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간이 시작된 날, 붉은 꽃 한 송이가 피었다. '크리스마스 선인장'이라 불리는 녀석이다. 정말 이름이 그렇다. 해마다 이 즈음, 핀다고 하여 그리 불린단다. 우리 집에선 '대림 선인장'이라 부른다. 대림절 끝이 성탄절이니 그 말이 그 말이다. 일 년 내내 시들시들 맥아리 없이 보여 꽃 볼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딱 한 송이가 슬쩍 피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웃음이 난다. 아, 진짜 이 주님.... 진짜.


오실 주님, 

오시는 주님,

오신 주님, 

딱 한 송이면 족하다 하시는 거지요?




2년 전 이때, 크리스마스 선인장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어느 날 화분에서 붉은 꽃이 만발 했는데, 너무 놀라 신비체험인 줄 알았다. 대림절 기간이었다. 추운 거실, 노트북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발견했다. 어머, 어머, 어머, 이게 뭐야! 계절에 맞지 않는 꽃이 만발하니, 영락없이 주님이 주시는 위로의 신비체험인 줄 알았다. 자칭 신비주의자, 타칭 이성주의자 남편이 검색하고 알려주었다.  '크리스마스 선인장이래!'


오십견으로 팔을 잘 들지 못하던 즈음이다. 다 접었던 음악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했고, 시집살이 하듯 삼시세끼 밥을 했다. 4,5년 일에서 놓여 쓰고 싶은 글이나 쓰고, 젊은 사모님들 집에 불러 책모임 하고, 영성모임 하고, 간간이 강의나 하며 좋은 세월을 지내고 난 뒤였다. 편한 맛을 본 후라 몇 배 더 힘들었다. 하나님, 이 양반이 나를 편하게 두실 리 없지! 내가 편히 지내는 꼴은 못 보신다고! 


난생 처음 '페이 좀 올려주세요'란 말도 하고, 다시 내 몸보다 큰 키보드 끌고 여기저기 다니기 시작했다. 삼식이가 된 남편의 삼식을 챙겨야 하는 일이 키보드 무게보다 더 무거웠다. 신앙 사춘기는 끝난 걸로 스스로 정리한 뒤라 마음대로 침 뱉고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안 나는 힘을 내어 무거운 짐 번쩍번쩍 들고 다녔더니 기어코 오십견이 왔다. 등도 못 긁고, 옷 하나 제대로 입지 못하는 중 대림시기가 되었다.


아니, 자기 몸보다 더 크고 무거운 키보드를? 하면, 괜찮아요! 이래 보여도 힘은 쎄요! 번쩍번쩍 들고 다니며 1년, 어깨는 짖눌렸다. 내가 괜찮지 않으면 도미노로 무너질 것들이 많아서(많다 여겨서) 늘 그랬듯 체중에 넘치는 짐을 지고 다녔다. 짐보다 더 무거웠던 건 바닥에 깔린 자존감이었다. 꼭 짐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위축이어서 굽은 어깨 더 굽히고 다닌 1년. 오십견 증상으로 더 짐을 들 수도 없던 대림 시기였다. 그 어간 어느 날, 죽은 것 같은 선인장에서 꽃이 만발했던 것. 누가 뭐라든 나는 아기 예수님 그 분이 피운 위로의 꽃이라고 믿는다. 사실.


상황이 많이 달라지진 않았다. 어쩌면 더 무거운 날들이었다. 그 사이 오십견은 갔고, 최근엔 '테니스 엘보'라는 인대염이 와 있다. 이 역시 키보드 무게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소를 시작했고,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생명의 연대를 맛보며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작년 12월 7일에 이사를 했고, 12월 8일에 연구소 첫 개소식을 했다. 딱 일 년이다. 어느 덧 다시 대림시기이다. 단 한 송이의 대림 꽃이 피었다. 심술쟁이 하늘 영감님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더 불평할 힘도 없어 위로의 붉은 꽃 같은 것은 기대도 안 했는데 말이다. 오십견에 오십 송이라면, 테니스 엘보는 한 송이면 된다는 처방입니꽈? 


오신 주님, 

오시는 주님, 

오실 주님,

딱 한 송이로도 당신 마음 알아 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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