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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키우는 엄마

말과 글 얘기2_녹취로 쓰는 일기

larinari 2007.09.20 11:54
두 아이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음악을 하든 뭘하든 꼭 잘했으면 하는 게 있다.
부부가 함께 공감하고 바라는 부분인데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글쓰기' 즉 '인문학적 사고'를 잘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건 학교에서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고 이것을 위해서 논술학원이나 독서교실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책하고 친해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도 엄마빠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지가 좋아서 책을 읽어야지 억지로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니.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그거는 자신 있는 대목. 집 안에 쌓인 게 책이고  밟히는 게 책이고 엄마빠, 특히 아빠는 책을 끼고 사는 사람이니까. 나중에 아이들이 '엄마빠 때문에 책이 싫어요. 엄마가 책좀 읽게 가만좀 놔두라고 신경질 부리고 그랬어요' 이럴지도 모를 일.

채윤이에게 맞는 글쓰기 교육이 시작되었다. 채윤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에 '용감한 엄마' 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글자교육을 시키지 않은 건 채윤이가 스스로 배우고 싶어할 때까지 기다리리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스스로 배우고 싶어하는 날은 오지 않았고 까막눈을 면하지 못한 채 초딩이 되고 말았다.
가장 우려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글자에 주눅이 들어서 글자로 하는 모든 일에 주눅이 들어버리는.....사실 그래서 글자교육을 안시킨건데 '나는 글씨를 잘 몰라서 쪽팔리다'라는 것을 제대로 체득하게 한 것이다. 오 마이 갓! 무엇보다 채윤이가 이렇게 글자에 대한 감각이 늦게 발달할 줄을 몰랐다. 확실히 채윤이는 시각적인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이 약하다.

처음 학교에서 그림일기 숙제를 내주어서 하다보니 속이 터지는 일이었다. 그림 그리는 것은 좋아하니까 무엇을 그릴까 생각하고 예쁘게 그리는 것 까지는 좋고, 무엇을 쓸까? 엄마랑 같이 얘기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이제 써 봐. 하면 두 문장 정도의 상투적인 글이 나오는 것이다.
말로 할 때는 그 좋은 표현들이 글로는 하나도 나오질 않는다. 왜 그럴까? 글자에 대한 위축 때문이었다. 글자로 자신을 표현하려면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으니 자유로운 표현이 되질 않는 것이엇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다. 일단 무엇에 대해서 쓸 지 얘기를 하게 해놓고 내가 받아 적었다. 그리고 그것을 쓰게 하였다. 받아 적는 게 힘들어서 요즘은 엄마 자신이 녹음기가 되어 기억을 했다가 한 문장 한 문장씩 녹취를 풀어낸다. 희한하다. 연필만 잡으면 지가 한 얘기도 생각이 안 떠오르고 머리가 하얘지나보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도와줘야 할까? 이렇게 돕는 것이 옳은 방법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학 2학년 쯤 되어서 글자가 완전히 숙달이 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일기 쓰면서 늘 강조하는 것이 '글은 말과 같애. 말하는 것처럼, 엄마한테 재밌게 얘기해주는 것처럼 쓰면 최고의 글이야'이렇게 반복해서 가르친다.

채윤이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예전에 아버지가 내 글짓기 숙제를 도와주셨었다는 생각이 났다. '반공 선언문 쓰기' 숙제였는데 '유비무환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불러주셨고 그걸 받아 적었었다. '아~ 아버지가 내 글짓기를 봐 주신 적이 있구나. 이렇게 채윤이 같은 나를 앉혀 놓고 시키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눈시울이 잠깐 뜨거웠었다. 그 이후로 나는 반공 선언문 쓰기에서 늘 상을 받았고 글짓기에 관해서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언제까지 채윤이를 옆에 앉혀 놓고 이렇게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을 지 모르겠으나, 기도한다. 구체적으로 기도한다. 채윤이 현승이가 무엇을 하든 어떤 사람이 되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책을 통해 공부하고, 자신의 말과 삶에 겉도는 글이 아니라 살아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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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좋은데 다른 엄마들이랑 다른 엄마를 만나서 고생하는 채윤이.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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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 프로필사진 로뎀나무 2007.09.20 17:34 그림은 채윤이가 그리고 글자는 수민이가 쓰고.. 그러면 정말 훌륭한 그림일기 나오겠당.. 울 아들은 그림에 영~~ ㅜㅜ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7.09.20 18:22 신고 담번에 만나면 그림일기 놀이 하라구 하자.ㅎㅎ
  • 프로필사진 BlogIcon forest 2007.09.20 19:45 공감 백배~

