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자타공인 별명이 '삶은 요리'였었었었었는데.

삶이 온통 요리 하는 기쁨으로 충만하진 않았지만, 

요리하여 손님 맞이하고, 사진 찍어 포스팅 하는 낙이 아주 큰 낙이었던 적이 있었다.

지난 날을 떠올리며 흔히 말하 듯 "그땐 어떻게 그랬지? 젊긴 젊었어." 라는 말로 퉁칠 수 있는 시절.


흔치 않은 일정, 연달아 3일 강의가 있고, 장례 예배까지 있었던 주일에 식사 초대가 있었다.

즉흥적으로 있는 것 다 때려 넣어 하는 요리를 좋아하지만,

몇 달 전부터 약속된 식사를 위해 몇 날 며칠 고민하는 것도 괜찮은 창의활동이다.

몸은 피곤한 토요일 오후였지만, 양손 가득 장을 봐서는 집안 가득 멸치향 날리며 육수 끓이는 맛.

맛 아니고 향기?

멸치 육수향은 그 꼬리리함과 구수함이 어우러져 유난히 내겐 치유의 향기이다.



메인은 묵사발이었다.

전날 멸치육수 내서 냉장고에 넣었고, 먹기 두어 시간 전에 냉동실에 넣어 살얼음 얼렸다.

일단은 날이 더워 선택한 메뉴이다. 

손님 중엔 대입 수험생이 둘 있어서 두 친구 (고기 먹고 힘 내라고) 등갈비찜은 일부러 했다.

그런데 수험생 중 하나가 묵사발을 한 그릇 먹고 수북하게 한 그릇 더 추가로 맛있게 먹는다.

엄마 얘길 들어보니 그 아이 임신했을 때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이라고, 

어디서 구하질 못해 결국 못 먹었다고, 그랬더니 아이가 태어나 묵사발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보람 돋았다! 이게 요리하는 맛이지! 이 묵사발은 수험생 지우와 지현이를 위한 기도 한 사발이다.   


맛있다는 말에 기분 좋고, 요리 잘한다는 칭찬도 어깨를 으쓱게 하지만 

내가 알아주는 내 요리, 그걸로 충분한 요리이다.

아이들 어릴 적에 일부러 피했던 학부모 모임, 엄마들 모임이었다.

만나서 떠들어 봐야 불안만 커지고 집에 오면 공부 못하는 아이 닦달하게 되고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겼기에.

아이들은 그걸 엄청난 결핍감으로 갖고 있다.

우리 엄마는 친구들 엄마랑 친하지 않았어! ㅠㅠ

중학교 졸업하고 만난 '꽃다운 친구들' 가족은 아이들에게나 내게나 결핍감 치유의 만남이다.  

좋은 사람들을 위한 식사 한 끼, 여기에 담는 마음과 정성을 내가 알아준다. 

참 선하고 아름다운, 준비만으로 족한 나의 요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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