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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실의 내적여정

겨울나무 똑바로 바라보기

larinari 2007. 11. 1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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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잎이 다 떨어져가는 겨울나무가 유난히 싫다.
베란다 창 앞에서 지난 여름 나를 행복하게 해줬던 대추나무 잎이 하나 둘 지고 있다.
올 해 가을을 보내면서 확실히 알았다. 내가 겨울나무를 싫어할 뿐 아니라 사실은 겨울의 헐벗은 나무를 두려워하는 구석이 있다는 것 말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지는 잎을 바라보면서 기분이 그럴싸하게 좋았던 기억은 현승이를 임신하고 있던 그 가을 뿐이었다. 그 때 다니던 남부복지관 음악치료실 창에서는 아주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것이 보였었는데 그 나무들의 하나 둘 앙상해지는 것을 보면서 희망이 차올랐다.
'빨리 저 잎이 다 지고, 이 눔의 겨울이 후딱 가고 새 잎이 돋아나야 내가 아기를 만날 수 있다. 암튼 빨리 빨리 저 눔의 잎이 다 져버려야 한다' 이렇게 말이다.

그 외에는 오는 겨울을 자연의 섭리려니 하고 기쁘게 아니 최소한 자연스럽게 맞아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분명 나는 겨울을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어했다.
날씨가 추워지고 나무들이 앙상해지기 시작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겨울이 피부로 느껴진다. 희한하게 차거워지는 날씨와 함께 마음이 스산해지는 것은 81년도 겨울이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단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12월 때문에 내가 겨울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에니어그램 7번 유형인 나는 '고통이 없는 삶' 살기가 지고지순한 삶의 목표라 한다. 이것은 MBTI의 ESFP인 나를 알아가면서 충분히 인식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재미' 가 없으면 별로 열심히 하지 않고, '지루'하면 도망쳐 버리는 습관도 알게 되었고 참는 훈련도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깊이 통찰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에니어그램이 MBTI와 조금 다른 접근이라 한다면 바로 각 유형의 죄에 대해서 설명한다는 것이다. 7번 유형은 고통을 무조건 악덕으로 여겨서 멀리하고 회피한다는데 '나는 이미 그 정도는 알고 극복한 상태야'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 블로그에 댓글을 달면서 반복적으로 느낀 나에 대한 새로운 인싸이트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겨울나무를 보는 내 시각을 객관화하는 이런 저런 계기로 인해서 '고통에 직면하지 않는 쾌락주의자 7번 으로서의 나'를 좀 더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해피앤딩이 아닌 영화는 보지 않는다. 고등학교때 영화 <애수>를 보고 거의 한 달 간은 정신을 못 차리고 살았던 경험이 있다. 슬픔에서 헤어나오질 못했었다. 그리고 결심한 것 같다. 비극은 보지 않는다! 내가 몸이 아파도 마음이 아파도 엄살이 심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바인데.....아픈 것에 대해서 오버를 하고 엄살을 떨어 놓으면 그 고통이 엄살 떤 만큼은 아니기에 더 견디기가 쉽다는 정신적 메카니즘이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내 엄살은 고통의 현실을 보지 않으려는 회피의 메카니즘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주일인가 학교를 안 갔었는데 장례식을 마치고 처음 학교에 갔던 날에 대한 기억이 분명하다. 분명히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픈 맘 말로 다 할 수 없는데 내가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보고는 웃었다. 어쩔줄 모르는 친구들을 보고는 웃었을 뿐 아니라 그 날 학교에서 밝게 지내고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다. 슬픈 때 슬퍼야 하는데 슬픈 얼굴을 하지 못하거나 안하는 것이엇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고통에 대해서 좀 더 정직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에니어그램이 주는 첫 번째 선물이 이것일지 모르겠다. 고통을 오버하지도 말고 회피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맞짱 뜨는 훈련 말이다.

