가려 했는데, 공지로 알려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하반기 예정되었던 2단계, 심화1, 심화2과정 세미나를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미리 신청하시고 마음과 함께 시간을 비워두고 기다리셨던 분들, 죄송합니다. 특히 코앞의 2단계를 기다리시던 분들께는 더욱이요. 개별 문자에는 인원이 적어서 취소했다고 했는데 실은 단지 인원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다섯 분 신청해주셨는데 개설하고도 남을 인원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두 분, 세 분을 앉혀 놓고도 (심지어 한 분도 해봤어요) 하루가 걸리는 에니어그램 1단계 설명을 수도 없이 해봤습니다.


인원은 핑계일 뿐, 저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 에너지가 고갈된 탓입니다. 가끔들 그러시잖아요. 감기같이 찾아오는 무기력과 ‘아이고 의미 없다’, 무의미 병에 걸리시곤 하시죠? 저도 그러네요. 돌이켜보니 에니어그램 지도자과정 공부한지 만 10년입니다. 불혹의 40을 앞두고 일...찍 찾아온 중년 병에 한참 늦은 영적 사춘기가 겹쳐 2년 정도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난 끝이었습니다. 나도 싫고, (멀쩡히 살다 뒤늦게 목사가 된)남편도 싫고, 아이들도 거추장스럽고, 무엇보다 교회가 제일 싫었습니다. 그때 소가 뒷걸음질 치다 개구리 잡는 격으로 우연히 만난 에니어그램이었고, 그로부터 몇 년(아니 지금까지 10년) 정말 에니그램과 내적여정, 영성공부에 미쳐 살았습니다.


요즘 슬슬 드러나는 증상이 12년 전 무기력 병과 비슷하네요. 50 지천명의 고개 앞에 서서, 하늘의 뜻을 깨닫는 숙제를 받아든 탓인가 봅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말씀을 빌면 ‘황폐한 마음’의 계절이 온 것 같기도 하고요. 마음의 움직임을 황폐함(desolation)/위안(consolation)으로 구별하여 자신의 마음 상태를 깨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다. 황폐함의 상태는 그 자체로 좋고 나쁨이 아닙니다. 위안이 넘치는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듯 황폐함이라고 늘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요. 황폐한 마음상태로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하는 에니어그램 집단여정을 이끄는 것은 좋지 않겠다는 생각에 고심 끝에 결정했습니다.


2단계 신청하신 다섯 분의 성함을 들여다보고 오래 고민 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1단계를 들으신 분도 계시고, 수강료를 우해 알바비 열심 모으는 대학생도 있고, 각각 사연과 목마름은 우주과 같을 것임을 알기에 너무도 죄송합니다. 취소를 결정하고 메시지를 드리고 나니 혹시 취소자 없냐며, 티오를 묻는 문의가 이어집니다. 결국 수강인원은 다 채워질 상황이었으니, 제 마음이 더욱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실은 힘을 얻는 것은 심화과정에서 언급하는 앤소니 드 맬로 신부님 책의 이 한마디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내가 도우려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절대, 절대로, 내가 여러분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마십시오. 만일 도움을 받는다면 여러분이 그러는 겁니다. 진실로 여러분이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실은 저도 수없이 다양한 강의를 하고,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이끌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 준비된 학생에게만 선생이 존재하는구나. 내가 1이라도 가르쳐 전할 수 있는 것은 들을 준비된 분, 오직 듣고 스스로 도울 힘이 있는 분이 있기 때문이구나.


무엇보다 여러분 안의 목마름이 더딘 시간을 지나며 구원으로 이끌 것을 믿습니다. 하루 띡 듣고 마는 내적여젓 세미나가 아니라 의식성찰 일기를 쓰고, 쓰다 답답해 포기하고, 다시 질문을 던지고, 영적 독서를 하고, 도통 모르겠는 채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여정 속에서 참된 배움이 있을 것임을 저는 압니다. (해봐서 압니다) 2단계와 심화 1.2 과정은 내년 상반기에 다시 열도록 하겠습니다. 2017 12월 20일(수) 예정된 영성과정(장소는 합정동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은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신청링크 : http://bit.ly/2vJI8Su)


내적여정 강의의 마침표를 찍을 영성과정에서는 거짓자아가 궁극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관계를 다루게 됩니다. 하나님께조차 유형의 포장지를 나갈 수밖에 없는 우리, 우리 안에 있는 왜곡된 하나님 상을 찾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고요. 1단계부터 수도 없이 질문하셨던 ‘그래서 어쩌라구!(내 성격이 거짓자아라면? 어릴 적에 이미 형성되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듯 죽는 날까지 벗을 수가 없다면? 그것이 하나님 사랑이라는 과녁을 벗어난 죄라면? 쓸 수도 벗을 수도 없는 성격의 가면을 도대체 어쩌라구?’)에 대한 답을 기도, 향심기도(Centering Prayer)로 드립니다. 향심기도에 대한 안내와 실습으로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특히 이번 영성과정은 1단계만 들으신 분께도 열어두고 함께 하겠습니다. 2단계와 심화과정 듣지 않으신 분들도 신청해주세요.  긴 글이 되었네요.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 드리며, 늘 기도 속에서 여정의 동반자이신 여러분을 품도록 하겠습니다.




거짓자아,
설명하기 어렵고 불편한 말입니다. 아홉 개의 성격유형을 '거짓자아'라 이름붙이며 내적여정을 떠나는 에니어그램이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입니다.


'거짓'이라 말하니 누군가를 속이는 것 같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속는다는 의미에서 그 파괴력이 있습니다. 거짓자아의 반대 자아는 무엇일까요? 참자아? 이 역시 뭔가 (상당히 오염되어) 불편한 말입니다. 브레넌 매닝는 '아바의 자녀:사랑받는 자'라는 말로 '거짓자아' 아닌 자아를 대치합니다. 정말 적실합니다.


에니어그램 공부에 입문하여 혼란에 빠진 시기(그러니까 내 성격유형을 다 갖다 버리라는 거야 뭐야, 나는 이제껏 잘못 살아았고 잘못 믿어 왔는데 이걸 다 교회에서 배웠으니 더 이상 소망이 없군, 콱 죽어 버릴까?)에 저를 구원한 두 권의 책이 브레넌 매닝의 <아바의 자녀>와 안셀름 그륀의 <아래로부터의 영성>입니다. <아바의 자녀>를 읽고 노트에 이렇게 적어 놓았더군요.


타인의 불만이나 분노 무관심에 놓일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내 거짓자아는 벌벌 떨고 있구나!


거짓자아는 회피하거나 미워하고 혐오할수록 힘이 세어지고, 그것을 인정하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때에만 작아집니다. '아바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끌어안을 때만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고요. 내적여정은 그 지난한 길, 고통스럽기에 자유로운 길, 알 수 없는 신비를 따라 가는 평생의 여정입니다.


