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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마음의 환대

MSG보다 더 나쁜 걸 넣어 만든 음식

larinari 2008. 3. 30.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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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주일 간은 턱이 아파서 죽 2인분으로 이틀을 때우는 식으로 식사를 하고,
한 며칠은 사골국이 생겨 거기 말아서 후루룩 마시는 것으로 연명하다가,
턱은 나졌지만 몸에 에너지가 없어서 요리의 신이 도통 강림하시질 않아서 용가리 치킨 한 봉지를
거의 매끼마다 먹여서 일주일만에 다 털어 버리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에 남편이 올라왔습니다. 남편이 이번 주 설교실습이 있어서 피를 말린 것 같고,
개학하고 2키로나 빠졌다는 말에 바로 요리의 신이 오시더만요.

언젠가 트럭에서 튼실한 냉동낙지 한 봉지를 6000원에 팔길래 냉동실에 얼려 놓았었죠.
그걸 꺼내서 철판낙지 볶음 맛있게 해서 금요일 저녁을 먹었습니다.
예정됐던 목장모임이 취소된 토요일 저녁.
저녁 준비하기 힘들어 하는 걸 눈치 챈 도사님이 '기냥 뭐 시켜먹자'고 하는데 나도 먹어야겠고,
애들도 먹여야겠고해서 빗 속을 뚫고 두메촌까지 걸어가 고기를 사다가 보쌈을 했지요.
수퍼에 갔더니 절인 배추까지 팔고 있어서 무채김치 만들고 콩나물 국까지 끓여서 제대로 '배달 온 보쌈' 필을 냈습니다.

금요일도 토요일도 도사님은 일주일의 피로가 몰려오시는 관계로 오후 낮잠을 주무셨는데요.
저녁 식사 준비를 해놓고 '일어나요. 일어나요' 하는 것이 어찌 그리 마음을 상하게 하는지.
또 일어나셔서 정신을 챙기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시는 분이라 식탁의자에 앉아서 한잠을 정신을 고루고 계셨지요.
음식 만든 저는 비오는데 장보러 나가고 무거운 걸 들고 와서 이것 저것 짧은 시간에 만드는 것에
완전 '희생정신에 자기도취' 되어가지고 엄청난 칭찬과 감동의 도가니탕이 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지요. 물론 9년을 살아온 사인데 '엄청난 칭찬과 감동의 도가니탕'은 늘 요리를 하면서 상상 속에나 있었던 일이지만요.
아~ 어제 저녁은 주무시고 나오셔서 사력을 다해서 고기 삶고, 무채 무치고, 콩나물국 끓여서 차려놓은 식탁을 보시자마자, 대뜸 하시는 말씀이 '어우~ 왜 이리 많이 했어?' 하십니다. '이야~ 맛있겠다. 이걸 언제 다 했어' 이 정도는 원래 기대를 안하구요.  '그냥 시켜먹자니까 힘든데 뭘 준비했어?' 뭐 요 정도 대사는 쫌 기대를 했지요. '왜 이리 많이했어? 알았어. 많으면 내가 다 먹지 뭐' 하는 심정으로  빈정이 확 상해가지구 애꿎은 보쌈만 잘근잘근 무지막지하게 말도 안하고 씹어 줬네요.

오늘 차분히 생각해 보니, '정신실 그만 할 때도 됐는데' 싶어요. 남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남편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지 식대로 사랑이랍시고, 희생이랍시고 해놓고는 지가 원하는 방식대로 돌려주지 않는다고 삐지고. 아~ 이거 진짜 그만할 때도 됐는데.

생각해보니 이번 두 번의 요리는 가족에 대한 사랑보다 나의 요리와 나의 주부로서의 고귀한 희생정신에 도취되어 '사랑'이라는 조미료가 거의 들어가질 않았네요. 완전 '자아도취, 자아팽창' 거기다가
약간의 '분노'까지 첨가된 독이 든 요리였어요. 어쩐지 보쌈 먹고 났더니 완전 마음에 벌레가 여러 마리가 기어다니고 난리가 났더라.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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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Comments
  • 프로필사진 hayne 2008.03.30 21:56 난 왜 저 낙지볶음은 안하게 돼지? 하면 다들 좋아할텐데.
    우리집은 '엄청난 칭찬과 감동의 도가니탕' 같은거 잘 나오는데.. 또 그만큼 '엄청난 실망과 품평의 도가니탕'도 마다하지 않거든. 어쩌겄어....
    담엔 조금만 해~ 많으면 부르든가 ㅎㅎ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8.03.30 22:37 신고 그러게요. 제 팔자려니 하고 살아야지 어쩌겠어요.
    저게 보쌈이다 보니까 기원님 보쌈 실력을 아니깐 웬만해서 부를 수가 있어야죠.ㅎㅎㅎ
    낙지볶음 해보세요. 베스코아에서 한신상가로 가는 다리 끝에서 샀어요. 6000원인데 완전 실한 낙지가 여섯 마린가 그랬어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myjay 2008.03.31 01:31 흠..심야에 여기는 들어오지 말아야겠군요.
    뭔가를 먹어야 할 것 같은 강한 포스가.ㅜㅜ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03.31 09:34 밑에 있는 보쌈은 며칠 전 myjay님 블로그에서 점심식사에 삼겹살 수육이 나왔다는 그 얘기를 읽고나서 선정된 메뉴인 것 같아요. ㅎㅎㅎ
  • 프로필사진 BlogIcon forest 2008.03.31 08:44 낙지도 보쌈도 너무 먹음직스러운걸요.
    저 두개 다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요리라 제가 아주 좋아하지요.
    그리고 제법 시켜먹는 요리 수준으로 예쁘게 장식하시공~
    비오는 날 장봐서 저렇게 준비하는 건 요리의 신만 할 수 있을걸요.^^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03.31 09:35 마감하셨군요.
    forest님 바쁘신 기간에는 팬들이 너무 아쉬워 하는 것 같아요. 젤 아쉬워 하는 왕팬은 여깄구요.ㅎㅎ
  • 프로필사진 h s 2008.03.31 09:02 글쎄???????
    왜 그럴까?
    저도 음식을 먹을 때 맛있어도 말을 안하고 걍 속으로만 맛있다.라면서 먹다가 아내에게 한소리 듣기가 일쑤죠.ㅋ

