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쥴리엣 비노쉬 분의 안나는 장성한 아들을 잃었고 막 장례식을 마쳤다. 집안dml 창문이란 창문에는 검은 천이 드리워진다. 빛이라고 없다. 캄캄하다. 안나에겐 표정이라곤 없다. 깜깜한 공간에 전화벨이 쩌렁쩌렁 울린다. 죽은 아들의 여자 친구 잔이다. 천진난만하게도 안나의 죽은 아들을 만나러 오겠다는 것이다. 안나는 그러라고 한다. 마치 아들이 집에 같이 있는 것처럼. 잔이 온다. 공항씬에서 엄청난 미쟝센을 흩뿌리며 온다. 남친 집에 도착했는데 그리운 남친은 없고 뭔가 음울하고 기괴한 분위기의 남친의 엄마, 어두운 기운만 만연하다. 남친과 헤어지나 마나 하는 기로에 서서, 이 남친을 놓치고 싶지 않아 모든 걸 내려놓고 찾아온 잔은 이래저래 불안하다. 그리운 남친은 부활절이면 돌아온단다. 아, 안심이다.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니야. 부활절이면 돌아온다니까. '부활절에 돌아온단다.' 잔의 남자친구가 부활절이 온다면 안나의 아들은 언제? 


영화 첫장면은 피에타 이미지이다. 부활로 가는 길의 시작은 성금요일이다. 주님의 보혈, 주님의 보혈, 보혈의 잔, 구원의 잔.... 그런 것이 아니다. 십자가에서 주검으로 내려온 아들을 안은 마리아. 단지 마리아가 아니라 당신의 아들을 제물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하나님 어머니)의 마음이다. 제 몸으로 품어 살을 찢는 고통으로 내놓은 생명을 받아들었던 그날, 그 경이의 순간을 잊을 수 있을까. 끝도 없을 것 같은 출산의 고통 끝에 '응애응애' 존재를 드러내는 생명, 그 생명을 처음 가슴에 품었던 기억. 바로 그 품으로 싸늘하게 식은 몸을 끌어안아야 하다니. 믿을 수 있는 일인가?


2년 전, 고난주간에 세월호와 함께 꽃다운 아들 딸들이 침몰했다. 그 주간 끝 부활주일, 그리고 일 년이 지난 부활주일, 심지어 2년이 지난 올봄에도 세월호는 여전히 차디찬 바닷속에, 아이들의 죽음 역시 진실의 빛을 보지 못하고 갇혀있다. 피에타. 아들의 주검을 안아보는, 그 고통을 가슴에 안아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엄마들이 있다. '응? 너의 남자친구? 부활절에 돌아와'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상실감 앞에서 작동하는 심리적 방어기제 '부정'일뿐.....]



여기까지 썼다. 영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을 보고 리뷰 쓰기를 시작한지 두어 달. 저녁마다 블로그를 열어 완성해보려 했지만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두 달 동안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 한 게 저거다. 미완으로 마무리 하려고 한다. 쓰고 싶은 말이 참 많다. 영화 보고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은 사무실 책상에 포스터를 붙여놓고 있다. 죽었다 부활절에 살아난 아들은 단 하나. 마리아의 아들 예수님 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의 엄마 안나처럼 아들을 잃은, 자기 생명의 한 기둥이 무너져버린 엄마들은 모두 부활절을 기다린다. 아들 딸이 살아 돌아오리라 믿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분만의 죽음과 부활이 아닌 것을 알기에 부여잡는 것이다. 그것은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이 참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이 영원히 가라앉는다는 소망 아닐까.


세월호 2주기를 맞는, 하늘이 어두운 토요일이다. 아직 세월호는 성금요일이다. 사흘 동안 지옥으로 내려가신 아들을 고통스럽게 끌어안고 있는 그 시간일 뿐이다. 영화가 건넨 많은 질문에 대해 생각의 길은 열어놓되 글은 뚝 잘라 여기서 멈추겠다. 대신 '예은이가 불러주고 진은영 시인이 받아 썼다'는 시를 읽는다.  



<그날 이후> 

아빠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 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엄마 미안
밤에 학원갈 때 핸드폰 충전 안 해놓고 걱정시켜 미안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 못해서 미안

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
할머니랑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
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듯하고 부드럽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

아빠 엄마 미안
아빠의 지친 머리 위로 비가 눈물처럼 내리게 해서 미안
아빠, 자꾸만 바람이 서글픈 속삭임으로 불게 해서 미안

엄마, 가을의 모든 빛깔이 다 어울리는 우리 엄마에게 검은 셔츠를 계속 입게 해서 미안
엄마, 여기에도 아빠의 넓은 등처럼 나를 업어주는 포근한 구름이 있어

여기에도 친구들이 달아준 리본처럼 구름 사이에서 햇빛이 따듯하게 펄럭이고
여기에도 똑같이 주홍 해가 저물어

엄마 아빠가 기억의 두 기둥 사이에 매달아놓은 해먹이 있어
그 해먹에 누워 또 한숨을 자고 나면
여전히 나는 볼이 통통하고 얌전한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아이
제일 큰 슬픔의 대가족들 사이에서도 힘을 내는 씩씩한 엄마 아빠의 아이

아빠, 여기에는 친구들도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들도 있어
"쌍꺼풀 없이 고요하게 둥그레지는 눈매가 넌 참 예뻐"
"너는 어쩌면 그리 목소리가 곱니,
어쩌면 생머리가 물 위의 별빛처럼 그리 빛나니"

아빠! 엄마! 벚꽃 지는 벤치에 앉아 내가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 기억나?
나는 기타를 잘 치는 소년과 노래를 잘 부르는 소녀들과 있어
음악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들과 있어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밤길 마중과 내 분홍색 손거울과 함께 있어
거울에 담긴 열일곱 살, 맑은 내 얼굴과 함께, 여기 사이좋게 있어

아빠, 내가 애들과 노느라 꿈속에 자주 못가도 슬퍼하지마
아빠, 새벽 세 시에 안 자고 일어나 내 사진 자꾸 보지마
아빠, 내가 여기 친구들이 더 좋아져도 삐치지마

엄마, 아빠 삐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하은언니, 엄마 슬퍼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성은아, 언니 슬퍼하면 네가 좋아하는 레모네이드를 타줘
지은아, 성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노래 불러줘

아빠, 지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두둥실 업어줘
이모, 엄마 아빠의 지친 어깨를 꼭 감싸줘
친구들아,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아줘

나의 쌍둥이 하은언니 고마워
나와 함께 손잡고 세상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여기서, 언니는 거기서 엄마 아빠 동생들을 지키자
나는 언니가 행복한 시간만큼 똑같이 행복하고
나는 언니가 사랑받는 시간만큼 똑같이 사랑받게 될 거야,
 그니까 언니 알지?

아빠 아빠
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줘 고마워
엄마 엄마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가장 맑은 노래
진실을 밝히는 노래를 함께 불러줘 고마워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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