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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모음/내 맘에 한 노래 있어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larinari 2017.09.24 19:47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10

 


 

아무렇지 않았던 여자(남자)의 신상이 갑자기 궁금해졌다면 내 쪽에서 막 켜지기 시작한 그린라이트인 경우가 많다. 알고 싶어 하는 것, 더욱 자세한 내용이 듣고 싶다고 몸을 바짝 기울이는 것은 호감의 표현이다. “너에 대해 알고 싶어.” 이것은 사랑의 그린라이트이다. 알고 싶고, 더 잘 듣고 싶어 다가가게 되는 것, 혼자 있을 때도 어느 새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린라이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반면 알았어. 알겠다고!”하는 말은 그에 반하는 뉘앙스이다. 대화나 관계의 단절을 알리는 사인에 가깝다. 누군가에게,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는 궁금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말엔 가능성이 느껴지나 네가 말하는 거 다 알겠어.’라며 쌩 돌아선 사람은 다시 와 내 말에 귀 기울일 것 같지가 않다. 오래 사랑을 지키고 싶다면 여전히 너를 모르겠어. 네 얘기를 들려줘.’ 신비로 남겨두는 법을 배워야 한다. ‘확실히 알겠어!’ 이 얼마나 교만에 찬 위험인가.

 

아 하나님의 은혜로시작하는 찬송가 310장은 강렬한 메타포를 가진 찬송 중 하나이다. 누구나 한 번 쯤은 뜨겁게 불러 본 기억 있을 법한 찬송이다. ‘은혜한 단어로 설명되지 않을 인간의 경험이란 없으니 말이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한 소절 신파조로 부르고 이어지는 후렴의 음악적 반전이 유발하는 감정의 폭발과 감동도 있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의 멜로디는 점핑판을 딛고 솟아오르듯 높이, 멀리, 확신 있게 튀어 오른다. 주먹을 꽉 쥐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부를 수밖에. 그리고 마지막은 한 옥타브 높은 종결음이다. ‘나는 화~악 씰히~ 아 네에에에에!’ 이것은 아멘을 남발하지 않을 수 없는 피날레이다. 그런데 말이다. 어느 주일 예배에서 이 찬송을 부르던 중, 나는 (박차고 나오는) 후렴이 아니라 그 바로 앞의 가사, 그 가사에 마음을 빼앗겼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 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마음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주 언제 강림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 수 없도다

 

이 찬송의 제목을 다시 붙인다면 난 알 수 없도다.’가 좋겠다. 단지 멜로디 진행의 기술로 감정이 불러일으켜진 것이 아니다. 나를 택하시고, 구원하시고, 시시때때 성령의 감동으로 나를 만지시지만, 느낄 수는 있지만 알 수는 없음. 조금은 알 것 같지도 하지만 온전히 알 수는 없음. 더 명확하게 알고 싶지만 그럴수록 더욱 알 수 없음. 알 수 없음의 고백이 확실히 아는믿음의 진정한 시작이다. [난 알 수 없도다 - 나는 확실히 아네] 이 급진적인 도약의 점핑판은 알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겸손함이다. 기실 우리가 믿음에 대해, 사랑에 대해, 소망에 대해 안다고 하는 것이 정말 아는 것인가. 하나님을 갈망할수록, 간절히 찾을수록 그분의 부재가 더욱 크게 다가올 뿐이어서 당혹스러운 것은 나만의 경험일까. 예수님 당신 스스로 숨어서 보시는 하나님’(6:6, 새번역)이라 칭하셨으니 그분은 인간 앞에 부재로 현존하시는 분이다. (그러니 주님, 나는 당신에 대해 오직 모를 뿐입니다!) 불가지(不可知)의 실존을 겸허히 인정하고 얻는 신적인 확신, 이것이 은혜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우리 국토 구석구석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일깨운 책이 있다. 그 책 서문에 나온 문화재,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책을 읽고 가 본 변산의 내소사에서는 보이는 것이 많아 감동이었다. 반면 우리는 아는 만큼 무시한다. 문화재를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감동받을 수도 있지만, 아는 만큼만 보고 보이는 만큼만 가지고 경멸을 할 수도 있다. 역시 안다는 것, 아니 안다고 자부하는 것은 사랑과 성장으로 가는 문을 닫는 일이다. 문화재도, 사랑하는 너도, 심지어 나 자신도, 신앙에 관해서도 나는 잘 알 수가 없다. 때문에 여전히 다가가고 귀를 기울이며 숙고하는 것이다. 청년들의 멘토를 자처하며 무엇을 확실하게 안다고 하는 이들을 경계할 일이다. 내가 기도해보니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다, 확언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인간은 모를 뿐이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시다. 숨어 계신 하나님을 찾을 수 없어 방황하는 날이 많지만 술래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숨은 곳을 다 알고 계신다. 우리가 그것만은 화악~씰히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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