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노구는 얼마나 더 늙어야 그 늙음이 끝이 날까. 얼마나 더 무너지고, 망가져야 우리 엄마의 생기발랄하고 맑고 투명한 영혼을 놓아줄까. 침대에서 낙상하여 골절상 입은 엄마가 응급실을 거쳐 요양병원으로 가셨다. 무너진 엄마의 몸을 마음에 끌어안고 주말을 보냈다. 코로나로 면회도 되지 않는 요양병원에 엄마를 (가둬) 두었다. 지난주와 다름없이 유머 감각과 자존심이 살아 있는 엄마의 정신과 맑은 영혼이 노구에 갇히고 노인병원에 갇혔다.

 

응급실 침대에 덩그러니 놓인 엄마의 몸은 사람 몸 같지가 않았다. 이동 침대로 옮겨져 촬영장으로 끌려가고, 잠시 누웠다 피를 뽑히고, 또 무슨 검사를 하고. 100년 가까이 버텨온 엄마 몸이 혹사당하는 걸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살살해주세요, 살살, 살살이요......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피를 뽑아가고, 나무 같은 몸을 옮겨 촬영장으로 끌고 가는 사람들이 엄마의 몸을 본다. 몸만 본다. 안면골절로 멍들고 부은 얼굴을, 마른 나무처럼 뻣뻣한 다리를, 주삿바늘 꽂힌 메마른 팔과 태초부터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은 주렁주렁 달린 주사액을 본다. 늙도록 늙고, 망가지고 무너진 몸만 본다. 그 몸에 그렇게 또렷한 마음과 생각이, 빛나는 영혼이 담겨 있는 줄 모를 것이다.

 

나는 넘어진 건 생각이 안 나는디, 뼈가 부러졌단다.

아푸지. 여기 얼굴이 젤 아퍼. 손도 아푸고.

하이고, 병원비는 어쩐다니......

고맙다. 복 받어라......

 

요양병원에 입원절차를 밟고 돌보는 분에게 부탁할 말은 이것이다. 정신이 맑으세요. 자존심도 강하시고요. 말씀을 조심해 주시면...... 무너진 엄마의 몸을 보는 사람들이 그 부탁을 귀담아들을 리 없다.

 

마흔다섯, 이미 적잖이 늙은 몸으로 나를 낳았던 엄마는 병원에 갇히고. 마흔다섯 엄마의 몸에서 태어나 뼛속 칼슘을 다 뺏어 먹고 자라던 나도 꽤 늙었다. 그때의 엄마보다 한참 늙었다. 주말을 눈물로 보낸 월요일, 생일을 얼마 앞둔 월요일이다. 나를 낳은 엄마의 몸은 무너져가는데, 엄마 몸에서 태어난 날을 축하하는 생일선물을 사 주겠다는 남편을 따라나섰다. 내친김에 전부터 한번 가 보자 했던 어느 카페에 들렀다. 카페는 호텔 안에 있었고, 호텔은 하필 봉안당이었고, 또 교회였다. 교회 이름은 부활교회’. 커피 마시고 한 바퀴 걷자던 발걸음이 부활교회까지 닿았다. 커다란 십자가 앞에 앉으니 잠시 잊었던 엄마의 노구가 다시 생각났다. 쇼핑하고, 커피 마시며 희희낙락하던 마음이 하릴없어졌다. 넋두리 같은 기도가 아무렇게나 새어 나왔다.

 

전화벨이 울렸다. 조카 J였고, 할머니 걱정이었다. 요양병원으로 가실 게 아니라 큰 병원으로 가 검사를 더 해보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연이어 올케언니와 통화했다. 어머니 걱정이었다. 할 수 있는 것 최대한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방금 '부활교회' 커다란 십자가 앞에 앉아 내가 드린 기도를 알면 기겁할 일이다. 착한 딸이라면 할 수 없는 기도를 했다.

 

하나님, 이제 괜찮아요. 제 슬픔은 제가 어떻게 해볼게요.

엄마의 영혼 저 낡고 무거운 육신의 장막으로부터 해방해 주세요.

 

언니, 조카에게 말하고 싶었다. 더 좋은 병원이 아니라, 집으로 모시고 싶다고. 그날 응급실에서 본, 짐짝이 된 엄마의 몸을 말해주고 싶었다. 면회도 하지 못하는 병원이 아니라 집, 엄마 방, 엄마 침대에 누워 계시면 좋겠다고.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는, 무엇보다 빛나는 영혼을 가진 엄마 몸을 그대로 받아주는 엄마 침대로 모시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응급실로 달려가던 그 밤, 엄마 몸을 보고 오던 길 통곡하며 했던 기도를 남몰래 자꾸 하게 된다.

 

하나님, 저 이제 괜찮아요. 엄마의 빛나는 영혼을 해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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