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한 지 얼마 안 되는 깨끗한 흰 벽을 본 아이는 신이 납니다. 마침 손에 크레파스가 있었거든요. 엄마가 스케치북에 그림놀이 하라고 주셨어요. 뭔가 자꾸 삐져 나가는 느낌. 선 하나도 긋다 마는 느낌. 너무 좁은 건가? 그때 하얀 ‘벽’을 본 겁니다. 여기야! 속이 시원하게 그어보고 그려 봅니다. 이거지! 여기였구나. 엄마가 이걸 하라고 크레파스를 준 거야! 으아, 짜릿짜릿!

잠시 후 돌아온 엄마의 표정은...... 네, 여기까지요.

미사 나음터는 정말 좁아터져서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좁은 곳에 이렇듯 빼곡히 들어앉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그렇게 들어앉은 사람들 사이가 적당히 가깝고 적당히 먼 느낌으로 불편하지 않아 감사합니다. 암튼 뭐 하나 들여놓을 수 없는 공간. 지도자 과정 시작하니 화이트 보드가 필요하지 뭡니까. 필요하지만 공간이 안 되는데 어쩌겠나 싶었는데. 연구원 샘 한 분이 아무도 몰래 혼자 머리를 쓰신 겁니다.

모니터 위에 마카펜으로 막막 쓰게 만들어 놓으신 거죠. 처음 쓸 때는 살짝 후덜덜 했지요. 두 번째 되니 아주 짜릿합니다. 새로 도배한 벽지에 그림 그리는 느낌이랄까. 블랙 보드로 변신한 모니터. 지도자 과정 1기가 연구소 식구 다섯, 과정에 참여하신 분 여섯 도합 열한 개의 우주가 만나 한 주 한 주 진행되고 있습니다. 매시간 함께 새로운 질문 앞에 서며, 우리만의 돌파구, 나만의 여정을 더듬어 가고 있습니다. 함께 더듬어 가는 영적 여정이 뭔가 짜릿합니다. 으아, 짜릿짜릿!

강의로 책으로 배우고 내 몸으로 살아내서 빚어진 에니어그램, 기도, 치유 글쓰기를 모두 갈아 넣어 지도자 과정을 일궈가고 있습니다. 커리큘럼에 계획된 것 이상의 통찰에 내게서 나오고, 흘러가고, 다시 내게 흘러오는 것에 한 주 한 주 놀랍기만 합니다. 지식 전달에 멈추지 않고, 함께 경험하고 자라는 시간이 되자 마음 먹으니 연구원 다섯 분도 같은 마음이 되어 그 무엇 아끼지 않고 자신을 내어 놓으니 이런 공동체 어디 또 있겠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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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 말하고 싶어진다. 말해보면 읽고 들어야 함을 깨닫는다. 드러내야 부족함을 안다. 드러내야 잘 되면 잘 되는대로, 또 못 되는대로 채워야 함을 느끼게 된다. 쓰기·말하기를 하면 듣기·읽기는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강원국의 글쓰기』 중에서

 

방송에 나가거나 인터뷰를 하기 전에는 “할 얘기도 없으면서 왜 섭외에 응했을까?” 부담감으로 잠을 설치고, 마치고 나서도 홀가분함보다는 “그 말을 왜 했지? 다른 말을 했어야지…·” 이불킥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지나고 보면, 강원국 작가님 말처럼 드러내야 부족함을 알게 되기에 저 자신의 글과 말을 돌아보는 데는 큰 도움이 됩니다.

 

사실 저는 여전히 제 목소리, 말투, 얼굴 생김까지 낯설고 민망하여 제대로 보진 못하지만 공유하고 알려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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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무슨 얘길 하다가도 결국 글쓰기 얘기다. 이번 주말 방송되는 CBS 토크 프로그램에서도, 오늘 있었던 모 언론사 인터뷰에서도 기승전...... 글쓰기!였다. 코로나 블루 얘길 하다가 글쓰기, 육아 얘기 하다 글쓰기. 이렇게 되고 있다. 보통은 책 출간 즈음에 방송에도 나가고 인터뷰도 하는데, 어쩐지 맥락 없는 자리가 자꾸 생기는 중이다. 그 자리에 가면 나도 모르게 나오는 '글쓰기' 예찬이라니!

 

정말 오랜 시간 준비한 연구소 지도자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데, 긴 시간 준비한 강의보다 짧게 글쓰는 시간으로 모두들 배우는 바가 크다. 지도자 양성은 역시 글쓰기다! 자랑 삼아 페이스북에 올린 글, 옮겨 걸어놓지 않을 수 없지!

 

자기 이해를 위한 글쓰기, 치유와 성장을 위한 쓰기의 힘. 이제 덤덤해질 때도 됐는데, 여전히 새로운 감동이며 배움입니다. 내적 여정 지도자 과정에서 매주 글을 씁니다. 함께 쓰고, 집에 돌아가 혼자 쓰고, 혼자 쓴 자기 성찰의 글을 다시 공유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쓰기 시작하면 변화가 생깁니다. 쓰는 행위가 홀로 하는 것 같지만, 함께 쓰고 그것을 나눔으로 유익은 극대화 됩니다.

예를 들면 어제는 ‘내 인생 나를 가장 오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나를 항변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짧은 시간 손이 가는대로 씁니다. 글은 각 사람을 전혀 다른 결론으로 이끌었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늘 놀라고 새롭게 배웁니다. 아마 이 주제로 혼자 썼다면 자기 감정에 함몰되고 말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 공간에서 쓴다는 것, 그리고 쓰는 이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가지는 느낌은 글의 방향에 영향을 미칩니다. 서로를 받아주는 공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기로 약속한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의식이지요.

일단 주제의 첫 번째 목표는 공간과 사람에 힘입어 '자신의 편이 되어주기'였습니다. 각자 쓴 내용은 늘 자기 안에서 꽝꽝 울리지만 언어화 되지 못한 아우성일지 모르겠습니다.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이겠지요. ‘누군가’ 나의 편이 되어 이렇게 나를 알아주고 변호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일 겁니다. 쓰는 행위는 내가 바로 그 '누군가'가 되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거침없이 내 편이 되어 자기를 변호해주는 것이지요. 실은 이게 먼저죠! 내 속내를 가장 잘 아는, 최고의 변호사는 나니까요.

