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부 수련회에 간증하러 따라간 채윤이. 지금 쯤이면 벌써 간증이 끝나고 저녁 집회까지 마쳤을 시간입니다. 간증문을 쓴다고 거실에 노트북 뻗쳐 놓고 며칠 글쟁이 엄마 코스프레를 했습니다. 머리 쥐어 뜯고 예민하게 굴고,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냐며 후회하고. 엄마 싱크로율 90%. 며칠 끙끙거리더니 A4 반 장 짜리 간증문을 써내고 봐다랍니다. 분명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생각보다 정리를 잘 해놓아서 놀랐습니다.


그 다음엔 논쟁,


뼈대를 잘 잡아놓은 글에 살을 붙이는 과정에서 채윤이가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 얘기'가 많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등부 쌤들이 기대하시는 것은 그것이라고. 간증이 그런 거 아니냐고요. 단호박 엄마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니라고, 그렇지 않덕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뜻이었습니다.' 이런 말은 제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너의 이야기를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려줬는데 듣는 사람이 거기서 하나님을 발견한다면, 그것이 좋은 간증이야.' 말발에 밀렸는지, 힘에 굴복했는지 알았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채워 넣은 간증문을 완성했습니다.


문장 몇 군데 봐주고, 최종적으로 분량이 많아서 줄이는 것을 도와줬는데 그럴 듯한 간증문이 되었습니다. 채윤이가 쓴 글을 처음 읽으면서는 엄마로서 울컥하는 부분도 있더군요. 허락받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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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17살 김채윤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그렇게 긴 인생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중학교 시절에 가장 힘들었고 그런 힘든 시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의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일찍 진로를 선택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난 피아노 선생님을 통해서 예술중학교를 알게 되었고 그 학교에 가면 공부보다 피아노를 많이 할 수 있다는 그 한마디에 반드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께선 아직 너무 이른 것 같기도 하고 쉽지 않은 길이기에 반대하셨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엄마 아빠를 설득시키려고 조르고 졸랐습니다. 결국 엄마 아빠도 제 선택을 믿고 지원해주기로 하셔서 5학년 막바지부터 입시준비를 했습니다. 같은 전공 친구들에 비해 많이 늦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기적적으로 합격해서 예술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고 중학교에 가서도 피아노를 더 많이 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에 기대가 컸는데 막상 학교생활은 제 생각과 많이 달랐습니다. 매번 실기시험마다 등수를 세우는 시스템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서로 경쟁상대가 될 수밖에 없었고, 저는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친구들 대부분은 유명한 교수님들에게 레슨도 받고 연습 환경도 좋았는데 그러지 못했던 저는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 자꾸만 작아지고 자신감도 떨어졌습니다. 저는 특히 연습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에 학교가 끝나면 교회에 와서 연습을 하고 시험 막바지가 되면 밤늦게 까지 남아 연습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시험결과는 늘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며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매 시험 때마다 그런 일이 반복 되다보니 좌절하게 되고 포기 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부담도 컸습니다.

그런 힘든 시간들이 계속 반복 되면서 결국 3학년 새 학기에 위기로 찾아왔습니다. 고등학교 입시준비로 학교에서 1주일에 한 번씩 친구들 앞에서 연주하는 향상음악회라는 것을 해야 했습니다. 그 음악회를 할 때마다 저는 너무 부족했고 그래서 매번 친구들 앞에서 창피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아직 연습이 너무 부족하고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모든 시간을 다 연습하는데 올인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다보니 제 탓을 하게 되고 여기가 진짜 제 한계라고 느껴져 모든 상황 속에서 도망치고 싶었고 앞으로 계속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막막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중학교 졸업 후 1년 동안 안식년을 가지는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께서 이런 것이 있다고 제안해주셨고 저는 예고입시를 포기하고 이 프로그램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엄마가 ‘네가 예중을 선택했을 땐 3년을 선택 한 거야. 그러니까 지금 포기하면 안 돼’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안식년을 갖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입시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고, 입시를 마친 후에 선택하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포기하고 싶었지만 예중을 선택한 것은 저 자신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힘듦과 고민 속에서 저한테 유일하게 힘이 될 수 있었던 것이 교회 찬양팀 반주였습니다. 바쁜 학교생활과 부족한 연습시간으로 반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반주를 하는 시간이 다시 일주일을 버틸 힘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3학년 여름수련회 때는 처음으로 찬양 가사를 생각하며 반주를 한 것 같습니다. 가사 하나하나가 하나님께서 저한테 말씀해주시는 거 같았습니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라는 찬양을 하는데 수십 번 불렀던 그 찬양의 가사가 제 마음에 새롭게 들어왔습니다.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날 향하고 있었다는 걸’

힘든 시간을 견디고 나니 2학기 막바지에 졸업을 압두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시험에서는 제가 상상할 수 없었던 결과를 받아 행복했고, 준비했던 고등학교에도 합격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고등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올해 안식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열심히 해서 얻은 합격이기 때문에 입학을 포기하는 선택은 어려웠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고를 가든 안식년을 하든, 어느 순간에는 아쉽고 후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선택하면 포기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고,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1년 안식년을 하며 매일 늦잠도 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습니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그때 내가 잘 한 걸까? 하면서 제 탓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중학교 3년의 생활을 돌아보고 지금 현재의 제 삶을 보면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또 앞으로의 모든 것은 알 수 없고 막막하지만 하나님께서 저의 길을 인도하실 것을 믿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한창 인생에 대해 신앙에 대해 고민이 많은 때였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수수께끼같은 주제에 빠져들었다. 한 학년 위인 교회 언니와 늦은 밤 셔터 내린 가게 앞에 앉아서 나름 열띤 토론했던 기억이 새롭다. '모든 게 하나님의 뜻이면 나는 어디 있다는 거야. 내가 결정한 것도 하나님의 뜻이야? 결국 내가 아무리 고민해봐야 하나님 뜻 안에서 움직이는 로봇이네' 뭐 이런 얘기들. 그러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란 표현이 나왔다. 바로 실행에 옮기는 고딩이라 '그럼 내가 3초 후에 손가락 까닥한다. 1, 2, 3. 까딱! 하나님의 뜻이었어?' 귀여운지고. ^^ 그때는 꽤나 진지하고 심각했다.

