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주일이지만 내 삶에서 '감사'를 길어올리자니 조금 난감해집니다. 감사 꺼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찾아 꺼내보고 정리할 긍정 에너지가 없네요. 며칠을 자괴감에 빠져 '부정'의 나날을 보낸 탓입니다.  감사주일에 감사의 글을 써야할 의무는 없지만 동생의 글을 올리면서 힘을 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교회 유치부에서 학부모 입장으로 감사주일에 편지를 읽는다고 합니다. 글을 한 번 봐달라고 보내왔는데 어느 부분 울컥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참말로 남매 아니랄까봐' 싶을 정도로 저와 생각이 비슷하네요. 드물게 사이가 좋은 남매이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동생이나 나나 이만큼 사람 노릇 할 정도로 자란 것은 서로 아버지의 빈 자리를 잘 채워준 탓입니다. 요즘은 동생 내외가 참 고마워서 '이렇게 고마워도 되나?' 싶은 정도네요. 사진은 얼마 전 광화문에서 40 일 단식하셨던 방인성 목사님을 찾아 뵌 동생 가족입니다. '인생역전' 아닌 '인생여전'이 감사한 시절입니다. 또 감사한 만큼 죄스러운 시절이기도 하고요. 어쨌든 저는 동생과 동생의 가족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2014. 인생역전을 기대하기 보다는 인생여전에 안심하고 감사하게 되는 한해였습니다.

 

지난 3, 올해 아흔이 되신 어머니가 넘어지셔서 고관절이 골절되었습니다. 90 나이에 고관절이 부러진 경우 1년 이상 살 가능성이 50%도 되지 않고, 살아 있다 해도 다시 걸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습니다. 수술을 하고 2달 간 노인병원에 입원하신 어머니는, ‘다시 교회에 걸어서 나가겠다는 일념으로 재활에 힘쓰셨고 결국 다시 일어나셔서 매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계십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어머니 입원해 계시는 동안 내가 이제 진짜 고아가 되는구나하는 두려움과 슬픔에 매일 밤 아이처럼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하나님! 고아가 되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3년 전에 오랫동안 해 왔던 목회와 시민단체 활동가로서의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거칠게 달려온 십 수 년. 많이 지쳐 있었고 나를 돌아볼 시간도 필요했습니다. 교회와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분주하게 뛰어다녔지만 그동안 가족은 방치되어 있었고 아내는 지쳐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40이 넘은 나이에 저는 새로운 일을 찾아야 했습니다. 무엇을 할지 정해 놓은 것도 없었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일을 주셨고 목회가 아님에도 일을 통해 비슷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신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을 주셔서 우리 세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해 주신 과분한 은혜 앞에는 그저 엎드려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편으로는 마흔이 넘어 생활전선에 뛰어든 사회 초년병(?)으로서, 가족들의 일상을 유지하는 동력을 제공하는 일이 때로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부족한 저에게 여전한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지난 시간 동안 우리 가정을 한결같이 지켜주신 것, 그 이상 어떤 것을 더 바라겠으며 무슨 감사거리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 범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자꾸만 어머니 병실 옆 침대에 누워 계시던 노인들 생각이 납니다. 집이 있고, 자식들이 있지만 여건이 허락지 않아 생전에는 자기 집에 돌아가지 못하실 할머니들의 한숨과 어머니를 부러워하던 그 눈빛을 생각하면 어머니의 회생이 기쁘기도 하지만 불편한 마음도 듭니다. 그리고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바다에 빠져 죽고, 학대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사라져 간 아이들의 비극을 생각하면 나와 내 아이들의 행복에 대해 감사하는 것에 매우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박노해 시인의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홀로 되어 노점상을 하며 다섯 남매를 키우시며 신산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분은 노점상을 하며 자식을 키우던 어려운 환경에도 특별한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잊지 않고 사셨습니다. 그런데 팔순이 되어서야 깨달았다고요. 그 이야기가 담긴 시 <감사한 죄>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죄책감마저 들기도 합니다.

 

 

감사한 죄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젊어서 홀몸이 되어 온갖 노동을 하며
다섯 자녀를 키워낸 장하신 어머니
눈도 귀도 어두워져 홀로 사는 어머니가
새벽기도 중에 나직이 흐느끼신다


나는 한평생을 기도로 살아왔느니라

낯선 서울땅에 올라와 노점상으로 쫓기고
여자 몸으로 공사판을 뛰어다니면서도
남보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음에
늘 감사하며 기도했느니라


아비도 없이 가난 속에 연좌제에 묶인 내 새끼들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경우 바르게 자라나서
큰아들과 막내는 성직자로 하느님께 바치고
너희 내외는 민주 운동가로 나라에 바치고
나는 감사기도를 바치며 살아왔느니라


내 나이 팔십이 넘으니 오늘에야

내 숨은 죄가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거리에서 리어카 노점상을 하다 잡혀온
내 처지를 아는 단속반들이 나를 많이 봐주고
공사판 십장들이 몸 약한 나를 많이 배려해주고
파출부 일자리도 나는 끊이지 않았느니라
나는 어리석게도 그것에 감사만 하면서
긴 세월을 다 보내고 말았구나


다른 사람들이 단속반에 끌려가 벌금을 물고

일거리를 못 얻어 힘없이 돌아설 때도,
민주화 운동 하던 다른 어머니 아들딸들은
정권 교체가 돼서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도
사형을 받고도 몸 성히 살아서 돌아온
불쌍하고 장한 내 새끼 내 새끼 하면서
나는 바보처럼 감사기도만 바치고 살아왔구나
나는 감사한 죄를 짓고 살아왔구나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묵주를 손에 쥐고 흐느끼신다
감사한 죄
감사한 죄
아아 감사한 죄

- 박노해 -

 

 

감사한 죄, 감사하지 못한 죄. 악하게 태어나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죄를 짓는 불쌍한 존재. 이것이 바로 죄인된 인생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 만은 망설임 없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고백합니다. ‘모든 것이 협력하려 선을 이룰 것이라는 주님의 변함없는 약속. 가난해도, 억울해도, 아파도, 슬퍼도, 설사 많은 걸 가졌다 하더라도 불안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죄인의 실존 앞에 하나님 나라라는 소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주의 질서를 지키시며 운행하시는 변함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어김없이 피어나는 길가의 장미꽃 한 송이를 보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그분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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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네아낙 2014.11.16 18:12

    집사님 우연히 정말 우연히... 오늘 둘째 녀석 유치부 부모참여감사예배라 갔걸랑요. 아시겠죠? ^^ 정말 남매아니랄까봐 글도 어쩜 그리 찰지게 잘 쓰시는지...^^ 저 역시 무덤덤하던 마음 먹먹해 지고 따뜻해지고 다시금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 BlogIcon larinari 2014.11.16 21:11 신고

      아, 그렇구나! 예일이와 세현이가 같은 유치부군요.
      전투적으로 읽었다고 올케가 동생을 놀리던데요. ㅎㅎㅎㅎㅎ
      이렇게 생각지 못한 끈으로 연결되어 공감해주시니 다시 울컥하네요.
      감사가 죄스러운 이 시대가 참 아파요.

  2. 2014.11.24 10:31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4.11.25 10:18 신고

      아, 그러면 유치부 교사를 사지는 거예요?^^
      음.... 많이 좁혀졌다.
      곧 제가 찾아낼 수 있겠는데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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