토마스 머튼, 헨리 나우웬, 칼 융, 플래너리 오코너, 죤 브레드 쇼, 마이클 야코넬리, 앤서니 드멜로, 리처드 로어 등 영성의 대가들과의 만남을 자신의 솔직한 경험에 농축시켜 풀어낸 절절한 글입니다. 일독, 십독, 필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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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수련회의 계절입니다. 수련회의 계절에 만만한 프로그램 MBTI 얘기입니다. 어찌나 만만해졌는지 수련회 스태프들이 검색으로 공부하고, 셀프 강의까지 하는 간편 MBTI가 만연합니다만. 그래도 꿋꿋하게 MBTI 전문가 자격으로 몇몇 교회 전교인 수련회에 초대받아 강의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검색해서 아무나 검사하고 강의하는 MBTI도 있지만, 10년 넘게 그걸 붙들고 물고 빨고 공부하고 살고 좌절하고 깨닫는 집착 강사의 MBTI도 있지요. '그깟 MBTI, 그깟 성격유형' 하찮게 여김당함을 무릅쓰고 검색으로도 할 수 있는 MBTI 강의를 장인 정신으로 하고 있습니다.

좋은 것에는 왜곡된 말과 생각이 들러붙기 마련입니다. 신기하게도 왜곡된 경구는 귀에 쏙쏙 들어와 꽂히지요. ("목사를 대적하면 어떻게든 댓가를 치룬다. 자녀가 잘 안 되든지 누가 병에 걸리든지" 귀에, 마음에 콕 박히지 않느요?) MBTI는 어마어마한 자기중심성에 빠져 사는 사람들에게 자기이해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참 좋은 도구인데, 그럴듯 하지만 왜곡된 설명으로 본질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검색으로도 전문가가 되는데요.

요즘은 MBTI에 대해 잘못된 루머를 바로잡는 것만으로도 강의가 재밌고 풍성합니다. 그중 하나는 오직 둘 중에 하나라는 강박을 깨는 것입니다. 외향과 내향, 감각과 직관, 사고와 감정, 판단과 인식형 대극으로 설명하는 지표 중 '오직 외향! 오직 직관!' 하나만 내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MBTI가 근거하고 있는 Jung의 심리유형론에서는 외향형의 무의식에는 내향이, 감각형의 무의식에는 직관이 의식으로 떠오를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Carl Jung 심리학의 중요한 핵심은 '통합'입니다. 외향 안에 내향이 있고, 직관형 안에는 감각형이 있으며, 여성의 내면에는 남성의 내적인격이 남성 안에는 여성의 내적 인격이 살아 있다고 합니다. 그 둘이 통합되는 것이 개성화 과정이고 인격의 발달이라고 합니다. 페르소나와 그림자의 통합은 물론이고요. MBTI 유형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나의 true type이 외향이라면 나는 죽으나 사나 외향형이 아니라 내 안에는 내향의 모습이 숨어 있고, 중년을 지나며 자연스럽게 떠으르며 통합된 인격으로 가는 것이 건강한 성격의 발달입니다. 

요즘은 청년보다는 장년 대상으로 MBTI 강의하는 일이 많은데, 이런 관점을 전하면 찰떡 같이 알아듣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면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씨름한 경험과 세월로 얻은 깨달음일 것입니다.  강의 마지막에 질문합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MBTI로 무슨 유형이실까요?"

온전한 인간이셨던 그분의 유형은 EISNTFJP 아닐까요?

회중 앞에서 거침없이 마이크 잡고 가르치시지만(E) 홀로 고독의 시간을 위해 물러나시고(I), 민중들의 배고픔의 현실, 실재하는 고통을 감지하여 먹이시고 구체적인 필요를 채우시며(SF) 그 어려운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비유로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 해주시고(NF), 바리새인과의 논쟁에서 빈틈 없는 논리로 한 치도 밀리지 않으시는(NT) 예수님. 구약의 예언(전통)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완벽하게 성취하시며(ST), 임기응변에 능하시고 어떤 것도 품으시는 융통성의 예수님(P).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입니다. 내 유형을 제대로 파악하고 좋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온전히 좋아하면 자연스럽게 그 이면이 보입니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열등기능이 새롭게 보이고, 겸손한 태도가 됩니다. 아무리 애써도 내 유형이 넘어서지지 않을 때, 더욱 겸손해질 것입니다. 반대유형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서로우 부족을 채우며 더불어 사는 것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다며, 이보다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제각각 다른 모양의 인격이 어우러져 이뤄가는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 





우리는 결국 사랑을 찾는 구도자입니다.


최근 작 <연애의 태도>에 저자사인에 쓰는 문구입니다. '찾는'보다는 '찾아 헤매는'이라는 형용사가 더 끌리지만 순화하기로 합니다. 어쩌다 술술 만년필이 움직여 끄적이게 되었지만 생각할수록 하나의 마침표 같은 문장이라 의미가 있습니다. 여섯 권의 책을 한 마디로 정리한 것이며, 내적여정을 공부하고 훈련한 10 년의 결론이며, 음악심리치료라는 생소한 공부를 선택한 20여 년 전 깊은 내적 동기이며, 50여 평생의 마침표입니다. 우리는, 아니 저는 결국 사랑을 찾는 구도자였습니다.


<연애의 태도>의 저자소개는 편집자 님이 쓰셨는데 '아,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타자의 시선으로 저를 정리하는 의미 있는 소개였습니다. 저에 대한 소개를 제가 읽으면서 저라는 사람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요.


정신실 작가는 인생에서 꼭 한 가지 성공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그는 '연애계'를 떠나지 못한다고 곧잘 말하며 여전히 청년들의 교회 누나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다. 연애에는 정답이 없기에 연애 강사 백 명이면 백 가지 답이 나온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고민깨나 한다는 청년들에게 연애 강사로 사랑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답게 연애하자'라고 즐겨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이 연애의 기술을 알려 주기 전에, 연애 당사자가 원하는 연애가 뭔지, 사랑이 뭔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상담을 시작한다.

자기를 잃어버리고 사회의 가치관에 따라, 자기를 잊은 채 타인의 사랑법으로 누군가의 이모티콘이 되어 움직이는 애정 결핍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나답게 연애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기를 저자는 우리 시대 크리스천 청년들에게 말해 주고 싶어한다. 동시대 신앙 선배로서, 사랑을 배워가는 사랑의 탐구자로서, 카페에서 수다처럼 쏟아내는 속깊은 고민들도 진심으로 들어주는 MBTI 전문 강사이지 에니어그램 전문가로 청년들의 연애사에 동참한다.


책과 강의 어딘가에서 한 번쯤 했던 말이 정리되어 담겨 있습니다. 대화의 기술에서 '미러링 기법'처럼 제가 했던 말을 되돌려 주는 저자 소개를 통해 '아, 맞아. 내가 이런 이유로 연애 강의를 하지' 하고 정리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제가 쓴 서문 일부입니다.