 

그때로부터 30년은 지났지만 하나님의 뜻에 대해 선명하게 알게 된 것이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 리트머스지 몇 개는 챙기고 있다. '.. 기도해보니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기는 사람이나 그의 주장은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멀 것임. 그 주장에 대한 집착이 과할수록 본인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함임을 드러낸다는 것. 하나님의 뜻은 불쑥 던져지는 것보다는 스르르 드러난다는 것 등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할 때는 오히려 기다리고, 침묵하고, 나의 한계에 대해서 성찰하고 인정하고, 내 욕망에 대해서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내 몫이라 생각한다. (욕망이라고 해서 기도제목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욕망인 줄 알고 기도하는 것, 내 욕망이기에 그분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거절당할 수도 있겠다 각오하고 간절히 구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렇게 하여 스르르 내 삶에 들어온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채윤이가 꽃친을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얘기, 아니 조금 더 세게 말하자. 2016년에 우리나라 최초, 에프터스콜레의 한 형태로 자생적 안식년 프로그램인 '꽃다운 친구들'이 생긴 건 채윤이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다. 꽃친 모임에서나 여기저기서 이렇게 떠들고 다니는데 진정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뿐 아니라 그것이 유익하다. 앞으로 생겨날 일일랑 앞으로에 맡기고 이미 주어진 것이 주께로부터 왔다고 믿을 때 오늘 어떻게 살아갈지가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채윤이는 '방학이 일 년이라면' 어떻게 되는지, 꽃친의 가치를 200% 누리는 꼬치너이다. 작년 이맘 때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채윤이 일상에 주어지고 있다. 압권은 열일곱 채윤이가 시카고 미시건 호수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원조 꽃친이라 불리는, 4년 전에 나홀로 안식년을 경험했던 은율이 언니와 함께 말이다.

 

시간, , 게다가 엄마의 콩알만 한 엄마의 간을 고려할 때 가능성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저 사진은 실제상황이 되었다. 채윤이 예고 합격 후에 꽃친이냐 예고냐, 이 합격을 포기하냐 마냐를 놓고 저울질하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고민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뭐 그렇게 고민을 해야 했을까 싶다. 자명한 결론을 두고.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두어 주 동안 채윤이가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을 보면서 비용을 계산하며 고민했던 일이 무색해졌다. 채윤과 은율, 은율이 아버님(꽃친의 고급인력 자봉이신) 황 본부장님과 식사하며 지난 12월의 송년회로 모인 꽃친 첫모임을 떠올렸다. 당시 분위기를 돋우고자 샘들이 준비한 공연이 있었다. 일명 복면가무왕. 복면을 하고 무조건노래를 개사하여 부르며 춤을 췄드랬는데. 아래 사진 스크린의 가사를 보시라.

 

미래를 향한 나의 선택은 꽃다운 친구들이야

일 년을 모두 쉴 수 있다는 특급방학이야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은 모르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놀러갈 거야 어디든 놀러갈 거야

 

태평양을 건너 어느 식당에 마주 앉아서 저 예언 같은 노래를 떠올렸다. 소오름! 저분들 영험한 분들일세. 복면가무단을 가장하여 예언을 하다니. 채윤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현재형이다. 오늘 자유롭고, 오늘 행복하고, 오늘의 사랑을 풍성히 누리고 동시에 흘려보내는 것. 채윤만이 아닌 우리 모두를 향한 그분의 뜻일 것이다.


 

 











지난 한 주간 코스타 일정을 잘 마쳤습니다.

네네, 잘 마쳤지요.

컨퍼런스 마친 오후 느긋하게 찍은 사진 두 장입니다.

기럭지로는 여느 아메리컨 부럽지 않은 채윤이는 이 학교 학생이라 해도 믿겠지요?

파랑과 하양, 하늘과 깔맞춤한 제 패션도 괜찮죠?


실상을 알려드리자면.

휘튼 칼리지 재학생 느낌의 채윤이는 코스타 기간 내내 영어사람 친구들 속에서

에헤헤헤, 어리바리 하고 있다가 숙소에만 들어오면 침대 엎드려 우는 나날.

하늘과 구름과 나무와 하나 된 듯한 채윤이 엄마는 강의하고 상담하고,

다시 강의 준비하고 또 상담하고, 화장실도 제때 못가는 며칠을 보냈답니다.

그러니 저 멋스러운 여유는 사진발. 헤헤.


지금은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채윤이와 둘만의 시간입니다.

오늘(여기는 주일) 한인교회에서 강의 하나를 마치니 이제야 온전히 홀가분입니다.

다운타운 나와서도 근사한 사진은 꽤 건졌습니다만.

사진 밖에서는 채윤이와 신경전, 대놓고 말싸움, 대놓고 짜증.....

이렇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야 조금 마음의 틈이 생겨 사진발로 소식 전합니다.

잘 지내고 있어요. ^^ 







꽃다운 친구들은 어른들을 만난다.


예를 들면,

G&M글로벌문화재단 문애란 대표, 서울대 우종학 교수님 같은 분들.
두분 다 검색해서 기사 몇 개만 읽어봐도 어마어마한 분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카피를 만든 카피라이터였던 문 대표님.

또 내 지식으론 소개하기도 어려운, 음... 유신론적 진화론의 우종학 교수님.

다양한 만남을 통한 배움이 주는 유익이 풍성하다.


라고 믿고 싶다.


령 채윤이 입을 빌자면 이런 배움을 얻고 있다.

문 대표님 만나고 온 날.

"엄마, 대박! 여의도의 진짜 높은 빌딩인데 주변이 다 보여. 대박.

문 대표님 완전 멋있고..... 나는 진짜 나중에 나이 들면 그렇게 하고 다닐 거야"

우 교수님 만나고 온 날.

"엄마, 우종학 교수님 알아? 완전 완전 완전 대박 멋있어. 잘 생기고, 말하시는데 너무 멋있어. 아흐. 헐, 그분도 코스타 강사였어? 얘기 해봤어? 완전 멋있어"

(멋있게 말하시는 그 '내용'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었던 듯)


그리고 어제는 게임회사 Nexon 탐방을 하고 왔다.

물론 여느 날 못지 않게 (자기 식의) 감동을 받고 왔다.
"그래서 나는 이제 결심했어! 게임을 할 거야. 그동안 나는 게임을 너무 안 했던 것 같애. 이제 컴퓨터 게임에 입문할 거야. 카트라이더를 해야겠어 (주먹 불끈불끈)"


티브이도 없는 집에서 순결하게 자란 채윤이,

이렇게 게임의 세계로 가는 건가?

그리고 채윤이는 나이 들어서 문애란 대표님처럼 염색하지 않고

짧은 은발을 할 것이고,

우종학 교수님 같이 잘생긴데다 지적이기까지 한 남자를 이상형으로 꿈꿀 것 같다.

