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내게 책받침의 불국사 사진, 석굴암 사진으로 각인된 곳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단 한 대의 버스를 놓친 느낌이랄까. 내 얼굴만 빠진 불국사 앞 수학여행 사진 한 장 같은 것이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가지 못(않)았다. 수학여행 기간 동안 학교에 나가 몇몇 아이들과 텅 빈 교실에 앉아서 자습을 하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수학여행 기간에 주일이 끼었다는 것을 알고는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담임 선생님은 물론 기독교반 지도 선생님까지 그러지 말라고 했고, 뜻을 굽히지 않자 화도 내셨다. 결심이 굳었으나 정작 수학여행 기간은 몹시 힘들었었다. 반에서 제일 웃기고, 제일 잘 노는 축에 드는 편이었다. 비록 내가 선택한 일이고, 자초한 상실감이지만 놀짱 여고생에게는 생각보다 더욱 힘들 일이었다. 친구들에게는 '나의 수학여행 사진'으로 남는 경주 불국사가 내게는 책받침 사진일 뿐이라는 것이 평생을 가는 상실감일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대신 이 사건은 내 신앙행전에 엄청난 간증이 되었다. 두고두고 자랑으로 여겼고 자부심 넘어 자만심으로 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젊은 시절에 '주일 성수'로부터 시작하여 신앙적 열심에 관한 한 나를 따를 자 없다는 자뻑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우월감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모르는 상태로 지냈다.
이래저래 머리가 커지면서 종교적인 행위가 신앙의 전부라고 여기던 나 자신이 부끄러운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수학여행 무용담은 입 밖에 내지 않게 되었다. 대신 고등학교 시절의 나처럼 규율에 매여 있는 신앙인들을 저급한 종교인 취급을 하면서 무시하고 비난하며 지냈다. 그러면서 나의 수학여행전(傳)은 아예 까맣게 잊고 지냈다. 나의 그 시절이 부끄럽다 여길수록 더욱 합리적, 지적인 크리스쳔으로 보여지려 애를 썼다. 그 시절 나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 - 주일성수를 비롯해서 신앙적 규율을 목숨처럼 지키려는 사람, 입만 열면 하나님 얘기를 하는 사람들, 순수하게 믿는 바를 표현하는 사람들까지도 - 을 보면 어쩌면 저럴 수가 있느냐고 비난했다. 그런데 그게 실은 나의 과거, 즉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수용하지 못함이었다.


공교롭게도 안타까운 참사가 있었던 시기에 가족들과 경주에 있었다. 석굴암 가는 길에 큰 아이와 수학여행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딸에게 들려준 것이 위에 적은 내용들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이 나이가 되어 생각해보니 고등학생이었던 엄마가 대견하다는 생각도 드네. 그때 학교에 남아 자습하고 있었던 모습을 생각하니 가엾기도 하고' 생각지 않게 내 입에서 나온 말로 고등학교 1학년의 나를 어른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래도 대견하다. 그 나이에 소신껏 뭔가를 지켜낼 줄도 알고. 그런데 친구들이 부러웠을까. 텅 빈 교실에 앉아 있던 며칠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었을까. 뭘 안다고 딸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렇게 토함산 오솔길을 걸었는데.... 고1의 나와 화해를 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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