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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마음의 환대

사람이 먼저다

larinari 2012.12.01 00:33




결혼을 앞 둔 커플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사모님, 식사준비 하시느라 애쓰셨죠?'
'애를 쓰긴 뭘 애를 써? 열 두 명의 목자도 아니고, 달랑 두 사람인데....' 했습니다.
그 땐 그랬죠.
일 주일에 한 번 열 두 명의 목자이거나,
더 오랜 된 그 때에는
기고, 막 아장아장 하는 아기를 동반한 부부들이거나.
매 주 그들과 함께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 즈음 '사람은 요리할 수 없다' 라는 제목으로 포스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집에 손님을 초대해 식사를 하는 일은 주부로서 고단한 일입니다.
것도 매 주 반복되는 일이라면 메뉴를 정하는 일부터가 어려운 일이지요.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그 때 배웠습니다.
매 주 열 명 이상의 식사를 다른 메뉴로 준비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사람들의 내면이 변화되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지요.
'아, 사람이 변화시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꿈을 깨자!'


사람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밥을 하는 일이겠구나.
그 정도로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는 희한하게 그 시절을 방불케 하는 만남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아, 사람을 요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을 요리하겠다고 하는 마음은 먹어서는 안 될 마음이구나. 특히나 나의 어줍잖은 말로 사람을 요리해서 변화시키겠다는 꿈은 악에 가까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주앉아 대화하는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그리고 있는 그 사람을 향한 그림이 먼저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불과 몇 년 살아봤다고, 책 한 권 냈다고 연애에 대해서 결혼에 대해서 내가 그린 그림을 가지고 들이 미는 건 영양가 있는 밥 한 그릇 먹었다고 당장 건강해질 거라고 믿는 것과 같습니다.
나와 마주앉은 사람이 먼저입니다.
그 사람을 향해 꾸는 나의 꿈은 자기애일 뿐 입니다.






오랜만에 신메뉴가 나왔습니다.
위의 메뉴는 오리 훈제를 특별히 제작한 소스에 파와 약간의 야채를 곁들여 무친 일명,
(파닭) 말고 파오리!
그리고 이보다 더 시간과 비용 면에서 경제적일 수 없는,
호박 구워서 간장소스 뿌린
(호박전) 아닌 호박전.


역시 사람이 먼저입니다.
함께 먹을 사람을 마음으로 그리다보면 기가 막힌 신메뉴가 저절로 나옵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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