꽃친 프로그램의 효과, 또는 역효과 대박이다. 꽃친은 대박이다.








채윤이 아빠의 카톡 상태 메시지가 '느린 사람에게만 보인다'이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책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연상되어 별 다섯 개 상메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거기 담긴 그의 깊은 마음은 느낄 수 있다. 느리게 살지 못하는 현실에의 아쉬움, 자신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그나마 느린 일상을 사는 채윤이로 인한 대리만족 같은 것이지 싶다. 느리게 사는 채윤이는 그간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는 것 같다. 엄마 아빠, 현승이를 보고, 한강변 여유로운 산책길을 보고, 평일 낮 지하철의 풍경을 보고, 꽃친 친구들의 말과 그 이면을 보고, 교회 친구의 속마음을 보고, 머리 컬러링의 디테일을 보고, 영화를 보고, 책을 보고, 현승이 얼굴의 여드름을 보고, 씽크대에 쌓인 설거지감을 본다. 무엇보다 채윤이는 이웃을 본다. 강도 만나 피 흘려 쓰러진 이웃을 본다. 느린 삶을 사는 채윤이에게 꽃친의 다양한 놀이는(궁금하면 파란 글씨 클릭!) 울고 있는 이웃에게 가는 길을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서 '놀이'란 인간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극대화시킨 모든 활동을 말한다.) 세월호의 미수습 언니, 다윤이 언니의 엄마를 만나고 피케팅을 하고 쓴 글이다. 허락을 받고 공개한다.  

 

벌써 세월호 2주기가 지났다. 2년이라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길고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일텐데 나한테는 꽤 긴 시간이었다. 2년 적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오래 전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세월호는 마치 한 달 전 같이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세월호에 대해 나는 덤덤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있고, 노란 리본은 누군가의 시선을 바라며 달고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 다윤이 언니 어머니를 만나고 피케팅을 하면서 세월호와 그 가족들에게 한 발자국 다가간 거 같다. 그저 관심을 가지는 거 그 이상으로 세월호가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2주기인 만큼 독서모임에서도 세월호 관련된 책인 <다시 봄이 올 거예요>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세월호에 탔던 한 사람 한사람의 이야기와 유가족들의 이야기가 그저 세월호 생존자와 희생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사실로 다가와서 더 마음이 아팠다.

나는 이번 2주기 때 페이스북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웠다. 평소에는 잠잠하다가 이럴 때만 되면 세월호와 관련된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올라온다. 근데 그 게시물들이 추모하고 애도하는 거보다 비판적인 것들이 많아서 보는 거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이럴 때만 세월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닌데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들어갈 때마다 올라오는 세월호 영상들 때문에 마음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누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세월호 너무 마음 아프고 화가 나지만 그렇게 피케팅 하고 해봐야 달라지는 거는 없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가면서 쳐다봐주고 리본을 받아주는 사람들이 그 순간 만큼은 세월호를 기억하듯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일 년 안식년을 하며 가졌던 소박한 바램이란 채윤이가 채윤이 다워지는 것에 한 발자국 다가가는 것이었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채윤이가 자기다움에 한 발자국 가까워지자 '자기'가 제 혼자만의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그렇게 표현해내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 채윤이의 '자기'가 확장되고 있다. '나'가 되는 '너'가 생겼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너'들이 이 시대 울고 있는 '너'들이다. 채윤이가 세월호에서 잃은 언니 오빠들, 그들의 가족이라는 타자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아니라 나의 일부로 느끼는 감각이 생긴 것 같다는. 이것은 내가 정말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최선의 가치이다. 굳이 하나님 사랑, 예수님 희생이라며 설교를 하지 않아도 그 사랑을 살아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타인의 고통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 말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그 사랑은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실 수 없는 고통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채윤이가 거창한 것을 깨달았다는 뜻은 아니다. 종교적으로 100번을 듣고 입으로 줄줄줄 말할 수 있는 이웃사랑이 아니라, 이웃을 더욱 확장된 나로 보는 그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채윤이 방은 피아노와 키보드 한 대로 꽉 차있다. 그대로 채윤이의 오늘이며 꿈이다. 채윤이 책상과 피아노 위에는 보물찾기 쉽게 숨겨놓은 형국으로 노란리본과 노란리본 뱃지가 흔하다. 이 역시 채윤이의 마음인 것 같아서 뭉클하고 뿌듯하다. 내가 키워내고 싶었던 아이는 이런 아이이고,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이런 아이들이 많아져서 결국 이런 어른이 많아지는 세상이다. 세월호 관련 (공개)일기 다음 글인 난민 이야기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꽃친을 통해 한 박자 쉬면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을 말해준다.   


"꽃친 하기 전에는 나한테만 신경 쓰느라 이웃에게 관심 갖지 못했는데....."






"엄마, 나 이제부터는 이렇게 하려고.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괜히 신경 쓰지 않으려고. 그런 결심을 했어."


꽃다운 친구들과 강원도 여행을 다녀와서 툭 내뱉은 말입니다. 엄마로서는 깜짝 놀랄말이라 어쩌다 그런 생각을 했냐 물었더니 다음에 얘기하겠다고 밀린 잠을 자러 들어가더군요.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다시 물어봤습니다. 엄마가 보기에는 참 소중한 깨달음인데 어쩌다 그런 생각을 했냐고요.


여행 중에 중등부 **샘에게 톡이 왔답니다. **샘은 찬양팀에 함께 하던 청년 쌤인데 채윤이를 동생처럼 친구처럼 대해주는 좋은 쌤이지요. 고등부가 된 지금도 주일마다 찾아가 만나곤 하는 것 같습니다. 용건없이 톡이 왔는데 그때 깨달음이 왔나봐요. **쌤은 가족 외에 처음으로 이유없이 나를 받아준 사람이라고 합니다. 꽃친 여행에서 친구들과 마음이 편안한 순간에 받은 톡이라 더 의미있었나 봅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감사하며 지내면 되는구나.....


사실 채윤이는 5학년 때 친구들과의 어려웠던 경험으로 관계에 대한 염려가 많았습니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친구는 없는지, 자신을 두고 수근거리지는 않을지. 단지 그 경험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 조차 대물림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엄마인 제가 내적여정, 심리 영성 공부로 여기까지 온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관계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두려움. 꽃친을 시작하고도 내내 마음에 폭풍이 치는 날이 많았습니다. 여자 꽃친들은 다들 단짝이 생겼는데 자신만 홀로라는 두려움, 꽃치너들이 모두 좋아서 두루두루 친하고 싶은데 막상 다가가지 못하는 수줍음, 어떤 말과 행동으로 친구들의 미움을 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초기에는 이 걱정을 들어주고, 괜찮다 괜찮다 해주는 일이 큰일이었습니다. '꽃친 일 년을 지내며 적어도 이 두려움에 맞설 힘이 생기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주님'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요.


