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여름 수련회와 맞바꾼 책 한 권에 자꾸 눈길이 갑니다. '여름 수련회 3박4일로 1년 영발 다 채운다.'는 생각으로 수련회에 목숨 걸던 청년이었지요. 그러나 그 해에는 정말 수련회를 가기가 싫었습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그 해 새로 오신 대학 청년부 목사님의 설교를 3박4일 내내 들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평소 <시사저널> 같은 잡지를 읽으면 영이 악해진다며 설교단 위에서 말씀하셨고, 그 순간 제 가방엔 시사저널이 들어 있었었죠. 일주일에 한 번 듣기도 힘든 목사님의 설교였으니까 1년의 신앙 농사를 망친다 해도 도저히 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를 아끼던 모든 분들이 '그러면 안 된다. 그래도 가야한다' 라며 설득하셨고, 무엇보다 제 맘에는 '사실 이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잘못된 선택이다.' 라는 목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그 때 유일하게 제 손을 들어주신 분이 계십니다. 대학 청년부를 지도하시다 고등부로 내려가신 전도사님이셨죠. '그래, 그렇다면 수련회 올라가지 마라. 대신 특별한 마음으로 3박4일을 보내라' 하셨습니다. 특별하게 보내라는 3박4일은 성경 일독도 아니고, 금식기도도 아니고 하다못해 신앙서적 몇 권을 읽으라는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논리와 비판적 사고> 바로 (이 책을 먹으라! 아니고) 읽으라 하셨습니다.

 

목사의 딸로 자란 저는 수많은 당위의 세례를 받고 자랐습니다. '해야만 한다. 옳다/틀렸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하나님 뜻이 아니다' 이런 내면의 메시지가 가득한 제 기억의 저장고에는 '온전히 받아들여진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경험이 없는 것 아니겠지요. 경험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이겠지요). 1991년 여름, '그래 그러면 가지마라' 하셨던 전도사님의 말씀이 제 일생에 잊히지 않는 '지지와 격려'입니다. 제 안 밖에서 '당위'의 소리만 들를 때, 제 깊은 바람을 들어주신 기억이니까요. 이때로부터 저는 이 분의 말씀은 제게 '팥으로 쑨 메주'가 되었습니다.

 

제 이름이 새겨진 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요즘 '실감나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가당치 않은 일이다.' 라는 뜻을 포함합니다. 저보다 글 잘 쓰는 분들이 페북 친구 중에서도 수두룩합니다. 저는 말하자면... (글 쓰는 걸 좋아하기 보다는) 글쓰기에 겁을 안낸다는 것과 얄팍한 말장난 기술이 있는 정도입니다. '팥으로 쑨 메주'가 되신 전도사님의 말씀이 이런 저를 '글 잘 쓰는 제자'로 계속해서 불러주셨습니다. 정말로 제가 팥으로 쑨 메주가 된 것입니다. 주보에 쓴 어쭙잖은 글에 '물고기가 파닥거리는 것 같다'고 하신 칭찬이 끝없이 제 자존감을 끌어올린 세월이었습니다.

 

높은 책꽂이가 앞을 딱 막고 있던 책상 앞에서 수련회 하던 마음으로 400여 페이지의 논리학 책을 큐티하듯 읽었던 그 여름이 많이 생각납니다. 당위와 비판의 메시지가 들끓는 내면으로 겉으로는 착하고 믿음 좋은 청년으로 살던 제게 한 번의 치유가 일어났던 3박4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여름이 없었다면 <오우 연애>는 세상에 나올 수 없는 것이었네요. 그래서 전도사님께 '감사'라는 말은 턱 없이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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