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차지했던 겨울이 아침과 낮까지 차지해버린 지난 주 어느 날.

빌라 계단에 커다란 개가 앉아 있다며 현승이가 호들갑을 떨었다.

개를 키우는 집도 없는데 무슨 소리냐, 잘못 본 거라며 일축했다.

주차장에 강아지라 부르기엔 크고 개라고 부르기엔 아담한 놈이 하나 어슬렁거린다.

아, 저 녀석이었구나.

날이 추워서 따뜻한 곳을 찾다 어떨결에 들어왔었나보다.

얘가 빌라 건물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날은 더 추워지고 있었다.

계속 저러고 있으면 무슨 조치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승이랑 걱정을 하며 박스로 집이라도 만들어줘야 할까 의논을 했다.

다음 날 아침 먹을 걸 가지고

내려가 보니 누군가 이불을 깔아놓았다.

우리 빌라의 이름을 따서 '동인'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이 녀석 집이 내 차 바로 뒤인데 내가 돌아와 주차를 할라치면 

퍼져 앉아 있다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후진을 잘 하고 있는지 내내 지켜보고 있다.

오라이, 오라이, 핸들 풀고, 오른쪽으로, 오른쪽, 오른쪽! 할 기세. 

내려서 '동인아' 하고 부르면 꼬리 치고 따라와 맴돈다.

잠깐 놀아주다 빌라 현관 키를 누르고 자동문이 열리면 허망한 표정으로 서 있다.

따라 들어오진 않는다. 착한 녀석.

강아지 트라우마가 있는 채윤이를 제외하고 세 식구가 동인이 사랑에 푹 빠져있다.

세 식구 뿐 아니라 지금 이 골목의 여러 사람들이 동인이로 인해 대동단결이다.

박스로 만든 집이 생기고, 그 위에 담요가 덮이고, 먹을 것이 즐비하다.

주차하고 잠깐 놀고 있으면 

동인이 보러 나오 주민1이 머쓱해 하며 지나가던 사람 행세를 한다.

모른 척 하고 자리를 내준다.

현승이는 학교 마치고 소시지를 사가지고 친구들을 몰고 온다.

주민2 아저씨가 소시지는 몸에 나쁘다며 주지 말라고 했단다.

그래서 지가 먹었단다. 

 

현승이는 가게 가서 우유 사오라는 심부름은 뺀질거려도

동인이 먹을 것 갖다주라는 말을 잘도 듣는다. 

동인이 아빠, 아니 아니 현승이 아빠는 가끔 화곡시장 족발집에 동료 목사님들과 간다.

입에서 살살 녹는 족발, 정말 맛있는 족발이다.

가는 길에 포장 좀 해다주지, 나도 먹고 싶은데. 하면

바로 사무실로 가는데....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말을 안 들어준다.

그러던 동인이 아빠, 아니고 현승이 아빠가 밖에 있는데 메시지를 보내왔다.

'화곡동 족발 사다 집에 갖다 놨어. 맛있게 먹고 뼈는 동인이도 좀 갖다줘'

개 덕분에 그렇게 먹고 싶던 화곡동 족발 먹어보네. 개고맙!

뼈를 갖다주는데 살 다 뜯어먹고 뼈만 주냐며 뭐라 한다.

'내가 자세히 봤는데 그 녀석 얼굴이 말랐더라. 그동안 못 먹고 다녔나봐'

(얼굴 마른 걸로 치면 개보다 당신 와이프가 더 말랐다!)

이런 와중에 개 트라우마 채윤이는 들고 날 때마다 무서워서 벌벌 떠는데.

어오는 길 내가 동인이랑 놀며 시간을 벌어줘도 차에서 벌벌거리고 못 내리고 있다.

개가 아닌 딸한테 빡쳐서 '얘가 착한 앤데 뭐가 무섭다로 그래!!!'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또 하나의 가족 개가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 가족을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 회복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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