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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친, 여자사람의 일생

larinari 2015.05.22 10:56

 

 

 

<나.자.연. 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18>  QTzine 6월호

 

 

연애와 결혼을 통해 후천적 페미니스트가 된 남성을 알고 있습니다. 대단한 여성운동가가 되었다는 건 아니구요. 평생 남자사람으로만 살아봤기에 통 몰랐던 여성의 삶에 눈을 뜨게 된 것이라지요. 결혼 직후 부모님 댁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식사를 마치고 모두 과일을 먹고 있었답니다. 식사를 마치고 과일을 깎던 아내는 어느 새 혼자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더라는 것이죠.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 되었다싶었다고 합니다. 결혼 드라마 각본에 없던 장면이 연출된 것입니다. ‘이 사랑스럽고 연약한 여자가 무슨 이유로 우리 집 설거지를 혼자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녀처럼. 게다가 이 모든 것이 당연한 듯 한 분위기는 무엇인가?’ 나서서 대신 설거지를 하고 싶었지만 결혼 전 소행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결혼 전 아내 아닌 형수님이 혼자 부엌에서 설거지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 것입니다. 뭔가 아니다 싶었지만 으레 그런 것이려니 흘려보냈다면서요. 사위라 불리며 처갓집의 VIP가 된 자신,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자기 집의 가사도우미가 된 아내의 신분변화에 현기증을 느끼며 그렇게 남자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는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죠. 결혼제도 안에 아내인 여성에게만 씌워져 있는 불합리한 굴레가 하나 둘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지점에선 못 본 척 눈 감아 버리고픈 유혹에 갈등도 했더랍니다. 어물쩍 관습에 편승하여 살면 손해 볼 것 없는 남자인생이니까요. 그러나 단지 여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의 문제였기에 좌시할 수 없었고 빠져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남자는 자생적 페미니스트가 되어 오늘도 산더미 같을 설거지를 하며 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눈을 뜨지 않았으면 편했을 것을, 하면서요.

 

남자니까, 여자니까 당연한 것 아냐? 의심 없이 살아가다 눈을 떠야 할 때가 있습니다. 결혼하여 한 몸 이룬다는 것은 이제껏 몰랐던 반대 성(gender)의 삶을 함께 살아본다는 의미에서 온전함을 향한 여정이 됩니다. 21세기 포스트 모던 시대에도 아들이 아니어서, ‘남자사람이 아니어서 받은 차별의 아픔 이야기가 널리고 널렸습니다. 차별의 기원을 찾아가자면 인류 역사를 한참 거슬러가야 합니다. ‘오빠 나 살찐 것 같지 않아?’ 하는 뜬금포에. ‘, 좀 그런 것 같은데.’ 해도 아니, 어디 살이 있다고?’ 해도 오답이니 여친의 질문에는 혼날 준비만 하면 된다는 포털 메인화면의 연애코칭 아시죠? 남자로서는 진짜 모르겠는 여자 마음, 여자 자신도 모르겠는 그 마음은 바로 오랜 된 약자의 삶의 소산 아닐까요. 자기감정에 충실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자기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상황에 감정을 맞추는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지요. 물론 개인의 차이는 있습니다. 모든 여성이 자기 감정표현을 못하는 것도, 모든 남성이 자기표현에서 당당하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렇게들 희화하는 알 수 없는 여성의 마음뒤에는 오래된, 아주 오래된 약자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이란 애초 비합리적이고 알 수 없는 감정을 가진 존재였던 것 아니라 엄마, 엄마의 엄마를 거쳐 유산된 약자의 습관을 유산으로 가진 사람이 아닐까요.

 

예컨대 이렇습니다. 사랑 고백을 하기에 앞서 누구나 두렵습니다. 당연히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지요.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거절당함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같은 지점에서 여성들만 아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여성의 성격이 적극적이거나 외향적이든 소심하거나 내향적이든 간에 먼저 고백하는 것은 여성적 매력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성향과 상관없이 적극적 태도는 넣어두고 조용히 살이나 빼고 있는 게 정답이라는 식이지요. 연애와 결혼에 관한한 주체적이 되는 것은 여성적이지 못하니 몸이나 예쁘게 가꾸는 것이 능사라는 무언의 압력이 팽배합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집단무의식에 더해, 일부 자기계발식 연애강의가 부채질을 합니다. 결혼 적령기라는 것이 유독 여성에게 굴레가 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여자는 일단 예뻐야 하고 젊어야 한다는 통념에 눈가에 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탄력을 잃어 갈 때 적령기를 놓친 것 아닌가 하며 더욱 불안해하는 것은 여성입니다. 이렇듯 몸이 너무나 중요한 여자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남자사람의 삶과 얼마나 다른지요. 여성의 몸을 가졌다는 것은 그대로 약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근육이 적고 힘이 약하다는 신체적 조건 그 이상이지요. 심야에 혼자 걷는 길, 게다가 비도 부슬부슬 내리면서 스산하다면 누구나 으스스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걷는 남자와 여자는 전혀 다른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여성의 몸은 언제든 성적인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인식하든 못하든 여자사람은 그렇게 성적으로 방어적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행위의 생물학적 결과인 임신이 여성의 몸에서 일어난다는 것에 더하여 순결의 덕목도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것입니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군요.

 

굳이 남녀 차이를 논해야 한다면 토라지고 말 안하는 현상만 보지 말고 내 여친 이전 여자사람이 사는 법에도 관심을 가져보아요. , 남자도 할 말이 많다구요? 그럼 다음엔 남자사람 얘길 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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