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노조를 탈퇴했다. 지난 주 금요일 노조 수련회가 있어서 노조원들이 모두 회사에 없었다. 인턴 나와있는 대학원 후배가 '선생님은 노조가 아니세요?' 그렇게 묻는데 '응? 아니예요' 라고 대답하는 상당히 쪽팔렸다. 날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없는, 의식없는 아줌마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암튼 순간적으로 낯이 붉어졌다.

나는 87학번이다. 이것 역시 편견이라는 것 인정하지만 나는 87학번 중에 지금 한나라등을 지지하거나 또는 최소한의 운동권적 마인드가 없다면 거의 인간적으로 점수를 주지 않는다. 87학번이 어떤 학번인가? 대학들어가자마자 호헌/호헌철폐/6.10민주화 항쟁...이 소용돌이에 맞딱뜨린 학번이 아닌가? 대체 선배들이 왜 이러나? 왜 저리 삭발하고 돌 던지고 난린가? 웬 회사원들이 저렇게도 거리로 쏟아져 나와 난리인가? 이런 아주 상식적인 질문만을 가지고도 의식화 되기에 충분했다. 암튼, 그래서 87학번은 웬만하면 운동권적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다닐 때 열심히 운동하지 않았을 지언정, 기본적으로 나는 운동권적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걸 차치하고, 그런 맥락에서도 나는 당연히 노조에 대해서 적극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 직장에 입사하고 그런 저런 생각보다는 뭔가 감각적으로 알았다. 여기서는 노조가 힘이라는 것을. 그래서 만약 노조를 들지 않으면 뭐든 불이익이 있을 것 같다는 동물적 감각에서 노조 가입을 했다. 그리고 노조원으로 있는 동안 나는 거의 한 번도 노조원으로 자부심을 갖지 못했다.

여기 노조가 늘 가장 분개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것 아니라 '노조가 열심히 싸워서 임금 올려 놓으면 비노조들이 무임승차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얄미워 죽겠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딜레머 중의 하나는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그 말을 하는 노조원이 크리스챤일 경우는 가슴이 턱 막혀 버린다.
그렇다. 실질적으로 이 사람들은 노조를 위해서 남들이 내지 않는 시간을 내고 공을 들인다. 희생을 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내는 시간과 노력도 희생이라고 말하면 희생이다.

우리 직장에서 노조는 권력이다. 오히려 사측보다 위에 있는 권력이다. 그리고 비노조원들은 언제 갈굼을 당하지 않을까 씹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조금씩은 주눅들어 있는 사람들이다. 노조 집행부의 대부분은 회사의 팀장급들이고....마음으로부터 동의할 수 없는 권력의 덕을 보고 있는 게 싫었다.
결국, 노조에 적응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 안에서 개혁의 노력을 해 보지도 않고 상처만 안고 혼자 나온 초라하고 내 모습이 실망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진짜 쪽팔리다.

오늘 같은 시점에서도 노조가 모여서 분개하는 것은 저 무식하고 이기적인 탄핵이 아니다. 지난 토요일 민주노총이 함께 하고 있는 탄핵반대 100만인 집회가 있던 날에, 여기 노조는 수련회를 갔다 왔다.
ㅜ.ㅜ

2004.03.25.


한선혜 : 쌤, 노조수련회는 토요일 아침 7시30분에 식사하고는 끝났어요. 박은선 선생님을 비롯해서 촛불시위 가신 분들도 계세요. 넘 개탄하지는 마시길.. (03.26 21:20)
한선혜 : 수련회를 미룰 수도 있었겠지만 탄핵정국이 일어나기 전에 우린 노조창립기념일에 기념회 겸해서 수련회 가려고 2월부터 계획해서 숙소예약도 다 끝난 상태였어요. (03.26 21:26)
한선혜 : 선생님 보시기에 부족하고 말도 안되는 부분 많아 안타까우시다는 거 알아요. 선생님이 그 안에서 사람들에게 또는 노조 방향성 때문에 힘들었던 것 압니다. 많은 잘못된 부분들이 있을지라도 지금은 단순히 남부복지관 노조가 아니고 서울경인사회복지노조인 만큼 단순히 우리의 임금과 이득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힘든 사람들 위한 총체적인 일들도 진행되고 있답니다. (03.26 21:39)
김인아 : 언니, 맘이 참 복잡다단 했겟수. 지금도 쉽지만은 않을 꺼고..기도하리다. 나중에 얼굴보며 나눕시다.^^ (03.27 10:21)
정운형 : 매일 출근해서 놀다가 오는 줄 알았더니... ^^ 맘고생이 적지 않구나. 나도 기도할게. 위로가 되면 좋겠네. (03.29 17:25)
김종필 : 여보, 김근태, 정동영.... 유시민, 임종석... 군사쿠테타 정권들의 독재와 싸운 민주화 투사들이 지금 다 어디에 있을까? 민노당? 아니지. 열린우리당에 모여 있더구만. 복지관의 발전과 성장, 직원들의 수평적 공동체, 개개인의 전문성과 성실성 신장... 이 모든 것들을 위해 당신이 할 수있는 건 노조 말고도 많이 있을 거야. 서로 비난하지 말고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다 잘 할 수 있게 존중하고 협력했으면 좋겠네. 복음 안에서 사는 마음좋은 당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 아니겠어? 기도할게 화이팅!! (04.01 13:17)
정신실 : 셋 다 진짜루 기도해줘야해~탱큐!! (04.0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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