한 발 떨어져서 자신이 쓴 글을 다시 봅니다. 누군가에게 항변하고 싶은 나, 그 '나'는 어떤 모습인지. 아마 내가 되고 싶은 나, 에니어그램으로 말하면 '자아 이미지'일 것입니다. 자아 이미지에 집착하여 붙들려 있다면, 그래서 자기에게 함몰되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에 됩니다. 새로운 주제가 떠오릅니다. 손이 가는대로 써봅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봐줄 때 가장 기분이 좋은가?” 거기에 덧붙여 “만약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나는 무엇인가?” (제가 글쓰기 주제를 내주며 의도한 바는 이 지점이었습니다.)

사람이 글을 쓰고, 글이 사람을 이끌고, 사람들이 글을 빙자하여 자신을 내놓고, 그들이 다시 쓰고... 글은 또 어두운 자아의 숲을 헤쳐 새로운 길을 내고... 끝나지 않을 이 연결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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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에서 지도자 과정을 시작했다. 

 

이 한 문장에 담긴 세월을, 허튼 꿈이라 조롱하는 목소리를, 양 옆에 책의 성을 쌓고 읽고 또 읽던 외로운 밤을, 두려움으로 문을 닫아걸고는 아무 말을 쓰고 또 써 쌓인 노트들을 당신은 모른다. 2008년, 에니어그램 지도자 과정의 수강자가 되어 낯설 길에 들어섰던 날로부터 오늘까지. 나는 얼마나 먼 길을 걸어온 것인가. 마흔 되기 전부터 시작된 영적 방황이었다. 나를 잃고 신앙을 잃었으니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잃어버린 나를 찾고, 신앙을 찾아야 다시 숨 쉬고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전의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찾아지지 않았다.

 

에니어그램, 가톨릭 영성의 길로 맘 먹고 들어선 2008년 지도자 과정이었다. 과정을 마치고 연구소 식구로 초대받았을 때의 기쁨도 당신은 모른다. 강의를 하지만 모두 자원봉사다, 라 해도. 돈도 명예도 무엇보다 따스한 받아들임조차 없는 곳에 뛸 듯 기쁘게 투신했다. 오직 배움 때문이었다. 충분히 쌓인 음악치료사의 경력과 학위, 개신교 안에서 이미 알려진 프로필도 아무것도 아닌 곳인데, 그곳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 황송하기만 했다. 나를 어떻게 대하든 그곳에 가서 강의를 듣고, 연구원들과 뒤풀이 하며 내적 여정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지덕지였다. 

 

길을 잃었고, 나도 잃었고, 신앙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 오래된 새로운 길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길이, 그러나 딱 봐도 내가 가고자 했던 거기로 이어질 길이 있었다. 그 생소한 문화, 생각보다 언어가 너무나 달랐던 그곳에서 반만 알아듣는 바보처럼 앉아 있었다. 모든 걸 적고, 모든 걸 기억하고, 집에 오면 복습하고, 책을 찾아 읽고 기록했다. 갑작스레 연구소와의 인연이 끊어졌다. 함께 마음을 나누던 선생님들은 "너는 버려진 거야. 인정해"라고 했지만, 정말 바보 같게도 함께 한 시간을 주어졌다는 것만으로 여전히 감사했다. 상실감은 너무나 커서 며칠 몸이 아팠고, 연애하다 헤어진 것처럼 마음에 찬바람이 많이 불었다.

 

홀로 떨어져 나왔다는 것, 내 마음을 알아들어 주는 사람들과의 연결이 끊어졌다는 것이 슬플 뿐이었다. 그때부턴 혼자였다. 혼자, 그 누구도 모를 가톨릭 영성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배우고 기도하고 그랬다. 책이 책을 안내하고, 또 다른 책이 안내한 절판된 책을 찾아 중고서점을 헤맸다. 아무도 모르는 시간, 긴 시간을 보냈다. 에니어그램에 대해 글을 쓰고, 책을 냈다. 친구를 만났다. 믿어주고 도와주는 영혼의 벗들과 손을 잡고 우리 집 거실에서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시작했다. 욕심 없이 나처럼 목마른 사람들을 초대하고 만났다. 왔다 떠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한 번 왔다 결코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도 드물게 있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다음 단계 여정을 열고, 또 그다음 단계 강의를 준비했다. 내가 준비되니 사람들이 다가왔다. 나처럼, 꼭 나처럼 목마른 사람들은 나도 알아볼 수 있었다. 세미나 전 과정을 듣고, 다른 집단 여정에서 만나고, 소식이 끊어졌다가도 또 이어지고.

 

2018년 12월, 기적처럼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가 생겨났다. 믿기 어려울 만큼 준비된 네 사람이 내 곁에 든든하게 서 있다. 역시 목말랐던 사람들, 얼마나 목말랐으면 이렇듯 계산 없이 자기를 던져 이 샘의 물을 사겠는가. 연구원 네 사람이 없다면 지도자 과정을 개설하는 오랜 꿈이 마침내 꿈으로 끝났을 것이다. 내게 없는 것들을 기가 막히게 가진, 가진 것을 사심 없이 내놓는 사람들과 이 어려운 걸 해냈다. 공간이 작아 더 많은 사람을 뽑을 수도 없다. 지도자 과정 1기 6명이 우리에게 왔다. 얼마나 목말랐으면, 얼마나 자기를 찾고 진실되게 하나님을 찾고 싶었으면 이 구석진 곳까지 왔다. 

 

나를 잃고, 신앙을 잃고, 길을 잃었을 때 빛이 왔다. 구원의 빛이 왔다.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 왔고, 어두운 밝음으로 왔다. 쓰디쓴 달콤함으로 왔다. 자랑거리를 내려놓는 지점에서 왔고, 내가 쌓았던 착한 행실과 헌신과 섬김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왔다. 내가 기나긴 시간을 지나 지금에 이른 것처럼, 자기 아픔과 그림자를 만나며 고립의 시간을 통과했던 사람들이 오늘 지도자 과정에 온 것이다. 미루어 짐작은 되지만 결코 안다 말할 수 없는 자기의 시간을 통과해서 왔다. 에니어그램 나부랭이에 빠져서 내면이나 파고 있는 게 무슨 도움이 되냐는 조롱의 소리를 거스르고 왔다. 착해 보이고, 멋져 보이는, 똑똑해 보이는 포장지를 벗어야 환영받을 수 있는 곳임을 알면서 왔다. 

