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없는 아이는 고아, '부모 없는 아이'라는 자기 인식은 고아 의식이다. 이승우 작가의 말을 다시 빌자면, 고아 의식은 남과 다르다는 의식이기 때문에 숨겨야 하는 것이다. 즉, 고아 의식을 가진 아이는 고아가 아닌 척하기 위해 애쓰게 된다.

 

내적 여정으로 마음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며 확신하는 바, 사람의 지나친 노력은 모두 고아 의식에 기인한다. 온전히 믿을만한 아버지와 엄마가 있다면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자로, 자기 자신이 되어 살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부모는 세상에 없다. 있는 그대로 사랑 받음을 기대하고 세상이 태어났는데, 그 기대는 생애 초기부터 어긋난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먹여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보듬어주는 부모는 없다. (라고 아이는 인식한다) 뭐라도 해야, 생존 욕구든 안전 욕구든 심지어 애정 욕구도 채워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고아 의식'이란 단지 부모 없음이 아니라 부모 없는 아이처럼 온전히 돌봄받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결핍감이다. 물리적으론 살아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부재하는 부모가 대부분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며 뼈를 깎아서 해 준 사랑을 셈하는 부모가 있다면, "아빠(엄마)가 준 건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 억압이었어요. 아빠가 주고 싶은 걸 준 거잖아요. 엄마가 하고 싶어서 한 거잖아요. 내가 원했던 건 그게 아니라고요." 하며 울부짖는 아이가 있으니. 부모가 있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있어도 부재하는 부모의 존재가 상실의 시작이다. 돈, 일, 애정, 인정과 칭찬, 분노, 지식, 종교 등 어떤 것에든 중독되어 있는 미성숙한 존재라면, 진정한 의미의 어른으로 아이를 돌볼 수 없었다면 그의 자녀는 실존적 고아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실존적 고아이다.

 

그러니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지킬 힘을 키우려 할 것이다. 내 동생에게 자기를 지키는 힘은 그야말로 물리적인 힘. 그것이었다. 내가 알기로 동생보다 싸움(맞다, 주먹으로 치는 그 싸움이다)을 잘 하고 센 인간은 없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몇 년 후, 사춘기 시절부터 키가 쑥쑥 크고 어깨가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아버지처럼 기골이 장대해졌다. 강한 아이가 되었다. 싸워서 이기고, 동네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 아이로 이름을 날리고, 소위 비행 청소년이 되었다.

 

아버지 없는 모든 아들이 그리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빈 자리』라는 쓴 도널드 밀러가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는 방식은 내 동생과 달랐다. 아버지를 대신할 권위자, 권위자의 인정과 칭찬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만난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빈자리라는 고백으로 쓴 책이다.

 

동생은 스스로 제 힘을 키웠다. 싸우고 이기고, 그 끝은 합의를 봐야 하고. 엄마와 함께(누나라는 이름의 또 다른 어린 엄마가 되어) 뒷수습을 했다. 경찰서에도 갔고, 합의금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어쩐지 그리 힘겨운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비행 청소년이란 느낌보다 그냥 죽이 잘 맞는, 밤늦도록 끝도 없이 얘기를 나누는 동생일 뿐이었다.  

 

비행 청소년이고 사고뭉치였지만, 역설적으로 엄마와 내겐 든든한 힘이 되기도 했다. 늙은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 해도 주지 못한 안전을 동생이 보장해 주었다. 동네 골목에서 추행을 당해도 얼른 집에 있는 동생 불러내면 그 자리에서 속시원히 해결해 주었다. 집 앞에 와 진을 치고 밤새 기다리는 등, 스토킹 하던 동기 남자애를 정리해준 전설 같은 에피소드도 있다. 그렇게 줄줄이 딸려 나오는 해결사 역할 동생에 관한 기억이 많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동생은 내게나 친척들에게, 제 친구들에게 해결사이다. 불의의 냄새를 맡는 잘 발달된 육감과 몸을 아끼지 않는 싸움꾼 기질을 결국 교회 개혁을 위해 불태웠으니, 엄마 말로 하면 '이게 다 주님의 은혜'다. 

 

모르지 않았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늙은 엄마와 약한 누나를 지키기 위한 무의식적 선택은 힘의 사람이 되는 것이었음을. 그렇게 만들어진 동생의 사회적 자아의 빛과 그림자까지 다 안다고 생각했었다. 동생이 세 아들의 아빠가 되고, 아이들과 관계 맺는 것을 지켜보며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아, 내가 모르는 아픔이구나! 같은 아버지, 같은 엄마였지만 아버지의 부재와 취약한 엄마를 경험하는 방식은 달라도 너무 달랐구나. 동생의 고아 의식이 '힘'으로 보상되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알았고, 마음 공부를 한 이후에는 명확히 이름 붙일 수 있었지만. 그것이 안타깝고 가엾어서 마음을 많이 쏟았지만 닿을 수 없는 고유한 아픔이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동생이 SNS에 올린 글이다. 

시민운동에 온 시간과 마음을 쏟던 시절, 어린 아내와 아기였던 아이들은 방치되어 있었다. 그 일을 접고 재택 해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아빠 노릇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몸으로 놀아줬고 아내 대신 훈육을 담당했다. 큰아들 수현이가 학교에서 '우리 아빠 마음은요'라는 활동을 했다고 한다. 충격이 되고 마음이 아팠다. 유독 내 자식에게만 엄격한 나를 반성하던 차에 애들 학교 <아빠 사랑 캠프>에서 아들에게 읽어 줄 편지를 쓰라고 했다. 쓰면서, 낭독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수현이 뿐 아니라, 어린 시절 운형이에게도 읽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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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아~
아빠가 왜 수현이를 샬롬이라고 부르는지 아니?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이름, 그러니까 태명이 바로 ‘샬롬’이야. 샬롬은 헤브라이어로 ‘평화’라는 뜻인데,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왕 ‘솔로몬’이랑 같은 단어야. 아빠가 수현이 태명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네가 솔로몬처럼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서가 아니야. 그 이름 뜻대로 네 인생이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바랐던 거지.

