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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사람

꽃보다 엄마가

larinari 2016.11.01 19:29




꽃보다 엄마가 먼저 시들어간다.


동생네 가족여행으로 엄마는 딸네 여행을 와 있다.

주일 예배 마치고 착헌 김서방이 모시고 왔는데 나는 강의가 있어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엄마의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한 주일 저녁,

채윤이 침대에서 쌕쌕 씩씩 숨을 몰아쉬며 주무시다 내 얼굴을 확인하자 큰 눈을 더 크게 뜬다.

"얼라, 우리 딸, 사랑허는 우리 딸이 왔네. 내가 우리 딸이 너머 보고 싶었어.

얘기 허까? 밖이 식탁이 나가 앉으까? 여기 좀 앉을래?" 격하게 나를 맞아주셨다.


엄마가 오신 첫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부시럭부시럭 엄마 화장실 가는 소리가 나면 정신보다 몸이 먼저 깨서 튀어 나가게 된다.

화장실서 넘어질까, 스위치를 못 찾아 불을 못 켤까..... 걱정이 한둘이 아니다.

양쪽 고관절이 모두 인공이라서인지 밤마다 다리가 아파서 그냥은 못 주무신다고.

한 번씩 따뜻한 물로 다리를 맛사지 해야 한단다.

샤워기로 맛사지를 해드리고, 허브 오일을 발라 드리는데 또 늘 하는 그 소리다.

"내가 이르케 오래 사는 게 죄여. 큰 죄여. 자식들한티 이게 무슨 죄랴......"  


새벽에 오는 메시지나 간혹 잘못 걸려오는 전화에 잠이 깰 때가 있다.

남편은 취침 모드로 해놓고 자라고, 무음으로 해놓고 자라고 하지만 늙은 엄마 둔 심정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밤에 자다 엄마가 어떻게 됐다는 전화가 올까봐 벨소리를 줄이지도 못한다.

엄마가 곁에 와서 주무시면 안심해야 할텐데 더 신경이 곤두 서있다.

이틀을 계획하고 오셔서 모셔다 드리려 했더니 "하루 더 자고 가믄 안 되남?" 하셨다.

내가 잘못 들었나?

"김서방 미안혀서.... 내가 아들 집 두고 왜 딸 집이 가서 살어." 입에 달고 있는 말이다.

동생 네가 어디 가고 어쩔 수 없어야 우리 집에 한 번 와주시는 격인데, 하루 더 주무시겠다니.


"내가 이번이 오믄서 이게 마지막이지 생각혔서. 내가 온제 또 오겄어. 곧 죽을 사람인디."

늙은 엄마 둔 딸은 밤에 휴대폰 무음 전환만 못 하는 게 아니다.

엄마 생신 때도, 명절 때도, 함께 외식을 하면서도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며 스스로 고문한다.

고문이다. 하루 이틀 된 고문이 아니다. '늙은 엄마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 고문'

엄마 없는 세상을 상상하며 하릴없이 흘린 눈물이 얼마던가.


국물은 사골, 반찬은 게장, 후식은 포도를 질리지도 않고 좋아하시기 때문에 식사수발이 쉽다.

이제는 거의 씹지도 못하시기 때문에 게장은 간장만 떠서 드신다.

간장게장의 살을 바르고 짜내서 간장에 섞어서 아기 이유식 만들 듯 했다.

어릴 적부터 우리 식구 모두 좋아하던 박대로 조림을 했는데 가시 하나 없이 살을 발랐다.

그렇게 엄마 반찬은 따로 준비해야 한다. 

할머니까지 다섯 식구 앉아 식사를 하는데 채윤이가 파김치를 맛있게 먹으며 '이 김치 정말 맛있어.' 한다.

나를 닮아 파김치를 좋아한다. 나도 어릴 적부터 파김치를 좋아했다.

대가리 하얀 부분은 먹지 못했다. 엄마가 늘 그 부분을 잘라서 먹고 초록색 부분을 내게 주곤했다.

그 얘길 하다보니 애써 참고 있던 감정이 복받쳤다. 한 달, 두 달이 다르게 시들어가는 엄마.

한때 엄마는 내가 못 먹는 걸 대신 먹어주고, 내가 못 드는 짐을 들어주고, 아픈 내 다리를 밤새 주물러주곤 했는데.


예전의 엄마를 그리며 감상에 젖는 것은 사치이다.

느리게 느리게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고, 꾸물꾸물 일을 보고 나오시는 엄마를 보면 절로 감사의 기도가 나온다. 

귀가 어두워져 '나 니가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겄어' 해도, 이 정도도 다행이지 싶다.

이 정도만으로도 감사하지, 싶다가도 사치스럽게 감정이 복받쳐 속울음을 운다.

속울음을 울다, 이 정도면 감사하지.

시들어가는 엄마를 바라보는 마음의 호들갑을 숨기려니 자꾸만 무뚝뚝해진다.

딸이 고파서 자꾸만 따라다니는 엄마가 식탁 앞에 앉아 말 걸 틈만 노리다 스르르 방에 들어가곤 한다.


꽃보다 엄마가 먼저 시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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