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스물 일곱 되던 해 2월.
나는 그 2월을 불안에 떨며 울며 불며 지냈다.
그 때 내 손에 들려 있던 책은 폴투르니에의 <모험으로 사는 인생>.

4년간 다니던 유치원을 그만 두고 분당에 있는 유치원으로 옮기기로 했었다. 월급 더 올려줄테니 그만두지 말라고 설득에 설득을 하던 원장선생님이 소개한 유치원이었다. 2월 중순, 가르치던 아이들 졸업시키고 새로운 유치원으로 가서 원장님을 만났던 자리.
'이번 주일에 교사 엠티 갑니다. 다들 교회 다니는데 1부 예배 드리고 갑니다. 시간 되죠?'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니요!' 하고는 그럴 수 없는 나만의 소신을 밝히고 새로 사람을 구하시라 하고는 나왔다. 이미 교사채용이 다 끝난 2월 말에 더 이상 유치원을 구할 수가 없었다.
나는 우리집 생활비의 절대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고 난 다음 밤마다 불안해서 울었다. 내년 2월까지 기다려야 제대로 된 유치원에 갈 수 있는데...
1년 동안 어떡하나? 엄마한테 미안해서 어쩌나? <모험으로 사는 인생> 읽으면서 감사함으로 또 울었다. 암튼, 2월 마지막주 한 주 동안 중고생 과외 아르바이트 섭외가 막 들어왔다. 당장 그 다음 달 3월 한 달 수입이 유치원교사 월급의 두 배 보다도 많았다. 그로 인해, 대학원 공부도 꿈꿀 수 있었고 나의 또 다른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 직장을 그만두고도 불안함이 없었다.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좀 신경 쓰이는 정도였다. 그리고 욕심도 없었다.

음악치료 파트는 아직 그리 많지 않았고 있다하더라고 페이가 약하다.
달크로즈 하기로 하고 알아보니 적잖은 아이들이 모아질 것 같았다. 망설이던 엄마들 수업 한 번만 보여주면 그 자리에서 하기로 결정을 했다.내가 명색이 음악치료산데 안 할 수는 없고 환경미화로 하루만 하고 나머지 날은 달크로즈만 하기로 했다.

지난 주에 별 기대 없이 파트 음악치료사 구하는데 이력서를 넣었다. 이미 달크로즈 만으로도 내가 짤라야할 형편이라 배짱 튕기면서 인터뷰 갔다. 이게 웬일인가? 원장의 치료에 대한 생각이 나랑 너무 비슷하다. 내 이력과 얼굴을 보면서 너무 좋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근무조건이 딱이다. 무엇보다 산본에 있는 것이어서 일주일에 두 번 (또 다른 하루 짜리 파트를 합하면 일주일에 세 번) 남편과 함께 퇴근할 수 있다.

어찌나 감사한지....돌아오는 길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직장 그만두고 한 달 사이에 너무 적절하게 음악치료 하고 또 그리도 바라던 비장애 아이들 데리고 하는 음악활동을 하게 되었다. 오전 시간 집에서 보내고 오후에만 일하면서도 적정 수준의 수입을 낼 수 있게 되었고다. 달크로즈 해달라고 줄 서 있던 엄마들 배 내밀고 짤라버리고...ㅎㅎㅎ

이제는 정말 일이 이렇게 잘 되는 것만을 가지고 좋지는 않다. 진심으로 이것 때문만으로 기뻐하지는 않게 되었다. 이렇지 않은 날에도 기뻐할 수 있는 믿음을 선물로 받은 지 오래다. 그래도 감사하다. 이렇게 예비하시는 그 분의 손길...

2004/09/22

'그리고 또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샬롬 찬양대 '사랑' 이야기  (0) 2007.07.08
5년만에  (0) 2007.07.08
사표를 던졌습니다~  (0) 2007.07.08
몸치의 꿈  (0) 2007.07.08
망가질 수 있어야 나눔이 되는 것이었다  (0) 2007.07.0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