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치료에서 헬로송과 굿바이송이 참 중요합니다. 치료의 시작과 마침의 의식을 담는 노래이지요. 어떤 일이든, 적절한 의식(ritual)으로 마치는 것은 의미의 마침표를 찍는 일과도 같습니다. '신앙 사춘기' 연재를 마치고 수고한 나를 격려하는 의미로 남편에게 옷을 한 번 사달랠까, 어쩔까. 가장 자본주의적인 머리를 굴리고 있었는데요. 자연스레 다가온 리츄얼은 기도 피정이었습니다. 더 아름다운 마침표는 인터뷰 글과 영상이네요. 글, 영상에 더하여 노래도 한 곡 있습니다.


+ Ritual 1 : 글


[정신실의 신앙 사춘기] 연재 마치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질문받고 싶어 하는 존재인가요. 부끄럽다, 민망하다 하면서도 누군가 내 이야기를 궁금해 하기를, 물어주기를, 잘 들어주기를 바라지요. 나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을 하는 것은 나를 내 앞에 세우는 과정이기에 큰 배움이 됩니다. 


저는 인용문 많은 글을 좋아하지 않고, 잘 읽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 글을 쓸 때도 가급적 뭐든 제 말로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 연재에선 의식적으로 인용을 많이 했습니다. 눈 밝은 편집 기자님께서 이 부분을 간파하셨습니다. 연재 마치고 ‘독서 여정’이란 주제로 인터뷰 하자고 하셨지요. 귀신 같이 캐치하신 내용으로 파고들어 질문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신앙 사춘기를 건너온 저만의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저도 다시 확인하게 되었네요. 쓰기와 읽기. 제 한 몸 추스르고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뉴스앤조이 인터뷰] '하나님 부재' 느낀 방황의 시간, 독서로 뚫고 왔다



+ Ritual 2 : 영상


녹음한 자기 목소리 민망해서 못 듣는 것, 저만 그렇지 않죠? 음성 직면(voice confrontation)이라는 말이 있어요. 상담을 통해 자기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을 ‘직면’이라고 하죠. 매우 힘든 순간이거든요. 자존감이 높네 낮네 해도, ‘남이 보는 나’보다 스스로 더 낫다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음성 직면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자기 목소리는 공기 전파 뿐 아니라 뼈로 전달되는 음파까지 듣게 된대요. 아마도 더 풍부한 소리로 듣게 되겠지요. 녹음된 소리는 대체로 더 고음으로 들리고 가볍게 들리기에 기대에 못 미친대요.


하물며 영상은! 저는 방송 등에 나온 제 영상을 제대로 끝까지 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궁금하니 음소거 하고 보고나, 짧게 짧게 보죠. 저만 그런가요? 영상 속 저보단 주름이 없고 통통하고 예쁠 거라는,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에 직면이 어려운 것 같아요. (네, 내용은 모르겠고 예쁘게 나오는 게 제일 중요해요. 저는 그래요.)


이번 영상은 다 봤습니다.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이미지 관리 따위는 잊고 봤습니다. 제가 쓴 많은 분량의 글과 했던 말이 그야말로 ‘편집 되어’ 나온 것이지요. ‘편집’은 얼마나 위력을 가진 말입니까. 진실을 살짝 고쳐 ‘가짜 뉴스’ 만드는 것도 편집의 힘입니다.이 영상에서도 편집의 힘을, 아니 편집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제겐 그저 일상, 심지어 하찮다고 느껴지는 개인적인 이야기에 의미의 옷을 곱게 입혀주셨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만들어주셨어요. 역시나 제 목소리와 얼굴과 표정은 맘에 들지 않고 민망하지만 편집자(또는 창작자)가 담은 메시지와 의미는 참 좋습니다. 민망함 따위는 잊고 저 자신 독자가 되어 영상이 전하는 메시지에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 Ritual 3 : 노래


연재 내내 엄마가 단골로 등장했습니다. 엄마에 대한 얘기를 들으시는 분들이 '부럽다'고 하십니다. 엄마와 잘 지낼 수 있는 딸(아들도)이 많이 않지요. 엄마를 지금처럼 투명하게 대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시간을 보냈는지 말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세요. 마음 속으로 수십 번 엄마를 죽였다 살렸다 했습니다. 제게 신앙 사춘기는 교회를 넘어서고, 종교적 신앙을 넘어서는 일인데 그 모든 상징은 '엄마의 신앙'으로 대변될 수 있습니다. 연재 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가사가 하나 떠올라 노랫말을 지었습니다. 거의 모든 찬송가를 다 외우던 엄마가, 눈도 흐려져 읽을 수 없는 엄마가, 이제 외워 부를 수 있는 찬송도 거의 없습니다. 가장 자신 있게 부르는 곡이 '예수 사랑하심은'인데. 그 노래 녹음하고, 엄마의 노래 뒤에 노래를 하나 만들어 붙였습니다. 가사를 쓰고, 남편을 졸라 곡을 붙여 달라 했고요. 젊은 날 한 때 곡좀 쓰던 남편이 20년 손을 놓았던 작곡펜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곡, 마음 먹고 들려드리려 했더니 티스토리가 음성 파일은 못 올리게 하네요. 제가 만들고 제가 부르며 우는 노래, '떠나서 다다른 사랑'입니다.



[떠나서 다다른 사랑] 

                                     

                           작사 정신실 / 작곡 김종필


(엄마 노래)

예수 사랑하심은 성경이서 배웠네

우리덜은 약허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승경이 쓰셨네 아멘


(딸의 노래)

예수 사랑 그 사랑 나는 엄마에게 배웠네
엄마의 눈물 엄마의 걱정 그건 엄마의 기도
예수 사랑 그 사랑 나는 엄마에게 배웠네
엄마의 노래 엄마의 한숨 그건 엄마의 사랑
그 슬픔이 나에게 더욱더 큰 슬픔이 되었고
그 걱정은 내게 와 더욱더 옥죄는 두려움 됐네
눈물 어린 찬송 걱정 담긴 기도
나 떠났네 나 버렸네 부끄런 그 사랑

(간주)

날 사랑하심 음음 날 사랑하심 음음
예수 사랑 그 사랑에 나 닿고 말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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