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심심해.

어, 너 심심해? 나는 심심달.

아, 진짜. 아빠 싫어. 재미도 없는 걸 맨날 해.

재밌고만. 여보, 난 재밌어. 당신은 심심달~ 그럼 나는 심심별.

 

이렇게 심심해, 심심달, 심심별 하는 시간이 많으면 듣보잡 창작활동을 하게 된다.

싱크대에서 나무 젓가락 몇 개를 가져가 제 방에서 끙끙거리더니,

엄마, 이리 와 봐. 나 집 지을 거야. 벌써 기둥 다 세워졌지?

그리고 한참 있더니,

엄마, 이게 뭐~어게? 정육면체! 딩동댕. 직육면체도 돼. 원래 정육면체는 직육면체도 되는 거야.

그리고 또 심심해 심심달 심심별의 시간이 흐른다.

마침내 계획에 없던 작품출시.

제목은 '네모의 꿈' 

 

 

 

 

TV도 컴퓨터 게임도 휴대폰 게임도 없는 세상.

답답한 세상. 짜증나는 세상.

가끔씩 이 세상의 여왕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다른 아이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여왕을 만나 이상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수록 빡친다.

(의식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엄마, 엄마가 몰라서 그러는데 내 친구들은 정말 컴퓨터 게임 많이 해. 걔네들이 게임 얘기할 때는 나는 그냥 먼 산을 바라 봐. 이젠 부럽지도 않아. 그렇지만 엄마가 알아야 해. 다른 애들이 컴퓨터 게임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재규랑 우노랑 만나서 막 놀다가도 조금 시간이 지났다 싶으면 '야, 이제 놀 것도 없는데 각자 집에 가자' 이래. 그거 왜 그러는 줄 알아? 게임 생각나서 그러는 거야. 그러면 둘 다 집에 가서 게임한다고. 애들이 온통 게임 생각만 하는 거 알아?  엄마는 진짜! 으이구!!! 진짜!!!!

궈래? 그러면 너도 닌텐도 해. 30분 해.

꺄악! 진짜? 진짜 30분 한다. 예~~~~

(방금 전까지 입가에 침 고여가며 성토하던 것 싹 잊었음)

 

 

 

 

친구들 이야기에 끼지 못하는 그 결핍감을 내 어찌 모르랴.

결핍감이 엄마에 대한 분노로 돌변하는 건 시간문제이다.

엄마의 죄를 엄마가 알기에 달게 받으려고 한다.

결핍감과 결핍감에서 오는 분노와 엄마를 향한 원망과

매일 심심해서 뒹굴면서 볶아대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그것은 엄마인 나의 선택이고

그로 인해 잃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잃고, 감수하는 것이 책임이니까.  

 

심심해, 심심달, 심심별.

심심한 시간 속에 뒹굴다 가끔은 저런 유치한 작품활동도 하고.

(본격 사춘기에 돌입, 가출을 하고 싶거나, 야동을 보기도 하는 친구도 있는 5학년임)

저러고 '네모의 꿈'을 부르며 특유의 삐걱댄스 안무까지 곁들인 동영상도 있는데 그건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현승이가 그리는 네모의 꿈은..... 음, 뭔지 딱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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