나만의 고유한 사랑을 찾아가는 데 연애만한 출발지가 없습니다. 그것도 썩 잘 풀리지 않는 연애 말입니다. 여친 생기는 기술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마음이 낙심으로 차분해지는 순간, 헤어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시원하게 정해 줄 연애 상담가 찾다 검색질 손가락을 멈추는 순간은 전향의 순간입니다. 사랑꾼 기술자와 사랑의 구도자 사이 갈림길입니다. '단지 남친이 아니라 깊은 친밀감을 나눌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었구나!' '인형 같은 여친과 하는 애인 놀이는 애초부터 없었어. 더불어 성장하며 영혼의 친구가 되어 가는 것이구나!' 이보다 소중한 사랑의 깨달음이 없습니다. 사랑꾼 기술자 지망생이 사랑의 구도자로 태도를 전향한다면 이것은 가장 좋은 소식입니다. 기술로 안 되는 연애, 답이 없는 연애의 길을 빛은 결국 그 사랑이니까요. 기술이 아니고 태도입니다. 


"너는 애가 사랑이 없어" 어렸을 적부터 엄마에가 가장 많은 들은 말 top5 안에 드는 말입니다. (1위는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살어') 어쩌다 나는 이토록 사랑에 천착하게 되었을까? 아마 엄마의 저 말이었을 것입니다. 가장 듣기 싫었고, 외적으로는 인정도 하지 않았지만 내면에서 가장 큰 부끄러움으로 간직한 말. 누군가 조금 관계가 불편해지 수도 있는데, 못마땅하고 싫은 사람이 알짱거릴 수도 있는데 그걸 해결하지 못하면 지옥가는 줄 알고 부단히 애를 써댔지요. 애를 쓰면 쓸수록 더욱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남는 것은 더 깊은 수치심 뿐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요. 내 사랑 아버지를 갑자기 빼앗긴 것도 '사랑'에 목숨 거는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신앙, 연애, 결혼, 육아, 관계를 통해 본질적인 무엇을 발견하고 싶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 사랑을 찾는 구도자의 길이었다는 것을 내적 여정을 통해 이제 알았습니다.


위험부담을 안고 도전을 하나 합니다. 연애도 육아도 관계도 심지어 신앙간증도 아닌 '사랑'이라는 주제만으로 짧은 강의를 합니다. 사랑이란 얼마나 식상한 주제입니까.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편집되어 영상으로 돌아다닐 강의이니 더욱 무모한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50년 사랑의 여정 동안 좌충우돌 하면 깨달은 것을 정직하게 나누자며 정리하고 있지만 심적인 부담이 큽니다. 이런 얘기 하렵니다. 사랑받지 못할 곳에 괜히 얼씬거리지 마라, 어차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 상처주는 사람을 끌어안으려 하지마라, 가급적 만나지 마라, 사랑은 변한다, 안 변하면 사랑이 아니다, 결혼과 사랑은 행복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의 문제이다, 이 사람을 만나도 저 사람을 만나도 상대가 애인이든 남편이든 자녀이든 결국 사랑을 위해 늘 끌고 다니는 건 '나'다, 그러니 '나 자신이 되어, 나를 탐구하고, 나를 좋아하는 일'이 관건이다. (그러니까 에니어그램 세미나에 와라?!) 


암튼 저는 어릴 적부터 사랑 없는 사람으로서, 사랑을 찾는 사람입니다.   







상반기 내적여정 세미나를 심화2과정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기보 1,2 과정과 심화 1,2과정. 총 4일, 28시간의 만남이었습니다. 어떤 고통 가운데 있더라도 '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살아 남고 견뎌낸다는 것을 빅터 프랭클은 깨달았습니다. 다른 곳 아닌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결국 살아 온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라고 하지요. '아이고, 의미 없다' 이 얼마나 쓸쓸한 말입니까. 


 심화2과정을 마치고 남겨주신 후기를 한 자 한 자 읽자니 '의미로다, 의미로다, 한량 없는 의미로다' 노래가 나오겠습니다. 좋았단 말, 고맙단 말이 백 천 천 번 듣는다고 싫겠습니까만.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 살아온 것, 삶을 나누는 것이 '의미'가 있구나 싶어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저 자신도, 함께 하신 선생님들도 '여기까지 잘 왔다!' 칭찬과 격려 받기에 마땅합니다.   


'정직성’과 ‘자발성’은 진실한 만남의 토양입니다. 에니어그램은 우리 자신에 대해 가차 없이 정직해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리처드 로어) 이런 만남까지 기대했던 것은 아닌데,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에니어그램 세미나는 ‘만남’의 신비와 기쁨을 일깨우네요. 한 분 한 분, 마주 앉은 분들의 의미가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손수 세 종류의 샌드위치를 만들고, 푸딩을 만들어오신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저 유명한 동막골 이장 님의 말씀 '뭐를 좀 마이 멕이야지'을 확인시켜 주셨지요. 정성 담기 수제 샌드위치가 입맛을 무장해제 시키며 마음의 긴장까지 풀어주고, 서로를 향한 따뜻한 환대의 태도를 갖게 했으니까요.에니어그램이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신박한 도구임이 확실하지만 환대로 마주하는 '사람의 얼굴'만 할까요. 참 감사한 만남입니다.


남겨주신 후기들입니다.


* 멘토 님 추천으로 에니어그램 평일반을 듣게 되었는데 휴가를 4일 쓰고 일정을 끝까지 마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듭니다. 누군가에게 말하기 쉽지 않은 저의 이야기와 다른 분들의 귀한 나눔으로 나와 타인을 더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 것 같고, 앞으로 저의 일상 속에서의 성장이 더 기대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본다는 것, 웃을 일보다 울 일이 많은 것 같네요. 힘들고 슬픈 순간에 그 누구도 탓할 수도, 변명이나 해명을 들을 수도 없지만..... 다만, 그때의 나에게 몇 마디의 말이라고 건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오늘 밤에라도요.


* 심화단계는 정상에 올라 탁 트인 하늘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직도 불완전한 내 성격과 삶과 내면의 부조리를 담담하고 용기 있게 직면하고 견딜 수 있는 힘(그 힘이 무엇인지는 형용하기 어렵지만)이 느껴진다. 내적 여정의 영적 여정임을 상기하고 공감하는 과정이었다. 참 감사하다.


* 깨달은 것을 확인받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반응 감정 재해석하기 / 수퍼에고와 성령님의 목소리 /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생명 없음과 소망 없음을 느끼고 경험하며 현재 나의 기도제목인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축복수련이자 불리는 축복기도의 패턴들.
잘못 가고 있는 길이 아님을 확인받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한 발짝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는 답답함이 공존합니다. 성급한 마음 탓일까요? 귀한 만남들 감사하며 또 만나길 소망합니다.


* 제가 지금 어디 쯤, 어떻게 서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마음 깊은 곳에서 괜찮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그전의 모임 때와는 다른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갈망과 다시 하나님과 깊이 동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요즘입니다. 돌무더기 같은 마음을 깨닫고, 오늘 살짝 말랑할 정도의 마음이 되었어요.


* 이 여정이 가도 가도 깊고, 멀고, 보고 싶지 않으나 먼저 가신 분들이 끌어주시고 함께 가는 분들이 계시고, 다음 세대에게 멋진 어른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또 한 발 내딛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 들으면서 좋았지만 여전히 내 속에서 지배하는 수퍼에고의 목소리가 괴롭기도 했습니다. 조금씩 유리천장을 뚫어가고 있는 중에 힘을 얻었습니다. 기도로 이 여정을 더 깊이 가봐야겠어요.