저녁마다 솔직한 일기를 쓰고, 엄마에게 끊임없이 묻고 고백하며 자신의 감정과 정면돌파 하며 생각보다 빠르게 편안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채윤이를 지켜보는 엄마 마음이란. 채윤이의 두려움에 곱하기 10, 채윤이의 외로움에 곱하기 100, 채윤이의 걱정에 곱하기 1000이었습니다만. 스스로 겪어내며 배우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지켜보았습니다. 기도하면서요. 2박3일 여행을 마치고 마음의 긴장이 훨씬 더 많이 풀린 채윤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허튼 에너지 쓰지 않겠다'고 하니 할렐루야! 입니다. 마음의 힘이 생긴 것입니다. 혹여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도 괜찮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견뎌낼 힘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카렌 호나이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신경증 환자는 이상엔 맞춘 자아상을 만들어내는데 예를 들면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야 한다' 같은 당위입니다. 어디 신경증 환자 뿐이겠습니까. 인간은 모두 정상적 성격발달과 성격장애 그 어디쯤에 있다고 역시 카렌 호나이가 말하고 있으니까요.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내게 대한 오해를 다 해명할 수는 없지, 이것을 자포자기의 심정이 아니라 아프게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치유입니다. 치유란 결국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힘이기도 하지요. 채윤이게 그런 힘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일단 시간이 있고, 무엇에 쫓기지 않는다는 전제, 가만히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거기다 꽃친이라는 안전한 공동체(이번 꽃친 모임에서 '공동체'라는 말이 마음에 떠올랐다는 고백도 하더군요.)가 이렇게 저렇게 마음의 쿠션을 대주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아직은 미미한 힘이겠으나, 발견되었다는 것이 큰 의미입니다. 엄마도 다시 한 번 새겨야겠습니다. 좋아하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고민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을 붙들고 마음의 에너지를 쓰지 않을 일입니다. 알고보면 이것이 자유입니다. 이 둘 사이를 분별해내는 것이 지혜이고요.









블로그에 쓰다만 글이 하나 있어서 마무리 하고 나가려고 앉았습니다.

까똑!이 울렸고, 열어보니,

친구가 오늘 자 경향신문 기사 한 쪽을 사진 찍어 보내줬습니다.

대통령님 말씀에 받은 은혜가 커 혼자 간직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저도 일하러 나가기 전에 처리할 가사업무를 밀어놓고

대통령님 '오늘의 말씀 묵상'에 집중하였습니다.

한 번 읽고 지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자꾸 읽어보니 아닌 게 아니라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읽고 끝내서는 안 된다. 은혜받고 거기서 끝내서는 안 되지.

내 일상에 적용하여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채윤이에 관해 쓰던 글을 백지화 하고

오늘 받은 은혜를 힘입어 내 삶에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채윤이가 일 년을 쉬기로 한  안식년 체제에서는 뭔가 놀게도 하고 또 쪼기도 하고 뭔가 돼야 되는 일을 이루어내기도 하고, 또 이런 식으로 열일곱 살에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실질적으로 또 애한테 뭔가 도움이 되고 인성이 활성화 되는 데도 좀 힘이 되어주는 부모로서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뜻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꽃다운 친구들'서 만들어준 틀속에서 하는 게 낫지, 더 어려운 것은 또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중간고사 기간이라고 성적을 막 올려라, 또 뭔가 잠을 줄이더라도 도달해야 한다는 목표는 이거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또 학교 내부에서 막 이리 간다고 그러면 또 저리 가야 된다고 그러고, 아이들이 혼란하다고 봅니다. 뭐 하여튼 채윤이는 채윤이대로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줄 것이니 뭔가 엄마는 또 빨리 준비하고 나가서 또 뭔가 오늘도  바쁜 벌꿀처럼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명일동에 있는 털보부인이 혹 시간 되면 가보라고 포스터를 하나 날려주셨는데.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작가와의 만남이다. 

어머, 은유 작가! 잉, 양화진 청소년 학교, 우리 교회 고등부네.

학교 안 다니는 대신 고등부 찬양팀 반주에 올인하고 있는 채윤이,

바로 그 채윤이가 좋아하는 고등부 행사를 명일동 ok 언니에게 전해 듣다니. 하하.

은유 작가의 강의는 팟캐 벙커1 강의로 들었었다.

피아노 연습이랑 친구 약속도 있다며 빼는 채윤이에게 살짝 압력을 넣었다.

아빠는 '채윤아, 경험해. 뭐든 기회가 되는대로 경험하기. 경험주의자가 되기!'

바람을 잡고. 




다녀와서는 나쁘지 않았다며,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단다.

털보부인께서는 강의 안내를 해주시더니 페북에 올라온 사진도 보내주셨다.

그리고 냉큼 책을 선물해주셨다.

그리하여 채윤이가 엄마가 속으로 읽어야지 하고 있던 책을 먼저 손에 넣는,

이제 독서에 관해서도 엄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청소년이 되었다.

(언제 다 읽을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강의 들으러 갔다가 고등부 독서 동아리 '북앤톡'에 가입하고 왔다고.

여기서 나눌 책이라며 세월호 2주기에 맞춰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주문하여 읽고 있다.


김포에서 '서당'을 열고 아이들 글쓰기를 가르치는 외삼촌에게도 간다.

훈장님이며 삼촌은 책읽기는 물론 글쓰기에 토론까지 가르쳐준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오는 차 안에서

"아, 오늘 토론 시간에 엄청 깨졌어. 다음 번에 제대로 준비해서 다 발라버릴 거야"

이런 전투의지 좋아! 하하.


꽃친에서는 지속적인 일기쓰기를 격려하며 가끔 보여주는 일기를 써서 나누나보다.

세월호 2주기를 보내는 생각과 느낌을 적은 글을 끙끙거리며 썼다.

보여주는 일기로 썼으니 엄마 아빠 다 돌려서 보여주는데,

오, 김채윤! 글 쓰는 여자!


태어난지 사흘 만에 집에 왔는데 집이라고 생긴 게 온통 책으로 둘러 싸였더라는,

기동력 생기고 제일 먼저 해본 놀이가 책꽂이 1층의 <인물과 사상> 죄 꺼내기였던,

환경적으로 책과 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채윤이였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들려면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하던데.