 

2008년, 지도자 과정 수강자로 앉아 뛰던 가슴을 기억한다. 정호승 시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나도 사랑한다. 내가 연구원 넷, 지도자 과정 1기 여섯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 오늘 남모를 떨림과 고마움을 사랑하는 이유는 시인의 말과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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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렘브란트

고난주간 지나고 있습니다. 성금요일과 부활주일 사이, 성토요일입니다. 작년에 깊은 공감으로 읽은 셸리 램보의 『성령과 트라우마』의 부제목은 '죽음과 부활 사이, 성토요일의 성령론'이었습니다. 금식과 눈물 콧물로 성금요일을 지내고, 우리는 바로 부활의 새벽으로 도약했습니다. 부활을 성경공부로만 배운 탓입니다. 정작 우리의 일상은 이미 덮친 고통의 실존을 살아내는 토요일인데 말입니다. 상실과 애도의 시간 성토요일. 저는 더 이상 여기로부터 도망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머물러 느끼고, 견디고, 애도가 필요한 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 뿐입니다. 이번 고난주간은 상실의 늪에서 오지 않은 부활을 상상하는 법을 배우며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깊이 머무르지도 못합니다. 남편이 교회 말씀 묵상 밴드에 일주일 동안 소설 같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목격한 이들의 증언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신학도로서 본문을 연구한 후에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상상력을 덧입혔습니다. 이번 주에는 밴드에 글이 올라오는 알람 소리로 시작했습니다. 베드로, 로마 병사들, 빌라도, 백부장이 등장했는데 오늘은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오늘 아리마대 요셉의 목소리는 유난히 공감이 됩니다. 전문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집에만 있자니 너무 분하고 답답했습니다. 골고다로 가자니 차마 그분의 죽음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새벽에 열린 산헤드린 의회 때, 광기에 휩싸인 의원들의 기세에 눌려 제대로 반대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렸습니다. 니고데모 의원과 저, 단 두 사람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죽이려 드는 의회원들의 기만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들은 정말 자기들이 하는 일이 여호와의 명예를 가리는 일임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겉으로는 율법을 내세우고, 전통을 보수하고, 나라의 안위를 위함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도둑놈들임을 백성이 다 알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고혈을 빨고, 온갖 특혜는 다 누리며 권세를 부리는 의회원들은 죽은시체나 다름없습니다. 대제사장들의 위선에 구역질이 날 정도입니다. 언젠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통렬하게 비판하실 때 얼마나 시원했는지 모릅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바꿔주실 줄 믿었습니다. 그분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니고데모 의원과 저 요셉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신다고 했을 때, 드디어 그날이 오리라고 기대했습니다. 어떤 방법일지는 잘 모르지만, 선생께서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그때가 왔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선생을 배신했습니다. 의회는 유월절 전에 어떻게 해서든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니고데모와 저는 여러 사람을 만나 어떻게 해서든 이를 막아보려고 했는데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다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가만두면 안되었습니다. 그동안 정체를 숨긴 채 중립적인 척하면서 예수 선생을 지켜주려고 했는데, 제가 너무 비겁했습니다. 제가 더 확실히 노력했어야 했는데. 저 때문에 선생님의 운동이 좌절된 것 같아 비통하기 그지없습니다. 옷을 차려입고 골고다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내려오면서 그분이 죽었다고 알려줬습니다. 아, 이렇게 일찍 돌아가시다니. 시간은 벌써 오후 3시쯤 되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안식일이 시작될 텐데, 자칫 선생의 시신은 공동묘지 쓰레기 더미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서둘러 빌라도의 공관으로 갔습니다. 총독을 단독으로 찾아가 만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쪽저쪽에서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더는 숨지 않기로 했습니다. 더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선생의 시신이라도 잘 거둬 최소한의 장례를 치르게 해야 그나마 제 마음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빌라도 총독에게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패로 몰려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사람을 보내 예수의 죽음을 확인한 후 순순히 내어 주더군요. 그는 끝까지 자기 손에 피를 묻히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죽음에 책임이 없음을 입증하려는 듯 보였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었습니다. 빨리 움직여야만 했습니다. 얼른 한 사람을 시장으로 보내 시신을 쌀 삼베를 넉넉하게 사 오게 하고, 또 다른 종을 보내 제가 죽으면 가족 묘로 사용하려던 무덤에 선생의 시신을 임시 안치할 준비를 하게 했습니다. 갈릴리에서 올라온 예수의 어머니와 여인들에게 장례 절차를 설명해 드리려고 저는 서둘러 골고다로 올라갔습니다. 마침 예수의 시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의 시신을 마치 아기를 안 듯 안고 있는 모습에 저는 기어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내가 조금 더 용기를 내었어야 했는데. 돈을 좀 써서라도 의회원들의 마음을 좀 돌려놨어야 했는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예수의 시신을 들것에 옮겨 두고, 운구할 종들을 지목했습니다. 예수 선생과의 첫 만남이 떠올랐습니다. 니고데모 의원의 말을 듣고 저 역시 밤에 그를 찾아갔었지요. 저는 선생님을 보자마자 오래 기다리고 기도해왔던 메시아 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무수히 보아왔던 랍비들과 달랐습니다. 따뜻했지만 그 지성은 말할 수 없이 깊었습니다. 율법의 의미가 그렇게 선명하게 이해될 줄 몰랐습니다. 예수의 묵직한 손을 무심코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 너덜너덜해진 그의 손은 차마 보기가 민망하고 끔찍했습니다. 가만히 예수의 손 위에 제 손을 포개 보았습니다. 아직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랍비여, 저는 당신이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가져다줄 거라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용기가 없어서 오늘 새벽 당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마귀처럼 날뛰는 의회에서 제가 당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탓입니다. 제가 미온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 목숨 부지하고자 당신의 제자임을 드러내지 못한 까닭입니다.’

저는 울움을 참아야 했습니다. 곧 안식일이 시작되면 모든 게 허사가 됩니다. 얼른 움직여야 했습니다. 무덤은 가까웠습니다. 예수의 시신을 선반 위에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준비한 향품과 향료를 서둘러 발랐지만, 시간이 충분치 않았습니다. 삼베로 시신을 둘둘 싸매었습니다. 마지막 얼굴을 가리기 전에 선생의 얼굴을 가만 들여다보았습니다. 저는 그때 다짐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죽었지만, 여러 차례 다시 살아나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 선생님의 꿈은 내 안에서 죽지 않았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에게 오실 것이다. 예수여, 잘 가시오. 못다 이룬 꿈은 제가 어떻게 해서든 이어 보겠습니다. 당신의 가족들 제가 잘 챙기겠습니다.’

