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두고 온 동네들 본문

그리고 또 일상

두고 온 동네들

larinari 2017. 8. 20. 20:39



# 광화문


주중에 미팅이 있어서 광화문에 나갔다. 종로 2가에서 광화문까지 걸으며 뭉클했다. 지난 겨울, 저 넓은 차도를 운동장 삼아 걸었었지. 촛불 하나 들고 수많은 촛불에 떠밀려 걸었었지. 그때 외친 구호를 떠올리니, 오늘이 꿈인가 생신가 싶다. 꿈을 꾸듯 걸어 교보빌딩 앞에 도착. 익숙한 어떤 자리에 다시 앉았다. 대학로에서 시작해 광화문까지 걸었던 날이다.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쉬는데 시시각각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들었었다. 잠시 앉아 어둑어둑해지던 그날의 거리를 떠올려본다. 빼곡히 촛불이 된 사람들이 앉았던 차도에 느릿느릿 자동차가 지나가고 아무렇지 않은 오후이다. 


약속 장소인 교보빌딩 1츠의 파리크라상에 도착하여 창가에 앉았다. 세월호 피켓팅을 하며 서 있던 바로 그 자리가 딱 보인다. 촛불의 파도를 타고 밀려다니던 겨울, 그 한참 전부터 세월호와 함께 광화문에 들락거렸다. '세월호에 있던 형과 누나들이 불쌍해요. 그 엄마 아빠들이 불쌍해요. 진실을 알려주세요' 앳된 현승이가 앳된 글씨체로 쓴 손피켓을 들고 엄마 옆에 서기도 했었다. 세월호 가족과 함께 홍대 앞에서 출발해 광화문까지 걸었던 봄날도 있었지.


광화문, 이 동네가 새삼스럽게 뭉클하고 애틋했다. 

미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 되짚어 종로를 다시 걸으며 '광화문 연가'를 불렀다.



# 양화대교


주일 오후, 고양시에 있는 교회에서 강의가 있었다. 티맵이 안내하는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가는데 조금 돌아가는 길이고, 톨비도 꽤 나오지만 뻥뻥 뚫린 길 가는 맛이 있었다. 돌아오는 길, 시내 도로 사정이 나아졌는지 티맵이 올림픽대로를 경유하여 경부고속도로를 타란다. 알겠다, 하고 출발하려는데 상세경로에 '양화대교 북단'이 보인다. 양화대교 북단, 양화대교 북단. 거길 지나기 싫어서 다시 톨비 많이 내고 돌아가는 길 외곽순환을 선택했다.


굳이 피할 곳도 아닌데 피하게 되었다. 이유는 그리워서. 그리운 곳을 지나치다 너무 그리워 슬퍼질까봐. 합정동 살 때 강동 하남 쪽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 올림픽대로를 달리다 양화대교를 타러 올라가는 길을 좋아했다. 집이 가까워 오고, 다리로 올라가는 짧은 길에 키가 큰 나무들이 서 있는데 그 지점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그리 푸근할 수가 없었다. 티맵에서 '양화대교 북단'이란 글자를 보는 순간 그 길이 떠올랐고, 그리움이 사무쳤다. 망원시장, 절두산 성지, 성산대교 아래 벤치..... 짧은 순간 불쑥불쑥 소환되는 나오는 장소들. 강북강변을 거쳐 전에 살던 집 옆을 지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돌아돌아 집에 왔다.


뜬금 없는 감정이다. 새삼스런 그리움이다. 며칠 전, 갑자기 부른 '광화문 연가' 때문일까. 광화문 가까운 합정동이었기에 마음 먹을 때마다 달려갈 수 있었다. 울고 있는 이땅의 '을'들과 연대하기 쉬웠던 동네, 참으로 '을'스러웠던 동네, 그리하여 나도 을이지만 혼자는 아니라고 느꼈던 시절. 참 좋았구나. 광화문이 가까운 합정동, 참 좋았었구나.


현승이가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에 쓴 시가 떠오른다. 명일동 살다 합정동으로 이사하고 쓴 시이다. 할머니 댁에 가느라 명일동 근처를 지나노라면 마음이 이상하다며 쓴 시이다. 생각해보면 여기저기에 두고 온 마음이 많다. 과거는 '두고 온' 것들, 두고 와서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엉킨 어떤 덩어리이다.





'그리고 또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망원시장 홍옥  (0) 2018.09.22
외길 11년  (2) 2018.03.31
두고 온 동네들  (2) 2017.08.20
선물입니다  (4) 2017.03.22
다녀오겠습니다  (2) 2016.07.03
중는 건가?  (7) 2015.03.19
2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