채윤이는 일찍이 책 읽기에 멀미난 케이스.

책 읽는데 귀찮게 한다고 구박하고 짜증내는 엄마 탓인줄 알고 있다.


엄마는 그랬지만 엄마보다 좋은 어른들이 계셔서 책 멀미 극복하고 있다.

털보부인, 꽃친 샘들, 외삼촌.

아흐, 이런 키미테 같은 고마운 어른들.






방학이 일 년이라서 월화수목금토일 매일 한가한데도,

그래도 주말을 다르고 싶은 모양입니다.

엄마..... 엄마, 글 쓸 거 있어? 나랑 목욕 갈래? 아니면......

됐거든. 엄마 매일 수영하고 늘 사우나 해. 엄마도 모처럼 쉬는 토요일이라 맘 편히 책 읽고 쉬고 싶어. 너대로 놀아.

딱 잘라 버리는데 쉽게 포기하고 방으로 쑥 들어가버리는 게 더 마음이 쓰입니다.




날씨는 디게 좋고.

채윤아, 엄마랑 한강 갈까?

채윤이야 '엄마랑 놀기'는 늘 목마른 건데 뭐든 콜이지요.

보던 책 딱 접고 일어섰습니다.

한강에 나가 걸으며 멀리 바라봅니다.

건너편 선유도 공원의 연하디 연한 분홍빛, 연두빛이 눈길을 확 사로잡습니다.

너 선유도 공원 가봤어? 정말? 여기서 5 년짼데 한 번도 안 봤어? 갈래?

내친 김에 선유도 공원까지 걷습니다.





너무 예쁘다, 너무 좋다,를 남발하는 채윤이에게

"채윤아, 하나님 창의력 쩔지? 어쩌면 저렇게 꽃마다 잎마다 색깔이 달라?"

"엄마,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래? 엄마는 자주 하는데. 그나저나 저 색깔 좀 봐. 저  버드나무 말야. 수양버들.

수양버들 꿈꾸는 길에 꽃가마 타고 가네..... 이런 노래도 있는데"

(부르지 말 걸. 너무 올드하다)

"저 나무 이름이 버드나무야? 현승이랑 나는 저걸 열쇠나무라고 부르는데. 덕소 할머니 집 가다보면 저 나무가 있는데 어느 때부턴지 열쇠나무라고 불렀어"

"아무튼 엄마는 바로 저 연두색, 딱 이때만 볼 수 있는 저 색깔을 보면 죽을 것 같애.

좋아서."

(채윤이 쩜쩜쩜)





4월 1일 금요일,

만우절을 기점으로 인근의 꽃들은 동시에 봉우리를 터뜨리기고 약속한 모양.

목련 먼저, 개나리 먼저..... 이런 순서도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피기로 한 모양.

그래도 아직은 봉우리가 대세입니다.

그늘이라곤 없는 곳에 서 있는 탓일가? 화알짝 피어서 곧 져버릴 것 같은 목련이 있네요.

"채윤아, 그런데 꽃이 피면 좋은데 왜 활짝 핀 꽃보다 늘 봉우리가 더 예쁜 걸까?"

"아닌데. 나는 어설프게 핀 꽃보다 활짝 핀 꽃이 더 좋은데....."

"아, 그렇구나. 넌 젊어서 그래. 그렇지. 활짝 피어야지....... 으흐흐흐"

"엄마, 나는 자연이 이렇게 좋다는 걸 최근에 알았어.





하긴, 꽃봉우리 같은 채윤이에겐 이제 활짝 피울 일이 남아 있지요.

암요. 그렇고 말고요. 이제야 비로소 생의 봄날을 맞은 건데요.

인생의 정오를 지나고 막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한 엄마 눈에 예쁜 것과는 다르겠네요.

그리 생각해보면 생의 봄날을 사는 아이에게, 가을 또는 겨울을 사는 이에게는

다른 것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나를 앞서 늦가을과 겨울을 사는 분들이 보는 세상을 쉽게 재단할 일이 아닙니다.

모두들 제 눈에 보기 좋은 것을 충분히 느끼고 살면 족합니다.

생의 봄날을 사는 채윤이가 짧아서 아쉬운 이 볕을 충분히 쪼이고 누렸으면 싶습니다.

그래야 어느 날엔가 활짝, 화~알짝 꽃피우겠지요.












(여섯 살 목소리)

엄마, 이거 사진 찍어. 사진 찍어서 엄마 미니홈피에 올려.

엄마, 내가 만든 거야. 사진 찍어서 미니홈피에 올려서 삼촌 보라고 해.


(열일곱 살 목소리)

엄마, 왜 내가 만든 거에 관심이 없어.

나 장래희망이 바뀔 수도 있다고.

나 재즈피아니스트 안되면 플로리스트 할 거야.

빨리 사진 찍어서 엄마 블로그에 올려.

집에 가서 물에 꽂으라고 했단말야.

사진 찍고 포장지 다 벗겨서 물에 꽂아야 돼.


여섯 살에서 열일곱 되기까지에는 중간에 그런 시절도 있었다.

사진 한 장 찍혀주는데 그렇게나 비싸게 굴고.

내 얘기를 왜 사람들이 보게 하냐! 왜 엄마 마음대로 내 얘기를 블로그에 올리냐!

안 올린다 하면서 올릴 거 다 안다!

엄마 진짜 짜증난다!


오늘은 꽃다운 열일곱 채윤이가 꽃다운 친구들과 꽃시장에 다녀왔다.

화이트데이 기념으로 꽃다발 만들기를 했단다.

사진 몇 장으로 연속으로 찍으서

'자, 꽃다발 몰아주기!' 하니 바로 안 그대로 예쁜 꽃 더 예뻐 보이게 몰아줬다.


중학교 시절 언제였던가,

현승이가 '엄마, 누나가 너무 불쌍해. 매일 매일 웃지도 않고, 말도 잘 안하고.....'

걱정하던 날도 있었다.

일 년짜리 방학 효과로 표정이 살아나고 있다.

여자 짐캐리 정신실 엄마의 딸, 엄마보다 레벨업되어 나온 딸의 표정이 살아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 사진은 뽀너스.

표정 카피는 기본, 감상 포인트는 눈동자 위치.












왜애?

뭐가?

엄마가 지금 나를 한참 봤잖아.

부러워서. 니가 제일 부러워.

촴, 아빠도 내가 제일 부럽다는데.


채윤인 이런 나날을 살고 있다. 진짜 


월요일과 목요일에 두 번 꽃친에 놀러간다.

