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하는 자랑이지만 유아교육 전공에 음악치료 전공,
10년이 훨씬 넘게 장애 비장애 아이들을 두루 교육하고 치료했으며,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건 또 몇 년?
사람의 성격과 마음에 관한 강의를 하고 글을 쓰는 이 시대 최고의 엄마님.
이 될 소양이란 소양은 다 갖추었으나.....
뚜껑을 열어보면 최악의 엄마이신 나는 오늘도 운다.
사소한 문제, 즉 채윤이의 피아노 연습과 현승이의 일기쓰기로 저녁마다 감정이 상해가고 있었다.
늘 그렇듯 괜히 다른 데서 뒤틀린 마음이 아이들에게 가서 터져 선언했다.
'이제부터 채윤이 너 피아노 연습시간, 현승이 너 일기쓰는 것에 대해서 엄마는 일체 말하지 않을거야. 알아서 하는거야. 엄마가 계속 그거 잔소리 하다가는 진짜 화만 내는 엄마가 되겠고 우리 모두 너무 불행해지니까.... 엄마가 그렇게 결심했어'
그리고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뒤끝 작렬에 소인배에 쪼잔한 엄마는 여전히 마음이 안 풀려서 땡땡 얼어붙어 있었다. 교회 가려고 화장하는 엄마에게 채윤이가 다가와 턱을 들고 말했다.
"엄마, 어제 엄마가 얘기한 거 다 좋아. 우리가 잘못했지. 그래서 나는 이제 피아노 알아서 연습할거고, 현승이는 알아서 일기 쓰면 돼. 다 되는데.... 그렇게 했으면 엄마가 마음을 풀어야 할 거 아냐. 엄마가 원하는대로 했잖아. 그러면 기분을 풀고 그래야지. 아직까지도 이게 뭐야? 엉!"
"엄마 마음이잖아. 니가 그렇게 화내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아니지. 엄마가 밥줬잖아. 밥주고 빨래해주고 이런 건 다 해줄거야. 필요한 건 해줄거라고"(아, 이렇게 쪼짠한 게 어른이고 엄마인가?ㅠㅠㅠㅠ)
"우리가 엄마한테 하녀 되라고 했어? 밥하고 지금 엄마가 우리한테 하녀 하겠다는 뜻이야? 우리는 싫다고. 마음 풀고 예전 엄마로 돌아오라고!"
(현승이 이미 눈물 그렁그렁) "엄마, 어떻게 해야 엄마가 마음을 풀고 예전 엄마로 돌아올 수 있어? 어떻게 하면 우리 용서해줄거야?"(울음 꿀꺽)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정직하게 말하기로) "실은 엄마가 엄마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러는거야. 엄마가 좋은 엄마 되고 싶은데 자꾸 화내고 무섭고 너희 힘들게 하는 엄마가 되는 것 같애서 속상하고 엄마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러는거야. 그러니까 너희가 아니라 엄마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서 이렇게 마음이 딱딱한거야"
(현승이 울음이 빵 터지면서) "엉엉엉엉..... 엄마, 그러지 말고.... 엉엉... 엄마 자신을 용서해. 엄마, 엄마 자신을 용서해....응?"
꾸짖어주시는 딸,
자신을 용서하라고 눈물로 호소하시는 아들아!
날이 갈수록 작아질 뿐인 엄마는 날이 갈수록 어려운 양육의 산맥을 좌충우돌 벌벌거리며 기어오른다. 부끄럽구나. 막막하구나.
* 사진은 이런 일로 계속 우울모드인 엄마 마음 풀고자 현승이가 차린 식탁.
설거지가 밀려 있어서 밥그릇이 눈에 띄지 않자 컵과 머그를 밥그릇과 국그릇으로 사용하여 마치 미적인 식탁을 추구한 듯 보인다.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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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2012.03.23 00:16
그놈의 일기가 현승 도령 눈물 나게 했군요.