    laranari님은 9년이나 되었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30년이 넘었는데 아직두 그런 버릇이 안 고쳐지고 있어요.ㅠ ㅜ
    남자들이 각성을 해야 되는데 아내들도 걍 그려러니~~하세요.ㅋㅋ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03.31 09:37 저는 이제 맛있다는 반응은 그러려니 하고 기대를 접은 거 같은데... 머리로 다 알아도 쉽질 않네요.
    해송님이 30년이시면 저희는 40년 돼도 어렵겠는걸요.
    ㅎㅎ 진짜 마음을 비워야겠다.
  • 프로필사진 h s 2008.03.31 13:36 ㅋㅋ 오늘 오전에 아내가 열무김치를 담갔는데 점심에 그 김치를 먹다가 갑자기 여기 생각이 나서 "와~! 이 김치 맛있네~!"했더니 막 웃으며 "오바야,오바~!"하는 거예요.
    왜? 그랬더니 인상에 딱 쓰여 있다며 웃드라구요.참 나~원!^^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8.03.31 14:10 신고 30년쯤 되시면 의식적으로 오바하시는 것두 어렵겠구만요.
    ㅋㅋㅋ
    두 분 마주 앉으셔서 식사하시며 대화나누시는 게 그림처럼 그려지는데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털보 2008.03.31 10:29 보기만 해도 또다른 생각이 절로 납니다.
    또다른 생각은 차마 공개적으로 말씀드리긴 그렇습니다.

    신의 피리님은 말씀 안하시는 건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행복을 말로 다 할 수 있는 말을 찾는다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너무 행복하면 그때부터 제대로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씨, 부럽기 짝이 없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8.03.31 14:09 신고 이 쯤 되면 신의피리님 등장하셔서 한 마디 하실 때가 되셨는데요. 털보님께서 빠져나갈 구멍을 대대적으로 열어주셨는데 말이죠.^^
    또 다른 생각은 얼마나 재밌는 생각이실지 상당히 궁금해지는데요. ㅎㅎ
  • 프로필사진 BlogIcon mary-rose 2008.03.31 15:35 신고 또 다른 생각이 뭔지 알거같은데.
    차마 공개적으로 맞출수도 없고 ㅋ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8.03.31 15:41 신고 그러면 비공개 댓글로 한 번 맞춰 주시기~
    제가 웬만한 상상력은 쫌 따라잡기기 되는데..
    털보선생님은 항상 제 상상을 초월하셔서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털보 2008.03.31 15:52 별거 아닌데... 그냥 얘기가 "술술" 나올 거 같은 느낌이 든다는...ㅋㅋ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03.31 16:05 아~ 그거요. 그건 제가 예상했던 거죠.
    이미 올릴 때부터 '내 요리는 꼭 이래. 내가 올려놓고 봐도 꼭 뭐 하나 빠진 그런 그림이란말야' 싶었는데요.ㅋㅋ
    저는 또 A4 한 장 짜리, 대감님들의 대화 비슷한 걸 상상했죠.
  • 프로필사진 BlogIcon 털보 2008.03.31 16:10 맛난 음식은 여기서 눈으로 감상하고, 그건 어제 밤 젊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른 데서 해결했습니다. ㅋㅋ
  • 프로필사진 신의피리 2008.03.31 21:01 나는 지난 토요일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른다오. 채윤이 땜에 그런 거 아니었수? 오늘에야 이 글을 보고 그날의 상황이 파악되었다오. 도대체 내 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04.01 09:08 때론 당신 자신보다 당신에 대해서 더 잘 안다고 자부하는 내가 다 알겠는 당신의 마음을 말로 꼭 확인하고픈 이 유아틱한 감정은 뭔지 모르겄소.
  • 프로필사진 나무 2008.04.01 07:46 사모님글은 유쾌해요 ㅎㅎ
    도사님의 마음은 그게 아니셨을거예요
    어우 왜 이리 많어?가 와 나때문에 이리 많이 준비했어~고마워~하는 말이셨을거예요 ^^
    저렇게 맛깔나게 이쁘게 식탁을 준비하고 남편을 섬기시는 사모님 존경합니다~~~~~~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04.01 09:10 그거 였군요. '와 나 때문에 이리 많이 준비했어?'ㅎㅎㅎ
    사모님은 이런 일 별로 없지요? 우리 도사님이 승재도사님은 진짜 보기드문 아이디어 뱅크라고. 칭찬이 많아요. 동기 중에 반드시 목회에 성공할 전도사님 1등을 승재도사님으로 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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