요즘엔 꽃친 중 뜨개질 잘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 지도 하에

동대문에 실을 사러 다녀와서는 목도리 뜨기에 열을 내고 있다.

잔뜩 늘어진 채윤이가 실타래를 늘어뜨리고 뜨개질 하고 있는 걸 보노라면

일 없는 고양이가 앞발로 실타래 굴려가며 뒹굴고 있는 그림이 오버랩 된다.


뜨개질에 여념이 없는 누나를 현승이가 자꾸 가 건드린다.

때리고 도망가고, 내가 확 풀어버린다! 하면서 나꿔채고.


평소같으면 한 대 맞고 두 대 때리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야 하는데....

그러다 먼저 선발대로 혼나는 게 채윤이 배역인데....

인내심이 장난없음이다.

심지어 오히려 현승이가 선발대로 엄마 아빠에게 구박을 듣게 된다.

김현승, 누나 그만 건드려. 그만하라고 했다.

너 내일 학교 가지? 좋을 말 할 때 누나 건들지 말고 가서 자.

중요한 것은 이런 와중에 채윤이 여전히 평상심을 잃지 않고

뜨개질 하는 손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


현승이 학교 가고 여전히 소파에 앉아 뜨개질 중이던 채윤이의 한 마디.

엄마, 나 참 여성스러운 것 같애.

이렇게 뜨개질을 하니까 나도 모르게 차분해지고 너무 여성스러워져.


아닌 게 아니라 너 어제 현승이가 아무리 까불어도 흥분 안 하고 다 봐주더라.


엄마,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내가 뜨개질을 하다보니가 나도 모르게 여성스러워져.

애써서 참은 게 아니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 거야.

그리고 중요한 걸 깨달았는데.....

내가 그렇게 참으니까 엄마가 나를 인정해주더라.

내가 먼저 흥분해서 소리 질러서 더 많이 혼난다는 게 무슨 뜻인 줄 알았어.


뜨개질 하다 여성스러워지는 채윤이 긍정 포인트 쌓이고 있음.

사춘기 오면서 비기싫음 포인트 막 쌓이는 현승이 덕에 더욱 돋보이고 있음.


햇살 쏟아지는 거실 카페트 위에서 늘어지게 하품하는 고양이처럼

방학이 일년인 채윤이의 하루는 뭔가 너무 여유로워 턱이 빠질 것 같은 그런 시간이다.







 

 

 

요즘 청소할 때마다 치우면 또 나오고 치우면 또 나오는 물건이 있습니다.

교회 요람에 발이 달렸나?

제자리에 꽂아 놓아도 어느새 거실 탁자에서 굴러다니곤 합니다.

교회학교로 학기 초가 되었으니 새로운 선생님들 신상털기용으로 자꾸 꺼내보나?

 

일 년짜리 긴 방학이 시작되어 놀짱 채윤이가 돌아오고 있는지,

교회 요람은 놀이용이었더군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채윤이가 왕년에도 제일 좋아하는 책이 '교회 요람'이었지요.

한글을 떼고 제일 감명 깊게 읽은 책이 '한영교회 요람'이었을 겁니다.

8년 전 채윤이에게 교회 요람이란? 클릭클릭! 

 

대형교회 요람의 메리트를 한껏 살린 놀이는 이렇더군요.

1. 가위 바위 보! 순서를 정해서 요람을 딱 펼친다.

2. 펼친 페이지에 아는 얼굴이 있으면 이긴다.

3. 아는 얼굴이 흔치 않아서 여러 번 펼쳐야한다.

4. 게임은 자연스럽게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선생님 디게 좋아.

야, 이 선생님이 그 선생님 동생인 거 알아?

헐, 진짜야?

블라블라.... 수다수다.... 떠들떠들....

 

(여왕의 귀환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야, 좀 조용히 좀 하자.

각자 자기 방에 들어가.

아오, 진짜 정신이 없다. 정신이 없어.

야! 조용히 좀 하라고 했지.

나 얘들 진짜.....

여보, 얘네들 왜 이래?

야, 아빠 좀 쉬자. 어, 조용히 좀 쉬자고.


요즘 우리집은

뭔가 집이라고 하기엔 뭔가

집이라고 하기엔 뭔가 너무 정신이 없게

정신이 하나도 없게

뭔가 시끄러운 게 도때기 시장 같은 게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게

고막이 터져버릴 것 같은 게....

(ft. 장기하)


왜 그런가 했더니

방학이 일년인 아이가 자꾸만 거실을 접수하려 넘보니 오래 전 그날로의 회귀로다.

주일 저녁 엄마 아빠 소파에 나란히 앉아 독서를 하시자니

두 녀석 마주앉아 보드게임 하는 것이 낯설고도 익숙하다.

한때 거실은 저 아이들 것이었다.

당연히 시끄럽고, 물론 기본설정은 늘 도떼기 시장이었고.


(오래 전 그날의 거실은 늘 아래와 같았습니다.)












*

새 운동화를 안고 어쩔 줄을 모릅니다. 사자마자 갈아 신고 잠실까지 다녀온 운동화를 매만지며 '엄마, 이걸 현관에 둘 수가 없어. 그냥 하루만 방에 두고 자면 안 돼?' 정말 좋은가 봅니다. 나달나달 해어진 운동화를 신고 다녔습니다. 남의 시선을 무척이나 의식하는 채윤이가 어쩐 일인지 엄마 없는 애 같은 운동화를 잘도 신고 다녔습니다. 사줘야지, 사줘야지, 했는데 입시를 앞두고 운동화 사러 갈 여유가 없었고. 날이 갈수록 거지가 되어가는 운동화를 채윤이는 군소리 없이 신고 다녔습니다. 입시 마치고는 섣부르게 사지 않고 마음에 꼭 드는 걸 사겠다며 오래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쨌거나 채윤이 마음에는 꼭 드는 운동화를 샀습니다. 


**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다는 말이 있고,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 하시던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도 있습니다. 신발을 갈아 신는 것은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드디어 꽃친 가족 첫 모임이 있었습니다. 첫 가족모임 겸 송년회였습니다. '안녕, 그리고 안녕'이라는 표제를 달고 모였습니다. 앞의 안녕은 'good-bye'의 안녕이고 두 번째 안녕은 'hi'라로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채윤이는 무언가를 향해 안녕을 고한 것입니다. 꽃다운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고 손을 잡고 수줍은 '안녕'을 했습니다. 신발을 갈아신고 새날을 향해 떠납니다. 무엇에게 '안녕'하며 등을 돌리고 무엇을 향해 '만나서 반가워, 안녕!' 하게 되는 것일까요?


