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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라사, 게르니카, 제주, 광화문의 광인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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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라사, 게르니카, 제주, 광화문의 광인들

larinari 2018.05.14 09:37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1937



'미친년' 꿈을 꾸었다. 꿈일기를 '미친년의 신발'이라 제목을 붙였다. 무슨 꿈일까? 숙고하던 중에 '글쓰기 자조모임'을 준비하며 읽은 책에서 에서 본 '미친년 글쓰기'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416일 주간 주일 설교 내용도 함께 떠올랐다. 거라사 광인을 치유하며 2천 마리 돼지떼를 몰살시킨 불가해한 이야기이다. 자주 읽어도 뜻은 모르겠었던 본문이 선명하게이해되었다. 잔혹한 제국주의의 군화발에 희생된 군대귀신 들린 사람을 치유해다 제국주의에 기생해서 부를 늘려간 사람들에 의해 거부당하신 예수님 이야기이다. 마을 공동체적 치유와 회복사건이며, 동시에 불행하고 암울한 시대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미래를 선언한 정치적인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이기에 스페인의 게르니카, 제주의 4.3, 0416 세월호와 맞닿는 이야기이다. 원통함과 억울함 안고 살아가는 이 시대 모든 광인을 위한 이야기이다.

 

어렵사리 허락 받아 설교 원고 전문을 나눈다.

 

 

'거라사 광인' (5:1-15) _ 2015415일 이우교회 주일 설교

 

1937, 파블로 피카소는 <게르니카>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렸습니다.(스크린으로 게르니카를 띄움) 이 그림은 1937426, 나치 독일의 공군 콘돌 군단이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를 무차별 공격한 사건의 참상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게르니카 주민들은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 독일이 지지하는 프랑코 군에 반대했고, 나치는 보복 폭격을 가했습니다. 그 결과 마을의 70%가 초토화되었고, 주민 1,600여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건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었던 스페인 태생의 화가 피카소는 이 비보를 듣고 한 달 반 만에 그림을 완성합니다. 게르니카의 배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림을 보면 전쟁의 참상이 잘 와닿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건의 배경과 결과를 자료를 통해 본 후 그림을 보면 <게르니카>가 얼마나 끔찍한 사건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5장은 어떤 면에서 게르니카와 비슷합니다. 언 듯 보면 조금 기괴한 사건처럼 읽히지만, 그 배경을 알고 보면 이 사건이 얼마나 끔찍한 참상을 담은 이야기인지 알게 됩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귀신 들린 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 고쳐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쫓았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전부일까요? 그렇게만 읽고 넘어가기에는 의문스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쫓으신 이야기가 여럿 등장합니다. 그런데 유독 이 이야기에서만 예수님께서 이름을 묻습니다. 그리고 귀신은 자신의 이름이 군대라고 말합니다. 이름을 묻는 것도 특이하고, 귀신의 이름이 군대라는 것도 심상치 않습니다. 혹시 이 사람은 전직 군인이었을까요?

또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이 군대 귀신은 예수님께 청을 한 후 무려 2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에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곧장 갈릴리 바다로 돌격하여 수장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원래 돼는 떼를 지어 사는 동물이 아니데, 어떻게 2천 마리를 사육했을까요? , 그리고 유대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동물 취급을 했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이야기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우리가 다 착한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걸까요? 우리는 돼지 주인의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안타깝습니다. 돼지 치는 자들이 마을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사람들이 찾아와 예수님에게 그곳을 떠나달라고 요청합니다. 왠지 우리는 그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저간의 사정은 모른 체 하시는 것일까요? 스스로에게 좀 불리한 이야기를 왜 기록해 두셨을까요?

이 이야기에 관한 질문은 잠시 두고, 또 다른 자료를 살펴보겠습니다. 유대인 출신 역사가 요세푸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유대전쟁사>라는 역사책을 남겼습니다. 그의 책에는 오늘의 본문을 해석하는 데에 도움을 줄 기록 하나가 남겨 있습니다. 이 책은 예수님 사후 약 36년이 지난 AD. 66년부터 있었던 로마와 유대인 간의 전쟁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대의 모든 도시가 파괴됩니다. 이 책에서 여러 유대 전쟁에 관한 일화 중, ‘거라사 지방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로마 장군) 베스파시안은 기병대와 많은 보병과 함께 루키우스 안니우스를 거라사 지방에 보냈다. 안니우스는 마을을 공습한 후에 미처 피하지 못한 천여 명의 청년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가족들을 포로로 잡고 또한 군사들로 하여금 재물을 약탈케 했다. 마침내 그는 주거지를 불사르고 주변 마을로 행군해 나갔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도망갔지만, 노약자들은 비명에 갔으며 모든 것이 불길에 휩싸여 사라졌다. 이렇게 전쟁은 산과 들로 퍼져나갔다.