* 여정을 지내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참 ‘나’가 되는 것,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마음껏 살고 싶은 열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유형인지, 또 타인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지 생각하기 이전에 그저 하나님 창조하신 그대로, 자유의 삶을 살고 싶고 그 자유로 관계를 누리고 싶네요.


* 에니어그램은 나를 아는 것과 동시에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고 수용ㅎ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심화2과정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번 강의는 특히 ‘아하’ 체험이 풍부했습니다. 홀로 기도하면서 혼돈스럽고 모호했던 부분이 선생님의 강의로 이론적으로 확실해져서 굉장히 기뻤습니다. 함께 수업 들으며 솔직하고 진솔하게 내면을 열어 보여주시는 강의 같이 들으신 분들을 통해서도 유익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재미있고 흥분되게 심화단계를 마칠 수 있어서 정신실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주님 참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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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거실 세미나'로 시작한 '정신실의 내적여정 세미나'가 조금씩 꼴을 갖추어가고 있습니다. 엊그제 심화과정을 준비하면서 도반 수진 쌤이랑 '이렇게 준비가 널널해도 되나?' 했습니다. 거실에서 튀어나와서 진행했던 첫 세미나에서는 뭐 빠트린 거 없을까 심장이 두근두근 쫄깃쫄깃 했었지요. 단지 강의만이 아니라 핸드드립 커피며 나름 정성을 다하는 간식이며 이 모든 것에 담긴 환대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진정성이란 상대에게 피력함이 아니라 내게 충분히 그러한 진정성이기에 참 기쁜 일입니다.  


내게 필요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필요한 샘물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별다른 욕심 없이, 힘 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대적으로 알릴 방법은 없지만 필요한 분 눈에는 띄게 되어 있나 봅니다. 어디서들 오셨는지 귀인들이 오십니다. 그저께 했던 심화과정 사진을 보니 '먹자 모임'인지, '음식 영성'모임인지 싶네요. 몸과 영혼이 충만해진 만남이었습다. 수강하신 선생님 한 분이 손수샌드위치와 티라미수를 만들어오셨습니다. 감동의 티라미수 맛이었습니다. 입과 몸이 즐거우니 마음이 절로 열려 나눔은 더욱 풍성해졌고요. 


또 다른 도반 하정 쌔매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보물이다'라고 평을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라 했지만 진실하게 자기를 보여주는 말은 보배입니다. 함께 하신 분들의 얘기를 듣는 것으로 큰 배움이 돼서 제가 강의를 하는 건지, 배우러 온 건지 헷갈리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갈수록 이 자리가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 배우는 자리가 되네요.


수강 후 남겨주신 후기입니다.

* 감당하기 힘든 내적여정으로 정신이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심중을 찌르는 통찰이 있던 것 같습니다. 웃으며 마쳤지만 제 속에 있는 어둠은 오직 나와 신만이 알고 있고 이걸 어떻게 다뤄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부디 길을 찾아가는 중에 좋은 이정표가 나타나길.

* ‘아직도 가야할 길’이란 말이 다시 상기된다. 내 속에 있는 것들에 대해. o, x를 가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것들을 겸손히 들여다볼 용기가 생긴다.
그간의 내 일상에 일어났던 일과 나의 내적 동요, 반응에 대해 의식성찰을 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 거짓자아의 형성을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조각조각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 내가 일상이나 관계에서 마주친 갈등, 흔들림, 혼돈의 근원적 원인을 확인할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다른 분들의 나눔 속에서 내 혼돈의 실체가 명료해지고 조금 정돈되었습니다. 솔직하고 진솔하게 삶의 경험을 나눠주신 선생님과 함께 영적 여정을 걸어주신 벗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진심으로.

* 주일마다 만나는 유아유치부 아이들과 좀 더 친해져야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내면아이, 성인아이에서 경탄할만한 아이로 나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더 진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나의 이상(페르소나)와 그 이면의 이유들을 적으면서 마음이 떨렸고 내 모습의 또 한 부분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저를 돌아보게 되고, 저 자신을 바라보고 이해하기 되어서 기분이 좋고,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가 됩니다. 깊이 공부할수록 혼란과 실망감과 피로함이 느껴지지만 그 과정을 통과하여 참된 기쁨을 느끼고 싶습니다.
좋은 강의 진행해주셔서 감사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얘기에 사랑의 마음으로 청취해 주시는 것이 느껴져서 더 감사했습니다.

* “참자아, 페르소나, 그림자”
나는 늘 괜찮지 않았고, 늘 부족하다고 공허하다고 느끼며 살아왔는데.... 나의 생각과 감정, 반응과 행동을 늘 관찰하며 점검하며 살아온 것 같은데.....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회피할 수 없는 길인가보다. 생각을 관찰하는 것, 이것 또한 균형 잡아가야 할 과제인 듯하다.



세미나 마치고 돌아가시는 분들의 등에서 저는 '근심하며 돌아가니라' 이런 글을 읽습니다. '답을 찾으러 왔는데 더 복잡한 질문이 생겼다, 고민의 마침표를 찍으러 왔는데 이제야 뭔가 시작해야 하는 느낌이다.' 이런 말씀을 남기고 떠나니까요. 세미나 마친 다음 날에는 다른 일정이 없으면 거의 하루 내내 수강하신 분들을 마음에 품고 지냅니다. 오늘 아침에는 한 분 한 분 떠올리며 긴 아침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자, 고민하지 마시고 내 말만 들으세요. 제가 다 겪어봐서 압니다. 이제부터는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서, 이러이러하게 하시라!(안 그러면 다 죽어)"라고 확신을 갖고 끌어당기고 싶지만 그런 건 없습니다. 그저 함께 걸어갈 수 있을 뿐이지요.


저는 6월 한 달 특별한 기도 여정을 시작했는데 오늘 읽은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근심하며 돌아간' 한 분  한 분을 떠올리며 묵직한 마음으로 드린 기도에 대한 응답 같습니다. 나 자신과, 다가오는 사람들과, 내 안에 계신 그분과 만나는 진솔한 만남이 오늘을 사는 이유가 됩니다. 참 좋은 날입니다.



하느님과 만나기 위한 기술은 없으며, 그 까닭은 우리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만남의 주체이시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느님을 자동으로 불러냈다 들여보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기도는 바른 자세를 갖춘다거나 기도하는 데 적합한 장소, 또는 제대로 만트라를 배우는 것과 같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것은 기도를 마법같이 만드는 것이다. 마법의 요점은 하느님을 조종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은 좋은 종교가 아니다. 마법과 미신은 우리가 하느님을 부리려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느님은 우리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분이라는 점이다.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 토머스 H.그린







한 교회에서 '여성의 일상, 여성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남편,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였습니다.

'하나님께는 사위가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 자리에 계신 분들은 이심전심 알아들으셨지요.


강의 중에 스캇 펙의 말을 인용해서 '하나님께는 손자가 없다'라고 했거든요.

부모의 열심이 아이의 신앙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스스로의 씨름을 통해서라는 것이지요.