올해에는 점점 더 쓸쓸해져가는 겨울나무를 오래 바라보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 슬프다 슬프다 하면서 엄살 떨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도 들이고, 겨울이 휙 지나가서 새봄의 새순이 나는 때만 그리지 말고 겨울을 있는 그대로 견디는 연습을 좀 해봐야겠다.
16 Comments
  • 프로필사진 BlogIcon 털보 2007.11.13 17:53 겨울나무랑 무슨 인연인지 저는 블로그에 겨울나무에 대한 무수한 얘기를 썼더군요. 그 중에서 다섯개만 트랙백으로 보내요. 봄나무나 여름나무에 대한 얘기는 없고 온통 겨울나무 얘기였어요. 저도 처음 알았네요.
    간사해서 그런지 그냥 겨울엔 겨울나무 좋아하고, 봄에는 봄나무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 ^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7.11.13 19:32 제가 어제 올리셨던 글에 댓글을 달고 거기에 다신 댓글을 보면서 생각이 확 정리가 된 듯 해요.
    겨울엔 겨울나무를, 봄에는 봄나무를 좋아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처음 배운 것처럼 말이죠.^^ 오늘 올리신 글의 시지프스 신화(예전에 읽고 생각이 많았던 얘기였거든요) 얘기도 한 몫을 했구요. 다섯 개의 글을 읽고 겨울나무를 들여다보면 이번 겨울의 미션이 훨씬 쉬워지겠는걸요. 맨날 제가 두 분께는 감사하다는 말씀만 드리는 거 같은데, 감사해요.ㅎㅎ
  • 프로필사진 BlogIcon ♧ forest 2007.11.13 19:44 어휴~ 트랙백 많이 쏘았네요.
    트랙백이 이럴 때 참 좋구나~^^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7.11.13 20:07 신고 겨울나무에 관한 이렇고 좋은 글과 사진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니 트랙백 덕이잖아요.^^
  • 프로필사진 hayne 2007.11.13 18:35 오랜만에 화면이 바뀌셨습니다^^
    겨울나무, 7번 에니어그램 덕분인지요...

    근데, 이 사진 너무 멋있다.
    앙상한 나무가지들의 형태와 어스름한 하늘색이 진짜 근사하게 어울려.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7.11.13 19:34 오늘 아침에 그냥 팍팍 막 찍었어요. hayne님 사진 찍으신 걸 보니까 확실히 예술적 감각이 있으신 분들은 전혀 배우지 않고 하셔도 사진이 점점 예술적이 되어가시더라구요. 저는 그게 안 돼요.^^;;
    저 사진은 기냥 생각없이 찍다가 그 중 나은 거 하나 골랐더니....ㅎㅎㅎ

    주말의 피로함이 좀 가시기 시작하는 때가 화요일 오전인 것 같아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 forest 2007.11.13 19:43 정말 겨울나무 사진 멋져요^^

    아직도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참 많네요.
    배우고 익혀서 갈켜주세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7.11.13 20:08 신고 마음에 관한 공부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는데 끝이 없는 것 같아요. 하긴 세상에 그 어떤 걸 배우는 것이 끝이 있을까요.^^
  • 프로필사진 h s 2007.11.13 22:45 지난 날의 아팠던 기억은 간직하지 마세요.
    간직했다가 꺼내면 다시 마음이 슬퍼지니까요.

    그리구 겨울도 나름대로 매력이 많이 있어요.
    올 겨울에는 겨울의 매력을 찾는 겨울을 보내 보시구.... ^^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7.11.14 09:55 네~ 겨울의 매력을 좀 찾아서 즐겨보려구요.^^
  • 프로필사진 신의피리 2007.11.14 16:45 아직 가을이야 --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7.11.14 18:35 내 마음은 겨울이야 --
  • 프로필사진 BlogIcon 유나뽕!!★ 2007.11.14 19:58 ㅎㅎㅎㅎㅎㅎㅎ도사님 리플 센스!!!ㅋ

    저도 겨울이 싫어요-_ㅠ...
    흠....저는 제가 생각하고 있는걸 이렇게 사모님처럼 글로
    정확하게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거 같아서 답답해요 ㅎ
    말하다보면 횡설수설 하는것 같고...ㅎ

    그래서 패~~~스!!!ㅋ 춥고.감기들고 아프고..한게 싫어서!!!!훔!!

    애니어그램에서 자기가 어떤타입인지는 검사를 해서 아는거예요?
    아니면 걍 읽어보고 내가 이타입이다<==라고 생각하는거예요?;;

    공부해야징 -_ㅠ...무식쟁이 ㅠ난 어떤타입일라나~..훔,,
  • 프로필사진 나무 2007.11.14 22:15 저도 애니어그램에 관심이 아주아주 크답니다~~~~
    정식으로 저도 한번 할 수 있었으면...
    사모님~~~ 담에 저도 정확한 유형을 알수 있는 기횔 주세요 ^^
  • 프로필사진 BlogIcon 유나뽕!!★ 2007.11.14 23:15 저두요!!!!!!>ㅁ<///!★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7.11.15 18:24 내년에 지도자 과정 공부를 해야 감히 넘의 유형에 대해서 논할 수 있을 것 같은데...쫌만 더 기다리세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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