현대 사회 뿐 아니라 고대 사회에서도 전쟁은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라사는 전쟁의 참극을 경험한 지역이었습니다. 로마 군사들은 칼과 창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집을 불태웠으며 사람들을 노예로 끌고 갔습니다. 바로 그 거라사는 그때뿐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수차례 로마 군사들에 의해, 또 다른 군병들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힌 비극의 지역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갈릴리 북쪽에 위치한 시리아는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의 소용돌이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엊그제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는 시리아를 폭격했고, 그 이전 시리아에서는 IS세력과 정부군 간에, 여타 수많은 세력들 간에, 죽고 죽이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아무 죄 없는 민간인들이, 여인과 노인과 아이들이 지금도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갈릴리 북부 시리아에는 1세기 전 세계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로마제국 제10군단입니다. 하나의 군단은 6천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은 종종 남쪽 갈릴리아 거라사 지역으로 군사를 보내 원주민들을 위협하고 수시로 폭력을 행사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로마 제10군단이 가지고 다니는 군단기에는 10군단을 상징하는 동물이 그려져 있었으니, 그 동물이 바로 돼지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합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다시 보십시오.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예수님께서 그 귀신에게 이름을 묻자 군대라고 대답합니다. 우리말 군대로 번역된 헬라어는 레기온’(Legion,λεγεών)입니다. 레기온은 바로 로마 군단을 지칭하는 군사용어입니다. 당시 거라사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 로마제국의 군사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지역 정치인이나 세관, 또는 창녀나 로마를 숭상하며 재산을 지킨 지역 토호세력들이었을 것입니다. 보통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로마군사는 적이었습니다. 아니 그들에게 있어서 로마는 인간의 탈을 쓴 사탄이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재산을 강탈하고, 자신들의 자유를 빼앗고, 자신들의 삶의 향유권을 짓밟고, 자신들의 영혼을 노예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군대즉 레기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불쌍한 귀신 들린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로마 군인에 의해 가족을 빼앗긴 사람입니다. 재산을 빼앗겼고, 고향을 빼앗겼고, 친구와 추억과 삶의 모든 것, 심지어 영혼까지 빼앗긴 사람 아니었을까요? 그는 어쩌면 로마 군인에 의해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잃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남자가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차라리 제정신을 잃고 온 동네방네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이 사는 길이었지 않았을까요? 차라리 자기가 죽었어야 했는데 하면서 돌로 제 몸을 치지 않고서는 잠 못 들지 않았을까요? 무덤에 묻힌 가족들 옆을 배회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일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를 키우는 사람들은 또한 누구겠습니까? 그들은 필경 돼지를 키워 얻은 소득으로 로마 군단의 군수물자를 조공하면서 재산을 불린 사람들 아닐까요? 혹시 로마에 반역하는 사람들을 색출하면서 삶을 부지한 사람들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군대 귀신이 이천이나 되는 돼지 떼로 들어가 갈릴리 바다로 돌격하여 수장당하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는 예수님께서 단지 한 이방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준 개인적 사건일 뿐 아니라, 마을 공동체적 치유와 회복사건이며, 동시에 불행하고 암울한 시대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미래를 선언한 정치적인 메시지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겠습니까? 사람을 억압하고 자유를 빼앗고, 인간적 삶을 말살하는 제국은 필경 예수님께서 선포하고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와 맞설 수 없음을 선포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로마에 편들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내쫓을 수밖에 없었겠지요.