***

채윤이의 운동화 사진은 팽목항에서 바다를 향해 놓여 있던 뉴발 운동화 한 켤레와 오버랩 되어 다시 눈물이 치밀어 오릅니다. 이맘 때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뉴발 새 운동화를 사다 둔 엄마의 마음을 백 번 천 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고 가슴이 무너집니다. '돈 없다. 허튼 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 하며 '엄마, 뉴발 운동화.....' 하던 아이의 말을 묵살해 버렸던 것을 두고두고 가슴을 치며 후회할 것입니다. 다시 새신을 신길 수 없는 차거운 발을 안고 정신을 잃고 또 잃었을 엄마의 고통이 어찌 그 엄마만의 것이겠습니까. 새 운동화를 신고 펄쩍펄쩍 뛰는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눈이 과연 나의 것이어도 될까요? 이 평범한 행복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려도 되는 것일까요? 네, 저는 아직도 세월호 얘깁니다.


****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세월호 이후 더욱 절절하게 들립니다. 어쩌다 안산에 살았고, 어쩌다 단원고에 다녔고, 어쩌다 제주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고, 어쩌다 세월호를 탄 그 아이들이 우리 채윤이와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아이를 빼앗긴지 2년이 되어가는데 밝혀진 의혹이라곤 없고, 죽은 아이 팔아 돈이나 챙기려는 사람으로 몰리는, 벼랑 끝에 선 저 부모들과 나는 또 말입니다!  지난 여름 수련회에서 '세월호'를 주제로 선택 특강을 준비하던 남편이 말했습니다. '신학과 철학이 세계 1,2차 대전의 충격으로 전혀 새로운 물음을 물어야 했듯, 세월호를 겪은 우리의 신앙과 삶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적어도 저에게, 우리 부부에겐 세월호 이후의 신앙과 삶은 그 이전과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

내가 사는 나라의, 교회의, 함께 아이를 키우는 동시대 부모들의 민낯을 세월호가 다 비추어주었습니다. 생명의 가치를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를 이보다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지요. 맹목적인 성적관리, 대학입시, 돈을 기본옵션으로 하는 성공, 무엇보다 돈 돈 돈. 역겨움과 환멸이 밀려왔습니다. 결혼 전 젊었을 적부터 눈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93.1 라디오를 트는 것이었는데 작년 4월 16일 이후로 그것도 잊었습니다. 꽃 같은 생명이 눈앞에서 사라져 갔는데 달라진 것 하나 없는 세상, 청명하고 미끈한 목소리로 희망을 논하는 진행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귀와 마음이 그 목소리는 물론 음악까지 뱉어냈습니다. (다시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 두어 달 전입니다.) 10여 년을 해왔던, 좋아하는 운동인 수영을 끊어버렸습니다. 건강을 생각해 다시 시작해야지 마음먹어보지만 영 다시 발걸음 하게 되질 않습니다. (주부수영 끊은 사연, 클릭) 제 마음에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밖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몸서리를 쳤지만, 그 욕망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입니다. 의식있는 척, 성적 따위 관심없는 척 말도 글도 잘 나불거렸지만 마음 깊은 곳의 세속적 욕망은 숨길 수 없습니다. 바닷속에 가라앉은 꽃다운 생명들, 그 생명을 품었던 엄마들에게 마음을 포개고 바라보니 돈과 성공에 미쳐버린 세상이 또렷이 보였습니다. 함께 미쳐돌아가는 제 모습도 더 잘 보였습니다. 물론 어찌나 포장술이 뛰어난지 자신마저도 속고 있었지만요.

 

*******

중학교 졸업하고 안식년을 가지면 좋겠지만, 그리고 수진 부부가 꽃친을 하겠다 했을 때 쌍수 들어 환영했지만 왠지 결국 우린 함께 하지 못할 거라는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예중, 예고 가서 웬만한 대학에 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이만하면 보통의 엄마들과는 다르게 키우고 있으니 됐다, 적당히 줄타기하면서 살아야지, 어쩌겠나.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생명들이 자꾸만 제게 묻습니다. 채윤이와 현승이가 당신 것이냐고, 세상이 정하고 당신이 세운 계획으로 보장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내일의 무엇을 위해서 오늘의 사랑과 행복을 유보하느냐고. 무엇을 위해서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자리에 연연하고, 돈과 명성에 영혼을 파느냐고. 매일 단원고 엄마들을 생각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기도의 손을 모을 때 엄마들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 엄마들은 다름아닌 나이기 때문입니다. 새 운동화를 사주고 좋아 어찌할 줄 모르는 채윤이를 보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편치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이 채무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수장되었고 그 엄마 아빠들도 고통의 바다로 내몰려 빠져버렸습니다. 남은 자의 몫은 회개, 돌이킴입니다. 


********

살아남은 자로서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남은 날이 적다. 더 많이 먹고 더 실컷 놀자, 가 아닙니다. 두 아이와 사람들이 내게 맡겨져 있을 시간이 많지 않다, 오늘 이들의 행복하게 하는 일을 미루지 말자,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그만 신경 쓰고 내가 있어야 할 곳, 해야 할 말과 사랑을 유보하지 말자, 입니다. 정권은 사악하고 교회는 천박하여 사방을 둘러봐도 절망이지만 분노하고 서명하고 피켓팅하는 것 이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 삶을 근본적으로 돌이켜야 한다고 촉구하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경고이며 동시에 기회입니다. 생명이 스러져가고 숨이 끊어져 가는데도 알아채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남의 아이인줄 알지만 실은 우리 아이인데, 내 아이의 생명이 빛을 잃어가고 있는데 알아채질 못합니다. 그래서 내 아이도 나도, 우리 모두가 함께 스러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내 숨을 쉬며 살겠노라는 선택이 어떤 모양새가 될 것인지 잘 압니다. 번듯할 수 없습니다. 까칠하고, 이상하고, 바보같고, 과격하고, 고독한 길이겠지요. 그렇더라도 남겨진 자의 의무를 살아야겠습니다. 남겨진 엄마로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사랑의 의무를 다하고 싶습니다. 남겨진 아이들의 행복한 오늘을 지켜야겠습니다.  꽃친을 시작하는 '안녕, 그리고 안녕'에서 채윤이 엄마의 안녕은 그런 뜻입니다. 일부러 더 반대로 가겠다는 뜻의 안녕입니다. 그런 삐딱한 의지의 표명입니다. 이것은 단지 힘들게 준비하여 합격한 예고를 포기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단지 1년을 쉬겠다는 그런 얘기만도 아닙니다. 단지 채윤이 얘기는 아닙니다. 아닙니다만 결론은 채윤이를 주어로 맺어야겠지요.