얼굴을 삼베로 싸매고, 인사를 드리고, 무덤 밖으로 나왔습니다. 돌을 굴려 무덤을 막았습니다. 1년 후에나 다시 와서 흙으로 되돌아간 시신의 뼛조각을 모아 유골함에 담아 드릴 때나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여인들이 울면서 무덤가에 모여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빌라도가 보낸 백부장의 부하들이 무덤 앞을 지키기로 했나 봅니다. 아마도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 갈 것을 대비하는 모양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그동안 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살아왔습니다. 실은 의회에서 제가 예수의 제자임을 알리면 저는 곧장 파문당할 것이고, 제 사업장은 위기를 맞을 것이 분명합니다. 선생께서도 제게 굳이 당신의 제자임을 드러내라고 하진 않으셨습니다. 때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가 당신의 시신을 거두는 때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하고 송구할 뿐입니다.

3일 후 선생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갈릴리를 다녀온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저도 부활하신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할 일이 많을 거라며, 사도들과 한마음으로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긴히 부탁하셨습니다. 지난번 베드로 사도와 요한 사도가 의회에 붙잡혀 왔을 때 이미 의회원들 중에 적지 않은 이들이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을 풀어주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도들은 광장에서 복음을 전했고, 저와 니고데모는 의회에서 우리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일로 정쟁은 최고조에 이르렀는데, 야고보 사도는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힘내십시오. 여러분 뒤에 제가 있습니다. 니고데모 의원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버려 두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힘을 내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십시오. 뒤는 제가 맡겠습니다.

주님의 장례를 맡은 의회원 요셉 드림

<마가복음 15: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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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시기, 사순을 시작하는 첫날, 재의 수요일이다. 어쩐 일인지 쉽게 지나가는 사순시기가 없는 것 같다. 수년 전, 아버님께서 급작스레 암선고 받으시던 때도 이 기간이었고, 세월호 참사 역시 고난주간이었다. 무엇이 더 힘들고 더 아팠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유사 이래 처음이라는 뉴스가 끝도 없는 시절이다. 정말 아무 일 하지 못하고 기약도 없는 날을 기다리는 유배생활과 다름 없는 하루하루를 지낸다. 하필 이 시기에 사고로 요양병원에 입원하여 면회조차 할 수 없는 엄마로 인해 내 영혼이 어딘가에 갇힌 느낌이다. 예측불가인 것은 엄마의 건강상태나 코로나19 사태나 마찬가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가오는 크고 작은 마음의 시련은 한 발 한 발 더 벼랑끝으로 모는 느낌이다. 절망의 파도는 늘 사방에서 밀려오곤 하니까. 오는 파도는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믿음은 없지만 크게 흔들리진 말아야지, 하며 눈물이 나면 울고, 식사 때가 되면 밥을 하고, 책을 읽고, 잠깐씩 원고를 끄적이며 지낸다. 연구소 벗들에게 편지 쓰는 마음으로 연구소 SNS에 나눈 글이다. 이 글에 쓴 마음으로 지내려고 한다.

오늘 2월 26일은 '재의 수요일' 사순시기의 첫날입니다.

‘사순’은 40일을 의미하는 라틴말 ‘콰드라제시마’(Quadragesima)에서 나온 말로 성경에서 40은 ‘고행의 시기’ ‘시련의 시기’를 뜻합니다. 성경에서 재는 속죄와 참회의 표지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깊은 슬픔을 드러내거나 참회할 때 재를 뒤집어쓰곤 했습니다.

재의 수요일 예식에선 아래의 두 말씀과 함께 신자들의 머리에 재를 얹거나 이마에 십자 모양을 바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결코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기회, 방향을 전환하는 회개(metonoia)의 시간으로 보내고자합니다. 조국과 세계에 닥친 특별한 시련 속에서 모든 고난이 우리의 고난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고난 모두라는 리처드 로어 신부의 말을 떠올려봅니다. “타인들은 불의와 고통과 짐을 지고 갈 수 있지만, 내 집단은 그럴 수 없다”는 식의 잘 위장된 나르시시즘으로서의 기독교에 젖은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나음터는 오늘로부터 시작하는 사순시기를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전 세계 자매형제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기도로 보내겠습니다.

재가 지니는 상징적 의미는 다양합니다. 재는 불로 태워진 것, 즉 불로 시련과 단련을 받은 것으로 하나님께 대한 열망과 열정으로 자신을 온전히 태워버리고 살아야 함을 뜻하기도 합니다. 또한 재는 남김없이 타버린 존재입니다. 더는 태울 것이 없는 순수한 인간 존재 본래의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일깨워줍니다.

사순시기가 끝나갈 무렵 ‘상처 입은 치유자들 :지도자 과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생명의 만남이 되기 위해 더욱 이 메마른 시기에 온전히 머물도록 하겠습니다.

이 암울한 날의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지금 땅 밑에선 새싹들이 생명의 기운을 모아 얼굴 내밀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고난을 오롯이 통과한 후에 부활을 맞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이미 이겼다!’ 우리 곁에서 응원하고 계실 것을 믿습니다.

 

 

연구소에서는 [나찾수다 : 나를 찾는 수다]라는 비정기적 수다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2월에는 임신중절(낙태)의 아픔을 나누는 이야기모임입니다. 나음터를 통해 연결된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말하지 못하는 그저 그러려니, 꽁꽁 얼린 감정으로 가슴에 품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 중 하나가 임신중절입니다.


법과 윤리의 잣대를 넘어선 진짜 이야기, 우리가 경험한 임신중절이 몸과 마음을 통해 남긴 삶의 무늬들을 이야기합니다. 삶을 내 목소리로 말하고 나누며 연결되는 것의 힘이 있습니다. 연결은 치유입니다. 오셔서 그저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셔도 괜찮습니다.

슬퍼도 슬퍼할 수 없는 마음,
비밀스런 상처에 연결되고 싶습니다.

임신중절 이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
임신중절을 고통스럽게 고민하고 계신 분들,
기혼, 비혼, 싱글 여성 나이도 상관 없이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자신의 일이 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던 임신중절 경험을 심리와 여성영성, 페미니즘 공부로 아프게 통과하며 스스로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된 내적 여정의 벗님, 윤주애 선생님이 모임을 이끕니다.

✔일시 : 2020년 02월 12일(수) 10시 30분 ~ 12시 30분
✔장소 : 마음성장연구소 미사 나음터
            (하남시 아리수로 570 효성해링턴타워 더퍼스트 101동 824호)
✔ 인원 : 6명
✔ 비용 : 5,000원 ~ 30,000원 (참자가 선택)
             301-0240-4119-71 NH농협,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 신청 : https://bit.ly/30K0Fe3
✔ 모임지기 : 윤주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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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여정 기본1단계 세미나를 한 번 더 개설합니다.

