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을 바라보는 (엄마 연세를 내가 꼭 이렇게 표현하는 건 88인지, 89인지, 어쩌면 86인지... 늘 헛갈리기 때문) 엄마가 가끔 전화해서 그럽니다.

"야이, 너 내가 이쁜 브라우스 있잖어. 느이 대전 올케가 사 준거. 그게 품이 좁아. 그거 내가 입고 나가믄 권사님들이 아~이구, 어디서 이쁜 옷만 사 입으신다고 그려. 그런디 그게 쪄서(껴서) 못 입겄다. 너 갖다 입어. 너는 딱 맞을거여.'

그리고 가면 한 번만 입어보라고 하신 후에.
"얼라, 너한티 딱 맞는다. 그릉게 내가 그릉게 내가 못 입지. 너 입어. 너 갖다 입어."

됐다고, 내가 이걸 어떻게 입냐고 몇 번 거절하다가 그래도 엄마가 포기를 안 하면 확 신경질 한 번 내줘야 조용해지십니다. (그 다음엔 같이 사는 막내 며느리한테 '너 입어'....ㅎㅎㅎ)

 

 

아, 진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연식에 비해 주름은 많지만 패션 나이는 젊다고요. 중1 딸하고 옷 같이 입는다고요!


엄마의 옷장,
내 옷장,
내 옷장을 넘보는 딸의 옷장.

재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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