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에게

축하의 카드를 먼저 내밀까? 아니면 고마움을 먼저 전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네. 사실 중매쟁이 입장에서 본 두 사람 모두 인격과 신앙 모두에서 고득점자였기 때문에 내색은 못했지만 자못 기대가 컸었다. 헌데 벌써 세 번째 만남을 가졌다니 성질 급한 선생님 혼자 샴페인을 터뜨리고 싶은 심정이다. 첫 날 만남 이후가 은근 궁금해서 몸이 달았는데, 중매쟁이의 설레발로 일을 그르칠까봐 조신하게 기다리느라 힘들었다. 일단 좋은 만남이 되고 있다니 축하 축하다.
이번엔 고마운 것이 여럿 되는데, 무엇보다 지난번 내 메일에서 말과 글 너머에 있는 마음을 읽어줘서 고맙구나. 은혜와 주고받는 메일을 통해서 어떻게든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 마음조차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선생님은 그저 은혜가 고민하며 물어주는 것에 가장 진실하게 답하고 싶은 마음이고, 그것이 은혜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 J군과 만남에 마음을 열어 주었고, 그 만남에서 서서히 감도는 핑크빛이 엊저녁에 불었던 때 이른 가을 바람처럼 기분을 좋게 만드는구나.
그런데 막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는 은혜의 메일에 슬쩍 스쳐지나가는 걱정의 먹구름 하나가 있더구나. 은혜가 특별히 염두에 두고 언급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간섭 레이더 망'에 '띠디디디' 포착이 됐다. J의 부모님 얘기는 선생님도 알고 있었단다. 미처 은혜에게 그 얘기는 하지 못했었구나. 은혜 메일을 보니 '미리 얘기해 줬어야 하는 거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리 말 못할 일도 아닌데 왜 굳이 말하지 않았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제부터 할 얘기들이 그 이유인 것 같아. 들어보렴.


부모님이라는 그늘
부모님이 오래 전에 이혼을 하셔서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와 살고 있다는 얘기. J형제를 알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 들은 얘기야. 사춘기 시절 겪은 일이고, 그 이후에 힘들고 외롭게 지내시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힘들었다던 얘기도 들었어. 아마 은혜에게 했던 얘기들일 거야.
은혜가 말한 것처럼, 아니 정확하게 은혜 부모님이 하신다는 말씀 '사람을 보는 데는 그 부모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가품을 보고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에 어느 정도 동의해. 아니 선생님도 젊은 시절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에 매우 중요하게 여기던 조건이기도 하단다. 그렇지.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대상이 부모이고, 심지어 부모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그린다고 하니 이보다 중요할 수 있겠니. 부모님의 사시는 모습을 미루어 자녀들의 미래를 짐작한다는 것이 일리가 있는 지론임에 분명해. 그런 의미에서 J 부모님 이야기를 듣고 염려가 생겼다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크고 작게 안고 있는 아픔, 가정
오늘도 선생님 얘기를 좀 할게. 선생님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어. 아버지가 안 계신 빈 자리가 늘 컸지만 가장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단다. '결손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우리 가족이 명명될 때였어. 매 학기 초마다 가정 환경 조사를 하면서 새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눈 감고 편부 편모 가정 손 들어봐라'하는 주문을 받을 때, 결.손.이라는 단어가 온몸으로 느껴졌었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슬며시 내게 따라붙은 단어 하나, '결손 가정'은 평생 동안 나를 놓아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결혼을 해서 만든 새 가정은 결손이 아니더구나. 단지 결혼을 해서 가정을 만들었더니 그 통증으로 얼룩진 딱지가 내게서 떨어져 나간거야. 더 놀라운 것은 외형뿐 아니라 내게 선택권이 없었던 첫 번째 가정에서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들, 어떻게든 해결하려 했지만 내 힘으로는 되지 않았던 많은 문제와의 단절도 가능하더라는 거야. 물론 그것은 처음부터 '우리의 옛 가정이 준 쓴 뿌리들에 얽매여 살지 않기로' 의지적으로 결단하고 마음을 모아 준 파트너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거야.
단지 외형적 결손가정 문제뿐이겠니. 결혼했지만 이혼한 듯 사시던 부모님, 일중독에다 독선적인 아버지, 과잉보호하시던 어머니, 무책임한 아버지, 감정표현 없는 부모님, 실패를 결코 용납하지 않던 부모님, 관계의 문제로 형제들과 왕래를 끊고 사시던 부모님…. 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첫 번째 가정에서의 상처가 결혼의 문턱에 서 있는 형제·자매들을 아프게 했거나 아프게 하고 있을 거야. 그런 이유로 해 보지도 않은 결혼에 대해 낭만적인 꿈은커녕 시작도 해 보기 전에 회의적이고 좌절에 빠진 후배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 은혜도 언젠가 너무 완벽하신 부모님의 기준 밑에서 항상 뭔가 잘 못하는 것 같은 너 자신을 느끼면 힘들다는 표현을 했었지. 크든지 작든지 그런 식의 아픔들이 모두에게 있을 거야.


두려움이 아닌 기대함으로
<날 구원 하신 주 감사>라는 찬양 기억하니? 어느 날 그 찬양의 3절을 부르면서 마음이 뜨거워졌다. '길가의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라는 가사가 나오더라. 이 찬양을 결손 가정의 그늘 속에서 아파하던 나의 20대와, 가정에서 받은 많은 상처로 결혼과 이성 교제에 대해서 자신감을 잃어버린 후배들에게 마음으로 불러주고 싶구나. 세상에 떠도는 얘기가 진실인 경우도 많지만 개인의 삶에서 그것도 하나님 안에서 사는 한 사람의 삶에서 그저 떠도는 얘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어. 우리의 과거가 어떠하든지, 우리에게는 따스한 가정을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보배로운 이름이 있어!
단지 J의 가정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인지 아니면 혹시 다른 불안이 있는 건지 묻고 싶구나. 세 번 만나는 동안  J의 말이나 행동에서 걸리는 부분들이 생기는 이유가 가정적 배경에서 오는 것이라고 추측이 되었기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냐는 거지. 그렇다면 그 불안은 날려 보내지 말고 붙들고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세 번 만나면서 벌써 상대방의 연약함이 눈에 들어왔을 것 같지는 않아서 선생님은 막연한 두려움이라는 표현을 썼다만, 앞으로 단지 J의 가정 배경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서 생겨난 쓴 뿌리의 열매들이 발견되면 지혜롭게 대처해 가자꾸나. 선생님은 자신의 자랑스럽지 않은 배경을 정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그 문제에서 자유로워진 사람이라고 생각해. 앞으로의 일이 되겠지만 그런 점이 발견되면 둘이 정직하게 대화하면 좋겠어.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24시간 항시 대기다….^^
데이트는 구름 위를 걷는 설렘과 행복의 절정을 경험하는 기회이기도 하고 '이 사람과 결혼을 하면 행복할까?'를 테스트하는 기회이기도 하니까 그 둘을 잘 누리고 활용하면 좋겠지. 중매를 잘 해서 세 커플만 성공시키면 천국행 티켓이 공짜라는 설이 있던데….ㅎㅎ 어떻게 내가 기대를 좀 해도 되겠니? 즐거운 소식 기다릴게. 아니 이제 데이트 하느라 유브 갓 메일이고 뭐고 선생님과의 이메일 데이트는 안중에도 없게 되는 것 아니냐? 그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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