영적으로 자라지 않는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중심만 바라보면 내 아이는 하나님 손자, 내 남편은 그분의 사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지요.

남편은 하나님의 사위가 아니라 그분의 적자입니다.

남편이 신앙적으로 자라게 하기 위한 노력들이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성경 좀 읽어라, 이번에 개설되는 제자훈련반에 들어가라, 주일성수 해라.... 하는 대신

'교회 가기 싫어? 그러면 당신은 오늘 편히 쉬어. 나만 다녀올게' 흔쾌히 허락하는 것의 효과가 훨씬 클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남이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인생 길을, 영적인 여정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심화과정] 안내입니다.

'어린아이의 기억은 눈 온 길에 난 자동차 바퀴자국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동차 여러 대가 다닌 눈길에는 바퀴의 길이 생깁니다.
다음에 오는 차는 어쩔 수 없이 골이 생긴 그 위를 달리게 됩니다....
성격이 형성된 생애 초기에 패턴화 된 나의 사고와 감정의 습관을
돌아보는 것이 심화과정의 내용입니다.

강의와 함께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다양한 나눔을 합니다.
작년에 하루 과정으로 진행된 심화과정을 1,2로 나누어 이틀에 걸쳐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아래 참고 하셔서 신청해주세요.

심화과정 들으셨던 분들 재수강 가능합니다.(재수강료 3만원)
에니어그램 세미나 1단계 수강하셨다면 심화과정 신청 가능합니다.
심화과정 먼저 들으시고 다음 기회에 2단계 들으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일시]
. 심화과정 1 : 2017년 5월 31일(수) 오전 10시~오후 5시
. 심화과정 2 : 2017년 6월 28일(수) 오전 10시~오후 5시

[장소]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5층 세미나실 (합정역 7번 출구에서 3분)

[인원] 각 강좌 선착순 10명
[수강료] 각 강좌 12만
[문의] 010-4235-8020  larinari.tistory.com
[신청]
. 심화1과정 신청 :http://bit.ly/2lJjdFL
. 심화2과정 신청 :http://bit.ly/2qQYZ2B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마치고 수제 쿠키 몇 개를 신경 써서 챙겨왔습니다. 다음 날, 여유 있는 아침 시간이 아니었지만 굳이 명품 접시에 담아 커피와 함께 먹었습니다. 1월에 에니어그램 1단계 강의 들으신 선생님께서 재수강으로 오셨는데 손수 구워오신 쿠키입니다. 지난 번 강의가 너무 좋아서, 라고 말끝을 흐리셨습니다. 강의 후기에는 '지난 강의 후에 기도 시간이 더 늘었고, 영적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것을 경함하고 있으며, 기도 시간이 괴롭고 힘든 만큼 소중하고 귀하다'고 써주셨습니다. 참 감사하고 마음에 힘이 되었습니다.


에니어그램이 뭐라고 제가 이렇게 목숨을 걸겠습니까. 잠시 그것을 도구 삼아 자기 마음을 비춰보고, 정직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며, 차차 기도가 깊어진다면, 그리하여 조금씩 진리에 다가서는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면..... 단 한 분이라도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제게 오늘을 사는 가장 큰 의미 하나가 됩니다. 한 사람의 존재에 의미를 확인시켜준다는 것, 그것은 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입니다. 이 고마운 쿠키에 저의 그 의미를 담아 경건하게 먹어본 것입니다. 다른 한 분도 계십니다. 에니어그램을 처음 접하시는 호기심과 겸손한 눈빛으로 제가 하는 모든 강의를 다 수강하셨지요. 1단계 강의 재수강을 한달음에 달려 오셨습니다. 헌데 이미 10년 넘게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고 심지어 강의도 하고 계신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제게 허락된 이런 만남들이 참으로 과분합니다.


그리고 이런 걸 글로 쓰는 것은 오글거리는 일입니다. 자랑이며 동시에 선물로 오는 마음을 순수하게 지키지 못하는 탓입니다. 오글거림을 무릅쓰고 씁니다. 자랑임을 인정하며 공개합니다. 강의에서 떠들떠들 했던 것과 반하는 행동인 것도 압니다. 유형 설명을 하며 이렇게 교만하게 떠들떠들 하곤 하지요. '남들이 아무리 인정해주고, 사랑해준다 해도 우리 영혼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내가 나를 알아주고 사랑해주어야 할 뿐 아니라 우리 영혼을 궁극적으로 채우는 사랑은 하나님 사랑 외에는 없습니다'  진리인 줄 알고 확신을 가지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단번에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지는 못합니다. 진리를 알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입니다.


'오, 주님 우리가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우리 영혼엔 진정한 안식이 없나이다' 어거스틴의 고백 또한 진리입니다. 이 상황에 바꿔 고백해본다면 '오, 주님 우리가 당신의 사랑에 머무를 때까지 우리의 영혼엔 진정한 사랑받음이란 없습니다' 이 역시 내 영혼의 고백입니다. 문제는 누구라도 지금 당장 그것을 이루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당장 이루어낼 수는 있지만 지속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까이 존재하는 작은 사랑으로부터 시작하여 끝없이 그 사랑을 찾아가야하는 실존에 놓여있습니다. 아주 고갈되지 않도록 사랑을 채움받는 관계가 꼭 필요합니다. 그것 없이 하나님 사랑으로 비약하는 것은 보통 사람에겐 어려운 일입니다.


비 온 후 물웅덩이를 일부러 밟는 어린아이처럼, 엄마에게 혼날 것을 알면서도, 혼날 것을 알기에 더욱 그 웅덩이를 밟아 신발과 바지를 더럽히는 아이처럼 우리 마음은 부정적인 것에 더 빨리 달려갑니다. 상처받을 곳을 더욱 지향하고, 해도 안 될 일에 집착하고,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당장 품어내겠다고 주먹을 꽉 쥐곤 합니다. 사랑을 주는 것보다 먼저 오는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게 사랑을 채워주는 벗을 둬야 하고, 그런 장소를 마련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준비할 때는 늘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하면서 신파조 넋두리를 하기도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과분한 신뢰가 제 존재에 사랑을 채우고, 의미를 채우는 시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내게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시작임을 배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착각과 교만이 내 소중한 사람들을, 무엇보다 나 자신을 얼마나 괴롭게 했는지 잘 압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받음이 필요한 나를 그대로 두고 채찍질 하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실은 매일 모진 채찍질을 가하려는 제 팔목을 붙들어 두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러니 마음의 수련입니다. 사랑의 훈련입니다. 잘 해보겠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것처럼 어려운 병이 있을까요. 영혼을 팔아서라도 자기 안에 갇혀 있겠노라 결심한 사람에겐 약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자기를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브레넌 매닝의 말처럼 '죄의 본질은 어마어마한 자기중심성'이니 말입니다. 정신적 건강과 영적 성장을 위해 진짜 자기를 알아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에니어그램은 진짜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 진짜가 아닌 나를 알려주는 지혜의 거울입니다.


2017년 상반기 에니어그램 세미나 일정이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수강자가 2단계를, 1,2단계 수강하신 후에 심화과정 수강하실 수 있습니다.



