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는 요리를 하든,
요리책을 찾아서 하든,
어디서 한 번 먹어보고 하든,
생전 처음 듣도 보도 못한 요리를 만들어보든....
닥치고 요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냄이다. 라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오늘 저녁 무렵까지 거실에는 저런 풍경이었다.
상이 깔리고 상보가 덮이고 '자 이제 채우보라구!' 하면서 떡 버티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막막했다. 저녁 6시 까지 뭔가를 먹게 해놓아야 한다! 미션, 미션 파써플!!






몇 해 전 내 생일에 어머니께서 안마기를 선물로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더랬다.

'에미 선물이고 애비 피곤하고 근육이 뭉치고 그럴 때 하라고 해라'
일정 정도 섭섭하고 한편 이해도 되는 선물과 선물의 변에 대해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오늘 어머니 생신을 집에서 차려드렸다.

생각해보면 그 때 어머님 말씀을 그대로 돌려치기 해도 좋으리라.
'어머니, 어머니 생신상이구요.... 애비를 위해서 준비했어요'
텅 비어 식탁보만 깔린 허전한 상처럼 내 마음도 그랬다.
10년 넘는 결혼생활 동안 내게 '사랑'을 새로 가르쳐준 시어머니와의 관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시어머니께 드릴 것이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드릴 사랑이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다. 더 정직하게 말하면 드린 사랑이 많다는 자부심만 있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요즘에는 마음이 텅 비어버렸다.
이런 내 마음을 알고 있는 그 간의 내 행적도 알아주고 말할 수 없이 고마워했던 남편을 바라보는 마음이 아프고 짠했다. 텅 비어버린 내 마음에 섭섭해할 만도 한데
'당신이 그 동안 내 몫 까지 다 하느라 애썼지. 당신한테만 맡겨놓고 난 부모님께 너무 무심했지. 내가 잘 할께. 당신은 마음으로 자유롭게 해'
이러는 남편을 위해서 어머니 생신상을 차렸다.


검은 비닐봉지에, 스치로플 팩에, 여기 저기 담겨진 야채와 재료들이 어느 새 먹을 수 있는 모양을 갖춰가는 게 신기하다. 바로 내 손이 닿아 그렇게 되다니 과연 마이더스의 손이 아니던가.
접시에 처음 담기는 것들은 밋밋하다. 그저 두부일 뿐이고, 그저 볶아놓은 버섯일 뿐이다.







식사시간이 임박해오면 밋밋하던 접시들에 소스가 얹어지고 짝을 이루는 재료들이 더해져 색과 맛의 조화로움이 생긴다. 그렇게 음식에도 생기가 돈다.
오래 끓인 미역국이 뽀얗게 진국으로 우러나고,
무르익은 고기가 후두두두 먹기 좋게 부서진다.


불과 서너 시간 만에 빈 접시에 생기 나는 음식이 놓여지고,
상이 차려져 풍성해지는 것처럼 마음의 길도 그랬으면 좋겠다.

손목이 아프도록 재료을 씻고 썰고 준비하고 익히기만 하면 금새 풍성함을 채워져 내 사람들과 나눌 것이 넉넉해졌음 좋겠다. 허나, 마음의 길은 그러하지가 않다.





맛있게 식사를 하셨는 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님은 다잡아 먹은 내 마음에 다시 한 번 생채기를 내고 가셨다. 아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애써 생일상 차린 사랑하는 막내 며느리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신 적이 없으시다. 어머님은 그런 삶을 살지를 않으셨다.
내 안에 부딪혀 올라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부유물들이 내 자신에게 상처를 냈다. 아니다. 상처 준 사람 없이 받은 사람만 있을 수 있나? 나 역시 그런 삶을 살지 않았다.
모르겠다. 요리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냈는 지는 몰라도  결혼 13년 차 며느리 나는 오늘 마음의 잔치에서는 아무것도 요리해내질 못한 것 같다.


그래도 필요 이상의 자책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음식은 한 번 해서 먹어치우면 끝이지만, 기껏해야 '그 날 그거 맛있었어' 정도의 기억으로 남아주면 최고지만 마음의 길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길은 느리고 길어서 단 번에 해치울 수 일이 아니니까.





다른 어떤 날보다 기도가 하고 싶어진다.

어머니와,
어머니와 나를 동시에 사랑하는 남편과,
나와 동병상련의 또 다른 며느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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