집단상담 형태로 진행하고 있어서 한 번에 함께 할 수 있는 분이 적네요. 대기하시는 분들 외에도 문의가 계속 있어서 기본1단계 한 번 더 마련하였습니다. 꼭 필요한 분들과 연결되면 좋겠습니다.

+ 일시 2월 8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 https://bit.ly/2uiqLbL

+ 장소 : 신촌 나음터 (마포구 서강로 142, 서일빌딩 5층)

+ 인원 : 7명 + 비용 : 12만원/ 1일

+ 입금 : 농협 301-0240-4119-71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 문의 : 010-4235-8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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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음터'라 불리는 연구소의 시간 1년, 한 해가 끝나는 12월 송년의 시간이다.

 

기도 중에도 큰 분심이 '번쩍 떠오르는 아이디어'이다. 소장의 '번쩍 아이디어'에 연구원들이 고생이 많다. 번쩍하는 아이디어는 늘 한 사람의 얼굴과 관련된다. 열심히 연결되며 달려왔고, 마지막 남은 영성과정 세미나를 마무리 하면 되는데... 갑자기 송년 리추얼이 '번쩍!' 하고 튀어나왔다.  

 

잊히지 않는 얼굴이 마음에 많이 담겨 있다. 세미나 참석 후 연락이 끊어진 수강자들. 세미나에서 나눈 이야기가 내 마음에 울리고 있고, 기도할 때 떠오르곤 한다. 모를 것이다. 그는. 자신이 내 마음에 담겨 있다는 것을. 세미나에 와서도 함께 나눌 때 외에는 조용히 앉았다 간 분들이 많으니까. 늘 궁금하고, 연구소 강의나 모임 등에 와주기를 기다리게 된다.

 

연구소에서 했던 치유 글쓰기니, 성격유형과 영성 강의니, 나를 찾는 수다 같은 것들은 다 마음에 담긴 한 사람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이었다. 바로 그 사람이 참석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그 행사의 '유발자'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지나갔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방식이 내게는 참 좋다. 유발자는 모르고, 전혀 새로운 얼굴이 '특별한 수혜자'가 되는 경험을 하고, 만남의 신비에 놀라곤 했으니까.

 

이번 송년회는 하반기 과정에 참여하는 한 분이 '유발자'이다. 한 과정 한 과정 요란하지 않게 오롯이 마음의 길을 따르는 분이다. 직장 일정 때문에 마지막 영성과정에 참여하실 수 없다는 것이 내게 너무 큰 아쉬움이었다. 오롯이 걸어온 반 년의 내적여정에 함께 마침표 잘 찍어드리고 싶었는데... 그런 마음을 담고 다니다 '송년회다! 송년회라도 해서 오시게 하자!'

 

송년회 일정 정하고 공지 내보낸 후에 확인 되었다. 직장 행사 일정이 바뀌어서 영성과정 참여하실 수 있게 되었다고!!  이렇게 이 분은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시간을 유발하신 것이다 :)

 

'억지로 지는 십자가' 또는 '끌려나와 앉아 은혜 받은 사람들'의 간증이 많지만. 내 인생에도 그런 간증거리는 많지만 남은 인생 '억지로' 하는 일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억지로' 사람을 모으거나, '강권하여' 무엇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래도록 은밀한 영성모임을 이끌며 경험적으로 얻은 확신은 좋은 공동체, 성장하는 개인의 필수요건은 '자발성'과 '투명성'이다. 억지로 하면서 '내가 한 게 얼만데' 자기 의를 쌓고, 그렇게 쌓인 '자기 의'는 생명의 에너지 되기 어렵다. 자발성 없는 곳에 자기개방이 있을 수 없으니 개인도 공동체도 생명의 숨을 쉬기 어렵게 된다.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쁘게 했던 연구소의 작은 일들이 내게, 연구원들의 마음에 생명의 씨앗으로 심겨진 한 해였다. 이 송년회에는 어떤 분들이 올지, 예측불가의 멤버들이 둘러앉아 어떤 생명의 에너지를 나누고 흘려보낼지 상상은 잘 되지 않는다. 내 한 사람의 마음의 자발성과 투명성을 지켜나간다면 무엇이 됐든! 어떠하랴!

 

블로그 벗님들, 함께 해요! 환영합니다!

 

일시 : 2019년 12월 22일(일) 오후 5시 ~ 7시

장소 : 마음성장연구소 신촌 나음터 (마포구 서강로 142, 서일빌딩 5층)

인원 : 20명

비용 : 만 원 ~ 삼만 원 (참가자가 선택)

         301-0240-4119-71 NH농협,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신청 :  https://bit.ly/348qtk8   문의 : 010-6209-0635

 

2박3일 피정을 다녀오....지 못가고, 바로 다시 1박2일 피정을 다녀오...지 못하고 바로 강의 들으러 갔다 겨우 집에 돌아'왔다'. 두어 주 전 일이다. 몸과 마음이, 영혼이 물러나라고 소리치는 때가 있다. 아이들 어릴 적에 남편이 내게 기도 시간을 주면서 엄마랑 같이 있고 싶다고 칭얼대는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얘들아, 엄마는 지금 기도해야 해. 엄마가 기도 안 하면 죽어!" (극약처방 @.@ ) 맞다. 이러다 죽을까 걱정이 되었는지, 심술쟁이 하늘 영감님이 극적인 계획을 세워 몰아 넣으셨다.

 

요 몇 달 주제는 '영적 식별'이다. 피정도, 배움도, 삶도. 일주일 앞두고 피정을 결정했고, 등 뒤에 두고 가는 일상과 일의 복잡함은 말할 수가 없었다. 일상과 일의 복잡함이 다 내 마음에 담겼으니 결국 다 끌고 간 셈인가? 완전 기도응답 받고, 은혜 충만, 마음 평안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그분의 창의성에는 혀를 내두르며 감동하게 되었다. 같은 말을 같은 방식으로 하는 적이 없으시고, 내가 그리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여러 인물을 동원하셨으니. 창의성에 더불어 성실함까지! 별 다섯 개 만점에 별 오백 개 드린다.