    직업을 달리한 이유도 글쓰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분명 한글로 쓰고 있는데 제대로된 글쓰기가 안되었다는...ㅜ.ㅜ

    더구나 아직도 제대로된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제가 요즘 아주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글쓰기는 생각의 실타래를 잘 풀어내는 작업이기도 하기에 생각주머니도 더 넓혀야 할 것 같구요.
    정말 글 잘쓰시네요. (이건 털보의 말이랍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7.09.21 00:21 신고 정말이요?
    우왕~ 기분 좋아.이 야심한 밤에 저 훨훨 납니다.

    글쓰기에 대해서 희한하게 좋은 분들을 통해 배우고, 더 배우는 기회를 얻곤했는데 최근에는 두 분의 블로그를 통해서 배우는 배움이 많아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요.^^(아~ 이건 댓글로 쓸 무게가 아닌데...)
  • 프로필사진 물결 2007.09.21 16:49 글쓰기지도 45시간 수업이 다음 주면 끝나는데, 정작 하민이에게는 아무것도 못해주고 있어. 무엇보다 하민이는 그림이든 글이든 '지도'를 좀 해 주고 싶어도 옆에서 뭐라하면 짜증을 내서, (아주 잘 하는 것도 아니면서) 손을 댈 수가 없어. 조금 더 지켜보다가 해야되는가 생각하고 있어. 여전히 책읽기는 좋아하니까 독서력은 길러지는데, 깊이 있는 읽기를 8살짜리에게 바라는 게 무리겠지?
    글쓰기를 내려놓지 않은 네가 부럽다. 다시 시작하려니 너무 힘도 들고, 호흡도 짧고, 끝까지 '독서, 논술' 포기하지 않도록 기도해줘.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7.09.22 00:22 신고 시작한다는 얘기 들었었는데 벌써 끝났구나.
    딱 시간을 정해놓고 뭐를 해주지 않아도 엄마가 공부한 건 생활 속에서 아이에게 스며들게 되었있는 것 같아.

    하민이는 엄마 손이 덜 가도 잘 하는 몇 안 되는 아이야. 애써 손대지 않아도 잘 하잖아. 하민이 처럼 글 읽고 이해하는 게 빠른 아이를 보지 못했어.
    최근에 샬롯 메이슨이라는 홈스쿨의 대모로 여겨지는 분에 관한 책을 봤는데 독서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책을 읽고 나서는 반드시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하더라구. 읽은 책의 내용이든 뭣이든 간에...그 다음에 그것을 글로 쓰고.
    아이고, 내가 뻔데기 앞에서 주름 잡네. 그래. 채윤이도 하민이도 책 읽고, 생각하고 글쓰는 일을 즐거워 하는 아이들로 자라기를 기도한다.

    피아골(맞나?)에 단풍이 곱게 물들 즈음에 애들 데리고 한 번 갈께. 보고싶다.
  • 프로필사진 신의피리 2007.09.22 18:44 ㅋㅋㅋ 엄마는 생각은 좋은데 다른 엄마들이랑 달라서 싫다...
    이런 건 패러디 하면 클 나겠지? ^^;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7.09.22 21:21 신고 내가 해주까?
    우리 아내는 생각은 좋은데 다른 아내들이랑 달라서 내가 너무 피곤하다.
    대리만족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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