[일시]

. 기본 1단계 : 2017년 3월 29일(수) 오전 10시~오후 5시
. 기본 2단계 : 2017년 4월 26일(수) 오전 10시~ 오후 5시
. 심화과정 1 : 2017년 5월 31일(수) 오전 10시~오후 5시

[
장소]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5층 세미나실(합정역 7번 출구에서 3분)

[인원] 각 강좌 선착순 15명  

[수강료] 각 강좌 12만 원

[문의] 010-4235-8020   larinari.tistory.com

[신청]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1단계 : 마감 되었습니다.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2 신청하러 가기

에니어그램 심화과정 신청하러 가기



아울러 페이스북에 페이지 개설했다는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누구랄 것 없이 우리는 모두 상처 입은 사람입니다.

상처와 고통은 인간의 조건의 조건입니다. 

그런 의미로 온전히 건강한 사람도, 온전히 아프기만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 상처를 보듬을 힘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

더 아픈 이를 향해 손을 내미는 것이 치유의 시작입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들'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페북 사용하시는 분들은 페이지 '좋아요'를 눌러주시면

세미나를 비롯하여 함께 하는 여정 안내를 바로 받아보실 수 있고, 

여정의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들 페북 페이지 바로 가기



정신실의 에니어그램 내적여정의 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강의 내용

1단계

  선물 또는 덫으로서의 성격 :

  에니어그램의 9 유형

 2단계

  적응 또는 방어로서의 성격 :

  에니어그램의 날개와 화살 / 공격, 의존, 움츠리는 유형들 

 심화단계

  습관이 된 정서, 패턴이 된 생각 :

  에니어그램 유형의 어린 시절

 영성단계

  성격 너머, 하나님 형상인 나 :

  에니어그램 유형의 왜곡된 하나님 상







2017년 첫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준비했습니다. 


새해가 되어 새로워지고 싶고, 성장하고 싶은 갈망은 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습니다. 환경 탓, 사람 탓 해보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나 자신인 것 같구요. 늘 지고마는 오랜 습관 같은 '나'라는 틀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에니어그램은 성격 그 이상의 나를 보게 하는, 그것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게 하는 좋은 도구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협소한 나로부터 시작하여 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 '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 여정'에 초대합니다. (주말 세미나 준비하겠노라 말만 앞세워 놓았었습니다. 막상 준비했는데 임박한 알림이 되어 시간 내기가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 에니어그램에 접근하는 방식이 여럿 있습니다. 뉴에이지적인 접근, 심리유형론적인 접근, 그리고 영성적 접근입니다. 앞의 두 접근의 주체가 라면 영성적 접근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은 치명적 차이입니다.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나를 들여다보고 조각조각 분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에니어그램을 거울삼아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연습, '눈을 닦는 수련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자기분석은 출구 없는 미로에서 맴도는 일과 같습니다.

심리유형론적 접근은 자기 유형 장점을 극대화하는 자기계발의 도구로 사용하도록 안내합니다.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만 단지 거기까지라면 에니어그램 최고의 가치를 놓치는 것입니다. 치명적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에 진통제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단지 진통제로만 그 약을 다 소비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영성적 에니어그램이 가진 최대의 강점은 에 대한 에두르지 않는 진단입니다. 단지 위로나 받고 싶은, 말랑말랑한 심리적 마사지 정도 바라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이유이며 심리학과 영성의 다리를 놓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치유와 영적 성장은 그분 안의 내가 누구인지 알 때 저절로 일어납니다. 어거스틴의 기도처럼 말이지요. '주를 알게 하소서, 나를 알게 하소서(Novem te Novem me)' -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 에필로그 중에서


 * 긴급히 알려드립니다!


장소 대관에 착오가 생겨서 강의 장소가 변경되었습니다.

서촌에 있는 한빛누리 재단입니다.

아울러 인원도 당초 12명에서 8명만 모시게 되었습니다.

신청은 마감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금 더 적은 인원으로, 안락한 공간에서 강의 나눔 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시] 2017121() 오전 10:00 ~ 오후 5:00

[장소] 한빛누리 재단  3층(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8길 17)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도보 6분

[인원] 8(선착순)    [참가비] 12만 원

[문의] 010-4235-8020 (문자로 남겨 주세요)

         larinari.tistory.com (댓글로 남겨 주세요)

[신청] 여기를 클릭

    











북 콘서트를 하고 달이 넘어간다. 벌써부터 후기 글을 시작해놓았으나 연일 터지는 막장 뉴스에 뉴스 중독, 분노 중독으로 보내느라 글이 써지질 않았다. 시작해 놓은 글 갖다 버린 것 이 한둘이 아니지만 북 콘서트 나의 여정에 꼭 짚어야 할 분기점이기에. <뉴스앤조이>의 기사가 잘 담아내고 있어서 더하고 뺄 말이 없다. 첫 책 <오우연애>를 내고 북 토크를 했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책이 연달아 나오면서 두 책을 묶어 기획한 것이 이번 행사이다. 아, '기획'의 주어는 출판사, 특히 두 책의 편집을 맡으신 편집장님이다.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편집자님. (하하) 나를 '이선희'로 불러주시니, 급 이선희가 좋아져 판타스틱듀오의 이선희 노래를 듣고 또 들었었다. 그러니까 아이돌이 아니란 뜻이고, 반짝하는 스타가 될 필요는 없다는 뜻이고,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오래 가는 작가가 되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있다. 간식이며 아이들 돌보는 서비스 등, 오시는 분들을 극진하게 배려하셨지만 그 모든 것은 저자에 대한 극진함인 것을 안다.


[말하기]


순서를 다 마치고 인사하러 나오신 편집장님이 '이 분은 북 토크를 위해서 글을 쓰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하고 농담을 하셨는다. 내 입으로 이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주책을 떨자면 '말의 잔치'가 유쾌하게 풍성한 시간이었다. 말이라는 것은 캐치볼을 하듯 던지고 받고, 던지고 받는 맛이 아닌가. 사회자 심 선생은 던진 말을 받아주고 거기에 한 개 얹어서 다시 던지는 최고의 캐치볼 상대이다. 돌아오는 공에 꼭 묻어 있는 것은 재치 한 스푼. 빵빵 터뜨리는 거친 유머에도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말을 찾아볼 수 없으니 타고난 마우스. 북 콘서트 참석했던 현승이 평은 이렇다. "그 쌤이랑 같이 하니까 엄마가 그렇게 오버하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아서 좋았어." 그리고 원래 외향형 여자 안 좋아하지만 그 정도로 웃기는 외향형 여자는 좋다고 했다. 엄마도 외향형에 웃기는 여자 아니야 했더니. 엄마 개그는 하도 오래 봐서 질렸다고.


뒷 시간에는 '정신실의 일상 쓰기'라는 제목으로 짧은 글쓰기 강의를 하였다. 다들 아는 얘기가 아닐까, 너무 어려운 말을 늘어놓는 건 아닌가 싶었다. 풍성한 말의 잔치 후에는 어김없이 텅 빈 느낌이 밀려든다. 집에 돌아와 앉아 내 얘기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까발렸다는 후회, 부끄러움, 공허감으로 힘겨웠다. 말은 늘 그렇다. 말이 주는 충만함은 이내 공허감으로 돌아오니 이것 참 딜레머이다. 갈수록 강의 후 공허감 증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말하기는 위험하다.


