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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인, 꼬마 철학자

매실

larinari 2013.06.20 10:02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매실을 담궈봅니다.
택배로 온 매실을 손질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현승이가 왔다 갔다 하더니.

"엄마, 나 이제 매실 못 먹을 거 같애." 라고 합니다.

현승이가 매실액에 얼음 넣어 마시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무슨 말이랍니까?

"슬퍼서.... 엄마 할아버지 병원에서 마지막에.... 그 열매 있잖아. 그거 매실이야.
 정말 딱 이렇게 생겼었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날에 네 식구 모두 병원에 있었습니다. 햇살 좋은 초여름 날이었고, 몰핀 때문에 잠만 주무시는 할아버지를 코빵(아, 할아버지가 채윤이 현승이를 키우실 때 유모차를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거기 태워 흔들흔들 밀어 재워주셨고, 동네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주셨지요. 할아버지가 마지막에 타신 휠체어는 코빵 같은 느낌이었습니다)에 태워 모시고 산책을 했습니다. 삼부자가 산책을 하면서 매실나무 아래서 쉬었던 모양입니다. 아빠가 현승이를 안아 올려 매실 열매 두 개를 따게 해주었습니다.
현승이는 매실 하나는 자기 주머니에, 하나는 할아버지께 드렸습니다. 드렸지만 받지는 못하시는 할아버지이시기에 침대 옆에 놓아드렸습니다. 다음 날 할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엄마 아빠 누나가 할아버지를 붙들고 울고 있는 사이 현승이는 곁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 병실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임종 시에 예배를 인도하셨던  정경식 목사님께서현승이를 챙기셨던 것 같습니다.

장례식를 다 마치고 현승이가 그랬습니다. (생각해보니 현승이는 장례식 내내 울지도 않았습니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가 울고 있을 때 혼자 입원하셨던 침대에 가봤는데 매실 열매는 없어졌더랍니다. 자기 주머니에는 어제 그 매실이 있었습니다. 그 매실을 밖에다 던져버렸답니다. 화가 나서 그랬다는군요.

엄마가 매실 다듬는 것, 설탕 10킬로를 사서 들고오는 것, 담그는 것을 옆에서 조잘조잘대며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밤에 이런 일기를 썼습니다. 현승이 잠든 밤에 일기 보고는 눈물이 핑 돌았네요.


 

제목 : 매실 (2013년 6월 18일, 비)


우리 엄마는 오늘 매실을 아주 많이 샀다.
왜냐하면 매실 원액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나는 매실과 관련된 슬픈 사연이 있다.
작년에 할아버지는 간암 때문에 병원에 계셨다.
돌아가시기 1일 전 할아버지 병원 옆에 있는 공원에서 산책을 하였다.
매실나무가 있어 나는 매실을 따 할아버지께 드렸다.
할아버지는 다음 날 돌아가셨구 결국 매실이 나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나는 정말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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