 

소그룹에다 대부분 수녀님인 피정 그룹에 가서 첫 인사 나눌 때는 늘 조금 위축된다. 개신교인이라 하면 교회에서 새 신자 대하 듯 신기해서 하거나 어리게 보면서 까꿍, 하는 느낌도 있고. 낯선 자리에 앉아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며 자기연민에 빠지기도 한다. 과도한 자기연민도 좀 털어버리기로 했다. 경계를 넘어 가톨릭 영성을 배우러 다닌 지가 10년이 넘었고, 많은 신부님 수녀님께 많은 것을 배웠는데. 에니어그램 / 향심기도 / 영적 식별, 이 세 가지가 지금 여기 나의 영성 생활을 구축하는 세 축이 되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세 가지를 결정적으로 가르쳐주신 세 분의 수녀님을 동시에 만났다는 것이다. 영적 스승으로 모시는 세 분 스승님을 누가 한 자리에 불러 모은 것인가! 그 다음 벌어진 일들, 더 놀랍지만 여기까지만 하련다. 돌아보니 긴 시간, 여러 학기 강의 들으며 많은 무릎을 쳤던 신부님들의 강의도 있는데. 꼭 필요한, 아니 내 몸에 꼭 맞는 가르침은 모두 수녀님들 강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이제는 안다. 여성의 영성을 남성에게 배울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정말 어쩌면... 영성은 여성들의 것인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럽지만 확신에 찬, 그러나 지극히 주관적인 확신이기에 살짝 자신이 없으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니 어쩌면 정말 그럴 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11월부터 6주간 ‘영적 식별력을 기르는 워크숍’에 참석하고 있는데, 이번 주 마지막 시간이었다. 각자 먹을 것을 조금씩 가져와 나누기로 하여 풍성한 나눔이었다. 여기서도 검은 수도복 입으신 수녀님들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어쩌면 정말 여성들의 영성모임은 그 자체로 영성적이다. 잘난 척이 없고, 뭘 많이 안다는 자랑이 없고, 배제가 없고, 쪼개고 분석하는 지적 허세가 없고, 처음 보는 자매와도 마음의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정말이다.. 내적 여정을 비롯 여성들의 집단 여정을 오래 이끌며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바이다. 환대가 있고, 나눔이 있다. 

 


어느 수녀님께서 어느 수녀님의 영명축일과 또 다른 수녀님의 생일 축하를 위해 2단 케이크를 만들어 오셨는데 장식이 모두 생화이다. 다 먹고 나니 어느 새 꽃들은 투명 볼에 띄워져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피어 있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남자네!^^)이 말씀하셨다. ‘감정은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기쁘고 슬픈, 화가 나고 섭섭하고, 즐겁고, 외롭고... 이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낄 줄 아는 인류는 ‘여성’이라서 영성은 여성의 것인지 모른다.

 

2박3일 피정을 마치고 집으로 오지 못하고 바로 연구소 1박2일 피정이었다. 2년 동안 꿈집단을 함께한 소중한 벗님들과 마침표 찍는 피정이다. 이 집단 안에서 일어난 말로 다 할 수 없는 치유와 성장의 경험이 연구소 세울 힘이 되어주었다. 2년간의 수많은 에피소드를 담아 ‘여성적인 것의 구원’이란 주제로 나눔과 의례, 먹고 마시는 꿈같은 시간을 가졌다. 강같은 눈물, 폭포 같은 웃음은 기본이다. 여성들의 영성은 이렇다. 작위적 형성(formation)으로 구축하고 쌓지 않아도 그저 삶으로 흐르는 것이 여성들 영성의 형성이다.

 



하나님을 깊이 알지 않고는 자신을 깊이 알 수 없고, 자신을 깊이 알지 않고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없다. 


_칼뱅 『기독교 강요』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것이 신앙의 여정이라 한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반드시 자기 지식을 변화시킵니다. 지금 우리 기독교 신앙이 처한 위기는 위에 칼뱅이 말한 ‘앎’의 불균형, 즉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과 앎은 차고 넘치는데 자신에 대한 실존적 성찰과 앎의 빈약함인지 모르겠습니다.

라캉은 말했습니다. “진리에나 신경 써라. 치유는 저절로 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내가 누군지 아는 진리. 함께 해보시겠습니까. 치유와 성장의 여정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에니어그램 1단계를 시작하여 내 안의 왜곡된 ‘하나님 상’을 만나는 영성과정까지. 한 달에 하루 씩, 여섯 번 피정 같은 만남입니다. 전에 해보지 않은 질문, 전에 해보지 않은 기도의 여정으로 초대합니다.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금요반]

+ 일시

기본1단계 : 1월 10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기본2단계 : 2월 21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심화1단계 : 3월 20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심화2단계 : 4월 17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영성1단계 : 5월 15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영성2단계 : 6월 19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 장소 : 하남 나음터 (하남시 아리수로 570 효성해링턴타워 더퍼스트 101-824)
+ 인원 : 7명
+ 비용 : 12만원/ 1일
+ 입금계좌 : 농협 301 - 0240 - 4119 - 71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토요반]

+ 일시

기본1단계 : 1월 11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기본2단계 : 2월 22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심화1단계 : 3월 21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심화2단계 : 4월 18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영성1단계 : 5월 16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영성2단계 : 6월 20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 장소 : 신촌 나음터 (마포구 서강로 142, 서일빌딩 5층)
+ 인원 : 10명
+ 비용 : 12만원/ 1일
+ 입금계좌 : 농협 301 - 0240 - 4119 - 71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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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으로 수십 수백 번 말함으로, 수십 수백 번 발설한 말로 내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 그 경우는 마이크 잡는 강사가 얻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기도 하다.  내 입으로 수백 수천 번 하는 멋진 말이 다른 사람의 귀와 마음을 훔칠지언정 나를 바꾸지 않는다면 그것처럼 독이 되는 것이 있을까 싶기도 한데. 이런 경우는 마이크 잡는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는 치명적인 특급열차이다. 그런 의미로 강의를 마치고 집에 오면 늘 조금씩 두렵고, 조금 공허한 마음이 되곤한다. 특급열차가 눈 앞에서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십 수백 번 발설함으로 조금 나아진 내 존재의 구석이 있으니 위안 삼아 떠벌여본다. 지난 주 연구소가 기획한 첫 번째 특강으로 [성격유형 사용법 : 신앙 여정에서]라는 이름의 강의를 했다. 오래 전부터 마음에 있던 말들이었다. MBTI나 에니어그램이 개인의 성장은 물론이거니와 신앙여정에서 아주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함에도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었다.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가끔 '모 선교단체에서 가르친 에니어그램으로 상처 받은 분들 에프터 서비스를 우리 연구소에서 하는 거냐' 농담을 하기도 한다. 