그런데 얼마 전에 아빠가 네 행복을 깨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 몇 주 전 수현이가 학교에서 활동한 ‘우리 가족의 마음 표현하기’를 봤단다. 아빠를 동물로 비유한다면? ‘사자’, 날씨로 표현하면? ‘태풍’, 맛으로 표현하다면? ‘맵다’. 모두 무섭다는 이유 때문이더라. 그날 밤, 수현이 입장에서 생각해 봤어. 혼이 날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더라.

샬롬아! 미안하다. 아빠가 혼을 내면서 너무 심하게 화를 내는 건 잘못 한 것 같다. 아빠 본심은 그게 아닌데, 그저 우리 수현이를 바르게 키우려고 그런 건데 너에게 상처를 준 것 같구나. 아빠가 다른 아이들에게는 재미있고 좋은 아저씨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정작 아들인 너에게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한 생각이 든단다.

한편으로는 네가 쓴 걸 보고 안심이 되기도 하더라. 아빠가 무섭기도 하지만, ‘부드럽고’ ‘원래는 착해서 진달래’ 같고, 너희들을 ‘사랑해서 빨간색’ 같다는 내용을 보고, ‘아 그래도 우리 아들이 아빠 마음을 알아주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아빠 마음을 알아줘서 고맙다. 할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셨는지 아니? 아빠가 초등학교 4학년, 지금 네 나이 때였단다. 그때는 아버지가 없는 게 부끄럽기도 했고, 다른 친구들이 한없이 부러웠었지.

할아버지는 살아계실 때에도 바쁘셔서 아빠와 시간을 보내신 적이 없단다. 여행을 갔던 추억도, 운동을 했던 적도 없어. 아빠와 함께 목욕탕에 온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 수도 없이 넘어지면서 자전거 타는 법을 혼자서 터득했는데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안 계셨지. 수염이 자라고 나서 면도하는 법을 알려줄 사람도 없었어.

샬롬이가 태어나던 날, 왜 그런지 모르지만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멈추지 않아 수건 한 장이 다 젖을 정도로 울었단다.(역시 왜 그러는지 모르지만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도 눈물이 나오는구나.) 아빠는 그때 다짐했지. 우리 살롬이에게 자전거도 가르쳐 주고, 목욕탕도 함께 가고,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면 같이 좋아해 주고, 면도하는 법도 알려 줄 거라고 말이야.

초등학교 6학년 때이던가? 윗집에 살던 아저씨가 술에 취해 우리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린 적이 있었어. 그때 아빠는 무서워서 이불 속에 숨어 자는 척하고 있었단다. 그 이후로 ‘내 가족을 지키려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결국 아빠는 이렇게 강한 사람이 되었지. 네가 감당할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아빠가 함께 해 주고 방패가 되어 줄게.

앞으로는 힘이 세고 강해서 무서운 아빠가 아니라, 든든한 아빠가 되도록 노력할게. 사랑해.

2015년 11월 7일.
수현이의 샬롬과 행복을 바라는 아빠가.

 

조카들은 어느덧 사춘기에 진입했다. 강해서 무서운 아빠가 아니라 든든한 아빠가 되고자 하는 결심은 아빠의 것이다. 아이들은 제게 느껴지는대로 느낀다. 게다가 사춘기이니 부모가 준 것보다 주지 않은 것에, 부모의 미덕보다 온갖 악덕만 보는 때이다. 힘이 세고 강해서 사자 같고 태풍 같은 아빠의 든든함이 아니라 그 이면을 느낄 것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강해지기로 결심한 아빠의 서사을 이해할 수 없다. 아빠가 없었던 적이 없으니까. 죽음의 강이 덮쳐 기댈 언덕, 아니 발 디디던 지반이 그대로 무너져 없어지는 아침을 맞아본 적이 없으니까. 아마도 넥타이를 붙들고 쩔쩔 매면서 첫 양복 입는 그런 아침도 없을 것이다. 대신 태풍 같은 아빠의 빛이 아니라 그림자를 기억할 것이다. 결핍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고아 의식은 대물림 된다. 

 

동생과 조카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우리 아이들과의 이야기이다. 고아인 채로, 또는 고아 의식을 가지고 부모가 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엄마 돌아가시고 "이제 진짜 고아가 됐네"라는 말이 몇 번 나왔다. 동생과 대화에서도 했던 것 같다. 아직 고아이다. 아직? 아직이라니. 여전히 고아이다. 이렇듯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 내 안에서 아버지 잃은 아이가 우는 날이 있다. 가끔 생떼를 쓴다. 그러면 나는 고아인 그 아이의 울음에 압도되어 어른으로 있지 못한다. 내 아이와 동급이 되어 싸우고 상처를 준다. 어른이 되지 못한 엄마 앞에서 우리 아이들은 고아가 된다. 동생의 말처럼 따스한 말을 우리 딸, 아들에게 건네야 하며 어린 시절 나에게 건네야 한다. 동생은 제 자신에게, 어린 시절의 제게 약함을 허락해야 한다. 

 

고아라 부르고, 고아 의식에 이름 붙일 일이다. 이제 진짜 고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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