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린이 성가대 지휘를 하면서 피스를 없애 버렸다.

연습 때 악보를 나눠주면 일단 연습을 하고 집으로 악보를 가져가서는 일주일 동안 가사를 외워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일 예배 때는 악보를 들고 하지 않았다.

만약 가사를 못 외운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알아서 그 주에 성가대에 서지 못하는 것이다.


이건,

보통 위험부담이 큰 모험이 아니다.

왜냐면 최악의 경우 한 명도 안 외워올 수도 있는 거니까.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찬양을 하다보니 애들이라는 특성 때문에 가사를 잘 이해하고, 묵상하고, 삶에 적용시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애들 말로 잘 풀어서 설명도 하곤 했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의 가사고백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아예 그냥 가사를 외우게 시키자'였다.

'집에 가서 묵상해 와라' 이것처럼 애들한테 막연한 숙제가 있겠나 싶어서 '외워와라' 했었다.


처음에 그런 의도로 시작을 했지만.

이것은 애들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시험이었다.

믿거라 하는 녀석들이 가사 안 외워 와가지고 저~쪽 회중석에 앉아서 성가대 쪽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을 때..

'아~ 저 녀석 빠지면 소리 낼 애가 없는데...'하는 생각이 들면 오금이 저리고,

'저 녀석만 구제할까?'하는 갈등도 잠시 하게 되고 말이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철저한 훈련의 기회가 되었다.

'사람을 의지하거나, 사람을 바라보거나,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찬양'을 연습하기.


최악의 경우에 두 명인가 외워왔던 적이 있다.

애들은 내심 '이 정도 됐으면 선생님이 우리를 다 구제하겠다. 연습하면서 외우라고 하겠지'하는 기대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두 명만 데리고 주일 찬양을 드렸다.

정말 그 때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떨리고, 절망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이란...

그러나, 그런 기회는 모든 성가대 아이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남기게 되었다.

준비되지 못한 사람은 찬양할 수 없다.

단지 노래를 잘 하거나, 연습할 때 빨리 외울 수 있는 머리를 가졌다해도 최소한의 준비되지 않은 마음으로는 찬양하는 것이

옳지 않다.


물론, 그거 안 외우고 찬양 드린다고 하나님께서 그 찬양 안 받으신다고 가르치지는 않았다.


또 지금 샬롬 찬양대 지휘를 하면서 '연습 안 하신 분들 서지 마세요' 이러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휘자님! 죄송합니다. 제가 지난 주에 연습 빠졌어요. 제가 이렇게 서도 되는지 원...' 하시면

'예~ 물론이죠' 한다.


생각해보면, 애들이라는 특성을 고려해서 했던 좀 고약한 짓이었다.

그러나 그 훈련이 내게 오히려 약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샬롬찬양대에서 음악적으로는 물론,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시는 집사님 한 분이 중국으로 가셔서 빈 자리가 생겼다.

또, 솔리스트 이시면서 지휘자의 마음에 큰 자리를 차지하시는 집사님 부부가 먼 곳으로 이사를 하셔서 또 자리가 비었다.

마음적으로 많이 의지가 되는 분들이라서 한 두 주 연습시간에 힘이 들고 지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예전에 어린이 성가대에서 두 명 데리고 지휘하던 생각이 난 것이다.

그렇다. 성가대 뿐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것이다.

몇 분의 결원으로
연습시간이 더 힘겨워지고, 어느 파트의 소리가 더 거칠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찬양 그 자체를 어찌하지 못한다.


찬양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 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2006/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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