선물이 되는 지점, 독이 되는 지점의 경계를 오래 고민해왔고, 그 부분을 나누려는 강의였는데 생각 만큼 잘 전달하진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삶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으로 자위고 있다. MBTI와 에니어그램을 몰랐으면 지금의 가 없을 것 같다. MBTI와 에니어그램을 몰랐다면 이렇게나 다른 남편과 화평하며, 아니 오히려 다름을 기뻐하며 20여 년 살 수 있었을까. (MBTI는 결혼하고 풀타임 일하면서 직장서 제대로 알게 되어 전문과정 교육을 남편과 함께 받았다.) 이런 도구들이 아니었다면 나도 모르는 내 성격이 가진 어두움이 아이들을 덮치고 옭아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물론 지금도 온전히 알아차리고 있는 건 아니다.)


지난 주일에 꽃다운 친구들 가족 모임이 집에서 있었다. 1기 가족의 모임이었다. 그러니까 채윤이는 1기, 현승이는 현재 4기로 일 년의 청소년 방학을 누렸고 누리고 있다. 1기 모임이지만 공교롭게도 '꽃친  다둥이 가족'이라 불리는 모임이었다. 남매, 자매가 둘 다 꽃친에 참여한 가족들이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 여섯은 모두 1기, 3기, 4기 꽃치너들이었다. 현승이와 올해 함께 하는 4기 친구도 있다는 것.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각각 신이 났다. 그 중 특히 1기 채윤이는 우리 집에 처음으로 이 가족들을 초대한다는 것에 한참 전부터 들떠있었다.


문제는 현승이, 아니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문제인 현승이다. 저녁을 먹는데 아이들고 어른들이고 낄낄깔깔인데 유일하게 긴장한 표정의 현승이. 꽃친 4기에서 별칭 '머쓱타드'로 불리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뭔가 어색하고 머쓱한 아이이다. 안다. 낯선 곳은 너무 낯설고, 긴장되는 곳에선 너무 긴장 되며 주목받는 것의 부담이 너무 부담인 아이이다. 그래도 그럴 줄은 몰랐다. 저녁 먹고 아이들은 채윤이 방에 몰려가 떠고 난리가 났는데 뒷정리를 하는 내게 다가왔다. (소곤소곤)"엄마, 나 밖에 나가도 돼? 방에 못 들어가겠어. 제발." 결국 음식 쓰레기 봉지 하나 들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사라졌다. 


현승의 부재를 확인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다들 놀라고 살짝 당황. 이 정도로 '머쓱타드'였나. 걱정들을 하시는데 현승이 걱정도 있는 것 같고 부모 걱정도 하셨다. 엄마 아빠 괜찮냐? 다행히 엄마 아빠는 괜찮다. 조금 속상한 면이 있지만, 현승가 그렇게 이상한 애가 아니라는 변명을 할까 하는 마음일 땐 심장박동도 빨라지고 한 구석 저릿하기도 했지만 괜찮다. 아파트 주변을 혼자 빙빙 돌 생각을 하면 짠하기도 했지만. 결국 손님들 출발하신 후 혼자 집으로 걸어들어 오는 걸 목격 당하고 말았다. 


외향형 엄마로서, 사람 앞에 서서 말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아니 잘만 해내면 에너지 팍팍 받는 외향형 엄마로 내향형 아들을 본다. 내게 가장 자연스러운 에너지 흐름과 정반대로 방향이라면 내향형 아들 마음이 어떨지 조금 이해가 된다. 닦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생겨먹은 제 마음의 모양을 받아들이고 좋아할 때 변화도 가능하다고 내 입으로 말하고 다니니까, 내 말에 내가 설득된 면도 있다. 남편이 말한다. "속상하긴 하지만 나는 현승이 이해가 돼." 내향형 아빠로서 충분히 이해 할 것이다. "나도 그래, 나도 이해해 나도 그런 적 있어." 외향형이지만 감정형이 나도 어쩐지 현승이 같이 굴었던 청소년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감정형으로서 사람과 관계에 대한 신경쓰임이 늘 과다하여 오히려 다가가지 못하고, 숨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저런 내 생긴 모양을 부끄러워 할수록 아이에게서 발견되는 내 모습이 화가 나고 두 배로 수치스럽곤 했는데. 나를 더 많이 닮은 채윤이를 볼 때도 비슷한 매커니즘이었다. MBTI를 알지 못했다면, 에니어그램을 알지 못했다면 그 매커니즘을 보는 눈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혹 가지게 된다해도 시간이 더, 더, 더 많이 걸렸을 것이다. 머쓱타드 현승이가 꽃친 쉼표식에서 '덕밍아웃'이라는 덕질 공개를 했다. 3년 전에 채윤이도 똑같은 것을 했었는데, 발표하는 태도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현승에게는 저 앞 마이크를 들고 선 건 자체가 대단한 용기이며 도전임을 안다. 


현승이도, 채윤이도, 종필도 나도 내 생긴 마음의 모양을 부끄러워 하지 않을 수 있게 해 준 MBTI, 에니어그램. 

참 고마운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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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표로 책임 지고 있는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사람들입니다. 엄마 넷으로 보이시나요? 마음성장연구소를 통해 적극적으로 엄마 되기 자청하였습니다. 저의 연구소는 비영리 기관입니다. 후원을 기반으로 유지 된다는 뜻입니다. 연구소 사람 넷이 누구보다 먼저 후원자 되었습니다. 시간, 재능, 자기 소유의 오피스텔을 내놓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적은 비용의 상담비를 책정했지만 정작 상담이 필요한 분은 이것마저도 부담이 되는 분들이 많습니다. 내적 여정 세미나 등 여러 집단 상담도 마찬가지이고요. 악의 본질은 ‘고립’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연결’은 치유이고 성장입니다. 여러 이유로, 특히 경제적 이유로 연결되지 못하는 분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손 내밀어 개인 상담, 집단 여정으로 초대하도록 하겠습니다. 


후원이 든든해지면 연결이 필요한 분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손을 잡을 수 있겠는데 지금은 넷 모두 각자 돈은 다른 곳에서 버느라 애쓰며 근근이 유지하는 실정이네요. 적은 금액의 많은 후원자를 꿈꾸는데,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절감합니다. 한 달에 커피 한 잔, 정도를 제게 사주신다 생각하고 현금 오천 원,  만 원, (조금 비싼 커피) 이만 원 정도 밀어 주시겠어요? 제가 아니라 얼굴을 모르지만 누군가 손잡아 줄 한 사람이 필요한 청년, 여성, 다문화 여성, 작은 교회 목회자, 사모님... 을 위해서요!