 

지난 43일은 일명 <제주 4.3사건>70주기였습니다. <제주 4.3사건>은 사회주의 토벌이라는 명목으로 미군정과 당시 이승만정권이 벌인 제주도민에 대한 만행이었습니다. 1948, 당시 제주도 도민이 30만 명이었는데, 좌익 세력을 척결하겠다는 명목으로 경찰과 군대가 동원되어 무려 3 만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했습니다. 노인, 여성, 어린이들조차 무차별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는 6.25 전쟁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이고, 국가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자, 동족상잔의 비극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66개월 간 진행된 이 토벌 작전 중에 육체적 고통을 당한 자, 정신적 후유증을 앓는 자, 전기고문과 물고문 등으로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가진 자,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자살한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제주도민들은 이 사건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제주 4.3 사건이 본격적인 학살 사건으로 번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 오라리방화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오라리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고은 시인이 썼습니다.

제주도 토벌대원 셋이 한동안 심심했다

담배꽁초를 던졌다

침 뱉었다

오라리 마을

잡힌 노인 임차순 옹을 불러냈다 영감 나와

손자 임경표를 불러냈다 너 나와

할아버지 따귀 갈겨봐

손자는 불응했다

토벌대가 아이를 마구 찼다

경표야 날 때려라 어서 때려라

손자가 할아버지 따귀를 때렸다

세게 때려 이새끼야

토벌대가 아이를 마구 찼다

세게 때렸다

영감 손자 때려봐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때렸다

영감이 주먹질 발길질을 당했다

이놈의 빨갱이 노인아

쎄게 쳐

세게 쳤다

이렇게 해서 할아버지와 손자

울면서

서로 따귀를 쳤다

빨갱이 할아버지가

빨갱이 손자를 치고

빨갱이 손자가

빨갱이 할아버지를 쳤다

이게 바로 빨갱이의 놀이다 봐라

그 뒤 총소리가 났다

할아버지 임차순과

손자 임경표

더 이상

서로 따귀를 때릴 수 없었다.

총소리 뒤

제주도 가마귀들 어디로 갔는지 통 모르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제주 4.3사건>을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제주 도민 3만 명이 죽을 때 기독교인이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영락교회 청년들 일부가 가입한 서북청년회는 제주도로 건너와 좌익은 사탄의 세력이라는 명목으로 주민들을 끌어다가 발로 밟아 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고, 불 질러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항복한 제주도민들과 사회주의자를 변별하는 일에 제주도 목사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사람들 죽어가는 일에 기독교인들이 참여했고, 그 결과 제주도에는 전국 다른 지역에 비해 기독교인 수가 현저히 적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잔혹한 제국주의의 군화발에 희생된 군대귀신 들린 사람을 치유해주셨습니다. 제국주의에 기생해서 부를 늘려간 사람들에 의해 거부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가 예수의 편에 서지 않고 제국의 편에 선 것이 과연 옳은 일이겠습니까?

비단 <제주 4.3 사건>뿐이겠습니까? 지금도 불의하고 부당한 권력 구조 하에서, 불공평한 사회 질서 하에서 억울하게 몸을 빼앗기고, 가족을 빼앗기고, 자유를 빼앗기고, 영혼을 빼앗긴 채, 억울하고 원통해서 돌을 들어 제 몸을 치는 일 밖에 할 수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역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보금자리를 잃고 쫓겨나는 영세민들이 있습니다. 군사시설 때문에 정신적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조조정 때문에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 동료와 가족들이 자살하고 엄청난 트라우마 속에 살아가는 해직 가족들이 있습니다. 내일은 416일입니다. 아직도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불분명하고, 왜 구조를 한 명도 못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세월호 304명의 희생자 가족들이 그간 여러 사람들에 의해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며 삶을 부지해 나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는 바다 건너 또 다른 거라사인의 지역으로 가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시려고 합니다. 누가, 그들의 영혼을 옭죄고 있는 쇠고랑을 풀어줄 수 있겠습니까? 누가,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폭압의 기억을 씻어줘야 합니까? 누가, 가난하고 버려진 그들의 손을 잡아 줄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에 의해 신천지 취급당하고, 교회를 선동하는 사람 취급당하고, 그래서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여러모로 돌보아야 할 시기에 책임을 다 하지 못하여, 황금 같은 시기에 정신적으로 소모된 아픈 경험을 가진 우리 이삭의우물공동체가 이 일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애지중지 키우는 돼지 몇 마리 잃을까 두려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쫓아내는 거라사인이 되어선 안 될 일입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우리 시간을 내어 동참하십시다. 때론 물질로 동참하고, 마음으로 응원하십시다. 이 시대의 아픔을 가진 이들 곁에 서주어, 주님의 거라사 사역에 동참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파블로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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