채윤이는 앞을 보고 막 달려오다 멈춰섰습니다. 그리고 휙 뒤돌아서 '안녕!' 하고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막막한 미래를 향해 '아....안녕' 수줍게 인사했습니다.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꽃 같은 나이 열일곱에 제 숨을 쉬게 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 꽃친 첫 가족모임에서 채윤이가 수줍은 '안녕'을 건네고 있습니다.

* 연재는 이렇게 끝입니다. 진짜 꽃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겠지요.






 

 

 

월요일 데이트에 채윤이가 함께 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하루 가족여행에 현승이가 빠졌습니다.

'나는 집에 있으면 안 돼?' 사춘기 도래를 알리는 이 한 마디! 드디어 나왔습니다.

두 번 당하는 일이라 충격이 크지 않으니 다행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2년 여 전에 채윤이 빠진 하루 여행을 다녀와 당시 기고하던 <크로스로>에 

사춘기 사추기라는 글을 썼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아무튼 채윤이는 자동차 뒷좌석을 혼자 다 차지하고

현승이가 태어나기 전 29 개월 동안 누렸던 '독점의 기쁨' 다시 누리기였습니다.

'전주 한옥마을'보다는 '주전주리 마을'이 더 어울리는 이름 같은데, 거길 갔습니다.

식구 중에 가장 위대한 채윤이에게는 딱 좋은 곳이었습니다.

콩나물국밥 먹고 바로 간식을 끝없이 흡입할 수 있는 여자 사람은 흔치 않거든요.

엄마로서는 여러 가지 걱정이 되어 잔소리를 늘어놓고 싶었지만

"또, 또 뭐 먹을래? 저거 사줄까? 뭐든지 먹고 뭐든지 사"

아빠 포스에 눌려 입 닫고 쭐래쭐래 따라만 다녔습니다.

(길쭉이들 한 걸음에 나 두 걸음. 바쁜 발걸음 속에.... 아, 뭔지 모를 소외감)

 

 

 

 

 

가족의 여행은 오가는 길 자동차 안의 대화와 음악이 의미 박스 입니다.

아빠랑 나랑 닮은 점이 뭐야? 채윤이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뭐가 닮았을까?  여러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오는 길에 다같이 꽂혀서 들은 신해철 2집 앨범 <myself>는 대박이었습니다.

장래희망이 '옛날 가수'인 현승이와는 음악적 정신세계가 많이 통하는데요.

세 식구가 김광석, 이적, 윤도현, 하동균, 김연우.... 이러고 있을 때

채윤이는 귀에 이어폰 꽂고 알 수 없는 음악에 흐느적거리곤 하거든요.

그런데 오랜만에 현승이 없이 셋이서 신해철 노래로 대통합을 이뤘습니다.

아빠가 대학 2학년 때 '이런 가수가 있나?' 하고 들었다는 2집 앨범을 소개해주었습니다.

<나에게 쓰는 편지>의 가사는 딱 자기가 쓴 것 같다며.

이 노래를 듣고 용기내서 군대에 갔답니다. 가사를 옮겨 적지 않을 수 없네요.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 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 얘기를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언젠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이상 우리가 사랑했던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호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때로는 내 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 땐 그냥 맘껏 소리내 울고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웬일인지 채윤이가 쏙 빠져서 노래를 듣습니다.

가사에 공감이 많이 되는가 봅니다.

운전하랴  입으로 DJ하랴, 바쁘신 아빠가 <길 위에서> 를 추천합니다.

이거 딱 채윤 노래야.

딱 채윤이 노래네요. 

 

 

차가워지는 겨울 바람 사이로
난 거리에 서있었네
크고 작은 길들이 만나는 곳
나의 길도 있으리라 여겼지
생각에 잠겨 한참을 걸어가다
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었지
무엇을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나의 첫 깨어남이었지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나의 길을 가려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진 않은 나의 길
언제나 내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 주오

 

끝없이 뻗은 길의 저편을 보면
나를 감싸는 건 두려움
혼자 걷기에는 너무나 멀어
언제나 누군가를 찾고 있지
세상의 모든 것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고
삶의 끝 순간까지
숨가쁘게 사는 그런 삶은 싫어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나의 길을 가려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진 않은 나의 길
언제나 내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 주오

 

 

 

 

 

고등학교 진학하지 않고 1년을 쉬겠다는, 그것도 예고 합격을 포기한 한다는 얘기에

애정과 걱정이 담긴,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애를 왜 바보로 만들려고 해"

바보.... 음..... 네..... 어......

벌써 다섯 번째 글인데 '그러니까 좋은 생각 다 알겠는데.... 왜 예고를 안 간다는 거?' 딱 부러지는 이유를 밝히지 않아 답답하신 분들도 있겠습니다.

위 두 곡의 노래에 예고 가지 않는 이유가 딱 나와 있는데, 딱 아시겠습니꽈? ㅎㅎㅎㅎ

 

아빠가 그런 얘기도 해줬습니다.

마왕의 또 다른 곡 <Here I Stand For You ....?>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독백입니다.

특유의 저음으로 읊조립니다.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 영.원.히.

 

이 부분을 듣고 아빠의 친구의 친구가 울었다는 얘길요.

 

대학의 레벨을 일정 정도 보장받을 수 있는 예고를 가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믿고 있는 영원한 것들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고, 믿는대로 산다는 것이 갈수록 '바보가 되는 길' 같아 보이지만요.

그것을 바보로 보는 세상을 향해서 설명을 해봐야 어차피 바보의 말이기 때문에 그 다음 말은 어렵습니다. 

채윤이 아빠는, 채윤이 엄마는

채윤이 안의 아빠와 엄마는 인류 최고의 바보를 알고 있습니다.

그분처럼 살고 싶지만 인간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고,

흉내를 내보지만 늘 한계에 부딪혀요.

사실 가장 정직하고 분명한 답인데

듣기에 따라서는 너무 거창하여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싶네요.

이번 채윤이 진로선택은 그분처럼 살기 코스프레입니다.

정답 없는 인생 여정, 신앙의 여정, 갈림길에 설 때마다

바보 그분의 가르침과 가까운 길을 고심해보고 이거다 싶으면 가보려고요.

그래봐야 결과는 바보의 삶이겠지요.

결과보다 이런 선택 한 번 한 번을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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