일기장은 학교에 두고 가끔 아침 자습으로 일기를 쓰게 하던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쓸 게 생각나지 않는 아이들은 칠판에 쓰인 주제로 그냥 자기 생각을 쓰고요.
그 선생님도 자기 아이 덕분에 일기장이 가정불화의 원인이 된다는 걸 알았대요. -
이과장 2012.03.23 10:31
음...
요새 퇴근 후 이것저것 챙기고 준비해두라고 어머님께서 요구하시는 집안일이 많아진 관계로다가 스스로 남양주 집의 하녀, 그것도 낮에는 돈까지 버는 하녀라고 생각하며 혼자 상처받았다가 혼자 위로받았다가 난리부르스 떠는 요즘인데.. 언쟁 끝에 나도 모르게 나온 그 말에 박서방 제대로 충격받고 상처받으셨네요 ㅡ.ㅡ
그렇게 부부가 서로의 맘에 상채기를 낸 후, 박서방은 앞으로 집안일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재활용쓰레기 버리러가고ㅜ.ㅜ 안방과 안방 화장실 사이의 공간에서 불도 안 켠채 쪼그리고 앉아서 울고있는데, '엄마 어딨어?'라고 찾아헤매다가 어둠 속에서 엄마 발견한 33개월 아기! 숨바꼭질 하는 줄 알고 완전 업되서 까르르 거리다가...
'엄마 왜? 누가 그랬어? 아퍼? 소싸해(속상해)? 그래도 울면 안되지~ 뚝! 얼른! 울면 말 안들어줄거얏!!(이거 평소에 이 아기 엄마가 늘 하는 말 ㅡ.ㅡ)'
종알거리며 눈물 닦아주는 성은이를 바라보며...
'그렇지. 나 하녀 아니고 이 아이 엄마지. 어린이집에서 모든 애들 간식 챙기고 화장실 가는 서 챙기느라 바쁘신 오지랍 제대로 넓으신 33개월 아이의 엄마!'ㅋㅋㅋ
아마도 성은이는 자라면서 채윤이모처럼 엄마를 꾸짖고 옳은 말만 해대는 뒤끝없는 딸이 될 거 같고, 이 시점에서 현승이처럼 부드러운 아들을 꿈꿔야겠네요~^^-
어떤 의미로든 결혼을 잘했건, 못했건 이 땅의 며느리들이 설거지하며, 밥 차리며 한 번 쯤은 해보는 생각일 것 같아. '나 혹시 하녀 아닐까?'
이건 정말 오래되고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이 들어. 내 식구는 하나도 없고 남편과 남편 식구들이 모인 곳에서 모두들 후식 먹고 티브이 보고 있을 때 혼자 설거지 하는 순간 같은 때, 잠시지만 스쳐가는 생각이지.
남편들이 깨어나야함은 당연한 것이고,
고모는 때로 그럴 때 내가 너무 깊은 자기연민에 빠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어.
그러면 고모가 올해는 손주를 좀 기대해도 되는건가?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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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st 2012.03.23 12:22
나, 이집 얘기나오면 지대로 질투의 화신이 되는 분~
쏘우 쿨하신 따님 덕에 상처받아 쓰러진 나를 일켜세우시는 분 아무도 없다는...
나도 위의 이과장님처럼 진작에 아드님 꿈꿨어야 했건만, 난 이미 넘 늦어서,
저 만치서 외치는 외마디~ '안되겠다. 그치. 사람 불러야겠찌~'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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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 3년 5개월이나 치던 피아노를 요즘 2월부터는 손도 못 대고 있답니다.
고덕에서는 완전 신선놀음을 하고 있었나 봐요.
우리 가게 옆이 피아노 학원인데 시간이 안나서 못 치고 있어요.ㅠ -
우쭈꿈 2012.03.26 08:16
우와 ㅋㅋㅋㅋㅋ 현승이 역시 귀염귀요미네요 ㅋㅋㅋ~!
갑자기 눈물 그렁그렁한 현승이파트에서 제 마음도 울컥 찌잉~~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