[듣기]


출판사 본부장님께서 몇 명쯤 올 것 같냐고 물으셨는데 10명..... 도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40명이 넘게 모였다. 토크쇼를 하는 두 사람의 소통만 캐치볼이 아니다. 독자와 저자 역시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재미 있고 재미있어 계속할 힘이 나고, 계속된 무엇이 마침표을 찍을 때는 재미 끝 의미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 자리에 앉아 계속 이야기할 맛이 났고, 힘이 났는데 그 이유는 오신 분들의 눈빛으로 전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블로그 인연, 한영교회 인연, 100주년 교회 인연, 에니어그램 세미나 인연, 책 인연, 출판사 인연, 지인의 지인 인연.... 심지어 수년 전 잊었던 어느 강의 인연으로 군대 말년 휴가를 나온 국군장병 형제도 찾아와주었다. 모든 분들의 발걸음은 이미 어떤 마음의 소리이고, 나는 그것을 듣는다. 덜 말하고 더 듣는 것은 언제나 옳다.


[쓰기]


'정신실의 일상 쓰기'라는 제목에 담은 이야기는 나는 왜 썼는가? 중학교 1학년 어린 나이부터 왜 그렇게 써댔는가? 자문자답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쓰는 행위 자체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그것에 세월이 더해질 때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나의 이야기이다. (자세한 내용은 안 알랴줌이다) 돌이켜보면 '쓰기'는 내가 단지 쓰기가 아니라 존재를 견딤이고,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 질문이고, 동의할 수 없는 가르침들에 대한 반항이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었다. 중학교 1학년 일기장이든 이 블로그의 요즘 글이든 마찬가지이다. 알고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글의 첫 문장을 시작은 유치함과 지질함이다. 결국 지속적인 글쓰기는 나의 나됨을 살고 싶은 갈망이었고, 덕.분.에. 나는 갈수록 나의 나됨에 관한 산더미 같은 질문에 둘러싸여 있다. 그 질문을 나누며 독자를 얻고, 수강생을 얻으며 살고 있다. '쓰기'는 내 인생의 선물이다.


[읽기] 


쓰기 못지 않게 읽기에도 집착하는 터라. 집착하는 만큼 과시하고픈 욕망도 크다. 한때는 읽는 책마다 포스팅을 하고 싶어서 안달을 했었다.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는 글쓰기의 철칙은 예외 없다. 강의나 글이나 매 한 가지. 북 콘서트를 앞두고, 특히 짧은 글쓰기 강의를 준비하면서 다시 폐인 모드로 지냈다. 늘 그런 식이다. 어떤 강의나 글을 앞두고는 여자임에도 얼굴에 수염 덥수룩한 기세로 지낸다. 당일이 되면 면도 하고, 화장 하고, 드라이 하고 포장잘 된 정신실의 얼굴을 하고 집을 나서는 것. 집을 나서기 전 공들여 하는 화장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읽고, 배우고 싶다. 예쁘게 화장하고 예쁜 옷 입는 것, 내게는 포기하지 못할 일이라...... 잘 꾸며놓은 겉이 부끄럽지 않게 속에도 뭔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읽기에 집착한다. 북 콘서트 당일 오전에 노트북을 끄면서 옆에 널린 책을 보아 쌓아보니 이런 사진이 되었다. 강의에 단 한 줄도 인용하지 않은 책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뿌듯하다. 엄청 뿌듯하다. 읽기의 묘미는 티나지 않음이니까.


**** 함께 해주신 분들께 뒤늦게 감사 드립니다.









10월 마지막 주말에 경북 청도에 있는 작은 공동체에서 1박 2일 강의가 있었다. 청년 시절 한 번쯤은 꿈꿔봤던, 좋은 친구들과 함께 집 짓고 살면 좋겠다, 했었던 바로 그런 공동체였다. 감이 유명한 곳이라 한창때는 주렁주렁 감나무가 예쁘다는 소식도 들었다. 강의를 빙자하여 공동체 탐방 겸 가을 기차 여행이 되겠다, 은근 설레고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당일, #내려와라 박근혜 첫 번째 촛불집회가 있는 날이었다. 강의 섭외를 받았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연일 받은 충격으로 얼얼한 정신이었는데 그나마 광장에 나가 여러 사람과 마음을 포개면 좋을 텐데.  ktx를 타기 위해 서울역 가는 길은 내내 청계천 광장 가는 길이라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내 한 몸 없다고 집회가 어떻게 되는 것 아니지만, 이 엄중한 날에 서울을 떠나다니.....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는 말이 딱이다. 모처럼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남편이 두 아이 데리고 다녀오겠노라 했다. 내 정신인지 네 정신인지 약간은 정신 실종 상태로 기차에 올랐다.


달리는 KTX 안에서는 강의안도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릴없이 기사 서핑을 하다 유기성 목사님의 영성 일기 논란을 보게 되다. 박근혜-최순실 사태에 대해서 하셨다는 말씀. 이럴 때일수록 주님을 바라보고 '영성 일기'를 쓰라고 했단다. 덜컹하고 가슴이 무너져 와르르 돌덩이가 쏟아지더니 터널 안에 갇혀버린 갑갑함이었다. 올봄에 강의하러 가서 잠깐 뵌 적이 있는데 좋은 느낌을 받았었다. 최근에 출간된 <영성 일기>도 읽어보진 않았지만 반가운 책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주님을 바라보고 영성 일기를 쓰라' 어떤 뜻으로 말씀하신 것인지 알 것도 같다. 그렇더라도 이건 아니지 싶었고, 꾸적꾸적 분노가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글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들이 모두 정당한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애써 선의의 해석을 해보려도 '기도만 해라'로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통탄할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주님만 바라보고 24시간 주님만 생각하는 일은 어떤 행동으로 드러나야 할까, 생각할수록 마음이 갑갑하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논밭의 풍경, 도시 풍경이 슬프기만 했다. 감나무들이 휙휙 여러 번 지나치기에 목적지에 다다른 줄 알았다. 이런 마음으로 처음 뵙는 목사님과 공동체 식구들을 어떻게 대하지, 싶을 정도였다. 막상 마중 나오신 목사님과 곧 출산을 앞둔 사모님을 만나 얼굴을 마주하니 힘이 솟아난다. 첫 시간 강의 시작이다. 작은 공간에 공동체 식구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인도자가 앞에 서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찬양을 인도하였다. 마음의 무릎을 꿇고 찬양 앞에 섰다. '이곳을 지나소서, 이곳을 비추소서, 이곳을 덮으소서, 이곳을 만지소서' 이 가사를 반복하는데 목이 멘다. 눈을 감고 찬양하는데 마음의 화면에서 영상이 펼쳐진다. '이곳'이라는 공간에서 벽이 해체되더니 감나무가 자라는 언덕으로, 낮에 지나쳐온 대구로, 그러다 서울의 청계광장까지 달려 넓어진다. '이곳을 지나소서'의 '이곳'은 이 작은 방이 아니라 희망이 사라져가는 모든 공간이며 시간이다. 아이 잃은 엄마들을 끝도 없이 사지로 내모는, 쓰러진 자를 다시 짓밟고, 국가폭력에 아버지를 빼앗긴 딸들을 능멸하는 이곳이다. 돈 무당과 함께 거짓과 기만에 춤추고 놀아나는 자를 섬기는 우상숭배의 땅이다. '이곳을 지나소서, 이곳을 비추소서, 이곳을 만지소서, 이곳을 덮으소서, 내 안에 무너졌던 모든 소망 다 회복하리니' 찬양 후에는 이땅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였다. 찬양으로 공간을 뛰어넘고 기도로 시간을 초월하여 경북 청도 더함 공동체의 기도는 청계천 광장의 촛불과 하나 되고 말았다.  