아래 링크 클릭하여 한 번에 후원신청 가능합니다. 기부금 영수증 발급 가능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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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따라가셔서 진행이 잘 안 되신다면]


* PC에서 링크를 여시면 팝업창 뜨는 제한만 없다면 잘 진행 되고요.

* 아이폰이라면 링크 주소
  (http://brightv3.webcm.co.kr/system/member_signup/v3join.html?gid=healers4)
  를 '사파리'에서 여시면 잘 진행됩니다.

* 링크를 복사해서 주소창에 바로 넣어 여셔도 잘 진행 되네요.
* 이도저도 안 되면 포털에서 '한빛누리 bright fund' 검색하여 들어가셔서

 '신규 후원신청' -> '후원단체 지정' ->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선택, 정보 입력하시면 되겠습니다.
* 이런 거 모르겠고, 기부금 영수증 필요 없으시다면 정기 계좌이체! 

  (301-0240-4119-71 / NH농협 /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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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에 시작한 개소식이 ‘계속식’으로 변신했습니다. 어렵사리 시간 잡아 찾아주시는 분들과 드문드문 계속식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찾으시는 분, 연구소 형편 때문에 약속 한 번 잡기는 정말로 어렵지만요. 개소식이라고 와서 시루떡 먹는 대신 잠시라도 일상에서 물러나 나로 머무는 시간을 기획했었지요. 반복하다보니 개소식의 편하지만 가볍지 않은 수다 주제는 '나에게도 마음이 있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로 모아지는 것 같습니다. 다녀가서 전해주시는 말씀이 짧지만 ‘힐링’의 시간이었다고들 하시니 보람이 있습니다. 실은, 맞이하는 저희에게 힐링의 시간입니다. 더욱 특별한 힐링타임 계속식이 있었습니다.

연구소의 시작은 길게 잡으면 25,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나리쌤이라 불리는 정신실 소장, 별쌤이라 불리는 김하정 연구원이 스물 몇이던 시절에 씨앗이 심겨졌던 것 같습니다. 한 교회 청년부에서 만났습니다. 둘 다 학부 전공 버리고 사람 돕는 일을 직접적으로 하고 싶어 대학원 준비하던 시절에 만났거든요. 가난하고 지질하고, 가진 꿈이란 것이 막연하고 허황되게만 보이던 시절이었지요.

나이 오십 즈음에 문득 돌아보니 그 시절 꾸던 막연하던 꿈이 외형적으론 이루어져 있군요. 꿈은★이루어진다. 심리치료와 상담으로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 수 있었던 두 사람이 마음성장연구소까지 차리게 된 사연에는 ‘신앙 사춘기’가 있습니다. 청년 시절부터 몸을 불사르던 교회, 그 교회가 채워주지 못하는 목마름에 힘겨워진 것입니다. 별쌤의 고백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에 가는데 설교를 듣다보면 그저 ‘혼나는 느낌’인 그런 느낌. 나리쌤의 고백처럼 일상에선 하나님이 보이는데 예배에만 가면 그 하나님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막막함. 둘 다 교회를 떠나왔습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니 한 사람은 몸으로, 한 사람은 마음으로. 

마음의 고향 같은 교회는 떠났지만 하나님을 떠날 순 없어서 둘은 영성 공부에 매진했지요. 자기 하나님을 찾는 지난한 시간이었습니다. 공부한 것에, 경험을 더하고, 거기에 하나님을 찾는 갈망을 더하여 함께 하는 시간 속에 ‘심리’와 ‘영성’에 다리 놓는 연구소를 꿈꾸게 된 것이지요. 꿈은★이루어진다.

이러는 중에도 떠나온 교회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아픈 마음으로 떠나와 상실감으로 남았지만 우리의 젊은 날 신앙과 열정의 기억이 머무르는 곳이지요. 한때 마음을 나누며 함께 울고 웃었던 이들이 남아 있고요. 바로! 그분들이 연구소에 찾아주셨습니다. 교회 가는 기쁨이 있었고, 공동체의 소망을 맛보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분들이죠. 10년을 훌쩍 뛰어 넘는 시간이 무색하게 즐겁고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연결됨! 못과 못 사이를 가로지르는 저 빨간 실처럼 우리는 정말 연결되어 있습니다.



감이 되겠나?
정신실이 감이 되겠나 말할 때
저도 됩니다.
말하기에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친구를 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런 사람들의 친구입니다.
이런 연구원들이 제 친구입니다.
저는 마음성장연구소 소장 감이 됩니다.


상반기 내적여정 세미나 영성과정 있었습니다. 내적여정 마지막 과정입니다. 한 학기 동안 포장지 벗겨진 자신과 만나느라 애쓰신 분들을 위한 특별한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주어는... 흠.. .) 대단한 식사는 아니지만 축하와 격려를 담은 ‘집밥’의 잔치집 버전입니다.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이런 셀프 공치사를 거침 없이 할 수 있는 이유는 주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고급인력 연구원님들의 작당이었습니다. 평소 먹던 도시락이 아니라 잔치 같은 밥을 준비하자! 길래, 저는(누구일까요?) 반대 했습니다. 안 된다! 좋은 제안이지만 당신들 힘들어서 안 된다. (속으론 ‘돈 없어! 연구소 살림 말아 먹을래?’)

연구원님들 아름다운 제안과 좋은 인맥을 힘입어 맛있고 풍성한 점심식사 했습니다. 제안하고 기꺼이 수고를 아끼지 않고, 마음 담아 차리는 식탁이 누구보다 준비하는 사람 자신에게 기쁨이며 선물인 것을 압니다. 찬사와 격려와 사랑을 담은 선물은 이미 주는 이에게 선물이지요. 지난 몇 개월 여정에 대한 찬사, 세미나 후 홀로 갈 기도 여정에 대한 격려를 담은 연구원 샘들의 마음이지요.

“우리는 영적 경험을 가진 인간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 경험을 가진 영적 존재이다”

영성이란 무엇인가, 강의 중에 나눈 테이야르 드 샤르뎅 신부님 말씀인데요. 하루하루 밥 먹고 사는 일이 걱정인 인간적 경험, 사랑스런 사람보다 미운 사람 더 많은 인간적 경험, 응답되는 기도보다 거절이 더 많다 싶은 인간적 경험. 이 지질한 경험을 성찰함으로 신비의 문을 여는 것이 영성입니다.

살림 잘 말아먹는 연구원님들 사랑합니다.(ㅜㅜ 너네들... 정말! ❤️)
일빠로 밥 타서 맛있게 먹다 셔터 소리에 놀란 아름다운 님, 사랑합니다. ❤️
상반기 영적 여정 함께 걸어주신 벗님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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