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어려운 수학문제가 있다 치자. 오래 고심한 끝에 이 문제를 푸는 나만의 노하우를 발견했다. 긴 시간, 긴 사투 끝에 터득한 방법이다. 내가 알아냈다, 너한테만 가르쳐준다, 며 여기저기 떠벌이며 다닌다. 책도 써서 출간했다. 어떻게 그걸 알아냈냐며 부러워도 하고, 칭찬도 하지만 방법을 배우는 데는 그다지 관심들이 없다. 워낙 어려운 문제라 손도 대지 않겠다는 사람도, 문제가 어려운데다 팀을 이룬 짝꿍이 둔하다는 식으로 투덜거리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내가 풀어낸 방식이 나한테는 쉬운데 다른 뇌구조를 가진 사람들에게 일반화 할 수는 없나 보다. 에라~ 나나 잘하자, 하는 식으로 시들해진다. 그러나 떠벌이기를 멈추지는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뇌 구조가 비슷한지 유난히 잘 알아듣는 사람을 만난다. 이 문제 어려웠죠? 어차피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진짜 안 풀리는 지점에서 이 공식, 이 공식 이렇게 써봐요. 어, 알아듣는다! 잘 알아듣는다. 게다가 내 해법에 다른 아이디어까지 제공한다. 아아!

 

시중에 나와 있는 성격유형 도구로는 웬만하면 다 정반대로 나오는 남편과 마음 맞춰 사는 일이 참으로 난해하지만 풀어가는 재미가 있는 수학문제 같은 여정이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공감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 I-message 화법, 이런 걸 대놓고 써보진 않았고 갈등이 생길 때마다 그때그때 어떻게 어떻게 대화하고 기도하며 잘 넘어왔다. 한고비를 넘어 남편을 이해하게 될수록 남편에게 비친 나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다름 아닌 마음공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름대로 터득한 부부생활에 대한 설교꺼리가 무궁무진하지만 아무 데나 들이밀지 말자는 마음이다. 위의 비유가 그런 얘기다. 그런데 어제 만난 커플은 '척하면 착'이고, '어하며 아'여서 통하는 느낌이 짜릿했다. 젊은 커플 앞에서 결혼 17년 차 목사님 부부가 신나게 서로 디스하고, 디스를 당하면서 좋아라 낄낄거렸다. 늦게 집에 들어왔던 채윤이가 아침에 이러더라니까. '엄마, 어제 엄마 아빠 엄청 큰 소리로 웃는 거 골목까지 다 들렸어'   

 

연애와 결혼에 관한 강의를 하고 다니지만 '이 강의 하나로 이들의 연애나 결혼이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회의감이 있다. 어제 같은 대화를 하고 나면 우리가 살아온 날들이 꽤 자랑스러워지고 충천하는 자신감이 회의감을 콱 눌러버리기도 한다. 사실 요 며칠 남편이 미워지는 사이클이었는데 젊은 커플 앞에서 '장소팔 고춘자 식 만담으로 디스하기'를 하고 났더니 급 사이클 전환이다.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내게 남편이 '스파게티 해. 스파게티' 자꾸 이런다. 뭐라? 스파게티? 주부 9단이며 요리의 신인 내가 자신 없는 메뉴가 둘 있으니 스파게티와 나물인데 말이다. 채윤이 표정과 말투 그대로 '뭔 똥소리야?' 몇 번 무시했는데도 계속 '스파게티 해'한다. 무슨 심보야? 그럼 스파게티 한번 해 봐? 하는 순간 얼마 전에 홍제동 수진 여사가 가정교회 모임에서 했다는 냉 스파게티 생각이 나서 도전했다. 감자 수프도 만들고 마늘 바게트도 만들지는 못하고 엄선하여 샀다. 그렇게 신메뉴 탄생한 것이 바로 저 위의 비주얼 장착 샐러드 스파게티. 남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구나, 무식한 말이라도 일단 듣고 봐야겠구나, 싶었다. 아아, 그게 아니라 무슨 계시 같은 걸 받은 걸까? 갑자기 이렇게 고백하면 푼수 같아 보이겠지만, 김종필과 결혼하길 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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