영성 일기 논란을 보면서 마음이 더 어려웠던 것은 1박 2일 해야할 강의를 '의식성찰'이라는 내면일기, 다른 말로 영성 일기 쓰기 제안으로  마쳐야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아니 어느 때든지 '자기 중심성이라는 죄'를 알아차리고 회개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24시간 주님을 바라본다는 말은 24시간 그분의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는 뜻이기에 '신 앞에서 선 나'로 사는 일, 자기 성찰적 삶을 의미할 것이다.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통해서 하고 싶은 얘기는 결국 이러한 삶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삶, 영적인 삶에 눈을 떠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촛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둘 때가 아니다. 골방으로 들어갈 때가 아니라 높이 촛불을 들어야할 때이다. 헌데 나는 집회대신 강의에 가고 있고, 가서 고작 자기성찰 얘기나 하려는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강사가 되었나. 자괴감이 드는 찰나에 본 '영성 일기' 논란은 다름 아닌 지금 나의 딜레마였다


강의를 시작하며 청계천 집회 얘기를 안할 수 없었다. 준비하지 않은 말들이 튀어 나왔다. '저는 지금 강의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청계천 광장을 서성이는 마음입니다.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이런 기사와 논란을 보았습니다. 영성 일기 쓰기나 기도하는 것이 마치 사회참여의 대척점에 있는 행동처럼 느껴집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분법적 사고의 감옥이 갇혀있습니다. 하나가 옳으면 나머지는 틀린 것으로 말이지요. 골방에서의 은밀한 기도와 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기도가 다르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광화문의 집회 인파에 밀려다닐 때,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구호를 외칠 때, 홀로 서서 피케팅 하는 순간, 제게는 가장 절절한 기도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도 여전한 기도의 시간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힘이 납니다.' 그리고는 정말 힘을 내서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에니어그램이 중해서가 아니다. 신학과 설교는 넘쳐나지만 정작 그것이 영혼에 담기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자기'라는 그릇에 대한 통찰과 그에 대한 가르침의 부재가 내가 느끼는 개신교 영성의 치명적 약점이다. 잃어버린 영성을 찾기 위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까. 내게는 에니어그램이 첫 번째 이정표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힘에 닿는 대로 연구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정말 내면의 여정을 떠나야한다. 마음에서 울리는 사랑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에니어그램을 안내하기 위해서 경북 청도 아니라 중국의 청도라도 기쁘게 달려가는 것이다. 영성 일기와 24시간 주님을 사모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테이야르 드 샤르뎅 신부는 말했다. "우리는 영적 경험을 가진 인간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 경험을 가진 영적 존재이다" 영성 일기가 영성 일기 되는 것은 인간적 경험을 하나님 앞에 가져갈 때이다. 인간적 경험 안에는 오늘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져야 한다. 오늘이라는 현실은 오늘 일출과 함께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역사 속 마지막 날로서의 오늘이다. 이런 의미의 인간적 경험이 담기지 않은 영성 일기, 나는 반댈세!


주님의 사랑은 물과 같아서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른다. 24시간 그분을 생각하는 사람이 주목할 곳은 자명하다. 자기 안의 가장 어둡고 은밀한 곳일 터. 자기 안의 가장 낮은 곳에서 주님을 만나는 사람의 시선은 거기 머무르지 않으리라. 영혼에 가득 찬 것이 어찌 흘러넘치지 않겠는가. 그 배에서 생수가 흘러나올 것이다. 그 생수는 역시나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가리. '또 다른 나'인 이웃,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또 다른 나에게로 흐르지 않을 방법이 없다. 영성 일기와 은밀한 기도로 내면이 깊어진 만큼 사랑의 외연은 확장된다. 오직 '내면을 바라봐, 내면을 바라봐'에 머물러 있는 내적 작업은 심리적, 영적 마스터베이션일 뿐. 이토록 나쁜 시절에, 황망한 시절에 기도는 집회의 촛불이 되고 영성일기는 시국선언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믿는 예수님이라면 2016년 대한민국에 사는 당신의 꼬붕들에게 이리 말씀하실 것 같다. '시국선언문으로 영성 일기를 쓰고, 광장에서 드는 촛불에 기도의 마음을 담으렴'


강의를 잘 마치고 숙소에 돌아왔는데 가족 카톡방에 청계천 발 사진이 도착해 있었다. 세 식구가 이재명 성남시장님과 찍은 사진이었다. 인격의 아우라는 숨길 수 없는 모양이다. 스치듯 짧은 만남이었을 텐데 채윤이 현승이가 마음에 담아온 이재명 시장님 이야기가 풍성하다. 고마웠다. 아이들도, 남편도, 시장님도, 그곳의 사람들도, 오늘 함께 한 공동체의 식구들도. 긴 하루의 끝,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다. 내내 얼얼했던 정신이 그제야 맑아지는 것 같았고 콱 막혔던 터널이 뚫린 것 같았다. 평화를 머금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강의와 집회 참석이, 영성 일기와 외면일기가, 기도와 사회참여가 사랑의 강물 안에서 처음부터 하나였으니까.  







며칠 전에도 떠벌떠벌 했던 필름포럼 아카데미 소식입니다.

포스터 하나가 새로 나왔는데 맨 아래 '수강생 특전'이 눈에 띄네요.

강사도 몰랐던 수강생 특전입니다.

수강기간 동안 영화관람과 카페 음료 20% 할인!!

필름포럼은 이 강의로 인연을 맺기 전에도 가끔 찾던 영화관입니다.

좋은 영화를 잘 골라 상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티켓박스 자체를 바로 카페공간으로 만들어 더욱 좋더군요.


가을 서늘한 바람이 텅 빈 마음 한 구석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시라면,

김현승 님의 시 <가을의 기도> 한 구절처럼 '호올'로 있어야 할 시간에의 초대인지 모르겠습니다.

6주의 시간은 자연의 계절 가을이 깊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네요.

오전에 강의 들으시고, 이대 후문 맛집에서 점심식사 하시고,오후에 좋은 영화 한 편 감상하시고.

호올로 있는 풍성한 시간 누리실 수 있겠네요.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가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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